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기억을 담는 사진작가

1. 할아버지의 유지(1)

2024.01.13 조회 14,660 추천 275


 <1. 할아버지의 유지(1)>
 
 
 * * *
 
 “데스크에서 넘어온다! 하나, 둘, 셋! 큐!”
 “네, 지금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에 나와 있습니다! 여의나루역에서 펼쳐진 세계불꽃축제 현장에서 칼부림이 벌어진 가운데······.”
 “앰뷸런스 또 들어온다!”
 “차량 진입할 수 있게 비켜주세요!”
 
 찰칵―
 
 아비규환의 복판에서 연신 셔터를 누른다.
 
 현장감 가득한 사진들.
 그러나 사진에 담긴 건, 실제의 반의 반도 채 되지 않는다.
 
 의료진과 경찰, 취재진의 고함. 환자와 보호자들의 아우성. 귀를 찢는 사이렌까지 담아낼 순 없으니까.
 귀가 먹을듯한 소란을 뚫고, 선배가 팔을 흔들었다.
 
 “예찬아! 저기, 뒤쪽에도 앰뷸런스온다!”
 
 다른 취재진은 먼저 도착한 환자에게 구름처럼 들러붙어 있느라. 뒤늦게 들어서는 앰뷸런스를 발견하지 못했다.
 
 매년 가을, 여의도 한강변에서 펼쳐지는 ‘세계 불꽃축제’. 100만 인파가 운집한 현장에서 무차별 칼부림이 벌어졌다.
 
 범인의 인적 사항도, 피해 규모도, 범행 동기도 알려지지 않은 상황.
 지금처럼 이목이 집중됐을 땐, 취재 경쟁도 심해서 한 마디의 단독 인터뷰도 소중하다.
 
 “빨리 가자, 다들 달라붙기 전에! 한 마디라도 따야지!”
 
 선배는 마이크를 들고 내 팔을 끌었다.
 
 마침 들것에 실려 내리는 환자. 중학생쯤 됐을까? 앳된 얼굴은 피로 얼룩졌음에도 백지처럼 창백했다.
 
 “아이고, 지은아! 잠들면 안 돼! 정신 차려야 해!”
 
 선배는 딸의 손을 붙잡고 울부짖는 보호자에게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말릴 틈도 없었다.
 
 “따님이신가요? 대체 무슨 일이―”
 “뭣······ 기자예요? 비켜요! 지금 한가해 보여!? 비키라고, 기레기 새끼야!”
 
 퍽―
 
 세게 떠밀려 선배가 넘어진 사이, 구급대원들이 들것을 밀고 응급실로 달렸고. 그 뒤로 다른 취재진이 벌레떼처럼 달라붙었다.
 
 “선배, 괜찮아요?”
 
 내가 내민 손을 붙잡고 일어나는 선배, 이강진 기자.
 
 “거 경황없는 사람한테 너무 접근하면 위험하다니까요.”
 “씁······ 그래도 한마디만 해주지 좀.”
 
 입술을 깨물며 주위를 살피는 이강진의 동공이 환하게 열려 있었다.
 
 “아, 어디 개구멍 없나?”
 “숨게요?”
 “아니. 몰래 들어가게.”
 “아서요, 경찰이 통제 중인데. 어떻게 들어가려고요?”
 “야, 씨. 안 된다고만 하지 말고. 방법 좀 찾아봐.”
 
 흔히 ‘눈이 돌았다’고 할 때의 그 눈빛.
 문득 궁금했다. 무엇이 그 사람 좋던 강진 선배를 저렇게 만들었을까.
 
 “쓰읍. 그래! 아까 그 학생 이름이 지은이랬지? 혹시 사진 찍은 거 있어? 그거라도 내보내자. 여의나루 칼부림 피해자 여학생 중태. 이거면 그래도 시선 좀―”
 
 조만간 있을 인사 때문인가? 곧 태어난다는 둘째 때문에? 아니면 이자 내기도 버겁다던 대출금 탓일까?
 
 이유가 무엇이든, 이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 그래도 그건 좀······. 데스크에서도 뭐라 할 텐데.”
 “걔들 조회수만 잘 빨리면 모른 체 해주잖아. 기자질 하루 이틀해?”
 “하아, 선배.”
 “진짜 이럴 거야?”
 
 강진 선배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그래, 됐으니까 내 발목까지 붙잡지는 마라.”
 
 첫 직장 ‘내일일보’에서 만난 선배.
 흔히 말하는 ‘저널리스트’까지는 아니어도 선은 아는 사람이었는데······.
 그랬던 사람이 지금은 무언가에 씌인 것처럼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근데 임마, 정신 똑바로 차려. 밑에선 계속 치고 올라오는데, 위에선 버티고 안 내려온다고. 뭐라도 기회가 있을 때―”
 
 우웅―
 
 자켓 안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진 건 그때였다.
 발신자는······ 어머니. 못 받은 부재중 전화가 17통째?
 
 ‘설마.’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표정이 심상치 않았는지, 강진 선배도 낌새를 읽고 입을 다물었다.
 
 “네, 웬일이세요?”
 ―뭐 하는데 이렇게 연락이 안 돼?
 “일하고 있죠. 왜요?”
 ―아버님······ 그러니까 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의식 아래에 묻어두었던 기억들이 와락 피어올랐다.
 
 할아버지는 내게 특별한 분이셨다.
 어려서부터 유독 나를 예뻐하셨던 할아버지. 군에 하나뿐인 사진관을 운영하시며, 내게 사진을 가르쳐주셨던 스승. 대학에서까지 사진을 전공했던 것도 할아버지의 사진에 매료된 영향이 컸지.
 
 할아버지의 사진을 보고 꿈을 가졌고, 할아버지 같은 사진을 찍고 싶었으니.
 말하자면 내 롤모델이셨달까.
 
 이틀 전 대장암 수술을 받고 경과가 좋지 않아 입원 중이셨던 할아버지. 이번 취재만 얼른 마치고 찾아뵈려 했는데······ 늦어버리고 만 것이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더는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는 게, 아직은 실감이 되질 않았으니까.
 
 ―언제 내려올 거냐. 가시는 길은 배웅해야지. 생전에 널 얼마나 예뻐하셨는데.
 “그래야죠. 최대한 빨리 내려갈게요.”
 
 목구멍에 고작 풀칠 좀 하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바쁘다는 핑계로 서울에 눌러앉아 있었을까.
 뒤늦게 드는 후회에, 어머니의 전언이 쐐기를 박았다.
 
 ―할아버지가 네게 남긴 마지막 말씀이 뭔지 알아? 그렇게 살지 말라 하시대. 너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할아버지가? 그런 말씀을 남기셨다고?
 
 ―······됐다. 얘기는 얼굴 보고 하자. 네가 해줄 일이 있으니, 서둘러 내려와.
 
 뭐라 대답할 겨를도 없이 끊어진 통화. 나는 곧장 선배에게 다가갔다.
 
 “선배, 저 본가에 좀 내려가 봐야 할 것 같아요.”
 “뭐? 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복잡한 감정이 교차하던 선배의 표정이 정착한 곳은, ‘난감함’이었다.
 
 “야, 꼭 지금 당장 내려가야 하냐? 일단 이번 칼부림건 종합 1보까지만 딱 마무리하고······.”
 “선배.”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게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원래 불꽃축제 취재는 강진 선배가 홀로 나왔어야 했다. 그런데 불꽃축제인데다 야간 촬영이라 사진이 중요하다고 한사코 부탁해서 도우러 나온 참.
 이것만 아니었다면, 나는 할아버지의 임종을 지킬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사람이 왜 이렇게 변했어요?”
 “뭐?”
 “저한테 할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대강 아시면서, 어떻게 첫 마디가······.”
 
 그런데······ 부고를 듣자마자 한다는 소리가 고작 저거야? 6년을 동고동락한 사이가 고작 이 정도였나?
 
 지난 몇 년간 애써 외면해왔던 환멸이 일순간에 몰려들었다. 대체 왜 이러고 살아야 할까? 대단찮은 월급에 아등바등······ 상처 주고 상처 입으면서.
 
 나는 목에 걸고 있던 카메라를 벗었다.
 
 “혼자 하세요. 몰래 들어가서 찍으시든, 희생자 신상 따서 속보에 쓰시든. 뜻대로 하시라고요.”
 
 강진 선배의 손에 스트랩을 넘기자, 축 늘어진 카메라가 덜렁거리며 흔들렸다.
 
 “근데 선배도 아시잖아요. 고작 이런 속보 쳐낸다고 그동안 죽 쑨 게 만회되지는 않는다는 거. 단톡 탐사 기획이 대박 나도 될까 말까라는 거.”
 “야. 너 선배한테 말버릇이―”
 
 갈 곳을 찾지 못한 선배의 손에 끈 하나를 더 넘겼다.
 
 “이제 안 합니다. 당신 후배.”
 “자, 잠깐만. 예찬아. 야, 임마!”
 
 그 끝에서 흔들리는 건, 내일일보의 기자증이었다.
 
 “뭐든 터뜨려서 잘 먹고 잘사세요. 진심입니다.”
 
 할 말을 쏟아내고 돌아서는 나는 몹시 지쳐 있었다.
 살아가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모든 일에.
 
 ‘이거 맞아? 이렇게 사는 게 맞냐고.’
 
 번아웃.
 하얗게 타버린 채, 고향으로 향하는 길에 몸을 실었다.
 
 * * *
 
 본가가 있는 충청남도의 작은 군까지는 차로 세 시간이 조금 못 되는 거리.
 묵묵히 운전하는 내내, 할아버지가 내게 남기셨다는 말씀이 머리를 맴돌았다.
 
 ―그렇게 살지 말어.
 
 느릿하고 유들유들하게 이어지는 할아버지 특유의 진한 충청 사투리.
 늘 내게 깊은 애정을 보이셨던 분이기에, 예의 말투로 그리 살지 말라고 말씀하셨다는 게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말투에서 시작한 생각은 자연스레 흘러.
 
 ‘내가 도대체 어떻게 살았기에.’
 
 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자리에 고였다.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카메라를 가까이했던 나는, 자연스레 예술사진 작가의 꿈을 가졌다.
 명확한 꿈과 목표는 그 자체로 동력이 되었고. 중고교 시절부터 몇 차례의 공모전에서 수상한 이력이 보태져.
 서울 소재 4년제 사진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동네 어귀에 내 대입을 축하하는 현수막까지 내걸렸었지.
 
 입안이 썼다.
 
 ‘예술사진이라니. 그런 팔자 좋은······. 철이 없었지.’
 
 그때는 몰랐다.
 예술이라는 건, 소위 집 좀 산다는 도련님들이나 마음 편히 건드려볼 수 있는 영역이라는 걸.
 
 힘껏 노력해서 장학금을 타고, 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해도 학자금이 빚으로 쌓였다.
 서울에 본가가 있다는 것도 자산이란 말을 그때 실감했다. 홀로 상경해 나와 사니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갔으니까.
 
 돈. 그건 끝내 족쇄가 되어 꿈의 날개를 꺾었다.
 
 졸업 작품전을 눈여겨봤던 곳에서 단체전시나 촬영 제의를 보내오기도 했지만.
 당장 갈급한 생활비를 버느라 눈이 돌아있었기에. 그 기회를 모두 놓치고 말았다.
 
 ······안다.
 바보 같은 짓이었다는 것을. 재능을 살리고 싶었다면, 꿈을 이루고 싶었다면. 굶는 한이 있더라도 작가로서 커리어를 쌓아야 했겠지.
 
 하지만 사회를 모르는 햇병아리였던 나에겐, 내가 진 빚이 너무나도 무섭고 무겁게 느껴졌다.
 
 우습게 돈푼에 스스로 꿈을 팔아넘긴 꼴이 되어버린 뒤론, 내일일보에 입사했고. 기자업계의 3D라는 사회부에서 6년을 쫓기듯 살아왔다.
 늘 조급했고, 늘 불안했다.
 
 기삿거리만 된다면 앞뒤 가리지 않고 셔터를 눌러댔다. 예술이고 뭐고 하는 꿈은 묻어두고, 직업 윤리니 저널리즘이니 하는 것도 내팽개치고서.
 그 모든 게 어떻게든 서울에 초라한 보금자리라도 마련해 보려는 발버둥이었는데.
 
 ‘결국 이렇게 끝이구나.’
 
 쌓은 것은 빈약하고. 직장도, 사람도 남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빈소를 찾아가는 길이라는 사실과는 별개로, 앞으로 펼쳐진 어두운 국도가 마치 나의 ‘낙오’를 증명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강진 선배에게선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고 있었다.
 너무 모지게 말을 쏟아냈나, 뒤늦게 후회도 됐다.
 
 ‘나도 처음부터 이렇진 않았어.’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 보내길 좋아하고, 꿈과 낭만이 있는 놈이었다고.
 
 세상살이에 찌들어 변해버린 건, 선배뿐만이 아닐 것이다. 나 역시 앞만 보고 달리느라, 그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소홀했으니까.
 
 ―그렇게 살지 말어.
 
 할아버지가 남기셨다는 마지막 말씀은······ 그런 나를 책망하는 것이겠지.
 
 저 멀리, 군에 하나뿐인 종합병원이 어둠 위의 섬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어이구, 장손 아니여?”
 “예, 늦었습니다.”
 
 빈소는 할아버지가 평생 쌓아온 인연으로 발 디딜 곳이 없었다.
 
 “어휴, 오다 사고 난 줄 알았잖여~”
 “······최씨 아저씨? 잘 지내셨죠?”
 “뭐여~ 나는 박가고 여가 최가여~”
 “이런, 죄송합니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구수한 사투리. 밤길 운전에 날 서 있던 신경이 빠르게 가라앉았다.
 
 “엄마, 오빠 왔어.”
 
 정신없이 조문객을 맞고 있던 여동생이 날 알아보고 어머니를 불러왔다.
 
 “오느라 애썼다.”
 
 내 팔을 다독이는 어머니. 통화할 때만 해도 살풋 날이 서 있는 듯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포근하게 맞아주셨다.
 
 “얼른 들어가 봐. 할아버지 목 빠지시겠다.”
 “천천히 햐~ 저승가서 보면 되지 뭘~”
 
 묘하게 뼈가 있는 듯한 동네 어르신들의 농을 뒤로 한 채 빈소로 들어섰다.
 
 영정을 보자마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예감에 이를 악물었으나. 막상 절도 올리지 못하고 돌아 나와야 했다.
 
 “왜 영정이 없어요?”
 “내 정신 좀 봐.”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어머니가 손뼉을 치더니, 내게 웬 낡은 열쇠 하나를 건넸다.
 
 “영정은 너희 할아버지가 미리 찍어서 인화까지 해두셨단다. 사진관에 두셨다는데, 꼭 다른 사람 말고 너한테 시켜서 가지고 오라고 당부를 하셔가지고······. 어여 다녀와.”
 
 뭐지? 이것도 충청도 스타일인가?
 하지만 어머니 역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인 걸 보면, 할아버지의 마지막 장난이거나 뭔가 다른 뜻이 있으신 모양이다.
 
 * * *
 
 다시 밤길을 달려 면내의 사진관으로 향했다.
 
 지지직― 틱!
 
 열쇠로 문을 열고, 전등을 켜자.
 오래된 기억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오랜만이네.”
 
 어렸을 적만 하더라도 거의 여기서 살다시피 했었다.
 사진을 배우고, 간식을 얻어먹고. 대신 이런저런 심부름을 해드리거나······ 그래, 컴퓨터를 가르쳐 드리기도 했다.
 
 세월을 머금어 누렇게 퇴색된 CRT모니터가 올려진 책상. 그곳에 보란 듯이 종이봉투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조심스레 안에 든 걸 꺼내 보니,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보다 훨씬 수척해진 모습으로.
 할아버지가 웃고 계셨다.
 
 순간, 참아왔던 눈물이 왈칵 치솟았다.
 
 “할아버지······ 죄송해요. 이제야 찾아와서.”
 
 사진 속 할아버지는 살이 많이 빠지셨지만, 여전히 인자한 모습이었다.
 그런 분이 ‘그렇게 살지 말라’는 말씀을 남기셨을 정도로 엉망으로 살았다니.
 
 투둑―
 
 뒤늦은 회한.
 눈물이 영정 위로 떨어졌다.
 
 “아, 안 돼.”
 
 나는 왼 소매로 눈을 훔치면서, 오른손으론 영정에 떨어진 눈물을 닦아냈다.
 
 그때였다.
 영정 속 할아버지의 눈동자가 별처럼 빛난 것은.
 
 “어?”
 
 돌연 살아있는 것처럼 생기를 띤 그 눈을 마주하는 순간, 가벼운 현기증이 훑고 지나갔고.
 정신을 차린 나는 눈을 의심했다.
 
 분명 컴컴한 밤 중이었는데, 어느새 블라인드가 걷힌 창으로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내가 내려다보던 할아버지의 영정은, 조그마한 증명사진으로 바뀌었는데. 취업을 준비하던 날 위해 할아버지가 찍어주셨던 그것이었다.
 
 ‘저건······ 나잖아? 어, 목소리가.’
 
 목소리뿐만이 아니었다.
 마치 1인칭 시점으로 찍힌 영화를 보는 것처럼, 시선도 뜻대로 둘 수가 없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건, 할아버지의 기억이다.
 
 거친 손으로 연신 내 사진을 쓸던 할아버지가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었다.
 
 “하이고, 아가. 어쩔라고 객지 나가 아구 다툼에 낀 겨. 그리 살면 몸 상허고 맘 상혀.”
 
 고된 타지 생활로 고생하는 손자를 염려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덤벙입니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9)

마도폭풍    
'그렇게 살지 말어.' 이건 현실에 급급해 도덕도 인정도 내다버린 것 처럼 보이는 주인공의 행보에 대한 책망이 아니라, 보다 중요한 가치를 챙기지 못하고 세파에 휩쓸여 자신의 삶을 낭비해 가는 손자를 향한 바람이었었나 보네요.
2024.01.23 11:45
yeom    
잘 보고 갑니다. 마지막으로 남기신 '그렇게 살지 말어.'라는 말은 손자에 대한 할아버지의 걱정이 담긴 한 마디셨네요.
2024.01.29 01:10
풍뢰전사    
건필하세요
2024.01.31 07:17
시시포스    
작은 군 ----? 군도 크고 작고를 따지나요?
2024.02.06 18:03
hewz    
시보다 큰 군(면적만)도 많고 작은 군도 있고 그렇죠.
2024.02.07 23:32
겁많은중년    
면적기준으로 군단위 중 가장 큰 홍천군의 경우 면적이 1,820km2로 서울시의 3배가량 됩니다. 반대로 시/군단위 중 가장 작은 오산시의 경우 43km2 밖에 안됩니다. 군단위 중 가장 작은 곳은 울릉군으로 73km2입니다. 그러니 가장 큰 군과 작은 군으로 구분이 가능합니다. 물론 인구기준으로도 니늘 수 있습니다. 양평군 인구는 12만 명 정도로 4만명 전후의 태백시나 계룡시보다 인구가 많습니다.
2024.02.08 12:02
캠핑카    
재밌게 읽었습니다
2024.02.09 01:22
갓블린    
굿!
2024.02.22 05:59
바르힘    
건필하세요
2024.03.02 11:50
0 / 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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