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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가기버튼 사천당가 침술명의가 되었다

1. 당가에서 제일가는 둔재

2024.01.17 조회 48,449 추천 720


 1. 당가에서 제일가는 둔재
 
 
 “우혁이 형, 정말로 병원 그만두시게요?”
 “그래, 미안하게 됐다.”
 
 한방재활의학과 전문의인 최우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한방병원 후배들이 아쉬워했다.
 그동안 이 한방병원의 에이스로서 많은 환자를 진료해온 최우혁이었지만, 오늘 병원장을 만나 퇴직 의사를 밝혔다.
 그동안 진료 방침 때문에 병원 측과 계속 갈등을 겪었는데, 결국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퇴직하게 된 것이다.
 
 “나는 아무래도 남이 시키는 대로 진료하는 건 영 성격에 안 맞는 모양이야.”
 “우혁이 형이 빠지면 안 되는데······.”
 “병원장님이 재활 출신 또 뽑으실 거야. 걱정 마.”
 
 여기서 ‘재활’이라는 건 한방재활의학과 전문의를 뜻한다.
 이름은 양방의 재활의학과와 같지만, 담당 분야는 조금 더 넓다.
 한방재활의학과는 재활 치료뿐만 아니라 근골격계 및 신경계 질환의 각종 치료법을 전부 다 다루는 곳이다.
 침술뿐만 아니라 추나요법 및 각종 물리요법도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추나에 필요하기 때문에 엑스레이 판독 기술 같은 것도 갈고 닦아야 한다.
 오늘날 한의사에게 필요한 기술들을 전부 다 수련하고 나오는 전문의이기 때문에, 한방병원에서도 한방재활의학과 전문의라고 하면 월급을 더 많이 준다.
 
 “아니, 다른 재활 전문의라고 해서 우혁이 형만큼 잘할 것 같지는 않은데요.”
 
 후배들의 말대로, 최우혁의 실력은 독보적이었다.
 특히 환자의 증상을 정확히 분석하여 침 한 방에 빠르게 치료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하지만, 이런 최우혁의 치료 실력은 병원 입장에서는 별로 반가운 게 아니었다.
 환자를 침 한 방에 빠르게 치료하면 병원에 남는 돈은 만 원짜리 두세 장밖에 안 된다.
 한의원도 아니고 한방병원인데, 이렇게 객단가가 낮으면 경영이 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병원 측에서는 최우혁에게 추나요법 등 단가가 높은 치료를 병행하라고 요구했다.
 꼭 필요한 치료가 아니더라도 침 치료와 함께 실시하여 건당 진료비를 높여달라는 것이었다.
 
 최우혁은 이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그 치료가 꼭 필요한 환자라면 모를까, 돈 때문에 불필요한 치료를 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한방재활의학과 전문의로서 다른 한의사들보다 높은 급여를 받으면서 병원 경영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건 최우혁이 생각해도 문제였다.
 
 그래서 결국··· 최우혁은 병원을 그만두게 되었다.
 
 “우혁이 형, 이제 어떻게 하실 거예요? 다른 병원 가시게요?”
 “다른 한방병원들도 사정 다 비슷할 텐데··· 어디로 가시려고요?”
 “글쎄, 아직 계획은 없어.”
 
 최우혁은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하지만, 바라는 건 있어.”
 “그게 뭔데요?”
 “내 소신대로 마음껏 진료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어.”
 
 건당 진료비가 어떻고 비보험 매출이 어떻고··· 그런 걸 따져가며 진료하는 건 이제 질색이었다.
 누구의 참견도 받지 않으면서, 오로지 환자만을 위한 치료를 할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내 소신대로 마음껏 진료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상관없어.”
 
 과연 한국에 그런 곳이 있을까.
 살짝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최우혁은 그냥 웃어넘겼다.
 
 ***
 
 “허억······!”
 
 사천당가의 막내아들 당휘룡은 꿈에서 깨어났다.
 
 주위는 어두웠고 조용했다.
 향목(香木) 냄새만이 은은하게 풍기고 있었다.
 
 “윽······.”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땀을 잔뜩 흘려 온몸이 축축한 상태였다.
 가까스로 상반신을 일으켰지만, 몸이 무거워서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깨어나셨습니까?”
 
 냉정한 인상의 여성이 문을 열고 얼굴을 내밀었다.
 평소 당휘룡 곁에 머물며 호위를 담당하는 송화였다.
 
 “공자님, 무슨 도한(盜汗)이 이렇게 심하십니까?”
 
 도한.
 밤에 잠을 잘 때 땀을 흘리는 것을 의미한다.
 낮에 땀을 흘리는 것은 자한(自汗)이라 하며 기력이 약해진 기허증(氣虛證)의 증후로 본다.
 하지만 밤에 땀을 흘리는 도한은 음액(陰液)이 소모된 음허증(陰虛證)의 증후다.
 
 “하긴, 매일 같이 기루에서 질펀하게 놀면 신음(腎陰)이 상할 수밖에 없지요. 자업자득이십니다.”
 “······.”
 
 기루는 당휘룡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였다.
 기루에서 여자를 끼고 술을 퍼마시고 있으면 모든 근심걱정을 잊을 수 있었다.
 
 어제도 당휘룡은 기루를 다녀왔다.
 밤늦게까지 질펀하게 놀다가 돌아와서 제대로 씻지도 않고 잠들었다.
 하지만······.
 
 “아니다.”
 “네?”
 “이건 음허로 흘린 땀이 아니다. 그냥 꿈을 꾸었을 뿐이야.”
 “꿈이요? 악몽이라도 꾸신 겁니까?”
 
 당휘룡은 손가락 끝으로 관자놀이의 태양(太陽)혈을 꽉 눌렀다.
 그러자 지끈거리던 머릿속이 조금이나마 명료해졌다.
 
 “내가 누구지?”
 “네?”
 “내가 누구냐고.”
 
 갑작스러운 질문에 송화가 눈을 깜박였다.
 
 “그야··· 당가의 막내, 당휘룡 공자님이시죠.”
 
 하지만, 당휘룡은 재차 요구했다.
 
 “보다 정확히 말해봐라.”
 “네?”
 “세상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부르지?”
 “······.”
 
 송화가 잠시 주저했다.
 하지만 당휘룡이 재촉하는 눈빛으로 계속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대답했다.
 
 “당가에서 제일가는 둔재, 망나니 당휘룡이라고 부릅니다.”
 
 가주(家主) 당패호의 친아들임에도 불구하고, 무공에 아무런 재능이 없는 둔재.
 독(毒)에도 암기(暗器)에도 소질이 없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놈이라고 손가락질 당해왔다.
 그런 처지에 자포자기하여 하루하루를 방탕하게 보내온 망나니가 바로 당휘룡이었다.
 
 “그래, 그랬지.”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확인하고, 당휘룡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네?”
 
 당휘룡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러자 다른 세상의 기억이 저절로 떠올랐다.
 그 세상에서 당휘룡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 살았다.
 
 당휘룡은 그 모든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받아들여야겠지.”
 
 지금 당휘룡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의 태양혈을 압박하고 있다.
 머리 측면을 관장하는 관골측두신경이 측두근이라는 근육에 눌리면서 관자놀이 주변의 두통을 발생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럴 때 태양혈 부위를 지압하여 측두근을 자극해 주면 통증이 완화된다.
 
 이건 당휘룡이 알고 있을 리 없는 지식이다.
 사천당가의 서고를 이 잡듯이 뒤져도 이런 내용이 적혀 있는 의서는 찾을 수 없다.
 당휘룡이 이런 지식을 알고 있는 건, 다른 사람의 기억을 고스란히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전생(前生)의 기억을 되찾다니, 이것도 기연은 기연인가.”
 
 한방재활의학과 전문의 자격을 지닌 한의사, 최우혁.
 그것이 사천당가의 망나니 당휘룡의 전생이었다.

댓글(40)

조카    
기대합니다!!!
2024.01.19 09:12
    
다른세상이니 전생맞지!
2024.01.22 10:30
푸른평원    
잘 보고 갑니다.
2024.01.24 11:06
    
도입부를 어디서 본것 같은데 바로 무림 환생이네 ㅋㅋㅋ
2024.01.28 19:38
학교    
잘 볼게요.
2024.01.30 10:42
Theme1    
공자면 음기가 아니라 양기가 쇠해야 되는거 아닌가요?
2024.01.31 17:13
물물방울    
그래도 일종의 남가일몽인가? 아니면 윤회에 의한 전생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그리고 연재시작을 축하합니다. 아직은 시작이 미미해도 끝은 창대하리라. 믿고 힘내시고 분발하셔요. 더불어서 독자는 출발합니다.
2024.01.31 21:26
OLDBOY    
잘 봤어요.
2024.02.02 14:39
sa*****    
시대상으로는 당가가 전생이고 한방전문의가 후생같은데~
2024.02.02 22:11
효녹    
네? 되묻기신공 지존이네
2024.02.03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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