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상왕 흥선

정선방(貞善坊)

2015.07.14 조회 23,872 추천 376


 상왕 흥선
 제 1권 - 사람을 얻다.
 
 
 
 ***
 
 
 순조(純祖)임금이 승하하고 헌종(憲宗)이 즉위한지 4년이 지난 1838년의 초봄, 달이 3월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동장군이 물러가지 않고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이 당시 조선은 1801년 신유환국으로 남인이 완전히 몰락하면서 오롯이 노론의 세상이 되어 있었으며 이 노론의 세상은 안동김씨에 의해 장악되어 있었다. 견제와 균형을 갖추지 못한 권력은 반드시 부패하기 마련이듯 수십 년간 계속된 안동김씨의 족벌세도정치는 엄청난 폐단을 낳으면서 조선백성들을 지옥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순조임금은 즉위와 함께 시작된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를 타파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순조는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효명세자의 장인인 조만영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개혁을 바랐었지만 이는 또 다른 세도정치의 시작에 불과했다.
 국왕의 비호아래 군권을 한 손에 움켜쥔 조만영은 안동김씨의 세도정치타파는 고사하고 오히려 자신의 정치세력을 구축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풍양 조씨 세도는 효명세자와 순조가 연이어 훙서(薨逝)하고 나이어린 헌종이 즉위하자 국왕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지속되었다.
 이렇게 되자 수렴청정을 하는 대왕대비 순원왕후를 앞세운 안동김씨와 풍양조씨가 권력을 분점하면서 세상은 더욱더 부패해진다. 이렇듯 조선이 특정 집안의 세상이 되면서 온갖 비리와 폐단이 난무하고 관리들의 부정부패는 도를 넘으면서 온 나라는 썩을 대로 썩어버린다.
 이러한 시대, 모든 부패의 끝에 서 있는 민초들의 삶은 처참하다 못해 파탄지경에 이르렀고 고향을 등지는 유민이 속출하면서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국가경제의 근간마저 무너지고 있었다. 지옥과도 같은 어려운 시절이 지속되자 조선은 헤어날 수 없는 깊은 수렁으로 빠져 들어갔으며 백성들은 삶이 어려워지면 어려워질수록 점점 더 세상을 뒤바꿔놓을 위대한 영웅의 등장을 염원하였다.
  ******************
 한양 정선방(貞善坊)의 한 저택 사랑채에는 몇 명의 사람이 모여 앉아있었고 그들 모두의 얼굴에는 누구라 할 것 없이 근심이 한가득했다. 이 사람들은 방안에 누워있는 한 사람을 중심으로 둘러 앉아 있었으며 무거운 침묵이 모두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이렇게 무거운 침묵의 시간이 지속되자 무거움을 털어내려는 듯 그 중 한 사내가 입을 열었다.
 “흥선이 이렇게 정신을 놓은 것이 며칠이나 되었다고 했느냐?”
 이 말을 듣자 중늙은이의 하인이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사흘째 이옵니다, 대감.”
 질문을 한 사람은 흥인군 이최응(1815)이었으며 하인의 대답을 듣자 그는 한 번 더 확인을 하듯 다시 또 질문을 했다.
 “의원은 언제 다녀갔다고?”
 “한 나절 전에 다녀갔사옵니다.”
 “의원이 뭐라 하더냐?”
 “그게, 송구하오나 원인을 알 수 없다고만 말을 했사옵니다.”
 하인의 대답에 이최응이 눈살을 찌푸렸고 옆에 앉아 있던 흥완군 이정응이 혀를 찼다.
 “허,~ 이거 참 큰일이구나. 쯧쯧.”
 이렇게 늙은이처럼 혀를 차던 이정응(1814)이 자리에 없는 의원에게 질책했다.
 “사흘이나 혼수상태인데도 의원이란 자가 원인을 알 수 없다는 무책임한 말을 하다니 이게 대체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이정응의 질책을 하인은 마치 자기 자신이 병명을 못 찾아낸 의원인양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송구하오나 의원이 그렇게만 말했사옵니다.”
 그 말을 듣자 이번에는 이최응이 혀를 찼다.
 “허허. 이거 참으로 낭패가 아닌가. 병인(病因)을 알아야 어떻게 조치를 해도 하지.”
 이최응은 그러면서 방안에 누워있는 막내 동생을 내려다보다 답답해했다.
 “곧 있으면 품계를 가좌받기 위해 입궐하여 대왕대비마마와 주상전하를 뵈어야 하거늘 이 무슨 큰 변고란 말인가.”
 이정응이 한숨과 함께 이최응을 거들었다.
 “후~ 그러게 말이구나. 그나저나 빨리 정신을 차려야 할 터인데 이거 정말 큰일이다.”
 두 형제가 주고받는 근심어린 말에 방안 분위기는 더한층 무거워졌다.
 사흘 전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진 이하응은 지금까지 깨어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 밤이 늦었는데도 동생이 깨어나지 않자 두 형제는 제수에게 동생이 깨어나면 바로 기별을 넣으라는 당부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병문안 와있던 종친들도 이때를 맞춰 모두 일어나 돌아갔다.
 부산스러움과 함께 병문안을 왔던 사람들이 모두 돌아가자 넓은 집이 갑자기 절간처럼 조용해졌다.
 조금 전까지 적지 않은 넓이의 사랑방이 많은 사람들로 인해 좁아 보였던 방안은 사람들이 모두 돌아가면서 갑자기 휑해지듯 넓어보이자 이하응의 부인 민 씨의 마음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결혼한 지 5년이 지났지만 그동안 아이가 없어 늘 노심초사했던 그녀였다. 하지만 야속한 남편은 자신의 타는 속은 아랑곳 하지 않고 늘 밖으로만 돌았다. 민 씨 부인은 삼종지도를 배워 뼛속까지 지아비를 섬기고 있었지만 그녀역시 여자인지라 밖으로만 돌고 있는 남편 때문에 요즘 들어 속이 말이 아니었었다.
 그렇게 민 씨 부인이 속을 끓이고 있던 차에 갑자기 남편이 인사불성 되어 덜컥 자리보전하자 그녀의 속은 다 타서 까맣게 재가 되었던 것이다.
 “후~”
 자신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훔치면서 한숨을 내쉰 그녀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누워 있는 남편을 복잡한 심정으로 내려다 봤다. 속을 썩일 때 썩이더라도 남편이 사랑방을 떡하고 차지하고 있는 것이 나았지 이러게 정신도 못 차리는 남편을 보자 가슴이 메어왔다.
 이러한 부인의 복잡한 심사를 알길 없는 흥선은 며칠 동안 인사불성인 채로 도무지 깨어날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러니 방안분위기는 당연히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고 그녀의 뒤에 앉아있던 여종과 하인인 돌쇠아범 또한 여주인의 복잡한 심사를 안 탓인지 입에 돌을 단 채로 어두운 신색을 한 채로 묵묵부답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만 갔다.
 그때였다. 그동안 깊은 늪에 빠진 듯 하염없이 정신을 놓고 있던 흥선의 몸이 움찔 움직였다.
 그 모습을 최초로 본 돌쇠아범이 소리쳤다.
 “마님! 나리께서 움직이셨습니다.”
 돌쇠아범의 외침에 모든 사람의 눈이 이하응에게 쏠렸다.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지났을 때 민 씨 부인의 눈에도 흥선의 몸이 움찔거리는 것이 들어왔고 그 모습을 본 그녀의 눈에는 눈물부터 비 오듯 쏟아졌다.
 “아! 서방님.”
 그녀의 옆에 있던 돌쇠아범이 소리쳤다.
 “부정(副正 종친부 종3품 작위)나리! 나리 정신이 드시옵니까?”
 정신을 잃고 있었던 도진은 누군가가 열심히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서서히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동안 정신을 잃었었는지 눈꺼풀은 천근만근이었으며 머릿속은 이상하게 모든 것이 뒤죽박죽되어서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도진은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려고 다시 애를 쓰자 자연스레 몸이 반응하며 처음보다 더욱 꿈틀거렸고 이 모습을 본 돌쇠아범이 반가운 마음에 소리쳤다.
 “마님! 부정나리께서 이제 정신이 드시나 보옵니다.”
 민씨 부인도 울음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서방님! 정신이 드시옵니까?”
 정신을 차리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쓰던 도진은 자신의 몸을 흔들며 소리치는 두 사람의 말을 들으며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뭐라고? 부정나리? 서방님? 이게 무슨 소리야? 지금 내가 뭘 잘못 들었나?’
 도진은 이상하게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떴지만 처음에는 눈의 초점이 바로 잡히지 않았다. 그러면서 잠시 시간이 지나자 도진은 자신의 얼굴 바로 위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방님? 정신이 드시옵니까?”
 ‘응? 또 서방님이라니? 도대체 이 여자는 누구야?’
 “나리 정신이 드시옵니까?”
 ‘나리는 또 뭐야?’
 도진은 계속해서 자신의 귀로 들려오는 낮선 물음에 혼란스럽고 어리둥절했지만 머리가 너무나도 아픈 탓에 아무 말을 못하고 신음소리만 냈다.
 “으~ 음.”
 도진의 신음에 민 씨 부인은 바로 옆에 있던 여자몸종에게 지시했다.
 “너는 빨리 가서 냉수 한 사발 떠오너라.”
 “예, 마님.”
 여종이 서둘러 방을 나갔다 곧바로 놋그릇에 물 한 사발을 떠 왔고 민 씨 부인은 그것을 받아 도진에게 수저로 조금씩 떠 넣어 주었다.
 찬물이 입안으로 조금씩 들어오자 도진은 서서히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돌쇠아범이 말했다.
 “마님. 의원을 모셔오는 게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승낙을 받은 돌쇠아범은 서둘러 방을 나갔다.
 물을 받아먹으며 어느 정도 정신이든 도진은 눈을 감은채로 머릿속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또다시 머릿속의 기억들이 완전히 뒤섞이고 엉클어지면서 엄청난 두통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도진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이 저절로 나왔다.
 “으~ 으윽!”
 도진의 고통에 찬 신음소리에 놀란 민 씨 부인이 비명을 질렀다.
 “서방님! 정신 차리십시오.”
 “으~ 으~ 으~ ······· 으악!”
 민 씨 부인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도진은 너무나도 심한 두통이 몰려오자 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으면서 어찌할 줄 몰라 하다가 어느 순간 정신을 잃어버렸다.

작가의 말

독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댓글(23)

[탈퇴계정]    
반갑습니다.
2015.07.14 18:12
노인월하    
흥선으로 태어나던 말던 모르겠지만, 며느리를 민자영이로(민비) 맞아들인 것은 조선의 아픔이요, 흥선군의 실책이었다. 또한 고종은 임금이 되기엔 한참이나 모자란 자였으니 이 또한 조선의 아픔이었다.
2015.07.17 21:02
꼬물로봇    
진정한 조선의 아픔은, 아니 한민족의 아픔은 '이씨 왕조'가 5백년이나 간 것이겟지요. 모든 부와 권력을 움켜쥐고 누리다가, 국가 환난시에 도망가기 바쁜게 조선의 이씨 왕들이었지요. 왕은 둘째치고 왕세자라도, 대군이라도 전역에 참여한 이가 있나요? 광해군은 약간 특이한 경우인데, 그 특이한 경우때문에 쫒겨났지요. 일제에 나라가 망할 때는 이씨 왕족 찌끄러기들이 대단한 활약을 펼쳐 ' 천황 폐하 ' 로 부터 봉작을 받고 영광스럽게(?) 일 귀족으로 편입되엇죠? 민족의 아픔입니다.
2015.07.20 12:01
오신동지    
이작가님 방가^~^~~~
2015.07.20 17:32
선율    
기대할게요..
2015.07.21 15:54
성냥깨비    
잘 봤습니다.
2015.07.21 22:18
양마루    
달려보죠
2015.07.23 14:52
찌를거야    
흥선도 솔직히 우물안 개구리 시야를 가진 소인일뿐 권력을 가졌지만 쇄국정책을 써서 스스로 고립되고 힘이 더약해져서 일본의 먹이로 전락하게 만든 장본인임
2015.07.27 13:58
찌를거야    
민비와의 힘겨루기에서 졌고 조선을 핫바지로 만든장본인 민비도 도찐개찐
2015.07.27 14:00
천사知인    
왕권 강화에 대한 왕의 권위 회복에 눈이 멀어서 욕먹을 지언정 흥선대원군이 눈이 멀었다느니 우물안 이라느니 이씨 조선 어쩌구 하는건 식민사관 논리로 욕먹을 사람은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외척과 선비의 도리를 버린 소위 권력자들의 문제였죠. 왕맘대로 일을 처리했으면 이씨조선이 나라 말아먹었네 마네 할 수 있지만 애초에 조선왕조는 신권이 강했고 그리고 부패는 이 신권이 가장 컸습니다.
2015.07.27 14:39
0 / 3000

이용약관 유료이용약관 개인정보처리방침 청소년보호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