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쏴아아.
저녁나절 부슬부슬 비가 오는 다 쓰러져가는 폐 도관의 입구.
무분별하게 자라난 열대 수목들이 반쯤 뒤덮은 이 산속 폐관에 기이하게도 서른 명 정도나 되는 많은 사람이 들이닥쳤다.
그리고 그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남자가 예의 바르게 포권을 하며 물어왔다.
“소협, 혹시 하룻밤만 비를 피해 가도 되겠소?”
갑작스레 들이닥친 남자들의 모습에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내게 말이다.
혹시 나쁜 사람들은 아닐까 걱정했는데, 내 나이가 어린데도 깍듯한 포권과 정중한 말투.
나쁜 사람은 아닌 듯했고, 상대방은 내가 아마 이 폐 도관을 지키는 어린 도인이라도 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저도 몇 년 전, 이 폐 도관에 자리를 잡은 것일 뿐이니. 원하시는 곳에 묵으셔도 됩니다. 다만 저 전각은 제가 사용하고 있으니, 다른 곳을 이용하시면 좋겠습니다.”
“고맙소. 어린 소협이 예의가 바르군. 내 그리하리다. 다들 들었으면 움직이거라. 소협의 전각 쪽으로는 가까이 가지 말고, 다른 곳에서 비를 피하기로 한다. 알겠느냐?”
“예, 가주!”
사내들의 가슴에 있는 당(唐)이라는 문자와 가주라고 하는 것을 보니 다들 한 가문인듯한 느낌.
뭐 하는 사람들인지 궁금하기는 했으나 중년인을 향해 슬쩍 고개를 숙이고는 얼른 내가 사용하는 전각으로 향했다.
애들 저녁 시간이 되었으니까.
“늦을 뻔했구나. 다들 배고팠지?”
방에 들어서 등잔에 불을 붙이고 얼른 저녁을 준비했다.
커다란 토기 항아리의 뚜껑을 열고 안에 잎사귀들을 치운 후 귀뚜라미를 한 움큼 쥐었다.
손안에서 느껴지는 팔딱거리는 귀뚜라미의 감촉.
그 상태로 옆에 큰 항아리를 열어 속을 들여다봤다.
커다란 몸통, 털이 복슬복슬한 다리.
약간 노란 기운을 띠는 몸통이 역시나 가슴을 뛰게 했다.
성체 귀뚜라미 몇 마리를 항아리 안으로 던지자 재빨리 낚아채는 녀석.
공격성이 뛰어난 녀석답게 녀석은 게걸스럽게 귀뚜라미를 입안으로 욱여넣었다.
“블랙이 많이 먹어라. 너희들 마저 없었으면 형은 어쩔뻔했냐?”
항아리 안에 있는 녀석의 이름은 블랙 어스 타이거.
중국의 하이난, 그러니까 중원의 해남도에 서식하는 타란툴라 종으로 20㎝까지 자라는 녀석인데.
내가 잡은 후, 벌써 여러번이나 탈피해 15㎝ 가까이 키워낸 녀석이다.
녀석이 밥 먹는 것을 확인했으니, 이제 다른 녀석들에게도 밥을 주어야 할 때.
녀석이 남은 귀뚜라미를 잡아채는 모습을 다시 한번 구경하다가 바로 옆에 오래된 약장으로 향했다.
약함을 열자 나를 반기는 녀석은 바왕링 케이브 게코(Bawangling Cave Gecko).
역시나 해남도의 자생종으로 몸통에 노란 줄무늬와 꼬리의 흰 줄무늬가 도드라진 도마뱀 녀석들이었다.
“전생에는 수입이 안 돼서 그렇게 구하기 힘들었는데, 나가면 너희들이 천지라니. 형은 정말 너희 보는 재미로 산다.”
손에 쥔 귀뚜라미의 다리를 잡아 녀석들의 눈앞에서 살살 흔들었다.
그러자 재빨리 달려들어 귀뚜라미를 낚아채는 녀석들.
“아야야!”
귀뚜라미를 낚아채려다가 손가락까지 물어버린 녀석을 떼어내고, 약장의 약함마다 한 마리씩 들어있는 녀석들에게 모두 밥을 주고 나자,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협. 안에 계시오?”
아까의 가주라고 했던가? 그 중년인인 것 같은 느낌.
얼른 손을 털고 약함을 닫았다.
그리고 전각 밖으로 나서자 아까의 중년인이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비를 피하게 해준 것이 고마워서 그런데, 혹시 저녁이나 같이하지 않겠소? 사슴을 잡아 왔는데?”
“사, 사슴 말입니까?”
“그렇소. 오다가 저녁으로 먹으려 두 마리 잡아 왔는데 같이 하시겠소?”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못 잡아본 사슴.
육 고기의 유혹에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전생이라면 내가 뱀과 도마뱀을 먹는다는 것은 생각도 못 할 일이지만, 이곳에서 내가 잡을 수 있는 유일한 사냥감은 뱀과 도마뱀.
사람이 살려면 단백질을 먹어야 했기에 녀석들을 잡아 먹을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내 유일한 단백질 공급원.
그러니 네발 달린 짐승인 사슴고기라는 말에 거절할 수가 없었던 것.
‘미안하다 얘들아···. 형도 살아야 했어···.’
뱀과 도마뱀 뼈를 묻어둔 곳을 향해 미안한 마음을 전한 후, 남자를 따라 반쯤 무너지고 기와 빠진 지붕들 아래를 지나 도관에서 가장 큰 전각에 도착했다.
그러자 여기저기 구멍 난 건물 가운데 피어오르는 불길과 함께, 사슴고기가 익어가는 고소한 향이 황홀하게 콧속으로 흘러들었다.
-꿀꺽.
뚝뚝 떨어지기 시작하는 기름과 고기의 향에 절로 흘러나오는 군침.
한참을 멍하니 그 모습에 침을 꿀꺽거리자 시선이 느껴졌고, 고개를 돌리자 나를 데려온 남자가 자기 옆을 가리키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런.’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며 남자가 가리키는 그의 옆자리로 향했다.
그러자 들려오는 남자의 웃음기 섞인 목소리.
“고기는 조금 더 있어야 익을 테지. 그사이 내 궁금한 게 몇 가지 있는데 물어도 되겠소?”
“예, 어르신 말씀하시지요.”
뭔가 궁금한 것이 있는 모양.
고깃값을 해야 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남자가 호구조사를 시작했다.
원래 처음은 호구조사가 보통이니까 말이다.
“그나저나 이 해남도 산속에 혼자 사는 것이오? 나이가?”
“한 열네다섯쯤 되었을 것 같습니다.”
“한 열네다섯?”
열넷이면 열넷이고, 열다섯이면 열다섯이지, 열네다섯은 어떤 의미냐는 표정을 짓는 중년인.
그의 말에 머리를 긁적거리며 대답했다.
“제가 기억을 잃어서···.”
“저런, 그런 기구한 일이 있었구려.”
남자가 나를 안타까운 얼굴로 바라봤지만 기억을 잃었다는 것은 모두 거짓말이었다.
기억은 잃은 적도 없었고, 나는 아무래도 전생인지 빙의한 느낌이었으니까.
전생이라고 해야 하나? 죽기 전에 나는 원래 스트리머였다.
너튜브, 아메리카TV, 스위치에서 백만 구독자에 빛나는, 파충류와 거미나 독충 같은 독물 전문으로 소개하고 키우는 것을 방송하는 스트리머로 유명한 사람이었던 것.
닉네임은 매운 파브르.
독충이나 독물, 독사들을 전문으로 방송하니 그런 닉네임이 붙었었다.
다만 내가 지금 이런 세계, 더군다나 이런 어린아이의 몸이 된 것은 이유가 있었다.
백만 구독자 달성 기념 특집 방송.
세계에서 가장 강한 독사 10종을 탐방하는 방송을 하다가 블랙맘바(Black Mamba)라는 뱀에 물려 죽어서 그런 것이었다.
‘아마 위험한 짓 하다가 죽은 스트리머 중 하나에 올랐겠지···. 아니, 근데 찾으러 돌아다닐 때는 안 보이고 무슨 블랙맘바가 숙소 냉장고 위에서 튀어나오냐고!’
사람들에게 방송으로 소개해 주려고 할 때는 코빼기도 안 보이다가 아프리카의 허름한 호텔에 돌아와 쉬려는데 냉장고 위에서 튀어나온 블랙맘바.
물렸을 때는 좆됐구나 싶었다.
블랙맘바의 독은 강하기로 유명한데 물리면 사람도 20분 안에 사망할 수 있기 때문.
그래서 지금 이 모양 이 꼴이고.
“저런. 그럼 계속 이곳에 혼자 사는 것이오?”
“예, 가진 재주가 없어. 여기서 뱀을 잡아, 그 가죽을 팔아 먹고살고 있습니다.”
“저런 어린 소협이 위험하게 뱀을 잡는다니···.”
남자가 나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내가 봐도 내가 안타까운데, 남이 보면 얼마나 안타깝겠나.
그렇게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앞에 내밀어지는 큰 고깃덩어리 두 개.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뜨자, 고기를 가져온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가주, 익은 부분을 먼저 가져왔습니다. 소협이 아까 무척 배고파하는 것 같아서요.”
부끄러움에 다시금 얼굴이 붉게 물들었지만, 그래도 부끄러움이 고기를 주지는 않으니, 얼른 고개를 숙이고 고기를 받았다.
“네발 달린 짐승고기는 정말 오랜만이라서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고기를 받자마자, 허겁지겁 고기를 잡아 뜯었다.
-으적.
얼마만의 고기던가.
뱀고기도 맛이 있긴 했는데, 역시나 고기는 네발 달린 짐승.
뚝뚝 떨어지던 육즙과 고소한 기름이 입안으로 흘러들자 곧바로 행복감이 찾아왔다.
그래, 이게 행복이지.
전생이라면 느끼하다고 생각했을 기름이 얼마나 고소한지.
얼른 뼈에 붙은 고기를 다 뜯고, 행복하게 뼈까지 쪽쪽 빨고 있자, 이번에는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 크게 자른 사슴의 갈비를 가져 와 넘겨주며 말했다.
“어린 소협이 아주 잘 먹는구만. 이것도 드시게.”
“감사합니다. 어르신.”
“허허, 내 집에 두고 온 손녀가 생각 나는구만.”
그렇게 다시 양쪽 손가락까지 빨며 고기를 뜯고 있을 때였다.
나를 이곳으로 데려온 가주라는 남자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소협, 먹으면서 듣게. 우리는 뭘 찾아왔는데 혹시 주변에서 이상한 것 보지 못했나?”
손등에 떨어진 기름을 얼른 핥고는 남자의 물음에 되물었다.
“츄릅, 이상한 것 말입니까?”
“음···. 뭐라고 해야 하나···.”
내 물음에 고민하는 남자.
남자의 고민에, 내게 큰 갈비를 잘라다 준 노인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가주, 어린 소협에게 비를 피하는 은혜를 입었는데, 소협에게는 말해주어도 되지 않겠소? 혹시라도 소협이 화를 당할 수도 있으니 말이야. 어린 소협은 여기서 혼자 사는데 누구에게 말을 할 것 같지도 않고.”
“확실히 아버지 말씀이 맞습니다.”
알고 보니 노인은 이 남자의 아버지였던 모양.
노인의 말에 가주라는 남자가 목소리를 낮춘 채 다시 물었다.
“우리는 몸에 푸른 점이 있는 지네를 찾아왔는데, 혹시 소협은 혹시 보지 못했는가? 우리가 며칠째 이 주변을 수색 중인데 발견하지 못해서 말이지.”
“푸른 점이 있는, 지네 말입니까?”
“그렇네. 푸른 점이 있는 지네로 청반오공(靑斑蜈蚣)이라 부르는 지네지. 무척 커서 아마 보았을 수도 있을 것인데···.”
지네라는 말에 보고 자시고를 떠나서 일단 귀가 솔깃했다.
지네 그것은 아름다운 생물.
수많은 발과 매끈한 몸통, 절지류 독충 중에 지네만큼 독특하고 아름다운 생물도 없으니까 말이다.
더군다나 지네는 곤충이 아니라 절지동물인데 모성애가 있는 절지동물.
여러모로 특이한 동물 아니겠나?
거기에 크고 푸른 점까지 있다니! 신종이었다!
신종이라면 이 매운 파브르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법.
슬쩍 정보를 캐내기로 했다.
“크다면 얼마나?”
“글쎄? 다 자란 것이라면, 소협 정도는 쉽게 집어삼킬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허억!”
‘미친 지네가 사람도 잡아먹을 만큼 크다고? 그냥 몇백 년 전 과거로 온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나 보구나? 다른 세계인가? 이거 한번 꼭 찾아봐야겠구나.’
신종 대형 지네.
두 사내의 말에 기쁨으로 몸을 떨려왔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노인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이런 어린 소협이 겁을 먹었군. 걱정하지 말게 우리가 그놈을 잡으러 왔으니까 말이야.”
‘잡으러 왔다고? 이 시대에도 나랑 취미가 비슷한 사람들이 있었나?’
기쁨에 떤 것을 겁먹은 것이라 오해하는 것 같지만, 왠지 나와 취미가 비슷한 사람들의 모임 같기에 얼른 물었다.
나와 취미가 비슷하면 커뮤니티 형성을 할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브리딩 정보도 나누고 채집지도 공유하고.
‘취미활동 혼자 하는 것처럼 외로운 게 없더라고···.’
취미활동의 큰 재미가 또 자랑질인데, 그것을 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잡으러 오셨다면, 혹시 잡아 키우려고 그러시는 것입니까?”
그러자 내 대답이 재미있다는 듯 웃는 두 남자.
“하하, 청반오공을 키운다? 그거 재미있는 말이군.”
“어린 소협이 재미있습니다.”
“그걸 어찌 키우겠나 약으로 쓰려고 하는 것이네.”
남자들의 대답에 팍 식는 감정.
알고 보니 이거 몰상식한 아저씨들 같았다.
전생에도 지네가 허리에 좋다느니, 뭐 그런 헛소문이 퍼져서 수많은 지네가 고생했는데, 아마도 그런 분들 같았으니까.
지네를 약에 쓴다니.
그건 과학적으로 아무 근거도 없는 말이라 알고 있으니, 또 괜한 지네 한 마리가 죽겠구나 싶었던 것.
뭐 지네라면 어디 있을지 대충 짐작은 가지만.
‘아,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동지인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무식한 아저씨들 이었구만?’
실망감이 솟았지만, 일단 무식한 분들 계몽이나 해야겠다 싶어 물었다.
괜한 신종이 목숨을 잃을까 싶어서 말이다.
“지네가 약이 되지는 않을 텐데요?”
그러자 내 물음에 두 남자의 안색이 조금 어두워지고, 그중 노인이 착잡하고 안타까운 목소리로 설명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내 손녀가 지금 큰 병에 걸려 누워있네. 그 지네의 내단만이 내 손녀를 살릴 수 있으니 찾으려는 것이네.”
노인의 손녀라면 중년인의 딸.
깜짝 놀라 중년인을 바라보자 그가 어두운 표정으로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이고. 애가 사경을 헤매니 뭐라도 구해다 먹여보려는 모양이구나.’
분명 지네가 약이 되진 않을 테지만, 오늘과 내일 하는 자식을 둔 부모 마음이 어디 그렇겠나?
뭐라도 구해다 먹이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
나도 죽어가는 이만 원짜리 도마뱀 살리려고, 동물병원에서 오십 만 원을 지출한 적이 있지 않던가?
신종이 불쌍하긴 했지만···.
고기 대접도 받았으니 아무래도 도움을 좀 주어야 할 것 같았다.
“그 지네 보지는 못했지만, 어디 있을지는 예상은 가는데 말입니다.”
지네라면 아무래도 이 매운 파브르 손바닥 안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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