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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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시리

2023.12.01 조회 4,072 추천 99


 “용사여, 여기까지 온 것을 축하한다.
 그대는 이 잔혹한 시스테마의 게임에서 살아남았다.
 이제 그대는 그대가 온 세계로 돌아가도 좋다.”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이 끔찍한 시스테마의 세계로 소환되었었다.
 유사 게임이나 웹소설을 즐기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8톤 트럭에 치인 것도 아니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방구석에서 자고 있었다.
 
 “그렇다면 돌아가겠다, 이 빌어먹을 악마 새끼야. 그 전에···”
 “그 전에 선택해야 할 것이 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자에게만 주어지는 특전이다.”
 “특전?”
 “그대는 이곳에서 소유한 아이템 중 세 개를 가지고 돌아갈 수 있다.”
 
 평범한 농노에서부터 시작해서 최후의 기사가 되기까지 죽을 뻔했던 고비만 수백 번.
 쏟아지는 내장을 손으로 주워 담으며 5킬로를 걸은 적도 있다.
 흑염룡의 화염을 피하려 얼음장에서 2시간 35초를 견딘 적도 있다.
 
 “세 개를 가지고 돌아갈 수 있다고?”
 “그대의 상태창에 보이는 인벤토리에서 선택하면 된다.”
 
 손에 들고 있는 카타미나의 빛과 정의의 검이 시야에 들어왔다.
 신고 있는 테산의 날개 달린 부츠가 시야에 들어왔다.
 가슴에 단 막시무스의 두 개의 심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인벤토리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 된다고?”
 “그렇다.”
 
 쉬고 싶다.
 핑계라고 해도 좋다.
 죽기 전 한 번만이라도 가족들이 보고 싶다.
 돌아가고 싶다.
 
 ‘미안하다, 막시무스. 미안하다, 테산. 미안해, 카타미나.’
 
 이 새끼를 만나면 영혼이 소멸되는 한이 있어도 죽이려고 했는데···
 
 “좋다. 선택하겠다.”
 “현명한 결정이다, 용사. 아이템들은 상태창에서 클릭하면 된다.”
 “알았다.”
 “신중하여라. 한번 한 선택은 번복할 수 없으니.”
 “개새끼, 이제 와서 사려 깊은 척은···”
 
 고민했다.
 세 개가 많아 보이지만, 막상 수백 개의 아이템과 마법들이 들어가 있는 상태창에서 단 세 개만을 고르기는 쉽지 않다.
 나는 내가 가진 가장 큰 상자에 아이템과 마법들을 쓸어 담았다.
 그러곤 확인했다.
 
 “이렇게 선택하면 이 상자 안에 들어간 아이템과 마법들을 다 가지고 가는 거지?”
 “그렇다.”
 
 후회됐다.
 더 큰 상자도 있었는데 최후의 결전이라고 두고 온 것을.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상자에 담은 아이템들과 마법들만 있어도 푸른 늑대의 망령 정도는 거뜬히 이길 수 있다.
 두 번째로 큰 상자에 담진 못한 것들을 담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질문이 있다.”
 “무엇이냐?”
 “형질 강화용 인벤토리에서도 선택할 수 있어?”
 “그렇다. 어느 인벤토리에서도 가능하다.”
 
 이곳 시스테마에는 형질 강화용 아이템들이 있다. 이를 장착하면 신체적 성질을 강화할 수 있었다.
 
 Lv. 99+ 강화 팔,
 Lv. 99+ 강화 다리,
 Lv. 99+ 강화 두개골,
 ···
 Lv. 99+ 강화 심장,
 Lv. 99+ 강화 폐,
 Lv. 99+ 강화 간,
 ···
 Lv. 99+ 강화 민첩성
 Lv. 99+ 강화 신중함
 Lv. 99+ 강화 담대함
 ···
 
 최후의 문을 열고 들어갈 자격을 갖추려면 모든 수치를 최대로 올려야 했다.
 이곳에 와서 내가 노력으로 쌓은 것들.
 문제는 하나만 선택해서는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는 점이었고, 또 다른 문제는 이것들은 상자 안에 담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고민이 됐다.
 그래도 굳이 두 번째 상자에 소모템들을 채워 가져가느니 영구적인 형질 강화템을 가지고 가는 것이 현명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클릭 Lv. 99+ 강화 잘생김」
 
 어렸을 때 놀림을 많이 당했다.
 동생들이 잘생겨서 더 놀림을 많이 당했다.
 이 세계에 와서 가장 좋았던 것을 하나 고르라면 실력으로 존잘미남이 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걸 가지고 돌아갈 수 있는 거였다.
 당연히 Lv. 99+ 강화 잘생김이었고, Lv. 99+ 강화 잘생김이었어야 했다.
 
 “자, 이제 마지막 하나 남았다.”
 “알아, 이 새끼야. 선택하려고 하잖아.”
 
 마지막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내 영혼의 동반자이자 친구, 방시리.
 녀석을 처음 발견한 곳은 정령의 숲 아지리아였다.
 악령 네필리아를 물리친 직후, 끊어진 두 다리를 등에 메고 10킬로를 기었다.
 겨우 도달한 시냇가, 다 포기하고 죽으려는 순간,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죽어가는 어미 옆에서 살아보겠다고 나오지도 않는 젖을 온 힘 다해 빨고 있던 녀석.
 녀석의 모습에서 내가 보였다.
 그날 난 녀석 때문에 살아서 숲을 나올 수 있었다.
 이런 놈을 현실로 데려가면 분명 문제가 발생하겠지만, 그래도 데려간다.
 
 클릭.
 
 “다 선택했나?”
 “그래, 다 선택했다.”
 “최후의 용사여, 그대는 이 잔혹한 시스테마에서 살아남았다. 그대가 보여준 의지와 용기 그리고 근성은 많은 이에게 희망과 영감을 주었다. 그 대가로 그대에게 세 개의 선물을 허용했으니, 그대는 그것을 현명하게 골랐으리라 믿는다. 자, 이제 그대를 그대가 온 세상으로 돌려보내 주겠다. 그대는 그대가 선택한 보물 상자 하나와 Lv. 99+ 강화 잘생김, 그리고 방사능 감지 능력을 가지고 돌아가···.”
 
 주저리주저리 그만하고 빨리 보내··· 뭐? 방사능 감지 능력?
 
 “잠깐, 뭐라고? 아니야, 아니야. 내가 선택한 것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기를.”
 “아니라고! 나는 분명히 「방시리」를 눌렀다”
 
 고!
 
 그렇게 나는 지구로 돌아왔다.
 아이템과 마법들이 가득 든 보물 상자 하나와
 Lv. 99+ 강화 잘생템,
 그리고 어따 쓸모도 없는(?) 방사능 감지 능력을 들고.
 가장 소중한 시리를 그 세계에 남겨둔 채.
 
 “시리야—!!!”
 
 
 【001화 – 방시리】
 
 
 약 1년 뒤,
 대한민국, 서울.
 두마음정신병원.
 
 “윤 샘, 777호 환자 퇴원하니까 이따 나랑 체크업하러 들어가.”
 “헐. 방시영 환자 퇴원해요?”
 “응, 오늘 퇴원한대. 점심때 동생분이 온다고 했어.”
 “히잉-”
 “왜? 울상이야?”
 “방시영 환자님 좋았는데.”
 “뭐야, 그 반응은? 어디 가서 그렇게 얘기하지 마.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네.”
 “방시영 환자님이 가끔 들려주는 이야기 진짜 재미있었는데.”
 “윤 샘, 그런 취향이었어? 나는 못 들어주겠는데, 무슨 흑염용이 어쩌고저쩌고, 숲에서 만난 새끼 호랑이가 어쩌고저쩌고.”
 “시리 귀여워! 귀엽지 않아요?”
 “왜 그래? 무섭게.”
 “히히. 저도 사실 무슨 얘기를 하시는 건지 잘 몰라요. 그냥, 보고 있으면 너무 황홀해서. 흐흐흐-”
 “못 말려.”
 “근데, 퇴원하셔도 돼요? 요새도 가끔 악몽을 꾸시는 것 같더데.”
 “방시리 꿈?”
 “네.”
 “그게 누구한테 해를 끼치는 거는 아니니까. 원장님께, 본인이 이제 나가도 될 것 같다고 했나 봐.”
 “진짜요? 동생분들도 동의했고요?”
 “동의? 윤 샘, 모르는구나? 방시영 씨 처음부터 혼자 들어왔어.”
 “네? 진짜요?”
 
 보고 싶은 가족에게 돌아간다는 생각에 너무 들떴었나?
 아니다.
 나는 분명히 「방시리」를 클릭했다.
 그 빌어먹을 시스테마 개새끼가 나를 또 농락한 것이었다.
 
 ‘시스테마 개씨발새끼이이!!! 죽여버려어어!!!’
 
 가족에게 돌아왔지만, 가족을 두고 왔다.
 나는 실의에 빠졌다.
 작별 인사라도 할 수 있었으면 이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을 텐데.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아니, 미쳤었다.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사건이 터졌다.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을 때였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거리를 돌아다니다 길고양이 새끼를 학대하고 있는 놈들을 봤다.
 짓이겨 버렸다.
 
 죽일 뻔했다.
 죽여버리고 싶었다.
 
 그 뒤로는 복잡한 일들이 일어났다.
 경찰, 검사, 변호사, 합의금··· 현실로 돌아왔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분노. 가지고 온 상자 속 아이템을 꺼내 이 세상을 불태워 버리고 싶을 만큼.
 하지만, 십 년 동안 형이 깨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동생의 눈물이 나를 붙잡았다.
 
 미안했다.
 그런데 내 안의 분노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어딘 가에 들어가 있는 것이 동생들에게도 나을 거라는 들었다.
 그래서 들어왔다, 이 두마음정신병원에.
 
 “힘들면 언제든 다시 찾아와요.”
 “고맙습니다. 하지만 다시 입원하러 올 일은 없을 겁니다.”
 “입원하러 오라는 말이 아니었어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와요. 아님, 시영 씨가 겪은 그 재미있고 슬픈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면 언제든.”
 
 원래 안 좋은 것들이 먼저 보인다.
 시스테마에 처음 끌려갔을 때도 그랬다. 그런 지옥 같은 곳에서 어떻게 살지라는 생각에 고통스러웠었다.
 돌아와서는 이곳의 안 좋은 것들만 보였다.
 
 “자, 받아요.”
 “이게 뭐죠?”
 “퇴원 선물이에요.”
 “퇴원 선물이요?”
 
 원장은 좋은 사람이었다.
 내가 원래 살고 있던 이 세상에 좋은 것들을 다시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야옹~
 
 원장이 내민 작은 상자에는 작은 고양이가 한 마리가 들어있었다.
 
 “시영 씨가 해준 이야기 속 시리와 비슷한 아이를 찾아보려고 했는데, 쉽지는 않더군요. 시영 씨 말대로 이 세상에는 존재할 수 없는 종이니까. 그래도 최대한 비슷한 아이를 찾아봤어요.”
 “이건······.”
 “사실 사흘 전까지도 못 찾아서 포기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운명이었나 봐요. 며칠 전 퇴근길에 발견했어요. 우리 동네 공원 화장실 옆에 쓰러져있는 아이를. 그래도 비슷하지 않아요? 삼색 고등어 무늬.”
 “······.”
 
 비슷했다. 크기는 작았지만. 신기하리만큼.
 
 “원치 않으면 거절해도 돼요. 제 친구 중에 고양이를 키우는···.”
 “아니요. 제가 키우겠습니다.”
 “그래 주면 고맙고요.”
 “감사합니다.”
 
 아직 새끼였지만 머리 주위로 갈기처럼 풍성하게 나기 시작하는 장모들이 인상적이다.
 노랑 몸통에 대조돼는 하얀 주둥이.
 구슬처럼 동그란 잿빛 두 눈, 안쪽으로 짙고 까만 눈동자.
 만약 이마에 난 저 검은색 줄무늬들마저 자기 얼굴 모양을 닮는다면, 나는 믿을 것이다.
 이 아이는 지구라는 멀티버스의 방시리라고.
 
 “시원아.”
 “응?”
 “집에 가기 전에 잠깐 들릴 때가 있어.”
 “어디?”
 “펫샵.”

댓글(9)

루이스홍구    
신작 잘 읽겠습니다아!!!
2023.12.10 21:38
나중에봐요    
소재가 너무 강렬해서 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 잘 부탁드립니다 작가님!!! 건필하십셔!!!!
2023.12.10 21:44
김영한    
쏟아지는 내장을 주워담으면 무수한 염증, 감염 증상으로 사망합니다.
2023.12.14 16:44
내가제일잘    
화이팅~
2023.12.17 08:45
c8365    
그 말이 쏟아지는 내장이지 몸밖으러 쏟아지려는 내장 손으로 막는다는 얘기 아닐까요
2023.12.18 00:26
닉넴이같아    
이찍찍이들 덕분에 방사능 처묵처묵
2023.12.18 19:47
OLDBOY    
잘 봤어요.
2023.12.19 12:01
31amb    
아랫댓글 정치병자야 제발 좀 소설보러와서 그런댓글 달지말고 유튜브뉴스같은데 가서 놀아 좀
2023.12.19 12:21
로즈벨    
ㅋㅋㅋㅋ 두다리 잘려서 기어갔단 던 못보셨나봅니다... 염증이 문제가 아닌데요
2024.01.02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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