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서울 쌍문동에서 태어났다.
1976년.
7살이 되던 해.
어머니를 때리던 아버지를 죽였다.
1983년.
14살, 소아성애자 보육원장을 죽였다.
1989년.
죽기 위해 프랑스 외인부대에 들어갔다. 하지만 동료를 살리기 위해 적을 죽여야 했다.
1999년.
전역 후 용병이 되었다. 죄 없이 죽어가는 빈민을 살리기 위해 반군을 죽였다.
2010년.
평범하게 살기 위해 한국으로 귀국했다. 죄 없는 사람이 죽는 걸 막기 위해 청부업계를 정리했다.
죽이고 또 죽였다.
2023년, 12월 24일.
대한민국 청부업계 정리를 끝냈다. 서열과 규율을 만들었고 질서를 세워 일반인은 죽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자정이 되었고 하늘에선 눈이 내렸다.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타앙-!
나는 목에 구멍이 뚫렸다.
믿었던 동료에게.
지랄 맞은 크리스마스였다.
킬러(Killer)
사람을 죽이는 사람.
내 인생을 표현하기에 너무나 적절한 단어였다.
* * *
54살이었다.
평생 사람을 죽였던 내가, 54이라는 나이에 목이 뚫렸다. 절대로 죽지 않을 것만 같던 이 몸뚱이가 쓰러졌다.
나는 죽었다.
그랬어야 했다.
그런데.
“······누나?”
“그래, 내가 네 누나야. 괜찮니? 혹시 기억이 나지 않는 거니?”
지옥인가.
아니면 꿈속인가.
“미안해. 미안하다. 네가 그렇게 힘든 줄 모르고 나만 생각해서······ 흐윽.”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눈앞에 처음 보는 여자는, 내가 자신의 동생이라며. 자기가 하나뿐인 누나라며, 내게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병실인가.’
밖은 서울의 야경이 펼쳐져 있다.
남산 타워와 한강.
수많은 건물이 불이 켜져 있다.
“서진아. 미안해. 그리고 살아줘서 고마워.”
“······나는.”
나는 입을 열다 멈칫했다.
“죽지 않았나.”
근본적인 물음.
나는 살아있는 것인가.
“그럼, 살았지. 운이 좋았어. 5층에서 떨어진 것 치고는 생각보다 크게 안 다쳤거든. 머리만 좀 다쳤는데······ 이렇게 운이 좋게 의식을 차렸으니까.”
5층에서 투신인가.
지금의 나는 내가 아니다.
이 몸은 다른 사람의 몸이다.
“기억이 나지 않는 거니?”
“오늘, 날짜는?”
“2024년 1월 1일이야. 12월 24일 자정에······ 의식을 잃었어.”
그녀의 눈에 슬픔이 담겼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내가 그녀의 크리스마스에 슬픔을 끼얹은 모양이다.
‘내가 죽은 날이군.’
정확히 일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
어떠한 기적.
혹은 재앙일까.
‘나는 죽었고, 다른 사람 몸에 들어왔다.’
환상일 리는 없다.
내 자존은 고고하다. 올곧고 단단하며 흔들리지 않는 정신은, 이 상황이 현실이라는 것을 직시한다.
“기억이 나지 않아.”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평소처럼, 연기하지 않고 아무런 감정 없는 표정으로.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냈다.
“······.”
당황스러웠다.
이런 눈물, 나를 죽이기 위한 암살자의 연기 외에는 본 적 없다. 아주 어릴 때가 아니라면 모두 거짓 눈물이었다.
나는 어색하게 손을 올렸다.
‘등을 두드려줬던가.’
평소였다면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작전이었다면 자연스럽게 대했겠지. 하지만 그녀의 진심을 한낱 연기로 대하고 싶지 않았다.
내겐 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어찌되었든 이 몸의 가족이었다. 미련하게도 나 따위에게 두 번째 인생을 선물한 사람의 인연이다.
* * *
퇴원했다.
의사가 말했다.
기억이 혼동되는 후유증은 있겠지만, 몸이 크게 다친 곳은 없다고. 또한, 기억상실은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조언에 퇴원하기로 한 것이다.
‘나도 답답했고.’
털썩.
작은 방이다.
침대 하나와 컴퓨터 책상. 그리고 한쪽엔 정체를 알 수 없는 책과 종이 더미가 가득했다.
툭.
새폰이다.
쓰던 핸드폰은 투신할 때 같이 깨졌단다.
‘확인해보자.’
나의 죽음.
당연하게도 뉴스로 확인할 순 없다.
내 신분과 내가 관련된 모든 사건은 은폐된다. 언론은커녕 검찰과 경찰도 알 수 없다.
‘딥다크(DeepDark).’
음지의 네트워크라는 딥웹에서 한층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이런 일반 핸드폰으로는 접속 과정이 꽤 복잡했지만, 평생 하던 일이다.
‘이곳은 흔적도 남지 않으니, 걱정할 것도 없겠지.’
-Loading······.
접속은 금방 끝났다.
검고 붉은 메인 나타났다. 원래 ‘현상금 랭킹’, ‘수배자 명단’, ‘VIP 경호 서비스’ 등의 배너들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었다.
있는 건 고작 하나의 문장.
-코드 제로, 사망.
확인은 끝났다.
‘코드 제로’는 나를 가리키는 호칭이다.
[Code : 00]
어쩌다 보니 얻게 된 코드명이다.
그 시절 업계는 난장판이었다. 규칙이나 서열 따위도 없이 서로, 서로를 죽이는 복수와 피의 전장일 뿐이었다.
그 영향은 일반인도 죽였다.
‘정리가 필요해서 한 것뿐인데.’
그런데 정점이니 뭐니, 전설이니 왕이니, 유치한 이름을 갖다 붙였다. 딴에는 신분 정보가 새지 않기 위한 암호라는데, 내가 보기엔 중2병일 뿐이다.
하지만 질서를 위해 서열을 세우는데, 그만큼 직관적이고 확실한 방법이 없기도 했다.
“같은 우주에, 현실이구나.”
평행 우주도 아니고.
꿈도 아니었다.
나의 죽음은 확실했다.
침대에 몸을 기댔다.
“이제 뭘 하고 살아야 하지.”
지금까지 했던 킬러?
절대 아니다.
더는 하고 싶지 않다.
‘언젠가 있었던 것 같은데.’
꿈이라는 것.
저 야경 속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늘에 가려진 어둠이 아닌, 빛을 받는. 혹은 그 빛이 되고 싶었던 적은 있다.
‘평생, 흘러가는 대로 살았지.’
살아남기 위해.
복수를 위해.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내가 아닌 누군가를 위해 살았다.
‘내 인생이 아니었어.’
그래서 마흔 즈음에 대한민국으로 돌아왔다. 평범하게 살기 위해 모든 걸 친구에게 맡기고 들어왔다.
그런데 실패했다.
세상은 날 가만히 두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이렇게 되어버렸네.’
하늘의 선물일까.
이 몸의 영혼이 준 선물일까.
‘이 몸은 왜 자살을 택한 걸까.’
그게 궁금했다.
죽음과 가까운 삶이었기에, 누군가의 죽음이 궁금하진 않다. 하지만 내가 이 몸 주인에게 해줄 수 있는 거라곤, 한을 풀어주는 것뿐이겠지.
하지만 당장 알 방법은 없다.
“······이 몸으로 살다보면, 천천히 알 수 있겠지.”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처음엔 어색했다.
누나도 내가 기억을 잃었기에 조심스럽게 대했고 나는 당연히 모르는 사람이기에, 그리고 이 몸의 가족이기에 조심스럽게 대했다.
“동생, 오늘 치킨 사왔다!”
나는 처음 알았다.
치킨이 이렇게 맛있는 음식인 줄.
산속에서 산 것도 아니지만, 평범한 배달 음식은 언제부턴가 먹지 못했다. 배달원으로 변장해서 독을 타는 건 흔한 수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리를 할 줄 알게 되었지만, 치킨을 해 먹을 생각은 못 해봤다.
“고마워.”
“히히, 맛있지? 야식으로는 치맥이 최고라니까.”
연기도 시작했다.
내가 무표정한 상태로 무감하게 대답할 때마다 누나가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은 밝게 대답했다.
“다음엔 족발 사줄게! 그것도 맛있을 거야!”
“그런가. 기억은 안 나네.”
조금은 의아했다.
기억상실이라는 게, 치킨이나 족발 맛이 기억이 안 날 정도인가. 하긴,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
“와- 저것 봐. 액션이 엄청나! 타다닥! 저게 바로 청부살인업자인가.”
“······.”
할 말이 없다.
액션 영화다. 주인공이 겉멋만 들어 담배를 물고 몸을 던져 총알을 피하고 몇 번의 칼질로 수십 명을 죽인다.
“뭐야, 이런 거 별로 안 좋아했어?”
“잠입 기습에 담배 피우는 사람이 어딨어. 그리고 사각도 아닌데 총알이 다 피해 가는 건 좀 너무하네.”
“······.”
“대단한 적 세력인 것처럼 기대감 올려놓고 건달 몇 명 데려다 놓았으니······.”
나는 입을 다물었다.
요즘 너무 편해졌다. 전생을 잊고 평범하게 살기로 결심했다고 해도 이렇게까지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 몸의 누나라는 사람은 나를 너무나 편하게 만들었다. 가끔 보면 질문하는 능력이 대단해서 ‘심문관’을 해도 될 정도다.
대답이 절로 나온다.
“뭐야, 중2병이 이제 찾아온 거야?”
“······그건 아닌데.”
“맞네~ 맞아. 하긴 어릴 땐 중2병 없이 지나갔으니 이제 올 때가 됐지. 흐흐흐.”
“크흠.”
“엇! 웃었다! 우리 서진이 웃었다!”
“웃는 게 왜.”
그래도 생각보다 편했다. 그리고 연기로 시작했던 웃는 표정이 하루하루, 점차 연기가 아니게 되었다.
‘이게 가족인가.’
모르겠다.
이 여자를 본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이 몸의 가족이지, 내 가족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가족으로 여긴다.
‘소중하게 대하는 게 느껴져.’
그게 신기했다.
나는 누군가를 이토록 소중하게 대한 적이 있을까.
‘없지.’
평생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뭘 하고 살아야 할까.”
평온하다.
날 죽이려는 사람이 수십, 수백 명이었다. 어떠한 순간도 편히 잠들 수 없었고, 먹는 것도 함부로 먹을 수 없었다.
길가에 CCTV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지나가던 사람이 내게 칼을 들이밀거나 총구를 겨누는 건 일상이었다.
‘이 친구는 뭘 하는 사람이었을까.’
나는 방 한쪽에 앉았다.
“시나리오?”
서재에 가득한 종이 더미였다.
한쪽엔 상영이 끝나거나 촬영이 취소된 시나리오들. 그리고 한쪽엔 오디션 날짜가 적힌 시나리오가 있었다.
누군가 하나하나 세심하게 정리한 듯하다. 나는 그걸 하나하나 손으로 짚어가며 제목을 확인했다.
그런데.
찌르르.
“······?”
감각이 울었다.
이상했다.
손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시나리오를 하나하나 스쳐 지나갔다.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그리고 그중 하나에서.
찌르르.
감각이 다시 울었다.
“이게 무슨-”
당황했다.
‘감각이 운다.’라는 표현은 특이할 정도로 예민한 나만의 육감이 발동했다는 뜻이다.
‘육감.’
별거 아닌 것 같지만, 평생을 전장에서 보냈던 나를 살린 감각이다. 외인부대에서, 용병에서. 그리고 청부업계에서.
‘죽음을 피하는 감각.’
그런데.
그게 시나리오에서 느껴진다.
“······.”
나는 그 시나리오를 꺼냈다.
‘왜 여기서 감각이 우는 걸까.’
죽음의 위기에서 최선을 가리킨다.
나는 그 감각이 유난히 좋았다.
‘가장 좋은 선택.’
제목은 [이름 없는 별]이었다.
나는 첫 장을 넘겼다.
사락.
[남극 세종 기지. 유성철 박사는 그곳에서 새로운 종류의 세균을 발견한다. 죽지 않고 끊임없이 분열하는 특징을 지녔다. 그건 ‘좀비’와 다르지 않았다.]
시작부터 흥미롭다.
나는 조금 더 진지하게 읽어내려갔다.
[장기를 잃은 동물이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식욕인지 번식 욕구인지 다른 생명체를 본능적으로 찾는 듯했다. 박사는 백신부터 만들기로 한다.]
‘촬영지는 남극, 멕시코. 그리고 한국.’
스케일이 크다.
처음엔 좀비 영화인 줄 알았다.
[유성철 박사는 특별한 재료를 구하기 위해 멕시코에 숨어들지만, 대한민국엔 모종의 이유로 좀비가 창궐하기 시작했다.]
거기까지 도입부였다.
완전한 이야기는 없고 대략적인 줄거리와 오디션을 볼 때 연기해야 할 장면 몇 개가 실려 있다.
“······박사는 테러를 당해 죽는다. 하지만 박사의 딸이 백신을 가지고 있다. 그 딸을 구해 한국으로 이송하는 국정원의 이야기.”
그래서 ‘이름 없는 별’인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시나리오 표지에 적혀 있다.
-최대성! 멕시코에 살던 한인 용병 역할.
-오디션 날짜 : 2024년 1월 11일.
-넷플릭스 200억 투자 확정.
-박정훈 감독 및 각본.
-주연 최진욱(국정원), 구윤정(박사 딸)
-흥행 잠재력 A등급 이상.
밑에 메모까지.
* 액션 연습하고 오디션 보자^^원래 최대성 역할이었던 권 혁 배우가 부상으로 교체될 예정이라 급하게 잡힌 거야!
“······가족이란 참 좋구나.”
괜히 부러웠다.
시나리오를 고쳐 잡았다.
감각이 운다는 것만으로 이 시나리오가 심상치 않은 건 맞다. 하지만 이야기 자체에 매력이 있었다.
‘용병, 꽤 오래 했었지.’
그래서 더 흥미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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