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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꿈 (1)

2024.02.04 조회 28,232 추천 816


 1. 나비꿈胡蝶之夢 (1)
 
 
 
 
  내 조선국 왕실의 귀한 몸으로 태어나 세자의 자리에 오른 이래 이루 말하기 어려운 역경을 겪었으니, 그로 말미암아 광증狂症(정신질환)을 셋이나 얻었다.
 
  첫째 광증은 궁중의 그 누구도 모르는 것이라, 바로 휘를 금이라 하시는 부왕(영조)께서 내게 처음 대리청정을 시키신 기사년(1749)부터 비롯된 증세였다.
 
  그때 부왕께서 차대次對(국무회의) 자리에 나를 앉혀두시곤 하셨는데, 말이 대리청정이지 실권은 모두 부왕께 있었다.
 
  당시만 해도 삶의 가장 괴로운 순간이 이때인가 싶었다.
 
  국사를 다루면 다룬다고 꾸지람을 듣고, 안 다루면 안 다룬다고 욕을 들었다. 무엇을 하든 돌아오는 것은 한량없이 다종다양한 꾸지람뿐.
 
  하루하루 참고 근근이 견뎌가던 어느 날, 차대가 끝나고 나와 중신들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 부왕께서 내게 물으셨다.
 
  “네가 차대에서 듣기에, 기억할 만한 문답이 있었느냐? 만약 그렇다면 이 자리에서 외워보라.”¹
 
  하시니, 답하지 않고 어찌하랴. 혼신의 힘을 다해 대충 좌의정이 했던 말을 주워섬겼다.
 
  그러자 질타하시기를,
 
  “여기 있는 영상과 좌상이 모두 네 스승 되거늘, 너는 어찌하여 좌상의 말만을 거론하고, 같이 있던 영상의 발언은 논하지 않느냐?”
 
  하시니, 실로 정신이 멍해졌다. 외운 것을 아무것이나 답하라 하기에 답했더니만, 왜 그것만 외우냐고 트집을 잡는 꼴 아닌가.
 
  허나 거기서 그치지 않고, 늘상 나오는 타박이 줄줄이, 신료들 훤히 보는 앞에서도 거침없이 이어져 또 한 바퀴를 돌았다.
 
  “···하니, 너는 분발하여 내 부끄러움을 씻도록 하라.”
 
  이렇게, ‘너 같은 게 내 아들이라니 이 아비가 다 부끄럽다’ 하는 소리부터,
 
  “너는 본래 품성이 거칠고 투박하여, 밖으로 엇나가기 쉽다.
 
  경들 또한 귀 기울여 들으라. 여색과 재물을 탐하는 것은 바로 그런 엇나가는 마음의 소치이니, 혹 훗날 원량(세자)이 그런 면을 보인다면 즉시 간하여 바로잡도록 하여라.”
 
  그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나를 옥죄는 듯하여 숨쉬기가 어려웠다.
 
  그저 그렇게 고개 조아리고서 내 불초함이며 크나큰 허물이며 고해바치고 있을 적, 불현듯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이는 내가 아니라 세자 이훤이라는 사람을 부왕께서 꾸짖음이라.’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던 것이다.
 
  마치 나와 세자가 따로 있어, 나는 이야기꾼이요 세자는 그 속에 나오는 사람인 양 상상하니, 마음을 억누르는 일만 근 바위 같은 부왕의 매서로운 꾸중도 대충 일천 근 정도로는 줄어들곤 했다.
 
  그 이후로 또 부왕께서 어떻게든 나를 욕보이고자 혀라는 칼을 빼 드실 때마다 나는 그 패관稗官(소설) 망상을 마음속의 행궁行宮으로 삼아 도망치곤 하였다.
 
  그때부터 나는 더욱 소설 따위에 탐닉하여 숱하게 소장하기에 이르렀는데, 아마 조선국 한양에서 가장 소설 많이 읽은 사내가 나 이훤이리라.
 
  지금 내가 이렇게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또한 그 광증의 소산이리라. 듣는 이도, 읽는 이도 하나 없지만, 만약 어찌어찌 이 내용을 알게 되는 자가 있다손 치더라도 필시 광인의 망상으로 넘겨짚고야 말 것이다.
 
  둘째 광증은 궁중 모두가 아는 것으로, 임신년(1752) 초겨울, 홍역으로 손윗누이 화협옹주가 먼저 부왕 곁에서 도망치고, 뒤이어 내가 앓아눕고, 아내 홍씨와 어린 아들이 번갈아 몸져누울 무렵부터 생겨났다.
 
  그나마 나와 함께 부왕 욕받이 노릇 하던 누님이 세상 떠나고, 나는 아직 열이 다 가시지도 않았는데, 부왕께서는 엄동설한 와중에 또 양위하겠노라며 나로 하여금 석고대죄할 판을 여시는지라.
 
  그때 이후로 부왕 음성이 두려워지고, 부왕 뵙기가 무서워지며, 종국에는 부왕 근처에 가는 것만으로도 떨리고 오한이 나기에 이르렀다.
 
  부왕께서 부르신다는 전갈 전하는 내관이 미워지고, 또 나로 하여금 부왕 곁에 나아가게 만드는 모든 사물들이 한낱 섬돌부터 신발, 의복에 이르기까지 미워졌으며, 나 자신이 미워지고, 때때로 그 울분이 사무쳐 무언가를 때려 부수고 괴롭혀야만 비로소 풀리게 되었다.
 
  천둥소리가 들려오기만 하면 나는 그것이 아버님 소리인 줄 알고 놀라고, 벼락 뇌雷 자만 읽어도 두렵게 되었다.
 
  그나마 글자 무서워하는 것은 대충 내가 무슨 도가 경전을 읽고 뇌공雷公(벼락신)이 두려워서 그렇다고 둘러댈 수라도 있지, 나인과 내관을 매질하고 닭이나 토끼 따위 죽이는 것은 숨기기도 민망한 일이었다.
 
  그러고도 한이 사무칠 때면, 결국 누가 건져낼 줄을 알면서도 우물에 뛰어들기도 하였다.
 
 때때로 정신이 맑을 때면, 어쩌면 정말로 부왕 말씀마따나 부왕 본인은 요순의 뒤를 밟고자 하는 성군이시요 나 혼자 미치광이 아들인 것은 아닌가 의심하였다.
 
  몰래 약재를 구하기도 하였으나, 백약이 무효요, 그나마 효험 있는 것은 부왕 등쌀을 피하는 처방뿐인데 이는 조선국 세자로서 도저히 취할 수 없는 처방이었다.
 
  아, 어찌 알았으랴? 이 처방 구하는 것이 세 번째 광증으로 이어질 줄을?
 
  마지막 세 번째 광증으로 말하자면, 실로 그 정상이 해괴하고 또 기이하니, 우리 조선국은 물론이요 대국과 왜국의 모든 고금古今 사정을 두루 모아본들 이만한 것이 없으리라.
 
  내게 필요한 무언가가 있을 때면 대개 수고하는 사람은 장인어른 홍봉한이었다. 사람됨이 모질지 못하기도 하거니와, 그 문중이 흥하고 망하는 것이 오직 내게 달려 있었으니, 물심양면으로 돕고 거들어줌이 외려 부왕보다 나을 때가 많았다. (딱히 달성하기 어려운 경지는 아니었다.)
 
  허나 장인어른이 몰래몰래 수소문하여 구해 오는 그런 약조차 내 심울心鬱을 다스리는 데 도저히 효험이 없었다.
 
  병자년(1756) 겨울, 장인어른이 잠시 평안도관찰사로 외방에 나가게 되자, 나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서신을 보내 청하였다.
 
  “평양은 예로부터 한양과 송도 뒤를 잇는 대읍(大邑)이요, 북변 명산의 귀한 약재가 모여드는 곳이니, 어쩌면 그곳에야말로 묘약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장인어른도 그 무렵이면 내 병세가 보통 심한 것이 아님을 깨닫고 근심걱정이 심했기에 – 사위 걱정인지, 딸 걱정인지는 모르겠지만 – 곧장 그러겠노라 답하고서 평양으로 부임해 갔다.
 
  그렇게 해가 바뀌어 정축년(1757)이 되었다.
 
  나나 작고한 누님만큼은 아닐지라도 제법 부왕의 미움을 받던 모후(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가 아닌, 영조의 왕비 정성왕후)께서 병세가 중해지시더니, 부왕도 없이 나 홀로 쓸쓸히 지키는 가운데 토혈하시며 끝내 세상을 떠나셨다.
 
  이 매정한 궁중에 그나마 부족한 나를 아껴주시고 또 안타깝게 여겨주시던 할머님 대왕대비(숙종의 계비 인원왕후)께서도 그로부터 한 달 만에 훙(薨, 타계)하셨다.
 
  부왕께서는 이번에는 지극히 슬퍼하시면서도, 또 툭하면 당신 거려청居廬廳(상제가 머무는 곳)으로 나를 불러내 꾸중하고, 때때로는 내 거려청에 들이쳐 불시로 타박하시니, 서린 울분과 한은 사무치고, 이제 의지할 곳 하나 남지 않았음에 마음은 미어졌다.
 
  마지막 동아줄 잡는 심정으로, 곧 돌아올 장인어른에게 급히 전갈을 보냈다. 상중에 이런 청 보냄이 예에 맞지 않음은 잘 알지만, 머리는 터질 것 같고 손은 부들부들 떨려 뭔가 일을 낼 것만 같으니, 어찌 한시를 참겠는가?
 
  “이대로는 오래 못 견딜 듯합니다. 장인어른께서 만약 약을 구하셨다면, 그 효험을 검증하고 말고 할 것 없이 가장 빠른 인편으로 보내주시기 바라노니, 내 믿는 바는 오직 그뿐입니다.”
 
  어찌 그런 약이 천 리 밖에서 목 타게 바란다고 갑자기 나타나겠는가?
 
  헌데 정말로 장인어른이 평양에서 기묘한 약 한 첩을 구하여 급히 내게 부쳤으니, 돌이켜보면 이때부터 뭔가 이상했음을 짐작했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그때 나는 그럴 계제가 아니었다.
 
  약을 받자마자 풀어보니 하얀 가루라, 약방문에 무어라 쓰여 있는지도 제대로 안 읽고 한 움큼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그 기묘한 가루를 들이마시자마자 혼절하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마치 내가 꿈속에 있는 것도 같고, 반대로 지금껏 살아왔다 여긴 것이 오히려 꿈인 듯하기도 하였다.
 
  때는 바야흐로 까마득히 머나먼 훗날이라.
 
  조선국은 이십칠 대 오백십팔 년 만에 일본에 망하고, 또 삼십육 년 뒤에 다시 일본이 망하니, 서쪽 먼 땅에서 온 오랑캐와 동쪽 먼바다에서 넘어온 오랑캐가 각각 들어와 조선을 반으로 나누었다.
 
  그 뒤로 반반 조선끼리 싸움박질을 벌이고, 그대로 할거하는 태세가 고착되었다.
 
  개중 북녘에는 김 아무개라는 자가 시운을 타고 일어나, 걸주도 한 수 접고 들어가고 왕망과 동탁은 고개 조아리며 배움 청할 법한 짓거리를 대를 이어가며 벌였다.
 
  남녘은 또 무슨 도깨비 조화가 일어나, 풍속은 오랑캐 풍속이 다 되었지만 그 물산은 크게 창성하여 마치 별천지처럼 변하였다.
 
  나는 그 남녘 땅 한양, 아니, 서울특별시에서, 더 이상 왕가가 아닌 전주 이씨 문중의 자제요, 고등학교라 부르는 향교의 원생, 열여섯 살 이윤관(윤관允寬은 사도세자의 字)이 되어 있었다.
 
  함자로 광 자 숙 자를 쓰시는(광숙光叔은 영조의 字) 엄하신 아버지, 그리고 아예 다른 존함을 쓰시는 자상하신 어머니 이씨 밑에서 자라는데, 두 분 모두 생김새와 성품은 비슷하나 또 궁중에서 보이는 모습과는 달랐다.
 
  아버지께서는 간장게장으로 남녘 팔도에 이름 떨치는 중소기업 사장이요, 어머님네는 전국 감 유통업계의 큰손 집안이라.
 
  완전히 화목하지는 않더라도 이처럼 괜찮은 집안에서 소위 금수저로 자란 나는, 문과 급제를 노리고서 그때 말로 행정고시라 부르는 과거를 준비했다.
 
  몇 번 고배도 마시고, 도중에 잠시 군문에 들어 무부武夫 노릇도 하고, 그러다 마침내 서른한 살이 되는 해에 급제하였다. 내가 이윤관의 삶을 산 지 만으로 십오 년 되는 해의 일이었다.
 
  헌데 이 또 무슨 조화인지, 급제한 날 저녁에 급체를 하여 의식을 잃고야 말았다.
 
  한참 혼미한 정신 속에서 허우적대다가 마침내 눈을 떴는데,
 
  ‘익숙한 천장이다.’
 
  어찌 된 영문인지, 해는 중천인데 이부자리가 깔려 있고, 주변은 내가 – 혹은 이훤이 - 낙선당樂善堂을 태워먹은 이래 침소로 쓰고 있는 창경궁 덕성합德城閤이었다.
 
  지난 십오 년이 생생하여, 생시인지 꿈인지 아득할 따름.
 
  나는 부왕께 학대당하다가 약 먹고 이윤관의 꿈을 꾼 조선국 왕세자 이훤인가, 아니면 경사로운 날에 횡액 당해 사경 헤매며 이훤의 꿈을 꾸는 행정고시 합격자 이윤관인가?
 
  별천지 같은 후대에 행복한 반생을 살다가 도로 이 비참한 삶으로 끌려왔으니, 남가일몽이 이를 이르는 말인가 싶기도 하고, 그 옛날 나비꿈 꾼 장주보다도 더 간절히 꿈속이 진실이요 현실이 꿈이기를 바라니 호접지몽이라는 말이 부족한 듯하기도 하였다.
 
  세 가지 광증으로 말미암아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어찌 기묘하고 또 안타깝지 않은가?
 
  그렇게 이불 절반쯤 걷고 담요 위에 앉아, 지난 십오 년 이윤관 삶을 복기하고 또 그 전 이십일 년 이훤의 삶을 회상하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밖에서 인기척이 나기에 살짝 돌아보니, 흘깃 방 안 들여다보던 승언색(세자를 호종하는 내관) 김한채金漢采와 눈이 마주쳤다.
 
  “어, 어어? 기, 기침하셨나이까?”
 
  “무얼 그리 놀라느냐?”
 
  “그, 그것이···. 그 약을 잡수시고 곧 혼절하신 이래 오늘이 열엿새 날인즉 총 보름날을 누워 계셨습니다. 백약이 무효하여 궁중은 물론이요 도성 안이 지극히 흉흉한데···.”
 
  “뭐, 뭐라? 보름을 내리 누워 있었다고?”
 
  별세상 같은 후대에서 십오 년을 살았는데, 알고 보니 이쪽 세상에서는 딱 보름. 열다섯 날이라.
 
  “상중에 이런 일이 났으니, 상감마마께옵서 진노하시었습니다. 몸가짐을 올바르게 하시지 못하셨으니, 이제 성심聖心(임금의 마음)을 돌리는 데 진력해야 겨우 그 노여움을 면하지 않겠습니까?
 
  바라건대 의관을 바로 하시옵소서. 차도 있으심을 주변에 알리고, 내의원에 알려 재차 진맥케 하겠나이다.”
 
  “그, 그리하게.”
 
  그제야 정신이 퍼뜩 들었다.
 
  김한채가 물러나 여기저기 부산스레 돌아다니는 동안, 기계처럼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나마 경황없는 도중이라 평소에는 끔찍하게 두려워하던 의관 차려입기를 아무 생각도 감흥도 없이 저절로 하게 되었으니, 약의 효험이라면 효험일까.
 
  “빌어먹을.”
 
  순한 ‘빌어먹을’ 연후로 줄줄이 나오는 것은 이윤관이가 곧장 내뱉던 후대의 욕설.
 
  김한채 말에 하나 틀린 게 없었다. 벌써부터 세자가 얼마나 부덕하면 이 상중에 그런 불효막심한 짓을 저지르냐고, 나관중과 오승은이 감탄하고 이백과 두보가 손뼉 칠 다채로운 표현으로 아들을 매도할 부왕 모습이 선했다.
 
  중궁전 상사야, 원래 부왕께서도 내 모후를 좋아하지 않으셨으니 그렇다 쳐도, 대왕대비께서는 종실의 큰어른이자 그나마 부왕께서도 어렵게 여기고 또 한편으로는 완전히 미워하지만은 못한 분.
 
  그 상사 와중에 내가 정체불명의 약을 먹고서 내리 십오 일을 쓰러져 있었으니, 아무 약이나 먹은 것도, 아무튼 노력이 부족해서 보름이나 정신을 못 차린 것도 모두 다 내 잘못이 될 테다.
 
  아무래도 큰일이 난 것 같다. 보통 큰일도 아니고, 딱 뒤주 들어가기 좋은 큰일이.
 
 
 
 ***
 
 
 
  본디 사도세자로 알려졌을 젊은이가 이 기괴한 물건을 복용하고서 보름간 혼수에 빠지게 된 내력은 이러하였다.
 
  무릇 산 것은 백정이든 임금이든 양陽이요 귀신은 잡귀든 산신이든 음陰이라, 사람이 올바르게 살면 그 그림자처럼 신령들도 신세가 펴고, 사람이 간사하고 천박해지면 신령들도 궁핍해지는 것이 이치다.
 
  그러므로 위도상 조금 북쪽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전례 없는 참변을 겪게 된 휴전선 이북 산신령들의 원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무슨 백두산줄기니 뭐니 하면서 저들을 억지로 추앙하게 만들던 김가 무리들은 진짜 백두산 줄기에 속하는 산들은 죄다 민둥산 불구를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겨우 참화를 면한 산들, 크게는 백두산부터 작게는 평양 금수산 같은 산들은 차라리 민둥산 되었기를 바랄 만큼 목불인견의 꼬락서니를 만들어 놓았다.
 
  그러니 산신령들 삶은 나날이 궁핍해지고, 그 신통력은 말라붙었으며, 그 인품과 지성도 하해와 같던 것이 개울처럼 되었다가, 이제는 도랑이나 시궁창에 불과하게 되었다.
 
  이에 참다못한 뜻있는 산신들이, 총폭탄 정신으로 무장해 조선산천 결사옹위를 외치면서 들고일어났으니, 이름하여 조선산신령총련맹, 조총련이라.
 
  전기 끊긴 심야, 평양 모란봉구역의 겉만 완공된 어느 마천루에 모여 궐기대회를 연 조총련 산신들은 외쳤다.
 
  “삼천리금수강산 중 북녘 절반에 있어서 조선반도분단은 크나큰 력사적참변으로 되였습니다!”
 
  “우리 손으로 김가놈들을 까부숴버립시다! 제놈들이 《백두혈통》이다 무어다 줴쳐대는(지껄이는) 그 일가를 애초부터 각을 떠버립시다!”
 
  계획은 이러했다.
 
  마음 같아서야 김일성이가 아직 만주 마적 노릇 하던 때 결딴을 내고 싶으나, 그랬다가는 천기天機를 건드렸다고 벌 받기 딱 좋았다.
 
  그러므로, 김일성의 조상을, 가급적이면 티 안 나는 방향으로, 마치 저 스스로 패가망신한 것처럼 보이게끔 족친다.
 
  “독살입니까?”
 
  “아니, 제 입으로 먹다가 숨이 넘어가게 만들어야 할테요. 우리가 먹여서는 아니되오.”
 
  본디 약재로 유명했으나 지금은 핵처리시설을 짊어지게 되어 원한 가득했던 영변 약산 산신령이 나섰다.
 
  “황극청심원皇極淸心元이라는 약이 있소.
 
  속세의 청심원과는 급을 달리하는 비방으로, 마음에 욕심 없는 사람이 먹으면 모든 걱정근심이 사라지고 머릿속이 맑아지지만, 욕심 그득한 자가 먹으면 단전에 업화가 들어 바로 급사를 하지.
 
  김가의 조상이 그 후손과 성품 비슷하다면, 반드시 여기 넘어갈 것이오!”
 
  “하하, 훌륭하구려!”
 
  “김가놈의 조상이 그 후손만큼 의심 가득하다면, 약을 먹기 전에 한움큼 기미(맛보기)를 하려 할 수도 있소.
 
  그 청심원을 가루약으로 만든 다음, 내가 아는 비법으로 만든 약을 섞어넣으면, 살짝 맛보자마자 그 세상에 없는 환락을 볼 테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허겁지겁 집어삼킬 게요!”
 
  정찰총국 수법을 잘 아는 정찰총국 본부 소재지, 형제산 산신령이 거들었다.
 
  그가 아는 ‘비법으로 만든 약’이란, 김씨네 선대에 외화벌이용으로 종종 팔던, 그리고 지금은 조선 국내에도 퍼져 큰 해악이 되고 있는 해로운 약이었다.
 
  “하면 나는 그 약 조제할 연구실 열쇠를 얻어놓겠소!”
 
  김일성대 있는 룡남산 산신령도 나섰다.
 
  “바라건대 다른 분들은 남은 신통력을 모아 내게 주시오. 동지들이 약을 다 만들면 내 과거로 가서 김가놈 조상에게 그것을 넘기고 오겠소!”
 
  마지막으로 김가네에 가장 원한 깊은 금수산 산신령이 자원하였다.
 
  한때 영험했던 산신들끼리 작당하여 내놓은 계책이라는 게 흉참한 약으로 속세 사람 멸족시키는 궁리라니, 참으로 옹졸하고 궁색한 노릇.
 
  그러나 살림살이 팍팍하고 채신머리는 사라진 지 오래인 산신령들은 그 궁리 좋다고 손뼉 치고 기뻐했던 것이다.
 
  “헌데 그렇게 옛날로 가서 이 약을 풀었다가, 김가 말고 어떤 다른 사람이 그것을 주워먹게 된다면 어찌되겠소? 그 조상놈이 리재에 밝아서 약삭빠르게 그 약을 제가 먹지 않고 팔아넘길 수도 있잖소?”
 
  조총련 특작소조(특수부대)의 공작이 차근차근 진행되어 마무리를 앞둘 무렵, 룡남산 산신령이 물었다.
 
  “그러면 더 좋은 것 아니오? 이 약을 범용한 속세 사람이 먹으면 탈이 나기로 되여있소. 김가놈이 제 욕심 차리려고 이 약을 남에게 팔아먹으면, 필시 그로 인해 벌을 받게 될테요.
 
  게다가 김일성이네 아비나 조금 공덕이랄게 있지, 그 우(위)로 올라가면 죄다 범부 아니면 악한이잖소?
 
  그러면 초록동색이라고 그 주변에 어울리는 무리도 죄다 비슷한 놈들이겠지. 그런것 하나하나 따져서 언제 거사를 치르겠소? 약 다 지었으면 내게 주오. 얼른 갔다 올테니.”
 
  그리하여 조총련의 희망을 한 몸에 걸고, 금수산 산신령은 ‘리조시대’로 모험을 떠났다.
 
  백두혈통이니 만경대가문이니 퍽 허황된 소리로 김가 놈들이 제 조상을 하도 팔아먹은지라, 누구를 노려야 할지도 뻔했다.²
 
  추적 가능한 김씨네 선대들 중 가장 오래전 사람은 전주 모악산 자락에 살다가 떳떳지 못한 사정으로 평양에 흘러들어온 김계상이었다.
 
  그리고 김계상이 김차형을 낳고, 김차형이 김욱을 낳기로 되어 있었으니, 개중 가장 노릇 하는 이를 족치면 그만이리라.
 
  그렇게 영조 임금 다스리던 시절 평양부로 가서, 혹 옛날의 저 자신 마주칠까 노심초사하면서 평양부 저자를 거닐며 수소문하는데, 다행히 금방 성과를 얻었다.
 
  김계상은 진작에 죽고, 그 아들 김차형이 인정人情(뇌물) 적잖이 바쳐 감영에서 구실아치 노릇을 한다는 것이었다. 아직 아들들은 죄다 어리다 하니, 이로써 김차형이 단호한 조총련 공작의 표적으로 확실히 자리매김을 하였다.
 
  금수산 산신령은 음험한 미소 지으며 살살 김차형에게 다가가 모략책동을 시작하였다. 문화어 대신 이 시절 평양 사투리를 쓰면서,
 
  “이것은 내 어쩌다 얻은 영약인데, 언뜻 생각하기에 나 같은 촌부는 제대로 쓸 곳도 없을 듯하오. 그대는 구실아치로 필시 평양 감영 거쳐 가는 고관대작들과도 종종 연이 닿을 테니, 계속 지니고 있다가 언젠가 쓸데가 있으면 쏠쏠하게 쓰기를 바라오.”
 
  하면서 헐값에 그 쌈지를 넘긴 것이다.
 
  이제 궁금함에 슬쩍 약을 맛본 김차형이가 제게는 극약이 될 것임도 모르고 하얀 가루에 섞인 황극청심원을 퍼먹으면 그만일 테다.
 
  “흐흐, 잘되였다, 잘되였어!”
 
  좋아라 하면서, 금수산 산신령은 제 원 시대로 돌아갔다.
 
  잠깐이나마, 룡남산 산신령이 제게 제기한 염려가 마음에 걸리기는 하였으나, 설마 무슨 일이 나기야 하겠는가 하는 마음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서 마지막 남은 한 티끌 신통력으로 주체, 아니, 21세기 평양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러나 북녘 산신령들의 신기가 산림 황폐화로 예전 같지 못한 것이 여기서 또 발목을 잡게 되었다.
 
  김차형은 제 먼 후손 아무개처럼 욕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라, 이 땅에서는 구할 수 없는 그 환락을 접하고서도 허겁지겁 나머지를 탐닉하는 대신 쌈지를 꽁꽁 싸매고 신줏단지 모시듯 제집 다락에 숨겼다.
 
  그러고는 제 연줄 동원하여 평양 아전들에게 소문내기를, 제게 청심환 일천 알보다도 효험 더 큰 엄청난 영약이 있어, 심울心鬱한 사람에게 특효니, 천금 내고 사들일 사람을 구한다는 것이었다.
 
  약효가 이 세상에 없는 것임을 알았으니, 마땅히 그에 맞는 값을 받아내겠다는 그 엄청난 욕망이 약의 중독성마저도 이겨낸 셈이었다.
 
  김차형은 독한 마음을 먹고, 언젠가는 귀한 사람이 제게 엄청난 재물 내려줄 그 생각 하나만 붙들고 있었다.
 
  그리고 오래잖아 기회가 닿았다. 얼마 전 부임한 평양감사 나리가 김차형을 은밀히 부른 것이다.
 
  풍문에 따르면 신임 감사는 나라님네 사돈 되는, 승승장구하는 높으신 분.
 
  그런 분의 부르심을 받았으니, 김차형은 벌써부터 마음만은 고관대작이었다.
 
  그리고 예감이 빗나가지 않았다. 감사는 톡톡히 비단으로 값을 치르면서, 효험이 있다면 나머지 값을 지금의 다섯 곱절로 치러서 주겠노라 단언한 것이다.
 
  아아, 그러나 이 어찌 된 영문인가. 득의양양하게 집에 돌아와, 어찌하면 감사또에게 더 잘 보여 무슨 벼슬이라도 받아볼 수 있을까 고민하며 밤을 지새던 차, 며칠 지나지 않아 사립문을 감영 군사들이 박차고 들어왔다.
 
  “대역죄인 김차형이는 오라를 받으라!”
 
  “왜, 왜들 이러십니까!”
 
  “버둥거리는 꼬락서니가 흉심이 아주 가득하구나! 여봐라! 그 흉심을 몽둥이로 다스려주어라!”
 
  노기등등하게 문짝 박차고 쳐들어온 군사들에게 손 휘휘 내저으며 사정해 보았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눈 부르트고 곳곳 멍들어 감영에 끌려갔더니, 상황은 더 심각하여, 평소 물에 물 탄 듯한 성품의 감사또 홍봉한이 염라대왕 표정으로 김차형을 노려보고 있었다.
 
  주변을 모조리 물린 다음, 군졸 대신 제 노비들을 시켜 한바탕 매타작을 벌이고선 그 멱살을 손수 잡고 캐물었다.
 
  “네놈의 그 약이라는 것이 누구를 상하게 한 줄 짐작이나 하느냐?”
 
  “아이고, 소, 소인은 모르는 일입니다요! 부, 분명히 한 움큼만 기미해도 약효가 엄청난 영약 중의 영약이었는데···.”
 
  “이놈! 극독을 영약이라 팔아놓고도 그런 말이 나오느냐?
 
  독을 판 놈이 네놈이니, 그 독을 해독하는 비방도 알 터, 얼른 이실직고하지 못할까?”
 
  제 사위이자 국본인 동궁(세자)이 보름 만에 도로 일어날 것임을 알 리 없고, 그저 도성에서 급보만 받아보았을 뿐인 홍봉한은, 김차형의 배를 갈라서라도 진상을 알아낼 기세로 고신拷訊(고문을 곁들인 심문)을 가했다.
 
  사위의 위급함이 안타깝고, 또 거기 덩달아 시달릴 딸이 불쌍하여, 저 역시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사재를 털어 아전 김가놈의 약을 산 뒤 곧장 한양에 부친 홍봉한이었다.
 
  헌데 돌아온 소식은, 세자가 그 약을 들자마자 바로 쓰러져 인사불성이 되고, 조정은 한바탕 뒤집혔다는 것이었다.
 
  홍봉한 저는 일단 의금부 구경이 확정이요, 이대로 국상이라도 한 차례 더 난다면 제 목숨은 물론 가문 전체가 먼지처럼 날아가게 생긴 판.
 
  그러니, 실낱같은 희망 붙들고 김차형을 북어 다루듯 하면서, 뭐라도 답이 나오길 바라는 수밖에.
 
  허나 암만 오장육부를 골고루 두드리고 주무르고 때때로 익혀본들, 아예 모르는 답이 나올 리는 만무하였다.
 
  전주에서 거하게 사람들 등쳐먹고 평양까지 도망쳐 온 김계상이의 아들, 구실아치 김차형이는 그렇게 약장수 노릇 한 번 잘못하여 매 맞아 죽고, 그 일가는 풍비박산이라는 말을 하기도 모자랄 만큼 부스러기가 되었다.
 
  세자는 다행히 쾌유했다지만 그것이 김차형네 일가 혐의를 벗겨주지는 못했다. 남은 집안사람들 중 겨우 죽음 면한 이들은 관노비로 박혀 북변 각지로 보내졌다.
 
  그러므로 김차형의 아들 김욱이 번듯한 집안과 통혼할 일도 없어지고, 김차형의 현손이 되었을 김응우가 세상 빛 볼 일도 없어졌다.
 
  또 그 김응우의 증손 중에 김성주라는 놈이 있어, 훗날 이름을 일성으로 고치고 대대손손 악행을 숱하게 저지를 명운이었는데 그 역시 모조리 없는 일이 되었다.
 
  허나 이 모든 것은, 보름 만에 깨어나자마자 당장 뒤주가 눈앞에 어른거릴 지경에 처한 세자에게는 하등 중하지 않은 사정이었다.
 
 
 
 
 
 
 --- *** ---
 
 1. 이 문답은 실제로 『영조실록』 영조 25년 4월 5일 기사에 보이는 내용입니다. 대리청정 첫날부터 사도세자를 꾸짖기 위해 온갖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했던 영조의 질책 중에서는 딱히 두드러진다 말하기도 어려운 문답이지요.
 
 2. 김일성의 가계에 대해서는, 본인이 자서전에서 언급한 것 외에는 믿을 만한 기록이 별로 없습니다.
 
 일단 18세기 초 어떤 시점에 김일성의 먼 조상 김계상이, 그 전까지 대대로 살던 전주 모악산 자락에서 ‘살 길을 찾아’ 평양으로 향한 것은 확실합니다. 통념과 달리, 당시 농업에 종사하던 양민들도 수십 년에 한 번쯤은 터전을 옮기는 일이 비일비재했으니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전주나 한양이 아니라 머나먼 평양까지 갔다는 사실은 어딘가 구린 구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의심케 하는 대목입니다.
 
 그 이후로 몇 대에 걸쳐 계속 평양에 살다가, 김차형의 현손이자 김일성의 고조부 김응우 대에는 집안이 완전히 영락해 만경대 근처에서 묘지기로 지내게 됩니다.
 
 작중 김차형이 평양 아전으로 설정된 것은 작중의 창작입니다. 다만 당시 평양 감영 소속 아전이 이천여 명에 달했고, 개중 상당수는 이름만 올려놓고 하는 일은 없었다고 하니, 전라도에서 부정을 저지르고 재산을 빼돌려 평양까지 도망쳤다면 아전 자리 하나 사들이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작가의 말

지난 연말 <마지막 바이킹> 완결 후 간만에 다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항상 성원을 보내주시는 모든 독자님들께 미리 감사드리며, 이번 작에서도 최선을 다해 재밌는 이야기로 보답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까다롭스키 배상

댓글(87)

PnPd    
조총련 정체가 그거였냐고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24.02.04 19:03
하늘누리    
오.. 좋은데? 이득이잔아...
2024.02.04 19:09
ageha19    
조총련이 '조선산신령총연맹' ㅋㅋㅋㅋㅋㅋㅋㅋ 사도가 뽕을 빨았다는 게 이런 전말이었다니 ㅋㅋㅋㅋㅋㅋ
2024.02.04 19:09
냠냠친구    
산신령들의 모임 조총련ㅋㄲㅋㅋㅋ
2024.02.04 19:09
Leroy    
게장파는 아버지에 감 파는 어머니ㅋㅋㅋㅋㅋ
2024.02.04 19:10
kw******    
간장게장 회사 사장 영조 두!렵!다!
2024.02.04 19:10
wb*****    
그 조총련이었습니까ㅋㅋㅋㅋ
2024.02.04 19:12
북극곰돌이    
간장게장 가문과 감 가문이 결합되었으니 이 어찌 의료사고가 발생하지 아니하겠습니까 ㅋㅋㅋㅋㅋㅋ
2024.02.04 19:14
ljh00727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시작부터 담굼질 레전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24.02.04 19:15
네비아찌    
산신령들 문화어가 왜이리 찰진가요 ㅋㅋㅋ
2024.02.04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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