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 헉... 선생님 대체 어디까지 올라갑니까? 아직 멀었습니까?”
어두컴컴한 산길.
눈앞에 보이는 것은 어둠뿐.
작은 랜턴 하나에 비춰지는 것은 제대로 길도 나있지 않은 산길이었다.
“선생님!”
오로지 정신 집중을 해야 하는 이때.
등 뒤에 헉헉 거리는 소리가 꽤나 거슬린다.
‘에휴, 내 팔자야.’
뒤를 돌아보니 한 남자가 무릎에 손을 얹고 있었다.
곧 숨이 넘어갈 듯 거칠게 호흡을 뱉는 남자.
하얗고 동그란 얼굴, 검은 뿔테 안경에 한껏 푸근해 보이는 둥근 체형의 몸매까지.
이런 험한 산길과는 그리 어울리지 않는 남자였다.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진다.
“저기요.”
“예?”
“이번에 새로 발령받으셨다고 하셨죠?”
“예. 맞습니다. 문화재발굴팀에 새로 입사한 서은덕 주임입니다.”
남자는 이내 땀을 닦으며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린다.
야밤에 산을 타는데 정장이라니.
남자의 얼굴에서 신입 사원의 티가 팍팍 났다.
“힘듭니까?”
“예? 아... 아닙니다. 할 수 있습니다.”
어버버대는 것이 인상은 나빠보이지 않는다.
밖에서 보았다면 좋은 인상이었을지도.
하지만 이곳은 아니다.
일에 방해되면 그 즉시 '적'이니까.
이게 한두 푼 하는 일도 아니고 남의 밥줄인데.
이렇게 걸리적 거리면 열 개 찾을 거, 다섯 개 밖에 못 찾게 되고.
다섯 개 찾을 거 겨우 하나 찾거나 순 허탕을 치기 마련이니까.
그럼 내 시간은?
내 일당은 누가 보상하나.
초장에 확 잡아둬야 할 필요가 있었다.
“고작 동산 두 개 넘었다고 이럴 거면 왜 따라왔어요. 아래서 기다리라니까요.”
“저도 공동묘지는 처음이라 무서워서 그러려고 했는데... 저희 과장님이 꼭 선생님 따라가 보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론 백 번 보는 것보다 실습 한 번이 제일이라구요.”
“참 나... 박과장님이 그래요?”
“예. 과장님이 많이 배워오라고 하셨어요. 이 분야에서는 선생님이 탑이라구요.”
“탑은 맞긴한데. 그럼 제대로 따라오던가. 그리고 그 선생님 소리 좀 안 하시면 안 하면 안 됩니까. 나랑 몇 살 차이나 보이지도 않는구만.”
“그... 그렇습니까? 그럼 제가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요?”
남자가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남자가 진정으로 궁금한 눈빛이었다.
“됐습니다. 그냥 알아서 부르십시오.”
“예. 그럼 강선생님으로 계속 하겠습니다. 선생님은 저를 편하게 부르셔도 됩니다.”
"편하게?"
“예! 서주임도 좋고. 아님 뭐... 동생처럼 편하게 대하셔도 좋습니다.”
서주임은 또 사람 좋은 미소를 흘렸다.
속이 없는 거냐, 아님 착한거냐.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빠르게 앞을 치고 나갔다.
몇 시간만 있음 동이 튼다.
노닥거릴 시간이 없었다.
아직 숲길이 이어져 있다.
인간이 뚫어놓은 길.
봉분과 봉분 사이에 길이 이어져 있다는 것은 최소한 사람이 다녔던 흔적이라는 말이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선산이었다.
주인이 누구인지도, 이 묘지를 관리하는 사람이 있는지도 모른다.
역시나.
쉽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좀 더 깊은 산속까지 치고 가야 할 판이었다.
“선생님, 근데 왜 이런 야밤에 이런 공동묘지까지 와서 찾아야 합니까. 낮에 와도 되지 않습니까?”
“휴.”
그냥 무시하고 가려다가 내 신입 시절이 생각도 나고 무엇보다 계속 연을 맺어야 될 사람이니 조금은 참아주기로 한다.
어찌됐건 그 역시 내 '클라이언트'니까.
“불법이니까요.”
“부... 불법이요?”
서주임이 또 다시 머리를 긁적인다.
불법이라는 말에 놀란 표정.
‘최소한의 교육이라도 해서 보내야지. 이거 원 쌩 신입을 보내놨네.’
능글맞은 두꺼비.
문화재발굴팀 박과장의 얼굴이 떠올라 쓴웃음이 지어졌다.
“확실한 정보였다면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발굴을 진행했겠죠. 근데 아직 확실하지 않으니 저 같은 사람을 미리 보내서 정말 유물이 있는지, 문화재로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미리 살피는 겁니다."
"사전 답사 같은 거군요?"
"그렇죠. 유물 발굴 가치가 있는지 확인만하고 빠질 겁니다. 아무도 모르게."
이른바 그림자 도굴꾼,
즉 '쉐도우'다.
도굴꾼이긴 한데, 국가에서 인증 받은 몇 안되는 직업이다.
핵심은 아무도 모르게다.
내가 여기 왔다는 사실이 그 누구에게도 알려지면 안 된다.
그것은 나를 고용한 문화재청도 마찬가지.
내가 하는 일은 정부 문건에도 기록되지 않는 비공식적인 일이니까.
“그럼 오늘은 어떤 것을 찾는...”
“쉿.”
“예?”
“이제 그만. 일단 찾고나 얘기합시다. 이러다 밤새요.”
“아... 알겠습니다.”
그도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다.
지금 하는 일에 대해서.
이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특히 유물을 찾는 것이 이 나라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 일인지 말이다.
나 역시 가끔 내 직업이 자랑스러울 때가 있으니까.
유물을 발견하고 국가에 기증한다.
국가는 값어치를 매기고 소장, 판매 혹은 전시를 한다.
박물관에 사람들이 모여 내가 발굴한 유물을 볼 때.
알 수 없는 쾌감.
그 뿌듯함!
유물을 보며 탄성을 내지르는 사람들의 표정에 나는 소름이 돋곤 했다.
밥벌이만 괜찮다면 꽤 쓸만한 직업인데...
입맛을 다시고 고개를 저었다.
다시 집중하자.
얼마 안가 오솔길이 끝이 났다.
이제는 완벽한 숲길.
가방에 장착한 쇠꼬챙이를 손에 쥐었다.
이제부터가 진짜다.
랜턴을 헬멧에 장착하고 거진 사람 키 정도 되는 높이의 쇠꼬챙이로 우거진 숲을 치고 나간다.
푸드드득!
“까... 깜짝이야!”
쉬고 있던 벌레와 새들이 깜짝 놀라 날아간다.
덩달아 엉덩방아를 찧는 서주임.
이번엔 깔끔히 무시해준다.
십 분 쯤 더 가니 완만한 구릉이 나왔다.
잠시 멈춰 주변을 둘러본다.
‘오호라.’
비탈이 진 산을 뚫고 들어가니 보이는 완만한 구릉.
관리가 되지 않아 풀과 나무로 덮여있지만 나는 알 수 있다.
예사롭지 않다.
어찌 보면 우리가 찾던 곳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우리가 아니라 나였지.'
헉헉거리며 겨우 따라붙은 서주임을 보며 읊조렸다.
손에 든 쇠꼬챙이를 거꾸로 들어 뾰족한 부분이 아래로 향하게 만든다.
그리고는 몸에 힘을 실어 아래로 푹!
푸슉!
“오케이.”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쇠꼬챙이가 땅을 밀고 바닥에 쑤셔박힌다.
땅이 단단하지 않다.
무른 흙이다.
쇠꼬챙이가 1m 넘게 들어가는 것을 보니 제대로 잡은 듯 하다.
나는 쇠꼬챙이를 좌우로 부드럽게 돌려본다.
천천히.
쇠꼬챙이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을 음미하면서.
“왜 웃으십니까...?”
서주임이 내 얼굴을 보고 물었다.
또또.
나도 모르게 웃고있었나 보다.
그제야 입꼬리가 쭉 찢어져 올라간 것이 느껴진다.
참 이 순간이 즐겁다.
낚시.
마치 낚시를 하는 것과 같달까.
대어를 기다리는 강태공의 마음으로.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온 정신을 집중해서 쇠꼬챙이로 땅을 쑤시다보면 느낌이 온다.
곧 무언가를 발견할 것 같은 커다란 기대감과 함께.
이번엔 또 무엇이 걸릴까.
잔바리일까, 아님 월척일까.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이다.
“뭐가 느껴지십니까?”
“쉿. 조용히 하라니까.”
“아... 예.”
눈을 부라린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쑤욱.
아무래도 이 곳은 아니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쇠꼬챙이를 뽑아 들고 조금 더 밀고 들어간다.
여기쯤에서 한 번 더.
푸슉!
“오, 이번엔 더 깊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서주임은 자기 입을 틀어막았다.
아무래도 입에 재갈이라도 물려할...
딸깍!
“응?”
푸슈슉.
딸깍!
들렸다.
분명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
쇠꼬챙이가 박힌 땅 속에서 아주 작은 소리가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들렸죠?”
“...예?”
“잘 들어봐요.”
나는 땅에 박힌 쇠꼬챙이를 시계방향으로 돌려보았다.
딸...깍. 떼구르르르. 딸깍!
“오!”
“맞죠?”
“예. 분명 들렸습니다. 딸깍 하는 소리!”
“오케이. 여기 뭐가 있는 것 같네요.”
“오, 그렇습니까?”
서주임이 유심히 땅을 쳐다본다.
“뭐 합니까?”
“...예?”
"파야지."
"파요?'
"예. 땅 파야죠. 뭐합니까 가만히 서서."
“따... 땅을 파요?”
“답답하기는. 그럼 진짜 박과장이 견학 보낸 줄 알아요? 같이 일을 도우라고 보냈을거 아닙니까. 산만 타다 집에 가실 겁니까?”
“아... 예!”
“잠깐만. 이걸로 해요.”
나는 배낭 안에서 휴대용 야전삽 하나를 꺼내 주었다.
“초반에만 힘으로 파고, 중간부터는 아주 조심하셔야 해요. 안에 뭐가 있을지 모르니까. 아셨죠?”
“예.”
그가 눈빛을 번뜩인다.
눈치는 좀 없고 몸은 따라주지 않아도 의지 하나만큼은 꽤 쓸만하다.
“명심하세요. 시체에 독이 발라져 있거나 창이나 쇠뇌 같은게 발사될 수 있어요."
“예!?”
꽤나 놀란 듯 삑사리를 낸다.
“농담이에요. 농담. 그런 무덤은 백개 중에 하나니까.”
“저... 정말이죠?”
“빨리 시작해요.”
머뭇거리던 서주임이 땅을 파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꽤나 잘 파지더니 30cm가 넘어가기 시작하자 역시나 속도가 현저히 줄어든다.
땀으로 범벅.
곧 쓰러질 것처럼 숨을 내쉬는 서주임.
“자, 이제 비키세요.”
“좀 더... 할 수 있습니다!”
“비키라니까. 시간 없어요.”
서주임을 밀어내고 내려섰다.
다시 야전삽으로 땅을 파내려간다.
처음에는 돌에 턱턱 걸리던 것이 큰 돌을 하나 빼내자 쑥쑥 밑으로 내려간다.
‘그래. 좋아. 이번엔 뭐가 걸릴 려나.’
희망회로가 불탄다.
이번엔 큰 건이어야 했다.
요 몇 달은 제대로 된 정보가 없었기에 일을 쉬었다.
말이 좋아 프리랜서지 일을 하지 않으면 백수나 다름 없는 직업.
애국심과 자부심도 몇 달 굶으면 희미해지기 마련이니까.
돈을 벌자, 돈을!
땡!
'걸렸다.'
삽끝에 무언가가 걸렸다.
“비석?”
손으로 조심스럽게 파내자 흙속에 파묻힌 단단한 돌덩어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동그란 원판.
원판 위에는 처음 보는 글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이게 뭐지?”
“선생님, 뭐가 나왔습니까?”
구덩이 위에 서주임이 얼굴을 내밀고 물었다.
“비석입니다. 돌 위에 글자가 쓰여 있습니다.”
“글자요? 그럼 제가 한 번 봐도 되겠습니까?”
“서주임이요?”
“예! 제가 고대어 전공했습니다.”
오호라.
뭔 재주가 있어 문화재청에 왔는지 의문스러웠는데, 굼벵이도 재주가 있구나.
그가 조심스럽게 구덩이 안으로 내려왔다.
나는 랜턴을 떼서 천천히 글자를 비추었다.
“음... 고어(古語)가 맞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삼국시대 말인 것 같습니다만...”
“삼국시대 말이라고? 그럴 리가 없는데.”
서주임은 안경을 고쳐쓰고 다시 글자를 탐독했다.
“가야...라고 적혀있는데요?”
“가야?"
“예. 가야의 왕이 잠드노니 내 첫 번째 처와 자식들을 이 고분에 묻고...”
“잠깐. 잠깐만.”
“왜 그러십니까?”
“당신 정말 읽을 수 있는게 맞아? 정말 가야라고 적혀있다고?”
“예. 비석에는 분명 그렇게 쓰여 있습니다만...”
정보가 달랐다.
내게 정보를 준 의뢰인에 의하면 기껏해야 유물은 조선시대, 혹은 고려시대 유물들이라고 했다.
보석이나 귀금속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가야시대 고분이라니.
뭔가...
이상하다.
“일단 올라가 있어봐요.”
“예?”
“올라가서 박과장님 불러오라구요!”
생각보다 일이 커졌다.
나 혼자 결정할 사항은 아니다.
가야시대 고분은 우리나라에도 몇 없다.
더군다나 비석에 새겨진 글대로라면 이 고분은 아주 일부에 불과하다.
순장 풍습이 있던 가야 특성상 더 많은 보물이 발견될 수도 있을 터.
고분 조사는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든다.
유물의 탐색과 훼손을 막기 위해 비파괴조사, 필요하다면 지하레이다탐사나 전기비저항탐사가 동반될 수 있다.
이 정도면 국가가 나설 사이즈라는 뜻.
내 임무는 여기까지.
그림자 도굴꾼의 역할은 여기서 멈춘다.
“뭐합니까. 빨리 올라가서 통화 연결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서주임이 몸을 일으켰다.
구덩이 위를 향해 손을 뻗으려 점프를 한 순간.
끼이익...
순간 등골에 서늘한 기운이 피어오른다.
뭔가 이상하다.
비석 한 구석이 가볍게 들렸다.
“자... 잠깐만. 그대로 멈춰!”
“예?”
“발 띄지 말고 멈추라고!”
하지만 이미 늦었다.
이미 서주임의 발이 비석 위에서 떨어져 허공에 오른다.
부우웅-!
비석이 뒤집혔다.
동시에 내 몸이 아래로 푹.
땅이 꺼지듯 아래로 떨어진다.
연환변판.
비석을 밟으면 판이 뒤집혀 땅에 떨어지는 방어책.
나 같은 도굴꾼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쓰는 하나의 방어책이다.
‘젠장. 이런 초보적인 술수에 걸리다니.’
방심했다.
너무도 큰 건이라 잠시 중요한 것을 잊어먹었다.
몇 초 되는 짧은 순간.
나의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서... 선생님! 선생님!”
멀리서 들려오는 서주임의 목소리.
이대로, 정말 이대로 죽는 건가.
하필 왜 이런 곳에서.
"으악!!!"
나는 허공을 향해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하나.
둘.
셋...
쿵!
온몸에 느껴지는 충격.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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