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기금은 잘 해결되셨습니까."
롤스로이드 리무진.
뉴욕시내를 달리는 자동차 뒷좌석. 검은 정장을 입고 반쯤 널부러진 육신. 운전수를 자처한 비서가 백미러로 내 상태를 흘끗보더니, 내게 질문을 건넸다.
나는 급 피곤이 몰려와 아예 누워버렸다.
"빌어먹을 놈들."
"잘 해결되지 않으셨나봅니다."
"아니, 잘 끝내고 나왔어. 그저 투자전략도 모르는 놈들이 탐욕을 부리고 설치는 모습에 토악질이 나왔을 뿐이지."
"탐욕입니까."
"아프리카 기금은 개뿔."
달칵.
리무진 뒷좌석에 마련된 기능들 중, 하나가 술이었다. 내가 애용하는 술병을 집어들어 크리스탈 술잔에 따랐다.
더러운건 신성한 술로 씻어내야지.
"비서, 아프리카 기금은 자산운용으로 회사들에게 투자하고, 지속적인 배당금 혹은 매도한 수익금으로 돌아가는 구조라는건 알고있지?"
"대부분 연기금이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 기금운용방식 자체는 이상하지 않아. 문제는 기금운용본부에서 투자할 기업목록에 있지."
나는 대놓고 돈벌러 왔다.
아프리카 기금?
쥐뿔도 관심없었다. 나는 아프리카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는 사람이었고, 새로운 시장의 첫번째 주자로 독점을 꿈꾸는 사람이었다.
나는 운전수 옆좌석에 서류더미를 던졌다.
"오늘 회의에서 아프리카 기금으로 투자가 결정된 기업목록이다. 한번 살펴봐."
"GMO 유전자변형 식품기업, 곡물기업, 종자기업, 제약회사, 방위산업체....방위산업체?"
방위산업체.
운전하던 비서의 목소리가 멈췄다.
백미러로 굳은 얼굴이 비춰졌다.
"그래, 방위산업체. 제대로 읽었어."
내가 뉴욕금융계에서 탑 헤지펀드 매니저로 군림하는 젊은 천재지만, 항상 비서를 고용하는 원칙이 존재했다.
인성.
내 스스로가 황금에 영혼을 바쳐 인성이 썩어문드러졌으니, 나를 중화시킬 인재를 항상 고용한다.
"......지금 아프리카 난민들을 쏴죽이는 기관소총을 생산하는 방위산업체에 아프리카 구호기금을 투자한다는 말씀입니까?"
즉, 비서는 평범한 인성을 보유한 사람이었고.
아프리카 구호기금으로 무기를 생산하는 방위산업체에 투자했다는 사실에 얼굴이 새하얘졌다.
그럴만하지.
이건 누가봐도 쓰레기짓처럼 보이니까.
"난 반대했다."
"......그렇습니까?"
"ESG를 내세우고 헤지펀드를 운영하는 내가 아프리카 기금으로 방위산업체에 투자하면 언론들이 참 좋아하겠네."
"그건 그렇군요."
"내가 못버티는건 탐욕에 썩어문드러진 놈들의 토악질나는 무능함 때문이지."
나처럼 아예 계산적인 악당이 되던가.
어디서 되도 않는 포장질인지.
"뭐라고 하던가요?"
"아프리카 독재자들이 무기를 구매한 돈으로 난민들을 구호하면, 안좋은 돈도 좋은 의도로 쓰일 수 있겠다는 개소리였지."
"그건 진짜 개소리군요."
투자금이 많아지면, 방위산업체는 당연히 투자금을 더 유치하기 위해 두둑해진 총알로 아프리카에 무기를 더 신나게 풀겠지.
아프리카가 위기에 빠질수록 아프리카 기금에 돈이 더 모일테니 말이다.
아니면 아프리카 기금에 쓰일 자금을 벌겠답시고 무기를 더 팔지도 모르는일 아닌가.
"저러다 미국정부에게 칼맞는거다. 내가 괜히 ESG를 내세우는줄 아나."
즉, 이런 개소리를 지껄인 놈들은 아프리카 무기시장의 돈을 탐낼 뿐인 인간군상들이란 사실이다. 거대한 시장 중 하나니까.
"뉴욕이 원래 이렇다. 금융은 특히 더 개새끼들이고. 나도 개새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럼 표정이나 풀어. 보는 개새끼 기분 더럽군."
"......죄송합니다. "
롤스로이드 타면서 할말은 아니긴하다.
리무진에 누워있던 육신을 푹신한 의자에 아예 파묻었다. 술기운이 술술 올라오네.
"아프리카 시장을 개척하려면 제일 큰 변수가 뭔지 알아?"
"보건, 식량, 치안 아닙니까."
"그래, 그것들이 인구를 줄이고 경제발전을 저해한다. 아프리카 시장을 개척하려면 이것들부터 싹 뜯어고쳐야해."
아프리카 인구는 탄탄하다.
앞으로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인구들이 쏟아져나오니, 경제개발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인구는 해결되었다.
보건, 식량은 돈문제다.
"제약회사에서 약을 개발하고, 식량기업에서 종자를 개발해야 해결될 일이지."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산업들이군요."
"뭐, 지금은 그렇지."
지금은 어마무시한 적자가 깨지겠지만, 나중에 아프리카 시장이 견고해지면, 복구하고도 남는 액수다.
"아프리카에서 재배될 종자를 개발할 종자회사는 종자를 독점하고, 아프리카에서 쓰일 백신, 치료제들을 개발한 제약회사는 제약을 독점하겠지."
"기술특허로 인한 독점이군요."
"그럼 엄청난 이익이 쏟아지지 않겠어?"
난 동그랗게 손을 말았다.
오늘 모금된 아프리카 기금은 사실상 아프리카 시장을 지배하게 될지도 모른다.
술기운에 웃었다.
"하지만 치안은 달라. 그 개새끼들이 방위산업체를 투자금으로 지원하는 순간, 아프리카 시장은 나락이라고."
눈앞의 탐욕에 미래를 못보는 쓰레기들.
무능함이 극치에 토악질이 나온다.
술맛도 떨어지네.
나는 리무진 뒷좌석을 뒹굴거렸다. 넥타이가 흘러내린다.
"돈벌이에 재뿌리는 놈들은 싹다 조져야돼."
"대표님, 안전벨트는 메셔야합니다."
"아, 맞다. 안전벨트."
비서는 한숨을 내쉬었다.
백미러를 통해 뒷좌석에서 사부작거리며 안전벨트를 찾는 고용주를 염려스럽게 쳐다봤다.
"탑 헤지펀드 매니저라는 분이 경호원도 없이 다니시면서, 안전벨트는 매셔야죠. 아무리 뉴욕에선 야외총기소지가 불법이어도 조심할건 조심하셔야합니다."
"집앞까지 코앞인데, 뭘."
끼이이이이이이!
타이어가 아스팔트를 긁는 소리와 함께 상향등이 앞유리를 덮쳤다. 섬광탄처럼 터진 하얀 불빛에 비서가 비명을 질렀다.
비서가 핸들을 틀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쾅!
쨍그랑!
몸뚱이가 튕겨날아가 앞유리창이 깨지는 기억을 마지막으로 정신이 끊어졌다.
***
1971년, 뉴욕.
내가 깨어난 년도는 생소하기 짝이 없었다. 21세기에서 생활하던 내게 스마트폰과 반도체없는 세계는 매우 낯설었다. 마치 신체부위 하나가 사라진 느낌.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답게 며칠만에 1970년대에 대충 녹아들기 충분했다.
열흘을 보냈다.
그동안 내게 경제뉴스나 경제지표, 경제정보들을 매일 매시간 실시간으로 꽂아주던 리히터통신도, 블럼보그 단말기도 없었다. 정치인 거물들이 짹짹이던 트위티조차 없다.
내 손에 들린 것은 오직 티커테이프와 라디오 하나가 전부였다.
"다행인건 집안이 뱅커(Banker) 집안이란건가."
막시밀리안 팬텀.
뉴욕 미드타운에 저택 둔 팬텀가문의 막내아들로 빙의했다. 흑발흑안이지만 이목구비는 날카로운 독일계 미국인. 모계엔 앵글로색슨의 피도 섞여있다고 했다.
가문은 뱅커가문.
할아버지는 뉴욕내셔널은행(NYNB)이란 중견투자은행 창업주, 아버지는 뉴욕내셔널은행 CEO, 외할아버지는 뉴욕대형로펌 공동대표에, 어머니는 대형로펌 파트너 변호사.
아주 한명한명이 진국이다.
집안전체가 뉴욕금융계에 뼈가 굵은 금융가문이었고, 나는 재벌3세 그자체였다.
"굶어죽을 일은 없겠네."
막스도 나와 성격이 비슷했던것 같았다.
막시밀리안(막스) 머릿속 기억이 일부 남아있다는견 행운이었다. 열흘간 가족들은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다.
열흘동안 나는 완전히 집안에 녹아들었다.
"좋은데....."
나는 명품의자에 걸터앉았다.
단출한 칠흑색 방은 꽤 내 취향에 맞았다. 칠흑색으로 칠해진 벽지에 고요한 분위기. 은은한 실내등부터 흑목가구까지 전부 유명한 명품제조사의 작품들이었다.
고풍스러움에 만족했다.
서랍속 칠흑색 만년필을 꺼내들어 종이위에 펜촉을 얹었다.
"문제는 지금이 1971년이란 점이다."
미국 경제의 붕괴.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재앙이 닥칠때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세계경제의 대격변기에서 대형은행들은 살아남겠지만, 중견은행들은 소리소문없이 사라질 수 있는 법.
한마디로.
몇년내로 뉴욕내셔널은행(NYNS)이란 우리집안이 한순간에 고래싸움에 등터지는 새우처럼 날아가버릴수도 있다는 점이다.
절망회로를 돌려보면 빚더미에 허덕이다 굶어죽을수도 있겠지.
"무엇보다도 내 기억속에 뉴욕내셔널은행(NYNB)란 은행은 존재하지 않아......"
언젠진 몰라도 미래에 사라진다는 뜻.
내 지지기반이 될 집안이 풍비박살날 위기라니, 빙의하자마자 이 무슨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란 말인가.
생존이 직결된 문제였다.
무조건 살려야한다.
뉴욕내셔널은행(NYNB)만 파산하면 다행이지. 집안전체가 빚더미에 깔리는 순간 인생나락이다. 그럴순 없지.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무조건 살린다."
"뭘 살린다고?"
중후한 음성.
퇴근하고 돌아온 아버지가 문을 열고 내방으로 들어왔다. 검은 정장에 제법 덩치가 있는 체격. 흑발흑안에 날카로운 외모는 중년으론 안보일정도로 꽤 눈부시다.
'벌써 저녁시간인가.'
하루종일 미래설계를 하다 끝나버렸다.
"우리집안이요."
"우리집안?"
"예, 당장 라디오랑 경제지에서 달러평가를 절하시킨다고 시끄럽잖아요. 며칠전에 G10 재무장관회의도 분위기 안좋았다고 하고요."
브레튼우즈 협정.
기축통화 달러를 금본위제로 묶어놓은 협정이 체결된지 벌써 수십년이 흘렀다. 그동안 미국경제는 물론이고 세계경제는 눈부신 성장을 이뤘다.
이것만보면 좋은 일이지만, 문제는 달러통화량이 금보유고를 넘어서버렸다는 점. 시중에 달러가 너무 많아졌다.
"잘못하면 미국이 파산할지도 모르는데, 뉴욕내셔널은행이라고 안전하겠습니까?"
"음."
달러가 너무 많다.
금보유량을 4배이상 초월한지 오래다.
다른국가들이 달러보유고를 들고 미국재무부에 금태환을 요청하면 미국재무부는 금보유고를 전부 소진해 파산한다.
"그렇다고 다른국가들은 국익이 우선이지, 미국사정을 봐주지도 않잖습니까."
"아들이 꽤 현실적이구나."
국제정치는 냉정하다.
당장 G10 재무장관회의부터 개판으로 끝나버렸다. 미국이 통화절하를 해버리면 다른국가들은 수출경쟁력을 잃어버리니까 이악물고 달려드는 것이다.
"이사회에선 별말 없습니까?"
"그래, 안그래도 오늘 그일로 시끄러웠다. 커넬 재무장관이 달러평가절하는 없다고 라디오 방송으로 못박았잖니."
"그건 장관이 개소리하는 겁니다."
아버지는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아들 갑자기 똑똑해졌는데? 당연히 헛소리겠지. 금보다 달러가 많은데, 평가절하가 없다는게 말이 안돼."
"예,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입니다 이거. 잘못 휩쓸리면 뉴욕내셔널은행도 위험하단 말입니다."
물론. 미국은 실질적으론 파산하지 않는다. 미쳤다고 미국이 파산할까. 다만, 파급효과로 은행 한두개가 넘어갈 수 있다는게 문제였다.
아버지도 내 말을 알아들었고, 곧바로 미간을 찌푸렸다.
"아들, 뉴욕내셔널은행은 수십년간 뉴욕금융계를 떠받쳐온 전통있는 기둥이다. 다른 어중이떠중이들처럼 쉽게 망하지 않아."
조금 가시돋힌 음성.
아버지는 좀 자존심이 상하셨는지, 방문을 열고 내방에서 등을 돌렸다.
"이 얘기는 끝내자꾸나. 너도 언론지에서 떠드는 노스트라다무스식 공황론은 적당히 봐야겠다. 저녁밥 먹으러 내려와라."
"아버지."
나는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아버지를 바라봤다. 아직 내 말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도 할말이 남았니?"
살짝 높아진 언성.
아버지는 발걸음을 멈추고 차가운 시선을 내게 보냈다. 대체 이사회에서 얼마나 쪼아댔는지 두눈은 시커멓게 피곤함과 짜증으로 절여져있었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길게 얘기하면 안듣겠네 이거.
"만약에 말입니다."
"빨리 말해. 나도 배고프다."
"닉손대통령이 기습적으로 금본위제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하면 어떻게 될것 같으세요?"
"뭐?"
벙찐 아버지의 표정.
대통령이 금본위제를 포기한다.
내 말은 곧 미국대통령이 G10재무장관회의를 개무시하고, 제1세계 자유진영 국가들의 뺨싸대기를 올려치고 나몰라라 배짼다는 말이다.
"하하하하하하!!!"
아버지는 폭소를 터뜨렸다.
눈물까지 흘리는걸 보니, 진심으로 농담으로 생각하는 모양새였다.
아버지는 기침까지 토하며 내게 손짓했다.
"막스, 아주 재미있는 농담이었다. 이제 그만 내려와서 밥먹어라."
방금의 말로 나는 확신했다.
우리집안, 좋지 않은 미래밖에 안그려진다. 미래정보를 알고있는 내가 맨발로 뛰어다니며 멱살잡고 살려내야겠네.
"......네. 밥 먹어야죠."
그 농담.
고작 몇달뒤에 벌어질 재앙입니다.
아버지.
댓글(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