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폭군의 동생으로 살아가는 법

형제 (1)

2023.11.02 조회 186 추천 2


 #001. 형제 (1)
 
 
 
 
 
 “예? 뭐라고요? 그게 정말입니까? 알겠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통화를 끊고 나서야 모두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끌벅적했던 회식 자리가 쥐죽은 듯 조용해진 상태.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무슨 일이야?”
 
 옆자리에 앉은 김현준 대리가 슬쩍 물었다.
 성격 좋고, 능력 있는 내 사수.
 
 “대리님. 죄송하지만 먼저 일어나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형이 깨어났다고 해서요.”
 “형? 어······ 아! 그게 정말이야?”
 “예. 그래서 죄송하지만······.”
 “얼른 가. 윗분들께는 내가 말씀드릴 테니까.”
 “감사합니다.”
 
 평소였다면 예의를 차렸을 터.
 지금은 그럴 경황이 아니었다.
 곧바로 밖으로 달려 나와 택시를 잡았다.
 
 절실했던 덕일까.
 다행히 금방 잡을 수 있었다.
 
 “어디로 가드릴까요?”
 “한국대 병원으로 가주세요.”
 
 조수석 자리에 앉자, 그날의 악몽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10년 전 겨울.
 우리 가족은 다 함께 여행을 떠났다.
 
 형의 수능이 끝난 기념으로.
 곧이어 다가올 내 고3 생활이 무탈하게 넘어가길 기원하며.
 
 “그 여행만 안 갔더라도······.”
 “예?”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혼잣말이에요.”
 “안 좋은 일 같으니 깊이 묻지는 않겠습니다. 그래도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했습니다. 힘내세요.”
 “감사합니다.”
 
 나이 든 운전기사는 그 말을 끝으로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대화가 끊기자 다시금 그때가 떠올랐다.
 
 늦은 시각,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반대 차선에서 졸음운전을 하던 트레일러가 중앙선을 넘었고, 하필 우리 차와 부딪혔다.
 
 부딪혔다는 단어가 어울릴지는 모르겠다.
 분쇄기에 들어간 닭처럼 그대로 갈려버렸으니까.
 불행 중 다행은 트레일러 운전사가 뒤늦게 브레이크를 밟은 덕에 딱 차의 절반만 갈렸다는 점일까.
 
 앞 좌석에 앉아 있었던 부모님은 즉사.
 트레일러 운전사는 급브레이크의 여파로 싣고 있던 쇠파이프가 운전석을 뚫고 나와 사망.
 왼쪽 뒷좌석에 앉았던 형은 머리를 심하게 부딪쳐 식물인간.
 뒷좌석에 앉았고, 안전벨트까지 했던 나만이 무사히 살아남았다.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것이 너무나도 괴로워서, 그 뒤로 어떤 차든 뒷좌석에는 타지 못했다.
 
 “손님 다 왔습니다.”
 “······.”
 “손님?”
 “아. 감사합니다. 여기.”
 
 택시비를 계산한 후 병원 입구에 섰다.
 술이 확 깸과 동시에 덜컥 겁이 났다.
 형을 보면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살아줘서 고마워.’
 ‘걱정하지 마. 형은 내가 지킬게.’
 ‘혼란스럽겠지만 하나부터 천천히 시작해보자.’
 
 여러 고민을 한 끝에 스스로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걱정하는 건 ‘무엇을 말해줘야 할지 모르겠다.’가 아니라는 걸.
 
 “형이 날 몰라보면 어떻게 하지?”
 
 내 10년 전의 모습만 기억하고 있는 형이기에 지금의 모습을 보면 ‘누구세요?’라고 말할 수도 있다.
 천천히 알려주면 되지만 심적 충격이 상당할 것 같다.
 
 이대로 병원 앞에 서 있어 봐야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이 없었기에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그 걸음은 병실에 가까울수록 점점 느려졌다.
 
 ***
 
 형의 병실 근처로 가자 큰 소리가 들렸다.
 급하게 달려가 보니 비쩍 마른 남자가 의사와 간호사를 상대로 몸싸움을 하고 있었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괜찮다니까! 좀 꺼져!”
 
 비쩍 마른 남자는 다름 아닌 형.
 아무리 바빠도 매주 한 번씩은 찾아왔기에 단번에 알아보았다.
 
 “여어, 민석이냐?”
 
 형은 건장한 남자 간호사도 가볍게 제압한 후 느긋하게 손을 흔들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정도로 감동의 재회임에도 어이가 없어서 입이 떡 벌어졌다.
 
 혼자서 여러 남자 간호사를 가볍게 제압하다니.
 10년 동안 식물인간이었다는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어······ 나 기억해?”
 “못할 것 같냐?”
 “그래도 나 키도 좀 컸고, 모습도 좀 변했고······.”
 “발걸음 소리만 들어도 안다.”
 “그보다 일단 그분들부터 풀어줘.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이것들이 꼴 받게 하잖아. 감히 내가 퇴원하겠다는데 길을 막아?”
 “이제 막 일어난 사람에게 따지고 싶지는 않은데, 모든 일에는 절차가 있어. 퇴원 수속을 밟아야······.”
 “시끄럽고. 내가 건강하면 퇴원하는 거다.”
 
 한쪽에 있던 의사분을 보았다.
 우연찮게도 오늘 당직 의사가 형의 담당의다.
 
 “이런 건 경우 없는 일이라는 건 아는데······ 혹시 퇴원 가능할까요? 입원비는 바로 계산하겠습니다.”
 “환자분의 건강을 생각하면 시간을 두고 경과를 지켜보시는 게 좋습니다만······.”
 “돌팔이 자식이 말귀 더럽게 못 알아듣네. 난 건강하다니까? 처신 잘해라. 뒤지게 처맞기 싫으면.”
 “이곳에 있으면 정신이 더 불안정해질 수 있으니 특별 조치하겠습니다. 아무래도 동생분과 있는 게 정서적으로 더 좋을 것 같군요.”
 
 의사분은 불쾌한 기색도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
 별의별 환자를 다 겪어본 베테랑의 품격이 느껴졌다.
 
 “다만 식물인간 상태에서 깨어난 환자는 작은 자극에도 큰 혼란을 겪거나, 매우 폭력적으로 변할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 환자분이 안정되면 다시 검진받으러 오시고요.”
 
 이 말은 아주 작게 속삭였다.
 
 “예. 다시금 감사드립니다.”
 
 담당의는 간호사들을 데리고 조용히 병실 밖으로 나갔다.
 고생하신 분들께 일일이 사죄와 감사의 말을 드렸는데, 다행히 다들 이해해 준 것 같았다.
 앙금이 남지 않도록 다음에 올 때 선물이라도 준비해야겠다.
 
 “엄빠는?”
 
 모두 바깥으로 나가자, 불의의 질문이 들어왔다.
 
 “응?”
 “부모님은 어디 계시냐고.”
 
 식은땀이 흘렀다.
 그 자리에서 돌아가셨으니까.
 하지만 형은 그 사실을 모른다.
 
 “그······.”
 “돌아가셨나 보네.”
 “응······.”
 
 형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라도 살아서 다행이다.”
 “형도 깨어나서 다행이야.”
 “그 사고 뒤로 몇 년이나 지났어?”
 “사고는 기억해?”
 “생생하게 기억난다.”
 “9년 9개월 째야. 3개월 뒤면 딱 10년이고.”
 “고생 많았네.”
 
 너무나도 차분한 그 말에 두 눈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남자 새끼가 왜 우냐.”
 “이럴 땐 울어도 돼.”
 “나잇살만 처먹었지, 여린 건 그대로네.”
 “형이 이상한 거야.”
 
 10년간 식물인간이었던 사람이 이렇게 차분한 게 훨씬 이상하다.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다들 내가 정상이라고 할 테지.
 
 “됐고 퇴원하자. 치맥 땡긴다.”
 “10년간 아무것도 못 먹은 사람이 무슨 치킨이야? 나중에 배 터지게 먹여줄 테니까 지금은 참아.”
 “괜찮다니까? 소 한 마리를 통째로 회 쳐 먹어도 문제없어.”
 “아무튼 안 돼. 절대 안 돼.”
 
 한동안 실랑이를 했지만, 형은 결사반대를 외치는 내 고집을 꺾진 못했다.
 
 “와. 살다 살다 내 앞길을 막는 사람은 처음 본다. 거인 왕의 대가리도 깨버렸는데.”
 “그, 그래?”
 “각 종족의 왕들도 내 앞에서는 벌벌 기지. 넌 내 동생이라 복 받은 거다.”
 “······참 영광이네.”
 
 떠올려보면 형의 취미는 판타지와 무협지를 보는 것이었다.
 ‘남자답다.’라는 이유로 주로 무협지를 봤었지.
 
 과거의 기억과 소설 내용이 섞여 현실을 혼동하는 것일 터.
 이럴 때일수록 내가 형을 더 잘 보살펴줘야 한다.
 
 “민석아.”
 “응.”
 “너 내 이름 기억하냐?”
 “당연하지.”
 “뭔데?”
 
 형제니 성은 당연히 나와 같은 ‘김’이다.
 마지막 자는 돌림자로 ‘석’을 쓴다.
 
 “김제석.”
 “기억하고 있었네. 고맙다.”
 
 형은 대한제국의 ‘제’자를 따와 김제석.
 나는 대한민국의 ‘민’자를 따와 김민석.
 
 “옛날 일이 떠오르네.”
 “옛날 일?”
 “형이 수능을 대차게 말아먹고 한국대에서 떨어진 거.”
 
 형은 체육 특기생이었다.
 종목은 검도.
 무려 전국소년체전, 전국체전(고등부), 전국 학생 검도 대회 우승이라는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인재였다.
 
 덕분에 실기로 한국대 체육특기자로 입학할 수도 있었지만······.
 내신과 수능이 너무 낮아서 실패.
 오직 경기 커리어로만 평가해주는 대학에 진학하기로 했다.
 
 “나도 기억난다. 아부지가 ‘이게 다 이름을 잘못 지은 내 탓이다.’라고 한탄하셨었지.”
 “단순히 형이 공부를 안 한 탓이었지만 말이야.”
 “그러게.”
 
 추억을 이야기하기 시작하자 분위기가 따뜻해졌다.
 
 “50년 만이다. 민석아. 정말 보고 싶었어.”
 “10년 만이라니까. 그리고 나도 정말 보고 싶었어.”
 “나에겐 50년 같은 10년이었다.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려줘서 고맙다.”
 
 사고 이전의 형과 나는 그야말로 ‘현실 형제’와 똑같았다.
 연년생이다 보니 어렸을 땐 툭하면 싸웠고, 사춘기를 겪고 나서는 간단한 인사 외에는 어떠한 소통도 없는 데면데면한 관계.
 
 하지만 이렇게 고난을 겪고 다시 마주하게 되니 형이 너무나도 소중하고 애틋했다.
 
 “근데 민석아.”
 “응?”
 “너 혹시 지금 인생에 만족하냐?”
 “딱히 불만족스러울 건 없지.”
 
 솔직히 말하자면 상당히 불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앞으로는 점점 더 불만족스러워질 터였다.
 부모님이 남겨주신 유산도, 보험금도, 트레일러 회사에서 준 보상금도 병원비로 다 소비된 상태였으니까.
 
 만약 형이 깨어나지 않았더라면 조만간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겠지.
 그 한계가 왔을 때, 눈물을 머금고 포기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명목으로.
 
 그러나 지금부터는 괜찮다.
 새삼 깨닫자 지금의 상황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깨달았다.
 
 “아니. 만족스러워.”
 “그러냐.”
 
 더는 여한이 없다.
 
 “하긴. 얘도 이제 성인인데 인생을 내 마음대로 바꾸면 안 되겠지?”
 “무슨 말이야?”
 “그런 게 있어.”
 
 형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계속 나를 쳐다보았다.
 어째 형의 눈빛이 탐스러운 먹잇감을 바라보는 맹수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
 
 병원을 나와 곧바로 택시를 탔다.
 
 “나 비싼 곳에 입원했었네. 돈은 괜찮냐?”
 “이제는 괜찮아.”
 “저런 돌팔이들한테 돈을 퍼줬구나. 돈이 썩어나네.”
 “그런 말 하지 마. 형을 살려준 은인분들이니까.”
 “은인은 개뿔. 식물인간을 건드릴 게 뭐 있냐. 검사비 명목으로 링거 꽂아놓고 돈이나 받아 챙긴 거지.”
 
 사정을 모르니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상당히 신랄한 평가였다.
 
 “당연히 기억 못 하겠지만, 저분들 아니었으면 정말 위험할 뻔했어.”
 “왜?”
 “형은 평범한 식물인간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면?”
 “상처 입는 식물인간이었어.”
 “······ 응?”
 “팔이나 다리, 가슴 등에 갑자기 자상(刺傷)이나 골절상이 생겨났거든. 아무 이유도 없이 말이야.”
 
 의사들도 처음 본다고 했다.
 인체 발화는 들어봤어도, 갑자기 베인 상처가 나타나다니.
 
 “심지어 7년 전에는 갑자기 왼쪽 가슴에 관통상이 나타나서 그대로 죽을 뻔한 적도 있어.”
 
 다행히 심장박동 측정기가 곧바로 이상을 알렸다.
 그 즉시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고 수술해서 살려냈고.
 
 만약 형이 입원한 곳이 대학병원이 아니었다면.
 이곳에 심장전문의가 없었다면.
 그대로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은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랬냐?”
 “응. 그래서 다른 병원으로 옮기지도 못했어. 언제 또 기이한 상처가 나타날지 모르니까.”
 
 덕분에 생각보다 일찍 재산이 바닥날 뻔했다.
 병원 측에서 희소병 연구라는 명목으로 수술비를 크게 감액해주지 않았다면 정말 위험했겠지.
 
 “그러니 막말하는 것은 안 돼. 저분들은 정말 생명의 은인이니까.”
 “그렇구나. 근데 지금 어디로 가는 거냐. 집 방향이 아닌데?”
 “내 자취방.”
 “원래 집은 어떻게 됐어?”
 “······팔았어.”
 
 원래부터 대출이 끼어있는 데다가 상속세까지 내고 나니 생각보다 큰돈은 아니었다.
 그 돈은 전부 형의 병원비로 들어갔다.
 
 “예상은 했지만, 할 이야기가 참 많을 것 같네.”
 “많지. 무슨 얘기가 듣고 싶어?”
 “네가 살아온 이야기.”
 “상당히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은데 괜찮아?”
 “남는 게 시간이다.”
 “그건 그렇네. 집에 도착하면 말해줄게.”
 
 형은 생각보다 침착해 보였다.
 또한, 그때의 일을 또렷하게 기억하는 것 같으니 얼버무릴 일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지난 10년간 있었던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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