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화공도담

제1권. 도원도(桃園圖) - 1

2015.07.08 조회 5,242 추천 82


 序
 
 
 송나라 태평(太平) 4년, 섬서성 안강현 사람 중에 등후량이라는 화공이 있었다. 그 재주가 몹시 출중하여 황제의 부름이 잦았으나, 등후량은 스스로의 모자람을 핑계 삼아 은둔하여 움직이지 않았다.
 어느 날, 남루한 도복을 입은 도사가 나타나 등후량에게 한 폭의 도원도(桃園圖)를 그려달라 부탁했다.
 도사의 행색은 비록 남루하나 눈빛이 맑고 현현하였으므로 등후량은 감히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갖은 재주를 부려 그려낸 도원도는 도사의 비웃음을 면치 못했다.
 재차 삼차 그려냈지만 도사는 ‘재주가 뛰어나다 하나 마음이 무겁기가 한량없으니 천하에 이름 높은 화공도 그림 한 장을 그려내지 못하는구나!’라며 비웃었다.
 그 웃음에 크게 깨달아지는 바가 있어 등후량이 깊이 절하니 도사가 말하기를, ‘나는 본래 여(呂) 씨 성의 사람으로 이름은 암(岩)이라 하는데, 그대는 이제 도원도를 그릴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그제야 도사가 여동빈이라는 것을 알게 된 등후량이 다시 한 번 절하고는 그 자리에서 새로이 도원도를 그려냈는데, 그림을 완성하지 않고 붓을 놓아버렸다.
 도사가 완성하지 못한 연유를 묻자 등후량은 비로소 웃음을 지으며 ‘그리고자 함을 버렸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하였다.
 도사는 ‘드디어 그대가 도원도를 그려냈구나’ 하고 기꺼워하며 그림을 받아 들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의 일이다.
 황제가 보낸 사신이 다시 등후량을 찾았는데, 그 자리에 등후량은 없고 오직 한 폭의 도원도만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제1장 채화당(彩畵堂)의 둔재(鈍才)
 
 
 1
 
 예인들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곳을 꼽으라면 황궁이 될 터이다. 악사들은 황궁에 속하기를 원하고, 무희들은 황궁에서 춤추기를 꿈꾼다.
 화공(畵工)들에게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황궁에는 무영전이니 인지전이니 하는 전각들이 설립되어 있는데, 그곳이 바로 화공들이 모여 의궤나 어진화(御眞畵)를 그리는 곳이었다.
 화공이라면 누구나 목표로 삼는 곳인 것이다.
 그러나 화공이 꿈꾸는 또 다른 세계가 있었다.
 영락제께서 승하하시기 전까지 인지전감공(仁知殿監工:무영전과 인지전의 화공들을 감독하는 화공) 벼슬을 했던, 당대 천하제일이라 일컬어지는 오채문 화백이 낙향하여 만든 채화당이 바로 그곳이었다.
 채화당에만 들어가면 황궁에 입성하는 건 금방이라느니, 오채문(吳彩問) 화백의 후계가 될 수 있다느니 하는 잡다한 소문들이 전 중원을 휩쓸었다.
 
 안휘성 합비.
 밤이 깊어가고 있는데도 채화당의 호롱불은 꺼지지 않았다.
 한때 황궁에 적을 두었다가 오채문의 재능에 탄복해 낙향하는 곳까지 따라온 화공들이 한데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던 탓이다.
 그들의 얼굴은 어둡기 짝이 없었다.
 “오채문 화백께서는 좀 진정되셨다 합니까?”
 수염을 그럴듯하게 기른 화공, 곽주(郭珠)가 울적한 얼굴로 물었다.
 근처에 있던 화공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들의 얼굴 역시 침통하기 짝이 없었다.
 “진정되기는커녕 통증을 호소하며 괴로워하신다 합니다. 의원을 급히 모셔 약을 처방했습니다만 상태가 호전되질 않습니다.”
 “의원은 뭐라고 하더이까?”
 곽주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묻자, 화공 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외람됩니다만 그 어떤 영약을 써도 오 년을 넘기기 힘들 거라고 합니다.”
 곽주의 얼굴이 단숨에 구겨졌다. 그는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머뭇거리다가 잠시 뒤에야 질문을 던졌다.
 “오 년을 넘기기 힘들 거라니 그게 무슨 소린가! 오진, 오진일 게야! 그토록 정정하셨던 분이 어찌…….”
 “저 역시 오진일 거라 여겨 그토록 추궁을 했습니다만, 의원의 태도는 변함이 없더이다.”
 “하면 병명은? 병명은 뭐라던가, 상 화공?”
 상준백(尙俊百) 화공의 얼굴이 침통하게 변했다. 그는 고개를 푹 숙이고 눈을 질끈 감았다.
 “반위(反胃)의 일종이라 합니다.”
 “바, 반위?”
 곽주의 얼굴이 멍해졌다. 힘이 빠진 듯 어깨가 추욱 늘어졌다.
 “허어, 하늘도 무심하시지. 반위라…….”
 장내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곽주는 허탈한 듯 말을 이어나갔다.
 “반위라면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병이잖은가?”
 “곽 화원, 말씀이 심하시오! 생사를 장담할 수 없다니! 오 화백께서는 꼭 쾌차하실 것이오!”
 가만히 듣고만 있던 노화백이 발끈하여 외쳤다.
 평소 오채문을 많이 존경했었는지 주름진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황망하여…….”
 곽주가 머리를 싸매자 장내에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침묵은 한참 동안이나 사람들 곁을 떠나지 않았다.
 침묵을 깬 것은 상준백이었다.
 “일단은 영약을 구해야 합니다. 황상 폐하의 어진화를 세 번이나 그린 분이시니 폐하께서도 모른 척하지는 않으실 터, 황궁에 서신을 넣어보지요. 물론 천하에 이름난 의원들에게 소식을 전하는 것도 잊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 그래야지.”
 곽주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중얼거렸다.
 그는 잠시 미간을 찌푸리고 생각에 빠졌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고 말했다.
 “오채문 대화백께서 편찮으시다 하나 우리 채화당은 평소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어야 할 것입니다. 당금 채화당의 명성이 두터우니 그를 잊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혹여 의뢰가 들어온 것이 있는가, 상 화공?”
 본디 화공이란 그림을 팔아 생계를 꾸려가는 자다.
 오채문이 세운 채화당의 명성쯤 되면 고관대작들이 주로 그림을 그려달라 요청해 오곤 한다.
 아니나 다를까, 상준백이 천천히 일감을 말해왔다.
 “지부대인께서 모친이 고희를 맞으셨다며 희수도(稀壽圖)를 한 점 얻고 싶다 하셨고, 전대 한림대학사께서 산수화를 한 점 얻고 싶다 하셨습니다. 당금 의뢰는 그것 두 개가 전부입니다.”
 “그 정도라면 그리 어렵지는 않은 편이로군. 다행인 일이야. 하면 새로 들어온 제자들은 어떠한가? 재능이 있는 아이만 추렸다 들었거늘.”
 “여러 화백께서 기꺼이 가르치실 만한 아이가 몇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재능들이 다들 뛰어나지요. 물론 둔재도 있습니다만.”
 상준백의 얼굴이 조금이나마 밝아졌다. 천하에 이름난 화백들이 모여 있는 채화당답게 그림에 꿈을 둔 수많은 젊은이들이 모여들었던 것이다.
 그것은 곧 채화당의 미래가 밝다는 뜻이니 가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이목을 끈 것은 둔재라는 말이었다.
 “둔재? 이 채화당이 둔재를 들일 만큼 문턱이 낮단 말인가?”
 자부심 넘치는 목소리에 상준백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아니, 그게 아니오라 재작년에 작고하신 진월산(陳月山) 화백의 손자 말입니다.”
 “아아, 자명(自明)이 말인가? 진월산 화백의 피를 이었다면 그 아이도 영준할 터인데…….”
 곽주가 의아한 듯 묻자 상준백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다른 아이들은 운필법(運筆法:붓을 움직이는 방법)은 대개 깨치고 넘어갔는데, 그 아이 하나만 아직도 운필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심지어 아직도 현완법(懸腕法)의 자세가 미묘하게 틀립니다. 그것 하나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게지요.”
 현완법이라면 운필법 중 가장 기본이 되는 자세 중 하나다. 그것에서부터 틀렸다면 답이 없다.
 “쯧쯧, 핏줄이 어디 가나 했건만.”
 “꾸준히 연습하긴 하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꾸준히 연습하는 아이는 그 녀석 하나뿐입니다.”
 상준백이 그거 하나는 마음에 든다는 듯 웃어 보였다.
 곽주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면 더 두고 보세나. 그 아이 외에는 어떠한가?”
 “늦게 그림에 꿈을 둔 아이도 있고, 어려서부터 두각을 드러내어 화백들께서 친히 들인 아이도 있습니다. 다들 재능이 뛰어나니 가르쳐 볼만하실 겁니다.”
 상준백이 웃으며 말하자 여러 화백들의 얼굴에도 비로소 웃음이 피어났다.
 곽주가 화백들의 얼굴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내일부터는 화백들께서도 제자들을 가르쳐 주십시오. 재능이 있다 한들 여러 화백들만 하겠습니까만, 그래도 소일거리는 되실 겁니다. 저와 이명거(李明渠) 화원이 희수도와 산수화를 맡도록 하겠습니다.”
 여러 화백들이 그렇게 하겠다며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 뒤에는 곧바로 울적함이 찾아왔다.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싶은 대화백이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세상을 뜰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그들을 괴롭혔던 것이다.
 화백들의 시름을 아는지 모르는지 밤은 계속 깊어져만 갔다.
 
 다음날.
 오시의 햇살이 진자명의 눈살을 간질였다. 간만에 받는 햇살에 진자명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빠.”
 문득 아버지가 떠올랐다. 진자명의 눈이 그리움으로 가득 찼다.
 자명은 본래 행복한 아이였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나 구김살 하나 없던 아이.
 그림에 재주가 없어 화공인 할아버지의 뒤를 잇지는 못했지만, 아버지는 건실한 농사꾼이었다.
 소출이 제법 되는 논을 부친 탓에 아버지에게는 처자식은 능히 건사하고도 남는 능력이 있었다.
 해가 질 무렵이면 자명은 아버지를 기다리곤 했다.
 코를 훌쩍거리며 아버지를 기다리다가 바닥에 낙서를 해놓으면, 어느새 아버지가 와서 그것을 보고 ‘네 할아버지의 그림을 보는 것 같구나’ 하고 껄껄 웃으시곤 했다.
 그다음은 저녁도 안 먹고 그림만 그린다고 꾸중하는, 하지만 꾸중이 끝나고 나면 늘 포근하게 안아주는 어머니의 차례였다.
 “엄마.”
 자명이 코를 훌쩍거리며 중얼거렸다. 이번엔 엄마가 보고 싶다. 자명의 표정이 울 것같이 변했다.
 하지만 울면 무서운 사부님이 꾸중을 한다. 절대로 울면 안 된다.
 “왜 울먹이고 있는 게냐?”
 울음을 애써 참고 있는데, 상준백 사부님께서 말을 걸었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엄준한 표정이 보인다.
 자명은 겁을 집어먹고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우, 울먹이지 않았어요.”
 “연습이 힘들다 하여도 꾀를 부리면 아니 되는 법이야. 너는 재능이 없으니 남들보다 부단히 연습해야 한단다. 자, 다시 현완법을 연습해 보자꾸나.”
 연습이 힘들어 훌쩍이는 것으로 착각한 상준백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자명이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면 붓을 들고 획을 그어보아라.”
 쿨쩍 하고 코를 들이마신 자명은 조그마한 손으로 붓을 쥐어 들었다.
 붓을 지면에서 직각으로 쥐고 팔을 들어 올려 팔꿈치를 몸 쪽에 대지 않고 쓰는 것이 바로 현완법이다.
 운필이 자유로워 갓 입문한 화공들이 운필을 연습할 때 현완법을 배운다.
 자명은 잔뜩 긴장한 팔을 들어 화선지에 획을 그었다.
 “어허, 직각으로 쥐어야 한다고 했을 터인데!”
 회초리가 날아와 자명의 팔뚝 어림을 때렸다.
 자명은 아야, 소리를 내며 팔을 비비고는 이번엔 조금 더 나은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상준백의 마음에는 들지 않았다.
 “이번엔 팔꿈치가 몸에 닿는구나!”
 상준백이 오만상을 찌푸렸다. 가르쳐도 가르쳐도 아이의 자세는 계속 틀렸다. 진월산 화백을 생각해서 직접 들러붙어 가르치고 있건만, 서서히 인내심의 한계가 느껴진다.
 “정오부터 이 간단한 것만 계속해 왔거늘 어찌 늘질 않나. 쯧쯧.”
 상준백이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돌렸다.
 자명은 주눅이 든 얼굴로 상준백을 흘끔흘끔 바라보았다.
 상준백은 전혀 다른 곳을 보고 있었지만, 눈이 관자놀이에 달리기라도 했는지 자세가 틀리면 회초리가 날아오게 된다.
 자명은 조그마한 손으로 열심히 붓을 놀렸지만 회초리 세례를 피할 수는 없었다.
 결국 자명은 미시가 되기까지 죽어라고 회초리를 맞아가며 현완법이니 침완법이니 하는 것들을 연습해야 했다.
 미시가 되자 상준백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이만 하자꾸나. 너는 더욱더 연습해야 할 것이야.”
 “네.”
 자명이 팔을 주무르며 대답했다. 자세를 틀리지 않으려고 긴장하다 보니 근육이 뭉치고 말았다.
 상준백은 그 모습을 보고 혀를 끌끌 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몇 걸음 걸어가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참, 다음은 조운고(曺雲高) 화백께 배울 차례더냐?”
 “네.”
 운필법을 마치고 나면 용묵법(用墨法:먹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배운다.
 먹은 그저 검을 뿐이지만 그 속에 수많은 색이 있다고 한다. 먹을 알지 못하면 화공으로서 가치가 없는 법. 농담(濃淡), 윤갈(潤渴), 선염(渲染), 비백(飛白) 등 여러 가지 색을 알아야 한다.
 “그래, 거기엔 좀 진전이 있더냐?”
 “아니요.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자명이 더듬더듬 대답하자, 상준백이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그렇구나. 쯧쯧. 여하튼 열심히 하여라.”
 혼잣말을 주워섬긴 상준백이 휘적휘적 걸음을 놀렸다.
 상준백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자명이 조그마한 손으로 파지가 된 화선지를 한 장 한 장 정리했다.
 그 귀하다는 종이로 연습을 하는 것을 보면 다른 화공들이 기절을 할 일이지만, 채화당에서 종이는 흔한 편이었다.
 화선지 정리가 끝나면 벼루를 정리하고 붓을 빠는 일이 남았다.
 자명은 열심히 붓을 빨고 벼루를 정리하고는, 그것을 들고 빠른 걸음으로 우진당(牛晉堂)으로 걸어갔다.
 우진당에서는 벌써 다른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대개 자명의 또래의 소년들로, 어린 나이에 서화의 세계에 입문한 아이들이었다.
 “자명이 왔느냐?”
 “네, 사부님.”
 그래도 이번엔 그나마 낫다. 수염이 새하얀 조운고 사부님은 그래도 인자한 편이라 실력이 떨어져도 호통을 치지는 않으시니까.
 과연 조운고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손가락으로 뒤를 가리켰다.
 “뒤에 가서 가르쳐 준 대로 농담에 대해서 연습해 보아라. 진하게 하느냐, 옅게 하느냐에 따라 수많은 색이 나오니 꽤 재미있을 게다.”
 “네에.”
 자명은 조운고가 가리킨 자리에 가서 정좌하여 앉고는 주섬주섬 챙겨온 벼루를 놓고 먹을 갈았다.
 먹을 갈 때는 늘 행복하다. 먹의 향기가 마음을 따스하게 진정시켜 주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 먹빛이 곱게 떠오를 때에는 기쁨마저 느껴진다.
 “이제 해봐야지.”
 먹을 다 간 자명은 화선지를 펼쳐 놓고는 붓을 조심스럽게 먹에 적셔 화선지에 가져다 댔다.
 “와아―!”
 자명의 입에서 순수한 경탄이 튀어나왔다.
 자명은 먹빛의 아름다움에 빠져들었다. 먹이 화선지로 퍼져 나가며 아름답고도 짙은 묵빛을 띠었다.
 자명은 헤죽헤죽 웃으며 먹을 칠했다. 때로는 짙게, 때로는 얕게 열심히 농담을 연습하는 것이다. 소매가 먹에 젖어 새카맣게 변했지만, 자명의 얼굴에 어린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자명은 뒷짐을 진 조운고 화백이 한심스럽다는 듯 혀를 끌끌 차고 지나간 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짙고 옅으니 그것도 농담이 맞긴 하다마는, 색을 제대로 살리지는 못했구나.”
 조운고 화백이 무어라 말하며 지나간 후에야 자명은 고개를 들었다.
 “아.”
 그리고는 곧 주눅 든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아무래도 또 틀렸나 보다. 나름대로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고개를 숙이고 보니 예쁜 묵빛이 색색별로 빛나는 것이 보였다. 마치 세상 모든 색을 다 품은 듯한 아름답고도 다채로운 먹빛이었다.
 기분이 조금 좋아지긴 했지만, 현완법에 이어서 이것도 틀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절로 울적해진다.
 울적함 속에서 해가 지는 것이 느껴졌다.
 자명의 하루가 끝나가고 있었다.

댓글(11)

그래웃자    
우리.. 출판되었던 것은 걍 E북으로 내보내면 않되남요? 언제적 것을 울거먹으려구 .. 제가 촌부님 작 품 정말 좋아해서 ..본거 또보고 했었는데 이건 아니죠 .. 출 판사에서 하는건지는 모르겠지만,. 독자 기만 하는거 아닙니다...
2015.07.16 20:59
드니로    
그래웃자님이 말한 것의 상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이렇게라도 좋은 글 읽게 되어 감사합니다.
2015.07.20 12:24
대마21    
그래웃자님 말을 함부로 하시는군요. 예전 작품올리는게 무슨 기만행위입니까? 무료든 이북이든지 보고 싶은 사람보면 되는겁니다. 뭐 예전 작품은 폐기 처분할겁니까?
2015.07.26 17:47
SOJIN    
화공도담 뿐 아니라 요즘 완결작들이 연재로 많이 나오고 있어요. 결국 개인의 선택인거죠. 대여점을 가느냐 연재로 보느냐는.
2015.07.29 17:58
애호가    
묵시적 약속이 깨지고 잇네요
2015.08.03 18:38
지워지운다    
아니 이거 말고 작가님 아직도 전역못하셨나 .... 원래 하던건 주시고 끝내야지...
2015.08.09 23:14
지워지운다    
천애협로가져와
2015.08.09 23:14
지워지운다    
주세요
2015.08.09 23:14
민송송    
그래웃자님 말에 난좀동감하는데 묵향 연재 다시시작할때 얼마나 많은사람들이 욕했나요.. 자기가 좋아하는,재밌게 읽었던작품이면 괜찬은건지.. 법적으로안될껀없지만 그냥좀그러네요..e북으로나와도 암말없을텐데 이건 새글연재도아니고 리메이크도아닌 그저 재탕아닙니까?
2015.08.17 16:19
안빈낙도1    
대여점에 못가는 독자들은 이렇게라도 접할수 있어서 좋습니다. 자기 작품을 종이책으로 내건 이북으로 내건 그건 작가의 정당한 권리라고 봅니다.
2016.05.24 17:18
0 / 3000

이용약관 유료이용약관 개인정보처리방침 청소년보호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