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초고교급 순정파 스트라이커

프롤로그

2023.12.04 조회 29,846 추천 288


 새해를 한 달 남겨놓은 2005년 12월.
 
 나는 2006년에 입학할 예정인 목하고등학교 축구부의 부름을 받아 동계 훈련에 참여하게 되었다.
 
 중학교 졸업식을 치르지도 않은 마당에 고등학생들과 함께 훈련하려니 어색했지만, 불만은 없었다.
 
 일찍 합을 맞춰 팀워크를 잘 짜 놓으면 내년 전국 대회에서 좋은 활약을 펼칠 확률이 올라갈 테니까.
 
 ‘중학교 축구든 고등학교 축구든, 어차피 대회 성적이 전부니까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야.’
 
 대한민국의 유소년 축구계에서 전국 대회 성적은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고등부의 경우, 16강이나 8강 진출 이상의 대회 기록이 있어야만 체육 특기자 전형을 통해 대학교 진학을 노려볼 수 있었다.
 
 그런 만큼 감독님이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이렇게 안달을 내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전국 대회 성적이 곧 자기 밥줄과 다름없으니, 지도자든 선수든 간절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선수 쪽이 훨씬 더 간절하긴 하지만.’
 
 학창 시절 대부분을 축구만 하면서 보낸 아이들이 그것을 그만두면 어떻게 되겠는가?
 
 사회의 낙오자가 되겠지.
 
 축구부 아이를 둔 학부모들이 축구계 인맥이 뛰어난 사람을 감독으로 선호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자기 자식이 어떻게든 축구를 이어가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란 그토록 간절한 것이었으니까.
 
 ‘이번 감독님은 좋은 사람이기를······. 다른 건 다 괜찮으니까, 제발 때리지만 마라.’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이유로 유소년 축구계에서 감독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다.
 
 선수들을 상대로 비인간적인 행동을 하는 것도 얼마든지 용인될 수 있다는 소리였다.
 
 내 중학교 축구부 감독은 ‘미친개’라 불리는 남자였는데, 별명에서 알 수 있듯 제정신이 아니었다.
 
 선수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플레이를 펼치면 경기 도중에도 불러내 뺨을 때리며 윽박질렀으니까.
 
 그렇게 애들을 패서 기강을 잡은 덕에 전국 대회 성적은 좋았지만, 그 반동 또한 어마어마했다.
 
 나와 같이 축구부에 들어왔던 열 명 중 운동을 그만둔 인원이 무려 일곱 명이었으니, 그 패악질이 얼마나 심했는지는 가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내가 그 더러운 꼴을 보고도 꾸역꾸역 축구를 이어갈 수 있었던 건 나 자신이 겁쟁이였기 때문이었다.
 
 그만둘 용기가 없으니 계속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엄마랑 아빠가 지금까지 나한테 투자한 게 얼마인데 그만둬?’
 
 나에게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주목.”
 
 중저음의 목소리를 들은 나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이마에 M자 라인이 선명하게 나타나 있고, 정수리가 휑하게 비어 있는 중년 남성이 근엄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바로 서울 목하고등학교의 축구부 감독직을 맡고 있는 단책무였다.
 
 “만나자마자 훈련하면 정 없잖아? 그러니 지금부터 자기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볼까 한다. 자, 왼쪽부터 시작하자.”
 
 단책무 감독님이 그리 말하며 손뼉을 치자, 일렬로 서 있던 신입생 중 가장 좌측에 서 있던 선수가 입을 열었다.
 
 “서울 선일중학교에서 온 안준수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짧은 자기소개가 끝나자, 우리와 마주한 채 조용히 그것을 듣고 있던 축구부 선배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성의 없이 박수를 두어 번 쳐주었다.
 
 다들 키도 크고 덩치도 좋은 걸 보니, 확실히 이곳이 고등부라는 게 체감되었다.
 
 ‘나는 뭐라고 하지?’
 
 맨 오른쪽에 서 있는 나는 마지막 차례였으므로, 머릿속으로 문장을 정리할 시간이 있었다.
 
 대충 해도 상관은 없겠지만, 무난하게 자기소개를 끝내는 것은 별로 내키지 않았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내 존재감을 각인시켜 놓아야 그들이 내게 관심을 가질 테니까.
 
 그러면 나에게 찾아오는 기회도 많아지겠지.
 
 그렇게 머리를 쥐어 짜내며 열심히 할 말을 고르고 있자니 어느새 내 순서가 다가왔다.
 
 “울산에서 온 강철혼입니다. 감독님과 코치님, 그리고 선배님들의 좋은 지도·편달을 통해 훌륭한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다들 전국 대회 우승이라는 목표를 두고 한마음 한뜻으로 달려봅시다!”
 
 이번에 입단하게 될 신입생 중 가장 길게 자기소개를 이어가서 그런 걸까?
 
 내 말을 듣던 사람들은 이전처럼 대충 반응하지 않고 잠시 머뭇거렸다.
 
 “편달이 무슨 뜻이야?”
 
 “그것도 모르냐, 이 무식한 새끼야? 네가 내 친구라는 게 부끄럽다. 공부 좀 해라, 제발.”
 
 “아니, 그래서 뭐냐고. 알려주기나 해.”
 
 “나도 몰라.”
 
 “미친놈인가?”
 
 눈앞에 있는 선배 두 명이 작게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그것을 모르는 체했다.
 
 여기서 웃음을 터트리면 앞으로의 축구부 생활이 고달파질 수도 있었으니까.
 
 다행히 평소에도 표정 변화가 적은 나라서 무난하게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할 수 있었다.
 
 “어어, 그래. 말 잘하네, 철혼이. 너는 나중에 프로 선수 되면 기자들이 좋아하겠다. 자자, 다들 가만히 뭐해? 신입생이 인사를 했으면 환영해 줘야지.”
 
 단책무 감독님의 재촉이 있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선배들은 이전과 같은 설렁설렁한 박수로 나를 맞아주었다.
 
 그렇게 신입생 인사가 끝나자, 이번에는 단책무 감독님과 코치님, 그리고 선배들의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개중 가장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끈 이는 이 자리의 유일한 3학년으로, 졸업을 목전에 둔 남자였다.
 
 “반갑다, 얘들아. 난 박준재다.”
 
 자신을 박준재라고 소개한 선배는 하나같이 까까머리를 한 축구부 선수 사이에서 홀로 장발을 유지하고 있어 유독 눈에 띄었다.
 
 이때, 점잖게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단책무 감독님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이번에 서울 에일리언즈와 계약한 너희 선배다. 한창 바쁜 시기인데, 내가 후배들한테 좋은 말 좀 해달라고 사정사정해서 어렵게 데려온 거야.”
 
 모든 고교 축구 선수들의 꿈인 프로 데뷔.
 
 졸업과 동시에 프로 선수가 되었다는 말을 들은 신입생들의 눈동자에 부러움이라는 감정이 깃들었다.
 
 물론 그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1·2학년 선배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사람이 박준재······.’
 
 이미 뉴스나 신문을 통해서 몇 번 본 적이 있었으므로, 얼굴이야 잘 알고 있었다.
 
 박준재 선배는 그만큼 유명한 사람이었다.
 
 고교 최대어, 전국구 유망주, 축구 천재.
 
 이 모든 게 단 한 사람에게 붙은 별명이라는 사실이 믿기는가?
 
 그는 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 전국 규모의 여섯 개의 대회에 참가하여 한 번의 우승과 네 번의 득점왕을 차지한 괴물이었다.
 
 그 정도는 해야 고등학교 졸업 전에 프로팀과 계약할 수 있는 거겠지.
 
 ‘내가 과연 고교 무대에서 저 사람과 비슷한 수준의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을까?’
 
 그러한 의문을 가짐과 동시에 숨이 턱턱 막히고, 속이 메슥거리기 시작했다.
 
 애써 머릿속을 비운 나는 침을 삼키며 토기를 가라앉히고는 박준재 선배의 말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너희도 프로 선수를 지망하는 만큼 분명 닮고 싶은 선수가 있겠지. 아주 좋은 자세야. 하지만 거기서 그쳐야 해. 본받는 걸 넘어서, 그 선수가 되려고 하면 안 된다는 소리다. 내 말 알겠지?”
 
 바쁘다는 단책무 감독님의 말이 허언이 아니었다는 듯 박준재 선배는 짧은 덕담을 마치고는 자리를 떠났다.
 
 “자, 그러면 이제 몸 풀자!”
 
 그렇게 자기소개 시간이 끝나자, 단책무 감독님의 입에서 준비운동을 하자는 말이 나왔다.
 
 오늘, 신입생들의 실력 점검을 위해 새내기 팀과 1·2학년 팀의 자체 청백전이 예정된 터라 부상 방지를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 과정이었다.
 
 “가자.”
 
 코치님이 선두에 서서 뛰고, 그 뒤로는 내가 포함된 신입생들, 최후미에는 선배들이 자리했다.
 
 그리고 동네 뒷산처럼 볼록하게 튀어나온 배가 인상적인 단책무 감독님은 한쪽으로 빠져서 팔짱을 낀 채 날카로운 눈으로 우리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안녕.”
 
 호흡을 조절하며 차분하게 뛰고 있는데, 옆에서 나란히 달리던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걸었다.
 
 이름이 ‘안’으로 시작한다는 것까지는 기억이 났는데, 나머지 두 글자가 생각나지 않았다.
 
 얼굴이 말상이라 기억에 남는 동기였다.
 
 “안준수.”
 
 내가 머뭇거리는 것을 확인한 동기는 자기 얼굴을 오른손 검지로 가리키며 제 이름을 말해주었다.
 
 “그래, 만나서 반갑다.”
 
 “와, 확실히 서울 사람 아니라는 게 확 티가 나네. 억양부터가 달라. 아, 맞다! 나 궁금한 거 있는데 물어봐도 돼?”
 
 “어.”
 
 “울산에서 서울까지 올 정도면 장학금 많이 받았을 텐데, 얼마 정도 받았어?”
 
 “생각보다 그렇게 안 많다. 월 회비 두 번 내면 없어질 돈이니까. 그냥 여기가 스카우트 제의 온 곳 중에 가장 조건이 좋아서 온 거다.”
 
 축구공만 있으면 될 것 같아도 축구는 생각보다 돈 나갈 구석이 많은 스포츠였다.
 
 코치 인건비, 식비, 피복비 등등, 다양한 항목이 회비라는 이름으로 월마다 빠져나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대회에 참가하거나 전지훈련을 가게 되면 숙박비나 훈련비가 붙어 그 금액은 더 늘어났다.
 
 1년에 대략 천만 원 정도가 소모되니, 결코 우습게 볼 액수가 아니었던 것이었다.
 
 물론 천만 원이라는 돈이 누군가에게는 그리 큰 금액이 아닐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아니, 우리 가족에게는 어마어마한 액수였다.
 
 ‘월 회비 50% 원조, 축구화랑 피복 등등의 축구용품 무상 지원, 기숙사비 면제.’
 
 이것이 장학생인 내가 받는 혜택들이었다.
 
 이렇게라도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드릴 수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야, 울산이 고래로 유명하다며. 너 그러면 고래도 실제로 본 적 있겠네?”
 
 별안간 안준수가 화제를 바꿨다.
 
 대화 주제가 빠르게 바뀌는 걸 보면 호기심이 많은 친구인 듯했다.
 
 나로서도 나쁜 일은 아니었다.
 
 조용히 뛰는 것보다야 이야기를 나누며 새 친구를 사귀는 편이 더 재미있었으니까.
 
 “아니.”
 
 “울산 사람이 고래를 본 적이 없다고? 고래 고기는 먹어본 적 있겠지?”
 
 “한 번도 안 먹어봤는데.”
 
 “너 진짜 울산 사람 맞아?”
 
 “어, 토박이다.”
 
 안준수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보니, 어느새 준비운동이 끝나 있었다.
 
 그렇게 운동을 마치자, 단책무 감독님은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 선수들을 경기장 중앙에 불러 모았다.
 
 “연습 경기는 전후반 삼십 분, 총 육십 분 동안 진행할 거다. 연습이라고 해서 대충하지 말고 전력을 다해서 뛰도록. 알겠나?”
 
 “예!”
 
 단책무 감독님의 말에 너 나 할 것 없이 힘차게 대답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내 두 팀으로 갈라져서 각자의 진영으로 향했다.
 
 공격수인 나는 선축을 위해 센터 마크로 향했다.
 
 1·2학년 선배들이 후배들을 위해 선공을 양보해 준다는데 기꺼이 받아줘야 하지 않겠나.
 
 ‘여기서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중등부든 고등부든, 일반적으로 1학년 선수는 후보로 기용되거나 전력 외로 구분될 가능성이 높았다.
 
 한창 배우고 성장할 시기라 2학년, 3학년 선배들과의 1·2년 차이가 어마어마하게 컸으니까.
 
 내가 장학생이라 해도 훈련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 단책무 감독님도 날 주전 선수로 쓰지 않을 터.
 
 ‘그러니 지금 눈도장을 확실하게 찍어 놔야지.’
 
 내 심장이 빠르게 두근대기 시작했다.

댓글(16)

샤옹    
일단 90년생인거에 대만족
2023.12.04 23:56
모란    
오옹 기대합니다
2023.12.11 23:20
귀욤둥이    
부모님이 투자한거때문에 맞아가며 한다는게 현실이라 슬프네 ㅠ 재능이라도 흘러넘치길..
2023.12.18 00:50
의설    
철혼..인공이름이 아주 특이하군요
2023.12.18 11:54
이앵요    
철이 빨리들었네요...주인공
2024.01.09 17:04
사막물고기    
서울촌놈ㅋㅋㅋ 울산도 광역시인데 서울밖은 다 시골이라 생각하고 ㅋㅋㅋ
2024.01.12 07:48
주니서기    
건필하세요 ~
2024.01.12 08:10
만초    
이름이 단책무, 철혼... 작가님 전날 무협지 읽다가 잠드셨나요?
2024.01.12 15:02
포히나    
맞다 울산은 고래 타고 출퇴근 한다ㅋㅋㅋ 부산은 갈매기 대전은 튀소 제주도는 감귤ㅋㅋㅋㅋㅋ
2024.01.13 07:06
난냐바난냐    
울산출신 주인공 처음봄 반갑넹ㅋㅋㅋㅋ
2024.01.14 15:09
0 / 3000

이용약관 유료이용약관 개인정보처리방침 청소년보호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