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이이익!
닭에 입힌 튀김옷이 기름을 만나며 고소한 향이 퍼진다.
바삭한 치킨과 맥주.
그리고 바싹 구운 먹태.
그런것들을 파는 그저 그런 호프집.
그랜드슬램(grand slam).
나 한방만은 이 술집의 주인이다.
"방만이형! 여기 오백 두잔만 더!"
감자를 막 튀기려는데 유정빈이 목소리가 들린다.
염병할 놈.
아까 감자 주문할때 같이 달라고 하지.
쿵!
나는 오백 두잔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싸인은 원래 한큐에 내는거야."
"나도 내가 이렇게 빨리 마실줄 몰랐어. 근데 재들 하는 짓좀 봐."
치렁치렁한 뒷머리를 어깨까지 기른 유정빈.
녀석의 손 끝이 TV화면을 향한다.
"왜. 또 뭔짓거리 했는데."
"뭔짓은. 또 자살야구 하다가 뒤졌지."
화면속 호크스 유니폼을 입은 남자가 고개를 떨군다.
TV 카메라가 기다렸다는 듯 덕아웃의 감독 얼굴을 비춘다.
감독 또한 선수와 마찬가지로 똥씹은 표정을 짓는다.
"오늘도 현빈이가 일번이냐?"
"어. 깔끔하게 중전안타 치고 나가더니 곧바로 도루하다가 죽었어."
오늘도 변함없군.
나는 코웃음을 한번 친 뒤 주방으로 돌아왔다.
작은 동네에서 혼자 운영하는 호프집이다.
주방일까지 겸하는 나에게 진득히 야구를 시청할 시간은 없다.
"호크스."
야구를 더럽게 못하는 팀.
야구를 졸라게 못하는 팀.
우승은 커녕 20년간 가을야구를 못나간 팀.
그리고, 내가 15년간 선수생활을 했던 팀이다.
"소총부대. 자살야구. 스몰볼."
내 입에서 호크스와 관련된 수식어가 줄줄이 나왔다.
호크스는 파면 팔수록 희한한 팀이었다.
신구장으로 이전을 하면서 펜스를 앞당겨놓고, 정작 신입 드래프트에서는 몇년간 멸치같은 놈들만 골라모았다.
한때는 장타를 펑펑 터트리는 클린업 트리오가 팀의 상징이었는데.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팀 컬러가 반대로 바뀌어버렸다.
"홈런을 쳤어야 돼."
홈런.
홈런은 야구의 꽃이요, 반드시 점수를 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나는 선수생활 내내 간절히 홈런을 원했고, 또 원했다.
키 185cm에 65kg.
내가 가진 체형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목표였지만 말이다.
애초에 호크스에 지명된 것도 나같은 멸치체형을 좋아하는 단장 덕분이었다.
하지만 팀의 기대와 달리 나는 선수시절 내내 홈런을 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처절하게 실패했다.
통산 타율 1할5푼5리.
통산 도루 65회.
통산 도루 실패 65회.
경기막판 대주자로 주로 기용됐지만 보기와 달리 주루센스가 형편없었다.
감독이 보기에도 답답했을거다.
기동력을 위해 뽑은 선수가 베이스러닝에 문제가 있었으니.
하지만 정작 내가 제일 답답한 기록은 따로 있었다.
"홈런. 빵."
통산 홈런 제로.
그렇게 홈런을 갈망했지만 15년 동안 단 한번도 홈런을 때리지 못했다.
-방만아. 네 첫가락같은 체형으로 왜 자꾸 풀스윙을 하는거야? 컨텍 위주로 짧게 치라니까?
선수생활동안 귀에서 피가나도록 들었던 말이다.
하지만 나는 스윙을 축소하는 대신 밤마다 웨이트로 근육을 키웠다.
왜 그렇게 홈런만 선호하냐고?
오늘의 호크스 경기가 그 이유다.
-쳤습니다! 오른쪽으로 쭉쭉 뻗는 타구! 담장! 넘어갔습니다아아아아! 굳바이 투런!
-지현성 선수가 구회말 투아웃에서 극적인 역전 투런 홈런을 때려냅니다!
-호크스 투수들이 8회까지 무실점으로 잘 막아줬는데, 이런 일이 생기네요.
-그렇습니다. 오늘 경기에서 와이번스가 친 안타가 딱 한개인데. 그게 굳바이 홈런이었어요. 허허허.
-반면 호크스는 안타 열 개를 기록했습니다. 안타수만 따지면 열배로군요!
-어렵사리 7회에 한점을 쥐어짜낸 호크스! 하지만 와이번스의 강력한 한방에 모든것이 날아갔습니다!
-호크스의 마무리 한상원이 머리를 감싸쥡니다. 손에서 빠진 사구 하나. 그리고 통한의 실투 하나. 승부의 추가 바뀌는데까지 필요한 공은 단 두개였습니다.
"방만이혀어어어어어엉!"
"여깄다."
정빈이놈이 주문하기도 전에 맥주를 가져다 놓았다.
쿵!
유정빈과 일행, 그리고 내 것까지 세 잔.
끝내기 패배를 당해서 열이 받은건지, 술을 퍼마셔서 그런건지 유정빈의 눈가가 불그스름해졌다.
"형. 오늘 경기를 안본 형이 승자요. 이 버러지같은 경기를 네시간동안 지켜본 내가 병신이지!"
"오늘은 또 어떤 신박한 방법으로 털렸냐. 요약해봐."
"1회부터 가관이었어. 첫타자 안타 이후 도루실패. 그다음 타자 볼넷 이후에 도루실패. 이후에 내야안타 포함 3출루를 했는데 6번타자가 삼구삼진!"
그 말에 나는 휘파람을 불었다.
"한 회에 출루를 다섯번 했는데 점수를 못내는 팀이 있다?"
"그것 뿐만이 아니요. 7회에는 노아웃 1,2루에서 더블스틸을 하다가 3루에서 뒤졌다니까? 8회에는 1사 만루에서 스퀴즈 내다가 공이 떠버려서 병살이 됐어!"
과연.
유정빈의 말을 들어보니 주방에서 닭이나 튀기기를 잘한것 같다.
호크스는 오늘도 스몰볼과 작전야구로 온몸 비틀기를 시전하다 자멸하고 말았다.
"간신히 똥꼬쇼해서 한점 냈더니만은, 9회에 끝내기 홈런을 쳐맞아? 어휴!"
마셔도 마셔도 속이 타는지, 유정빈이 오백씨씨 맥주를 또한번 원샷했다.
정빈아...
'고맙다.'
손님이라고는 니들밖에 없는데 좀더 매상좀 올려줘라.
셋이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동안 끝내기 홈런을 친 지현성이 화면에 나왔다.
-오늘의 수훈 선수, 지현성 선수 인터뷰를 진행하겠습니다. 지현성 선수!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극적인 홈런으로 와이번스의 승리를 이끌어주셨는데, 타석에서 어떤 마음으로 임하셨습니까?
-야구장에 지진이 일어나서 투수가 실투를 던지기를 기도했습니다.
-하하하하
지현성은 실력은 물론이요 유머러스한 성격으로 많은 팬덤을 보유한 스타다.
워크에씩도 훌륭하고 사생활도 잡음이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홈런을 잘 치지."
부럽다.
모두가 인정하는 홈런타자.
내가 가장 좋아하고, 부러워하는 타입이다.
"끄응. 이 기세면 올해도 A 찍겠네."
매 해 기록한 순위를 그대로 이어붙이면, 호크스는 58868999AAAAA 가 된다.
뒤에 나오는 A는 프로야구 전광판의 기록처럼 숫자 10을 나타낸다.
한마디로 5년 내내 꼴지를 했다는 것.
더욱 기가막힌 사실은, 10개구단이 창설된게 아직 5년밖에 되지 않았다는거다.
결국 앞서 기록한 999도 꼴지라는 이야기.
호크스는 최근 8년간 꼴지에서 탈출한 적이 없었다.
"방만이 형. 이쯤되면 진지하게 해체하는게 맞는거 아뇨? 모회사를 홍보하려고 야구단 운영하는건데, 홍보는 커녕 똥칠만 하고 있잔수."
유정빈은 나와 함께 호크스에서 뛰었던 선수다.
나처럼 그저그런 성적으로 은퇴한 선수.
또한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나처럼 호크스에 정이 남아있는 녀석이었다.
"낸들 아냐. 단장이 변태성향인가보지. 쳐맞는걸 즐기는."
"발릴꺼면 초반부터 시원하게 발리던가. 네시간동안 진흙탕에서 뒹굴더니 기어이 또 역전패를 했네."
"한잔해. 세시간 오십 오분동안은 행복했잖아?"
나와 유정빈. 그리고 함께온 회사 동료 봉구라는 친구가 술잔을 부딪쳤다.
"형. 요즘 장사는 좀 잘 되우? 어째 올때마다 우리밖에 없는것 같은데."
"거의 그래. 니네가 내 월세 내주는거야."
"아니. 내 말대로 해설자나 방송쪽으로 나가보라니까? 그 쓸만한 얼굴 죽을때까지 안고 갈라고?"
유리창 너머로 또다른 내 자신이 코웃음을 치고 있었다.
모델 뺨치는 균형잡힌 체형.
부리부리한 눈매에 시원하게 뻗은 콧날.
선수시절 잠깐 외모로 화제가 된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럼 뭐하랴.
홈런은 생김새로 치는것이 아니다.
게다가 비주얼이란건 항상 좋은 결과로 귀결되는것만은 아니다.
"현역때 생각 안나냐. 나는 매일 헬스장만 다녔는데, 밤마다 클럽 가서 타율이 그모양이라고 욕 뒤지게 먹었지. 얼굴값 한다고."
"클클. 그래도 형은 가게도 차렸잖아. 나보다 낫지. 운동선수가 마흔 넘어서 회사 다니려니 뒤지겠수다. X소기업 특성상 사장 눈치는 또 얼마나 봐야하는지."
"넌 그래도 사장이 한명이잖아."
"응?"
"난 여기 오는 사람들이 전부 사장이거든. 원래 돈주는 사람이 사장이잖냐."
"오. 그럼 나도 형 사장이네?"
"네 사장님. 때려달라구요?"
"낄낄. 맞기 싫어서라도 일어나야겠다. 내일 아침에 봉구랑 같이 미팅 나가야되거든."
"그래. 밤이 늦었다. 봉구씨도 이제 들어가고."
"네. 사장님."
술이 약한지 봉구가 자리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출근 생각이 났는지 한숨을 푹 내쉰다.
"에효. 내일 아침에 또 어떻게 일어나냐. 핸드폰 알람이 고장났으면 좋겠어. 시계는 아침부터 똑딱똑딱.....읍!"
"!"
유정빈이 취한 와중에도 번개같이 손을 움직여 봉구의 입을 덮는다.
"야. 갑자기 왜그래?"
"너 인마 조심해. 저 형 뚜껑열리면 자연재해급이야."
"그러니까. 내가 뭘 잘못했는데?"
"절대로 저 형 앞에서는 그 단어를 말하면 안돼."
"뭐? 무슨 말."
나는 피식 웃으며 못 들은 척 빈 맥주잔들을 가지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내 발작 버튼이기는 하지.'
똑딱이.
장타를 치지 못하고 깔짝깔짝 단타만 치는 타자들을 일컫는 말.
호크스 시절 수많은 멸치들이 있었지만 유독 똑딱이라는 별명은 내게만 붙었다.
체형에 맞지 않게 홈런을 치려고 발악하던 나를 조롱하는 의미였다.
그 덕에 선배랑도 참 더럽게 많이 싸웠지.
"휴우."
매장을 정리하고 나오니 어느덧 열두시가 지났다.
튀김냄새에서 벗어나 바깥 공기를 마시니 그제서야 살것 같았다.
"별이 많네."
캄캄해진 하늘을 도화지 삼아, 별들이 저마다의 그라운드를 그리고 있었다.
홈플레이트와 1루.그리고 2루와 3루.
가만히 서서 여러 모양의 그라운드를 그리고 있을 때였다.
반짝!
고정된 별들을 가로지르며 유성 하나가 긴 꼬리를 그리며 나아간다.
그 모습은 정말이지, 뭐랄까....
그래!
"홈런."
홈런같았다.
밤하늘을 가로지르며 사람들의 열망을 담아 날아가는 홈런타구.
짧은 시간동안 유성을 바라본 나는 절로 쓴 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홈런에 미친놈이라지만, 유성을 바라보며 홈런타구를 상상하는 놈이 나말고 또 있을까?
유성은 사라졌지만, 나는 계속 밤하늘을 주시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와 함께 야구장에 갔던 날.
그 날이 영화처럼 재생되었다.
-헉..헉..!!
관중석으로 향하는 야구장은 생각보다 경사가 있었다.
끝까지 올라서지 않으면 네모난 빛 밖에 보이지 않는 통로.
마침내 통로에 끝에 다다르던 그 순간
-따악!
"와아아아아아아아!"
눈앞에 별천지가 나타났다.
한번도 본적없는 넓은 잔디와 관중들의 함성소리.
후끈한 열기와 눈부시게 푸른 하늘.
그리고 그 하늘을 가로지르는 하얀색 홈런 타구.
"하필이면 그때 홈런을 볼게 뭐람."
한 해에 몇번 나오지도 않는 선두타자 초구 홈런.
그 사건은 내게 운명처럼 다가왔다.
야구의 룰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나였지만 그 강렬한 인상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때부터 홈런은 내 인생의 목표가 되었다.
'나는 홈런을 치기 위해 태어난 남자다.'
결과적으로 실패한 목표가 되었지만 말이다.
"딱 한번만이라도 쳐봤으면 했는데."
홈런을 쳤을때 느껴지는 짜릿한 손맛.
그 맛을 한번이라도 느꼈다면 이렇게 아쉽지는 않을것 같았다.
은퇴를 하고 장사를 시작한지 몇 년이 지났지만, 나는 매일같이 같은 꿈을 꾼다.
홈런을 치는 꿈을.
"아이고. 오늘따라 왜이리 피곤하냐."
집으로 가는 길이 천근만근이다.
선수시절 체력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이제 정말 몸이 낡아버린걸까?
더이상 걷지 못할것 같아 놀이터 그네에 걸터앉았다.
기다렸다는듯 눈꺼풀이 감겨온다.
희한한 일이다.
특별히 무리한 날도 아니고, 술을 많이 마신것도 아닌데.
"홈런..치고 싶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앵무새처럼 홈런을 중얼거렸다.
은퇴한 지금에 와서는 홈런은 커녕 타석에 설 기회조차 없는데 말이다.
의식이 점점 희미해져갈 무렵, 어제 TV에서 본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세상이 내 마음처럼 안될때, 그리스인처럼 생각하면 한결 편해진다고 했다.
그리스인은 시험을 망치면 '내가 공부를 안했구나'라고 괴로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저, '성적의 신이 나를 외면했구나!'라고 생각한단다.
우스개소리겠지만, 나는 그 말에 깊은 위로를 받았다.
15년간 처절하게 노력해온 순간들을 부정하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그래. 그저..홈런의 신이 나를 외면했던거야."
단지, 그뿐이다.
빌어먹을 홈런의 신이 나를 외면한것 뿐.
그렇게 그네에 앉은 채로 잠이 들 때였다.
-지랄하네.
"!"
찬물을 끼얹은 듯.
누군가의 목소리가 내 정신을 확 깨웠다.
-얌마. 난 너 외면한적 없어!
"..................?"
나라니.
네가 누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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