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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가기버튼 화학천재의 비밀 투자 공식

시한부를 위한 지침서

2023.12.31 조회 71,582 추천 931


 생물학적 혹은 비 생물학적 등 외부요인으로 활성화되는 식물 내 중성지방(Triglyceride) 분해 효소인 리파아제(Lipase)는 세포 내 원형질(protoplasm)에 존재하는 다가불포화지방산(PUF, Apolyunsaturated fatty acid)와 만나 지질과산화(脂質過酸化)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이때 다가불포화지방산에서 18개의 탄소 사슬로 구성된 리놀렌산(linolenic acid)이 분리되는데.
 
 라이실옥시데이즈(Lysyl oxidase)효소는 이 리놀렌산과 결합하여 트라우마틴산(Traumatic acid)과 헥사날(Hexanal)로 분해되고.
 이 과정에서 식물의 신호 전달물질인 자스모네이트(Jasmonate)가 생성된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반쯤 내려간 차창 유리 밖을 바라보았다.
 망사 그물로 이루어진 벌초 모자를 깊이 눌러쓴 몇 명의 사람들이 풀숲 사이를 분주히 돌아다니며 예초기를 돌리고 있었다.
 윙윙거리며 돌아가는 날카로운 소리와 잘게 잘려 나가 공중에서 흩날리는 풀잎들.
 
 GLV(Green Leaf Volatiles).
 녹색 잎 휘발성 물질이라 불리는 이 유기화학물은 감지된 위협에 대해 미약한 독성으로 외부 위협 요소를 제거하는 방어기제임과 동시에 주변 식물들에 자신이 처한 위험한 상황을 외부로 전달하는 유일한 매개체다.
 공식 용어와는 별개로 대개 학자들은 GLV를 이렇게 부르곤 한다.
 
 식물들의 절규.
 
 동물과 같은 성대(聲帶, vocal cord)가 없는 식물들이 내지르는 무음의 비명.
 말없이 물끄러미 벌초 현장을 바라보던 나는 시선을 거두고 차창을 천천히 올렸다.
 조금 전만해도 가셨던, 바늘로 찌르는 듯 두통이 다시 시작되자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잣나무, 편백나무, 소나무, 은행나무······.
 
 사열(査閱)하듯 양옆에 길게 늘어선 침엽수림과 그 사이를 관통하고 있는 쭉 뻗은 도로의 끝에 기다리고 있을.
 이 세상에서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과의 달갑지 않은 재회에도 나는 자동차 가속 페달을 밟은 발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마음과는 달리 자동차는 눈치도 없이 쭉쭉 앞을 향해 힘차게 달려 나갔다.
 주말 낮에도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는 인적 없는 도로를 달리기를 대략 10여 분.
 '해인 요양원'이라는 거대한 현판이 붙어있는 시설이 시야에 들어왔다.
 천천히 차를 몰아 주차장에 주차를 마친 후.
 나는 조수석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종이가방을 낚아채듯 집어 들고 차에서 내렸다.
 
 본격적인 여름에 접어들며 조금씩 강해지는 햇빛에 눈을 살짝 찌푸리며 1층에 위치한 사무실로 향하자 의자에 앉아 있던 연녹색 유니폼의 중년 여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한상원 환자 보호자 되는 사람입니다."
 "아!"
 
 한상원이라는 이름에 요양사는 빠르게 반응했다.
 "죄송합니다. 바쁘실 텐데 연락을 드려서······."
 녹아내린 치즈처럼 쭉 늘어나는 말꼬리.
 오랜 시간 진상 보호자들에게 데인 경험에서 우러나온 나름의 처세술인 듯했다.
 그런 요양사를 향해 걱정하지 말라는 듯 슬쩍 고개를 저었다.
 "제가 법적 보호자인데 당연히 와야겠죠. 바로 접견할 수 있을까요?"
 "7층으로 올라가시면 돼요."
 기다렸다는 듯 환하게 웃은 요양사의 안내에 따라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문이 닫히고 7이라고 쓰여 있는 버튼을 꾹 눌렀다.
 그렇게 다시 몇 초.
 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다시 열리고.
 "한상원 환자 보호자 분?"
 "네, 맞습니다."
 이미 1층에서 만난 요양사의 연락이 간 듯 정미경이라는 이름패를 가슴에 부착한 긴 곱슬머리의, 비교적 젊은 여성이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띤 채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쪽으로 따라오시겠어요?"
 나는 그녀를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도 식사를 거부하는 중인가요?"
 "그게······."
 툭! 하고 던진 질문에 정미경 요양사는 난감하다는 듯, 어색한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저나 다른 요양사분들이 무슨 이유로 식사를 드시지 않는지 몇 번이나 질문을 드려도 어르신께서 도통 입을 여시질 않아서요. 일단 급한 대로 간호사님이 수액을 맞추고는 있는데······."
 마치 쏟아내듯 빠르게 말을 이어 나간 요양사의 말을 한귀로 흘려 넘기며.
 초등학교에 막 입학했을 무렵을 떠올렸다.
 유일한 가족인 자신과 어머니를 버리고 사라졌다 20년이 훌쩍 지나, 3개월 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홀연히 다시 나타난 한상원이라는 인간.
 분노, 원망, 증오, 불쾌······.
 창고에 보관 중인 오래되어 낡은 사진첩처럼.
 깊이 묻어 두었던, 가슴 한편에서 울컥울컥 솟아오르는 부정적인 감정을 눈 몇 번 깜짝할 사이 털어냈다.
 유리 벽 너머.
 기다렸다는 듯 나란 존재를 눈동자 가득 담아오는 한때 아버지라 불렸던 사람과 눈을 마주했다.
 "잠시 단둘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그러시겠어요? 그럼 어르신! 아드님 오셨으니까 편하게 이야기 나누세요."
 요양사는 총총거리는 발걸음으로 사라졌다.
 "······."
 "······."
 고요한 적막이 흘러넘치는 병실.
 나는 옆에 놓여있는 접이식 의자를 펴고 그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헐렁한 환자복 뒤로 살점이라고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앙상한 손가락, 고랑처럼 깊게 팬 주름과 움푹 꺼진 눈동자, 만개한 꽃밭처럼 얼굴 넓게 퍼져 있는 검버섯.
 강한 방향제로도 완전히 가려지지 않는 예비 된 죽음의 향기가 비강 속 상피세포를 쿡쿡 찔러댔다.
 "······오랜만이구나."
 "그러게요. 23년 정도 지났네요."
 "벌써 그렇게나 오랜 시간이 흘렀구나."
 
 뼈 섞인 날카로운 반응에도 덤덤한 얼굴을 유지한 채 말을 이어가는 아버지란 존재를 보며, 나는 더 말을 섞기 싫어 이곳에 온 본론을 빠르게 끄집어냈다.
 "요양사가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전화를 걸더군요. 수업을 제대로 이어 나갈 수 없을 정도로."
 "······."
 "왜요? 요양원 밥이 입에 맞지 않으세요?"
 "······."
 "뭘 좋아하실지 몰라서 일단 죽 종류로 가져왔어요. 입맛에 맞으셨으면 좋겠네요."
 들고 온 종이가방을 침대 위에 올리려는 순간.
 그것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툭! 하고 힘없이 떨어졌다.
 
 하필! 지금!
 
 피가 나도록 입술을 앙다물고는, 힘이 빠져 부들거리며 떨리는 손을 제어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것이 통한 것인지 조금 지나자, 손에 조금씩 힘이 돌아왔다.
 쥐었다 폈다.
 손바닥을 몇 번이나 시험한 후 나도 모르게 입술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너도 그 병에 걸린 거냐?"
 "맞아요."
 
 적어도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기는 싫었는데.
 
 4개월 전.
 갑작스럽게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극심한 두통과 함께 길거리에서 쓰러진 뒤.
 나는 이름 모를 행인의 신고로 119구급차에 실려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병원의 정밀검진 결과 나는 의사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모야모야병.
 
 일본 도호쿠 의대 교수였던 지로 스즈키 교수가 1969년 처음 이름 붙인 병.
 대뇌의 내경동맥(內頸動脈)의 혈관이 원인 불명의 이유로 점차 두꺼워져 혈액 공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주변 모세혈관이 자라나게 되는데.
 그 모습이 마치 담배 연기가 대기에 퍼지는 모습과 비슷해 일본어인 もやもや에 유래해 만들어진 병이었다.
 
 "빠르면 2년 이내, 아무리 늦어도 4년 정도라고 하더군요."
 
 병이 발견된 지 벌써 반세기가 지났지만, 모야모야병은 치료가 사실상 불가능한 불치병이었다.
 평균적인 기대 수명은 3~4년.
 운이 좋을 경우 10년 이상 장기 생존하는 경우도 있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말이었다.
 
 "병의 진행 진행 속도도 빠르고, 너무 늦게 발견해서 경과도 좋지 않다고, 의사가 당장 수술 날짜 잡자고 하는데, 아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처한 상황이 그렇게 녹록지가 않아서."
 
 수천만 원에 가까운 수술비용도 그렇지만.
 설사 수술이 성공하더라도 일시적으로 병의 증상을 호전시킬 뿐, 근본적인 치료가 아니기에 시간이 지나면 결국 뇌동맥이 협착 폐쇄되는 증상을 막을 수는 없다.
 
 "지금도 충분히 힘드니까, 굳이 이렇게 더 보태주시지 않아도 돼요."
 
 무감각하게 굳게 다문 일자 입술.
 하지만 그와 달리 숨길 수 없이 파르르 떨리는 눈가에 묻어나는 한줄기 괴로움의 편린에, 어쩐지 유쾌해진 나는 말갛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번처럼 단식으로 여러 사람 피곤하게 만들지 않을 거라 믿을게요."
 "······그러마."
 
 간단한 다짐을 받은 후.
 나는 누군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재빨리 요양원을 빠져나왔다.
 
 "후우."
 
 텁텁한 분위기에서 해방되어 야외의 맑은 공기를 쐬자 조금씩 숨이 쉬어지는 것 같다.
 그렇게 잠시 숨을 고르고 차를 타려는데.
 
 "저기요! 보호자분 잠시만요!"
 
 입구 쪽에서 정미경 요양사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뛰어오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잠시 멈춘 사이, 재빨리 내 앞에 다가온 그녀는 몸을 반쯤 굽히고 헥헥거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죠?"
 "이거 받으세요!"
 
 그녀는 내게 뭔가를 쑥 하고 내밀었다.
 "보호자 분이 너무 급하게 나가셔서 전해주지 못했다고, 어르신이 저보고 대신 전해드리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말한 요양사는 손가락으로 7층 병실을 가리켰다.
 슬쩍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자.
 착각인 듯, 잠시 창문 근처에서 어른거리던 검은 그림자가 머물다 사라졌다.
 
 "······."
 나는 내게 건네진 것을 한참 동안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손바닥에 쏙 들어갈 만큼 작은 노란색 봉투 하나.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이 작은 봉투 하나가 어떤 의미였는지.
 그리고 앞으로 벌어질 거대한 변곡점의 서곡이었는지는.
 당시에 나는 알 수 없었다.

작가의 말

오후 7시 전후로 2편더 올리겠습니다.

댓글(60)

심현곡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 소설을 어떻게 이처럼 물 흐르는 듯이 씋 수가 있지? 2024년 대박, 대단한 작가님을 만난 행운.
2024.01.01 18:04
나이프    
건필하세요
2024.01.21 03:30
온달의꿈    
모야모야병 쉽게 치료 됩니다. 아침마다 생레몬즙 마시고 그외 일체의 가공식, 화식은 전부 끊고 사과,배,(껍질째)랑 각종 생 채소 견과류 불린콩 골고루 해서 매일매일 꼐에에에에에에에에에속 먹으면 됩니다. 별거 아닌거 같지만 과일속 유기산과 채소속에 있는 각종 파이토켐은 혈관에 눌어붙은 산화칼슘,단백질 찌꺼기 등 청소 효과가 매우 뛰어납니다. 맨날 쓰레기 같은거만 먹으면서 병원에 백날 가봐야 절대 못 고칩니다. 쓰레기 끊고 생채식,생과일 열심히 먹다보면 좋아 집니다. 다른건 몰라도 레몬,사과,배는 꼭 마니 먹어야 함.
2024.01.23 15:08
timelord    
참고로 요양원에서는 수액을 맞지 못합니다.
2024.01.25 00:29
죠지    
요즘 소설쓰기도 대단히 어렵겠네. 다양한 지식을 심도있게 준비해야 하니... 하지만, 상당 독자는 자신이 모르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에 흥미를 가지고 감사히 생각하지요. 화학은 오래만이네. 자. 건필요~
2024.01.29 09:33
위대한후예    
녹녹지(x) 녹록치(0)
2024.02.01 19:22
율려(律呂)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2024.02.01 19:25
ly*******    
잘보고갑니다
2024.02.01 22:48
소나기처럼    
모야모야병 조기진단된거면 모를까 쉽게치료 못하는병맞습니다 불치병까진아니지만
2024.02.02 06:30
끄부    
모야모야병 그정도아닙니다. 뇌혈관 질환에 아직 완치가 안되는거라 불치희귀병인건 맞지만 수술하면 관리는 해야하지만 일상생활하는데 문제없어요. 특히 손에 힘빠지는거면 허혈증상같은데 수술하면 괜찮아져요. 경련일으키는 것도 약먹고 운동해주면 괜찮습니다. 이건 참고로 경험담이구요.
2024.02.03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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