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이번 생은 역대급 재벌

1화

2023.12.12 조회 41,367 추천 390


 부모, 형제없이 고아로 자라.
 재벌가의 사냥개로 일한지 20년.
 그들의 옆에 나란히 설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들만의 세계에 한 발자국 내딛었다고 생각했다.
 
 평사원들에게는 하늘 같은 임원들
 대중의 사랑을 듬뿍 받는 연예인들
 일반인들의 두려움을 사는 조폭들
 그런 조폭들이 두려워하는 공권력까지.
 
 모두 내 앞에 서기만 하면 어려워했고, 뭐라도 콩고물을 받아먹기 위해서 아첨을 일삼았다.
 
 그런 그들을 보며 나는 이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비록 저들이 나의 뒤에 있는 주인이 주는 위압감에 굴복한 것이라고 해도, 결국 나한테 머리를 조아리는 건 매한가지니 말이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더 흐르고, 과거에는 내가 감히 바라볼 수도 없었던 원로 정치인들까지 내게 어느 정도까지 예의를 갖출 때.
 
 나는 생각했다.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으며, 지금 가는 길은 옳은 방향이라고.
 
 -하하하하! 역시 자네가 내 제갈량이라니까? 이대로만 해! 내가 책임지고 멋들어진 부사장 직함 달아줄 테니까!
 
 십 년 전인가?
 내가 모시던 천유환 사장이 형제들과의 난에서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이며 회장으로 취임하며 했던 말이다.
 
 고작해야 빌딩 몇 채 받고 만족해야 했던 차남 천유환을 이 송일그룹의 황제로 만든 게 나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감사 인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겸양을 떨며 기존의 부장 직함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내가 드러나지 않을수록, 천유환이 보여주었던 것들은 더욱 빛을 낼 테니 말이다.
 
 가령, 어느 날 각성한 재벌집 막내아들 마냥 말이다.
 
 또한 주인의 위세가 높아질 수록 나의 위치도 덩달아 오르니까.
 
 그렇게 모든 형제들을 제압한 천유환은 황위을 이양받기 위해 대관식을 준비했고, 그 취임식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또 손에 피를 묻혔다.
 
 -쓰읍, 아무래도 경영지원팀 애들 중 몇 놈 좀 쳐내야 할 것 같아. 형이라는 작자가 쪽팔리게 정치권이랑 붙어먹어서 말이야. 아마 조만간 특검이 열릴 텐데 예쁘게 포장해서 넘겨주자고.
 -어차피 퇴직금은 섭섭지 않게 넣을 테니 뭐가 문제겠는가? 하하 어쩌면 젊은 나이에 탱자탱자 놀 수 있으니 그게 더 좋을 수도 있지!
 
 여태 천유환 사장에게 묻어있던 먼지를 털어내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나는 그간 함께 으쌰으쌰했던 ‘사냥개’들의 몸뚱이에 먼지를 듬뿍 묻혀 검찰의 먹잇감으로 던져줬다.
 
 -이, 이 씨발놈이! 너는 뭐 우리랑 다를 거 같아?!
 
 그들은 나 역시 자신들과 똑같이 당할 거라며 저주했지만, 우습지도 않았다,
 실력도, 근성도 없는 똥개라 버려지는 것이라 조롱했고, 그들은 그런 나를 더욱 열렬히 원망했다.
 
 마지막 숙청까지 끝내고나자 나는 사냥감을 물어뜯는 사냥개가 아닌 적어도 반려견은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제 슬슬 사장 직함 달아야지. 전무? 상무? 에헤이 이 친구야. 명색이 내 오른팔인데 쪽팔리게 전무랑 상무가 왠 말인가!
 
 한잔 기울이면서 내심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이로 발전하고 나는 더 이상 지저분한 일은 하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송일 증권 사장이 이번에 물러날 거야. 그 자리, 네가 맡아.
 
 부진하기는 하지만 그룹 내 주력 계열사 중 하나인 송일 증권의 사장이 되었다.
 
 나의 불편한 헛기침 한번에 십오층 건물 내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숙였고, 나의 웃음 한번이면 전층의 분위기가 화기애애 해졌다.
 
 그렇게 한 층을 통으로 쓰는 사장실에 앉아 통유리 벽 너머로 비치는 한강을 보면서 이제 나도 새로운 세계의 끝자락에 붙어있다고 확신했다.
 
 “······어?”
 그리고 그 확신이 무너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김민혁 사장님! 한마디만 해주시죠!”
 “검찰에서 이번 횡령의 배후로 김민혁 사장님을 지목했는데 맞으십니까?”
 “사내 유보금을 횡령하셨다는 검찰의 발표가 사실입니까?”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역대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던 횡령 중 제일 규모가 거대한 횡령이라고 하던데요!”
 
 내가 다른 ‘사냥개’들과 별 다를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너무 늦어버린 후였다.
 
 토사구팽(兔死狗烹)
 토끼 사냥이 끝나면 개는 삶는다고 했던가.
 
 사실 토사구팽을 당한다고 해봐야, 엄청난 퇴직금을 받고 입만 다물면 평생을 풍광 좋은 곳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줄 알았다.
 
 왜?
 천유환이 그 자리에 앉을 수 있게끔 만들어준 사람이 다름 아닌 나였으니까.
 그가 적어도 양심이라는 게 있는 사람이라면 그 정도는 응당 해줘야 하니까.
 
 하지만 내 생각은 틀렸다.
 
 천유환은 그냥 개새끼였다.
 그것도 아주 탐욕스런 개새끼.
 
 “할 말 없습니다. 지나갈게요.”
 
 나는 기자들의 우악스러운 손길을 뿌리치며 회사로 들어갔다.
 
 엘레베이터에서 내려 사장실로 들어가 이 사태에 관해 정리를 해보려고 했다.
 
 그 순간 컴퓨터 옆 전화기가 불을 뿜었다.
 
 띠리링-
 
 이런 타이밍에 걸릴 전화는 하나 뿐이다.
 숨이 거칠어졌다.
 
 “······송일증권 김민혁 사장입니다.”
 “회장님께서는 미안하다고 전하셨습니다.”
 
 새로운 사냥개들인가.
 
 “미안하긴 하신건가?”
 “국내 최고의 변호인단을 꾸렸습니다.”
 
 피식-
 
 아, 이게 내 최후인가.
 
 “그게 지금껏 충성을 위한 사람의 최후인가?”
 “......”
 “일단 알겠네, 나도 내가 할수 있는 것을 할테니 회장님께는 걱정말라고 전해주시게.”
 
 역사적으로.
 개국공신들은 모두 숙청당했다.
 
 ‘날 송일전자가 아니라 송일증권으로 보냈을 때부터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천유환 회장이 진정으로 날 아끼고, 책사로 쓰려고 했다면 계속해서 옆에 남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상이랍시고 자신의 권역 밖으로 날 몰았고.
 
 나는 사장이란 직함에 홀려 그 안의 구린내를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 일부러 외면했었나?
 
 각설하고.
 
 이제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지금이라도 방도를 찾아야한다.
 
 서랍 속 수첩 하나를 꺼내들었다.
 지금까지 나에게 떡고물이나 아첨을 떨어댔던 자들이다.
 그 중에는 중수부 출신의 검사들도 더러 있었다.
 이들을 이용하면 날아오는 화살을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지만.
 
 -고객님께서 전화를 받을 수 없어...
 “······.”
 -전화기가 꺼져있어 ‘삐’ 소리...
 
 쾅!
 
 “이 좆같은 새끼들이!”
 
 그 동안 호형호제 하며 지내던 고검장과 지검장, 하다못해 차장 검사 급도 전부 전화를 피하고 있다.
 
 그다지 덥지도 않은데 손바닥부터 시작해서 등판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촤르르륵!
 
 재빨리 수첩을 넘겨 지금 이 상황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이들에게도 연락을 돌렸지만.
 
 -뚜뚜뚜.
 
 그 동안 회장 몰래 돈 처먹이던 평검사들, 기자들, 정치인들까지 모두 연락이 닿지 않는다.
 
 “박원식 상무 올라오라고 해,”
 
 지금은 송일증권의 상무지만, 아주 오래 전 사냥개 시절부터 선배라고 따랐던 동생이다.
 십 년이 넘도록 한 솥밥을 먹은 후임, 적어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속을 터놓을 수 있는 유일한 녀석이었다.
 
 “예 사장님, 부르셨습니까?”
 
 샤프한 인상에 일처리가 똑부러지고, 상대를 자비없이 물어뜯는 확실한 성격에 회장 몰래 빼온 인재.
 이전에 날 제외한 선배들이 토사구팽 당할 때 빼준 것에 대한 은혜를 갚고 싶다고 옆에서 지금까지 보좌하고 있었다.
 
 “어떻게 생각해?”
 “솔직히 말씀드리면 가망이 없습니다. 회장이 제대로 물 먹인겁니다.”
 “그렇겠지. 거기다 내가 겨우 뚫어놓은 라인들은 다 잠수상태인 걸 보면 확실하고.”
 “지금 그 자들이 잠수타는건 당연합니다. 회장이 직접 개입했는데 그 라인들의 윗선부터 단속하지 않겠습니까?”
 
 맞는 말이다.
 고검장, 지검장이라 해봐야 회장이 직접 관리하는 인맥에 갖다대면 태양 앞 반딧불이 수준이다.
 그나마 평등해보이는 정치인들 역시 마찬가지.
 아마 당대표나 그에 걸맞는 급이 직접 나섰겠지.
 
 “이런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겠지.”
 
 박원식 상무는 주변에 도청이라도 되어 있을까 싶어 소곤거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있습니까?”
 “······.”
 
 지칭하는 단어는 없지만, 난 곧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회장의 약점.
 
 그것이 있냐고 묻는다면.
 
 있다.
 
 ‘비밀 장부’.
 
 정부 부처부터 정치권, 사법부까지 전부 싸그리 얽혀있는 있는 로비 장부가 말이다.
 
 혹여나 나중에 이런 일에 대비해 만들었던 그 장부가 쓰일 일이 생기다니.
 
 ‘이거 터뜨리면 다 같이 죽자는 것밖에 안 되는 건데.’
 
 아마 역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거대한 게이트가 되지 않을까?
 
 쉽사리 판단되지 않는다.
 
 그에 박원식은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다.
 
 “일단 나중에 생각할건 배제하고 지금 사장님이 사는게 우선 아니겠습니까!”
 “있어.”
 “장르는요?”
 “뇌물수수를 입증할 수 있는 장부.”
 “······!”
 “피래미들은 제외하고 차장검사 이상의 검찰라인, 중진급 정치인, 장관급 인사.”
 “···잠, 잠시만”
 “청와대 까지 이어진 폭탄이야.”
 “잠, 잠깐만요.”
 
 박원식은 생각보다 큰 건이라 그런지 얼어붙었다.
 놀랄 만도 했다.
 지금껏 송일 그룹이 존재하며 오갔던 모든 뇌물과 후원 내역이 담긴 초특급 핵폭탄이니까.
 
 “사장님, 이거 터뜨리면 저희 죽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저쪽에서 덮은 이후에 우리가 죽겠지. 그런데 네가 방금 말했잖아. 나중에 생각할건 나중에 생각하자고.”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이거 터지면 국가고 뭐고 아수라장이 될겁니다! 아니, 그 전에 그냥 목숨이 위험하다니까요?”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박원식.
 마치 예전 신삥 때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가 그걸 모를 것 같아?”
 “사장님 아니 형님. 이거 그냥 회장이랑 쇼부 봅시다. 저희가 감당 못합니다 이거.”
 “왜 감당을 우리가 해? 그 새끼가 휠체어를 타든, 청문회에 나서든 직접 감당하겠지.”
 
 하지만 여느 때처럼 미꾸라지 빠져나가듯 빠져나가진 못하리라.
 
 왜?
 
 이번 건 사이즈가 크거든.
 
 담담한 내 어투가 거슬렸는지, 아니면 이런일에 자기를 끌어들인 나를 원망하는 건지 박원식은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
 
 “아니 씨발 형! 그 뜻이 아니잖아!”
 “귀 아프다. 일단 대명그룹 회장이랑 약속 잡았다. 거기 잠깐 다녀올테니깐 너는 은밀하게 배 좀 알아보고 있어.”
 “······ 대, 대명 그룹?”
 
 예상치도 못한 곳이 나오자 박원식의 눈이 부릅떠졌다.
 
 하지만 곧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제계 서열 2위인 송일 그룹과 물고 뜯을 수 있는 상대는 바짝 추격 당하는 1위.
 즉 대명 그룹 밖에 없다.
 
 또한, 송일을 도와 자신들에게 반기를 들던 세력 전부 뿌리 뽑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이걸 고사하겠는가?
 
 지금껏 송일 그룹 회장의 목을 노리던 대명은 얼씨구 좋다라며 받아들일 터.
 
 이내 진정한 박원식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일단 알겠어. 바로 중국행으로 뜨는 거 알아볼게.”
 “그래, 부탁한다.”

댓글(17)

fr*****    
재미있습니다
2023.12.31 15:28
악지유    
토사구팽... 만고의 명언.
2024.01.08 04:46
hi****    
배신각인데
2024.01.11 19:44
별그리고나    
멍청하긴 그걸 상담해??
2024.01.16 18:20
풍뢰전사    
건투를
2024.01.17 17:36
일리    
근데 왕조시대야 토사구팽이 당연하지만 기업물에서 토사구팽은 왜함?
2024.01.24 23:11
아이라이크    
배에서 칼빵맞고 물에 빠진다음 회귀하자
2024.01.26 11:50
하행성    
기업물에서 토사구팽 안시키고 살려줬드니, 그 보답으로 H그룹 작살낸, 청개천 XXX가 그 대표적 예. 결국 드럽고, 험한 뒷일을 서슴치않고 하는 것들은 팽시켜야 후한이 없다. 는 역시적 진리.
2024.01.29 17:53
세비허    
재밌게 읽고 갑니다
2024.01.30 12:00
흑전사    
멍청한 넘 그걸 상담해? 저런 넘이 사냥개였다고? 그러나 한신도 유방에게 당할 수밖에 없었죠. 천하의 한신이 더 비열한 자에게 당하는 것은 유방이 아예 양심이 없는 허깨비라. 인간이 허깨비를 당해내기 어렵죠. 팽당하느냐 아예 물어 뜯어 버리는냐는 시간싸움일까요?
2024.02.01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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