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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세랜드의 검술천재(1)

2023.10.21 조회 23,969 추천 450


 김철수는 퇴사했다.
 
 열심히 일을 하며 나름 회사에 자리를 잡아간다고 생각했지만, 변화하는 환경과 끊임없이 쏟아지는 일은 그를 피로하게 했다. 무엇보다..
 
 “꿈이 없어..”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은 그를 미치게 했다.
 
 “이제 원하는대로 살자! 예루살렘은 위험하니까 일단 스킵하고 몰타랑 로도스, 독일로 가야지. 기사 여행이다!”
 
 태생이 밀덕이자 역덕이었던 김철수는 지난 수년간 모은 돈을 자신의 꿈에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그것은 바로 중세기사 여행! 국내 롱소드 단체에서 나름 열심히 독일식 리히테나워 검술을 배웠을 정도로 중세기사에 환장한 사람다운 결정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X팡 마크가 그려진 5톤 트럭이 철수에게 질주해왔다. 타이어에서 연기가 풀풀 나는 게 아무리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어어!”
 
 피할 수 없다.
 
 이건 죽는다.
 
 달려오는 트럭을 정면으로 마주한 것이 지구에서 겪은 철수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
 
 죽음은 끝이 아니었다. 철수는 마법사와 기사가 살아 숨쉬는 판타지 세계에서 율리안이라는 이름으로 환생했다. 그 사실을 알자마자 율리안은 환호했다.
 
 “진짜 기사가 될 수 있어!”
 
 중증 기사덕후 율리안에게 오러를 써 적을 베는 판타지 속 기사는 그야말로 환상 그 자체였다.
 
 기사.
 
 중갑을 걸치고 혈통 좋은 군마를 몰며 전장을 지배하는 최고의 전사들. 그리고 기사도의 화신이자 로망스의 주인공인 멋진 사내들.
 
 율리안은 그런 기사가 되고 싶었다. 다행히 환경도 좋았다. 율리안은 제국 북서부 최대의 자유도시 리옹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율리안의 아버지인 한스는 도시에서 제일 잘나가는 대장간의 주인이었다.
 
 한스의 갑옷과 무기는 드워프 대장장이에 뒤지지 않는 명품으로 인정받을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돈을 많이 번다는 이야기다.
 
 이게 끝이 아니다.
 
 율리안의 집은 대장간에서 조금 떨어진 대로변에 있는 작지만 번듯한 여관이었다. 한스의 아내이자 율리안의 어머니인 이에나가 물려받은 여관이었다.
 
 아버지는 대박난 전문직이고, 어머니는 부유한 건물주랄까. 그러니까 율리안은 그저 부모의 뒤를 잇는 것만으로도 이 세계에서도 나름 부유한 중산층 라이프를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율리안은 그저 그런 인생에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꿈도 없이 남에게 휘둘리는 인생을 살아본 율리안에게 판타지 세계에서의 환생은 계시처럼 여겨졌다.
 
 ‘꿈을 이루는거야. 기사가 되자!’
 
 그래서 율리안은 아버지인 한스에게 검술을 배울 수 있도록 검술길드에 들어가게 해달라 부탁했다.
 
 외동아들에 대한 사랑이 깊었던 한스는 아들이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으로 검술길드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했다.
 
 그다음은 쉬웠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길드에 무기를 납품하며 인연도 쌓아둔지라 검술 길드에 들어가겠다고 하자마자 율리안의 입단이 결정됐다.
 
 그리고 거기서 율리안은 말그대로 날뛰었다.
 
 “네 검술은 이제 웬만한 기사를 뛰어넘었어. 마나만 다룰 줄 안다면 충분히 기사가 될 수 있을 거야!”
 
 제국 북서부에서 제일 커다란 검술 길드의 사범이 율리안의 검술을 극찬했다. 길드에서 벌이는 대련에서도 율리안은 또래 아이들은 물론 윗줄의 선배들까지 모조리 꺾으며 자신의 재능을 증명했다.
 
 그쯤 되자 율리안을 검술길드에 보낸 한스 역시 크게 들떴다.
 
 ‘내 아들이 기사라니!’
 
 상상만 해도 기뻤다. 이 세상에서 기사는 신분 상승의 사다리였으며 마법사와 함께 대체할 수 없는 최고의 전문직이었다. 자식이 그런 전문직이 될 가능성이 크다니 안 들뜰 아버지가 없으리라.
 
 그러나 부자의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율리안이 열넷이 되던 해. 비극이 일어났다.
 
 “이 소년에게는 마나를 다룰 재능이 전혀 없다. 마력구가 아예 반응하지 않을 정도로 재능이 없는 녀석은 살면서 처음 보는군.”
 
 체내에 마나가 쌓여 검사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자 율리안은 검술 길드의 사범과 함께 기사 양성소에 갔다. 마나에 대한 친화도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율리안은 마나 적성이 아예 전무하다는 끔찍한 선고를 받았다.
 
 마나.
 
 세상의 기운인 마나를 다룰 수 있어야만 마법사와 기사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마나에 대한 재능이 아예 전무하다는 것은 율리안이 기사도, 마법사도 될 수 없다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
 
 아니, 좀 더 말하자면 거의 장애나 마찬가지였다. 기사나 마법사가 될 수 없더라도 모든 인간에게는 마나를 다룰 적성이 있었고, 그랬기에 마법사가 만든 마도구를 이용할 수 있었다.
 
 달리 말해, 마나에 대한 적성이 아예 없는 율리안은 일반인도 다루는 마도구조차 쓰지 못하는 최하의 인간이라는 뜻이었다.
 
 마나를 모아 오러를 쓰는 기사는커녕 일상생활조차 무리가 따르는 인간이 된 것이다.
 
 “너무 안타까워할 것 없다. 너의 검술 실력이라면 기사는 못되더라도 최고의 용병이 될 수 있을거야.”
 
 검술 길드의 사범이 그런 율리안을 위로하려 했다.
 
 “용병들도 오러를 쓰잖아요.”
 
 하지만 율리안은 가식적인 위로에 마음을 풀만큼 어린 아이가 아니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용병들은 시중에 떠도는 싸구려 마나 연공서를 이용해서라도 오러를 습득하려 했다. 그래서 세상에서 손꼽힐 정도로 수준이 높은 용병들은 모두 오러 사용자였다.
 
 한마디로 율리안에게는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최고의 용병이라는 타이틀이었다.
 
 “차라리 검술 사범이 되는 건 어떨까요? 사범님께서도 제 검술이면 사범이 될만하다고 하셨잖아요.”
 
 “그건..”
 
 검술 사범이 말을 흐렸다. 율리안은 그가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하긴 사범 자리는 굴리트가 물려받아야 하겠죠?”
 
 굴리트는 사범의 장남이자 검술 길드에서 율리안의 뒤를 이어 가장 강한 자였다. 율리안만 없다면 검술 길드의 사범이 되는 게 가장 확실한 이가 굴리트인 것이다.
 
 “..”
 
 검술사범이 아무말 없이 율리안을 지켜보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됐어요. 어쩔 수 없죠. 검술을 더 연마하다보면 길이 열리겠죠. 혹시 모르죠. 주님께서 감동해서 오러를 내려주실지!”
 
 율리안은 기사가 되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려 애썼다. 기사가 있는 세상에 다시 태어났으니 기사가 되는 것이 운명이라는 그만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은 냉혹했다. 기사 양성소에서 절망적인 선고를 받은 다음 날. 율리안은 검술 길드에서 퇴출당했다. 아들의 길을 가로막은 율리안을 두려워한 검술 사범이 율리안을 길드에서 쫓아낸 것이다.
 
 결국 율리안은 강제로 검을 놓아야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율리안에게 미래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대장장이의 삶이 율리안을 기다리고 있었다.
 
 “율리안!”
 
 “예!”
 
 율리안의 아버지, 한스가 율리안을 찾았다.
 
 190cm는 되어 보이는 장신에 우락부락한 몸이 마치 기사를 보는 것 같았고 눈빛 역시 예리했다. 기사들조차 한스를 처음 보면 긴장하고는 했다.
 
 “코드피스(Codpiece)의 수량은 충분히 쌓아뒀니?”
 
 그러나 사나운 한스가 나긋나긋이 대하는 유일한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율리안이었다.
 
 “예.”
 
 “네가 제안한 코드피스가 기사들에게 아주 잘 팔리는구나.”
 
 “그래요?”
 
 율리안이 제안한 것은 별 것 없었다. 갑옷의 음낭가리개, 즉 남자의 그것을 가리는 부위를 우뚝 선 그것과 똑같은 모양으로 바꾼 것뿐이었다.
 
 그런데 이게 잘 먹혔다. 참사회에 속한 도시 기사들은 물론 시에 방문한 자유기사들과 인근 귀족에 맹세를 한 기사들까지 몰려와 이 ‘꼬드피스’를 사갔다.
 
 기사들은 자신이 사간 꼬드피스를 갑옷에 달아 사방에 자랑하고 다녔다.
 
 “오, 고간이.. 엄청나게 거대하군요.”
 
 “흠흠, 내 물건의 모양을 본떠 만든 코드피스요.”
 
 “오, 남성이 대단하십니다!”
 
 꼬드피스를 단 기사들의 콧대가 산처럼 높아졌다.
 
 누군 새 명품을 자랑하고 다니면 질시하는 이들도 있기 마련.
 
 “흥, 내 물건만은 못하군!”
 
 “오, 그러시오? 그럼 어디 한 번 까보시든가. 하하!”
 
 “이잇, 당신이 갑옷을 맞춘 대장간이 어디오? 당신보다 내 물건이 크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소!”
 
 얼마 지나지 않아 한스의 대장간에는 더 크고 아름다운 꼬드피스를 받기 위한 기사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게 되었다. 그걸 보고 다른 대장간들도 서둘러 행렬에 동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온 도시의 기사들이 꼬드피스를 차고 다녔다. 꼬드피스의 크기가 곧 레이디와의 만남을 뜻하게 됐기 때문이다.
 
 “오, 저 기사님을 봐! 코드피스가...”
 
 “꺅!”
 
 당연히 꼬드피스를 처음 만든 한스의 대장간은 크게 흥했다. 갑옷 한 벌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수고가 덜 들면서 이윤은 훨씬 컸던 덕이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한거냐.”
 
 한스는 가끔 특이한 아이디어를 내는 율리안의 머리가 신기했다. 몸은 자신을 닮아 열다섯 나이임에도 웬만한 장정보다 컸으나 약간 어수룩한 자신과 달리 항상 번뜩이는 생각으로 신제품을 내놓는 것이다.
 
 “식당에서 들었어요. 아시잖아요, 여관을 드나드는 자유기사들이랑 용병들의 입이 얼마나 헤픈지.”
 
 “음.”
 
 한스는 입을 다물었다. 율리안은 항상 이렇게 대답했다. 그게 오히려 한스의 의문을 부풀렸다.
 
 대장장이인 한스와 여관주인인 이에나의 외아들인 율리안은 둘 다를 물려받을 예정이었다.
 
 그래서 율리안은 여관에서 어머니의 일을 도와줄 때가 많았고 대장간만큼이나 여관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니 율리안이 저렇게 말하면 한스로서는 율리안에게 더 물어볼 수 없었다.
 
 하지만 한스가 생각하기에 율리안의 통통 튀는 아이디어는 결코 여관을 도는 한량 기사나 싸구려 용병들의 입에서 나올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랬다면 남들도 다 팔았겠지. 어수룩한 한스라도 그런 정도의 분별력은 있었다.
 
 하지만 더 캐묻지는 않았다. 아들이 가져온 물건치고 실패한 물건이 없었고, 아들이 자신의 것이될 대장간에 나쁜 짓을 저지를 리가 없으니까.
 
 ‘휴, 살았다.’
 
 율리안은 한스의 이런 복잡한 속내도 모르고 그저 한스가 더 묻지 않는 것에 감사하고 있었다.
 
 ‘중세 유럽에서 성(性)스러운 코드피스가 유행했길래 한번 따라 해봤다고 어떻게 말하겠어.’
 
 율리안은 말을 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른 주제를 꺼냈다.
 
 “갑옷 주세요.”
 
 율리안의 부탁에 한스의 눈빛이 바뀌었다. 궁금증은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를 안타까움이 메웠다.
 
 “또 시험을 해보려 하느냐.”
 
 “입고 휘둘러 봐야 가치를 매길 수 있죠!”
 
 율리안은 한스와 함께 만든 새 갑옷을 혼자 척척 입었다.
 
 “탈착은, 충분히 편하고!”
 
 갑옷을 다 입은 율리안이 롱소드를 집어 대장간을 벗어났다. 대장간 앞 공터에 선 율리안이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유려하고 아름다운 검술이 마치 하나의 춤사위를 보는 것 같았다.
 
 “좋아. 사용감도 확실하네.”
 
 율리안이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닦으며 시원하게 웃었다. 화려한 검사위를 보인 뒤 검을 거두는 율리안의 모습은 그야말로 태생이 전사 같았다.
 
 ‘저리 검을 좋아하는데 기사가 될 수 없다니..’
 
 한스는 어릴 적부터 율리안이 기사가 되고 싶어한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래서 한스는 율리안이 검을 휘두르며 밝게 웃을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저리 검을 좋아하는데 기사가 될 수 없다니..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아버지! 여기서 플레이트의 비율을 늘리면 더 좋은 갑옷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관절을 개선하면...”
 
 생각에 잡혀 멍때리던 한스가 율리안의 말을 듣고 정신을 차렸다. 율리안과 만든 새로운 개념의 갑옷, ‘하프 플레이트 아머’는 확실히 훌륭한 갑옷이었다.
 
 갬비슨과 체인메일 정도만 걸치던 기사의 갑옷에 몸통을 방어할 브리건딘과 건틀렛, 사바톤 등 팔다리를 보호할 플레이트 아머를 추가해 방어력을 높였다.
 
 이 갑옷이라면 반드시 팔린다!
 
 그게 한스의 결론이었다.
 
 “그래, 좋은 갑옷이 나온 것 같구나.”
 
 “그렇죠? 이거라면 기사들도..”
 
 “환상적이군!”
 
 율리안이 퍼거슨에게 신나게 떠들던 중 누군가 율리안의 말을 가로챘다. 퍼거슨과 율리안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쏠렸다.
 
 “환상적이야!”
 
 체인메일, 서코트, 투구에 롱소드까지, 완전무장한 기사가 박수를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연신 박수를 쳐대고 있었다.
 
 “훌륭한 갑옷과 훌륭한 검술이었네. 아직 성년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정말 놀라운 성취군!”
 
 기사가 한스 부자에 곁으로 다가오며 연신 감탄을 내뱉었다. 다시 보니 나이가 지긋한 늙은 기사였다.
 
 율리안은 깜짝 놀랐다. 언제 이리 가까이 왔다는 말인가. 나름 검술을 익힌 율리안의 눈과 귀를 피해 갑자기 나타난 중무장 기사에 율리안의 경계심이 잔뜩 올랐다.
 
 “누구십니까?”
 
 그에 비해 한스는 덤덤했다. 노기사를 대장간에 찾아온 손님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아, 나는.. 그냥 지나가던 기사라 생각하시게. 오랜만에 이 도시에 방문한지라 유람하듯 도시 곳곳을 둘러보던 중에 저 친구의 검술을 보고 깜짝 놀랐지 뭔가. 나이대에 안 맞게 성취가 대단해!”
 
 “예에..”
 
 노기사에 칭찬에도 율리안의 얼굴은 펴지지 않았다. 되려 시궁창에 처박힌 듯 얼굴이 굳어졌다.
 
 허나, 노기사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율리안의 얼굴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
 
 “자네 가문이 어딘가? 아니지, 자유도시니까.. 모시는 기사가 어느 분이신가? 한번 뵙고 싶구만!”
 
 “저는 평민입니다.”
 
 율리안의 고백에 노기사가 잠시 멈칫하다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럴 수도 있지. 그럼 모시는 분은 누군가.”
 
 “전 견습기사가 아닙니다.”
 
 이번 답변엔 노기사의 얼굴에 의문이 서렸다.
 
 ‘평민에 견습기사도 아닌데 어떻게 저리 고절한 검법을 구사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럼 어떻게 검을 다루게 됐나?”
 
 노기사의 질문에 율리안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간신히 짜내듯 작은 소리로 읊조렸다.
 
 “아인벤 검술길드에서 배웠습니다.”
 
 “오, 이 도시 최대의 검술 길드가 아닌가.”
 
 “그렇지요..”
 
 “그럼 검술 길드를 통해 기사가 되길 원하는 건가.”
 
 “아닙니다. 저는 대장장이의 아들이고, 대장장이로 살아갈 사람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노기사가 기함했다.
 
 그가 보기에 율리안은 동년배 중에서는 견줄 자가 없을 검술을 가진 천재였다. 그런 자가 대장장이를 한다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이만한 재능을 두고 대장장이가 되겠다니 그건 인생을 낭비하는 걸세!”
 
 노기사의 호통에 율리안이 얼굴을 찡그렸다. 겁을 먹은 것은 절대 아니었다. 기분이 퍽 상했기 때문이다.
 
 “저는 마나를 다루지 못합니다!”
 
 율리안이 노기사에게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뭐..?”
 
 노기사는 율리안의 외침에 잠시 멍해졌다. 마나를 다루지 못한다니 그래서야 오러를 쓸 수 없지 않은가.
 
 “저는 마나를 다룰 수 없습니다. 전혀요! 그래서.. 저는 기사가 될 수 없습니다..”
 
 율리안은 울분을 삼켰다. 판타지 세계에 떨어지고 지난 16년 동안, 율리안은 자신이 특별한 재능을 가졌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소설과 만화 속 영웅처럼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사악한 적을 물리치는 기사가 될 수 있으리라. 항상 바라던 꿈의 직업을 갖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열넷에 마나 적성이 전무하다는 평을 받으며 산산이 부서졌다. 지금의 율리안은 그저 검 좀 다루는 힘 좋은 대장장이에 불과했다.
 
 “그럴 리가!”
 
 노기사는 율리안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럴 리가 없다. 내 분명 신탁을 받았거늘.. 보자마자 바로 알아보겠는데 어찌..”
 
 노기사는 율리안이 특별한 존재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기 합리화를 시작했다.
 
 “하지만, 오러도 각성하지 못하는데.. 아니야! 오러를 각성하지 못했으면 어찌 저런 속도와 힘이.. 그래!”
 
 “저, 기사님?”
 
 율리안은 혼자 떠들어대는 노기사의 모습을 보고 경계가 흐릿해졌다. 혹시 기사가 아니라 노망난 늙은이가 아닐까?
 
 율리안이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 노기사가 갑자기 검을 뽑아 율리안에게 달려들었다. 너무 급작스러운 공격에 율리안은 기겁하며 검을 뽑았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몸에 새겨진 훈련의 성과대로 기사의 검을 쳐낸 뒤 곧바로 반격에 들어갔다.
 
 살수였다. 율리안은 노기사의 왼쪽 어깨로 향하는 자신의 검을 보며 기겁했다. 그리고 곧바로 힘을 빼 검을 멈추려 했다.
 
 “뺄 필요 없네.”
 
 순간이었다. 노기사가 오른손을 들어 검의 폼멜로 율리안의 검을 쳐낸 뒤 곧바로 칼을 뻗어 율리안을 겨눴다. 칼은 율리안의 목젖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이 힘, 마나가 없는데 이 정도 힘과 기술이라니! 역시 자네에게는 재능이 있어!”
 
 “뭐하는 겁니까!”
 
 율리안은 식겁했다. 방금 그는 노기사에게 살해당할 뻔한 것이다!
 
 하지만 노기사는 담담했다. 아니, 오히려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율리안을 바라봤다.
 
 “어디까지 해낼 수 있는지 한 번 확인해보지!”
 
 율리안에게 다시 검격이 날아들었다.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트럭운전사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코드피스 이야기 -


코드피스는 한 시절을 풍미했던 갑옷계의 트렌드입니다. 더 크고, 우뚝 선 코드피스를 갖기 위해 많은 기사들이 대장장이를 찾았습니다.

댓글(36)

n6***********    
ㅋㅋㅋㅋ중세에 저런 게 있었군요
2023.10.23 21:17
누렁이괴식    
ㅗㅜㅑㅗㅜㅑ 거시기 가림막 조아요 오홍홍
2023.10.23 21:59
뒤까발리오    
크고 우람하니 가슴이 웅장해진다ㆍ 마음이 넓어진다ㆍ
2023.10.26 03:13
코디악    
아버지 이름이 뭔가요? 보리스?? 한스??
2023.10.27 09:58
트럭운전사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2023.10.28 13:39
오들이햇밥    
아버지 이름이 보리스라고 써진 부분이 있는데....
2023.10.28 13:38
트럭운전사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2023.10.28 13:39
zdsaafa    
근데 얘는 칼만 배웠음? 진짜 중세기사면 격투술을 비롯해 여러 무기를 다룰 수 있어야하는 거 아님?
2023.11.02 11:11
카누푸스    
솔직히 마나 검사 저런게 있으면 가르치기 전에 검사해야 하지 않을까 싶음
2023.11.03 13:52
금태양아치    
꽈추뽕은 못 참지
2023.11.03 20:46
0 / 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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