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이발병이 머리를 너무 잘 자름

프롤로그

2024.01.01 조회 15,445 추천 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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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두진. 그의 손이 닿으면 세상 그 어떤 인물이라도 연예인급으로 환골탈태한다.
 가위질 몇 번에 전혀 다른 사람이 되며, 드라이기의 바람만 있으면 10년은 젊게 보이는 마법을 부릴 수 있다.
 이것이 헤어 스타일리스트, 나두진이 가진 능력이었다.
 그의 이러한 능력에 대한민국이. 아니, 전 세계가 열광했다.
 충무로, 그리고 할리우드까지. 유명 배우들이 그에게 자신의 헤어와 미용을 맡기고 싶어 했다.
 연예계뿐만 아니라 정계 유명 인사들도 나두진의 이름을 연호했다.
 대한민국의 작은 나라에서 태어난 그가 미용계 전체를 통일시킨 주역으로 거듭나기 시작한 것은 놀랍게도 그의 나이 38세부터였다.
 한 언론사가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나두진이 운영 중인 헤어스튜디오 본점을 찾았다.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나두진 헤어스튜디오 본점은 아침부터 이미 줄을 서 있었다.
 매장 규모가 상당히 큰데도 불구하고 수많은 직원들과, 그것보다 더 수많은 고객들이 사방에서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오늘의 인터뷰를 맡게 된 젊은 여기자, 한예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평일이기도 하고. 그래서 좀 한가할 줄 알고 일부러 이 시간대로 잡았던 건데······.”
 
 나두진이 허허 웃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희는 평일이든 주말이든 항상 바쁩니다. 여기서 인터뷰하려면 너무 시끄러울 테니까 안쪽으로 들어가실까요? 제 사무실로 가시죠.”
 “아, 네!”
 
 한예영을 포함해서 오늘 그와의 인터뷰를 진행하기 위해 함께 온 기자들이 각종 장비들을 들고 나두진의 뒤를 따랐다.
 기나긴 복도를 지나다 보니 어느새 매장을 가득 차지하고 있는 소음과 멀어진 공간에 도착해 있었다.
 
 “여기입니다.”
 
 작은 사무실을 상상했었는데. 생각보다 꽤 넓었다.
 
 “혼자서 사용하시는 사무실 맞죠?”
 
 한예영 기자의 물음에 나두진은 여러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일에 매진하는 것도 좋지만, 가끔씩 숨 돌릴 때도 필요하더라고요. 제가 늦게 이 업계에 발을 들인 만큼, 더 오랫동안 일하고 싶기도 해서요. 오래달리기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처음부터 전력질주를 하면 나중에 갈수록 빨리 지치는 것처럼, 체력 안배를 잘 해야 하는 법이지요.”
 
 다른 기자들이 인터뷰를 준비하는 사이, 한 기자는 나두진과의 대화에 집중했다.
 인터뷰를 진행하기 전에 이런 식으로 가벼운 대화들을 통해 미리 입을 풀게 만드는 것도 중요한 과정이다.
 그래야 좀 더 원활한 인터뷰가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오기 전에 인터뷰하셨던 거를 몇 개 더 보고 왔었어요. 보다 보니까 공통점이 하나 있더라고요.”
 “어떤 건가요?”
 “어느 인터뷰에서든 대표님께서 꼭 언급하시는 게 있었습니다. ‘늦게 이 업계에 발을 들였다’라고요.”
 
 나이 이야기가 나오자, 나두진의 얼굴에 쓴 미소가 번졌다.
 
 “저한테는 한으로 남아 있는 일이거든요.”
 “한이라고 하시면······.”
 “사실 이 일을 일찍 시작할 수 있었던 계기가 분명 저한테도 있었습니다. 저한테 머리 자르는 일에 재능이 있다고 여러 사람들이 알려줬었는데. 제가 그럴 리가 없다면서 애써 부정했죠. 그 다음에는 될 리도 없는 사법고시 시험에 매진했다가 1차 필기도 합격 못하면서 허송세월을 보내고. 뒤늦게 헤어스타일이라는 걸 배우기 시작하면서 지금에 이르게 되었죠.”
 
 한혜영 기자는 왜 나두진이 인터뷰를 진행할 때마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것에 후회한다고 말을 했던 건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 ‘재능이 있다’라는 말을 들은 게 언제쯤 이였을까요?”
 “22살입니다.”
 “세상에. 그러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미용 일을 시작했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더 빠른 시기에 유명해졌겠네요?”
 “그렇죠. 날려먹은 시간이 너무 아깝지 않습니까? 저는 지금도 후회하고 있습니다. 왜 그때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았는지.”
 “근데 좀 이상하네요.”
 
 한혜영 기자는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한 사람만 대표님한테 ‘너, 재능 있다’라고 말하면 그냥 예의상 나 기분 좋으라고 말한 거겠구나 하면서 넘어갔을 텐데. 방금 말씀하셨을 때에는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라고 하시지 않았나요?”
 “네, 맞습니다.”
 “그러면 그게 빈말이 아니라는 건 대표님도 잘 아셨을 텐데. 왜 그런 선택을······.”
 
 나두진이 그들의 말을 믿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바로 그 말을 들었던 장소가 지닌 특수성 때문이었다.
 
 “군대에서 들은 말이거든요.”
 “아, 아하······.”
 “제가 군대에서 어쩌다가 이발병으로 일했던 적이 있었거든요. 근데 생각을 해보세요. 군대에서 ‘머리를 잘 자른다’라는 말이 진짜로 잘 자른다는 말하고 똑같이 작용할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냥 바리깡 들고 두상에 맞춰서 일정 크기로 잘 자르기만 하면 되는 거였거든요.”
 
 그가 군대를 다녔던 2008년도 시절에는 그랬다.
 나두진 대표가 소파에 몸을 깊게 묻었다.
 
 “그런데 설마 그들이 했던 말이 진짜였을 줄이야. 하하. 이제 와서 생각해도 참 어이가 없습니다. 차라리 그 칭찬을 군대가 아니라 제가 지금 있는 헤어스튜디오에서 들었더라면. 그러면 ‘아, 나한테 정말로 미용에 재능이 있구나’ 하고 바로 깨달았을 겁니다.”
 “아쉽네요, 그거.”
 “저도 그렇습니다.”
 
 한혜영 기자가 아무리 그에게 공감을 하려고 해도 그의 안타까운 심정을 100퍼센트 알 수는 없었다.
 이 아쉬움은 본인만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가끔은 생각합니다. 20대였던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유명한 헤어 스타일리스트가 될 수 있을 텐데 말이죠.”
 “그래요?”
 
 한혜영 기자가 순간 잠시 망설였다.
 슬쩍.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선배. 촬영 언제 시작해요?”
 “한 5분 정도? 왜?”
 “대표님한테 드릴 게 있어서요.”
 
 선배 기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한혜영 기자가 품속에서 뭔가를 꺼냈다.
 
 “대표님. 이거, 선물로 드릴게요.”
 “이게 뭡니까?”
 
 한혜영 기자가 내민 것은 무지개 색을 품고 있는 작은 돌조각 하나였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졌다기보다는 누군가가 가공해서 임의로 만든 돌로 보였다.
 
 “굉장히 예쁘군요. 네일 쪽에 레인보우 트윙클이라고, 이런 비슷한 색감을 가진 매니큐어가 있는데. 그것하고 상당히 비슷해 보입니다.”
 
 직업병일까. 뭐든 미용 쪽으로 연결 짓는 그를 향해 한혜영 기자가 옅은 미소를 그렸다.
 
 “얼마 전에 부산으로 출장 갈 일이 있었는데, 오래된 잡화점에서 이런 돌을 팔고 있더라고요. 주인아저씨한테 물어보니까 소원을 이루어주는 돌이라고 그러시던데. 대표님한테 오늘 인터뷰 수락해주신 감사의 뜻으로 전해드리려고 가져왔어요.”
 “소원을 이루어주는 돌이라. 좋네요, 그거.”
 
 물론 나두진은 그녀의 말이 진짜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일체 고려하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약 정말로 소원을 들어주는 돌을 평범한 잡화점에서 팔고 있다면.
 나두진이 진즉 싹쓸이를 해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준비가 다 되었다는 신호를 받은 한 기자가 손뼉을 가볍게 마주쳤다.
 
 “자! 그럼 인터뷰 시작할까요?”
 
 오늘도 나두진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
 
 아침부터 한 기자를 통해 진행했던 인터뷰를 필두로 오늘도 바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복귀한 나두진.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는 옆에 옷걸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겉옷을 그대로 바닥에 벗어 흘렸다.
 너무 지쳐서 옷 걸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털썩!
 소파에 그대로 쓰러지듯 누워버린 나두진은 짧게 ‘AB, 티브이 켜 줘.’라고 외쳤다.
 그러자 인공지능 시스템인 AB의 작동에 따라 티비가 저절로 켜졌다.
 흘러나오는 뉴스에 잠시 귀를 기울였다.
 
 ―오늘은 영재 특집으로, 13살의 나이에 대한민국 피겨스케이트 국가대표를 달성한 성아름 양을 초대석으로 모셔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아름 양.
 ―안녕하세요! 성아름입니다!
 
 13살.
 20살도 안 된 어린 나이에 국가대표 자격을 거머쥔 아이를 보고 있자니 나두진은 왠지 모를 슬픔이 밀려왔다.
 티비 화면 속에 있는 성아름의 모습은 생기 넘치고 초롱초롱해 보였다.
 어린 나이 때부터 일찌감치 자신의 재능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크나큰 축복이라는 것을 나두진은 왜 몰랐을까.
 
 ‘나도 참. X신이지.’
 
 군대에서 자신에게 그토록 재능러라고 칭찬하고 찬양했던 전우들, 그리고 간부들. 그들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게 나두진이 범한 가장 큰 실수였다.
 그때 이 일을 시작했더라면.
 최소 15년 이상은 일찍 지금과 같은 성공을 누렸을 것이다.
 툭.
 그의 주머니 안쪽에서 무지개 색 돌멩이 하나가 떨어졌다.
 한혜영 기자가 선물이라고 하면서 줬던 소원을 이루어주는 돌.
 그것을 보자마자 나두진은 스르르 눈을 감으면서 생각했다.
 자신의 재능을 처음 알아차렸던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나두진이 잠에 빠지기 직전에 그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바로.
 무지개 색 돌이 은은한 빛을 뿜어내는 장면이었다.
 
 ***
 
 천천히 눈을 뜬 나두진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뭐······ 야, 이거.”
 
 흰색 바탕에 검고 작은 물결무늬가 새겨진 천장은 나두진에게 있어서 익숙하면서도 낯선 존재였다.
 
 “설마.”
 
 그가 눈을 의심하고 있을 때.
 가설을 확신으로 만들어주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빠빠빠빠빰~ 빠빠라바빰! 빠빠라바빰!
 군대에서 지겹도록 들었던 바로 그 기상나팔소리.
 
 ‘깜짝이야!’
 
 너무 놀란 나머지 나두진은 정신이 번쩍 든 채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자신이 군 생활을 했었던 2008년도 내무반 모습 그대로였다.
 
 ‘뭐야. 설마. 또 빌어먹을 재입대하는 꿈이냐?’
 
 전역한지 한참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남자들은 가끔씩 이런 식으로 재입대 꿈을 꾼다.
 나두진은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풍경이 그런 부류의 꿈인 줄 알았다.
 그러나 꿈이라고 하기에는 기분이 나쁠 만큼 생생했다.
 덜컹!
 생활관 문을 열고 들어온 당직사병이 목소리를 높였다.
 
 “6시 10분까지 사열대 앞으로 집합합니다. 집합!”
 “집합!”
 
 병사들이 당직사병의 외침에 복명복창했다.
 쩌렁쩌렁 울리는 일이등병들의 목소리에 나두진은 귀가 찢어지는 줄 알았다.
 이때, 그를 유심히 지켜보던 한 남자가 나두진을 툭툭 쳤다.
 
 “야, 나두진. 너는 복명복창 안 하냐? 이등병 새끼가 벌써부터 빠져가지고. 어?”
 
 나두진과 같은 분대 소속이었던 선임, 윤지형 상병.
 소위 악마라 불리는 그의 어투에 나두진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진짜로 꿈······ 맞겠지?’
 
 그 순간.
 또르르 소리를 내면서 무언가가 그의 곁에 떨어졌다.
 그 무언가를 본 순간.
 나두진은 직감했다.
 
 ‘설마······!’
 
 무지개 색을 띠는 작은 돌멩이 하나.
 소원을 이루어준다고 했던 돌이 나두진의 왼쪽 발 근처에 떨어져 있었다.
 
 ‘이 돌이, 진짜였다고?’
 
 만약 정말로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진 거라면 좋긴 한데.
 
 ‘회귀를 시켜줘도 이등병 때로 시켜주면 어쩌냐, X발!’
 
 X같은 타이밍이었다.

댓글(31)

as*****    
잘보고갑니다
2024.01.05 07:00
천지패황    
이 양반 또 군대로 보내버리는군... 악마다
2024.01.13 07:15
RV조이    
섬뜻한 상황이군...
2024.01.14 01:52
[탈퇴계정]    
근데 뭔가뭔가네요... 처절하게 실패한 것도 아니고 그냥 단순히 재능을 늦게 깨달았을 뿐인데 저렇게까지 후회할 일인가요? 게다가 무슨 축구선수처럼 시기를 놓치면 아예 되돌릴수 없는 일도 아니고 심지어 늦게 시작했지만 정점에 다다랐는데 말이죠. 이미 천장을 찍어놓고 더 일찍 성공했으면... 이러고 있는데 후회하는 정도가 너무 과한 것 같습니다. 회귀에 대한 간절함을 보여주시려고한 건지 모르겠는데 제 개인적으로는 의아했네요. 그냥 후회보다는 아쉬움 정도로 잔잔하게 갔으면 더 좋았을 거 같습니다
2024.01.17 17:25
[탈퇴계정]    
그것과는 별개로 전작 군대물 재밌게 읽었습니다. 이번 작품도 재밌게 읽겠습니다!
2024.01.17 17:26
js*****    
그 부대는 두상이 좋고 인물이 빼어난 군인들이 만ㅅ았다. 왠만해선 추남이 이발로 인해서 미남이 되지 않거든요
2024.01.21 09:08
9시내고양    
이쯤되면 군대시절을 너무 그리워하시는 거 같은데...다시 보내드려야 할 것 같은데...
2024.01.22 11:23
소리게    
어찌되었든 성공한 사람들은, 치명적이고 심각한 관계의 문제가 일어난게 아닌이상, 다시 밑에서부터 그 노력과 마음을 쏟는 시간을 보내야한다는것에 진저리를 치면서, 절대 돌아가고싶지않다. 라고 말하던데.
2024.01.22 12:51
yeom    
잘 보고 갑니다.
2024.01.24 14:03
g2***********    
아니 5.60대나 아님더먹어서 손떨려서 가위를쥘수없는나이도아니고 38살때 정상급이됐는데 이렇게후회하고 회귀를시키는건좀..? 잉? 싶은데
2024.01.24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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