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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드림 1권

2015.06.10 조회 16,364 추천 166


 아메리칸 드림(1)
 
 1903년 일본인들이 농장에서 파업을 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조선인들과 노동 계약을 하게 되었다. 이는 조선인 이민 역사의 시작이 되었다.
 미국 하와이 제도에는 4개의 주요 섬이 있는데 오아후는 그중 하나인 섬이다.
 오아후 섬 북쪽 노동 계약이 된 농장은 두 곳이었는데, 모큘레이아와 와이알루아 지역으로 모큘레이아 농장이 해변에 더 가까운 북쪽에 위치해 있다.
 “이쪽 인원은 저기 숙소로 이동하고 나머지는 그 옆에 숙소에서 생활하면 된다.”
 관리자는 조선인들을 집을 배정하기 전에 임시로 묵을 숙소를 지정해 주었다.
 600명이 조금 넘는 인원. 여성은 소수이고 어린아이들도 섞여 있었다.
 “여보 대찬이가 열이 심해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남편에게 말했다.
 “큰일이네……. 일단 숙소로 가서 젖은 수건으로 몸을 한번 닦아 봅시다.”
 부부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걱정하며 급하게 이동했다.
 
 ‘아! 더워.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가?’
 강대찬은 전날 제대하는 특전사 후임 박정수와 송별주를 마셨다. 장기 복무가 확정된 자신과 다르게 아끼던 후임은 장기 복무가 되지 못했고, 제대하게 되자 이별이 너무 아쉬워서 마시기 시작한 술은 해가 뜨는 지금까지 마시고 있었다.
 대찬은 말했다.
 “정수야, 물 좀 주라.”
 조용한 침묵만 있었다.
 “물 좀 주라니까?”
 방금 전까지 자신의 BOQ(군인 간부 숙소)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갈색 빛나는 목재 벽만 자신을 마주하고 있었다.
 “허……. 내가 술을 너무 과하게 마셨나보네. 잠이나 자자.”
 술을 많이 마셔서 꿈으로 치부한 대찬은 이내 곧 잠들었다.
 
 얼빠진 표정으로 해변에서 넋두리를 하고 있는 꼬마 하나가 있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하와이에 있고, 명성황후가 시해된 지는 9년이고, 조선이 있고, 고종황제가 살아있고, 우리 가족은 황금 달러에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속아서 여기에 일하러 왔다는 거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대찬의 부모는 고열에 의해서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미쳤다고 생각했었다. 평소에 듣지도 못했던 ‘헐’이라든가 ‘오나전’ ‘듣보잡’ 그리고 특히 말에 섞여 있는 외래어들은 정말 미쳤다고 생각하게 만들기 충분했었다.
 특히 대찬의 엄마 귀순은 아들을 볼 때마다 껴안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곡을 해댔다. 그럴 때마다 대찬은 작은 몸으로 바둥거리기를 반복했다.
 “어쩌다가…….”
 어울리지 않는 어린 몸은 쪼그려 앉아 고개를 푹 숙이며 한숨은 뻑뻑 내쉬었다.
 할 일이 없었다.
 정신의 나이는 28살, 몸의 나이는 4살
 보통의 다른 아이들은 정신과 육체의 나이가 같기 때문에 코를 찔찔대면서 뻔질나게 돌아다녔다. 하지만 대찬은 달랐다.
 ‘우울해.’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먹고 자고 일어나서 시간 보내다가 다시 먹고 자고 일어난다.
 ‘사육당하는 기분이야.’
 이 세계로 오게 된 지 2주가 넘도록 대찬은 일과의 절반은 해변에서 한숨 쉬기였다.
 “대짠아, 요기서 뭐해에?”
 대찬이 미쳤다고 조선인들 사이에서 소문이 나자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 아이들은 대찬을 놀리기 시작했는데, 주변이 시끄러워지자 기분이 나빠진 대찬은 주변에 어른들이 없는 때를 노려서 애들과 한바탕 싸움을 했다. 다시는 자신을 놀리는 아이들이 없어졌지만 추종자가 하나 생겼다.
 “저리 가라.”
 “우웅 대짠아, 같이 놀쟈아.”
 칭얼대며 대찬에게 들러붙었다.
 자리를 옮겨도 거머리처럼 들러붙고 대찬이 한숨을 쉬면 옆에서 따라서 한숨을 쉬어댔다.
 ‘찰거머리를 어떻게 떼어 놓을까?’
 생각할 게 너무 많았다.
 명환은 대찬이 너무나 멋있었다. 다수와의 싸움에서 기죽지 않고 팔다리를 휘두르며 결국에는 이겨내는 모습은 명환에게 잊지 못할 기억이었고 대찬과 친하게 지내고 싶었다.
 졸졸 따라다니면서 대찬이 하는 모든 것을 따라 했다. 그러면 자신도 대찬처럼 멋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대찬을 따라다니기를 한참이 지나고 발밑에 기어 다니는 소라게가 명환에 눈에 들어왔다.
 “어, 이게 뭐지?”
 주변에 굴러다니는 막대기 하나를 집어 들고 소라게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한참을 쫓아다니며 귀찮게 굴던 명환이 없어지자 허전한 느낌이 든 대찬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 어, 어…… 파도!”
 해안 가까이 다가가던 명환을 넘어서 큰 파도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 자식이!”
 대찬은 명환을 향해서 뛰어갔다.
 뛰어가면서 대찬은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내 머리 드럽게 크네.’
 뛰기가 불편했다.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파도가 해변에 들어와 소라게와 함께 명환을 휩쓸어 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대찬의 눈은 바다를 훑어보며 위치를 빠르게 찾았다.
 “저기!”
 물속에서 허우적대는 위치를 찾은 대찬은 바다에 뛰어들었다.
 수영을 해서 가고 있었지만 무거운 머리 무게로 머리가 자꾸 물속으로 들어가려 했다.
 명환은 다행히 해변에서 멀지 않은 곳까지만 갔다. 문제는 짧은 팔다리로 끌고 가기가 힘들다는 것이었다. 투명한 바다 속이 보이자 대찬은 주저 없이 잠수했다. 바닥을 까치발로 디디며 팔을 쭉 뻗어 허우적대는 다리를 잡고 위로 올리며 해변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눈을 뜨고 바다 속에서 최대한 빠르게 걷자 금방 해변으로 닿을 수 있었다.
 모래사장에 도착하자 명환은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아직 안전하지 않음을 아는 대찬은 명환의 손을 잡아끌고 안전한 곳까지 데려갔다. 그러고는 대자로 뻗었다.
 “우아앙, 우아앙.”
 명환은 한참을 울어댔고 대찬은 명환을 다독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누워있다 일어선 대찬은 그대로 명환을 안았다.
 “괜찮아, 이제.”
 안아서 안심을 시켜주자 울음이 살짝 줄어들었다.
 “대짠아, 흑, 흑흑……. 대짠이 멋있다!”
 대찬은 순간 이 모든 상황에 짜증이 났다.
 “수박 깨기!”
 대찬의 오른손은 명환의 이마 정중앙을 수도로 때렸다.
 손을 잡고 명환을 집으로 데려다준 후 대찬은 터벅터벅 집으로 향했다.
 처음 임시 숙소에서만 노동자들이 다 같이 지냈고, 지금은 적정한 인원끼리 나누어 숙소를 배정했고 기혼자들에게는 적당한 작은 집들이 배정됐다. 집이라고는 하지만 볼품없는 천막집이었다.
 “대찬이 왔니?”
 귀순이 물었고 답변 대신 다른 말을 했다.
 “엄마, 내 머리 왜 이렇게 크게 낳았어?”
 하루가 너무 힘들었던 대찬이었다.
 조선인들의 농장 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매일 해변에 가서 늦게 들어오던 대찬은 그제야 사탕수수 농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게 됐다.
 처음에는 그러지 않았으나 일을 잘 못하거나 약간이라도 게으름을 피운다 싶으면 채찍질이 일어났고 노동 계약을 했을 때 집과 식사, 치료를 해주겠다던 조선에서 본 광고 문구와는 다르게 은 천막집에 식사는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으며 치료 역시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들 이탈하고 떠나고 싶어 했지만 대부분이 기독교인이었기에 조선으로 돌아가기도 힘들었고, 말이 통하지 않는 나라라는 것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한 달에 25달러를 약속했었지만 현실적으로 주어지는 금액은 약 10달러 정도였다. 하지만 그 정도 보수여도 충분히 조선에서보다 많이 벌었기에 다들 참고 일하자는 분위기였다. 그렇게 다들 돈을 모아서 고국으로 돌아가겠다는 꿈을 키워가고 있었다.
 마음에 안정을 조금이나마 찾은 대찬은 불만이 생겼다. 그것은 바로 음식에 대한 욕구였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1인당 푸드마일리지 6600t·km가 넘게 여러 가지 식재료를 접했다가 쌀은 비싸고 귀한 데다 간간이 한번 나오는 반찬도 간단한 짠지 혹은 밀가루 음식들. 그나마 특식이라면 근처에서 자라는 나물들로 귀순이 한번씩 찬을 만들어 주는 것 외에는 없었다. 정말 끔찍했다.
 “엄마 다른 반찬 없어요?”
 이 말 한마디에 길재한테 죽도록 맞은 대찬이다.
 매를 든 길재는 이렇게 말했다.
 “밥 있잖아! 밥! 조선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
 한국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고봉밥을 먹고 살았다.
 ‘이렇게는 못살아.’
 대찬은 21세기 반찬 많이 먹는 흔한 한국인이었다.
 
 “대짠아 요로케 하는 거야?”
 “대찬.”
 “응? 모라구?”
 “따라 해봐. 대찬!”
 “대~ 찬!”
 “그래, 잘했어. 내 이름이 뭐라고?”
 “대짠!”
 “대찬.”
 “대짠!”
 몇 번을 반복하고 대찬은 짜증이 났다.
 “수박 깨기!”
 명환의 이마 정중앙에 세로로 빨간 줄이 쳐졌다.
 대찬은 명환에게 수영을 가르쳐주고 있다. 파도에 휩쓸려간 사건 이후로 명환은 한층 더 대찬만 쫓아다니고 대찬이 하는 모든 것을 배우고 따라 하려 했다. 그리고 곧 따라 했다. 위험할 수 있다 보니 직접 가르치는 게 더 좋기도 했다.
 투명하고 속이 훤히 보이는 바다를 호기심 덩어리인 명환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저거는 모지?’
 가슴께에서 초록색으로 나풀거리는 풀을 보고 한 손에 잡아 올렸다.
 “대짠아~~.”
 해변 그늘에서 누워있던 대찬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왜.”
 “내가 있짜나, 풀 주셔 왔쪄.”
 “뭔데?”
 “이거 바바바.”
 고개를 들어 봤다
 ‘유레카!’
 
 “엄마!”
 귀순은 집으로 달려 들어오는 아들을 마주 봤다.
 “엄마 이걸로 반찬 좀 만들어 주세요.”
 “에구머니나, 이게 뭐니?”
 “미역이에요, 미역.”
 “흉측하게 못 먹는 거 가지고 장난치지 말고 저 멀리 가져다 버려. 어떻게 미역이 그렇게 생길 수가 있어?”
 귀순은 바다 무식자였다.
 “대찬 이놈!”
 길재는 퇴근 후에 아내에게 들은 소리에 화가 났다. 먹지도 못하는 이상한 풀을 뜯어 와서는 미역이라고 음식을 만들어 달라 졸랐다고 들었다.
 이상한 느낌이 든 대찬은 목각인형이 돌아가듯이 고개를 돌려 길재를 쳐다봤다.
 매를 든 길재는 말했다.
 “이 애비가 너한테 뭐라고 했냐?”
 “네? 뭐가요……?”
 “한국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
 회초리가 대찬을 향해 날아왔다.
 길재도 바다 무식자였다.
 내륙 지방 사람들은 바다를 몰랐다.
 
 “대짠아, 모하는 고야?”
 “미역 말려.”
 넓게 펴진 나뭇잎들 위에 미역들이 곱게 널려 있었다.
 “먹는 고야?”
 “…….”
 
 사탕수수 농장일은 정말 고되고 힘들었다.
 하루 종일 햇볕에서 반복하는 노동은 사람을 지치게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쉴 수도 없었다. 쉬었다가는 채찍이 날아왔다. 물 마시는 시간도 없었다. 그렇다고 수분을 섭취하기 위해서 사탕수수를 조금 베어서 물었다가 걸리면 폭행과 구타가 이어졌다.
 길재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 싫었다. 달콤한 말에 속아서 하와이까지 오게 된 것도 너무 싫었고, 노예 취급당하면서 사는 것도 싫었다. 조선에 있었다면 나름 뼈대 있는 가문이었다.
 그런 길재의 눈에 언제부턴가 통역사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얼굴이 하얗게 뜬 백인 관리자 옆에 붙어서 돌아다니다가 관리자가 자리를 비우면 그늘에서 쉬는데, 자신보다도 많은 월급을 받아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영길리 말을 배워야 한다.’
 시대에 순응하며 살기로 한 대찬은 점점 활동 영역이 넓어지기 시작했다.
 오아후 섬은 제주도보다 조금 4분의 3 정도 되는 크기다. 길만 있다면 사흘에서 나흘 정도면 걸어서 다 돌아볼 수 있는 정도다. 대찬은 먼저 사탕수수 농장부터 벗어나 돌아보려 했다.
 “안 된다니까!”
 “대짠아~~아, 며화이도 같이 가자~아.”
 “안 돼!”
 “후에에엥.”
 “울어도 안 돼!”
 “징짜 안 대?”
 “응, 가서 순이랑 있어.”
 순이는 명환의 동생이다. 오아후 섬에서 태어난 갓난아기로, 명환이 대찬에게 자랑을 매일 했다.
 “순이는 못 논단 말야.”
 “명환아, 순이는 네 동생이야.”
 “응!”
 “그럼 네가 옆에서 지켜줘야지.”
 “대짠이가 나 지껴준 것쩌럼?”
 “그렇지! 다음에 데려가 줄게!”
 “후웅…… 알았쪄. 다음에 꼭 데꼬가는 거다~?”
 “그래, 다음에.”
 대찬은 농장에서 들었던 마을이 있다는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어린 아이의 잰걸음으로 한참을 걸어가자 마을이 하나 나왔다.
 “뭐야!”
 마을엔 빨갛게 칠해진 건물이 많았다.
 
 ‘왜 차이나타운이 거기 있지?’
 대찬은 농장으로 돌아온 후에 차이나타운이 있는 것에 대해서 의문이 생겼다. 현지인 마을도 아닌 차이나타운, 궁금함을 풀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알고 있는 사람이 누굴까?’
 농장에는 한인뿐만 아니라 중국인, 일본인, 푸에르토리코인 그리고 포르투갈인까지 굉장히 많은 인종이 섞여 있었다. 그중에 중국인이 제일 많았고 다음이 일본인, 나머지 인종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유가 궁금했다.
 ‘아무래도 통역하는 사람들만 알겠지?’
 통역사 중에서도 한국말을 할 줄 아는 통역은 일본인과 중국인밖에 없었다.
 대찬은 중국인 통역사와 대화할 기회를 노렸지만 쉽게 기회가 오지 않았다. 일단 여기저기 필요에 의해서 불려 다니는 곳이 많았고, 대찬이 말을 건네도 그저 못 들은 척 지나가버렸다.
 짜증은 났지만 미래에 살던 시절에도 당연하게 미국은 백인의 국가라고만 생각했던 대찬은 차이나타운이 왜 있는지 알고 싶었다.
 
 중국인 통역사 짱셩은 최근 무척이나 짜증이 났다. 유유자적하게 적당히 농장을 돌아보다가 통역이 필요하면 몇 마디 말만 전달해주면 됐고, 그렇게 자유를 즐기며 농장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근래 들어 귀찮게 하는 조선인들이 생기기 전까지. 특히 길재라는 조선인은 오다가다 주워들은 말도 시간이 조금 날 때마다 자신에게 물어보는데 장셩은 자신의 위치에 대해서 심각한 위험을 느꼈다. 처음에는 필요한 말 몇 가지 알아두면 자신이 편하겠다고 생각하고 알려줬지만, 지금은 알려주지 않고 무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찌나 쫓아다니는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통에 편하게 큰일을 본 적이 언젠지 기억도 안 났다. 조금만 더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심한 변비에 시달릴 것 같았다.
 신호가 급하게 온 짱셩은 오늘만은 쾌변을 이루리라 다짐을 하며 농장에서 사람의 흔적이 뜸한 화장실을 찾았다.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는 기분 좋게 바지를 내리며 결전의 시간을 충분히 즐기려 했다.
 거사를 시작하려는 찰나,
 “장 선생님.”
 장셩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니 카오리 팡쓰.”
 화장실 문을 박차고 나온 짱셩은 다짜고짜 욕을 하며 문 앞에 서 있는 대찬의 뺨을 향해 손을 날렸다.
 짝-
 군인 생활로 몸에 익은 대찬은 반사적으로 양손을 올려 작은 손으로 장셩의 손바닥을 막아냈다. 짱셩은 이제야 분노로 인해 아이한테 과하게 손을 썼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미안하지는 않았다.
 ‘길재의 아들.’
 “흥.”
 콧방귀를 낀 짱셩은 기분 나쁘다는 눈빛으로 한번 노려보고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이동하는 짱셩의 표정은 고소하다는 얼굴이었다.
 얼빠진 대찬은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으아아아아악!”
 손을 부여잡고 대찬은 악에 바친 소리를 질러댔다.
 “내 나이가 몇인데 매를 맞고 있냐!”
 해변에서 대찬은 발광하고 있었다. 이 시대에 오기 전에 이십대 후반으로 아주 신체 건강한 청년이었다. 다만 여기로 와서는 조그만 꼬맹이가 되어버렸고 대찬의 상식은 이곳에서 상식이 어니였으니, 그에 따른 부작용으로 매를 꽤 맞았다.
 “짱꼴라! 짱깨 새끼! 복수할 거야!”
 복수를 울부짖는 해변이다.
 결국 대찬은 알고 싶은 것에 대해 알 수는 없었다.
 
 주한미국공사 알렌(H.N. Allen)은 휴가차 1901년 하와이에 방문을 했고, 이때 농장주들을 만나 노동자 수급의 긴급성을 이야기하다 조선인들을 추천했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부탁에 대한제국 황제인 고종황제를 알현했는데, 고종황제는 전혀 예기치도 못했던 이민 문제를 민생고를 해결하게 위해서 승낙하였고 알렌은 조선인 이민의 모집인으로 데슬러(D.W. Deshler)를 선정하였다.
 정인수는 조선인 통역사였다. 미국에 가서 성공하겠다는 부푼 꿈을 갖고 평양에 있는 하드 러닝 클럽(hard learning club)으로 찾아가 영어 선생 최영화에게 영어를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데 최영화는 정인수에게 입술이 두터워 영어로 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사실 정인수의 입술은 두텁지 않았다. 정인수는 농담 섞인 말에 실망하지 않고 오히려 최영화보다 영어를 더 잘하리라는 결심을 했다. 그리고 미국인 기술자들의 보조 노릇을 하며 최영화보다 더 뛰어난 영어 실력을 갖게 되었다.
 영어를 배운 후에 우연한 기회에 미국인인 데슬러(D.W. Deshler)를 만나게 되고 동서개발회사(East-West Development)에서 운영하는 노동 이민자 모집에 통역으로 일하게 되었다. 데슬러는 제물포 지역 선교사인 존스(H.G. Jones, 趙元時)와 또 다른 통역사 현순의 도움을 받아 이민자를 모집했다.
 한동안 조선인 노동자들은 농장에 오지 않다가 몇 개월쯤 지났을까, 다시 호놀룰루에 일본호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조선인 노동자들이 호놀룰루를 거쳐 오아후 섬으로 속속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정인수도 함께였다.
 
 대찬은 하루하루가 너무 길었다. 삶의 목적도 목표도 없었고, 현실에 적응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고역인 나날들이었다.
 야자수 나무 두 그루에 해먹을 걸어놓고 대찬은 축 늘어진 채로 흔들거리면서 오아후 섬의 바닷바람을 즐기고 있었다.
 “넌 이름이 뭐니?”
 살짝 실눈을 만들고 쳐다보니 조선인에게는 흔하지 않는 짧은 머리에 서양식 복장을 갖춘 청년이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해먹에서 자세를 바로잡고 앉은 자세로 올려보며 대답했다.
 “대찬이요, 강대찬.”
 “그래 강대찬,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야?”
 “할 일이 없어요.”
 “왜 할 일이 없어? 친구들하고 같이 놀면 되지 않아?”
 “재미없어요.”
 “그럼 학교에서 배운 것을 공부하면 되지.”
 “학교는 아직 나이가 안 되어 갈 수 없어요.”
 인수는 깜짝 놀라서 물었다.
 “나이가 안 된다고? 너 지금 몇 살이니?”
 “4살이에요.”
 “허, 4살치고는 덩치가 또래보다 크구나!
 대찬은 최근 식사 외도를 하고 있는 참이었다. 고봉밥에 짠지는 대찬에게 고역이었고, 집에서 밥만 조금 먹고 나머지는 바다에서 물고기나 조개 등을 잡아서 반찬에 대한 욕구를 해결했다. 가끔 운이 좋은 날에는 전복이고 해삼, 아주 큰 새우를 잡아먹었다. 원활한 영양소 공급은 또래보다 대찬의 몸을 크게 해줬다.
 인수는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 대찬아 너 혹시 영길리 말 배울 생각 없니?”
 대찬의 눈이 번쩍 커졌다. 평소에 바라는 일이었다.
 “네, 꼭 배우고 싶어요!”
 
 모큘레이아 사탕수수 농장에는 짱셩을 대신해서 정인수가 통역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조선인들의 대우가 조금은 달라졌다. 첫째, 농장의 반수 이상이 조선인들이었고 둘째로 통역사가 조선인이라 조선인의 입장에서 말했기 때문이다.
 그의 옆에는 항상 대찬이 따라다녔는데 거기에 하나 더해 명환도 항상 대찬을 쫓아다녔다.
 인수는 대찬을 데리고 다니면서 만족스러웠다. 가르쳐 주지도 않은 단어를 알고 말해서 가끔은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다만 저속하거나 경망스러운 말, 시대에 맞지 않는 말들을 해서 혼내곤 했다. 반면에 빠르게 습득하는 대찬을 보며 천재가 아닐까 생각했다.
 “에이, 뷔, 씨, 디.”
 해변 아지트에서 명환은 작은 나무막대기를 하나 들고 바닥에 써가며 입으로 읊조리고 있었고 명환은 영어로 된 책을 읽고 있었다.
 “에이씨, 이게 글자 맞아?”
 책은 필사본으로 특유에 휘갈겨진 글씨들이 빼곡히 박혀 있고 대찬은 도저히 알아 볼 수 없었기에 바닥에 똑같이 그려보며 철자를 유추하고 있었다.
 “어?”
 명환은 외마디 말과 함께 하늘을 바라보았다.
 “뭔데?”
 대찬은 똑같이 하늘을 바라봤다.
 “…….”
 “…….”
 “아, 뭔데!”
 대찬은 명환을 바라보며 물었다.
 “…….”
 여전히 명환은 하늘을 바라보았고 대찬은 똑같이 하늘을 바라봤다.
 “…….”
 “…….”
 “뭐냐니까?”
 그제야 명환은 코를 한번 훌쩍이며 대찬에게 얘기했다.
 “응, 그게…….”
 “뭐, 뭐, 뭔데?”
 “코피 났쪄.”
 “…….”
 
 배가 호놀룰루에 입항하면 배에 타고 있는 사람을 시작으로 여러 가지 물품들이 오갔는데, 고국에서 오는 편지는 그리 흔한 물건이 아니었다. 호놀룰루를 거쳐 다시 편지는 모큘레이아까지 들어갔고, 인수는 영어를 했기에 항상 제일 먼저 편지를 건네받고 주인을 찾아 주는 역할까지 했다. 받아 본 편지의 주인은 강길재라고 써져 있었다.
 “길재 형님 계십니까?”
 천막집 밖에서 길재를 찾았다. 참으로 볼품없고 보기 좋지 않았다. 인수는 항상 조국에서 30칸 정도 되는 종갓집의 자손이 이런 곳에 살고 지낸다는 것이 참으로 황당했다. 더불어 지금 조선, 아니 대한제국의 상황이 속상했다.
 부스럭거리며 천막이 올라가며 길재는 반갑게 인수를 맞이했다.
 “인수, 자네 왔는가?”
 “예, 형님. 이거 받으세요.”
 인수는 조심스럽게 편지를 건네주었다.
 길재는 조용한 곳에서 흐느끼고 있었다.
 고향에서 온 편지, 눈물이 안 날 수가 없었다.
 [아들아, 내가 듣기로는 외국인들은 쌀을 먹지 않는다더구나. 사람이 하루에 세끼 밥을 먹지 않고 어떻게 살 수 있는지 나는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다. 나는 네가 밀가루로 만든 빵을 먹고 얼마나 배가 고플까 생각하면, 먹지도 자지도 못한다. 혹시 재미 삼아서라도 외국 옷은 입지 말아라. 꽉 끼는 검은 바지를 입은 외국인들을 보면 마치 한 쌍의 걸어 다니는 말뚝 같아 정말 흉하다.
 아들아, 내가 듣기로는 외국에 나가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우리의 긴 담뱃대 대신 궐련을 피우고, 상투와 아름다운 조선 의상과 크기가 다양한 갓을 경멸하고 외국 옷을 입는 나쁜 습관에 물든다더구나. 나는 왜 이러한 심적인 변화가 일어나는지, 조선인들이 외국에 나가면 외국인들이 그런 변화를 획책하기 위해 어떤 약을 준다고밖에 생각할 수가 없구나. 의상의 아름다움이 그들의 자존심을 손상시키기 때문에 그들이 자기네 의복을 채택하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나는 많은 외국인들이 평생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늙는다고 들었다.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구나. 어떤 여자가 그렇게 추하게 옷을 입은 사람과 결혼하겠니? 어느 날 강계 지방에서 외국인 신사가 너의 아버지를 찾아왔었다. 그는 우리의 사진을 찍고 싶어 했다. 너의 아버지가 그러자고 우겨 나는 사진을 찍는 데에 동의했다. 그런데 글쎄, 그 외국인이 나를 보더니 손을 내밀고 악수를 하자고 하지 않겠니? 나는 대경실색하여 사진이고 뭐고,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그 건물에서 나와 버렸지. 그후 나는 나흘 동안이나 아팠단다.
 내 아들아, 이 모든 것을 잊지 말거라. 제발 마음을 변하게 하는 약을 받아먹지 말고, 너의 취향과 복장을 그대로 유지한 채 하루빨리 돌아오기를 바란다.]
 힘들게 이어나가고 있는 생활에 마음은 어서 빨리 고국으로 돌아가자고 수십 번이고 다짐했으나 돌아가서 살길이 막막했다. 그나마 하와이에서는 일자리라도 있었다. 하지만 돌아가면 먹고 살 걱정이 들어 돌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돌아가고 싶다.”
 길재는 마음속에 있는 말을 힘겹게 내뱉고는 고향 생각에 빠졌다.
 
 대찬의 낚시 도구는 귀순 몰래 반짇고리에서 가장 큰 바늘을 꺼내서 우그러트려 썼고, 줄은 조선에서 가져온 무명을 살살 풀어 꼬아서 제법 튼튼하고 긴 줄을 만들었다.
 낚시는 간단했다. 근해에 물고기가 상당히 많아서 낚싯줄을 던지기가 무섭게 물고기가 올라오는 속도가 빨랐다.
 해변 바로 옆에 야트막한 절벽이 있다.
 대찬은 항상 여기서 낚시를 했고 해먹이 걸려있는 해변 아지트가 아니면 항상 이곳에 대찬이 있다는 걸 명환은 알고 있었다.
 “대짠아, 같이 놀자.”
 명환의 한 손에는 돼지 오줌보로 만든 공을 한 손으로 감싸 안고 있었다. 요즘 명환은 신세계를 경험하고 있었다. 조그만 돌로 공기놀이를 하거나 비석치기 자치기를 하다가, 대찬이 중국인 마을에 가서 운 좋게 돼지 오줌보로 만든 공을 주워 오자 대찬이 말한 축구라는 놀이를 할 수 있었다.
 낚싯줄과 명환을 한 번씩 번갈아 보던 대찬은 한숨을 내쉬며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명환의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옆에서 계속 칭얼거릴게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알았어, 잠깐만.”
 아직 물고기가 물지 않은 줄은 옆에 있는 야자수 나무에 단단히 묶었다.
 “가자!”
 태평양의 전형적인 아름다운 해변은 선을 따라 아주 곧고 길게 뻗어있다. 중간에 간간이 서 있는 야자수 나무는 골대로 쓰기 더 없이 훌륭했다.
 “대찬이 막아!”
 투박한 공을 발로 요리저리 굴리며 상대방 골대를 향해 나아갔다. 대찬은 TV에서 보고 군대에서 몸에 익힌 기술들로 지금의 애들은 실력에서 따라올 수 없었다.
 ‘왼쪽에서 오니까 오른발 아웃, 프론트로 드리블!’
 대찬의 시야 왼쪽에서 다가오던 준명은 분했다. 자신이 대찬보다 한 살이 더 많은데 자기 덩치가 더 작은 것에 한 번 분하고, 축구를 시작한 뒤 대찬에게 공만 가면 공을 뺏을 수 없는 것에 분했다. 공을 차지하기 위해 열심히 발을 놀려보지만 공에는 닿지 않았다.
 어깨로 준명을 견제하던 대찬은 골대가 가까워지자 지체 없이 공의 한 가운데를 발로 찼다.
 뻥 소리와 함께 정해놓은 골대로 쏙 들어갔다.
 “우와아아아아.”
 뒤에서 신나게 대찬을 쫓아가던 명환은 기쁜 표정으로 환하게 웃었고 반대로 상대편은 침울했다.
 “에이, 안 할래. 대찬이 너무 잘해!”
 삐친 준명은 획 돌아서서 가려고 했다.
 “아이 참, 왜 그래? 그럼 편 바꿔서 하자.”
 대찬이 몇 번 설득을 하자 마지못해 대찬과 같은 편이 되었다.
 “명환이 네가 저쪽 편에 가서 해.”
 “응.”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명환은 상대편에서 뛰게 되었다. 대찬은 너무 잘하면 아이들이 삐칠 수 있음을 느끼고 느슨하게 뛰었지만, 어느 순간 대찬 없이도 준명으로 인해서 압도적으로 이기게 되었다. 바로 준명의 실력이 잠깐 사이에 부쩍 늘었기 때문이었다.
 준명은 대찬과 같은 편이 되자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대찬의 발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상대가 공을 뺏으려 하면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다가, 공을 잡으면 하나둘씩 직접 해보기 시작했다.
 ‘상대방의 먼 곳으로 공을 보내서 그쪽 발로 전진한다.’
 ‘정면으로 오면 가랑이 사이로 공을 보내고 재빨리 뛰어가서 공을 간수한다.’
 ‘여러 명에게 둘러싸이면 동료에게 공을 보낸다.’
 ‘득점할 수 있는 기회가 오면 무조건 공을 찬다.’
 지기 싫어하는 준명의 승부욕은 빠르게 실력을 늘려갔다.
 “우와아, 준명이 잘한다.”
 아이들이 칭찬을 하자 준명은 으쓱한 기분을 마음껏 뽐냈다.
 “후에엥, 대짠아 나 안 할래, 준맹이 너무 잘해.”
 “…….”
 한창 공놀이를 하다가 대찬은 야자수에 묶어놓은 낚싯줄이 생각났다. 부랴부랴 절벽을 가보니 줄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는 것이 꽤 묵직한 것 같았다.
 “잡혔쪄?”
 “응, 잡은 것 같아.”
 “와 저번에 먹은 큰 다랑어였으면 좋겠다! 맛있었는데!”
 익숙한 듯 다랑어를 외치는 명환은 이전에 대찬이 잡은 다랑어를 생각했다.
 대찬은 딱 한 번 다랑어를 잡은 적이 있었다. 연안에서도 잡히는 가다랑어로, 미래에서는 통조림 그리고 가다랑어 포로 많이 유통되었다. 둘은 불에 구워 먹었는데, 아주 맛있게 먹었기에 명환은 좋은 기억을 갖고 있었다.
 “어디 볼까?”
 줄은 마치 돌을 달아 놓은 것처럼 굉장히 무거웠다. 한참을 끙끙대다 올려보니 대찬은 상상도 하지 못할 자태가 수면에 살짝 내비쳤다.
 “괴, 괴물이다!!”
 명환은 놀라자빠졌다.
 “어른들 모셔와야겠다.”
 “아버지!”
 집에 도착한 대찬은 다짜고짜 길재부터 찾았다.
 “이놈 왜 이리 요란이냐?”
 “아버지 저 좀 도와주세요!”
 “무슨 말본새가 그러냐, 앞뒤 다 어디다가 잘라먹고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거냐?”
 “큰 물고기를 잡았어요. 제 힘으로 어쩔 수가 없어요. 물 밖으로 끌어내게 도와주세요.”
 “그래? 그럼 가보자.”
 줄이 걸려있는 절벽에 도착해서 길재는 줄을 잡아당기자 수면에 오르는 것은 어른 키보다도 더 큰 생선이 한 마리가 줄에 걸려있었다.
 “허 저게 물고기라고? 이런 괴사가 있나! 내 평생 저런 물고기가 있다는 사실을 들어 본 적도 없다.”
 “안돼요! 저게 얼마나 맛있고 귀한 물고기인데요. 아버지 저 한 번만 믿고 저것 좀 꺼내주세요. 부탁드려요.”
 아들의 부탁에 길재는 속는 셈치고 한번 도와줘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말실수를 하고 조금은 경솔하지만 영특한 아들이 이렇게 떼를 쓰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어떻게 저 무거운 물고기를 뭍으로 끌어낼 것인가, 였다.
 “아들아 가서 인수를 불러 오거라.”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인수를 찾아 달렸다.
 
 인수가 도착하자 줄에 걸려있는 물고기부터 확인했다.
 “옐로우핀!”
 “자네 이게 뭔지 아는가?”
 “귀한 물고기입니다. 저 멀리 깊은 바다에서만 잡히는 놈인데 대찬이가 운이 좋은가 봅니다.”
 사실 인수도 황다랑어를 보기는 처음이었다. 책에서 묘사되어 있는 것이 인상적이어서 기억을 했는데 허풍이라고 생각했던 책이 오히려 실제보다 더 작게 표현했다고 느꼈다.
 두 사람은 줄을 풀어 해변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뭍으로 옮기고 나서 보니 사람 키보다 기다란 몸체는 물속에 있던 모습을 보는 것보다 훨씬 크고 보기 좋았다.
 “우와.”
 뭍으로 나온 큰 다랑어를 명환은 콕콕 찔러보았다.
 니시무라는 일본에서 초밥을 배우던 수련생이었다. 오랫동안 최고의 초밥을 만들겠다고 정진했고, 어린 나이부터 열심히 노력한 결과 스승께 인정받아 독립하여 자신의 이름을 건 초밥 집을 운영했다. 하지만 수많은 초밥 집에서 성공적인 가게 운영은 하지 못했고, 돈을 벌기 위해 하와이로 향하는 일본호에 올랐다. 농장 일은 힘들고 고단하였으나 높은 인건비는 충분히 보상을 해주고 있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평소라면 다른 길을 택했겠지만 고향 바다가 생각이 날 때면 해변으로 잠깐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다. 그런 그에게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키하다!’
 늠름한 자태의 황다랑어가 눈에 박혔다.
 “여보시오.”
 짧은 머리에 서양식 복장의 일본인이 영어로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이요?”
 “혹시 그 생선을 나에게 팔지 않겠소?”
 “팔려고 하는 것이 아니요.”
 대찬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아버지, 이 물고기를 제 마음대로 해도 될까요?”
 탐탁지 않아했던 길재는 긍정의 표시를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를 주실 건데요?”
 “얼마를 주면 나에게 넘기겠소?”
 대찬은 작은 손으로 다랑어의 아가미 뒤쪽부터 딱 가운데까지 경계선을 그으며 말했다.
 “딱 이만큼의 한쪽 면만 빼고 1달러!”
 니시무라는 단번에 그러자고 수락했다. 황다랑어의 가치는 그것보다 더 비싸다고 생각했고, 속으로 희희낙락했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시오.”
 얼마나 급했는지 땀을 뻘뻘 흘리며 집에 갔다 온 니시무라는 곧바로 1달러를 건네줬고, 약속대로 대찬이 원하는 부위를 회칼로 잘라줬다. 기뻐하며 떠나는 니시무라를 보고 길재는 말했다.
 “별 쓸모없는 물고기를 큰돈을 주고 사가는구나.”
 조선인들에게는 다랑어는 괴어였다.
 다 같이 집에 도착해서 화로에 숯을 넣고 다랑어를 먹기 좋게 잘라 굽기 시작했다. 숯불에 닿자 기름기가 자글자글 올라오며 고소한 향기를 풍기기 시작했다.
 “꿀꺽.”
 생각보다 좋은 냄새에 길재는 침을 삼켰다. 그리고 바로 한 점 가져다 입에 넣었다.
 길재의 눈에 물기가 돌았다.
 “내 평생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있는지 몰랐다.”
 대찬은 오늘도 해변에 가기 위해 집 밖으로 나섰다
 “어머, 우리 아들이 글쎄…….”
 귀순과 목포댁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니까 우리 아들이 글쎄 바다에서 낚시를 했는데 사람 키보다 더 큰 물고기를 잡았대! 근데 맛이 얼마나 좋던지! 아 참, 그리고 비밀인데 그걸 팔아서 자그마치 1달러나…….”
 
 니시무라는 대찬에게 황다랑어를 사서 집으로 돌아가기 전 손질부터 했다. 아가미에 상처를 내서 피를 빼고 다음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 해체 작업을 하다가 한 가지 특이한 것을 보았다.
 다랑어의 식도 쪽에 물고기가 걸려있었다. 그 물고기는 바늘을 물고 있었다.
 ‘운이 좋았다. 그런데 다음 키하다는 보기 힘들겠군.’
 부위별로 알맞게 손질한 다음 가져온 손수레에 담아 실력 발휘를 할 수 있다는 들뜬 마음으로 마을로 향했다.
 1달러에 산 황다랑어는 여러 가지 종류의 음식으로 만들어져 판매되었다. 쓸모없는 부분으로는 국물을 우려내 라면을 만들었고 가장 맛이 좋은 부분으로는 초밥을 그리고 조금 떨어지는 부분으로는 구이를 만들어서 팔았고, 물건은 그날 동났다.
 장사는 고향 생각이 났는지 내일도 오겠다고 한 손님들이 많았고 적성에도 맞고 돈도 잘 벌리는 이 일을 계속 하고 싶었다.
 ‘내일 조선인들을 찾아 가 봐야겠다.’
 
 황다랑어를 잡음으로써 1달러를 번 대찬이는 그 돈을 만져보지도 못했다.
 길재가 말하길.
 “신체발부(身體髮膚), 수지부모(受之父母).”
 두 마디로 이야기는 끝났고, 대찬은 잃어버린 낚시 바늘만 사달라고 하소연하여 간신히 새 바늘만 얻을 수 있었다.
 “내 돈!”
 억울하지만 이렇게 될 것을 예상을 했기에 푸념만 했다.
 새로 생긴 바늘은 크고 두꺼웠으며 보기에도 단단해 보였다. 아마도 큰 황다랑어를 잡았으면 하는 길재의 바람이리라, 그렇지만 바늘이 커서 오히려 작은 물고기는 더 잡기 힘들었다.
 “어른들은 어디 계시니?”
 낚시를 하던 대찬에게 니시무라는 어른들을 찾았다.
 영어로 들리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다랑어를 사간 일본인이었다.
 ‘예감 좋고!’
 “무슨 일이신데요?”
 “물고기 때문에 그런단다.”
 “물고기요? 저한테 이야기하세요. 그때 그 옐로우핀도 내가 잡았어요.”
 “하하. 그래, 훌륭한 솜씨구나. 그럼 어른들에게 내 말을 전해주거라, 그 녀석을 다시 잡거든 나에게 팔아달라고.”
 “헤헤, 다른 건 안 필요하세요? 예를 들어, 오징어나 전복, 성게, 스킵잭 이런 거요.”
 “호오, 그런 건 어떻게 아는 거지? 물론 필요하단다. 그런 것들도 물건이 좋으면 값을 잘 치러 줄 테니 내게 가져다 달라 전해주거라.”
 “네, 알겠어요.”
 니시무라는 기분 좋은 발걸음으로 휙휙 멀어져갔다.
 다랑어의 습성은 먹고 헤엄치고 일광욕하고 다시 먹는 것의 반복이다. 해수면 가까이에 올라와 몸의 온도를 높이기 때문에 하얀 포말이 주변에 일어나면 그곳은 다랑어가 있는 곳이다.
 “좋아, 가까이 왔어!”
 잘게 조각내 내놓은 문어를 절벽 가까운 곳에 뿌리고 미끼를 건 낚시 줄을 내렸다.
 물에 내리기가 무섭게 입질이 왔다.
 줄에서 주는 감각으로 물었다는 느낌이 들자 대찬은 바로 잡아당겼다. 순간 줄이 팽팽해지면 무거운 무게가 느껴졌다.
 힘들게 끙끙대며 줄을 올리자 제법 큰 가다랑어가 올라왔다.
 ‘흩어지기 전에 한 번 더!’
 이번에는 미끼 없이 줄을 던지고 날카롭게 잡아당겼다.
 휙. 떼로 움직이는 다랑어이기 때문에 미끼가 필요 없을 거라 생각했고, 줄을 넣어 잡아당기자 예상대로 한 마리 더 잡아 올렸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던 바다는 잠잠해지기 시작했고, 이내 투명한 바다 속으로 다랑어 떼가 떠나는 모습이 보였다.
 저편에서 상어 지느러미가 보였다.
 “에이, 끝났네.”
 더 이상 낚시를 포기한 대찬은 가다랑어 두 마리를 아가미 사이로 줄을 엮어 목에 걸었다.
 다음으로 들른 곳은 바다와 절벽 사이 연못처럼 얕은 웅덩이가 있는 곳이었다.
 이런저런 것들을 많이 잡았을 때 이곳에 풀어 놓고는 했었다. 특히 조개류를 많이 풀어놔서인지 간간이 꼬이는 문어가 많았다. 문어와 제법 큰 전복을 챙겨서 니시무라를 찾아 일본인 마을로 향했다.
 
 일본인들의 마을은 건물들이 하나같이 어설프게나마 일본 가옥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조선인들보다 이주가 빨랐기 때문에 아직까지 그 숫자가 조선인보다 많았는데, 대찬이 마을에 들어가자 손가락질 하며 자기네들끼리 수군거리기 바빴다.
 똑똑.
 들려오는 답변은 일본어였다. 말이 없자 누군가 문을 열어 나왔다.
 “어, 너는?”
 니시무라의 눈에 가다랑어가 들어왔다.
 “헥헥, 힘들어요. 이것 좀 받아주세요.”
 가쁜 숨을 몰아쉬는 대찬의 목에서 가다랑어를 들어 주었는데 무게가 꽤 나갔다.
 “이게 다 뭐냐?”
 “이것들 구한다면서요.”
 대찬의 양손에 전복과 문어를 들어 보여줬다.
 니시무라와 협상해서 대찬은 12센트를 벌었다.
 ‘그렇게 힘들게 갖다 팔았더니 고작 12센트라니.’
 황다랑어의 환상으로 가다랑어도 값을 많이 쳐줄거라 생각했지만 니시무라에게 들은 바로는 근해에서 많이 잡히기 때문에 횟감용이 아니었으면 이것보다 더 못 받았을 거라고 했다.
 몇 번 낚시를 해서 니시무라에게 팔았지만 그 다음부터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물고기를 낚아다 팔면 돈이 된대!”
 “그 물고기가 그렇게 맛이 좋대!”
 바다는 돈이 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조선인만 아니라 일본인들까지 낚시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대찬이 낚시하던 절벽에 처음에는 몇몇 사람들만 와서 지켜보고 가다 했다.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며칠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큰 바늘과 낚싯줄을 구해서 대찬의 옆에서 낚시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물고기 값은 폭락했다.
 해변 해먹에서는 대찬이 축 늘어져 있었다.
 “대짠아, 뭐해?”
 힐끔 쳐다보고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나도 이거 잡았쪄!”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명환의 손에는 가다랑어가 들려있었다.
 “망했어!!”
 절규했다.
 대찬의 최근 재미는 모아둔 돈을 다시 한 번 세보는 일이었다. 집에 아무도 없을 때 돈을 숨겨둔 곳에서 조심스럽게 꺼내서 잘 있는지 확인하곤 했다.
 “1센트, 5센트, 7센트……. 좋아, 1달러 22센트.”
 싸늘한 뒤통수가 이상해 뒤를 돌아보았다.
 흠칫 놀라 쳐다보니 뒤에는 귀순이 고리눈을 뜨고 있었다.
 
 해변에 앉아서 지는 석양을 대찬은 우수에 찬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찹찹, 대짠아.”
 반응이 없었다.
 “찹찹, 이거 먹어 너희 엄마가 사줬떠.”
 대찬의 목 뒤에서 손이 불쑥 들어왔는데, 손에는 기다란 엿이 들려있었다.
 “엿…….”
 “응, 엿장수 아저씨가 커다란 빅 엿이랫쪄.”
 물고기 열풍은 한순간의 일이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낚시를 했었다. 먹을 수 있는 반찬이 생기고 운이 좋으면 돈도 생기니, 시간이 나면 꾸준히 했다.
 “에휴, 이제 어떻게 먹고 살지?”
 가지고 있던 돈은 귀순에게 다 뺏기고 나자 돈이 없다는 박탈감은 대찬을 힘 빠지게 했다.
 ‘바다나 가자.’
 터벅터벅 걸으며 바다로 향하던 대찬에게 한 가지 물건을 보고 새로운 생각이 떠올랐다.
 ‘드럼통!’
 “엄마!”
 왔던 길을 되돌아 귀순에게 갔다.
 “어머니, 소자 어머니에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평소와 다른 말투에 귀순은 흥미와 궁금증을 느꼈다.
 “말해 보거라.”
 “소자 갖고 싶은 물건이 있는데, 하나만 사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것이 무엇이냐?”
 “드럼통이라 하옵니다.”
 “드럼통이 무엇이고 왜 필요한 것이냐?”
 “커다란 쇳통입니다. 묻지 마시고 하나만 사주십시오.”
 귀순은 느낌이 왔다.
 아들은 돈 버는 재주가 있었다.
 “5할.”
 “엄마 그게…….”
 “5할!”
 “네…….”
 
 해변까지 드럼통을 굴려서 가져온 대찬은 해먹 아지트에 가져와 옆으로 돌을 쌓아 그 위에 눕혀 올리고 속을 깨끗이 씻었다. 다음 장작을 가져와 잘게 자르고 드럼통 밑바닥에 깔고 기다란 나무로 중간에 평평한 층을 만들었다.
 “다음은 낚시!”
 바다에 나가 가다랑어 몇 마리를 잡아 왔고 살을 바르고 바닷물을 조금 뿌린 후 드럼통 속 평평한 곳에 깔았고 뚜껑을 닫은 다음 드럼 통 밑에 불을 피웠다.
 한 시간쯤 지나고 훈제된 가다랑어를 꺼내 햇볕에 말렸다.
 “이러면 가다랑어 포!”
 니시무라를 만나러 갈 차례였다.
 물고기를 공급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니시무라는 농장 일 대신 식당을 전업으로 하기 시작했다. 오아후 섬 하나밖에 없는 일본식 식당은 언제나 일본 사람들로 만원을 이뤘다.
 “니시무라 씨!”
 “오, 대찬 군!”
 다시 일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준 대찬은 국적을 떠나 반가운 사람이었다.
 대찬은 신문지 뭉텅이를 보여주며 까기 시작했다.
 “가쓰오부시!”
 다음 날 니시무라의 식당에는 음식이 하나 늘었다.
 가다랑어 포 사업은 순조롭게 이루어져 갔다. 니시무라의 식당만 아니라 일반 수요자도 많아지기 시작하자, 대찬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일이 커지게 되자 귀순이 대찬의 일에 동참하게 됐고 귀순은 동네 아낙들을 참가시켜 낚시와 훈제하는 일을 분업화 하게 됐다.
 “대찬아, 저기 온다.”
 준명이 대찬에게 바다 한가운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하늘에는 새들이 배회하고 수면 위로는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것이 누가 봐도 다랑어 떼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밑밥 뿌려!”
 대찬의 지시에 잘게 자른 문어나 물고기 내장 따위가 바다에 뿌려졌다.
 점점 절벽에 포말들이 가까워졌다.
 “지금!”
 열댓 명의 아이들은 일제히 바늘을 바다에 던졌다. 낚시를 하는 낚싯줄에는 탄성이 좋아 잘 휘는 대나무가 대를 이루고 있었다. 물고기 떼가 가까이 오면 바늘에 한 마리씩 바로바로 걸리기 때문에 미끼가 따로 필요가 없었다.
 들어올리고 물면 그대로 잡아당겨 뒤로 던지면 뒤에서는 대기하는 몇 명이 물고기에 바늘을 빼는 작업을 했다.
 중간에 물고기가 떠나지 않게 미끼를 뿌리는 역할은 따로 있었다. 이 과정을 거쳐 물고기를 많이 잡을 때는 수백 마리를 짧은 시간에 잡았다.
 이 물고기를 수레에 담아 귀순에게 가져다주면 곧 훈제할 준비를 했다. 대찬의 의견으로 총 세 가지 맛으로 만들었는데, 바닷물에 담가 훈제한 소금맛과 간장을 조려 발라 만든 간장 맛 그리고 고추장을 발라 만든 고추장 맛이었다. 일반 수요자가 많아진 것도 이 때문이었다.
 처음 대찬이 이런 다른 맛을 만들자는 의견을 귀순은 믿지 못해 쓸모없는 짓이라고 구박했으나 일단 만들어진 간장과 고추장 가다랑어 포 맛을 보자 고개를 끄덕이며 대찬을 칭찬하기 바빴다. 이렇게 훈제한 가다랑어 포를 햇볕이 좋을 때 하루 바싹 말려 다음 날 팔았다.
 물건을 대량으로 파는 곳이 생기자 장사꾼들이 생겨났고 알음알음 소문이 나서 오아후 섬 전역에 가다랑어 포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사업이 커지고 대찬이 벌어들이는 하루 수입은 12달러 정도를 벌었고 일당으로 주는 돈을 제외하고 평균 3달러 정도 수익이 생겼다. 많을 때는 7달러까지도 늘어났다.
 두 달이 지났을 때는 귀순에게 절반을 떼어 주고도 200달러 가까이 모았다.
 
 사탕수수 밭은 아주 넓다. 육안으로 확인이 안 될 정도로 꼿꼿이 서 잇는 수수들은 사람을 질리게 한다. 길재는 허리를 숙여가며 낫으로 사탕수수를 베는 반복적인 노동을 몇 날 며칠이고 계속 해왔다.
 대부분이 조선식 복장인데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며 참 어색한 모습임을 느낄 수 있었다. 옷은 하얀색으로 아주 깔끔한 복장인데 입고 있는 사람들은 구정물이 줄줄 흐르는 상황이었다.
 뙤약볕 아래서 한참을 일하고 있었을까 어디선가 신음소리가 들렸다.
 신음을 흘리는 건 김 씨였다.
 순박하고 일 열심히 하는 사람. 그것이 김 씨의 평가였는데 얼마 전부턴가 배가 아프다고 했었다.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는데 오늘은 식은땀까지 줄줄 흘리며 안색이 파리해졌다.
 “김 씨, 왜 그래?”
 “으, 으.”
 답도 못 하고 식은땀만 흘리자 길재는 주변의 몇몇과 함께 김 씨를 업고 의사에게로 달렸다.
 “급성 맹장염입니다. 참기 힘들었을 텐데. 아무튼 어서 수술해야 합니다. 간호사 수술 준비해주세요.”
 영어로 된 대화에 눈만 끔뻑대던 주변 사람들은 길재에게 무슨 일인지 물어봤고, 몸에 칼을 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자 분기탱천했다.
 “어찌 사람 몸에 칼을 대고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오?”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달음박질을 쳤다.
 수술 준비가 끝나고 의사는 칼을 들었다. 그때 뜻하지 않는 이들이 나타났다.
 조선인들이었다.
 이들은 다 몽둥이 하나씩 들고 있었는데, 들고 있던 물건으로 의사와 간호사들을 냅다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한참을 폭행하더니만 김 씨를 데리고 김 씨의 집으로 갔다.
 다음 날 김 씨의 부고 소식이 들렸다.
 김 씨가 죽자 조선 사람들이 제일 먼저 한 것은 상여 비슷한 것을 만드는 것이었다.
 하얀 상복을 집고 남자들이 상여를 들쳐메고 그 뒤로 아낙들이 따랐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어~ 허노 어~ 허노 어~ 허노야 어~ 허네…….”
 울음소리와 장송곡이 주변을 메웠다.
 길재는 이 모든 것이 꿈이 아닐까 싶었다. 서양 의술과 동양 의술의 차이 생활 습관은 조금 바뀌어야 했다.
 “꿈에서 깨어야 한다.”
 길재와 인수는 사탕수수 농장이 문을 닫음으로 실업자가 되었다. 사탕수수라는 작물은 지력을 많이 먹어서 한곳에서 몇 년 동안 심으면 자리를 옮겨 다른 곳에 다시 농장을 해야 된다. 이미 모큘레이아에서 몇 년을 길러서 잘 자라지 않았고, 농장은 다른 곳으로 옮긴다고 했는데 오아후 섬이 아닌 다른 곳이라고 했다. 일이 없어진 자들은 근처에 다른 사탕수수 농장이나 파인애플 농장으로 취업했고 둘은 농장 일을 하는 것보다 다른 일을 할 마음을 먹었다.
 대찬을 요즘 재미가 없었다. 돈을 많이 벌었지만 돈을 쓸 데가 없었다.
 “캐딜락 A모델 자동차가 750달러 하지만 필요 없고, 컴퓨터도 없고 TV도 없고 할 게 없네.”
 하루 종일 돈으로 무었을 할 것인가를 고민해 봤지만 살 것도 없고 쓸데도 없었기에 정답이 없었다.
 한창 뒹굴거리고 있을 때 길재가 들어왔다.
 그를 본 대찬은 일어나 인사를 했다.
 “다녀오셨어요.”
 “오냐, 앉아라.”
 두 사람은 마주 앉았다.
 “무슨 일이세요?”
 눈만 끔뻑끔뻑하던 대찬이 물었다.
 “요즘에 네가 번 돈이 아주 크다고 들었다.”
 아내인 귀순에게 이야기를 들은 길재는 자세한 상황을 알고 있었다.
 “네, 조금.”
 “쓸 데는 있느냐?”
 “아니요. 아무리 생각해도 쓸 데가 없어요.”
 “그럼 좋은 일 한번 하자꾸나.”
 “좋은 일이요?”
 “그래, 학교를 세우자!”
 조선인이 다니는 학교는 한 군데도 없었다. 학교를 다녀야 될 나이의 또래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들을 쫓아다니면서 조금씩 일을 따라 하는 게 전부였다.
 “좋아요!”
 자리를 일어나 숨겨놓은 돈들을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여기 있어요.”
 대찬은 전 재산을 내 놓았다.
 가족이 모은 재산은 약 700달러 정도 되었는데, 농장의 전체 땅의 가격이 10만 8천달러 정도 되었다.
 모큐레이아 농장의 자리 일정 부분을 돈을 들여 사들이고 일이 없는 사람들을 품삯을 주고 일을 시켜 건물을 빠르게 올리기 시작했다.
 길재는 열정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리 선정부터 지붕이 올라가는 순간까지 꼼꼼히 보고 일을 진행했다.
 
 해가 바뀌고 단단하게 지어진 학교 개교식 날이 되었다.
 조그마한 단상을 두고 마주 보는 앞 편에는 거의 모든 조선인들이 개교식을 축하하기 위해 기쁜 표정으로 나와 있었다. 시끌벅적한 것이 꼭 잔칫날과 같았다.
 조그마한 단상에 길재가 올라섰다.
 대중들은 조용히 입단속을 하며 길재의 말을 기다렸다.
 “단기 4237년, 우리는 처음으로 이 땅에서 직접 학교를 만들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배워야 합니다. 타국에 와서 모른다고 멸시받는 일은 없어야 하며, 세계의 다른 민족들이 아는 만큼 우리도 알아야 합니다. 좋은 것은 배워야 되며 우리의 것은 더 발전시켜야 합니다. 아울러 우리 것을 지켜야 합니다. 배움, 발전, 보존을 기초로 삼아 우리는 꿈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학교 이름을 꿈 몽(夢), 깰 성(醒)을 써서 몽성학교라 부르겠습니다.”
 “우와아아아.”
 함성 소리와 함께 농악이 울려 퍼졌고 게양대에는 태극기가 펄럭였다.
 대찬의 일과는 크게 달라졌다.
 가다랑어 포 사업은 귀순이 맡아서 하게 됐고, 대찬은 학교를 가게 됐다.
 “아아, 학교를 괜히 지었나?”
 요즘 후회가 생기고 있었다. 자유로운 생활을 둘째 치고 매일 딱딱한 교실에서 하루 반을 앉아서 보내니 답답했다.
 학교에서는 네 가지 과목을 가르쳤는데 조선어, 영어, 역사, 한자를 정규 과목으로 지정했고 대찬은 이 중에서 역사와 한자만 들었지만 그래도 학교를 가는 것을 힘들어 했다.
 학교에 가면 덩치가 다 제각각이었는데 나이가 많음에도 배우기 위해 학교를 오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글을 모르는 자가 많았는데 나이와 상관없이 가르쳤고 일을 해야 되는 사람들은 야간 학교를 만들어 공부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국가로 귀환하는 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반대로 조선인들은 이민 오는 숫자가 급격히 늘었다.
 “아라사와 일본이 전쟁이 났다.”
 이민자들이 이 말을 소식이 어두운 자들에게 전하고 다녔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일본이 아라사의 뤼순 항을 공격했다. 몇 달 뒤 일본이 전쟁에서 승리하였다는 소문이 들렸다.
 
 다시 해가 바뀌고 1905년 궁에 일장기가 걸렸다는 소식이 오아후 섬까지 당도했다.
 이 일을 해외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알리고 싶었던 몇은 이 내용을 적거나 외워서 전해주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제1조. 일본국 정부는 금후(今後) 외무성(外務省)을 경유하여 한국의 외교를 감리(監理), 지휘(指揮)하며, 일본의 외교 대표자와 영사(領事)는 외국에 있는 한국인과 그 이익을 보호한다.
 제2조. 일본국 정부는 한국이 타국과 맺은 조약의 실행을 완수하며, 한국은 금후 일본의 중개 없이는 타국과 조약이나 약속을 맺어서는 안 된다.
 제3조. 일본국 정부는 한국 황제 아래에 통감(統監)을 두고, 통감은 외교를 관리하기 위해 경성(京城)에 주재하여 한국 황제와 친히 내알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일본은 한국의 개항장(開港場) 등에 이사관(理事官)을 둘 수 있다. 이사관은 통감의 지휘 아래 종래 한국에서 일본 영사가 지니고 있던 직권(職權)을 완전히 집행하고, 또한 본 협약을 완전히 실행하기 위한 모든 사무를 담당한다.
 제4조. 일본과 한국 사이에 체결된 조약이나 약속은 본 협약에 저촉하지 않는 한 계속 효력을 지닌다.
 제5조. 일본국 정부는 한국 황실의 안녕(安寧)과 존엄(尊厳)의 유지를 보증한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
 길재는 분노했다. 처음에는 돈을 벌기 위해 왔으나 아들 대찬의 활약으로 목표했던 금액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었고, 조국의 사정을 알기에 돌아가는 길보다 여기서 사람을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돌아가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조선으로 간다.”
 학교와 사업은 가까운 인수에게 맡기고 가족들과 함께 호놀룰루에 가서 배를 타고 조선으로 향했다.
 
 대찬의 가족이 조선으로 간다고 하자 가장 슬퍼한 건 명환이었다. 자신도 같이 간다고 하는 것을 어르고 달래서 갔다가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끝없는 망망대해를 보며 짧았던 하와이 생활에 대해 생각했다.
 ‘아직도 눈에 선하네, 다시 돌아가고 싶다.’
 애꿎은 바닥만 툭툭 쳤다.
 사내는 조선식 복장을 한 가족들이 눈에 띄어 유심히 보았다. 이민을 오는 사람들은 많아도 가는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걸 사내는 알았다. 그들 가족은 셋을 이루고 있었는데, 아들을 제외하고는 수심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흥미가 동한 사내는 직접 말을 붙여보기로 했다.
 “안녕하십니까?”
 “조선인이요?”
 짧은 머리에 서양식 복장은 일본인을 연상하게 만들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찌 복장이 일본인들과 똑같은 복장이요?”
 “제가 사는 곳이 남가주에 있는 리버사이드라는 곳인데 그곳에서는 백인들이 많이 살기 때문에 눈에 띄지 않으려고 복장이 이렇습니다.”
 “멀리서 오셨군요. 반갑습니다. 나는 강길재라고 합니다.”
 사내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몽성 선생님이 이십니까? 저는 안창호라고 합니다.”
 대찬의 귀가 쫑긋 섰다.
 “안창호!”
 놀란 마음에 이름을 크게 불렀다.
 “이놈! 어른 이름을 함부로 부르면 되겠느냐?”
 길재의 일갈이 대찬은 바로 사과를 했다.
 “괜찮습니다.”
 안창호는 슬며시 미소 지으며 대찬을 바라봤다.
 “나를 알고 있나 보구나?”
 “예……. 좋은 일을 많이 하신다고 들었어요.”
 쭈뼛거리며 답을 했다.
 “제가 못난 터라 아들이 저 모양입니다.”
 “아닙니다. 아이들은 실수하면서 크는 거지요.”
 안창호는 손을 뻗어 대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런데 선생께서는 하와이에 학교를 세우셨다고 들었습니다.”
 “벌써 거기까지 소식이 전해졌습니까?”
 “제가 있는 곳에서 공동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민 오는 사람들이 죄다 하와이를 거쳐서 오니 당연히 소식이 전해졌지요.”
 “그렇군요. 그런데 공동회라?”
 “정확히는 한인공립협회입니다. 처음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서 일이 없어 일을 찾아다닐 때 이런 일이 있었지요.”
 
 안창호는 여기저기 일을 찾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다 이상한 광경을 보게 됐다.
 시끄러운 조선어가 들리고 주변은 백인들이 둥글게 감싸고 있었는데 재미있어하며 환호하고 있었다. 그 사이를 파고들어 무슨 일인가 하고 보니 조선인 둘이 서로 상투를 붙잡고 싸우고 있었다.
 “야, 이 새끼야, 네가 뭔데 남의 구역에 쳐 기어들어가서 인삼을 팔고 있어!”
 “내가 네 새끼냐? 어디서 나이도 어린놈의 새끼가 말을 막 내뱉고 있어, 죽고 싶어?! 그리고 막말로 네가 저기다 네 구역이라고 써놨어? 내가 가서 팔면 내 구역이지!”
 주먹과 발이 오가는 몸싸움이었고 흔하지 않은 동양인의 싸움을 충분히 백인들의 유흥거리가 되었다.
 안창호는 당장 둘의 사이에 끼어들어 둘을 말리기 시작했다.
 “이보시오. 왜 한국인들끼리 싸우고 있는 것이오?”
 두 사내는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눈을 돌려 안창호를 보았다.
 “당신은 뉘신데 남의 일에 참견이요?”
 젊은 사람이 말했다.
 “내가 누군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요! 주변을 둘러보시오.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이제야 주변을 둘러본 두 사내는 멋쩍은 듯 서로 잡고 있던 상투를 놔 주었다.
 
 “둘은 인삼 장수인데 그걸 팔아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니라 그저 호구지책으로 삼아 인삼을 팔았던 거였지요. 서로 소통이 없으니 모르는 사람이었던 것이고 싸움이 났지요. 일본인보다 대접도 못 받고 그래서 그걸 바꾸어 보려고 한인 학생과 노동자들 장사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대한공립협회를 만들어서 서로 소통하고 일자리도 찾아주고 했습니다.”
 “큰일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대한이라 함은?”
 “우리의 고국은 대한제국입니다. 그러니 대한은 당연히 우리 민족을 말하는 것이고 국호이니 당연히 협회의 이름에도 대한이 들어가는 것이 맞지요.”
 “옳습니다. 옳은 말이지요!”
 맞장구치는 길재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안창호를 보고 대찬은 넋이 나갔다.
 사진 속에서 보던 얼굴, 도산 안창호가 대찬의 눈앞에 있었다.
 처음 안창호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별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도산 안창호라면 유명한 일화를 본인의 입으로 하자 대찬은 그때서야 진짜 안창호라는 것을 깨달았다.
 ‘단 1분 1초라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대찬의 속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역사에 대해서 몰랐거나 잊었던 것이 아니었다.’
 대찬은 외면해왔었다.
 눈을 뜨니 익숙한 곳이 아니고 머나먼 하와이에서 어린아이의 몸이 되자 현실에 적응하기 벅찼던 대찬이었다.
 두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목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났다.
 ‘대한민국.’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들이 무척 슬펐다.
 이야기에 집중하던 두 사람은 우는 소리가 나자 의아해 주변을 둘러보니 대찬이 듣는 사람이 울컥할 정도로 슬프게 울고 있는 것이 보였다.
 눈에 물기가 촉촉이 오른 안창호는 말없이 대찬을 감싸 안았다.
 ‘조국이여…….’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러고 싶었다.
 옆에서 모든 걸 지켜보던 길재도 눈물을 글썽였다.
 울다 지친 대찬은 그대로 쓰러졌다.
 
 대찬의 어깨 위에 다이아몬드 계급장 두 개가 달려 있었다.
 대나무 계급장 두 개가 어깨에 나란히 달려 있는 사람은 이내 대찬의 계급을 회수하고 다이아몬드 3개가 달려 있는 계급을 달아줬다.
 “강대찬 대위.”
 “대위 강대찬!”
 “진급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할 게 뭐 있나? 자네가 잘해서 진급한 것이지. 아끼는 부하가 진급했으니 내가 축하주 한잔 사야겠네.”
 “대대장님이 사주신다니 어디든 못 가겠습니까?”
 “하하 좋아, 가세.”
 자리를 옮겨 술자리에 가자 환호성이 터진다.
 “우와아아, 강대찬 대위님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1중대 강대찬 대위님 축하합니다.”
 한참 축하를 받는 자리에는 중대 인원들이 다 모여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술이 몇 순배 돌자 다들 얼큰히 취해 있었다.
 정수는 대찬의 근처에 와 대작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러니까 네가 안창호 의사하고 가족 관계라고?”
 “예. 저희 할아버지하고 형제 관계라고 합니다.”
 “이야 정수 독립운동가의 후예라, 정수 멋지네?”
 “에이, 놀리지 마시지 말입니다. 근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지 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뭐라고 하셨는데?”
 “창호가 독립을 못 보고 간 것은 안타까우나 조국이 분단된 것을 안 보고 가서 다행이라고 말하셨답니다.”
 “그래, 안타깝네.”
 “우리가 그 바꿀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정수야 이건 만약인데, 만약 네가 그 시절에 미래를 알고 태어났다. 하면 어떻게 할래?”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합니까? 군대 길러서 쪽발이 새끼들 다 잡아 족쳐야 되는 거 아닙니까?”
 “푸하하하, 그래 그럼 나는 뭐 할까?”
 “그야 당연히!”
 “당연히?”
 “앞장서서 싸우셔야지 말입니다.”
 “크하하하, 총알받이 하라고?”
 “하고 많은 말들 중에 총알받이가 뭡니까? 좋은 말 많이 있잖습니까?”
 “좋은 말?”
 “조국 해방 선봉대장!”
 “인마! 빨리 죽으라고 해라, 그냥.”
 둘을 웃어댔다.
 “정수야 내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
 “말씀하십쇼.”
 “돈은 어디 있어서 군대를 만드냐?”
 “그건 쉽습니다. 어떻게 하냐면…….”
 
 안창호와 길재가 이야기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대찬은 따라다녔다. 배는 크지만 갈 수 있는 곳은 한정되어 있어서 달라붙어 두 사람이 하는 말을 한 마디라도 더 들으려 노력했고, 그 결과 현재 세계가 돌아가는 것들과 한국의 상황 그리고 앞으로 이루어 나가야 될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어느 날 바람을 쐬기 위해서 나와 있던 세 사람은 백인 사진사가 사진기를 들고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버지 우리도 사진 한번 찍어요.”
 “사진 말이냐?”
 “네. 꼭 찍고 싶어요.”
 “도산, 괜찮겠소?”
 안창호는 빙그레 웃으면 긍정을 표했다.
 대찬은 사진사에게 가 사진을 찍어 달라했다. 난색을 표하던 사진사는 값을 치르겠다고 하자 흔쾌히 수락했다.
 네모나고 큰 사진기에 다리를 달아 세운 사진사는 손에 들고 있는 전구를 들고 말했다.
 “찍습니다. 하나, 둘, 셋.”
 펑. 며칠 뒤 사진을 받았다.
 길재와 안창호는 무표정으로 양 옆에 나란히 서있었고 대찬은 활짝 웃는 표정으로 두 사람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 뒤에는 대해가 넓게 퍼져있었다.
 하와이에서 배를 탄 지 어언 20일 정도 지나가자 일본 군함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루를 더 가자 나가사키 항에 들어왔다.
 입국 심사에서 앞서 먼저 검사를 받은 백인들이나 일본인, 중국인들은 쉽게 들어갈 수 있었으나 안창호와 길재의 가족들은 쉽게 통과할 수 없었다. 한국인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특히 길재의 한복은 어딜 가나 관심 받을 정도였다.
 호의적이지 않은 눈빛들은 따갑게 전해졌다.
 
 나가사키에서 한국으로 향하는 배를 타고 또 10일 정도 가자 드디어 제물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하고 보이는 풍경은 일본식 건물들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간간이 있는 한국식 건물들이 보이지 않았으면 분명 일본이라고 느낄 정도였다.
 “대한제국이 아니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쉽지만 헤어져야 할 시간이네. 그럼 몽성, 약조한 날에 보세.”
 “도산, 그럼 그때 봅시다.”
 가족은 안창호가 떠나가는 뒷모습을 배웅했다.
 “아버지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요?”
 “임실로 가자.”
 “임실이요?”
 “그래 임실에 우리 임실 강(康) 씨 종갓집이 있단다.”
 
 제물포에서 임실까지 가는 길은 상당히 오래 걸렸다. 마땅한 교통수단이 없어서 우마차를 얻어 타는 일 외에는 걷는 것만이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임실까지 가는 것은 고난 그 자체였다. 활개치고 돌아다니는 일본군들과 기에 죽어 사는 사람들을 보면 몹시 우울했다.
 행여 눈이 마주치면 경을 칠까봐 무거운 짐을 지게에 싣고 땅바닥만 보며 걸어가는 모습이며 길에 돌아다니는 아낙네들은 희롱당하기 일수였다.
 사회 분위기는 침통하다 못해 비참했다.
 얼마나 갔을까, 경기 지방을 지나가면서부터 땅을 파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버지 저기 좀 보세요.”
 일본인의 모습을 한 자들은 그곳에서 물건을 하나씩 조심스럽게 꺼내고 있었다.
 “도굴꾼들이구나.”
 “도굴이면?”
 대찬은 깜짝 놀라 되물었다.
 “해가 떠있는 시간에 너무나도 떳떳하게 도굴을 하는구나.”
 혀를 차며 가족은 다시 걸었다.
 고분 하나를 지나가며 그것 하나만 그렇게 파겠지 라는 생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산산조각 났다.
 고분처럼 보이는 둥근 민둥산들은 죄다 파헤쳐지고 있었다.
 애써 무시하며 가족은 고향을 향해 걸었다.
 제물포를 출발한 지 열흘 지나자 임실에 도착했다.
 “이리 오너라.”
 아담한 대문 앞에서 길재는 사람을 찾았다.
 “뉘시오?”
 문 안쪽에서 젊은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길재가 돌아왔습니다.”
 끼익
 문소리는 마음을 대변하는 빠르게 열렸다.
 “오라버니!”
 “어머니, 아버지 오라버니가 오셨어요.”
 대찬의 가족은 공손이 절을 했다.
 “그래, 완전히 돌아온 것이냐?”
 “아닙니다. 모시려고 왔습니다.”
 “어딜 말이냐? 미국으로 말이냐?”
 표정이 굳어지고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그렇습니다.”
 “네 이놈! 어찌 고향 땅과 조상들의 무덤을 남기고 떠난 다는 말이냐?”
 왜소한 체구와는 다르게 큰 고함이 터졌다.
 “아버지 그래도 가셔야 합니다. 여기 남아 있다가는 풀 한 포기 주춧돌 하나까지 다 빼앗겨 버릴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제가 그곳으로 처음 도착해서 본 것은 수많은 중국인들과 일본인들 이었습니다. 계속 일하면서 영길리 말을 배울 수가 있었는데, 일본인들을 관리하던 사람이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툭하면 파업을 하는데, 이유가 조금이라도 자신들의 불리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일본인 전체가 함께 움직인다고 하더군요. 이번에 이루어진 조약에 의하면 모든 것을 자신들의 뜻대로 하겠다는 뜻인데 저들 민족의 기질을 봐서는 조만간 승냥이들처럼 우리 강역에 모든 것을 다 뺏어가려 단체적으로 움직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 땅을 떠날 수는 없다.”
 “아버지 임실까지 오는 길에 제가 무었을 봤는지 아십니까?”
 “되었다. 그만하고 이만 나가봐라.”
 수심 가득한 얼굴로 손짓을 하며 나가기를 종용했다.
 
 저녁이 되자 길재의 형제들과 사촌들은 한자리에 모였다.
 “형님의 말은 우리 집안 다 이주를 가야 한다는 말이요?”
 “우리는 가야 한다. 사실 이런 일은 강요하면 안 되는 것이다만, 나는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다. 그만큼 이 일은 중요하다.”
 “왜 그렇습니까?”
 “내가 임실까지 오면서 많은 것을 봤다. 그리고 그중에서 하나만 이야기하자면, 이미 수탈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큰 고분이라고 생각하는 곳은 어디든지 왜놈들이 땅을 파고 있더구나.”
 “도굴을 한다는 말입니까?”
 “그렇다. 이미 주인 없는 무덤들을 파헤쳐서 도둑질해가는 중인데 그 일이 끝나면 어떻게 되겠느냐?”
 이야기를 한참 듣던 사촌 형은 입을 열었다.
 “길재야, 네 말대로 간다손 치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할 줄 아는 거라고는 땅 파먹는 것만 할 수 있는데 말이다.”
 “이미 가서 잘 살고 있지 않습니까?”
 “네 이야기만 들으면 갈 수는 있겠지만 솔직히 두렵다. 고향을 떠나서 살 자신이 없구나.”
 “고향을 생각하면 떠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자식들이 앞으로 겪을 미래를 생각해보십시오. 지금 사람들이 겪고 있는 일들은 이제 시작입니다.”
 계속해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좋소, 형님 나는 가겠소.”
 길재의 동생 길현은 결심을 내렸는지 찬성하였다.
 “잘 생각했다. 다른 분들은 어떻습니까?”
 “좋다.”
 “좋아요. 슬프지만 그게 사는 길이라면 가야지요.”
 길게 이어지던 의논은 이주를 하자는 의견에 합쳐져 끝이 났다.
 집안의 젊은 세대의 주도로 이주를 결정하자 어른들을 설득해야 했다. 설득은 어려웠다. 조상들의 무덤 때문이었는데, 여기서 다 죽을지도 모르는데 죽어서 무덤을 못 돌보는 불효를 저지르는 것보다 조금 관리를 못하더라도 다시 돌아와 관리하면 되지 않느냐는 설득에 대부분 설득이 됐다. 하지만 몇몇 어른들은 끝까지 설득할 수 없었다.
 “살날도 얼마 남지 않았고, 늙은 몸이라도 조상들 곁에 남아야 하지 않겠느냐?”
 이런 말을 남기며 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길재는 이렇게 말하며 설득을 했다.
 “부모를 봉양하며 모시고 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효이기 때문에 안가시면 가지 않겠습니다. 무덤에 계신 조상님 곁에 계신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살이 있는 부모님의 곁을 어떻게 떠날 수 있겠습니까?”
 마지막 한 명까지 설득하자 강씨 집성촌은 분주해졌고, 이주할 요량으로 가지고 있는 논과 밭을 처분하려 했는데 이를 길재가 막았다.
 “선산을 포함해서 땅을 전부 팔지 마십시오. 여기서 살면 뺏기거나 강매당할 것이 뻔한데 팔지 않고 떠나면 다시 돌아왔을 때 판 적이 없으니 온전히 우리의 소유가 아닙니까? 손쉽게 가지고 갈 수 있는 물건과 문서들만 챙기세요.”
 말을 듣고 팔 수 있는 것은 손에 꼽았다.
 주변 정리를 하고 이주하자 강씨 가족의 수가 일백이 넘었다. 제물포를 향해서 하나둘씩 이동을 시작했고 떠나는 사람들에게서는 구슬픈 울음소리만 들렸다. 그렇게 떠난 강씨 집성촌은 침묵만 가득했다.
 
 숫자가 많은 만큼 제물포를 향하는 길은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가면서 온갖 사방곳곳을 파헤치는 일본인들을 보며 집안의 어른들은 그것을 감추지 못하고 한탄했다.
 제물포에 도착하자 제일 먼저 한 것은 여권을 발급받는 일이었다.
 대찬은 잡아 놓은 숙소를 벗어나 근처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근처에 시장을 가보고 싶었다. 귀순에게 자신의 행방을 밝히고 시장을 향했다.
 시장의 초입에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는데 모두들 ‘옳소’라고 대답하며 집회를 이루고 있었다.
 “우리의 국권을 회복하는 데 있어서 다른 국가의 힘을 빌리면 안 되고 우리의 힘으로 국권을 회복해야 합니다. (중략) 한국인들은 신교육을 받고 우리의 실력을 길러서 우리 민족의 미래를 짊어질 인재들을 키워 내야 합니다.”
 삐삐.
 호각 소리와 함께 짧았던 집회가 끝이 났다.
 일본인 헌병들이 다가오자 사람들은 몸으로 그들을 막아냈다.
 그 사이 연설자는 몸을 피하였다.
 나무상자를 쌓아놓고 연설을 하던 주인공은 김구였다.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자 한동안은 굉장히 슬펐지만 반대로 다른 욕구가 생겼다.
 미래에서는 독립운동가들은 스타이자 민족의 영웅이었다.
 대찬은 사진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안창호와 배에서 찍은 사진 만족스럽게 사진의 뒷면을 봤다.
 한자로 도산, 두 글자가 멋있게 써 있었다.
 “김구 사인 받고 싶다!”
 
 여권을 나오는 시간은 꽤 오랫동안 걸렸다. 심하게 방해를 했기 때문이었다.
 일본은 나름대로의 고민이 있었는데 한국인 이민자 숫자가 많아지면 일본인들의 이민이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였기 때문이었다.
 하와이의 일본인 사회가 성장하면서 무역, 송금 그리고 일본에 대한 기부 또한 증가했다. 이민은 또한 가난을 번영과 바꾼 개인 이민들에게도 큰 이익이었다. 이런 성공을 거둔 일본인들에게 한국인들은 크나큰 위협이었다.
 앞뒤 사정을 알게 된 길재는 가족들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하게 된다.
 “미국으로 가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제물포 시장에 소문 좀 내주세요.”
 한국인들이 이민을 많이 오게 되면 그만큼 역량도 커질 테니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일본을 거쳐서 하와이로 가면 일본에서 막혀 하와이로 못 갈 수도 있기 때문에 중국 상해를 향하는 배편에 올라탔다.
 ‘안녕, 대한민국.’
 작별인사를 선선한 바람이 받아 주었다.
 대찬은 배에 올라 속이 메스꺼우면 항상 갑판에 올라 찬바람을 쐬고는 했다. 어김없이 뱃멀미를 하자 울렁거리는 속을 다스리기 위해서 갑판으로 향했다.
 힘없이 걸으며 올라가자 잔잔하던 파도가 크게 한 번 출렁였다.
 휘청
 대찬은 갑판을 굴러 난간에 걸쳐졌다.
 “조심하렴.”
 근처에 다가온 사내는 대찬을 번쩍 들어 똑바로 세워주었다.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를 하고 얼굴을 보니 익숙한 얼굴이었다.
 “제 이름은 강대찬이라고 합니다. 혹시 함자가 어떻게 되시는지요?”
 청명한 눈빛에 훤칠한 이마, 윗입술 위로 둥글게 수염이 있는 사내는 말했다.
 “내 이름은 안중근이란다.”
 안중근의 손을 붙잡고 대찬은 길재가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한참을 안중근과 길재는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 여기 이분은 안중근 선생님이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강길재라고 합니다.”
 “몽성 선생이셨습니까?”
 자신을 알아보는 안중근에게 놀란 길재가 물었다.
 “혹여 저를 아십니까?”
 “알다마다요. 미국에서 성공한 한인 사업가가 있고, 그 사업가가 학교도 만들었다는 소문은 귀가 따갑게 들었습니다.”
 길재는 얼굴을 붉히며 말을 이었다.
 “부끄럽습니다. 그런데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렸습니까?”
 안중근의 물음에 길재는 대찬을 한 번 쳐다보고 말했다.
 “학교를 세우자는 의견을 내고 만드는 것은 제가 맞지만, 저는 그렇게 상재가 없습니다. 재물은 저 녀석이 만들었지요.”
 길재의 시선이 향한 곳에 대찬이 있었다.
 안중근과 대찬은 따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어떻게 사업을 할 생각을 한 것이냐?”
 “그러니까, 처음에는 할 일이 너무 없었어요. 그저 어른들 따라서 사탕수수 옮기는 일만 했었죠. 그런데 노동만 해서는 먹고 사는 생활이 전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어머니 반짇고리에서……. (중략) 그래서 학교까지 세우게 된 거예요.”
 대찬의 이야기 내내 안중근의 표정은 수시로 바뀌었다.
 “궁금한 것이 있구나, 어째서 일본인에게 장사를 시작했느냐?”
 “일본은 사방이 바다예요. 일단 생선에 익숙한 자들이었고 그들의 음식 중에 초밥이라는 게 있는데 날생선을 밥 위에 올려 먹는 음식이에요. 그래서 가져다 팔았어요.”
 “그래도 안타깝구나.”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표정에는 안타까움이 서렸다.
 “독립운동 하실 거지요?”
 “그걸 어떻게…….”
 “당황하실 필요 없어요. 제 생각은 그래요, 독립운동도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다고요.”
 한참을 당황해서 불안해하던 안중근은 곧 평정을 찾고 되물었다.
 “독립운동도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다?”
 “맞아요. 우리나라는 작년 늑약에 의해서 정복당했어요. 앞으로는 찬동가, 저항가 마지막으로 일반 백성들만 남을 거예요. 찬동가는 저 일본 놈들에 의해서 부귀영화를 누릴 것이고 실제로 그 오적들은 그렇게 살고 있어요. 반면 저항가들은 궁핍하고 쓸쓸하고 외롭게 살다가 죽거나 죽임당하거나 찬동가로 돌아설 것이에요. 백성들은 찬동가들의 선동에 의해서 친일 행위를 보이겠지요. 그들 군대에 입대를 하고 저들 우두머리에게 충성을 할 거예요. 그리고 그것을 자랑스러워하겠죠.”
 “허, 운동가들을 위해서 돈이 필요한 것이냐?”
 “그것도 있지만…….”
 “있지만?”
 “군대를 만드는 돈이 필요해요.”
 “군대라…….”
 안중근은 깊게 생각에 빠졌다.
 “그럼 돈이 아주 많이 필요하겠구나?”
 대찬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돈을 아주 많이 벌어 금으로 산을 쌓을 거예요!”
 안중근은 대소했다.
 “하하하, 포부가 대단하구나, 그럼 앞으로 너를 금산(金山)이라고 불러야겠다. 잘 부탁하네, 금산.”
 대찬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는 안중근이었다.
 상해에 도착하고 나서 대찬은 길재를 졸라 많은 가족들과 안중근을 포함해서 사진을 찍었다.
 “그럼 연이 닿으면 또 뵙도록 하지요.”
 “보중하시길 바랍니다.”
 짧은 인사와 함께 안중근은 떠났다.
 상해에서 하와이까지 가는 배를 수배하니 내일 당장 떠나는 배가 있어 부랴부랴 애셜론호에 승선하였다.
 하와이까지 가면서 다행히 태풍이 불지 않아 짧은 시간을 거쳐 오아후 섬 호놀룰루에 입항하게 되었다. 호놀룰루에서 모큘레이아까지 걸어서 가야 했는데, 한국에 갔다 온 사이 새로 만들어 놓은 길이 있어서 편하게 마을까지 갈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 대찬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명환은 바로 대찬을 찾아왔다.
 “대찬아~.”
 대찬을 보고 바로 달려와 힘껏 껴안았다.
 “오랜만이야!”
 “응. 명환아,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그럼 잘 지냈지, 근데 대찬아~.”
 대찬의 감이 이상했다.
 “응?”
 “선물 사왔어?”
 “…….”
 몽성학교 주변은 한국식 건문들이 주변을 차지하고 있었다. 제법 조선의 티가 나는 한국인 촌은 자리가 없어서 집을 못 짓고 있다고 했다.
 가다랑어 포로 벌어들이는 수익금은 주인이 없으니 인수가 함부로 집행하지 못했고 그저 학교 운영 자금으로만 썼다고 했다. 길재는 그 이야기를 듣고 제일 먼저 땅을 더 사는 일을 했는데, 이주해 온 가족들의 집도 지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한국에 갔다 온 동안에 인수가 사업으로 모아 놓은 돈은 1500달러 정도 되었는데 가다랑어 포 수요가 더 늘어 미국 본토에까지 한국인들이 가져다 팔았다고 했다.
 모큘레이아 농장은 농장주가 땅을 팔 수 있는 권리를 부동산 업자에게 넘겨주고 오아후 섬을 떠났는데, 그 사이 땅값이 더 떨어져 1500달러로 본래의 크기보다 세 배가 넓은 토지를 구매할 수 있었다.
 땅이 넓어지자 서로 집을 짓기 위해 분주해졌고 대찬의 가족 역시 일정한 터를 잡고 집을 지었다.
 “뭘 만들어 볼까?”
 대찬은 새로운 사업을 할 생각을 했다.
 “주변에서 나는 것이 생선과 해산물 그리고 과일뿐이네.”
 대찬은 한 가지 잊어버린 것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검은 것 뭐더라? 생각이 안 나네?”
 생각이 안 나자 대찬은 길재를 찾아갔다.
 “아버지 저쪽 농장에서 기르는 것 있잖아요. 그 검은색 그거.”
 “검은색? 뭘 말하는지 모르겠구나.”
 “그럼 뭘 기르는지 하나씩 말씀해 주세요.”
 “그래, 알았다. 일단 우리 바로 옆에 농장은 사탕수수를 키우고 그 너머에는 파인애플과 오렌지 그리고 저쪽 높은 산 쪽에는 커피를 키우고.”
 “맞다! 커피!”
 생각이 나자 커피를 구할 요량으로 뛰어나갔다.
 “아버지, 감사해요.”
 
 돈을 다 길재에게 줬지만 대찬은 혹시 몰라 비상금조로 1달러 정도는 항상 주머니에 넣어 두었었다. 이 돈으로 커피 농장에 가서 1달러만큼의 커피를 구했는데 1달러만큼의 커피 양이 많아 힘들게 끙끙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커피 자루를 열어보자 초록색 원두가 나왔다.
 “이러니 검은색이라고 하면 모르지.”
 괜히 한번 투덜거리고 적당량에 원두만 덜어 화로 위에 철판을 깔고 원두를 살살 볶기 시작했다. 고소한 커피 향이 달달하게 진동을 했다.
 “이제 이걸 갈아서……. 갈아서?!”
 원두를 갈 곳이 없었다. 별수 없이 원두를 돌로 깨서 가루를 만들어 뜨거운 물에 타서 한 모금 마셨다.
 후루릅.
 형용할 수 없는 맛.
 “우웩.”
 마시자마자 뱉어냈다.
 “드럽게 맛없네!”
 쓰고 탄 맛이 났으며 심지어 돌의 맛도 같이 느낄 수 있었다.
 “우와 고소한 냄새는 뭐야?”
 냄새를 맡은 명환이 다가왔다.
 “흐흐, 명환아 먹어 볼래?”
 “응!”
 남은 커피를 명환에게 건네주었다. 명환은 별 의심 없이 한 모금 마셨다.
 “…….”
 “…….”
 “우웩~.”
 커피는 실패했다. 도저히 먹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어서 커피를 산 1달러가 아까웠다.
 “내 1달러!”
 “이제 다른 걸 찾아 봐야지.”
 좌절하다가 다른 생각이 났는지 곧 다른 곳을 자리를 옮겼다.
 
 귀순은 집안 청소를 하다 대찬의 방에서 콩이 든 자루를 발견했다.
 “웬 콩이지?”
 조그마한 초록색의 콩을 살짝 들어 냄새도 맡아 보았다.
 “고소하네? 이걸로 밥이나 지어야겠다.”
 귀순은 커피콩을 들고 주방으로 갔다. 주방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콩을 불리는 일이었다. 바가지에 콩을 담아 한참을 불리고 맷돌을 가져다 콩을 일정량 갈았다. 그리고 남은 콩은 쌀에 섞어 밥을 지었다.
 간 콩은 콩비지를 하기 위해 뜨거운 물에 넣고 휘휘 저었는데 오히려 물의 색이 검게 변했다. 간수를 넣고 휘저어도 그저 검은색 물만 있었다.
 “이상하네? 원래 이런 콩인가?”
 귀순은 의아해하며 검은색 물을 살짝 떠서 맛을 보았다.
 “퉤퉤, 에이 못 먹겠네.”
 밥을 올려놓은 것이 문뜩 생각났다.
 “어머나 이 일을 어째!”
 귀순은 밥을 올려놓은 솥을 열고 밥을 보았는데 밥이 검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불안해하며 밥을 살짝 떠서 먹었다.
 “이것도 못 먹겠네, 이걸 어쩌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노란 콩을 생각하고 만든 비극이었다.
 
 저녁식사 시간이 되자 대찬의 가족은 밥상에 빙 둘러 앉았다. 귀순은 밥을 퍼 각자 앞에 밥을 내려놓았다.
 밥의 색은 검었다.
 “임자, 밥이 왜 이런가?”
 “그게 사실은…….”
 귀순은 오늘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대찬의 방에서 나온 콩을 시작으로 왜 이렇게 되었는지.
 “엄마, 그럼 이게?”
 “네 방에 있던 콩으로 지은 밥이야.”
 “맙소사, 그럼 버리고 다시 해야지요.”
 쌜쭉한 표정으로 귀순은 대찬을 노려보았다.
 “되었다. 먹자.”
 길재는 별수 없다는 듯이 밥을 먹었지만 표정은 좋지 않았다. 대찬은 맛을 알기에 먹기 싫어 밥을 뒤적이다가 신기한 것을 발견했다.
 ‘어라? 원두 색이 다르네?’
 색이 다른 원두 두 가지를 차례로 맛을 보자 서로 맛이 달랐다. 하나는 살짝 신 맛이 돌았고 다른 하나는 쓴맛이 더 강했다. 같은 원두인데 맛은 천차만별이라 다른 것도 하나 맛을 보았는데, 이건 또 다른 맛이 났다. 아마도 익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층에 있다 보니 서로 익는 익기가 달랐던 모양이었다.
 “엄마 콩으로 이것만 만들었어요?”
 “아니 콩비지를 만들어 보려고 했는데 그건 못 먹겠더라.”
 “콩 비지요? 그럼 갈았어요?”
 “왜 그러니?”
 원두를 갈 수가 없어서 돌로 원두를 분쇄해먹은 것이 생각이 났다.
 “혹시 맷돌로?”
 “너는 뻔한 것을 물어보는구나? 맷돌로 가니까 잘 갈아지던데?”
 “맷돌 어디에 있어요?”
 밥은 어차피 못 먹는 거였다. 대찬은 맷돌을 핑계로 자리를 벗어났다.
 그날 밤 커피 밥을 잔뜩 먹은 길재와 귀순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 밤은 깊어가고 세상을 비추는 빛이라고는 달밖에 없는 밤 두 사람은 뒤척이다 살이 맞닿게 되고…… (중략) 해서, 하얗게 불태웠다.
 다음 날부터 커피 원두는 정력제라고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대찬은 철판 위에 원두를 하루 종일 볶기 시작했다. 잠간 볶으면 연초록색이 나타났고, 거기서 또 볶으면 원두가 누런색을 띠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갈색에서 검은색으로 변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렇게 색이 크게 분류되는 것이 다섯 가지였다.
 다음 맷돌을 깨끗이 씻어서 밑에 받침을 두고 원두를 넣어 갈기 시작했다.
 첫 번째 원두는 누런색의 원두였는데 뜨거운 물에 살짝 타자 고소한 향이 좋았다.
 후르릅
 “어휴, 맛없어.”
 누런색 원두는 향은 좋았으나 맛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을 하자 전체적으로 골고루 갈색을 보이는 원두가 제일 단맛도 나고 좋았으며 조금 더 검은색처럼 보이는 원두는 쓴맛이 강했다.
 커피를 개발하고 기분이 좋아진 대찬은 해변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싶었다. 해변으로가 물을 끓이고 제일 맛있게 볶아진 커피로 타서 해변에 앉아 한 모금을 마셨다.
 후르릅
 “커피 한 잔의 여유.”
 후르릅
 대찬은 먼 바다를 바라봤다.
 “테이스터스 초이스.”
 만들어진 원두는 종이를 사다 밥풀로 붙여 작은 종이 봉투를 만들었고 그 위에 가비라고 영어로 멋들어지게 써서 포장했다. 포장한 원두는 종류별로 홍보 삼아서 무료로 뿌렸는데 반응이 좋았다. 그런데 반응만 좋았을 뿐이지 직접적인 주문은 들어오지 않았다.
 
 미국 본토에서 배가 한 척 들어왔는데 아주 불행한 소식을 전해 주었다.
 “샌프란시스코가 사라졌다! 남아 있는 거라고는 추억 그리고 외각의 주택 약간뿐이다. 모든 것이 사라졌고 조각난 샌프란시스코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인구 30만이 넘는 대도시는 사흘 밤낮 동안 화마에 휩싸여서 재로 변해버렸다.”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샌프란시스코로 가 있는 한인들을 많이 걱정했지만 숫자도 적고 대부분 가난하여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은 없었다.
 다들 안심하던 것과는 달리 대찬은 다른 생각을 했다.
 “아버지 기부금을 내야 할 것 같아요.”
 “기부금? 지진이 난 곳에 말이냐?”
 “네, 꼭 내야 해요.”
 “저들은 우리하고 연관이 없고 한인들도 가난하게 사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느냐?”
 “이건 아주 중요한 일이에요. 우리는 지금 다른 나라에 살고 있어요. 우리가 이곳 사회에 인정받고 역량을 기르기 위해서는 꼭 기부금을 내야 해요.”
 대찬을 알고 있었다. 유색인종에 대한 인종차별이 얼마나 심한지, 미국 동부 쪽으로 가면 흑인보다도 못한 대접을 받았다.
 길재는 하와이에서 땅을 사서 융통할 수 있는 금액은 크지 않았다. 여유 있게 모아서 오아후 섬에 있는 정부청사로 가서 300달러를 한인들의 이름으로 기부하였다.
 기부 소식이 전해지자 기자가 기사를 싣기 위해서 한인촌에 찾았다. 기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왔다고 했다.
 “원더풀!”
 기자는 한인촌을 보고서 이국적인 풍경에 이국적인 마을이라며 아름답다고 극찬을 했다.
 기자와 길재는 인터뷰를 했는데 어떻게 이주하게 됐는지 기부금을 내게 된 동기 등을 물어보며 성실하게 원고를 썼다.
 “그렇군요. 그럼 무슨 일을 해서 돈을 버신 겁니까?”
 “대부분은 한인들의 자발적인 모금이었고 저와 제 아들이 조그마한 사업을 하는데, 그 사업으로 모아놓은 돈을 기부하였습니다.”
 “사업을 하셨군요. 어떤 사업을 하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생선 가공업을…….”
 대찬은 말을 잘랐다.
 “커피요!”
 
 특집 기사가 실렸다.
 동양인에 대한 호기심과 신비로움이 가득한 두 장에 사진은 좌우로 배치되어 있었고, 길재와 대찬의 사진은 가운데 자리 잡았다. 그 기사에 실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비로운 나라 대한제국의 출신 이민자들은 우리 곁에서 보이지 않았을 뿐 이미 여러 곳에 살고 있었다. 그들은 (중략) 기부하였다고 한다. 생선과 커피 사업을 하고 있는 미스터 강의 진심 어린 기부로 필자의 마음은 훈훈해졌다. 마지막 헤어지기 전에 미스터 강의 아들이 직접 개발한 커피라고 한 잔 대접해 주었는데, 마음이 전해졌을까? 맛과 향이 최고였다. 나누어 사는 마음 우리들은 그 마음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기사가 일으킨 영향을 굉장히 컸다.
 커피 주문이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소소하게 들어와 감당할 수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대찬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정도로 폭발적으로 주문이 들어왔다.
 “기계를 만들면 되지!”
 쉽게 생각하고 기계를 만들려고 했으나 톱니바퀴를 만드는 과정에서 시간이 오래 걸려 사람들을 고용해 일을 시켰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일은 오히려 원두만 못 쓰게 되는 일이 많았다.
 정상적인 것만 골라내고 공급을 했다. 그러는 중에 대찬이 고안했던 방법으로 기계가 만들어졌고 사람이 손잡이를 잡고 돌리면 기계의 큰 원안에 있는 날개가 돌아가 골고루 익을 수 있게 작동했다.
 커피의 맛은 총 4가지로 만들었고 용량별로 100g, 300g, 500g, 1kg, 5kg, 10kg 이렇게 6가지를 만들었다. 본토에서 주문이 많았기 때문에 종이는 풀을 먹이고 니스를 칠한 다음 잘 말려서 내용물이 상하거나 눅눅해지지 않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가비라는 글자와 고양이 모양의 그림을 나무판에 파서 검은색으로 칠해주고 맛별로 고양이 그림이 달랐다.
 취향에 따라 커피를 선택해서 마실 수 있는 가비는 날개 달린 듯이 입소문이 났고 본토 서부 지역에서는 제법 유명한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물량이 많이 필요하자 오아후 섬에 있는 커피 농장과 계약을 했고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이 필요했다. 그동안 원두를 팔아서 벌어들인 수익을 전부 투자해서 커피 농장과 가까운 곳에 땅을 사고 공장 건물을 지었다.
 
 카마나누이는 하와이 제도 원주민이었다. 특히 오아후 섬 호놀룰루에서 그의 일족은 평생을 살아 왔었다. 천혜의 자연환경은 그들에게 축복이었고 별다른 노력 없이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돈이 없으면 먹고 살기가 힘들었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낚시를 하거나 과일을 따서 먹고 살았으나 농장에 취업해서 일을 한다는 것은 싫었다. 매일 햇볕 아래서 해가 지기 전까지 일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살다가 누군가 먹으라고 음식을 하나 건네주어 먹게 되었다. 익숙한 맛이 분명한데 다른 맛이 첨가되어 색다른 맛이 났다. 이게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가다랑어 포라고 했다.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해진 카마나누이는 사람들에게 물어 호놀룰루에서는 조금 먼 모큘레이아까지 가게 되었다.
 도착해서 보니 작은 스킵잭(가다랑어)으로 음식을 만들어서 파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작은 스킵잭보다 비슷하지만 더 맛있는 옐로우핀으로 만들면 좋을 텐데?’
 카마나누이는 근처 다른 원주민 마을에서 카누를 빌려 바다로 나가 황다랑어를 잡아왔다.
 “이거 판다.”
 귀순은 원주민이 잡아온 커다란 물고기를 보았다. 가만 보니 예전에 아들이 저걸 잡아서 1달러를 벌었다는 것이 생각이 났다. 귀순은 말없이 1달러를 건네주었다.
 카마나누이는 기분이 무척 좋았다. 바다에 나가서 낚시하면 금방 낚을 수 있는 물고기를 1달러나 주고 사줬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돈이 필요할 때 한 번씩 잡아다 팔아야겠다.’
 카마나누이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갔다.
 
 간만에 저녁상에 황다랑어가 올라왔다. 화로에 올려서 살짝 구워먹는 것이 감칠맛이 좋았다.
 “엄마 이거 어디서 구한 거예요?”
 “응 여기 원주민이 잡아와서 판다고 해서 샀지.”
 “그럼 엄청 큰 거 아니에요?”
 “너무 커서 다 나누어주고 우리 먹을 것만 가지고 왔단다.”
 “원주민……, 원주민!”
 “어머 대찬아, 왜 그러니?”
 대찬은 혼자 상상하며 미소 지었다.
 
 “알로하~ 알로하~.”
 대찬은 원주민 마을을 찾았다. 지나가는 사람을 잡고 어제 황다랑어 판 사람이 어디 있냐고 물었더니 한쪽을 가리켰다.
 “알로하.”
 “알로하, 이방인 그대는 우리의 인사말을 알고 있다.”
 “여러 가지 뜻이 있다는 것만 알고 있어요. 어제 우리 엄마한테 황다랑어 팔았죠?”
 “그렇다.”
 “어제 계산을 잘못해서 돈을 주려고 왔어요. 여기.”
 9달러를 꺼내 건네주었다. 돈을 받을 카마나누이는 어안이 벙벙했다.
 “너무 많다. 그 물고기는 그만한 값어치가 없다.”
 “아니에요. 당신 원주민들만 잡을 수 있잖아요? 값어치가 충분해요.”
 “그런가?”
 “그럼요. 대신에 부탁이 있어요.”
 “부탁?”
 “황다랑어는 우리보다 일본인에게 팔아주세요.”
 “일본인? 그대와 다른가?”
 대찬은 입고 다니는 복장을 설명하고 사는 마을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꼭 10달러 이상의 가격으로만 팔아야 되요.”
 “알겠다. 그렇게 한다.”
 일본인이 돈을 버는 것이 이제는 무척 배알이 꼴리는 일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부탁이 있는데요.”
 “말해라, 도와줄 수 있는 것이면 들어준다.”
 “일하고 싶은 분들 없어요?”
 
 카마나누이는 바다에 나가 황다랑어를 한 마리 잡았다. 그리고 대찬이 알려준 일본인 마을로 가서 팔기로 했다. 대찬의 한 말이 사실인지 확인해야 했다.
 니시무라의 식당은 최근 오아후 섬 제일의 명성에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다. 식재료 공급이 원할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니시무라는 걱정이 컸다.
 식당 밖에서는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났다.
 나가서 보니 큰 황다랑어를 팔고 있는 소리였다.
 “이거 10달러 판다.”
 내려놓은 황다랑어를 10달러에 판다고 하자 금방 반응이 나타났다.
 “내가 사겠소.”
 “11달러!”
 “11달러 50센트.”
 자연스럽게 경매가 열리기 시작했다.
 “12달러 80센트!”
 더 이상 올라가는 금액이 없었기에 잠시에 정적이 생겼다. 카마나누이가 황다랑어를 넘겨주려 할 때 큰 소리가 들렸다.
 “15달러!”
 카마나누이는 15달러를 벌어 마을에 도착해서 돈을 번 경위를 부족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주었다. 마을은 황다랑어 낚시 열풍이 불었다. 이들은 10달러 밑으로는 절대 팔지 않았는데, 가격을 떨어뜨리려고 하면 바다에 나가지 않고 물고기를 공급하지 않았기에 일본인들은 품질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10달러 이상에 가격으로 사들였다.
 
 호놀룰루는 유동인구가 제일 많은 곳이었다. 오아후 섬에 들어오려면 꼭 호놀룰루로 입항해야 했기 때문에 항상 사람이 붐비는 곳이었다.
 대찬은 이곳에 깨끗하고 적당히 한적한 곳에 자리 잡아 카페를 개장했다. 카페 이름은 에넬라였다. 에넬라는 하와이 원주민들 말로 천사라는 뜻이었다.
 “어쨌든 천사다방!”
 대찬은 만족스러웠다.
 “너는 세계 최초 바리스타다.”
 호쿠는 대찬에게 커피 교육을 받고 난 다음 들었던 말이었다. 원두를 면포에 싸서 증기압으로 나온 커피를 가지고 여러 가지 종류의 음료를 만드는 방법을 배웠고, 그 다음이 캐러멜 시럽과 생크림을 만드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커피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을 가르쳐 주었는데 손재주가 좋은 호쿠는 금방 배워 대찬보다 더 잘하게 되었다.
 여러 가지 종류의 커피와 원주민 전통차를 팔자 휴가차 들른 관광객들에게 명소로 자리 잡게 되었다.
 
 와이키키는 호놀룰루와 바로 붙어 있는 해변 지역이다. 북쪽에 산지를 끼고 남쪽에 바다를 보는 해안이 있었고 깨끗한 바닷물과 사시사철 좋은 기후는 관광객들이 항상 찾는 곳이었다.
 대찬은 와이키키를 탐방했다. 앞으로 하고자 하는 사업을 그쪽에다 하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에이, 호텔이 있네.”
 웨스틴 모아나서프라이더
 1901년 영업을 시작한 이 호텔은 와이키키에 딱 하나뿐인 호텔이었다. 최신식 건물에 높고 웅장한 하얀 외벽의 건물은 해변에서 단연 돋보이는 호텔이었다.
 호텔 주변으로는 작은 건물들이 하나씩 보였는데 대부분 별장으로 사용하는 듯했다. 너무 좋은 주변 환경에 욕심이 생긴 대찬은 주변 땅값을 알아보았는데 생각 이상으로 가격이 비쌌다.
 “돈! 돈이 필요해!”
 지금 와이키키 주변을 선점해 놓지 않으면 앞으로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커피 사업은 순항 중이었지만 사업 초기인지라 아직까지 큰돈은 모으지 못했다.
 와이키키 해변에 주저앉은 대찬은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저기에 연회장을 세우고 저쪽 절벽 쪽에다가 수영장 딸린 독채를 짓고 가운데에다가 호텔 본관을 크게 짓고…… 결국에 돈이 없네.”
 호쿠는 과일이 필요해 근처에서 과일을 따서 카페로 가던 길에 대찬을 보았다. 넋 놓고 있는 모습이 왜인지 짠했다. 가던 길을 멈추고 들고 있는 과일을 하나 꺼내서 먹기 좋게 잘라 대찬에게 건네주었다.
 “응, 고마워.”
 과일을 건네주는 호쿠를 한번 쳐다보고는 입으로 가져갔다.
 “잘 익었네, 맛있다.”
 “잠깐만, 과일?”
 대찬은 부르르 떨었다.
 벌떡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다.
 “사방 천지가 다 돈이다!”
 기분이 좋은 대찬은 호쿠를 껴안고 뽀뽀를 해댔다.
 원주민 마을에 대찬의 소문이 돌았다.
 “대찬은 남자 좋아한다. 이상하다. 보면 피해라.”
 
 하와이에는 알리이 왕족 가문과 캐슬, 휴스탠스, 피콕 이렇게 네 개 성씨의 지주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와이키키 해변의 땅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 중 피콕 가문의 월터 피콕은 리조트 개발을 하다 모아나 호텔(웨스틴 모아나서프라이더, 이하 모아나)을 1901년 15만 달러를 들여 오아후에서 가장 웅대하고 큰 호텔로 지었고 하루에 객실 하나당 1달러 50센트의 숙박료를 받았다. 모아나 호텔의 객실을 수는 139개였고 하루에 벌어들이는 수익을 계산하면 하루에 208.5달러였지만 객실이 꽉 차는 경우는 흔하지 않았다. 그래서 모아나 호텔의 창업자 월터는 고민이 많았다.
 처음 호텔을 지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는 천혜의 환경과 온후한 기온에 휴양지로서의 가능성을 확신하고 건물을 지었으나 접근하기가 힘든 하와이 제도의 특성상 관광객들이 많이 오지 않았던 것이다. 수익이 많지 않은 호텔을 이익이 많이 나지 않고 유지만 가능할 정도의 수익이 생겼다.
 월터는 고민이 생기면 자신의 소유인 호텔의 제일 높은 층에서 먼 바다를 바라보며 차를 마시는 버릇이 있었다. 그 풍경이 좋아 아내도 같이 즐겨 마셨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차를 거절했다.
 “여보, 요즘에는 차를 안 마시네?”
 “그게…… 쓰기만 해서 못 마시겠어.”
 “쓰다고? 나는 딱 좋은데?”
 “자기 저기 창밖에 카페 보이지?”
 월터의 아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 에넬라라고 써져 있는 게 보였다.
 “저기가 카페였어?”
 “남자들은 모를 거라고 하던데 자기도 모르는구나. 저기 카페인데 굉장히 달콤한 차를 팔아.”
 아내는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저기 가서 차 한잔 마시고 싶다.”
 호기심이 동한 월터는 아내와 함께 자신의 캐딜락 신형 차를 타고 카페로 갔다.
 에넬라는 외관이 하얀 건물로 전방이 탁 트여 있고 발코니 위로는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게 크게 나무를 깎아 간판을 달아 놓았다.
 에넬라에 들어서자 좋은 커피 향이 그윽하게 났다. 익숙한 듯 아내는 주문하였다.
 “모카 커피랑, 자기는?”
 “알아서 시켜줘.”
 “부드러운 커피 한 잔 주세요.”
 주문을 받은 원주민은 금세 두 잔을 만들어 왔다.
 커피를 받자 좋은 커피 향이 났고 월터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커피 맛이 좋네?”
 “그치? 그래서 요즘 여자들끼리는 항상 이곳을 찾아.”
 “그런데 내 커피에다 설탕을 넣었나?”
 “아니, 안 넣었을 거야. 여기 설탕 있잖아.”
 눈짓으로 설탕 통을 알려주었다.
 “그런데 커피가 이렇게 단맛이 난단 말이야?”
 “그러니까 이제 쓴 커피를 못 먹겠다는 거야.”
 월터를 호기심이 생겼다.
 “당신 것도 한 모금 마셔 봐도 될까?”
 “좋아.”
 아내의 모카 커피를 한 모금 마시자 월터의 표정은 정말 놀랍다만 담고 있었다.
 “맙소사, 여기 사장이 누구지?”
 
 따르르릉 따르르릉
 대찬의 집에 최근에 들여 놓은 전화기가 울었다.
 마침 새로운 사업을 해보려고 궁리 중인 대찬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수화기에서는 교환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호놀룰루 에넬라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네.”
 잠시 정적이 흐른 후 전화가 연결됐다.
 [여보세요.]
 “호쿠예요?”
 [네, 여기 와봐야 될 것 같아요.]
 “무슨 일이에요?”
 [누가 대찬을 찾아요.]
 “알겠어요. 금방 갈게요.”
 집에서 호놀룰루까지는 거리가 꽤 있어서 지나가는 트럭을 얻어 타고 에넬라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호쿠의 부름에 가서 보니 백인 사내가 기다리고 있었다.
 “월터 씨, 여기는 에넬라의 주인 대찬이에요.”
 월터는 깜짝 놀랐다. 원주민이 부른 카페의 주인이 동양인 꼬마였기 때문이었다.
 ‘저 종업원의 행동을 봐서는 여기 주인이 맞는 것 같다. 사업한다는 생각으로 편견을 버리자.’
 월터는 복잡한 감정을 추스르며 사업가를 상대하는 마음으로 대찬을 대했다.
 “정말 이 카페의 주인입니까?”
 “맞습니다. 대찬이라고 합니다. 편하게 존이라고 불러주십시오.”
 대찬은 먼저 악수를 청했다.
 “반갑습니다, 존. 월터 피콕입니다.”
 편견 없이 자신을 대하는 월터를 보며 대찬은 상당히 기꺼웠다.
 “저를 찾으셨다고요?”
 “사업적으로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여기는 제 아내입니다.”
 월터의 아내는 일어나 손을 뻗었다. 악수하는 모습을 보고 대찬이 서양식 인사에 익숙하다는 것을 알았다. 대찬은 자연스럽게 손을 잡아 호의를 표했다.
 “대찬입니다.”
 자리에 앉자 월터는 급한 듯 대화를 이어갔다.
 “존, 정말 여기에서 판매하는 음료들을 개발한 겁니까?”
 “운 좋게 이것저것 섞어 보다가…….”
 대찬은 뜨끔했다. 미래에서 왔다고 말할 수 없으니 온전히 대찬이 개발한 것이었다.
 “혹시 더 개발하실 생각이 있습니까?”
 “몇 가지 생각해 둔 건 있습니다.”
 월터는 감탄했다.
 “대단하군요. 혹시 파이를 키워 볼 생각 있습니까?”
 “사업체를 늘리는 거요?”
 “그렇습니다. 제가 투자하고 싶군요.”
 ‘근데 뭐하는 사람이야?’
 의심이 갔다. 눈뜨고 코 베이는 세상에서 살다온 대찬은 다짜고짜 투자하겠다는 눈앞에 백인을 믿을 수가 없었다.
 “혹시 무슨 일을 하시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아, 제 이름만 가르쳐 드리고 소개를 빼먹었군요. 저는 와이키키에서 호텔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월터는 대찬에게 명함을 주었다. 명함을 확인한 대찬은 고개를 돌려 호쿠를 쳐다봤는데 눈이 마주친 호쿠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의사를 보냈다.
 “와이키키 해변이면 모아나 호텔 말씀이세요?”
 “네 맞습니다.”
 신분이 확인되자 진지하게 고민했다. 언젠가 본토에 진출하려고 했지만, 인종차별이 심한 시대상 적당한 배경이 없으면 본토 진출은 생각하지도 말았어야 했다. 그나마 폴리네시안 문화권이라서 지금까지 수월하게 사업을 할 수 있었다. 하와이 제도는 백인들의 숫자가 많지 않았다.
 ‘답은 정해져 있다.’
 “좋습니다. 얼마나 투자하실 건가요?”
 월터는 승산 있는 사업을 크게 해보고 싶었다.
 “10만 달러를 투자하려고 합니다.”
 “10만! 그렇게 많이?”
 “많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서부 밀집 지역에 하나씩만 차려도 수백 개는 되겠네요.”
 현재 대찬의 사업체를 다 합쳐도 10만 달러를 만들려면 못해도 7년 이상을 모아야 했다. 원두 사업이 커가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많은 수입이 되지 않았기에 생각해보지도 못한 큰 액수를 월터는 투자하겠다고 해서 대찬을 겁을 먹었다.
 “그럼 배분은?”
 “절반씩.”
 좋은 제안인지 나쁜 제안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좋은 기회임은 확실하지만 왠지 끌리지가 않았다.
 ‘분명한 건 월터는 내가 아니어도 이 사업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거지.’
 기술 보존이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대찬은 대신에 다른 조건을 달기로 했다.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었다.
 “좋습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말해보세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말했다.
 “정치적 역량이 있는 사람들을 소개해주세요.”
 “하하하, 알겠습니다. 야망 있는 분이었군요.”
 “그리고 한 가지 더, 운영은 월터 씨가 하시고 저는 교육과 식자재를 대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변호사를 불러야겠군요.”
 월터는 에넬라에 있는 전화기를 들어 변호사를 호출했다.
 계약서에 독소 조항이 없는지 차분히 곱씹어가며 읽었다. 다행이 협상했던 그대로 적혀있었다.
 “좋습니다.”
 “그럼 서명하시죠.”
 두 부의 계약서에는 서로의 서명을 적고 주고받았고 변호사가 공증 서명을 하자 완벽한 계약서가 작성되었다.
 “그런데 특허는 신청했습니까?”
 이 시대에 특허가 있을 거라 생각을 안 해본 대찬은 대뜸 되물었다.
 “특허요?”
 “이런 제가 특허 신청까지 해두지요.”
 “어쩐지 찝찝하더라!”
 특허 증명서를 받은 대찬은 찝찝한 기분이 이해가 됐다. 다행히 특허는 대찬의 이름으로 되어 있었지만 월터가 정직하지 못한 사람이었으면 영락없이 모든 기술을 뺏길 뻔했었다.
 “내가 다 특허 신청한다! 다 죽었어!”
 
 월터와 동업을 하고 제일 먼저 카페가 생긴 곳은 모아나 호텔이었다. 호텔 1층 일정 구역에 자리를 만들어 카페를 만들었는데, 호텔의 투숙객들에게 아주 호평을 받았다. 고무적인 상황에 자극을 받은 월터는 적극적으로 본토 곳곳에 개업을 했는데 음료를 만들 수 있게 교육을 받은 직원들의 숫자가 따라가지 못해 확장의 속도가 느리게 진행됐다.
 카페 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이 되자 원두의 공급이 원활하지 못했고 공장을 더 키우고 사람들을 고용했다. 하지만 숙련자가 될 때까지 제대로 된 원두는 나오지 않으니,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었다.
 증기압 커피 기계가 많이 필요하게 되자 수작업으로 만들어내는 한계가 있었다. 월터가 사업을 확장하는 속도에 맞춰서 가장 중요한 기계가 보급이 이루어져야지 맛있는 커피를 만들어 낼 수가 있었다.
 “허가가 나 있으니 주문을 맡겨야겠다.”
 특허가 없다고 생각했을 때는 기술을 보존할 생각으로 외부에 하청을 줄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특허가 생기자 맡겨도 손해 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자 적당한 기계 제작 업체를 찾았다.
 하와이에는 공장이 설탕 공장과 대찬이 소유한 원두 공장이 자잘한 공장을 제외하고는 제일 큰 공장이었는데, 원두를 볶는 기계를 만들 때 톱니를 주문했던 공방만 있었고 전문적으로 기계를 제작하는 업체는 없었다.
 
 스미스 공방
 기계류를 다루는 하와이에 유일한 공방이었다.
 한쪽에서 공방의 주인인 스미스는 쇳조각을 만지며 한창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인사 소리에 스미스는 목소리의 주인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대찬의 키가 작기에 단번에 눈에 띄지 않았다.
 “오, 존 왔어?”
 “네 잘 지내셨어요?”
 “요즘 존 때문에 흥미로운 것이 생겨서 거기에 푹 빠져 지내고 있어.”
 “저 때문에요?”
 “그렇지! 내가 전에 가서 보니까 커피를 갈아서 쓰더라고. 맞지?”
 “그렇죠.”
 “그래서 내가 새로 만들었지 이리 와봐!”
 스미스는 신이 나서 대찬에게 원두 가는 기계를 자랑했다.
 “잘 봐, 전기를 연결하고 위에다가 원두를 넣고 스위치를 올리면!”
 드르르르륵
 원두가 갈리는 소리가 나며 밑에 바치는 용기에 고운 커피 가루가 쌓였다.
 “죽이지?”
 대찬은 입이 떡 벌어졌다.
 “변호사!”
 변호사 소리에 스미스는 놀랐다.
 “어? 이미 만들었어? 그럼 안 되는데. 아이참, 존, 내가 잘못했어. 한 번만 봐주라, 응?”
 대찬의 전화를 받고 온 변호사는 월터와 계약을 할 때 월터가 불렀던 그 변호사였다.
 “저를 찾았습니까?”
 “계약이랑 특허 신청해주세요.”
 “계약서는 어떻게 써드릴까요?”
 스미스와의 계약은 기계 회사를 하나 차리고 지분은 절반씩 갖는 걸로 했다. 원두 분쇄기는 당연히 스미스가 만든 것이니 스미스의 이름으로 특허 신청을 애기했다.
 구석에서 스미스는 좌절하고 있었다.
 “스미스, 이리 와요.”
 풀이 죽은 스미스는 대찬의 옆으로 왔다.
 “읽어봐요.”
 “뭔데?”
 천천히 읽어보더니 스미스는 금세 되살아났다.
 “정말 같이 일하자고?”
 “네, 같이!”
 후다닥 서명을 하고 벌떡 일어났다.
 “존 이리 와봐 더 보여줄 게 있어!”
 대찬을 끌고 가서 이것저것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거는 존의 원두 공장가서 본건데 원두 볶는 것을 보고 내가 개량한 거고, 저거는…….”
 ‘기계 바보.’
 다른 단어는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기계가 좋아서 해맑게 웃으며 자신의 작품들을 소개하는 스미스는 전형적인 기계 바보였다.
 스미스가 제공한 기계와 기존의 것들을 개량한 기계를 등에 업은 커피사업은 월터가 확장하는 속도를 맞춰 갈 수 있게 됐다. 직원 교육은 처음에는 본점에서 했지만 차차 분점에서도 실력 있는 사람들이 나타나서 그들과 교육을 나누어서 전담했고, 스미스가 기계를 공급하고 나서 식재료들은 문제가 없어졌기 때문에 월터는 거침없이 서부 지역을 점령하듯이 점을 찍더니 점 찍을 곳이 없어지고서야 멈추어 섰다.
 확장을 멈추고 숨을 고르니 어디를 가건 에넬라 카페를 모르는 곳이 없었다. 더불어 수백 개의 카페를 소유하고 사업을 이끌었던 월터는 신문지에 오르내리며 유명 인사가 되어 가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월터를 부르는 수식어에는 커피 왕이 되었다.
 사업이 안정되자 월터와 수익을 나누고도 한 달에 1만 달러 이상의 수익이 생기기 시작했다. 당시 평균 급여가 25달러인 것을 생각하면 1만 달러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커피 사업을 처음 시작하면서 대찬의 집에는 변화가 생겼는데 하얗게 불태운 날에 대찬의 동생이 생겼다. 귀순은 배는 크게 불러오고 있었다.
 귀순은 항상 먹고 싶은 것이 생기거나 필요한 것이 생기면 길재에게 부탁한 것이 아니라 대찬을 시켰는데, 하루는 대찬이 물었다.
 “엄마, 아버지도 계시는데 왜 저한테 그러세요?”
 귀순은 말했다.
 “동생이 먹고 싶다잖아.”
 “엄마, 그건 아버지…….”
 귀순은 대찬을 문 밖으로 밀어냈다.
 “어서 갔다 오렴.”
 집밖으로 밀려나고 귀순이 원하는 음식을 구하러 가고 있는데 반대편에서 명환이 걸어오고 있었다.
 “찹찹, 대찬아 어디가?”
 “엄마 심부름.”
 “찹찹, 그렇구나, 엄마 심부름 가는구나.”
 “뭘 그렇게 먹어?”
 “찹찹, 사탕, 줄까?”
 “응, 하나 줘봐.”
 명환이 건네준 사탕은 하얗기만 한 게 그저 설탕덩어리로만 보였다.
 우물우물.
 “맛있지?”
 생각보다 맛이 괜찮았는데 퍼석한 식감이 살짝 껌을 씹는 듯한 느낌을 줬다.
 “근데 대찬아 있잖아.”
 “뭔데?”
 “케익 먹어 봤어?”
 “케익?”
 “응, 케익.”
 “잠깐만, 사탕, 케익, 디저트!”
 “디저트는 뭐야?”
 “밥 먹고 난 다음에 마지막으로 먹는 음식.”
 “숭늉?”
 “그래 숭늉 같은 거야!”
 “그럼 케익도 디저트야?”
 “응!”
 “그럼 케익은 숭늉 맛이구나!”
 “…….”
 
 월터는 물었다.
 “그러니까 차만 팔게 아니라 간단한 요깃거리도 같이 팔자는 말이지요?”
 “네 대부분 차를 후식으로 많이 마시니 간단한 디저트와 아침이나 점심때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이나 과일을 같이 팔자는 거예요.”
 “수익성이 있을까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여성분들은 달콤한 음식을 좋아하니까요. 실제로 주 고객층도 여성분들이 많잖아요. 아, 그리고 한 가지 더하자면 대회도 하나 열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슨 대회요?”
 “디저트 경연 대회를 여는 거예요. 그리고 우승자의 음식의 레시피를 적당한 상금을 통해서 얻을 수 있으니 맛있는 디저트를 만들어 팔 수 있지요.”
 “좋습니다. 진행해보도록 하지요.”
 상의한데로 각 지역의 디저트 경연 대회가 열렸다. 우승자에게는 큰 금액인 300달러를 약속했는데 이 때문인지 디저트 열풍이 불었다.
 대회의 우승자가 결정되고 카페에서는 우승한 사람의 디저트 판매를 시작했는데 대찬의 생각과는 다르게 매출 상승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는 아직까지는 식사는 정식적인 식당 혹은 집에서만 먹는 것이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저 쿠키만 간간이 팔렸다.
 대찬은 실패가 교훈이 되었다. 미래의 기억이 무조건 다 통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현재의 상황에 맞는 일을 먼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만난 월터와의 회의에서는 성공할 것을 생각했다.
 “존 안타깝지만 디저트는 실패했군요.”
 월터는 디저트의 실패를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혹시나 했기 때문에 시작은 했으나 나중에는 역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생각한 게 있습니다.”
 탁, 대찬과 월터 사이에 있는 탁자에는 물건이 하나 올라왔다.
 “이게 뭡니까?”
 “종이컵입니다.”
 “그럼 종이로 만든 컵인가요?”
 “네 말 그대로 종이로 만든 컵이에요.”
 의아한 표정으로 월터는 말을 했다.
 “이건 찻잔으로 쓸모가 없을 것 같군요.”
 “아니요. 어차피 일회용이니 한 번 쓰고 버리면 됩니다. 그 한 번만 버티면 되는 거지요.”
 “이 종이컵이 무슨 효과가 있습니까?”
 “테이크아웃을 가능하게 합니다!”
 “테이크아웃!”
 종이컵의 가능성을 느낀 월터는 투자를 통해 절반씩 나누고 싶었으나 대찬은 지분의 10%만 투자를 받고 더 이상은 허용하지 않았다.
 에넬라 커피는 테이크아웃을 시작했다. 종이컵에 음료를 제공하자 바쁜 사람들이 사가기 시작했는데, 굉장한 회전률이 생기기 시작했다. 더불어 좋은 소식이 들렸는데 갑자기 디저트 판매율이 올라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유를 알아보았더니 커피를 테이크아웃으로 사서 집으로 가는 사람들이 가족 생각이 나서 달콤한 디저트를 사가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종이컵은 여러모로 전화위복이 되었다.
 
 사업이 안정되자 월터는 약속대로 정치적 역량이 있는 사람들을 소개해주었는데 처음으로 소개해준 이들은 하와이의 네 개의 지주 가문이었다.
 소개 장소는 모이나 호텔의 스위트룸에서 이루어졌는데 다른 마땅한 연회장이 없어서 호텔에서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대찬은 오늘을 위해서 수제 양복을 맞췄으며 이것저것 그들의 격식에 맞게 갖추고 보니 거의 100달러나 들었다.
 잔을 든 월터는 작게 잔을 쳤다.
 팅팅
 “자 여러분 제가 여러분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능숙한 솜씨로 대찬을 대중에게 소개했다.
 “여기 이 청년 이름은 존 대찬 강이라고 합니다. 존이라고 부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궁금해하시는 저의 최근 사업의 파트너가 이 친구입니다.”
 소개가 끝나자 가장 먼저 나서는 사람이 있었는데 하와이의 왕족인 알리이 가문 사람이었다.
 “반갑습니다. 우리 식구들을 잘 챙겨주고 있다면서요.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나는 노카 알리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존이라고 불러주세요.”
 “나이가 어린데 대단하네요.”
 “아니에요. 운이 좋았어요.”
 옆에서 듣고 있던 월터가 입을 열었다.
 “운이 좋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혁신적인 생각과 물건들이 많습니다. 여러분들도 아시겠지만 최근에 종이컵이 얼마나 성과가 컸습니까?”
 “월터 씨가 말씀을 잘하셨습니다. 그래서 종이컵 회사의 지분을 투자와 함께 여러분들과 나누려고 합니다.”
 전부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기에 앉아있는 가문들과 관계를 좋게 맺어야 하와이에서의 사업도 수월할 것이고, 본토로 나갔을 때도 여기 있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럼 얼마나 파이를 나눠 주려 합니까?”
 “10만 달러에 10%를 여러분들에게 드리겠습니다.”
 종이컵은 혁신의 제품이라는 말이 과언이 아니었다. 카페에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도자기를 쓰던 자판기에서도 종이컵을 사용하게 됐고 찻잔이 불편한 곳은 어디든지 종이컵이 사용되면서 엄청난 물량을 요구했다.
 하와이에서는 종이컵을 만들 때 필요한 나무를 제대로 수급할 수 없기 때문에 네 개의 가문들과 연합하여 공장을 본토로 옮길 생각을 했다.
 결국 각 가문에서 10%의 지분을 갖고 대찬에게 10만 달러씩을 주었으며 공장은 본토로 옮기기로 했다. 그리고 나머지 60%에서 10%는 종이컵을 만드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많은 기여를 한 스미스에게 돌아갔다.
 성공적인 사업체에 제법 투자를 한 사람들은 기분이 좋게 축배를 들었다.
 본토에 종이컵 공장을 차리기 위해 대찬이 직접 가서 보고 만들려고 했지만 길재의 반대로 가지 못하게 됐고, 작은아버지인 길현과 스미스가 같이 공장을 만들러 가게 됐다.
 공장은 나무가 가장 많은 오레건 주의 포틀랜드에 짓게 됐는데 포틀랜드 시에서는 큰 공장이 들어선다고 하자 쌍수를 들고 환영했고 직접 공장자리를 알아봐주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떠나는 길현에게 대찬은 꼭 정치인들과 친분을 만들라고 부탁을 했는데 덕분에 공장은 스미스 혼자서 관리 감독했고 길현은 여기저기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정치인들과 만나고 다녔다.
 
 대찬의 집에는 금줄이 걸렸다. 두 줄이 걸렸는데 하나는 아들을 상징했고 또 하나는 딸을 상징하는 줄이었다. 금줄이 걸려있는 집은 외부인 출입을 금했는데 귀순이 말하기를.
 “대찬이는 외부에 많이 다니니 당분간 다른 곳에서 살아라.”
 이 말을 듣고 집에서 쫓겨났다. 아직까지 백인이나 다른 민족들이 무서워하는 귀순의 마음을 이해했기 때문에 대찬은 근처에 친척 집에서 잠을 잤다.
 “간만에 나오니까 좋네!”
 해변의 아지트였던 곳은 가다랑어 포 공장으로 변했기 때문에 선선하게 바람 잘 드는 곳에 새로 아지트를 피고 해먹을 달았다.
 “대찬아 놀자!”
 명환은 대찬이 한가로이 있을 때면 어떻게 알았는지 귀신같이 나타났다.
 누워 있던 해먹에서 대찬은 벌떡 일어났다.
 “명환아, 여기 누워봐.”
 “응.”
 명환은 대찬이 자리했던 해먹에 누웠다.
 “간다! 슝~.”
 명환은 해먹에서 한참을 그네 타는 기분을 느끼며 신나 했다.
 “자, 이제 눈 감아봐.”
 “왜?”
 “더 재밌는 거니까 일단 감아봐.”
 “알았어.”
 “그리고 숫자를 세는 거야.”
 명환이 곧바로 숫자를 셌다.
 “하나, 둘…….”
 대찬은 주문을 외웠다.
 “잠이 온다. 잠이 온다.”
 미동이 적어진 명환은 잠이 들었다. 대찬은 발걸음 소리가 나지 않게 조용히 자리에서 벗어났다.
 다음 날 대찬은 편하게 쉬고 싶어서 해먹을 찾아 해변으로 갔다. 해먹 근처에는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명환아.”
 명환은 뒤를 돌아 검지로 입술을 막으며 조용히 하라고 표했다. 잠시 뒤 명환은 대찬에게로 왔다.
 “명환아 뭐했어?”
 “응, 순이 재웠어!”
 “…….”
 
 포틀랜드의 종이컵 공장은 완공되었고 공장에서 하루에 생산되는 양은 본토 전체로 퍼져나갔다. 하루에 줄잡아 트럭으로 수십 대가 왔다 갔다 했다.
 하와이에 지주들은 이를 무척이나 만족해했고 대찬은 정기적으로 모임에 나오라는 제의를 받고 모임의 일원이 되었는데, 그러다 보니 하와이의 인맥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모임에는 사(士) 자가 들어가는 직업들이 다 포함되어 있었고 제법 이름값이 있는 사람들은 죄다 이 모임에 출석했다.
 “존, 또 새로운 사업 안 하나요?”
 대찬은 최근 들어 이런 질문을 제일 많이 받고 있었다. 손대는 사업마다 대박을 치고 있으니 주변의 기대감은 하늘을 찔렀다.
 “생각해 둔 게 있기는 한데요.”
 주변에서 귀를 쫑긋이 세운다.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엄두를 못 내겠어요.”
 성격 급한 사람들은 말해보라고 재촉했다.
 “오아후 섬이 천혜의 자연 환경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다들 아시죠?”
 “여기만큼 환경이 좋은 곳은 없지요.”
 “저는 호놀룰루와 와이키키를 이어서 세계 최대의 관광단지로 만들고 싶거든요. 그런데 돈이 너무 많이 드네요.”
 “계획이 있습니까?”
 “당연히 있지요. 제가 최근에 돈을 많이 벌어서 모아둔 돈이 꽤 있는데 그래도 엄두를 못 내겠네요.”
 “얼마나 많이 필요하기에 존이 겁을 내는 거예요?”
 “글쎄요 최소한 몇 백만 달러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와이키키에 호텔을 소유하고 있는 월터는 애가 탔다. 관광지로서의 성공은 자신도 확신하고 있었는데 대찬까지 세계 최대의 관광단지를 운운하자 도전해보고 싶었다.
 “존, 한번 해봅시다!”
 대찬은 놀랐다. 넌지시 운만 띄우고 와이키키의 땅을 야금야금 살 계획을 하고 있었는데 월터가 나서서 관광지로의 개발을 하자고 하니 뭔가 틀어진 느낌이 들었다.
 월터가 선동하고 나서자 모임의 모든 이들이 서로 다 투자를 약속하며 월터의 의견에 동참하였다.
 “아…… 하, 하하.”
 이들의 재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순식간에 몇 백만을 넘어서 천만 단위까지 도달했다. 결국 이들도 돈이 쓸데는 없고 투자는 해야 되는 상황에 돈이 되겠다 싶으니 묻지 마 투자를 감행하는 사람들이었다.
 모임에 속하지 않은 외부의 변호사를 초대해 하와이 관광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그 자금으로 와이키키를 중심으로 땅을 무차별 매입했다. 별로 쓸모없어 보이는 땅까지 구매하자 투자자들은 불안해했으나, 대찬이 청사진을 보여주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조용해졌다.
 와이키키를 중심으로 대규모 공사가 진행되었다. 기존에 모아나 호텔을 중심으로 나란히 호텔 건물들을 더 올렸고 그 뒤에 연회장과 카지노 건물을 예정했다. 그리고 한적한 곳들을 골라서 수영장이 딸린 독채들을, 해변의 조용한 곳에는 개인 해변이 있는 독채들을 만들었다. 특히 신경을 쓴 것은 각 건물들이 서로의 시야를 방해하지 않는 것이었는데 어느 건물에서 보든지 앞바다가 시원하게 볼 수 있게 하였다. 건물들은 서로 차가 이동하기 편하게 길을 놓고 사람들이 다니는 길은 산책하기 편하고 눈이 즐거운 곳들로 길을 새로이 정비했다.
 대찬이 카지노를 이야기하자 처음에는 다들 불법이라며 난색을 표했지만 관광 특수효과를 이야기하며 설득하자 하와이 공무원 회원들이 나서서 허가를 받기 위해 여기저기 알아보고 다녔다. 결국 본토와 많이 떨어져 있고 하와이에서 야심차게 준비하는 것을 인정받아 간신히 허락이 떨어졌다. 인정받기까지는 수많은 로비들이 함께 진행되었다.
 하와이까지의 이동수단은 배가 유일했는데 정기적으로 다니는 배는 흔치 않았다. 교통이 편해야지 찾는 사람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임으로 해운 회사를 설립하여 태평양을 운행할 수 있는 여객선을 마련했고, 관광지가 완성되기 전부터 하와이에 갈 수 있는 정기적인 날짜를 잡았다.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였다.
 연회장에서 공연을 할 수 있는 댄서와 연주가들을 모집했고 원주민들의 공연 또한 빼먹을 수 없었다. 개장하는 순간에는 큰 규모의 화려한 개장 행사를 하기 위해서 미리부터 고용하고 연습에 들어갔다.
 호텔의 직원들도 대찬이 직접 교육하였는데 손님의 마중부터 어떻게 대하고 행동하고 하는 모든 지침들을 현대식으로 뜯어고쳐 모든 것을 투숙객의 편의 위주로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하와이에 대해서 홍보할 수단이 필요했는데 대찬은 에넬라의 체인들을 이용했다. 모든 에넬라 카페에 하와이의 자랑과 관광지로서의 매력을 어필하였고 어떻게 올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과 카지노, 더불어 화려한 공연까지 한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알리며 개장하는 날짜까지 적어 놓았다.
 이 모든 것을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2년 가까이 되었다. 벌써 1908년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세계 최대의 호텔이라고 선전한 알로하 호텔의 개장은 12월 24일이었다.
 알렌 부부는 미국 전역에 화제가 된 하와이 알로하 호텔을 가기 위해 몇 달 전부터 준비를 했다. 낙원이라고 표현된 이 섬을 처음 알았을 때는 별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계속되는 신문의 탐방기와 실린 사진들을 보고는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자주 다니는 에넬라에서 모든 정보를 알 수 있었기에 정해진 항구에서 하와이로 가는 정기선을 타고 몇 날 며칠을 거쳐 하와이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하와이까지 가는 도중에 잦은 멀미 때문에 힘들었으나 선착장에 도착을 하고나자 길게 늘어서서 준비된 차들이 부부를 맞이했다. 포드사에서 만든 T모델들의 옆면에는 알로하 호텔이라고 적혀 있었다.
 배에서 내린 부부를 반듯한 복장의 사내가 물었다.
 “호텔에 가십니까?”
 “네.”
 “이 차에 타시면 됩니다.”
 부부가 탄 차가 와이키키 알로하 호텔 입구에 서자 역시 또 한 사내가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알로하, 어서 오십시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입구 좌우에 쭉 서있는 직원들이 외쳤다.
 “알로하.”
 부부는 수영장이 있는 독채에 투숙했는데, 아직까지 남녀가 함께 해변에서 뛰노는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기 힘든 시기였다. 식사와 공연 이들에게 제공되는 서비스는 이때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었다.
 부부는 집으로 돌아가는 날 방명록에 이렇게 썼다.
 “천국은 있다.”
 하와이에 전력이 투입된 사업을 대성공이라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였다. 끊임없이 관광객들이 몰려들어왔다. 최고의 대접을 하기 위해 직원도 많고 숙박비도 비쌌지만, 알면서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하와이를 찾았다.
 하루 수입은 엄청났는데 카지노 효과 때문인지 하루에 많게는 십만 달러 이상의 금액이 들어왔다.
 대찬의 계획과 투자한 금액은 총 투자 금액의 15%로 산정되었는데 한 달에 호텔 사업으로만 삼십만 달러 이상의 금액을 배분받았다.
 
 알로하 호텔 주식회사 대표로 취임한 것은 월터였는데 대찬의 나이가 어린 것도 있었지만 백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피부색이 중요한 시대에 큰 사업체에 전면으로 나서는 것이 좋지 않은 탓이었다. 투자자들도 진두지휘하는 대찬을 믿고 투자한 것이었지만 대표의 자리를 유색인종에게 넘기기 꺼려하는 분위기라 대찬은 수긍하며 받아들였다. 그래서 호텔에 미흡한 부분만 간혹 지적했고 배당금만 받았지만 속이 쓰린 것은 사실이었다.
 호텔일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다른 부분은 달랐다. 특허 신청을 이용하여 물건들을 선점하였는데 우유팩, 원터치캔, 지퍼 등등 만들기 편하고 유용한 물건 수십 가지를 선점했다. 특히 당장에 물건들이 편하게 바뀔 수 있는 것들은 다른 업체에서 일정 부분 사용료만 받고 직접 생산을 하지 않았는데 이 수익금도 굉장히 컸다.
 스미스의 회사는 계약 이후 엄청난 성장을 이루어냈는데 처음에는 주로 대찬의 커피 기계 쪽에 관심이 있었다. 그러다가 다른 쪽에 하나씩 응용하기 시작했는데 점점 다른 쪽으로 사고가 열려 가전제품들을 하나씩 만들기 시작했다. 만들고 나면 항상 대찬에게 가지고 와서는 평가받기를 원했는데 스미스는 대찬의 안목을 그만큼 믿고 있었다.
 스미스는 술만 마시면 항상 말하기를.
 “존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아직도 말도 되지 않는 기계를 만들겠다고 설치고 있었을 거야!”
 “내 인생에 동반자!”
 이렇게 말하곤 했다.
 
 “아, 덥다. 더워!”
 대찬은 집 마루에서 자고 있는 동생들을 부채질해주고 있었다. 겨울이라지만 기후가 좋은 하와이는 한낮이 되면 내리쬐는 햇빛에 무더웠다.
 대준과 연화는 대찬의 쌍둥이 동생들이었는데 한창 놀다가 낮잠시간이 되자 잠이 들었고, 귀순은 일보러 간다며 대찬에게 떠넘겼다.
 “대찬아, 놀…….”
 대찬의 재빠른 행동에 명환이 입을 닫고 다시 작은 소리로 소곤거렸다.
 “놀, 자…….”
 대찬은 고개를 까닥이며 명환을 가까이 불렀다.
 “명환아, 순이는 네 동생이지?”
 “응.”
 “그럼 나는 네 친구니까 순이가 내 동생도 되지?”
 “응.”
 “그럼 여기 있는 대준이랑 연화도 네 동생이지?”
 “응.”
 “이리 와봐.”
 명환에게 부채를 넘겨줬다.
 “이리 앉아.”
 자리를 비켜주고 명환을 앉혔다.
 “나 일 좀 보고 올게.”
 명환의 입이 댓 발 튀어나왔다.
 “어디 가는데?”
 “돈 벌러 갔다 올게.”
 “왜?”
 “그래야 너희들 맛있는 거 사주지!”
 “맛있는 거?”
 “그래 금방 갔다 올게.”
 대찬은 줄행랑을 쳤다.
 “존, 오늘은 무슨 일이야?”
 스미스는 대찬이 오는 것이 항상 반가웠다. 새로운 것에 대해 알려주거나 영감을 주었기 때문에 볼수록 반가운 사람이었다.
 “부탁이 있어서 왔어요.”
 “뭔데?”
 “선풍기 좀 만들어 줘요.”
 “선풍기?”
 “전기 힘으로 돌아가서 바람을 불게 하는 장치 말이에요.”
 “그걸 선풍기라고 부르는구나!”
 스미스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말했다.
 “엥, 알고 있어요?”
 “당연히 알지, 오래된 물건들인데.”
 주변에서 볼 수 없어 없는 물건이라고 생각했는데 존재하는 물건이라고 하자 대찬은 놀라웠다.
 “아무튼 만들어 줄 수 있어요?”
 “그럼 누구 부탁인데, 당연히 만들어 줘야지.”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어요.”
 “뭔데?”
 “냉장고라고 들어봤어요?”
 “그것도 알아. 만들기 힘들다고 하던데?”
 “그것도 좀 부탁해요.”
 알쏭달쏭해하며 스미스는 생각에 잠겼고 대찬은 조용히 집으로 갔다.
 집에 도착하자 명환은 온데간데없고 순이가 대준과 연화 둘을 돌보면서 씨름하고 있었다.
 “순이야.”
 “대짠이 오빠!”
 “명환이는?”
 “우리 오빠, 일 보러 갔쪄.”
 “일?”
 “응, 일.”
 “명환이가 무슨 일을 보러가?”
 “물고기 잡으러 간댔쪄, 잡아서 우리 준다꼬.”
 “…….”
 
 대찬이 벌어들이는 수입은 대부분 정치인들 로비하는 데 사용이 됐다. 특히 대찬의 작은아버지인 길현과 이주 초기 통역 일을 하던 인수는 본토를 돌아다니며 정치인들과 인맥을 넓히고 있었다.
 로비를 하는 목표는 딱 한 가지였는데 한국인들을 망명객으로 인정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중국인들과 일본인들의 이주를 막기 위한 노력을 많이 했다. 그렇게 로비를 하고 돈을 뿌려댔지만 번번이 통과되지 못하고 어느 선에서 막히곤 했는데, 이유는 미국의 대외노선으로 잡고 있는 정치 방향이 일본을 지원하고 밀어주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어서 로비는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미국의 제27대 대통령 선거가 시작되었다. 제25, 26회 대통령이었던 테오도르 루즈벨트는 1908년 재임 시절 불출마 선언을 했고 대신 그가 지목한 공화당의 국방부 장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와 민주당에서는 세 번째 대선 출마를 한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이 출마하였다.
 길현의 로비 선은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에게 닿았고 정치자금을 건네주며 약속을 받았는데,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한국인의 망명을 인정해 주겠다고 하였다. 두 윌리엄의 경쟁은 결국 미국 27대 대통령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가 되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하와이로 돌아가기 위해 배를 기다리던 길현과 인수는 평소 길재와 교류가 많은 안창호의 집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자네들 나랑 같이 갈 곳이 있네.”
 안창호는 두 사람을 데리고 어느 집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여러 사내들이 있었다.
 “반갑습니다. 박용만입니다.”
 “이숭만이오.”
 두 사람 외에도 여러 사람들이 자신들의 소개를 했다. 분위기가 정리가 되자 안창호가 입을 열었다.
 “지금 우리가 여기에 모인 이유는 현재 여러 가지 회로 분리되어 있는 한인회를 하나로 합쳐 조직의 힘과 역량을 키우고 아울러 한국인을 보호하자는 데 있습니다.”
 분위기는 한창 ‘힘을 합쳐서 극복해 나가자’였는데 길현과 인수는 뚱한 표정을 지었다.
 “두 분은 왜 그러십니까?”
 좋은 분위기 속에 두 사람만 표정이 좋지 않자 티가 날 수밖에 없었다.
 “도산에게는 미안한 말입니다만, 나는 저기 앉아있는 이숭만이 있는 한 나와 우리 하와이는 그 단체에 가입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한인들이 다 같이 잘되자고 하는 일인데 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시면 말씀하십시오. 그래야 서로 오해가 풀리지 않겠습니까?”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자 이숭만은 길현을 달래기 위해 노력했다. 길현은 문득 대찬이 해줬던 말이 생각났다.
 
 “작은아버지, 본토에 가시면 조심해야 할 게 몇 가지 있습니다.”
 “무엇이냐?”
 “백인우월집단, 친일파, 일본인 마지막으로 이숭만이라고 하는 작자입니다.”
 “다른 것은 다 이해하겠다만 이숭만은 왜 그러느냐?”
 “이숭만은 미주 한인들에게는 악의 근원입니다. 자신의 신변 보호를 위해 수시로 말을 바꾸고 독립운동한다 나서지만 입으로만 합니다. 특히 이번에 미국인 친일파 저격 사건이 있지 않았습니까?”
 “알고 있지. 용감하신 분들이셨다.”
 “그 두 분 정인환, 전명운 의사 두 분의 재판에 변호가 아니라 단지 통역이 필요하다고 했을 뿐인데 거절한 자입니다. 예수교인으로서 살인자들의 통역을 하고 싶지 않다고 말이지요. 다른 한인들은 도와주기 위해 십시일반 변호사 비용을 모금하고 있는 중에 말이지요. 이런 식으로 항상 자신을 옹호하고 위험한 일은 비켜나가며, 큰일을 하면 책임지지 않으면서 큰 자리를 차지하려 할 겁니다. 더 중요한 건 세 치 혀가 선동 능력이 대단하다는 거지요. 여기서 말을 계속했다가는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악행들이 나올 겁니다.”
 “두 분은 전에 만나 이야기했을 때 정의로운 분들이셨다. 그런 일이 있었다니 애석하구나.”
 길현은 장탄식했다.
 
 이숭만은 계속 이야기를 하며 길현과 인수를 설득하려 노력했다. 두 사람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자리에 있자 이숭만의 얼굴이 점점 벌게지기 시작했다.
 “어찌됐든 도산, 나는 이만 가보겠소.”
 나가기 위해 일어서다 이숭만을 좋지 않은 눈빛으로 보며 말했다.
 “확실히 공부를 하기는 한 것 같소. 말이 많은 것을 보니 말이오. 행여나 그대는 하와이에 오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소.”
 떠난 자리에는 찬바람만 부는 것만 같았다.
 집으로 돌아온 안창호는 왜 그러는지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는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
 길현은 이 한 마디만 하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시대는 급변하고 있는데 뭔가를 제대로 할 수가 없네?”
 1900년에 태어난 대찬은 9살이 되었다. 덩치는 또래보다 컸으나 아직 어린아이의 몸은 어쩔 수 없었다.
 “몸이 이러니 군대도 못 만들어, 운이 좋아 사업은 했지만 피부색 때문에 사업도 마음대로 못 하고. 내년에는 우리나라가 일본에 합병될 거고 그리고 올해 이등박문을 저격할 것이고…….”
 대찬은 상해로 갔던 배에서 만난 안중근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이대로 죽기는 아까운 분인데…….”
 특수부대 위관 장교였던 대찬은 군대에서 배운 군지식들이 상당했는데 중대장의 특성상 다방면의 기술들 폭파, 정찰, 저격, 통신, 중화기까지 알고 익혀야만 했다. 다만 현재 문제가 있다면 가르칠 사람이 없다는 것과 본인의 기술인데도 불구하고 육체 때문에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금으로 산을 쌓을 거라고 말했던 안중근과의 약속은 점점 실현이 되고 있었지만 약속을 한 대상이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에 심각하게 고민이 되었다.
 “그 일이 있어야만 하는 일이기는 한데…….”
 이등박문은 늑약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그리고 안중근의 저격으로 독립운동 무장투쟁의 신호탄이 되기도 했었다. 위국헌신(爲國獻身) 군인본분(軍人本分) 스스로를 군인이라 여겼던 안중근의 글은 대찬의 마음에 깊게 자리해 있었다.
 “일단 안중근 선생님부터 찾자!”
 길재는 대한제국(이하 한국)을 찾았을 때 안창호와 만나 신민회 창설에 동참하였다. 하와이로 돌아온 이후에는 꾸준히 자금을 지원해 주었는데, 덕분에 한국의 안팎에서 운동을 하는 이들에게 길재의 이름이 알려졌었다. 대찬은 길재를 통해서 안중근의 행방을 수소문하였는데 안중근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한인들을 교육하며 지내고 있다고 했다.
 연락이 닿을 수 있음을 알자 대찬은 편지를 썼다.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에 금산이 편지를 씁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몸은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신지요? 저는 금으로 산을 만들겠다는 약속을 하였고, 지금 당장 산을 쌓지는 못 하지만 조금씩 이루어내고 있습니다. 조국의 이야기를 입으로밖에 들을 수 없지만 점점 상황은 좋지 않다고 들어…… (중략) 그래서 제가 번 돈의 일부분을 보냅니다. 기억하시지요? 독립운동도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다고 했던 것을요.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의미 있게 써 주시기 바랍니다.]
 대찬은 1천 달러짜리 지폐로 10만 달러를 만들어 인편으로 보내 주었다. 큰 금액이었지만 부피가 작아 다른 물건 속에 넣어 돈이 있다는 것을 위장하여 보냈다.
 
 스미스와 대찬은 한창 이야기 중이었다. 대찬의 부탁에 스미스는 선풍기를 만들었는데 대찬은 선풍기를 보자 위험하다고 불만을 표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선풍기가 저러면 안전하지 않다는 거지?”
 “당연하죠. 날개도 쇳덩이로 만들어졌는데 저기에 손이라도 들어가면 크게 다치겠죠.”
 “그럼 안전장치를 만들어야겠네?”
 “그렇죠. 그러니까 날개를 중심으로 도는 데 방해되지 않게 둥글게 철망을 씌워 감싸면 안전하게 쓸 수 있을 거예요.”
 “아하! 이런 모습으로 말이지?”
 스미스는 빈 종이에 그림을 그려갔는데 미래의 선풍기 모습과 흡사한 모양이었다.
 “대찬아!”
 명환이 올 일이 없는 스미스 공장에 와서 대찬을 찾았다.
 “웬일이야?”
 “손님 왔대!”
 “손님? 알았어, 스미스 부탁해요.”
 집에 도착해서 보니 여러 사람들이 함께 담화 중이었다.
 “아버지, 찾으셨어요?”
 “그래, 이리 오너라.”
 근처에 가서 함께 자리한 사람들을 면밀히 살펴보니 승복을 입은 사람과 그 옆에 나이를 많이 먹은 사람, 그 뒤에 자리 잡고 앉아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인사드리어라, 한국에서 오신 분들이시다.”
 “안녕하세요. 강대찬이라고 합니다.”
 “나무관세음보살, 소승은 현혜라고 합니다.”
 “김 씨.”
 김 씨라고 소개한 사람은 꼬장꼬장하게 생겼는데 특히 미간의 주름이 많고 얼굴색이 붉은 게 성질이 급하게 보였다.
 “저를 무슨 일로 찾으셨어요?”
 “아들아, 이분들이 여기에 사찰을 하나 짓자고 하는데 네 생각이 어떤지 묻고 싶어 이리로 불렀다.”
 “사찰이요?”
 “그래. 이곳에 지어도 별 문제가 없는지 묻고 싶었다.”
 길재의 질문에 대찬은 고민을 했다.
 ‘예수교 성향이 강한 나라이지만 하와이는 괜찮을 것 같기도 한데.’
 “어렵네요. 한번 알아봐야 되겠어요.”
 “너를 부르기를 잘한 것 같구나. 이유가 뭐냐?”
 “불확실해요.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어요. 미국 헌법에 어떠한 종교도 국가 종교가 될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예수교의 색이 무척 강한 나라라 여러 사람을 만나서 물어봐야 되겠어요.”
 “흠……. 그렇구나.”
 “그런데 사찰을 지으려면 목수가 있어야 할 텐데 하와이에 그걸 지을 만한 분들이 있나요?”
 얼굴이 붉은 사내가 말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나의 노스승님이 경복궁을 재건할 때 지휘하셨던 대목장이셨다.”
 “경복궁이면…….”
 “나도 그때 거기서 일했었다. 대역사였지! 지금은 흉물스럽게 변해버렸지만…….”
 붉은 얼굴이 더 빨갛게 변하며 침울해했다.
 “일단 제가 여기저기 알아보고 답을 해드리겠습니다.”
 대찬은 하와이의 유력가들을 만나고 다니면서 종교라는 말은 쏙 빼먹고 심신의 수양을 위해 머리를 깎고 공부하는 사람들의 집이라고 설명하고 다녔다. 못 하나 쓰지 않고 건물을 올리는 목조 건물의 아름다움을 말하며 덧붙여 하와이의 관광에도 일조할 수 있다고 설득하고 다녔다.
 아직은 동양을 신비롭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인지 관광을 할 수 있다는 이익을 생각해서 대찬의 생각보다는 흔쾌히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현혜는 허락의 소식에 바로 사찰을 짓기 위한 터를 보기 위해 김 씨와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다녔고 그 일이 끝나자 건물에 쓰일 목재를 보러 다녔으나, 하와이에는 필요한 목재가 없어 본토에 가서 직접 목재를 구하러 다녔다.
 사찰이 지어지는 과정을 보자 대찬은 전통적인 한국의 물건에 관심이 많아졌는데 사찰뿐만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기술과 그 기술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정착한 사람들 중에서 기술을 가진 사람을 찾아보자 갖바치, 옹기, 나전칠기 등 여러 가지 기술자들이 있었고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다. 기술이 살아남기 바라는 것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사업이 생각이 났기 때문이었다.
 
 길현이 하와이에 도착을 하자 국민회에 소식이 전해졌는데 하와이를 제외하고 본토에 있는 자들끼리 대한인국민회를 설립했다고 했다. 이는 하와이를 제외하고는 전체가 통합됐는데 이숭만 역시 포함이 되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길재에게 인편으로 편지가 한 통 왔는데 이숭만이 보낸 것이었다.
 편지의 내용은 하와이에서 자신을 오해하고 있다, 자신은 돈 없고 가난한 목회자이자 대학생이며 비슷한 처지의 한인들을 도움을 주기 위해 국민회에 동참하였다고 하며 오해하지 말아달라는 내용이 편지였다. 말미에는 하와이도 국민회에 동참하여 달라고 하였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일단 가입은 해야겠죠. 대신에 이숭만에게 답하지 마시고 다른 분에게 답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럼 그리하자.”
 대찬의 입맛이 썼다.
 남들보다 잘 먹고 또래보다 컸던 대찬의 육체는 어느 순간 폭발적인 성장을 하게 되었다. 1900년생으로 만 10세가 되더니 2차 성장이 시작 된 것이었다. 남들보다 이른 성장이었지만 대찬은 빠른 성장을 환영했다.
 몸이 크기 시작하면서 최소한 180cm 이상은 되어야만 백인들에게 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에 주로 키 크는 데 도움이 되는 운동들을 했는데, 주로 유연성을 기르는 운동과 위로 뛰는 운동을 했다. 투자한 보람인지 하루가 다르게 대찬의 키는 콩나물처럼 쑥쑥 자랐다.
 몸이 커가고 운동까지 하자 대찬은 항상 배가 고팠다.
 “배고파!”
 청량하기만 했던 대찬의 음색은 제법 어른 테가 났다.
 “배고파?”
 “배고빠?”
 대찬의 곁에는 명환과 순이가 있었는데 명환이 대찬을 쫓아다니자 순이는 명환을 쫓아다녔기에 항상 둘은 대찬의 근처에서 맴돌았다.
 “낚시하러 가자!”
 셋은 낚시를 하러갔고 물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었다. 먹기 좋게 꼬챙이에 꿰서 불에 굽고 노릇노릇하게 익자 먹기 시작했다.
 우걱우걱
 대찬은 게 눈 감추듯 먹어댔다. 그 모습에 명환과 순이는 얼빠진 듯 보고만 있었다. 명환과 순이의 손에 들고 있는 물고기를 제외하고는 남는 게 없어지자 대찬은 그것을 보고 입맛을 다셨다.
 상어가 물고기를 노리듯 점점 대찬이 둘에게 다가갔다.
 “안 돼!”
 “후에엥 내 꼬야.”
 
 5월이 넘어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려는 때에 대찬에게 편지가 도착했다. 보낸 이는 안중근이라 하였다.
 [1만 8천 리 먼 곳에서 금산에게
 잘 지내는가?
 자네가 보내준 금액은 잘 받았네. 과연 상상도 할 수 없는 금액이었지. 덕분에 독립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피부로 느낄 수가 있었다네.
 지원금은 굶어 죽는 자들이 없도록 식량을 지원하는 일과 교육을 하기 위해 학교…… (중략) 마지막으로 무기를 샀네.
 최근 나와 뜻을 같이하는 11명의 인사들과 동의단지회(同義斷指會)라는 애국단체를 만들었네, 그리고 우리의 목적은 무명지를 잘라 피로 맹세를 했지.
 금산 자네를 꼭 다시 만나고 싶네. 다시 볼 날을 희망하네.]
 목적을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이등박문(이하 이토 히로부미)과 인본 천왕 히로히토의 저격인 것을 대찬은 알고 있었다. 바로 펜을 들고 답장을 썼다.
 [끝까지 살아남는 자가 승리자입니다.
 반드시 생환하여 미국으로 오십시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정치인들에게 청탁을 꾸준히 하면서 다른 방면에도 로비를 하였는데, 대학교를 상대로 입학할 수 있게 많은 공을 들였다. 특히 동부의 대학들에게는 많은 기부를 했는데 상대적으로 한국을 알릴 기회가 적은 곳에 투자하여 미국 전역에 한국을 알렸고 좋은 학교들이 많이 있어 진학의 유리함을 꾀했다. 또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에 군인이 뜻이 있는 사람들을 모아 보냈는데 로비하기 가장 힘든 곳이었다.
 호놀룰루 항구에는 많은 한국인들이 모여 있었다. 대학교에 가기 위한 자식들이 한날한시 배를 타고 본토로 나갔기에, 자식을 본토로 보내는 부모들은 항구까지 배웅을 나왔다.
 떠나는 자식들은 배웅 나온 부모들에게 큰절을 하고 다시 볼 것을 약속했고 남는 부모들은 그저 묵묵히 잘 다녀오라는 말만 했다.
 대학교에 가는 사람들은 학비 이외에도 생활비며 용돈까지 챙겨주어 보냈는데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행동하고 한국을 알리라고 하였다.
 길현은 로비 활동을 하며 다니던 중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길현, 혹시 이숭만이라고 압니까?”
 “알고 있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며칠 전에 저를 찾아왔더군요.”
 길현은 깜짝 놀랐다.
 “정말입니까?”
 “그자가 한국인이라며 길현의 친구라고 했습니다. 그리곤 길현이 없을 때는 자신이 메신저가 된다고 필요할 때 자신을 찾아 달라고 하더군요.”
 “허…….”
 길현은 말문이 막혔다.
 “이미 다른 친구들에게도 들러서 그런 말을 하고 갔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입니까?”
 “아닙니다. 제가 아니면 인수인 것을 아시잖아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리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미 불쾌하다는 친구들도 있더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이 뵙죠.”
 길현은 국민회에 들려서 강력하게 경고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쾅!
 탁자를 내려쳤다. 길현은 무척이나 분노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좌중은 조용했다.
 “이숭만! 그자는 어디 있습니까?”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듯 말들이 없었다.
 “제발 부탁합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우리 동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아시지 않습니까?”
 “미안합니다. 우리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길현이 동포들을 위해서 로비하고 다니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숭만이 로비의 대상들을 자기가 직접 만나고 다닌다는 사실은 국민회 사람들 아무도 몰랐다.
 흥분한 길현은 마음을 가라앉혔다.
 “제가 큰소리치고 무례한 것에 대해서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성과가 나타나지 않으니 마음이 조급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필요할 때 저나 정인수, 그 친구를 통해 정식으로 소개가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길현은 결국 이숭만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메리칸 드림』 2권에 계속>

댓글(14)

불타는해달    
부모란 놈들이 날강도네...
2016.08.05 20:56
쭌뿡    
초반부 대찬이 미역 따오는 부분에서 길재가 한국 사람은 밥심으로 삼다는 부분이 있는데 조선이라고 해야 맞지 않나요? 귀순은 조선이라고 하네요
2016.08.08 14:47
최저존엄    
부모란 이름으로 발목만 잡는 캐릭터들... 진짜 싫다
2016.08.13 17:32
똘이똘이    
이거 처음부터 계속해서 노답발암전개라 포기한소설
2016.08.14 23:19
샤키룸    
이거 완결 아닙니다. 21권까지 결제한 제가 호구인가요?
2016.08.15 18:11
못난이93    
완결아닙니다! 연중작품입니다! 위 샤키님 말처럼 저같은 호구 짓하지마세요!
2016.08.15 20:24
차일D    
주화입마 조심
2016.08.17 21:31
아브람    
다행이다 댓글을 미리봐서..
2016.08.19 01:13
행운남자    
나이도 어리고 지인의 방해도 심하군요. 이대로라면 개천에서 용나도 개천에게 먹히는 루트가 될듯. 과연 진행을 어찌하실지. .
2016.08.20 19:36
한정우    
`1902년도에 한국이라는 말이 왜 나와?
2016.08.30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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