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음악 천재로 다시 산다

1화. 재벌집 막내아들의 기일

2023.12.04 조회 13,648 추천 168


 “김선우 과장님, 잠시만요. 이거 챙겨가세요.”
 
  하품을 하며 콘서트홀에 들어가려는 나를 홍연정 대리가 불러 세웠다. 음악회 프로그램 북을 한 부 건네면서.
 
  “됐어. 내가 보면 뭐 아나.”
  “그래도요. 도움이 되실 거예요.”
 
  빳빳한 책자를 받아들었다. 표지에 새겨진 공연 정보가 눈에 먼저 들어왔다.
 
  [수성문화재단 설립 14주년 기념 음악회]
  일시: 2023년 10월 17일(화) 오후 7시
  장소: 선중아트센터 콘서트홀
  주최: 수성문화재단
 
  책자를 휘리릭 넘겨보았다. 재단 소개, 이사장 인사말, 연주자와 오케스트라 소개에 연주곡 정보까지. 무료로 배포하는 건데 이렇게 두껍고 고품질로 만들어야 하나?
 
  한 번 읽고 버려질 책자에도 과감히 돈지랄을 하는 건 뭐든지 일류를 고집하는 선중그룹의 사풍과 일맥상통한다.
 
  “홍 대리, 고마워. 휴우. 삼십 분이라도 앉아서 음악 감상 좀 제대로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에이. 잠깐 눈 붙이시려는 건 아니고요?”
  “그럴 리가. 그리고 누가 그러는데··· 연주를 들으면서 자는 건 그 연주가 훌륭해서라고. 수준 이하의 연주면 도저히 잠을 잘 수 없다던데?”
  “네에? 호호호. 그럴듯하네요.”
 
  홍 대리가 로비가 울리도록 크게 웃었다. 문화재단에서 일하며 임기응변이 일상이 되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 모두 내가 클래식 음악에 문외한인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 내가 문화재단에서 일한다는 건··· 음악적 소양이 필요한 일이 아니라는 뜻이지.
 
  수성문화재단의 이사장이자 선중그룹 임두열 회장의 부인인 윤경애를 보필하는 것이 내 주 업무이다.
 
  남들은 문화재단에서 일해서 좋겠다고들 한다. 세계적인 연주자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선율을 수없이 들을 수 있으니까.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소리다. 클래식 명곡으로 감동하기보다 윤경애 이사장의 갑질 샤우팅으로 감정 상하는 일이 더 많은 일이다.
 
  이사장 생각에 쓴웃음이 얼굴에 퍼졌다. 홍 대리에게 눈인사를 하고 콘서트홀 안으로 들어갔다.
 
  무대에는 이미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자리에 앉아 리허설을 준비하고 있었다. 휴대전화를 진동 모드로 설정하고 객석의 뒤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곧이어 백발이 성성한 피아니스트 권유진이 지휘자 백영민과 함께 무대로 등장했다. 권유진이 천천히 피아노 앞에 앉자, 백영민이 경쾌한 발걸음으로 포디움에 올라섰다.
 
  음악은 모르지만 권유진은 알았다. 세계 무대에서 활약한 한국 1세대 피아니스트로 ‘건반 위의 음유 시인’이란 칭호 정도는 상식이니까.
 
  관객이라고는 오케스트라 직원과 권유진의 매니저, 아트센터 직원 몇몇과 내가 전부였다. 객석은 썰렁했지만, 본 공연과 크게 다르지 않은 긴장감이 무대에 흘렀다.
 
  심호흡을 한 권유진이 조심스럽게 건반에 손을 얹었다. 지휘자와 모든 단원들이 숨을 죽인 채 이목을 그에게 집중했다.
 
  시작은 피아노 솔로였다. 권유진이 천천히 반복적으로 화음을 하나하나 짚었다. 비장하고 위엄 있게. 그 사이사이 왼손을 옮겨 피아노의 저음을 강렬하게 터치했다. 마치 노크를 하듯.
 
  조금씩 분위기가 고조되자 지휘자가 지휘봉을 들었다. 이어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피아노를 부드럽게 감싸는 서정적인 멜로디를 만들어 냈다.
 
  꿈결에서 들리는 듯 부드럽고 아름다운 음악이었다. 그러면서도 어딘가 우울한 곡의 분위기가 마음을 차분하게 했다.
 
  곡 정보를 얻기 위해 프로그램 북을 확인했다.
 
  -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c단조, Op. 18
 
  모차르트, 베토벤, 쇼팽 정도는 아는데 라흐마니노프는 처음이었다. 이렇게 아는 풍월이 늘어 가는 거겠지.
 
  어느새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선율을 주고받으며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나는 잠시 눈을 붙이려던 생각을 고쳐먹고 음악 속으로 빠져들었다.
 
  격정적으로 1악장을 마무리하고 연주자들이 잠시 숨을 골랐다. 잠깐의 침묵 후 감성적이고 아름다운 선율이 콘서트홀을 휘감았다. 천국에 가면 이런 멜로디가 늘 흐르지 않을까 싶은.
 
  처음이었다. 음악이 이렇게 아름답다고 느낀 것은.
  황홀했다. 이 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만큼.
 
  - 지이이잉.
 
  그럼 그렇지. 느린 악장을 채 듣기도 전에 나를 찾는 전화가 울렸다.
 
  윤경애 이사장의 수행비서인 김소현이었다. 서둘러 콘서트홀을 빠져나오며 전화를 받았다.
 
  “네. 김 비서님.”
  - 김 과장님. 곧 언론사 인터뷰가 시작하는데요. 김 과장님도 들어오라고 하십니다.
  “아··· 알겠습니다.”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인터뷰 자리에는 수성문화재단 김성규 대표가 배석하기로 했었다.
 
  예상치 못한 일에 당황하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이 일을 하면서 익힌 첫 번째 덕목이었다.
 
 
 ***
 
 
  “우리 아들이 음악을 너무 사랑했어요. 지금도 아마 하늘나라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을 겁니다. 음악적으로 재능이 출중했었는데 제가 음악을 하지 못하게 말렸었거든요. 그게 못내 후회가 되네요.”
  “음악을 하지 못하게 한 이유가 있으십니까?”
  “음악이 직업이 된다는 거···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제가 피아노를 전공해서 누구보다 잘 압니다.”
 
  선중아트센터 VIP룸.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윤경애 이사장과 중도일보 기자가 마주 앉았다. 문화재단 김성규 대표는 두 사람에게서 약간 떨어진 자리에 앉아 이사장의 인터뷰 내용을 귀담아듣는 모습이었다.
 
  김소현 비서와 함께 문가에 서서 이 모든 장면을 바라보니 방금 전까지 들었던 라흐마니노프의 선율이 꿈처럼 아득했다.
 
  “오늘이 임수성 군의 기일이지요? 아들을 떠나보내시고 많이 힘드셨겠습니다. 십오 년이 지난 지금은 좀 어떠신가요?”
  “하아. 많이 그립···”
 
  기자의 조심스러운 그러나 눈치 없는 질문에 윤경애 이사장이 말을 잇지 못했다.
 
  재빨리 걸음을 옮겨 윤경애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눈치껏 센스 있게 행동하는 것. 이 일의 두 번째 덕목이겠다.
 
  윤경애가 손수건을 받아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았다.
 
  찰칵. 찰칵.
 
  이 장면을 놓치지 않고 사진 기자가 셔터를 눌렀다. 재벌가 사모님의 뜨거운 눈물. 내일 인터뷰 기사에 쓸 메인 사진이 되겠군.
 
  “아들을 잃은 슬픔은 아마 제가 평생 안고 가야겠지요. 그래도 음악이 있어서 힘을 낼 수 있습니다. 수성이도 기뻐할 거예요. 자신의 이름을 딴 문화재단을 통해 세상을 향기롭게 하는 음악이 울려 퍼지는 걸 알게 된다면.”
 
  마음을 추스르고 내놓은 윤경애의 답변에 기자는 꽤 감동한 눈치였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임수성. 선중그룹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스무 해 짧은 생을 살고 요절한 재벌가 비운의 아이콘.
 
  채 피지도 못하고 져버린 막내아들이 안타까워 선중가(家)는 그의 첫 기일에 ‘수성문화재단’을 설립했다.
 
  대기업이 문화재단을 만드는 게 새로운 일은 아니었지만, 수성문화재단은 일찍 세상을 등진 아들의 이름으로 세워졌다는 점에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수성문화재단이 주목받으며 베일에 싸여있던 윤경애 이사장의 존재도 자연스럽게 세상에 드러났다. 가정주부로 남편 내조에 힘쓰다 아들의 죽음을 계기로 문화사업에 뛰어든 한국의 위대한 어머니.
 
  언론에 비친 윤경애는 한없이 자애롭고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현숙한 여인이었다. 적어도 그녀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야! 너! 내가 진주 귀걸이랑 목걸이 챙기라고 했어? 안 했어?”
  “···네?”
 
  이렇게 목에 핏대를 세우며 아랫사람을 몰아세우는 모습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겠지.
 
  “너 제정신이야? 내가 오늘 음악회에 하겠다고 준비하라고 했잖아!”
  “······.”
 
  놀란 표정이 아니라 멍한 표정의 김소현을 보니 시키지도 않은 일로 사람을 잡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오늘 조용히 넘어가기는 글렀다. 재단 직원들이 한 달 넘게 준비한 음악회가 진주 때문에 망하게 생겼다.
 
  김소현은 항변하는 대신 고개를 숙였다.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윤경애 옆에서 3년을 보좌한 비서의 자세였다. 나는 경외의 감정으로 김소현을 응시했다. 김 비서를 따라가려면 나는 한참 멀었다.
 
  “김 과장. 지금 당장 집에 가서 진주 세트 가지고 와. 리셉션 시작하기 전에!”
 
  현재 시각 오후 5시. 리셉션까지 한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퀵서비스로 시키면 간당간당하게 맞출 수 있을 텐데 귀금속이라 불가능할 터.
 
  “알겠습니다.”
 
  어떤 상황에도 ‘알겠다’고 하는 것. 그것이 내가 하는 일의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
 
 
  “아이고. 김 과장. 비도 오는데 오토바이 타고 온 겨? 근데 갑자기 진주는 왜 찾는담?”
  “오늘 음악회에 하시겠다고 하셔서요.”
  “하여간 변덕은. 직접 다이아몬드 골라서 차고 나갔으면서. 아이고. 나 좀 봐. 별소리를 다 하네. 늦기 전에 얼른 가봐. 운전 조심하고.”
 
  우산을 들고 저택 대문 앞에서 나를 맞이한 도우미 이모가 혀를 끌끌 찼다. 보자기에 꽁꽁 싸맨 진주 세트를 백팩에 넣고 서둘러 인사를 했다.
 
  부아앙.
 
  택시로 이동하면 시간을 맞추기 어려울 것 같아 퀵서비스 배달 기사에게 50만 원을 주고 오토바이를 잠시 빌렸다.
 
  이럴 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임무를 수행해야만 한다. 흙수저인 내가 날고 긴다는 동기들을 제치고 선중그룹 오너 일가의 눈에 든 비결이었다.
 
  양복에 빗물이 조금씩 스며들었다. 스산한 기운에 서러움이 조금씩 밀려오자, 아버지 생각이 났다.
 
  - 아이고. 선우야. 네가 선중그룹에 입사하다니···. 아비가 되어서 해준 것도 없는데. 고맙다. 요즘 같은 취업난에 대기업에 들어가다니 하늘이 도왔구나.
 
  내가 선중그룹에 입사하던 날 아버지의 눈물을 처음 보았다. 어머니를 일찍 보내고 홀로 나를 키우며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그런 아버지를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다.
 
  선중그룹 전략기획팀을 거쳐 비서실에서 근무하며 격무에 시달릴 때였다. 김성규 대표가 수성문화재단에서 함께 일해보자고 제안을 했다. 수성문화재단에서 주최한 봉사활동에 참여한 나를 윤경애 이사장이 좋게 보았다는 말을 곁들이면서.
 
  3년 정도 일하면 해외 지사로 발령받게 해주겠다는 말에 넘어가 지금 난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성공해서 이런 날이 있었지, 하고 웃으며 말할 수 있기를··· 또다시 이를 악물었다.
 
  부아아아앙.
 
  멀리 선중아트센터가 보였다. 급한 마음에 교차로를 지나 속도를 조금 올렸을 때였다.
 
  갑자기 할머니 한 분이 차도로 내려와 길을 건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나는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보행자를 치지 않기 위해 운전대 방향을 급히 틀었다.
 
  끼이이익. 콰아아아쾅!
 
  인도 난간에 오토바이가 세게 부딪치더니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시간이 멈춘 듯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때 귓가에 천국의 선율이 들려왔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건반 위를 수놓았던 하얀 손이 강렬한 피아노 선율이 되어 나를 심연으로 끌고 들어갔다.
 
  쿵.
 
  바닥에 내리꽂힌 나를 오케스트라의 유려한 음이 감쌌다. 태아를 감싸는 어머니의 포근한 자궁같이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빠알간 피 위로 하얀 진주알이 천사의 눈물처럼 흩뿌려졌다.
 
  나는 죽었다.
  재벌 집 막내아들의 기일에.

댓글(9)

Woou    
와 작가님 궁금하네요 다음편 바로 갑니다!!
2024.01.09 17:27
장만월.    
재벌집 막내아들...
2024.01.18 17:10
불티a    
이해도 가고 눈물도 나네요
2024.01.21 11:20
방이동    
필력이 좋네요 기대됩니다
2024.01.23 00:54
우수지    
회귀장면 중에 이렇게 깔끔한 건 처음 보는듯
2024.01.25 04:48
두유야    
자기죽인사람이 엄마되는겨...?
2024.01.25 20:14
goldfish7    
오우야 회귀부분 막 넘기지 않는거 오랜만이다.
2024.02.01 13:55
투구꽃    
최신화까지 한번에 다읽었어요ㅎ 몰입력있고 정말 재밌는 소설이에요ㅎㅎㅎ
2024.02.07 13:20
딸기우유.    
첫화만 보고 댓글씀 아직 재미는 모르겠고 글은 잘 쓰시는 듯
2024.02.11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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