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귀환한 삼촌과 함께하는 킬링 라이프

프롤로그

2023.10.25 조회 30,327 추천 462


 삼촌이 혼수상태에서 회복되었다.
 
 그 소식을 들은 건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온 아침이었다.
 
 이미 반쯤 잠에 빠진 상태로 받은 전화 너머로 들려온 믿을 수 없는 소식.
 
 순식간에 잠에서 깨어난 나는 바로 밖으로 뛰쳐나가 택시를 잡고 거기에 몸을 실었다.
 
 택시 뒷자리에 앉아 몇 번이고 심호흡을 반복하고, 마음이 좀 진정되고 나서야 겨우 삼촌의 존재를 떠올릴 수 있었다.
 
 삼촌.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외삼촌은 벌써 23년째 혼수상태였다.
 
 내 나이가 이제 겨우 22살이니, 내가 태어나기 1년 전부터 삼촌은 쭉 혼수상태였단 소리다.
 
 이렇게 직접 찾아가곤 있지만, 삼촌이 어떤 사람인지는 들어본 적 없었다.
 
 엄마는 삼촌에 관한 말을 꺼내길 꺼렸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내가 삼촌의 존재를 알기 전부터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나마 아는 건 삼촌이 전역하고 며칠 뒤에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과 그 사고가 트럭 사고였다는 것 정도?
 
 ···솔직히 듣고 나서, 이렇게 불행한 사람이 있구나, 싶었다.
 
 조금만 더 있었다면 군대에 갈 일도, 사고를 당해 혼수상태에 빠질 일도 없었을 텐데.
 
 다행히 우리 집에서 삼촌이 입원한 병원은 멀리 있지 않았다.
 
 기본요금에서 조금 더 추가된 요금을 기사님에게 내민 뒤, 다급한 발걸음으로 병원 안에 들어섰다.
 
 언제나처럼 한산한 병원 로비의 접수처엔 지루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접수원이 보였다.
 
 이제 이런 구식 병원엔 찾아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삼촌처럼 장시간 혼수상태에 빠진 사람이나 그 간호인 정도.
 
 그 외엔 대부분 수년 내로 설립된 최신 병원에 찾아갔다.
 
 “저, 실례합니다.”
 “네. 어쩐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그래도 과연 프로는 프로인걸까.
 
 내가 접수대에 다가가자마자 밝은 미소로 나를 맞이하는 간호사의 모습에 속으로 감탄하며, 내가 찾아온 이유를 말했다.
 
 “305호에 입원 중인 강민호 씨가 깨어났다고 해서 찾아왔는데요.”
 “혹시 가족분이십니까?”
 “네. 외조카요.”
 “성함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미나. 정미나요.”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간단한 대답과 함께 키보드를 몇 번 두드리던 간호사는 곧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날 바라봤다.
 
 “신원 확인되었습니다. 305호는 옆 건물 3층에 가시면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간단한 인사 후, 병원과 병실을 연결한 통로를 걸어가며 삼촌에 대해서 다시금 떠올렸다.
 
 연락이 온 탓에 이렇게 찾아오긴 했지만,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삼촌을 직접 본 적은 없었다.
 
 기껏해야 엄마가 두어 번 사진으로 보여준 게 전부.
 
 엄마는 종종 찾아가 본 듯했지만, 나와 함께 가자는 말엔 한사코 반대했다.
 
 그것 때문에 몇 번 언성을 높인 적도 있었지만, 결국 고등학교에 올라간 뒤엔 그것도 포기한 후, 여태까지 쭉 잊고 있었다.
 
 엄마와 연을 끊은 지금에 와서야 삼촌을 볼 수 있게 된다니, 이 무슨 아이러니일까.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3층 복도를 가로지르며 문에 붙은 숫자를 천천히 읽어내린다.
 
 301호, 302호, 303호, 304호.
 
 그리고 305호.
 
 문 너머에서 딱히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정말 이 문 너머에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삼촌이 있는 걸까?
 
 꿀꺽.
 
 마른 입에서 긁어모은 침을 삼키며, 손잡이를 잡아 옆으로 살짝 돌렸다.
 
 그리고.
 
 “삼···촌?”
 
 * * *
 
 “삼···촌?”
 
 정미나는 침대 위에 누워있는 사내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그녀가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은, 사진과 똑같다는 것이었다.
 
 손으로 브이자를 하며 해맑게 웃고 있는 모습과는 달리 무표정한 눈으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것만 다를 뿐, 그 외에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어라?’
 
 순간 어떤 기시감이 느껴졌지만, 정미나는 애써 부정하며 다음 말을 꺼내기 위해 입을 열었다.
 
 “민호 삼촌···맞죠?”
 “내 이름은 민호가 맞지만, 넌 누구지?”
 “아, 그.”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것 치고 말은 잘하네, 라고 생각하던 것도 잠시.
 
 “강 소자, 현자가 제 어머니이십니다.”
 “강소현···누나? 네가 누나의 딸이라고?”
 “네. 삼촌.”
 “누나가 애를 낳았구나···그랬구나···.”
 
 방에 들어오고 나서 처음으로 달라진 표정을 보여주는 그의 모습에 ‘그래도 사람이구나.’하고 느끼는 것도 잠시.
 
 “그런데 너만 왔니? 누나는?”
 
 뒤이어 이어진 질문에 순간 정미나는 입을 다물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이제 연을 끊었다? 나도 모르는 곳으로 떠났다? 어디서 알아서 잘 먹고 잘살고 있을 거다?
 
 여러 가지 대답을 구상하던 정미나는 그래도 그가 최대한 충격받지 않을 만한 대답을 찾아 꺼냈다.
 
 “···저도 잘 몰라요.”
 “그래? 그렇구나.”
 “그게 다···예요?”
 
 너무나 담담한 반응.
 
 정미나는 그런 그의 태도에 역으로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누나도 누나의 삶이 있고, 네게도 네 삶이 있으니까. 서로 모른다고 딱히 널 탓할 건 아니지.”
 “아, 네···.”
 
 저 당시 마인드는 다 저랬나? 라는 생각을 품는 것도 잠시.
 
 ‘아.’
 
 정미나는 그제야 기시감의 이유를 깨닫고 멍한 눈빛으로 강민호를 응시했다.
 
 여태까지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곤 믿기 힘들 만큼 생기 넘치는 외견과 주름 한 점 없는 촉촉한 피부. 그리고 방금 깎은 듯 짧게 쳐낸 머리카락까지.
 
 지금 그는 사진과 조금도 다를 게 없었다.
 
 ···23년 전 찍은 그 사진과 말이다.
 
 ‘혼수상태에 빠지면 외모도 그 상태 그대로 남아 있나?’
 
 아니, 그럴 리 없다.
 
 혼수상태에 빠졌다고 해서 노화가 늦춰질 리도 없고, 정말 만에 하나, 백만에 하나 그런 특이 체질이었다고 해도 머리까지 깎았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지금 현 상황에서 논리적인 대답은 딱 하나.
 
 “삼촌.”
 
 정미나는 기대에 떨리는 목소리로 여전히 무표정한 강민호를 향해 질문했다.
 
 “혹시 이세계에서 용사였어요?”
 
 * * *
 
 20년 전, 세상은 급변했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세상에 나타난 수백 개의 던전과 거기서 나오는 몬스터는 유례없던 대위기.
 
 이른바 던전 크라이시스가 일어났다.
 
 하지만 세상에 찾아온 건 위험뿐만이 아니었다.
 
 그런 위험을 막아낼 방패, 헌터 또한 세상에 나타난 것이다.
 
 만화나 소설, 영화에나 존재하던 특수한 능력을 지닌 이들은 세상에 나타난 게이트와 거기서 나오는 괴물들을 착실히 사냥해 나갔고, 그렇게 세상은 다시 평화를 되찾았다.
 
 ···그런 줄로만 알았다.
 
 두 번째 대위기, 로드 크라이시스가 터지기 전까진.
 
 어느 날 갑자기 던전에 나타난 오크 한 마리.
 
 평상시처럼 몬스터를 사냥하려던 헌터들이, 역으로 그에게 사냥당했다.
 
 본신의 강력한 힘과 더불어 몬스터를 통솔하는 능력. 거기에 뛰어난 지휘 능력까지.
 
 여태까지 없던 ‘로드’라는 개념의 몬스터가 나타난 것이다.
 
 오크 워로드는 여태까지 패배라는 걸 모르던 헌터에게 패배의 고통과 죽음의 두려움을 안겨 주었다.
 
 그렇게 모두가 최초의 던전 크라이시스때 느꼈던 공포, 그 이상의 절망 앞에서 좌절하려던 찰나.
 
 “용사가 등장했어요.”
 “용사?”
 “네, 자신이 이세계에서 넘어왔다고 말한 그녀는···정말 압도적인 힘을 보여줬어요.”
 
 용사 아래 다시금 모이게 된 헌터들은 오크 워로드를 향해 최후의 공세를 펼쳤다.
 
 그녀가 등장하자마자 헌터들은 여태까지의 패배가 거짓말인 것처럼 워로드 아래에 규합된 오크를 쓰러뜨렸고, 그들을 막다른 곳까지 몰아넣었다.
 
 그리고 최후에 남은 강대한 오크 워로드.
 
 그를 직접 맞상대한 건, 당연히 용사였다.
 
 “며칠 밤낮으로 이어진 전투의 끝에 마지막까지 서 있는 건 오직 용사 한 명뿐이었죠. 그리고 그 최초의 용사 이후, 20년간 수많은 용사가 나타났죠.”
 
 나는 하던 말을 멈추고 잠깐 침대 위에 누운 삼촌을 응시했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담고 그를 바라봤지만, 그는 처음 봤던 무표정한 모습 그대로였다.
 
 “그렇게 세상에 나타난 용사는 그냥 다른 헌터처럼 갑자기 각성하는 경우도 있지만, 삼촌처럼 혼수상태에 빠져 있던 사람이 용사인 상태로 깨어나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혹시 삼촌도···.”
 “난···.”
 “네!”
 
 정말? 진짜? 혹시나?!
 
 “용사가 아니었다.”
 “아···네···.”
 
 ···그래, 원래 이런 기대는 원래 품는 게 아니지.
 
 던전 사태 이후라면 모를까, 던전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혼수상태에 빠진 삼촌이 용사일 리 없지.
 
 “하지만 비슷한 일은 했다.”
 “···네? 무슨 일이요?”
 “마왕.”
 “마···.”
 
 삼촌의 입에서 나온 대답을 무지성으로 따라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마왕?
 마왕이라고?
 
 “···농담이죠? 용사 아니라고 뭐라 할 생각은 없으니, 그런 이상한 농담은 하지 말아요.”
 “농담이 아니다. 난···.”
 “후우, 괜찮아요. 그, 혼수상태의 도중엔 뭔가 엄청나게 긴 꿈을 꾸는 일도 있고, 그걸 현실로 받아들이기도 한대요. 삼촌도 아마 그런 경우겠죠. 집으로 돌아가서 푹 쉬면 괜찮아질 거예요.”
 
 23년 만에 겨우 정신을 차린 사람한테 내가 무슨 질문을 한 거야.
 
 정상적이고 평범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현실을 마주할 시간도 없이, 이렇게 이상한 이야기와 질문만 하다니.
 
 삼촌에게 뭔가 못 할 짓을 했다는 자괴감을 품던 찰나, 나를 바라보고 있던 삼촌이 입을 열었다.
 
 “증거를 보여주면 믿겠나?”
 “증거요?”
 “자.”
 
 그렇게 말하며 손바닥을 쫙 편 삼촌은 마치 그곳에 뭔가 나타날 것처럼 가만히 응시했다.
 
 하지만.
 
 “·········.”
 “·········.”
 
 당연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삼촌, 그래도 일하는 곳 찾는 건 어렵지 않을 거예요. 집은 저랑 같이 살면 되고, 삼촌은 그래도 외견은 20대라 어떻게 자리만 잡으면···.”
 “아, 실수했다. 일단 마력부터 좀 회복해야 하는데. 잠깐만 기다리렴.”
 “네, 그래요, 이제 집에가···죠?”
 
 삼촌의 헛소리를 받아치며 퇴원 절차를 밟으려는 찰나, 삼촌의 손위에 나타난 검은색 불꽃.
 
 “대기 중의 마력이 좀 모자라긴 해도, 마법을 부리기엔 충분하네.”
 
 갑자기 나타난 검은 불꽃에 내가 뭐라 반응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대응을 고르는 사이, 삼촌은 그걸 ‘휘둘렀다.’
 
 “꺄악! 뭐, 뭐야?!”
 
 그 순간, 내 시야는 어둠에 물들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칠흑과 같은 어둠에 당황하던 그때, 민감해진 귓가로 삼촌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정해라, 그냥 빛을 태운 것뿐이니까.”
 “비, 빛을 태···뭐에요, 그게!”
 “흑염은 빛을 태워서 자신의 몸집을 키우지. 한 번 흑염이 피어오르면 끌 방법은 두 가지뿐이야. 더 이상 태울 것이 없어지거나.”
 
 훅.
 “그것을 피워낸 이가 끄거나.”
 
 촛불 꺼지는 소리와 함께 다시 돌아온 시야.
 
 그런 소란 사이에도 삼촌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삼촌은···대체 뭐에요?”
 “말했잖아.”
 
 나도 모르게 입에서 새어 나온 질문에 삼촌은 착실히 아까 꺼냈던 대답을 되풀이했다.
 
 “마왕이었다고.”
 
 아무래도 내 삼촌은···정말로 마왕이었나보다.

댓글(17)

le******    
용사도 한두명이 아니라는데 마왕이라고 한걸 증거보여주기 전까지 너무 아니라고 단정하고 생각하네
2023.10.30 15:43
하우저    
다 연락안되니 조카한테 어케 연락한거아닌가요? ㅋㅋ
2023.11.05 22:51
행인.3    
이세계삼촌 의 어레인지?
2023.11.07 01:01
n8*************    
마왕이 나타났다...
2023.11.07 04:43
카문카사이    
음 이세계삼촌이 떠오른닷
2023.11.08 03:35
풍뢰전사    
모든 용사가 삼촌 죽이려고 돌격 ? 건필하세요
2023.11.08 19:50
표풍마제    
이세계삼촌 도입부와 유사하네요.
2023.11.20 10:09
샤이닝데스    
내 왼손에 흑염룡이 불타오른다!
2023.11.20 12:55
엑링    
도입부보고 이세계삼촌 생각나서 이세계 삼촌 정주행하고옴
2023.11.21 13:53
알바부자    
어디서 많이 본 전개지만 이정도는 비슷할 수 있다 생각함
2023.11.21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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