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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가기버튼 빌런의 제국이 시작되었다

프롤로그_이글

2024.02.25 조회 19,285 추천 259


 2024년 7월 13일, 뉴햄프셔 주 맨체스터.
 
 나는 건물 옥상에서 쌍안경으로 주변을 살폈다.
 
 유세장 주변은 수많은 사람들로 시끌벅적했고, 비밀 경호국과 현지 경찰관, FBI까지 동원되어 삼엄한 경비가 펼쳐지고 있었다.
 
 <God Bless the U.S.A>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연단에 올랐다.
 
 그때였다.
 
 “타깃 확인. 9시 방향 빨간 모자.”
 
 이어폰으로 동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재빨리 시선을 돌리자 붉은 모자를 쓴 남자가 군중 사이를 빠르게 헤치고 있었다.
 
 “움직인다. 모두 주목!”
 
 그 말이 끝나자마자.
 
 탕!
 
 갑자기 군중 속에서 총성이 울렸다. 붉은 모자의 손에 권총이 들려 있었다.
 
 “젠장!”
 
 나는 즉시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고, 경호원들은 트럼프를 감싸 안고 대피시키려 했다.
 
 그 와중에 트럼프는 건재함을 알리듯 지지자들을 향해 주먹을 치켜 들었다.
 
 “USA! USA!”
 
 나는 열광하는 지지자들을 밀치며 붉은 모자를 향해 달려갔다.
 
 언제든 쏠 준비를 하면서.
 
 살기를 감지한 것일까?
 
 별안간 놈이 돌아보았다. 조커처럼 웃고 있었다. 환각 상태라는 확신이 들었다.
 
 ‘곧 후회하게 될 거다.’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여자 아이가 뛰어들었다. 시야를 막아버린 아이를 부모에게 넘기는 사이, 놈은 유세장 뒤편의 숲으로 사라져버렸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본부, 타깃을 놓쳤다. 현재 북쪽 숲으로 도주 중.”
 
 그때 다시 총성이 울렸다. 이번엔 트럼프 쪽에서였다.
 
 “안 돼!”
 
 나는 절규했지만 이미 늦었다.
 
 트럼프의 오른쪽 귀에서 피가 철철 흘렀다. 그리고 그의 옆에 있던 민간인 한 명이 쓰러졌다.
 
 범인은 빨간 모자가 아니었다.
 
 총알은 유세장과 200미터 떨어진 건물 옥상에서 날아왔다. 진짜 암살자를 처리한 것은 FBI 저격수였다.
 
 ‘좆됐네.’
 
 6개월의 추적이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
 
 
 다음 날, 버지니아 주 랭리. CIA 본부.
 
 “제임스, 자네 실수로 전 대통령이 부상을 입었어. 게다가 민간인 사상자까지 발생했네. 이건 에이전시의 수치야.”
 
 잭 바우어 부국장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말없이 서 있었다. 가슴 속에서 후회와 자책감이 끓어올랐다.
 
 “이번 일로 국제적 비난이 쏟아지고 있어. 자네도 알다시피 이건 명백한 우리의 실수야. 이 사태를 수습하려면······.”
 
 부국장은 말을 멈추고 한숨을 쉬었다.
 
 우리의 인연은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CIA의 리쿠르팅 책임자였고, 나는 메이저리그 드래프트를 준비하다가 어깨 부상으로 실의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아직도 그의 첫 마디를 잊지 못한다.
 
 ‘자넨 스파이가 될 운명일세.’
 
 첫 만남 이후 그는 멘토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되어 주었다.
 
 “현장 업무에서 배제하겠네. 당분간 자료실에서 근신하게.”
 “자료실이라고요? 잭, 절 아시잖아요. 데스크 업무는 적성에 안 맞아요. 차라리 아프간으로 보내주세요.”
 
 바우어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이건 부탁이 아니야. 자넨 휴식이 필요해. 거기서도 얻는 것이 잊을 거야.”
 
 협상의 여지는 없었다.
 
 사실, 옷을 벗지 않은 것만도 감지덕지였다.
 
 
 ***
 
 
 자료실에서의 일상은 지루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해 먼지 쌓인 서류들을 정리하고, 오래된 마이크로필름을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반복했다.
 
 특수작전팀 에이스가 던젼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니!
 
 점심시간.
 
 나는 평소처럼 구내식당에서 참치 샌드위치를 집어 들고 자료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고 리스베트의 번호를 눌렀다. 그녀는 내가 유일하게 연락할 수 있는 외부인이었다.
 
 -제임스, 또 샌드위치 먹고 있죠? 입이나 닦고 얘기해요.
 
 그녀와 대화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주위를 살피게 된다.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훔쳐볼 수 있는 천재 해커였으니까.
 
 “근데 그거 알아요?”
 
 리스베트의 독특한 화법. 재미있는 걸 알아냈다는 뜻이다.
 
 “이번엔 또 뭔데? 미리 말해두겠는데 트럼프의 자작극이었다는 음모론은 사양하겠어.”
 -날 뭘로 보고. 당신 할아버지 이야기예요. 제국그룹 강중건 회장. 맞죠?
 “······.”
 
 나는 잠시 멍해졌다.
 
 할아버지는 한때 한국 최고의 재벌이었다.
 방직업을 기반으로 조선, 해운, 무역, 자동차, 전자에 이르는 제국을 건설한 미다스의 손.
 내가 아는 건 딱 거기까지다.
 
 왜냐고?
 
 ‘실물은 본 적이 없으니까.’
 
 잘난 아버지 덕분이었다.
 
 그분의 자식들 중에서도 최악의 망나니였는데, 어머니를 임신시키고 교통사고로 죽었다.
 
 ‘아버지의 형제들은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어머니와 나를 미국으로 쫓아버렸고.’
 
 당시 할아버지는 몇 년째 혼수상태였고 결국 일어나지 못하셨다.
 
 20대 초반에 싱글맘이 되어버린 어머니.
 재혼도 안 하시고 갖은 고생을 하면서 아들을 키우셨다.
 
 나는 지쳐 쓰러져 잠든 어머니를 보면서 매일 밤 기도했다.
 
 하루 빨리 제국이 망하기를. 우리를 멸시한 아버지의 형제들이 알거지가 되기를.
 
 소원은 현실이 되었다.
 어느날 갑자기, 제국이 무너진 것이다.
 
 2세들의 방만한 경영과 금융위기라는 초유의 사태 덕분에.
 
 한때 세계를 경영했던 제국그룹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제임스, 왜 말이 없어요?
 “잠깐 생각할 게 있어서. 계속해봐.”
 -젊었을 때 미국에서 무슨 특별한 일을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자세한 건 잘 모르겠어요. 기록이 거의 없어요.
 
 순간 귀가 쫑긋했다.
 
 “거의?”
 -역시 감이 좋다니까. 힌트를 알려줄게요. 독수리 작전.
 “독수리 작전?”
 -나도 거기까지 밖에 몰라요. 행운을 빌게요.
 
 뚝.
 
 통화가 끝나자마자 나는 행동에 돌입했다.
 
 문서 보관실의 먼지 쌓인 서류철들을 뒤진 끝에.
 
 “찾았다!”
 
 <OSS 독수리 작전>이란 제목의 파일을 발견했다.
 
 
 ***
 
 
 OSS는 CIA의 전신인 전략사무국(Office of Strategic Services).
 
 나는 먼지를 털어내고 파일을 열어보았다.
 
 순간, 온몸에서 전기가 흘렀다.
 
 흑백 사진 한 장.
 
 젊고 훤칠한 동양인 남성이 미군 장교들과 함께 서 있었다.
 
 웃통을 벗은 상체는 뙤약볕에 그을린 듯 검붉었고, 탄탄한 팔뚝은 맨손으로 소도 때려잡을 것 같았다.
 
 젊은 시절의 할아버지였다.
 
 문득 어머니 말씀이 떠올랐다.
 
 ‘할아버지 별명이 황소주먹이었다고 하셨지.’
 
 사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 자릿세를 뜯으러 온 동네 불량배들을 한 방에 보내버려서 붙은 별명이었다.
 
 눈빛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날카로운 눈매. 굳게 다문 입술에선 단호한 결의가 느껴졌다.
 
 사진 아래에 이름이 적혀 있었다.
 
 [강중건(Kang Joong- Gun) / 코드네임 : 이글]
 
 나는 단숨에 문서를 읽어 내려갔다.
 
 독수리 작전(Eagle Project).
 
 OSS와 광복군이 공동으로 추진한 최초의 한미 연합작전이다.
 
 작전명이 암시하듯이 공작원들이 독수리처럼 낙하산을 타고 한반도에 침투해 정보수집·거점확보·사보타주 활동을 벌인다는 작전계획.
 
 특히 이 작전의 구상·추진·훈련의 전 과정은 광복군과 OSS 간의 긴밀한 협력으로 이루어졌다.
 
 김구 주석을 비롯한 임시정부·광복군 지도부.
 
 오랜 염원이었던 한반도 진공을 위해 미군과 협력하고자 했고, 이를 통해 미군과 미국정부가 임시정부를 연합국의 일원으로 승인하기를 희망했던 것.
 
 그러나.
 
 갑작스러운 일제의 패망으로 작전은 좌절되었다.
 
 “맙소사!”
 
 할아버지의 이미지가 완전히 뒤집어졌다.
 
 자수성가한 사업가로만 알았는데, 조국을 위해 싸웠던 독립투사였다. 게다가 내가 몸담고 있는 이 조직의 대선배였다.
 
 나는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키며 자료를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할아버지의 숨겨진 과거를 파헤치면서, 나는 청년 강중건의 삶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마지막 파일까지 완독하자 자연스럽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할아버지가 평생 비밀로 한 이유는 서약을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을 맹세합니다.]
 
 [작전 중 체포되거나 사망해도 미국 정부와 OSS는 모든 연관성을 부인할 것임을 이해합니다.]
 
 [나의 존재는 공식 기록에서 지워질 것이며,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오직 조국 광복의 그 날만을 바라보며 나아갈 것을 굳게 서약합니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나도 비슷한 선서를 했기에 할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띠링.
 
 리스베트의 문자였다.
 
 [뭐 좀 알아냈어요?]
 
 나는 감정을 추스르고 진실을 알려주었다.
 
 -세상에, 제임스! 당신 할아버지가 OSS 요원이었다고요? 그것도 독수리 작전에 투입됐었다고욧?!
 
 나는 고개를 끄덕이다 전화란 걸 깨닫고 입을 열었다.
 
 “그래. 나도 방금 알았어.”
 -이건 정말 대단한 발견이에요! 당신 할아버지는 진짜 영웅이었어요!!
 “그런 것 같아.”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작전은 실패했고, 해방 이후의 한국은······할아버지가 꿈꿨던 세상이 아니었지.”
 
 친일파를 척결하기는커녕 득세하는 세상.
 
 나는 할아버지의 좌절과 울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만일 당신이 독수리 작전에 투입된다면 어떻게 할 거예요?
 
 리스베트다운 뜬금포였다.
 
 평소였다면 웃어넘기고 말았을 테지만 나도 모르게 진지해졌다.
 
 “독수리 작전은 실패했어. 해방 이후의 역사는 첫 단추부터 잘못 꿰였지. 친일파 척결부터 했어야 했는데······.”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할아버지의 사진을 보면서 청년 독립투사의 꿈과 희망, 그리고 좌절을 상상했다.
 
 그래서일까?
 
 “만약 내가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역사를 바꿔야지. 친일파부터 쓸어버릴 거야.”
 -와~ 제임스. 정말 열정적이네요.
 
 리스베트가 키득거렸다.
 
 -근데 그거 알아요? 재밌는 스토리가 될 것 같아요. CIA 요원이 과거로 돌아가 역사를 바꾸는 거예요. 어때요?
 
 그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래? 당신은 항상 그런 식이지.”
 
 리스베트는 전형적인 소설가 지망생이었다. 기발한 소재는 많지만 완결을 못내는.
 
 -이번엔 진지해요. 당신 할아버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면 완결을 칠 수도······.
 
 그때였다.
 
 갑자기 펼쳐놓은 파일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뭐, 뭐야 이게?!”
 
 내가 기겁하는 와중에도 빛은 점점 더 강렬해졌다.
 
 -제임스? 무슨 일이에요? 제임스······?
 
 리스베트의 목소리가 멀어지면서 시야가 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의식이 흐려지는 와중에도 머릿속에선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할아버지, OSS, 독수리 작전, 그리고 역사를 바꾸겠다는 나의 다짐.
 
 그 생각과 함께, 완전한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작가의 말

통째로 다시 썼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https://www.youtube.com/@ClassicalSerenity1985/vid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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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8)

에시드    
제대로 된 속담은 삼년이 아니고 삼대입니다
2024.03.24 07:42
희미한너    
사리스베트욕은 사리사욕의 오타인 것 같아요. 회빙 이전의 배경 설명이 깔끔해서 술술 넘어가서 좋아요.
2024.03.24 23:08
느린손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2024.03.25 03:11
청은이    
잘 보고 갑니다.
2024.03.24 23:36
새도우    
즐독 중 손떼가 는 손때가 로 건필하기를.................
2024.04.27 10:11
느린손    
감사합니다.
2024.04.28 01:23
다비드7    
잘 보고 갑니다
2024.05.09 15:37
히코코    
세상은 넓고 도망갈곳은 많다
2024.05.13 07:09
옆집고딩    
할부지.. ㅋㅋ
2024.05.14 02:48
pi*****    
미국은 공부만 한다고 아이비리그에 들어가기 쉽지 않습니다 예체능도 어느정도 받처줘야 합니다
2024.05.14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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