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린 신음이 공간을 희미하게 채운다.
나는 이내 그 신음이 내 입에서 나온 것이란 걸 자각했다.
으득- 하는 소리와 함께 악다문 이가 고통을 더욱 실감케 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왜 이렇게 몸이 아픈 거지?
불같은 고통 속에 간신히 정신줄을 붙잡은 나는 대체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떠올리려 애썼다.
그러자 조금씩, 파편처럼 흩어진 기억이 제자릴 찾기 시작했다.
‘그래. 사고···.’
더위가 시작된 5월.
숙소 앞 편의점에 가기 위해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때였다.
해당 사거리는 오전엔 차량 운행이 드물어 굳이 신호를 기다리지 않는 사람들도 많은 편이지만 나는 어지간하면 무단횡단은 하지 않는 주의였다.
그렇게 신호를 기다리는데 유모차를 끌고 앞서나가는 할머니가 한 분 눈에 들어왔다.
저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어차피 신호 안 지키는 사람을 여기서 한두 번 본 게 아니라 그러려니 하려고 했다.
미친 듯이 달려오는 차량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이런 미친.’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무식한 속도로 돌진해오는 트럭 한 대.
그 순간,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몸을 날렸다.
대체 왜 그랬을까.
내가 그렇게 인류애가 넘치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아무튼, 덕분에 할머니는 무사히 길을 건널 수 있었다.
문제는 내가 그 자릴 대신했다는 거지만.
하늘이랑 바닥이 한 열 번쯤 뒤집혔다.
그 뒤론 잘 기억이 안나지만 그 찰나의 광경만으로도 내 몸이 어떻게 됐을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보나 마나 끔찍한 꼴이었을 거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뜨니 지금 이 꼴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신을 망치로 다져진 듯한 통증 속에 눈을 뜬 것이었다.
*
‘여긴 어디야···.’
병원은 아니었다.
처음 보는 낯선 풍경은 누군가의 방으로 짐작됐고 좀 더 주변을 둘러보니 전신 거울 하나, 옷장, 책상, 그밖에 별다른 가구는 없는 살풍경한 방이었다.
‘설마 할머니네 집인가? 그럴 리가.’
보통 사람이 차에 치여 데굴데굴 굴러나가면 119에 먼저 신고하는 게 정상이다.
그럼 당연히 병원으로 갔을 테고.
잠시 고민해봤지만 역시 답을 알 순 없었다.
정보가 부족했다.
나는 일단 일어날 수 있는지, 그것부터 알아보기로 했다.
손가락을 움직여보았다.
천만다행으로 힘을 줄 수 있었다.
발가락도 꼼지락거릴 수 있었다.
움직일 수 있겠단 판단이 서자 나는 끙 소리와 함께 몸을 일으켰다.
“으윽.”
심각한 통증에 절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무어라 설명하기 힘든 위화감에 휩싸였다.
‘뭐지?’
달랐다.
목소리에서 나왔어야 할 음색의 ‘톤’이.
나는 순간 아픈 것도 잊고 팔과 다리를 더듬어봤다.
내 머릿속 충격이 더욱 커져만 갔다.
그곳엔 응당 있어야 할 것들이 없었다.
수년간 훈련으로 다져온 강인한 근육들이.
나를 프로게이머라 증명해주었던 그 모든 게 연기처럼 사라진 것이다.
“대체 뭔···! 히익!”
꾀꼬리 같은 목소리에 나는 소름을 집어삼켰다.
그러자 더 명확히 눈에 들어오는 정보들이 있었다.
일단 이 두 팔.
상처가 좀 났지만 희고 고운 두 팔은 분명 내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 가슴은 또 뭐고.
나는 이쯤에 살짝 패닉 상태였다.
‘가슴이라니! 가슴이라니···!’
어지러움을 느낀 것도 잠시.
난 숨을 고르며 생각했다.
이건 어쩌면 꿈이 아닐까?
실제 내 몸은 아직 깨어나지 못한 채 병원 어딘가에 곤히 눕혀져 있는 거고 말이다.
차라리 그편이 더 설득력이 있었다.
정말 난데없이, 하루아침에 여자아이가 되는 것보단 말이다.
‘근데 꿈이라기엔 너무 생생한데.’
여전히 전신을 괴롭히는 통증의 여운이 남아있었다.
보통 이럴 땐 자기 볼을 꼬집기도 하던데.
만약 아프지 않다면 이것이 꿈이란 걸 인식하는 방법이었다.
“아야.”
그렇게 꼬집어본 볼은 그냥 아팠다.
이 말도 안 되는 일이 정말 현실이라고?
꾸욱.
믿을 수 없었기에 조심스레 평생에 가져본 적 없는 기관도 눌러봤다.
‘오···.’
촉감, 그리고 예상 밖의 탄력에 감탄하던 것도 잠시, 이내 귀를 찢는 비명이 머릿속을 흔들었다.
<꺄아아아아악-!!!>
그건 분명 내가 들어본 목소리 중 가장 크고 날카로운 것이었다.
*
“진정해! 말로 해요! 말로!”
<만지지 말···! 아니 가만히 있어요! 내 몸 가지고 아무것도 하지 마요!>
“윽. 알았으니까 목소리 좀 제발···!”
방 안에 사람은 하나.
그런데 목소리는 두 개.
이 당황스러운 상황에 나는 인상을 쓰며 입을 다물고 있었다.
머릿속 목소리의 요청대로 불편한 자세.
천장을 바라보며 차려를 한 상태로 누워서 말이다.
그렇게 난 머릿속 여성과 간단한 질문을 주고받았다.
그녀의 이름은 서다미.
이 몸의 원래 주인이었다.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트럭에 치이는 순간 영혼이 이 소녀의 몸으로 날아들기라도 했단 말인가?
원인을 생각하는 사이, 현실의 충격을 이기지 못한 소녀가 훌쩍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내 몸···돌려줘요···. 흑, 엄마아아···.>
“잠깐만. 아니···. 내 말 좀 들어봐요.”
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는 와중에 옆에서 누가 울기까지 하니 그냥 기절하는 게 더 낫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일인진 모르겠지만 당황스럽긴 나도 마찬가집니다. 그러니 좀 진정하고 상황 파악을 좀 해보죠.”
<······.>
코훌쩍이는 소리가 이어지긴 했지만, 일단은 저쪽에서 내 말을 들어주려는 느낌이 있기에 나는 서둘러 자기소개부터 했다.
“전 한영인이라고 합니다. 나이는 스물다섯이고 프로게이머를 하고 있습니다. 유니버스 아레나라고 아시죠? 아무튼, 그···제가 그렇게 이상한 사람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오늘 큰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한참을 일방적으로 떠들어댄 덕분일까.
다행히 소녀는 차츰 진정하는 것처럼 보였고 이내 울음을 그쳤다.
나중엔 소개에 자그마한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유니버스 아레나 선수요···?>
“예. 들어보셨죠? 리그도 진행 중이거든요.”
알 수밖에 없을 터였다.
유니버스 아레나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잘 나가는 게임이며 현재 왕성하게 리그가 전개되는 메이저 게임이었으니까.
게임에 통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올림픽 종목에 선정된 게임을 처음 들어보진 않았으리라.
그리고 나는 그 메이저 게임의 1부 리그 소속.
국가대표 예비 엔트리에 소집된 적 있는 제법 실력 있는 선수였다.
<알고 있어요.>
유니버스 아레나를 알고 있다는 말에 나는 차분히 건널목에서 일어났던 일을 그녀에게 설명했다.
믿기 힘들지만 아마 그 사고로 유체이탈, 뭐 그런 게 일어난 거 같다고 말이다.
그리고 이야기를 마치자 그녀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왜 저한테 오셨어요?>
“그건 저도 모르죠.”
나도 궁금하다.
어쩌다 내가 여기까지 왔는지.
영 불편했던 나는 손가락을 꿈틀였다.
계속 차려자세를 유지하려니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었다.
“그런데 그,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요?”
<저요?>
“예. 다미씨라고 부르면 될까요? ‘야, 너’는 좀 그렇잖아요.”
편하게 불러도 괜찮다는 답이 돌아오자 나는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먼저 첫 번째.
왜 이렇게 몸에 상처가 많냐는 거였다.
사고는 내가 당했지 그녀가 당한 게 아니니까.
팔다리에 새겨진 수많은 상처는 분명 평범히 생길만한 게 아니었다.
뭔가 사연이 있겠지 하고 기다리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그녀는 말하기를 주저하며 몇 번이고 입술을 뗐다 다물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이어진 그녀의 말엔 나도 도무지 목소릴 높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뭐? 자살!”
<아뇨아뇨! 자살이 아니고요!>
“저기요. 5층에서 몸을 던지는 걸 우린 자살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알아요?”
내가 트럭에 반죽이 되던 시각.
숙소 건물 옥상에 올라가 눈물을 짜던 서다미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이대로 뛰어내리면 편해질까?
물론, 분명히 말해두지만 서다미는 자살할 생각까진 없었다.
그냥 그런 생각을 해본 것뿐이었다.
나이 열여덟.
하는 일은 놀랍게도 나와 같은 유니버스 아레나 프로 선수.
소속은 3부 리그 팀 유니버스캣으로 데뷔한 지 갓 2년 차가 된 선수였다.
그런 그녀가 점심시간에 옥상에 서 있던 이유는 자신을 둘러싼 답답한 상황 때문이었다.
선배들의 텃세. 그리고 폭언.
잘 해보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팀 내에서 몹시 불합리한 대우를 받고 있었다.
“어딜 가나 그런 쓰레기들은 꼭 있네. 그래서요?”
<그냥 답답해서 바람을 쐬고 있던 거뿐이에요.>
자신의 처지에 한숨을 쉬며 잠시 바람을 쐬었던 것.
문제는 그 이후였다.
도무지 불 일 없는 돌풍이 느닷없이 옥상을 휩쓸더니 서다미의 몸을 난간 밖으로 붕 떠민 것이다.
5층.
바깥쪽엔 보도블록이 깔린 인도와 아스팔트 도로라는 걸 생각하면 정말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몸이 부유하는 그 순간에, 서다미는 공포에 휩싸여 온몸을 비틀었다.
그야말로 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그 마음을 알아준 것일까.
용케 몸이 가로수 끝에 걸리더니 우지끈 소릴 내며 가지를 사정없이 박살.
이리저리 긁히며 그녀는 인도로 떨어진 것이었다.
“완전히 죽다 살았네. 그래서요?”
<그다음은···누가 볼까 봐 일단 제 방으로 돌아왔어요. 혹시나 들키면 너 대체 옥상에서 뭐 하고 있었냐고 물어볼 거 같아서요···.>
“그야 당연히 물어보겠죠. 다미야. 자살하려고 거기 올라갔니? 했겠죠.”
<······.>
자초지종을 들은 나는 이 친구, 몸뚱이 하난 참으로 튼튼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가로수가 충격을 받아줬다고 해도 5층 높이 아닌가.
다른 사람이면 그 자리에 꼼짝도 못 하고 쓰러졌을 텐데 멀쩡히 제 발로 방까지 돌아온 걸 보면 상당한 인자강이라 할 수 있었다.
“무슨 상황인진 알았어요. 일단, 편하게 하랬으니까 말 좀 편하게 할게요. 그래도 되죠? 제가 오빠잖아요.”
<···네? 네.>
“내 생각엔 이 문제를 당장 해결할 순 없을 거 같아. 일단 내 몸이 어떻게 됐는지도 확인해야 하고. 너도···네 생활이 있을 테니까.”
당황하지 말고 차분하게,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데 모두의 동의가 있었다.
어느 정도 상황을 정리한 나는 조심스레 참고 있던 질문 하나를 더 꺼냈다.
“그런데 다미야.”
<네.>
“혹시 화장실이 어디야? 저기 맞지? 내가 좀 급해서 그런데···.”
<!!!!!!>
절대 안 돼요! 라는 강렬한 외침이 다시 한번 머릿속을 강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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