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다. 아카데미도 상위 성적으로 졸업했고, 빵빵한 뒷배도 만들었잖아. 할 수 있어.’
제임스는 우중충한 회색 복도를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끝까지 꽉 조인 셔츠가 따끔했지만, 제임스는 거기까지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오늘이 바로 그토록 고대하던 정보국 면접 날이기 때문이었다.
정보국이 어떤 곳인가. 대륙의 천재 중에서도 천재만 모인 곳이었다. 비밀리에 제국을 움직여 그 존재를 아는 이도 극소수였다.
정보국은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다. 인재만 골라 받는 아카데미를 상위 성적으로 졸업하거나, 대륙에서 이름을 알릴 정도의 위업을 달성해야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철저한 신분 조사를 통과해야 했고, 실무와 근접한 실기를 통과해야 했다. 면접까지 온 것만 해도 기적이었다. 그리고 제임스는 이 기적을 꼭 잡고 싶었다.
“시발, 진짜.”
그때, 투박한 욕설이 들렸다. 고개를 드니 맞은 편에 검은 머리의 사내가 앉아 있었다.
단추를 풀어 헤친 정복과 삐딱한 자세, 짜증이 가득 찬 얼굴까지-. 딱 봐도 불만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지금의 제임스에게는 사내의 정복만 보였다.
‘······정보국 요원!!’
정보국 요원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정보국은 베일에 싸인 조직이었다. 실제로 면접까지 오는 과정에서도 사람 한 명 마주친 적 없었다.
제임스 또래인 것 같은데, 벌써 정보국 요원이라니-. 제임스의 눈이 절로 반짝였다.
“뭐 볼 일 있습니까?”
사내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아··· 아닙니다! 그냥 멋있어서 그랬습니다!”
제임스는 황급히 차렷 자세를 하며 대답했다. 혹시나 붙으면 제임스의 선임이 될 사람이었다.
“병아리한테 화풀이하기는···. 최악이군.”
사내가 눈을 찡그리며 연초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하나 줍니까? 좋은 건데.”
“아니요! 괜찮습니다!”
사내는 두 번 권하지 않았다. 사내의 손가락 위로 붉은 불이 타올랐다.
“······마법사!”
제임스의 눈이 동그래졌다. 마법사로 정보국 요원이라니!
“마법사 처음 봅니까?”
제임스는 대답 대신 손가락을 튕겼다. 제임스의 손가락 주변으로 작은 스파크가 튀었다.
“후배였군.”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사내가 작게 혀를 찼다. 사내의 입가로 회색 연기가 풍겼다. 제임스를 보는 사내의 표정이 미묘했다.
“왜 편한 길을 두고 정보국에?”
사내의 물음은 타당했다.
본래 마법사로 졸업하면, 마탑에 들어가는 게 가장 일반적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귀족의 아래로 들어가거나-.
마법사는 전투보다는 연구와 개발에 최적화된 직군이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쪽에서 벌 수 있는 돈과 명예가 압도적으로 컸다.
제임스에게도 마탑에서 권유가 많이 들어왔다. 그를 뿌리치고 정보국에 지원한 이유는-.
“영광스러운 제국을 위해 이 한 몸 바치고 싶습니다!”
면접 예상 질문에 있던 터라, 제임스는 고민 없이 대답했다. 사내가 눈을 찡그렸다. 이게 아닌가?
“······마나가 좀 새는군. 압축 과정이 조금 약해.”
“압축 말입니까?”
“이렇게.”
사내가 손가락을 다시 튕겼다. 사내의 손가락에 스파크가 튀었다. 언뜻 보면 제임스와 같았지만, 제임스는 그 정교함을 알아볼 수 있었다.
“더 적은 마나로 같은 효율을 낼 수 있군요!”
“그래, 아카데미에서는 안 알려주지. 책만 잡아본 놈들은 마나 효율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실전에서는 효율이 더 중요해. 마나 한번 채우는 데 얼마나 걸리지?”
“삼일 정도 걸립니다.”
“너무 오래 걸리는데?”
“······예?”
제임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동기에 비하면 빠른 편이었다.
“마나를 아무 생각 없이 채우지 말고, 저장할 때부터 그 농도를 계산해서 저장해. 그냥 숨을 쉬듯 무지성으로 저장하니까 삼 일이나 걸리지.”
‘마나 저장하는데 농도를 계산하라고?’
마법을 쓸 때 계산식을 세우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깨질 것 같은데, 마나 농도를 계산하라니-. 그게 말이 되나? 제임스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마나 농도를 미리 계산해서 기억해두면, 딱 필요한 마나만 쓸 수 있지. 그럼 이런 것도 가능하고.”
사내가 연달아 손가락을 튕겼다. 스파크가 연속으로 일어났다. 처음에는 한 개였던 것이 순식간에 터지더니, 작은 꽃 모양이 됐다.
번개로 이루어진 꽃-. 그 정교함에 제임스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이게 여자한테 잘 먹히거든. 자네도 써 봐. 껌벅 죽어.”
“······아, 그렇습니까.”
“여자 친구 있나?”
“헤어지고 왔습니다.”
“정보국이라?”
“네.”
“멍청이군.”
“네?”
사내가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상큼한 레몬 향이 풍겼다.
“들어가면 못 사귀거든.”
“괜찮습니다! 저는 제국과 결혼할 생각입니다!”
“제국 의견은 들어봤나?”
“······예?”
사내가 기침하듯 웃었다.
“그래, 아무튼 정보국에 들어가면 하나만 기억해.”
“어떤 거 말씀이십니까?”
“눈을 감고, 입을 닫아. 시키는 것만 해. 그러면 올라갈 거야.”
사내가 눈을 찡그렸다. 언뜻 보면 웃는 것 같았지만, 입꼬리는 올라가 있지 않았다.
그때, 옆쪽 문이 열리고 여인이 나왔다. 차가운 인상의 미인에 제임스는 자신도 모르게 자세를 고쳐 앉았다.
“갈라하드, 실내에서는 금연이라고 몇 번이나 말했을 텐데요.”
“이건 마나 연초라고.”
“그래서요?”
“향긋하지.”
여인이 피식 웃으며 안쪽으로 고갯짓했다. 혀를 찬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임스는 멍하니 사내를 올려봤다.
“그대는 이혼당하지 말고 잘 버텨보라고.”
“······네? 네!”
제임스의 어깨를 두드려준 사내가 문으로 들어갔다.
제임스는 ‘갈라하드’라는 이름을 중얼거렸다. 어디서 들은 이름이더라···.
‘···아카데미 최연소 졸업자!’
뒤늦게 떠올린 이름에 제임스의 입이 쩍 벌려졌다.
갈라하드는 아카데미의 역사에 기록된 인물이었다.
보통 아카데미를 졸업할 때, 마법사는 대부분 2위계, 높으면 3위계였다. 그런데 갈라하드는 최연소로 졸업한 것으로도 모자라서 졸업할 때 4위계였다.
졸업 후 갑자기 사라졌다더니-.
‘정보국에 들어갔구나.’
그제야 이해가 됐다. 그런 전설적인 인물을 만났다니-. 제임스는 작게 ‘야호!’라고 소리쳤다.
역시 정보국이었다. 대륙의 천재 중 천재만이 모여서 제국을 이끌어간다는 정보국-.
그때, 안쪽에서 거친 소리가 들렸다.
“시발, 지금 나보고 좆 같은 데릴사위를 하라는 겁니까?”
갈라하드의 목소리에 제임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임스는 다급히 문 위를 쳐다봤다. 큼지막하게 ‘부국장실’이라 적혀 있었다.
부국장실에서 저렇게 거친 욕설을 하다니-.
‘멋있다.’
제임스의 눈이 반짝였다.
‘꼭 붙어야겠어!’
제임스는 주먹을 쥐며 기합을 넣었다.
저 멋진 갈라하드의 밑에서 일하고 싶었다.
****
“갈라하드, 대공의 장녀와 결혼하라는 게 어떻게 좆 같은 데릴사위가 되나?”
부국장이 살집 가득한 눈을 찡그렸다. 갈라하드는 숨을 깊이 내쉬며 진정했다.
“그 말이 그 말 아닙니까. 대공의 장녀가 어떤 인물인지 아시지 않습니까?”
“알지, 최연소 소드 마스터 아닌가. 장래에는 북부 대공 자리를 이어받을 거고. 그렇다면 북부 대공의 남편이 되는 것인데, 도대체 뭐가 불만인가.”
부국장이 허허 웃었다. 뻔뻔한 태도에 갈라하드는 머리끝까지 화가 올라왔다.
제국이 세워질 때만 해도 대공은 정말 대공이었다. 제국의 유일한 공작이자, 황제 바로 다음 권력자-.
다만, 북부라는 위치가 문제였다. 북부는 마족의 영토와 맞닿아 있었다. 대공은 마족의 공세를 막아내야만 했고, 그로 인해 하루가 다르게 힘을 잃고 있었다.
거기에 무식한 북부 놈들은 마법을 마족의 부산물이라며 마법사를 극도로 혐오했다. 대공의 영토는 유일하게 마탑이 없는 곳이었다.
그곳에 마법사이자 정보국 요원인 갈라하드를 보낸다는 건, 죽으라는 것과 다름없었다.
다만, 갈라하드는 부국장이 가장 밀어준 카드였다. 제 손으로 쳐낼 리가 없었다.
“어디서 내려온 겁니까.”
착잡한 얼굴이 된 부국장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부국장은 위에서 꽂아준 인사라며 정보국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 부국장이 위를 가리킨다는 건, 정말 위쪽이라는 이야기였다.
“자네 아버지가 추진한 일일세.”
“시발! 진짜! 개 같은···.”
갈라하드는 참지 못하고 욕을 내뱉었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대번에 알아차렸다.
갈라하드는 백작의 세 번째 아들이었다.
여기 귀족은 권력이 약해지는 걸 막기 위해, 장남에게 모든 걸 승계했다. 그중에는 장남을 제외하고 전부 죽이는 일도 있었다.
귀족의 아들로 환생한 갈라하드는 어린 나이에 자신의 처지를 깨달았다. 그에 갈라하드는 필사적으로 마법을 공부했다.
공부야 전생에서 실컷 했으니 어렵지 않았다.
애초에 한국에서 명문대에 들어갔던 갈라하드였다. 따분한 수능 공부와 대학 공부에 비해 마법은 공부할 때마다 시각적인 부산물도 있었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재밌었다.
더불어 기본적인 마법 술식은 전생에서 배웠던 고등 수학 정도였다.
덕분에 최연소로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정보국에도 들어왔다. 이 정도면 이제 배 두드리고 살겠지 싶었건만-.
‘챙겨주지 않는 것으로도 부족해서 나를 팔아? 이런 시발.’
아주 정치적인 정략결혼이었다. 갈라하드의 명석한 머리는 피할 구석이 전혀 없다는 결론은 금세 도출했다. 막다른 길이었다.
‘좆 같네 진짜.’
계산을 마친 갈라하드는 부국장 맞은편에 앉아 연초를 꺼내 입에 물었다. 부국장의 눈썹이 올라갔지만, 이제 선임도 아니었다.
“갈라하드-.”
“뭐요?”
“나도 한 대 달라고.”
갈라하드는 눈을 찡그리며 부국장을 노려봤다. 그래, 부국장이 무슨 잘못이 있겠냐. 주머니에서 연초 하나를 꺼내 부국장에게 건넸다.
“불.”
“시대가 어느 때인데, 간단한 마법도 못 쓰십니까.”
“자네도 늙어보게. 새로운 걸 배우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불!”
갈라하드는 혀를 차며, 부국장의 연초에 불을 붙여줬다.
“사내가 돼서 레몬 향이 뭔가. 레몬 향이.”
“얻어 피우면서 불만은 참 많습니다.”
둘은 가만히 연초만 연달아 폈다.
부국장의 얼굴도 그리 좋지 않았다. 갈라하드는 부국장이 가장 밀고 있던 카드였으니, 부국장도 빈털터리가 된 것과 다름없었다.
“그러게, 왜 결혼을 안 했나? 나이도 찼을 텐데.”
“제국과 결혼했습니다.”
“자네가 제국을 싫어하는 건 나도 알 정도로 유명하다만.”
“부국장님도 아내분 싫어하시지 않습니까.”
“일리가 있군.”
둘이 작게 웃었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부국장이 피곤함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국장의 손발이 다 잘린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부국장이 다시 부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됐습니다. 알아서 돌아오겠습니다.”
갈라하드는 고개를 저으며 연초를 비벼 껐다.
“하긴 자네 여인들한테 인기가 많지. 사실 자밋도 자네를 좋아한다네.”
부국장이 옆에 있는 자밋을 가리키며 짓궂게 웃었다. 그러자 자밋이 얼굴을 가득 찡그렸다.
“사실 알고 있었네. 자밋 미안, 사내 연애는 별로라.”
“······저도 한 대 주시죠.”
자밋까지 셋이 나란히 앉아서 한참이나 뻐끔거렸다. 대화 하나 없이 조용했지만, 각자 머리는 시끄럽게 굴러가고 있었다.
“사탕이나 초콜릿 사가십쇼. 여자는 그런 거 좋아합니다. 북부에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자밋이 연기로 도넛 모양을 만들며 말했다.
“사탕이라. 기억하지. 아, 밖에 있는 놈 쓸만할 겁니다.”
“밖에 있는 놈?”
“당근처럼 생긴 애송이 말입니다.”
“당근?”
“면접자 말하는 거 같은데.”
“아, 그렇군. 근데 자밋 왜 반말을···. 해도 되지. 우리 같이 일한 세월이 얼마인데. 허허. 그래, 괜찮아 보이더냐?”
“예, 제국이랑 결혼하겠다더군요.”
“자네가 면접 때 했던 말이군.”
갈라하드가 쓰게 웃었다.
그런 말을 했었나? 했던 것 같기도 했다. 면접 볼 때는 다들 그러지 않나. 이 회사를 정말 좋아한다고-, 뼈를 묻겠다고-. 그런 맥락이었다.
“뭐 더 궁금한 건 없나?”
부국장이 몸을 뒤로 눕히며 물었다. 처음 갈라하드와 마주했을 때는 정의와 야망으로 반짝이던 눈에 이제는 노쇠함과 피곤이 자리했다.
갈라하드는 잠시 그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 여자 이쁘답니까?”
이번에는 부국장이 소리 내어 웃었다.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웃던 부국장이 눈가의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륙 제일의 미인이라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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