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12월 24일, 교무실 앞, 복도.
팍!
“내가 졸업할 때까지 사고 치지 말라고 했지!”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시는 담임이다.
'나도 사고 치고 싶지 않지.'
그런데 피가 끓는다.
우습게 보이면 안 된다.
왜?
나는 꼬맹이들의 독재자이니까.
사람들은 보육원에 사는 애들을 깔본다.
무시한다.
무시당하는 건 죽기보다 싫다.
"네 녀석은 왜 이렇게 오지랖이 넓어? 못 본 척하고 그냥 지나치라고 했잖아!"
팍!
보란 듯 교무실 앞 복도에서 담임에게 야구방망이로 20대를 맞았다.
다 보란 듯!
모두가 보란 듯 그렇게 맞았다.
“야, 최진호!”
“예, 선생님.”
“일어나.”
나는 발딱 일어났다.
‘아파 죽겠네.’
설설 때려도 될 건데 담임은 온 힘을 다해서 야구방망이를 휘두르셨다.
“너 한 번만 더 그러면 정말 퇴학이야.”
“예, 선생님.”
막둥이처럼 순둥하게 대답했지만 나는 퇴학을 당할 것 같다. 사실 나는 퇴학과 자퇴를 고민 중이다.
“김 선생, 아무리 쇼하셔도 이제는 안 됩니다. 개인적으로 김 선생도 딱하고 저 꼴통도 짠하고 하지만 방법이 없어요.”
지나가는 늙다리가 나를 짜증나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선생님에게 말했다.
“하여튼 김 선생 아니었으면 벌써 퇴학을 당해도 10번은 당했겠네, 왜 사고만 치는지 모르겠네요. 전교 1등이면 뭐합니까? 머리만 좋으면 뭐 합니까? 세상 물정을 모르는데, 쯧쯧!”
맞다.
나는 전교 1등이다. 그리고 저 늙다리 주임 선생님이 말한 것처럼 고아 새끼다.
세상 물정이 무엇일까?
그냥 알아서 기고 엎드리라는 소리다.
사실 고아 새끼가 사립 고등학교에 다닌다는 것부터 말이 안 된다. 물론 사립 고등학교라고 해서 모두가 명문이고 귀족 학교는 아니다.
내가 다니는 학교의 이사장은 그냥 돈 벌려고 학교를 세웠고 학부모들에게 제대로 빨대를 꽂는 그런 존재다.
'서울대 입학자 배출 학교라는 간판 하나 달려고······!'
전액 장학금을 준다는 조건으로 나를 스카우트(?) 비슷하게 입학시켰었다.
왜냐고?
사립 고등학교에서 서울대 입학자 배출이라는 간판 하나만 달아도 급이 달라지니까.
“학생주임 선생님, 말씀이 심하신 것 아닙니까?”
담임이 또 나서신다.
“뭐라고요?”
“사실 최진호가 잘못한 것이 뭐가 있습니까?”
“쌈질한 것이 잘한 겁니까? 지금 저 새끼한테 맞은 애들이 병원에 입원해 있어요. 성질 죽여야 할 때 못 죽인 것도 잘못이라고요. 잘못! 우리 같은 것들은 성질을 부리고 살면 안 된다는 것부터 가르쳤어야죠.”
“진호 저 녀석 이야기는 들어보셨습니까?”
“들어보나 안보나 뻔하지. 내가 쟤 말을 들어준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고······!"
찰나의 순간 늙다리 국어 선생님이 나에 대한 미안한 눈빛을 보였지만 그것도 잠시뿐이다.
'이해합니다···!'
선생님들도 먹고사셔야 하니까.
사립고의 가장 큰 문제는 재단 이사장이 황제나 다름없는 권력을 휘두른다는 거다. 그런데 사립고라고 해서 재단 자금만으로 운영되는 게 아니다.
대한민국 사립 고등학교 대부분은 정부의 지원으로 운영된다. 그런데도 이사장은 상상을 초월하는 권력을 휘두른다.
“나쁜 녀석들이 장난삼아서 다른 애들 돈을 갈취하는 것을 말리다가 어쩔 수 없이 싸웠답니다.”
“그 나쁜 애들보다 더 나쁜 새끼가 저 최진호라니까요.”
“왜 진호를 퇴학시키지 못해서 안달을 내십니까? 진호가 퇴학당하면 승수가 전교 1등 된답니까?”
“김 선생!”
“선생님······.”
나는 담임의 옆구리를 꾹 질렀다.
‘저러시니 아직도 평교사지.’
이 지랄 같은 학교에 최강 오지랖이 둘 있다.
나랑 선생님.
분명한 것은 둘 다 인생 참 힘들게 사는 스타일이다.
외면하고 시선만 돌리면 편하게 살 수 있을 건데 그게 안 되는 사람들이 꽤 있다.
뭐라고 할까?
자기 인생, 볶으며 힘들게 살아가는 팔자인 거다.
“왜?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라고 했어.”
괜히 나한테 짜증을 내시는 담임이다.
“선생님······.”
“김 선생, 알 만한 사람이 계속 이럴 겁니까?”
“예, 이럴 겁니다. 최진호는 좋은 일 하다가 그렇게 됐습니다.”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잖아요. 우리 솔직해집시다. 맞은 놈 중에 한 놈은 전치 4주고 또 다른 놈은 3주입니다. 정당방위 좋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 중에 이사장님 자제분이 있어요.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요? 나 곧 정년입니다.”
그랬다.
패다 보니 한 새끼가 우리 학교 이사장 아들 새끼였다. 그때 뭐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팼다.’
그리고 나는 고아 새끼다.
담임이 아니면 벌써 퇴학당했을 것이다.
하여튼 오지랖도 있는 새끼들이 부려야 뒤탈이 없는 것이다.
“아시는 것처럼 저 새끼 학교 상벌 위원회 회부를 할 겁니다.”
“주임 선생님!”
담임의 목소리가 커졌다.
“나보고 어쩌라고요?”
“아무리 그래도 학교가 그리고 우리가 이러면 안 되잖습니까.”
맞는 말씀이시다.
학교 그리고 선생님들이 학생에게 이러면 안 된다. 하지만 삶이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이다. 못 본 척하고 외면하고 그렇게 살아도 버텨내기 힘든 것이 대한민국이다.
“그러게요. 이러면 안 되는데 나도 먹고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사고 좀 치지 말게 하라고 그렇게 신신당부했잖습니까. 쥐뿔도 없는 새끼가 오지랖만 넓어서 어쩌라고요. 쯧쯧, 나도 쟤가 가엽습니다. 그런데 나도 살아야죠.”
맞는 말이라서 할 말이 없다.
그때 복도 끝에서 사람들이 교무실 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퇴학이 결정될 겁니다. 퇴학을 당하기 전에 자퇴시키세요. 나도 아이고······!"
주임 선생님이 말꼬리를 흐리셨다.
‘누구지?’
70대의 노인이다.
그리고 그 노인 뒤에는 수행비서처럼 보이는 두 명의 중년 남자가 70대 노인을 보좌하며 걸어오고 있다.
그런데 내 앞에 멈춰 섰다.
‘최상욱 회장······!’
TV에서나 봤던 대성그룹 총수인 최상욱 회장을 내가 직접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네 이름이 최진호냐?”
최상욱 회장이 나를 보자마자 내 이름을 부르며 내가 맞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김 선생님과 늙다리가 놀란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네 어머니 이름이 최순희지?”
“예?”
“맞냐?”
“예, 그런 걸로 압니다. 그런데 왜 그러시죠?”
나는 고아지만 엄마의 이름은 알고 있다. 물론 얼굴은 사진으로만 봤지만 말이다.
“그래도 똘똘하게는 생겼구나.”
“예?”
내가 되물었지만, 최상욱 회장은 고개를 돌려 선생님과 늙다리를 봤다.
“내 손자에게 무슨 문제 있습니까?”
쿵!
숨이 턱하고 막히는 순간이다. 내가 들은 이야기가 의심스러울 뿐이다.
“무, 무슨 말씀입니까?”
늙다리가 놀라서 말까지 더듬으며 최상욱 회장에게 되물었다.
“됐고.”
다시 나를 보는 최상욱 회장이다.
“짐 싸라, 집에 가자.”
또 한 번 멍해지는 순간이다.
하루아침에 내 인생의 계급이 바뀌는 순간이다.
인생 로또를 맞은 순간인데 이상하게 싸한 기분이 든다.
* * *
대성 건설 사장실.
“백부께서 형님의 아들을 끝내 찾으셨다고?”
대성 건설 사장은 최상욱 회장의 조카로 최상욱 회장과 대성 그룹에서 꽤 인정받는 경영인이었다. 최상욱 회장이 장남이고 작고한 대성 건설 사장의 부친과 나이 차이가 상당해서 대성 건설 사장은 30대 중반이었다.
“예, 회장님께서 학교로 직접 가셨답니다.”
“드디어 때가 된 거네요.”
대성 건설 사장은 만감이 교차하는 눈빛이었다.
‘욕심을 부릴까?’
속으로 잠시 생각했다가 피식 웃어버리는 대성 건설 사장이었다.
“예?”
“조카보단 손자잖습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사장님께서 대성 건설에 쌓아두신 업적이 있는데 바로 토사구팽당하겠습니까?”
“제가 백부님의 조카가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왔겠습니까. 잘된 일입니다.”
“아직 포기하실 때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포긴 가지려는 욕망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원래부터 형님 것이니 형님 아들한테 가는 게 맞죠. 다른 사촌들이 어떻게 나올지 걱정이네요.”
“사장님, 정말 미련이 없습니까?”
“미련, 그건 미련한 사람들이 하는 겁니다.”
* * *
최상욱 회장의 저택.
“유전자 검사는 하시고 저한테 이러시는 겁니까?”
믿어지지 않는 일이 일어났기에 믿을 수 없다.
소설 같은 이야기는 소설 속에서나 일어나는 법이니까.
“이 녀석이 재벌을 띄엄띄엄 보는군. 김 실장.”
“예, 회장님.”
김 실장이라는 사람이 내게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너, 전교 1등이라며?”
“예.”
“봐라.”
최상욱 회장이 내게 말했고 나는 서류를 확인했는데 영어로 된 서류다.
‘90% 이상.’
서류대로라면 내가 최상욱 회장의 친손자 맞다.
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유전자 검사를 통해서는 친족 일치 여부 정도만 확인할 수 있는 걸로 안다.
'기다렸다는 거야?'
유전자 검사가 더 정확해질 때까지.
'그런데 생부는 어딨어?'
이 유전자 검사는 생부와 내 유전자 일치 여부를 나타내는 서류다.
국내에서는 유전자 검사가 불가능하기에 미국 병원에 의뢰한 모양이다.
‘1984년 6월 14일이라면······!’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찡그려지는 순간이다.
5년 전이다.
그렇다면 5년 전부터 최상욱 회장은 내가 자기 손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 놀랍네요. 왜 지금 와서 이러시죠?”
최상욱 회장에게 묻고 있지만 내 머릿속에는 수만 가지 생각이 복잡하게 계산되고 있다.
'찾지 않은 것에 관해서 이유가 있겠지.'
냉정해져야 한다.
그리고 그 냉정함 속에서 나는 내게 좀 더 이로운 쪽으로 상황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괘씸해서.”
“제가 더 괘씸해야 할 상황인데요.”
“네 성깔은 나를 닮았군.”
“5년 동안 알면서도 안 찾으신 손자를 왜 지금에 와서 찾으셨습니까? 이유가 있으시겠죠?”
내가 고아 새끼라서 당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날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순간이다.
내가 재벌 3세였다면 절대 당할 수 없는 멸시와 천대일 거다.
“그래서 싫다는 거냐?”
“좋아할 필요가 없죠.”
“뭐라고?”
“저 이제 다 컸거든요. 제가 간절히 필요했을 때 오셨으면 기뻐서 울어드렸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쩌죠? 지금은 다 컸는데.”
“도련님······!”
김 실장이라고 불린 남자가 나에게 자제하라는 투로 말하다가 말꼬리를 흐렸다.
‘재벌 할아버지가 생긴다?’
이건 비빌 언덕이 생겼다는 거다.
인생의 계급이 돌변했다는 거고.
“저는 지금까지 그렇게 불려본 적이 없거든요. 그러니 그렇게 부르지 말아 주세요. 제 이름은 최진호입니다. 아무나 막 불러도 되는 최진호, 고아 새끼 최진호!”
“그래서 싫으냐? 내 손자가 되기 싫다는 소리냐!"
“예, 싫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 실장님이라고 하셨죠.”
“예, 도련님.”
“제가 이대로 나가면 저 할아버지께서 뒷골이 당기시겠죠. 상속 포기각서 준비해 놓으셨으면 주세요. 바로 작성해 드리겠습니다.”
내 말에 김 실장이 놀란 눈빛을 보였다.
한 번 튕겨 보는 것이냐고?
돈?
그거 많다고 인생 행복하게 사는 것은 아닐 것 같다.
내가 왜 이렇게 돈에 초연하냐고?
'자신 있으니까.'
나는 이 세상 누구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자신이 있다.
왜냐고?
그 이유가 뭐냐고?
나는 사실 환생자다.
그것도 세 번째 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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