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인환은 불세출의 음악 천재다.
그 어떤 탑 가수도, 저명한 평론가도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음악을 배운 적은 없었으나 멜로디를 다루는 감각을 타고났으며.
평생을 골방에 갇혀 살면서도 세상을 바라보는 독보적인 감수성을 가졌다.
사망 후 발굴된 안인환의 음악은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미니멀한 악기 구성에 조악한 녹음 퀄리티로 빚어 낸 노래 열 다섯 개.
그 유작 앨범은 모든 아티스트들을 자극하는 영감의 원천이 됐다.
최고의 명성을 가진 가수들이 그를 추모하는 노래를 불렀고.
가장 어린 신인들조차 기꺼이 그의 창법을 따라하곤 했다.
그러나 안인환은 자신의 성공을 직접 볼 수 없었다.
* * *
새천년을 앞둔 겨울, 스물아홉의 안인환은 죽어 가고 있었다.
원인 모를 폐병이 그의 호흡과 목소리를 앗아갔다.
봄부터 시작된 병세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진행됐다.
의사조차 그의 병명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지만, 안인환은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안인환은 그 와중에도 음악 만들기를 멈추지 않았다.
허나 그의 노래는 음반사가 아닌 골방 책장에 쌓여 갔다.
녹음이 불가능한 노래들은 그저 악보로 남을 뿐이었다.
음악은 그에게 언제나 혼잣말이었다.
다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간 정말 죽어버릴 것 같아서 곡을 썼다.
그러나 우중충한 현실 속에서도 그의 노래는 마냥 무채색이 아니었다.
우울함이 먼지처럼 켜켜이 내려앉은 골방에서도 종종 밝은 것이 보이곤 했으니까.
그걸 느낄 때면, 안인환은 언제나 기타를 들고 곡을 써 내려갔다.
평생 침침한 우울 속에서 살면서도, 그는 세상 모든 희로애락을 노래할 수 있었다.
그것이 그가 가진 수많은 재능 중에서도 가장 찬란한 재능이었다.
* * *
사망 일주일 전인 성탄절엔 거리에 캐롤이 울려퍼졌다.
선지피가 호흡기에 차는 것을 느끼면서도 안인환은 노래를 만들었다.
손발이 굳어버린 뒤엔 생각으로 악보를 그렸다.
하루하루 죽어가는 와중에도 그의 머리는 악상으로 채워져 갔다.
몸은 말단부터 천천히 썩어들어 갔지만 감각은 끝까지 살아 있었다.
겨울의 빛무리, 눈송이의 포근함, 행복함 가득한 거리.
평소보다 소란스러워진 세상을 느끼며 안인환은 문득 생각했다.
평생 동안 감히 생각조차 해 보지 못했던 일.
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싶다.
내 노래가 울려퍼지는 거리를 걸어 보고 싶다.
전하지 못했던 내 혼잣말을 모두에게 들려주고 싶다.
내 음악을 모두의 뇌리에 남기고 싶다.
그러나, 그런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 테다.
새천년 맞이로 온 세상이 시끌벅적했던 새해 아침.
그렇게, 안인환은 무연고 사망자가 되었다.
* * *
시간이 지난 뒤, 모든 이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만약 안인환이 살아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제야 그의 음악이 그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했는데.
정작 누구보다 행복해야 할 안인환은, 끔찍한 외로움 속에서 생을 마감해 버렸으니.
그러나 안인환의 이야기는 이미 끝났다.
공개되지 않았던 그의 수많은 노래들도, 죽음과 함께 영원히 묻히게 될 터였다.
그로부터 20여 년 뒤, 한 고등학생이 자신의 전생을 깨닫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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