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은퇴한 헌터의 아포칼립스

프롤로그.

2023.12.26 조회 100,340 추천 1,516


 1.
 첫 번째 은퇴는 17살, 그러니까 한국으로 따지면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흔한 일이었다.
 
 “어깨가 박살이 났습니다. 재활은 포기하시는 게 좋습니다.”
 
 프로야구선수를 꿈꾸던 고등학생이 무리한 연투 끝에 부상으로 프로에 데뷔하지 못하고 은퇴하는 것은.
 너무나도 흔해서 특별할 것은 하나도 없는.
 그 후의 이야기도 특별할 것은 없었다.
 평생 공부라고는 해본 적 없는, 뛰고 던지고, 배트를 휘두르는 것만 해온 고등학생이 몸을 쓰는 다른 직업을 진로로 삼은 것은.
 
 “이제부터 자네는 군인이다.”
 
 그렇게 나는 직업군인이 됐다.
 그 후의 삶도 특별할 건 없었다.
 
 “이번 임무는 팔레스타인이다. 명심해라. 국가는 어떤 지원도 해줄 수 없다. 죽어도 그림자로 죽는 것이다. 그러니 꼭 살아 돌아와라.”
 
 군인답게 여러 임무를 받았고, 수행했다.
 그러다가 은퇴하게 된 사건이 터졌다.
 그 역시 흔한 일이었다.
 
 “김지운 소령님,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임무 수행 중에 부하들을 지키기 위해 부상을 입으셨다고.”
 
 아프리카에 위치한 나라 소말리아, 아군의 지원은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그곳에서 극비리에 임무를 진행하던 어떤 특수부대 조직이 위기에 빠지고, 그 상황에서 부대를 이끌던 리더 한 명의 희생으로 나머지 이들이 목숨을 구하는 일은.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특별할 것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결국 다리에 열두 발의 총알이 박혀서 평생 다리를 쓸 수 없게 된 군인이 은퇴를 하게 되는 것 역시 특별할 것은 조금도 없는 일이었다.
 
 “저는 이도준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병실에 누워있는 그 군인을 향해 한 사내가 찾아오는 순간, 그 순간부터는 조금 달랐다.
 
 “현재 헌터 클랜인 삼족오 클랜을 이끌고 있습니다.”
 
 일단 그 이도준이란 사내가 하는 말은 특별했다.
 
 “아, 설명이 너무 부족했군요. 일단 그럼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헌터란 2018년부터 세계 각지에 등장한 게이트, 그 너머에 있는 어비스에서 몬스터를 사냥하는 자들을 말함입니다.”
 “어비스란 안개 낀 세상입니다. 그 안개의 색깔에 따라 그곳에 거주하는 몬스터의 강함이 달라집니다.”
 “어비스에 입장해서 조건을 만족하는 순간 헌터로 각성됩니다. 그 각성한 능력은 상태창이란 명령어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눈앞에 상태창이 뜹니다.”
 “몬스터를 잡으면 레벨을 올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끔 낮은 확률로 몬스터로부터 스킬을 배울 수 있는 룬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는 몬스터로부터 매우 특별한 힘을 가진 아이템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와 별개로 어비스에서만 구할 수 있는 식물과 금속 등을 통해 마법과도 같은 기적을 만들 수 있습니다.”
 
 너무 특별해서 도중에 그냥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을 정도.
 지금 여기 10층은 중환자실이고, 정신과는 5층에 있으니 그곳에 가라고 친절한 안내를 하고 싶어질 정도.
 김지운의 생각도 그랬다.
 평소 때의 그였다면 그 이도준이란 사내가 하는 말을 절대 두 마디 이상 듣지 않았을 것이다.
 
 “박호철 중장님, 저 말, 사실입니까?”
 
 그 이도준이란 사내를 데려온 이가 수도방위사령부의 사령관인 박호철 중장이 아니었다면, 다리 병신인 김지운은 이도준을 3초 안에 제압해서 그를 병실 밖으로 보냈을 터였다.
 
 “믿기 힘들겠지만 사실이다. 이도준 씨가 하는 말은 사실이며, 정부는 이도준 씨에게 적극 협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 말은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무슨 소설이나 게임 속에서나 볼 법한 세상이 존재한다는 겁니까?”
 “예. 맞습니다.”
 “그럼 날 찾아온 이유는 뭡니까?”
 “간단합니다. 어비스에서 구할 수 있는 아이템 중에는 지금 김지운 소령님을 걷게 만들 수 있는 아이템이 있습니다. 물론 공짜는 아닙니다. 김지운 소령님에게 제안을 하겠습니다. 3년, 3년 동안 우리 삼족오 클랜의 헌터로 활동해 주십시오.”
 
 그렇기에 이어진 제안, 그 제안 앞에서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일단 김지운은 당장 은퇴하고 싶지 않았다.
 무언가를 더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은퇴를 하더라도 평생 지팡이 없이는 걸을 수 없는 몸뚱이로 하고 싶지는 않았다.
 
 “좋습니다.”
 
 동시에 궁금했다.
 
 “그 어비스란 곳, 가보겠습니다.”
 
 이도준이 말한 게 진실인지.
 그리고 그 말은 진실이었다.
 
 “헌터가 되는 순간 명심해야 할 것은 한 가지입니다. 어비스에 대한 것을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매우 중요합니다. 어비스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신비가 존재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 어비스와 헌터에 투자하는 분들은 이 신비가 공유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렇잖습니까? 누구나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가지면 황금 값이 제 값을 받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이것만 명심하시면 됩니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이제 게이트를 넘어가셔도 됩니다. 부디 헌터가 되어 살아 돌아와 주십시오.”
 
 준비를 마치는 순간 김지운은 어비스에 들어갔다.
 그렇게 볼 수 있었다.
 새하얀 안개로 가득 찬 세상을.
 
 크어어!
 
 그 안개 속에서 등장한 온갖 종류의 괴물들을.
 
 [레벨이 올랐습니다.]
 
 그리고 들려오는 알 수 없는 목소리를.
 그렇게 시작된 헌터의 삶, 김지운은 그 삶을 꽤 잘 해냈다.
 
 “역시 제 눈이 틀리지 않았군요! 이렇게 멀쩡하게 귀환하신 분은 처음 봅니다.”
 
 10명 중 1명만이 놀아온다는 첫 사냥도 훌륭하게 해냈다.
 
 “헌터가 되신 걸 축하합니다!”
 
 그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김지운은 동료들과 함께 여러 결과물들을 내놓았다.
 
 “그거 아십니까? 지금 김지운 소령님이 최초로 그린존에 도달하셨다는 거? 아, 이제 소령님이 아니죠. 그래도 이게 편해서 이렇게 부르게 되는군요.”
 “이번에 잡으신 블러드 오크, 아무래도 김지운 소령님이 처음 잡으신 것 같습니다. 찾아보니까 잡았다는 클랜이 없네요.”
 “범닭의 알을 가져오셨다고요? 진짜입니까? 맙소사! 그걸 구해오시다니! 용케 구해오셨습니다! 이건 최초입니다! 그 알을 가져온 건 김지운 소령님이 최초입니다!”
 
 꽤 놀라운 결과물들을.
 하지만 언제나 운이 좋을 수는 없는 법.
 결국 그날이 왔다.
 
 “대장!”
 “긴 말은 필요 없다.”
 
 모두가 전멸할지도 모르는 위기를 앞두고 결국 가장 뛰어난 한 명이 희생을 해야 하는 날이.
 
 “내가 놈을 유인할 테니까 도망쳐라.”
 
 그리고 그날 제물은 김지운이었다.
 김지운은 마주한 괴물을 유인했고, 그 사이 동료들은 도망쳤다.
 
 “······여기서 인디고존이라니, 이런 식으로 들어올 줄은 몰랐는데.”
 
 그 과정에서 김지운은 이제까지 그 누구도 살아 돌아온 적 없는 영역에 들어갔다.
 저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곳으로.
 
 “김지운 소령님!”
 
 그러나 운 좋게 김지운은 살아 돌아왔다.
 
 “여섯 달입니다! 여섯 달 만에 돌아오셨습니다!”
 
 적잖은 시간을 보내고, 처참한 몰골을 했지만 그래도 어쨌거나 목숨을 부지한 채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그렇게 살아 돌아온 김지운은 말했다.
 
 “······6개월이 지났습니까?”
 “예? 예. 김지운 소령님이 동료들과 헤어진 후에 6개월이 흘렀습니다.”
 “그럼 계약기간은 끝났겠군요.”
 “예? 아, 계약기간은 진작에 끝나긴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김지운은 선언했다.
 
 “그럼 이제 은퇴하겠습니다.”
 
 헌터의 세계에서 은퇴하겠다고.
 
 “김지운 소령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충격적인 말이었고, 그래서 삼족오 클랜의 마스터인 이도준 역시 질문을 건넸다.
 
 “김지운 소령님은 최고의 헌터입니다. 이 어비스의 궁극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헌터입니다!”
 
 그 설득에 김지운은 말했다.
 
 “저는 어떤 임무이든 성공 가능성이 있는 임무만 수행합니다. 0.0001퍼센트라도 좋으니, 가능성이 있는 임무만 수행합니다.”
 “예, 모든 걸 해내셨죠. 아주 작은 확률이도, 희망이라도 있으면 기필코 해내셨죠.”
 “그게 제가 은퇴를 하는 이유입니다.”
 “아······.”
 
 어비스에서 현재까지 가장 깊은 곳, 그곳을 경험한 김지운이 보기에 어비스를 모험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라고.
 그곳에는 단 티끌의 희망도 없음을.
 그 말을 들었을 때 이도준 역시 의미를 알았고, 그렇기에 더 이상 김지운은 설득하지 않았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 한 마디를 끝으로 김지운은 은퇴한 헌터가 됐다.
 
 “은퇴 후의 삶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물론 은퇴한 헌터의 삶이 평화로운 건 아니었다.
 
 “많은 눈이 이제부터 김지운 소령님을 바라볼 겁니다. 비행기를 타고 어딘가로 가는 것은 불가능할 겁니다. 제주도를 가는 것조차 아마 적잖은 불편함이 따를 겁니다. 사람이 많은 곳, 누구나 볼 수 있는 곳만을 다니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만약 룰을 어긴다면, 그때는 분명한 응징이 따르게 될 겁니다.”
 
 어비스는 세상의 권력자들에게 꿈과 희망, 미래가 가득한 세상이 되어 있었고, 그 권력자들이 원하는 것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헌터 밖에 없었다.
 
 “저보다 잘 아시겠지만, 어비스를 향한 그들의 욕심은 이미 상식의 선을 넘어섰습니다.”
 
 그리고 그 헌터와 권력자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것을 다른 이들과 공유할 생각이 없었다.
 자연스레 은퇴한 헌터의 주변에는 온갖 귀와 눈이 붙었다.
 평생 조용한 삶을 강요받았다.
 그러나 김지운은 기꺼이 그 조용한 삶을 받아들였다.
 도리어 그는 그 조용함을 즐겼다.
 매일매일 백화점이나 핫플레이스 카페에서 파는 달콤한 디저트를 사서 메이저리그나 KBO경기를 보며 하루를 보는 나날을 보냈다.
 은퇴한 헌터의 나날을 보냈다.
 그날도 그랬다.
 12월, 야구 시즌이 끝나고 스토브 앞에 모인다는 스토브리그 시즌.
 그 시즌에 김지운은 여의도에 위치한 유명한 백화점의 지하 1층에 방문했다.
 
 “딸기방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딸기 케이크로 매우 유명한 카페의 팝업 스토어를 방문하기 위해서.
 
 “대기요? 대충 3시간은 기다리셔야 할 겁니다. 여기 태블릿에 일단 번호 입력해 주세요.”
 
 그렇게 그 딸기 케이크를 맛보기 위해서 대기 순번을 건 김지운은 하염없이 시간을 보냈다.
 어려울 건 없었다.
 야구 경기도 없는 그에게 남는 건 시간뿐이었으니까.
 그렇게 하염없이 제 시간이 올 때까지 기다리던 김지운.
 
 [잠시 후 차례가 옵니다. 대기해 주세요. 호명 후 5분이 지나도 오지 않으시면 예약은 취소됩니다.]
 
 이윽고 제 차례가 오는 순간 김지운은 어느 때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팝업스토어를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김지운은 볼 수 있었다.
 
 커헝, 커헝!
 “괴, 괴물이다!”
 
 백화점 지하 1층, 그곳에 어비스의 괴물 중 하나인 도그블린이 등장한 것을.

작가의 말

너무나도 오랜만에 새로운 글로 찾아뵙습니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이번주 토요일에 올리고 싶었는데, 결국 참지 못하고 이렇게 빠르게 올리게 됐습니다.


이번 글은 끝까지 쓸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언제나 부족한 글쟁이에게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151)

밥묵    
일단 보기는 보는데 유료화는 가겠죠?
2023.12.26 14:00
검은스타킹    
흐음
2023.12.26 14:38
현우    
잘보고 갑니다
2023.12.26 14:57
글빨.    
재밌어요
2023.12.26 22:03
달에앉은    
홧팅! 이번엔 제발 꾸준히 ㅎ 솔직히 저번 금연켐페인 헌터도 재밌었는데 터져서 ㅎ
2023.12.27 08:41
붉은마늘    
놀아온다는 / 오타
2023.12.27 12:48
브래드    
파이팅!!!
2023.12.27 14:25
문퍄고인물    
능력치 초기화물임
2023.12.27 14:55
無雙狂人    
재밌게 읽고 갑니다~
2023.12.28 13:05
옆집잉여    
이 작가 참 잘쓰는데 bj이후로 좀 끄적이다 조회수 안나오면 바로 판접기를 몇년째인데.. 걱정이..
2023.12.29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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