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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가기버튼 삼국지 : 조조의 보급관은 살고 싶다

삼국지 : 조조의 보급관은 살고 싶다 (001)

2023.10.29 조회 28,444 추천 474


 계륵(雞肋), 그것은 닭의 갈빗대를 말하였다. 먹기에는 살이 없고, 버리기에는 아깝다는 그런 뜻이었다.
 
 지금의 내 처지가 그리하였다. 회사의 핵심인 기획부서의 과장이었으나, 하루아침에 고객서비스 부서로 발령받았다.
 
 이유는 사내 정치질을 당하였기 때문이었다. 권력을 잡은 임원이 자신을 돕지 않았다는 이유로, 낯선 부서로 귀양을 보냈다.
 
 -탁.
 
 자리에 놓인 것은 낡아빠진 전화기 하나였다. 울리지 않는 전화기를 살피니 뒤쪽의 선이 끊어져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며 멍하니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끝이구나.’
 
 무려 십수 년 동안 헌신한 회사였다. 나의 청춘을 바쳤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냉소적인 주변의 시선이었다.
 
 -스윽.
 
 자리에서 일어나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가슴에 품어두었던 사직서를 꺼내서 올려두었다. 그대로 가방을 메고 밖으로 나섰다.
 
 가을의 하늘은 어찌나 쾌청한지 헛웃음이 나왔다. 세상사의 그늘은 전부 나에게만 드리워졌나 싶었다.
 
 -짹짹.
 
 제비가 날개를 펼치더니 자유로이 하늘을 날았다. 가만히 서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가방을 고쳐 매고는 발걸음을 뗐다.
 
 -삑!
 
 한낮의 전철은 평화로웠다. 창 너머에는 한강이 보였다. 덜컹거리는 좌석에 몸을 기대고 집으로 향하였다.
 
 -달그랑.
 
 슈퍼에 들러서 소주 두 병을 샀다.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차려입은 양복을 벗고 티셔츠로 갈아입었다.
 
 -다다닥.
 -화르륵!
 
 부엌으로 와서는 가스레인지를 켰다. 양은 냄비를 올리고 물을 담았다. 라면 하나를 끓여서 상으로 가지고 왔다.
 
 상 위에 책 하나를 올려서 받침대로 썼다. 책의 이름은 ‘결국 승리하는 사마의’였다. 사마의는 어떤 사람인가를 다루고 있었다.
 
 내 나이 때의 동년배들이 그러하듯, 나도 어려서부터 삼국지를 좋아하였다. 삼국지라면 만화 소설 상관없이 오랫동안 읽어 왔었다.
 
 ‘간만에 게임이나 할까.’
 
 그것은 게임도 마찬가지였다. 삼국지와 관련된 게임들이 많았다. 일을 핑계로 미루어둔 취미였다. 게임이라도 하면 울적한 마음이 날아갈까 싶었다.
 
 -후루룩!
 
 라면을 호호 불어서 한입 가득히 먹었다. 푹 익은 김치도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마지막으로 유리 글라스에 가득 따라둔 소주를 꼴깍 마셨다.
 
 “캬아-”
 
 미간이 찌푸려지며 감탄사가 나왔다. 그래 인생 별거 없었다. 무엇을 위하여 지독하게 살아왔는지 모를 일이었다.
 
 라면 국물에 밥을 말아 먹으니, 소주 두 병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냄비에 물을 담그고는 설거지를 내일로 미루었다.
 
 오래된 컴퓨터 앞에 앉아서 게임 하나를 찾았다.
 
 ‘삼국지 간웅전’이라는 고전 게임이었다. 1988년에 나온 게임으로 조조가 되어서 이야기를 진행하는 턴 게임이었다.
 
 ‘그때가 좋았는데.’
 
 학창 시절, 친구에게 빌려서 밤새 했던 기억이 있다. 오랜만에 다시 하려니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뭐야, 저장해둔 파일이 있잖아?’
 
 전에 하다가 멈춘 부분이 있었다. 수춘성을 점령하라는 것을 보니, 원술과의 결전을 앞둔 시나리오인 듯하였다.
 
 게임에 접속하니 조조가 자기 보급관을 죽이려고 하였다. 부대의 병사들이 굶주림에 분노하였기 때문이었다.
 
 조조는 보급관이 군량을 훔쳤다고 누명을 씌워서, 책임을 떠넘기려고 하였다. 플레이어의 앞으로 선택지가 놓였다.
 
 「죽인다/죽이지 않는다」
 
 보급관을 죽이게 되면 부대의 전투력이 크게 상승하였다. 병사들이 보급관을 원망하며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것이었다.
 
 반면에 죽이지 않고 살려주면, 부대의 이동속도와 전투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뿐만이 아니라, 정해진 턴 수가 크게 줄어들어서 난이도가 급상승하였다.
 
 ‘이건 불가능에 가까운 정도인데.’
 
 시나리오를 깨기 위해서는 당연히 죽이는 것이 맞았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회사에서의 일이 떠올라서 보급관이 마치 나처럼 느껴졌다.
 
 -달칵.
 
 죽이지 않는다를 클릭하였다.
 
 “살려주자. 얼마나 서럽겠어. 부하 직원 그렇게 함부로 버리는 거 아니다. 음···.”
 
 술을 많이 마시기는 했다. 조금 해롱해롱하였는데 갑작스럽게 어지러움이 몰려왔다. 고개가 앞으로 떨어지더니 키보드에 이마를 쿵 찧었다.
 
 그것이 현생에서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
 
 건안 2년(197),
 
 원술이 황제를 자청하여 중(仲)을 건국하였다. 지금의 황실을 우습게 여기고 새로운 조정을 세운 것이었다.
 
 이에 여러 군벌이 출정하여 원술을 응징하였다.
 
 여포는 서주 일대에 있는 군대를 공격하였고, 손책은 후방 부대를 급습하여 강동에서의 자립권을 가져왔다.
 
 조조는 원술의 주요 도시인 수춘을 공략하였다.
 
 그러나 수춘의 성은 예로부터 방어 요새로 명성이 높았다. 성벽 아래로 구덩이를 파서 물을 채워 넣었기 때문이었다.
 
 해자가 깊고 넓으니 성벽의 밑으로 붙기가 어려웠다. 성문도 단단하여 뚫기가 만만치 않았다.
 
 적군도 그것을 알아서 깃발을 높이 세웠다. 포위를 당하여도 사기가 꺾이지 않은 것이었다.
 
 게다가 조조는 많은 수의 병력을 이끌고 있었다. 하루에 소모되는 식량이 어마어마하게 많았기 때문에, 군량이 부족해지기 시작하였다.
 
 "주공이 우리를 속였다! 밥도 먹지 않고 어떻게 싸우라는 것인가!"
 
 조조의 병사들은 하루가 다르게 사기를 잃어갔다. 굶주림이 계속되어 불만을 내뱉었고 이는 조조의 막사에도 닿았다.
 
 평소라면 엄하게 다스려 벌을 주겠지만, 부대 전체가 곤궁에 처하니 그러기도 어려워졌다. 조조는 고민하다가 양곡 창고를 맡은 관원을 하나 선별하였다.
 
 관원의 이름은 왕후(王垕)로, 며칠 전에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고 하였다. 상태가 갈수록 좋지 않다고 하니, 오래 살지는 못할 것이었다.
 
 ‘어차피 죽여야 한다면, 죽어가는 쪽을 택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조조는 그에게 누명을 씌워서 병사들의 원망을 돌릴 생각이었다. 보급관이 군량을 횡령하여 우리가 먹을 것이 부족해졌다면서 말이다.
 
 '가슴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는 뱃속의 굶주림을 잠시나마 잊게 할 것이다.'
 
 조조가 사람을 보내어 왕후를 불렀다.
 
 ***
 
 그 시각···.
 
 나는 짙은 악몽을 꾸고 있었다. 시커먼 심해 속에서 허우적거리는데, 푸른 비늘의 용이 나타나서 한입에 삼키었다.
 
 “크하악! 살려-”
 
 비명을 지르며 허리를 바짝 세웠다.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런데 손에서 느껴지는 눈코입이 모두 전과 달랐다.
 
 “무, 무슨.”
 
 낯선 것은 얼굴뿐만이 아니었다.
 
 내뱉는 목소리가 중저음에 젊었다. 목을 감싸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아늑했던 집은 온데간데없었다. 허름한 막사에 짚더미를 베고 있었다.
 
 놀란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때였다.
 
 “으윽!”
 
 가슴에서 하얀 빛이 터져 나오더니,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동시에 다른 사람의 기억이 물밑 듯이 밀려 들어왔다. 한나라 사람인 왕후의 지난 삶이었다.
 
 왕후는 겉으로 보기에 건실한 청년이었다. 키가 크고 팔다리가 길었다. 눈매는 또렷하고 시원스러웠으며 코는 오똑하니 높았다.
 
 입술은 도톰하고 턱선은 날카로웠다. 얼굴은 계란형이었고 수염은 기르지 않았다. 나이는 스물두 살이었다.
 
 왕후는 농민의 자식이었지만, 배우는 것을 좋아하였다. 태학에서 마당 쓰는 일을 하였고, 남몰래 글과 학문을 공부하였다.
 
 집으로 돌아가서는 늙은 부모를 모셨다. 이른 나이에 혼인하여, 어여쁜 아내와 갓 태어난 딸도 있었다.
 
 그러나 세상이 점점 흉흉해지고, 날이 갈수록 먹고 살기가 어려워졌다. 식구를 배부르게 하기 위해서는 전장에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왕후는 고민 끝에 조조의 부대에 자원하였다. 셈이 밝다는 이유로 보급병이 되었고, 빠르게 승진하여 양곡 창고를 맡은 보급관이 되었다.
 
 그러나 식량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하루하루 어려움이 많았다. 병사들의 아우성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밤잠을 설치게 되었다.
 
 그러자 몸이 빠르게 망가졌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였다. 마음고생은 계속되었고 병사들을 달래느라 많은 힘을 쏟았다.
 
 결국은 일에 지쳐서 쓰러지고 말았다. 주변의 동료들이 업어다가 눕혔지만, 더는 해줄 것이 없었다.
 
 그렇게 왕후는 과로사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 몸이 식기 전에, 내가 찾아왔다. 왕후의 삶과 나의 영혼이 뒤섞이더니 완전한 빙의를 이루기 시작하였다.
 
 -웅웅···.
 
 나는 이제 새로운 존재가 되었음을 느꼈다. 고대의 왕후와 현대의 내가 한 몸이 된 것이었다. 머릿속의 통증이 가라앉으며 시야가 맑게 트였다.
 
 “후우···.”
 
 더는 혼란스럽지 않았지만, 아는 것에서 오는 두려움이 많아졌다. 지금은 난세였다. 어디 하나 기댈 곳이 없는, 어지러운 세상이었다.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이대로 또 죽을 수는 없다.’
 
 복잡한 감정을 묻어두고 해야 할 일을 정리하였다. 우선은 몸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눈은 맑아졌으나 배는 곯았고 팔다리에 힘이 없었다.
 
 요깃거리를 찾아보려는데, 바깥에서 발소리가 났다. 갑옷을 차려입은 장군이었다. 막사의 천막을 젖히더니 나를 불렀다.
 
 “보급관은 바로 따라오도록 하라. 주공께서 군량에 대해 상의할 것이 있다고 하신다.”
 
 장군의 말에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조조가 비루한 창고지기를 왜 부르겠는가. 그것도 장군을 시켜서 은밀하게 말이다.
 
 이는 누명을 씌워서 죽이기 위함이 분명하였다. 컴퓨터 게임에서 시작하여, 왕후라는 사내의 몸에 들어오기까지······. 그 과정이 모두 지금의 순간을 경고하고 있었다.
 
 ‘조조에게 죽는 보급관이 바로 나였구나!’
 
 산 넘어 산이라더니. 어쩌면 이는 지독한 악연 내지는 운명인 듯하였다. 시작과 동시에 죽을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장군의 손이 검에 머물러 있었다.
 
 ‘허튼짓을 하다가는 바로 죽겠구나···. 따라나서는 수밖에 없겠다.’
 
 장군의 뒤로 걸으면서 주위를 곁눈질하였다.
 
 대군을 이끄는 조조의 군영은 무척이나 넓고 빼곡하였다. 도망칠 생각을 해보았지만, 목책을 넘지 못하고 죽을 것이었다.
 
 게다가 고향에는 자신을 걱정하는 가족들이 있었다. 여기서 도망치면 그 책임을 가족에게 물을 것이 분명하였다.
 
 그렇다면 무슨 수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불행히도 고민할 시간이 부족하였다. 어느덧 조조의 막사에 도착하였다.
 
 “주공, 보급관을 데려왔습니다.”
 “들여보내라. 장군은 바깥에서 대기하도록.”
 
 막사 안으로 들어가니 조조가 상을 두고 앉아있었다. 나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그 모습을 눈에 담기에 바빴다.
 
 '지금부터 나누는 대화에 내 목숨이 달려 있다···. 어떻게든 관찰하고 파악하여 살아나갈 궁리를 마련해야 한다.'
 
 조조는 흑색의 갑주에 푸른 망토를 두르고 있었다. 머리에는 조그만 관을 얹어두었는데, 망토와 같은 푸른색이었다.
 
 관의 사이에는 머리를 고정할 때 쓰는 쇠붙이를 꽂아두었다. 기다란 꼬리를 지닌 새의 모양인데 멋스러운 느낌이 물씬 났다.
 
 조조의 얼굴은 각지고 날카로웠다.
 
 그러나 험악하기보다는 수려한 쪽에 가까웠다. 눈썹은 짙었고 끝이 높게 솟아있었다. 코는 각지고 높았으며, 입술은 일자로 굳센 느낌이 물씬 났다.
 
 왕후의 기억과 조조의 기백이 맞물리니, 절로 다리에 힘이 풀렸다. 한쪽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았다.
 
 “주공을 뵙습니다.”
 “그래, 몸은 좀 어떠한가. 듣던 것보다 괜찮아 보이는구나.”
 
 걱정하는 목소리였지만, 죽이려고 불렀음을 알고 있었다. 단전에서부터 힘을 끌어올려서 대답하였다.
 
 “잠시 과로하여 쓰러졌을 뿐입니다. 한숨 자고 일어나니 소생한 듯합니다. 소란을 일으켜 죄송합니다. 앞으로 더욱이 노력하겠습니다.”
 
 조금이나마 기특하게 봐주기를 바라였다. 그러자 조조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내 앞으로 왔다.
 
 “노력하는 방법이 어찌 일하는 것뿐이겠는가. 다른 방면으로도 나라를 위하는 일은 많다. 가령 상황을 타개할 계책이라던가, 용감무쌍한 무예라던가, 시대의 흐름을 읽는 통찰력이라던가, 또는···."
 
 조조가 허리춤의 칼을 뽑아들었다. 그대로 내 목덜미에 겨누었다. 서린 목소리로 나지막이 말하였다.
 
 “아군을 위한 숭고한 희생이라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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