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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내 회귀에 빌런은 없다]

2023.12.27 조회 51,337 추천 631


 [제1화. 내 회귀에 빌런은 없다]
 
 2001년 11월 6일.
 사상 최악의 폭우와 이상 고온이 대한민국을 강타했다.
 
 쏴아아아아-
 
 한 치 앞도 잘 보이지 않는 도로 위.
 상복을 입은 소년이 숨을 헐떡이며 달렸다.
 하얗게 질린 얼굴과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숨소리에도 불구하고 환하게 웃었다.
 
 그의 손에는 장례식장의 상주라는 것을 증명하는 상주띠와 검은 봉지가 들려있었다.
 봉지 안에는 오늘 치러지는 수능의 수험표와 필기도구가 들어있었다.
 수험표에 적힌 강신우라는 이름이 빗물에 번졌다.
 
 “하아하아. 하필이면 왜 오늘이야. 어제였으면 좋았잖아.”
 
 정확히 30분 전.
 43살의 신우는 사채업자들에게 쫓기다가 차에 치였다.
 앞 유리가 깨지고 튕겨 나간 몸이 높이 떠올랐다가 몇 차례나 바닥을 굴렀다.
 암전이 되듯 정신을 잃었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폭우가 쏟아지는 도로 위였다.
 하지만 깨어난 신우는 더 이상 사채업자에게 쫓기던 실패자나 도망자가 아니었다.
 아니, 같은 신우였지만 23년 전의 젊은 신우였다.
 
 “상복. 그리고 교통사고.”
 
 이날을 잊을 리 없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이자 자신의 인생이 지독하게 꼬여버릴 최초의 시작이었으니까.
 신우는 이것이 자신을 불쌍히 여긴 신이 준 기회라고 생각했다.
 
 ‘원래대로라면 차에 치였다가 늦은 오후에나 정신을 차리지.’
 
 수능은 물론 대학도 물 건너가고 곧 그를 23년 동안 괴롭힐 빚에 허덕이게 된다.
 그가 23년을 일해도 늘어만 가는 빚은 죽을 때까지 절대 벗겨지지 않을 족쇄였다.
 
 신우는 얼굴의 피와 빗물을 쓸어내리며 복잡한 생각을 뒤로하고 현재에 집중했다.
 손목시계를 보니 깨진 유리 안쪽으로 분침이 아슬아슬하게 움직였다.
 
 [08:03]
 
 입실 시간까지 7분 남았고, 그가 수능을 치를 학교까지 한 정거장 남았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오히려 다리를 더욱 빠르게 뛰었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스스로 되뇌인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회귀 전 신우는 밑바닥을 전전하며 다양한 인간군상을 만났다.
 그중에 가장 부러웠던 것은 소위 좋은 학벌의 인간들이다.
 좋은 대학을 나왔다는 이유로 어디를 가든 대우받고 남들과 몇 배나 차이 나는 연봉을 받았다.
 
 시간이 지날 수록 학벌에 대한 신우의 후회는 갈수록 커졌다.
 좋은 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를 했다면 그의 인생이 훨씬 더 편해졌을 거다.
 빚으로 인해 금회장의 더러운 사냥개 노릇을 하지 않아도 될 테고,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인한 빚과 병원비로 쓰인 사채 빚으로 하루하루를 허덕이지 않아도 되었을지 모른다.
 남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연애를 하며 결혼을 하고 토끼 같은 자식을 낳았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홀로 남으신 어머니의 마지막을 지켜드릴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후회.
 후회.
 후회.
 
 자신의 20대는 전부 그것들로 쌓였다.
 신우는 과거로 돌아간다면 뭐부터 할지 수 없이도 상상해 봤다.
 로또? 비트코인? 주식?
 
 아니, 바로 수능을 다시 치르는 거다.
 그렇게 좋은 대학을 입학할 수 있게 된다면 인력소 대신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을 다닐거다.
 
 부모님을 원망하며 어머니의 가슴에 대못을 박지도 않을 테고, 더는 고생하지 않게 할 거다.
 그리고 놀랍게도 신우는 바로 오늘.
 그 모든 전환점에 섰다.
 
 이제 그 가장 첫 번째 후회를 부서뜨릴 시간이었다.
 
 신우는 터질 것 같은 가슴을 억누르며 학교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그가 지나간 바닥에 붉은 핏자국이 번져가다 빗물에 흐려졌다.
 
 [08:09]
 [08:10]
 
 마침내 시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기 전에 시험장에 도착했다.
 교실 문을 열자 앉아있던 학생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신우를 쳐다봤다.
 
 “너 뭐야?”
 
 시험지를 개봉하려던 감독관이 신우를 막아서며 물었다.
 
 “하아하아. 시험 보러 왔습니다.”
 
 모두가 신우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상복 차림은 물론이고 신발과 온몸은 진흙투성이였다.
 숨을 헐떡이는 얼굴은 핏기 없이 창백했다.
 그를 훑어내려 보는 감독관의 표정에 못마땅함이 가득했다.
 
 “복장이 이래서는 안 되겠는데? 어차피 늦기도 했고.”
 “저는 8시 10분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복장은 자유로 알고 있습니다.”
 
 2001년.
 이 당시만 해도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교사들이 많았다.
 바로 눈앞의 감독관처럼.
 
 “자유는 무슨. 너 때문에 다른 수험생들이 방해받으면 안되니까 얼른 나가.”
 
 감독관은 고개를 저으며 열린 문을 가리켰다.
 
 “내년에는 조금 더 일찍 서두르던가.”
 
 보통이었다면 감히 대들지 못하고 밖으로 나간다.
 하지만 신우는 아니다.
 이미 산전수전 다 겪고 닳고 닳은 43살의 영혼이다.
 자기도 모르게 입가가 말아올리며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나는 오늘 꼭 치러야겠는데?”
 "뭐? 치러야겠는데? 이 새끼가 건방지게 어디서 반말이야?"
 
 감독관은 얼굴이 일그러지며 신우의 어깨를 밀쳤다.
 종이 인형처럼 바닥에 넘어졌다.
 늘어진 머리가 옆으로 넘어가며 핏자국이 드러나자 감독관이 흠칫 놀랐다.
 
 “내가 오늘 시험을 치르지 못하면 지금 당장 119를 부르고 당신을 고소할 거야. 아무리 철밥통이라도 학생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데 멀쩡히 자리를 보전할 수 없겠지.”
 
 신우의 목소리가 교실 안에 울려 퍼졌다.
 그 말뜻을 이해한 감독관뿐만 아니라 자리에 앉아있는 학생들마저 신우를 괴물처럼 바라봤다.
 학생이 감히 감독관에게 그런식으로 말할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단순히 문제아라고 하기에는 자신감이 넘쳤고, 눈빛에 독기가 흘렀다.
 하지만 이 모든것은 신우의 철저한 생각안에서 벌어지는 행동이었다.
 
 ‘내가 울고불며 애원했다면 감독관은 오히려 더 나를 내보내려 했을 거다.'
 
 오히려 신우가 협박을 하자 감독관은 그의 상처를 살펴보며 움츠러들었다.
 이미 교실 안에서 수십 쌍의 눈이 그들을 지켜보고 있고 그가 한 짓과 상관없이 신우가 경찰에 신고한다면 사건이 복잡해진다.
 감독관은 짜증을 감추지 않고 손을 휘저었다.
 
 “···들어와서 자리에 앉아.”
 
 신우는 그를 비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왼쪽 다리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전해졌지만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책상 위에는 자신의 이름과 수험번호가 출력되어 붙어있었다.
 
 “야. 너 진짜 대박이다.”
 
 그의 뒤에 앉은 학생이 속삭이며 가지고 있던 휴지를 신우에게 건넸다.
 신우는 고맙다는 말 대신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감독관이 시험지를 거칠게 내려놓으며 소리쳤다.
 
 “시험 중에 뭐 하는 짓들이야! 부정행위로 0점 처리되고 싶어?!”
 
 움츠러든 학생들과 달리 신우는 오히려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아직 시험지도 안 나눠줬으면서 무슨 부정행위?”
 “뭐?”
 
 신우는 손을 휘저으며 뒤편에 있던 다른 감독관에게 말했다.
 
 “지금 당장 감독관 교체해 주시죠. 학생들을 협박하는 감독관 밑에서 시험치고 싶지 않습니다.”
 
 감독관은 할말을 잃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그를 대신해 뒤편에 서있던 여자 감독관이 앞으로 나왔다.
 그녀는 굳어진 분위기를 풀며 남자 감독관 대신 시험지를 나눴다.
 
 “이대로면 전부 시험도 못 치르겠어요. 제가 할게요.”
 
 시험지가 나눠지는 동안, 신우는 자신의 수험표를 살폈다.
 그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자신이다.
 앳된 자신은 눈빛이 밝고 당차 보였다.
 
 신우는 손을 들어 책상을 쓰다듬었다.
 그토록 원하던 수능 시험을 치르러 왔다는 사실이 피부로 느껴졌다.
 말과 표정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그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낡은 책상과 불편한 의자.
 그의 인생이 한순간에 20살로 돌아왔다.
 그런 것치고 이 모든 상황이 익숙했다.
 
 ‘항상 꿈꿔왔던 순간이니까.’
 
 신우는 눈을 부릅뜨고 휴지를 두툼히 집어서 왼쪽 허벅지 안쪽에 갖다 댔다.
 불에 덴 듯 통증이 몰려들며 휴지는 금방 붉게 물들었다.
 차에 치이며 그 파편이 상처에 박힌 듯 꺼끌거리는 이물감이 느껴진다.
 
 ‘어떻게든 시험이 끝날 때까지만 버티자.’
 
 앞의 학생이 첫 번째 시험과목인 언어영역 시험지를 건넸다.
 
 “파절 있는지 시험지 확인하고 덮어두세요.”
 
 신우는 언어영역 시험지를 빠르게 살폈다.
 몸은 20살이지만 영혼은 아니다.
 23년 동안 금회장의 사냥개로 부려지며 고등학교때 배운 내용은 전부 잊었다.
 문제를 봐도 대체 무슨 소린지 알기 어렵다.
 
 더구나 이번 2001년 수능시험은 역대급으로 어렵게 나왔다.
 제대로 공부를 했다고 해도 높은 점수는 힘들다.
 하지만 신우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나는 항상 이 순간을 꿈꿔왔다.’
 
 남들에게 인생을 바꾸는 게 로또 번호라면 신우에게는 2001년 수능이 그랬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면 수능 시험지와 답안을 비교해 보곤 했다.
 습관처럼 살펴보던 탓에 머릿속에 남은 것은 수십개의 숫자들뿐이다.
 
 ‘1,2,3,3,2,1,1,5,2,5’
 
 언어영역 1번부터 10번까지의 정답이다.
 
 신우의 머릿속에는 2001년 수능의 모든 정답이 들어있다.
 그러니 그는 시험이 끝나기 전까지 버티기만 하면 된다.
 신우는 시험이 시작되자마자 시험지에 정답을 표시해 갔다.
 마음 같아서는 OMR카드에 정답만 적고 싶지만 뒤에서 뚫어지게 쳐다보는 감독관의 시선에 그러지 못했다.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적당한 시간에 맞췄다.
 
 [39.<보기>를 바탕으로 위 글을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일거에 폭살 무너지는 담. 방문을 열고 나와 선 식구들 앞서···]
 
 신우는 더 문제를 볼것도 없이 3번을 체크하고 넘어갔다.
 OMR마킹이 시험 끝나기 10분 전에 끝이 났다.
 그럼에도 신우는 눈을 부릅떴다.
 이대로 조금이라도 마음을 풀었다가는 다시 눈을 떴을때 왠지 병원 천장이 보일것만 같았다.
 종이 울리고 감독관이 답안지를 걷어갔다.
 다음으로 영어와 수리, 선택과목까지 빠르게 시험이 이어졌다.
 
 시험을 치르는 동안 남자 감독관의 시선이 신우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신우의 정신을 날카롭게 만들었다.
 어느 순간에도 신우의 두 눈은 독기를 내뿜으며 시험지와 답안지만을 오갔다.
 마지막 시험의 답안지의 작성을 끝냈을 때 세차게 내리던 비가 마침내 그쳤다.
 신우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해냈다.’
 
 허벅지에 댔던 휴지가 이미 피로 축축했다.
 신우가 허벅지를 더듬자 뒤편에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뭐야? 너 손이 어디로 가는 거야? 대놓고 부정행위냐?”
 
 마침내 꼬투리를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손목을 거칠게 잡아 올렸다.
 신우는 몸이 휘청이며 의자 옆으로 쓰러졌다.
 
 “또 어디서 쇼를 하려고? 내가 분명 이 손이 허벅지로 가는걸···”
 
 감독관은 손에 들린 피 묻은 휴지 뭉치를 보고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신우는 흐릿한 시야로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병신.”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작가의 말

내 회귀에 빌런은 없다는 창작소설입니다. 간혹가다 현대에 맞지 않는 장면이나, 재미를 위한 역사적 사실의 변경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읽어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가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피쓰. :)

댓글(58)

as*****    
잘보고갑니다
2023.12.31 09:25
캔커피중독    
지기네 ㅋㅋ
2024.01.05 03:55
네메시스81    
주인공 화끈하네 ㅋ
2024.01.08 16:21
프라텐    
33살의 신우 오타인거 같네요 33살이 23년 회귀하면 10살이니...
2024.01.12 17:41
燦爛    
집념이 대단하네요
2024.01.21 00:36
흠집    
부모의 빚은 상속 거부하면 되는데
2024.01.21 16:39
자돌    
이 작가는 수능도 안봄? 시험지 배포하기 직전에 입실한다고? 그리고 협박? .....
2024.01.22 08:05
아희    
2001년 시험치는데 왜 2008년도 답안지는 왜 ?
2024.01.22 13:10
풍뢰전사    
진짜 감독관이라는게 개ㅂㅅ이군요 건필하세요
2024.01.22 21:02
n2**************    
8시 10분이 왜 배포 시간임 ㅋㅋㅋ 들어가서 대화한 시간이지
2024.01.24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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