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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 M.I.L.K (1)

2023.07.19 조회 137 추천 0


 #001. M.I.L.K (1)
 
 
 
 
 
 우유 한 잔 마실 시간을 주지.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200ml 종이팩을 마실 시간이 아니야. 5살 아기의 컵. 그중에서도 반 정도밖에 담기지 않은 양. 딱 그 양을 마실 만큼의 시간이야.
 
 너는 그 우유를 천천히 마시고 이 이야기는 도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천천히 고민하기 시작하겠지. 시답잖은 이야기일지, 항문이 찢어질 정도로 웃긴 이야기일지, 그도 아니면 오줌을 지릴 정도의 무서운 이야기일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될 거야.
 
 우유를 다 마시면 내 눈을 바라보겠지. 내 입과 진동이 떨리는 성대와 목젖, 그 모든 것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길 원하고 있을 거야. 이렇게까지 뜸 들였는데, 만약 내 이야기가 재미없다면 당장이라도 내 멱살을 잡아채겠지.
 
 음, 먼저 사과해 두지.
 
 내 이야기는 재밌는 얘기가 아니다. 삼십 분 전까지만 해도 이 이야기는 재밌을지도 몰랐던 이야기였다. 아니, 확실하다고 보증할 수 있다. 사람들은 남의 불행에 관심이 많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내 이야기를 하려면 오늘의 일과 삼십 분 전의 일과 짤막한 내 이야기를 설명해야 한다. 아니, 당신들은 들어야만 한다. 왜 내가 이 지경까지 되었는지를. 이건 내 마음속의 외침이자 구원이며, 또는 희망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제 와서는 절망이라고밖에 볼 수 없나.
 
 옛날에 친구 한 놈이 했던 말이 있다. 그놈은 자살을 했었는데, 이유 같은 건 말하고 싶지도 않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자살한 원인 같은 것이 아니라 어떻게 자살을 했느냐다. 그 녀석의 자살 방법은 어떤 나라의 자살 예정자가 봐도 독특하다 못해 특별했다.
 
 그 방법은 이랬다. 먼저 시리얼을 배가 터질 때까지 잔뜩 목구멍에 넣는다. 그리고 갈증이 해소되는 한계치를 한참이나 벗어날 정도로 계속해서 우유를 목구멍에 쑤셔 넣는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대량 주문한 우유를 욕조가 가득 차게 부은 뒤, 그곳에서 곧바로 자신의 동맥을 긋는다.
 
 녀석이 담긴 욕조는 곧바로 딸기우유 색으로 변한다. 그 녀석은 축 늘어진 채 욕조에서 둥둥 떠다녔을 것이다. 이틀 후 그 녀석이 발견됐을 때 그 모습은 마치 계속해서 부풀어 오르는 빵 반죽 덩어리처럼 보였다고 한다. 미쉐린타이어의 마스코트 캐릭터같이 말이다. 목부터 시작해 발끝까지 지방이 한 겹, 두 겹, 세 겹, 모든 살들이 겹겹이 불어 있었다나. 그 녀석은 참 마른 녀석이었는데도 말이다.
 
 시체를 부검할 때도 꽤나 고생했다고 한다. 성인 남자 2명의 머리통만 한 크기로 부풀어 오른 위장을 절개했을 때는 소화되다 만 우유와 초코 시리얼이 한가득 쏟아졌었다지.
 
 나는 그 소식을 듣고 죽음에 애도를 표하기 전에 ‘어째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야, 당신들도 궁금하지 않은가? 나의 인간성을 의심하기 전에 내 친구가 어째서 그렇게 죽었는지 말이야.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답은 간단했다.
 
 그냥 죽기에는 너무 억울하니까. 특별한 방법으로 죽고 싶은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그랬거든.
 
 바보 같은 놈. 그럴 거면 왜 죽었냐. 그때 나는 숱하고 많은 방법으로 그 녀석을 질타했었다.
 
 하지만, 나도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을까? 그 바보 같은 놈보다 더 등신 같은 놈이 바로 나였다는걸.
 
 인간이란 것은 정말 다 똑같은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인간이란 건 죽기 전, 자신의 존재가치를 알리기 위해서 무슨 방법이든 동원하고 싶은 것인가. 우유에 찌들어 죽어 버린 그 녀석은 바보일까? 아니면 이 세상에 저항하기 위해 자신만의 몸부림을 쳤던 것일까? 그렇다면 나의 존재가치는? 나의 존재가치는 도대체 무엇인 걸까? 나는 그게 궁금했다.
 
 그러다가 그걸 확실히 깨달은 것은 오늘 오전 9시. 한 사람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생명을 포기하더라도 갚을 수 없을 정도의 빚이 있다는 걸 정확히 100번째로 알아 버린 순간이었다. 이 도시 시민들이 가장 많이 자살하기로 유명한 강으로 걸어가던 나는 전봇대 앞에서 누가 봐도 불량 광고글이라는 걸 알 수 있는 전단지를 봤다.
 
 「같이 죽을 사람 구합니다. 연락 주세요.」
 
 세상에는 별 인간들이 다 있구나. 그 생각을 하고 그냥 지나치려다가 나의 존재가치를 시험해 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 아직까지 내가 죽기에는 이 세상에 궁금한 점이 너무나도 많구나’라는 걸 생각하고, 또 ‘이놈은 세상에 무슨 원한이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한 순간, 나는 곧바로 지체 없이 이제는 보기도 힘들다는 공중전화 부스를 찾아가서 주머니에 남아 있던 동전을 쏟아붓고 번호를 눌렀다.
 
 “아······ 예. 여······보세요.”
 
 시체가 말을 한다면 그런 느낌일까. 그건 산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생기라고는 전혀 없는 추욱 늘어지는 목소리는 아무리 곧 죽을 나라고 해도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살하기 전에 먼저 우울증으로 죽을 것 같은 목소리였다.
 
 “전단지 보고 연락드렸습니다.”
 
 본론부터 간단히 짧게 말한 나에게 그 녀석은 “아······ 그······러시군요. 그럼 일······단 만나······는 것부터”라는 말, 단 한마디를 1분 동안이나 추욱 늘어진 채 말했다. 이 녀석은 내 근성을 시험하는 걸까. 아니면 혈압을 높여 사람을 죽이는 신종 살인범인가. 별생각이 다 들었다. 난 그렇게 20분 동안 그놈과 연락을 했고, 만날 장소를 정했다. 그리고 통화를 끊음과 동시에 혈압이 올라 수화기를 부서뜨릴 듯이 내려놓았다.
 
 만나기로 했던 카페로 간 나는 그놈이 오기를 기다렸다. 내가 도착하고 나서 3분 후에 카페 문이 열리더니 사람 하나가 들어왔다.
 
 딱 봐도 전화했던 그 사람이라는 촉이 왔다. 약간 굽은 허리에, 빼빼 마른 몸. 피골이 상접한데다 진한 다크서클, 심지어 현재진행 중인 탈모까지! 참 기구한 인생을 살았을 것 같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왔다.
 
 놈은 자신이 젖소 농장을 운영하는 사람이라고 했고, 이제 50대 중반을 넘겼다고 했다. 뭐, 그다음부터는 뻔한 레퍼토리였다. ‘사업이 기울고, 빚을 지고, 여차저차 해서 망했습니다’라는 말. 굳이 듣기도 귀찮을 정도였다. 것보다 녀석은 자신이 왜 죽고 싶어 하는지, 왜 죽어야만 하는지를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전부 말했다. 그 혈압 오르는 말투로! 하지만 요약은 또 어찌나 잘하는지 그 장황한 설명을 30분 이내로 끝마쳤다.
 
 “저, 그래서, 말인데······.”
 
 그때부터 놈은 나에게만 들릴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자신에게 연락이 온 사람은 나를 포함한 4명. 다른 2명은 따로 간다고 전했다. 어쨌거나 나와 농장주는 농장주의 배를 타고 그가 운영한다는 젖소 농장으로 간다고 했다. 신농법이라고 해서 사람의 때가 타지 않는 자연 친화적인 섬 농장이라나 뭐라나. 농장주는 이 농법이 얼마나 개엿 같았는지를 설명하며, 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다시 한번 말해 줬다. 아, 물론 카페에서가 아니라 차를 타고 가면서 말이다.
 
 4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국토의 가장 끝에 위치한 시골 바다. 그곳에 내린 나와 농장주는 탁 트인 바다를 보았다. ‘바다를 본 것이 얼마 만이었을까’라는 감상에 젖기도 전, 농장주는 나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둣가로 걸어간 농장주와 나는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나머지 2명을 만날 수 있었다. 한 사람은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였고, 한 사람은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여자는 예뻤고 남자는 못생겼다. 그게 다였다. 아니, 설명을 더 하고 싶어도 녀석들은 그저 인사만 꾸벅하고 나와 농장주에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죽음에 가까워진 인간은 각기 다르다는 건가. 뭐, 그렇게 해석하면 편한 것 아니겠는가.
 
 우리는 배를 타기 전에 바다에 휴대폰을 집어던졌다. 나야 사채업자들의 추적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휴대폰 같은 건 애초에 없었지만 말이다. 여자와 아저씨, 농장주는 각기 다른 표정을 짓다가 있는 힘껏 바다로 휴대폰을 던졌다. 그리고 우리는 배를 탔다.
 
 탄 지 얼마 되지 않아, 배 엔진이 돌아가는 소리와 물살을 헤집는 소리, 바람이 귓구멍을 때리는 소리가 합쳐졌다. 나는 주머니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 물었다. 마지막 남은 돛대였다. 사실, 아침에 강으로 뛰어내리기 전 천천히 피우려고 아껴 뒀던 담배였었다.
 
 하긴 그거나 이거나 뭐가 다르겠어. 그것보다는 다들 추욱 늘어진 게 꽤나 볼만했다.
 
 남자와 여자는 나라라도 잃은 마냥 뱃고동이 울리는 뒤쪽 철판에 등을 댄 채 멍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고, 농장주는 배 난간에 서서 담배를 쪽쪽 빨아 댔다.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는 항상 이렇게 불행해야 하는 거겠지.
 
 한참 가다 보니, 저 멀리 안개에 싸여 있던 섬의 윤곽이 드러났다. 크기를 가늠해 보았다. 그렇게 크지도 않았다. 오히려 매우 작은 섬이었다. 배가 해안에 근접하기도 전, 섬에 뭐가 있는지 다 보였으니까.
 
 그곳에는 10마리 정도 되어 보이는 젖소들이 울고 있었다. 관리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풀밭과 다 낡아 빠진 목장. 그것들 말고는 이 섬에 존재하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그나마 특별하다 할 수 있는 건 섬 가운데, 사각형 모양으로 겹겹이 쌓아 올린 커다란 목재뿐이었다.
 
 나는 풋, 웃음이 터져 나왔다. 초등학교 수학여행 때나 보고 그 이후로 보지도 못한 캠프파이어라니. 농장주 아저씨다운 생각인가. 뭐, 죽기 전 마지막 축제라는 거겠지.
 
 “자, 다들 모였습니까.”
 
 배에서 마지막으로 내리는 나를 바라보며 농장주가 말했다. 아무래도 이제 죽을 날이 가까워지니 기운을 차려 보겠다는 생각인 건가. 아까의 시체 같던 말투가 사라져 있었다. 내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20대 후반의 예쁜 여자가 울상이 된 표정으로 말했다.
 
 “아저씨, 이제 뭐 하실 거예요? 난 말이죠, 그냥 섬에서 죽을 사람을 모으는 거라고만 들었어요. 그러니까, 내 말은 뭐 여기서 어떻게 자살할 거냐 그거예요. 죽을 거면 빨리 죽어요. 더 이상 미련 가지지······.”
 
 농장주가 손을 들어 그녀의 말을 제지하고 예쁜이 옆에 있던 40대 아저씨에게 말을 건넸다. 그러고는 나도 지목을 하며 따라오라는 소리를 했다.
 
 “다들 도와주실 것들이 있습니다. 따라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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