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은퇴식은 반쪽짜리 선수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
[“신정호는 놔두라고” 수비 전문가 신정호 은퇴]
구단에 은퇴 의사를 밝히고 돌아오는 길. 기사 한 줄이 포탈에 떴다. 선수시절 사진 한 장과 함께 올라온 짧은 글.
핸드폰 액정 너머, 허리를 숙이고 눈에 불을 켠 채 열심히 수비하고 있는 젊은 시절의 내가 보인다.
그리고 그 밑에 이어지는 두 줄짜리 기사.
[서울 드래곤즈의 신정호가 은퇴를 선언했다.
드래곤즈는 2033-2034시즌을 끝으로 계약 기간이 만료되며 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었던 신정호가 은퇴를 선택했다고 발표했다.]
이게 끝이다.
다른 기사도 없다.
이것이 3라운드에 지목되어 10년간 로스터 마지막 자리를 지키며 겨우 선수생활을 이어왔던 내 선수생활의 마지막이었다.
아쉬움은 없었다. 코트에 전부 남겨놓고 왔다. 오히려 홀가분한 마음이었다.
기사가 올라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백 감독님께 전화가 왔다.
“네, 감독님. 신정호입니다.”
-수고했다. 정호야.
백준성 감독.
드래곤즈가 나를 뽑을 수 있게 강력하게 주장했던 사람이자, 말년까지 나를 유일하게 믿어주었던 드래곤즈의 감독이다.
백 감독님은 특유의 너털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감독은 무슨, 은퇴했으니까 형이라고 불러라.
“......네, 형. 그동안 고마웠어요.”
-솔직히 나는 네가 우리 팀의 레전드라고 생각한다. 10년 동안 우리 팀에서 뛰어줘서 고맙다, 정호야.
짧은 대화가 오고갔다. 주로 서로에게 고맙다는 이야기였다. 뭐, 큰 의미가 있는 대화는 아니었다.
전화를 끊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서울의 밤은 별이 보이지 않았다. 도로에 차들이 붉은 빛을 번쩍이며 클락션을 울려댔다.
이 시끄럽고 화려한 도시. 선수로서의 나는 이곳에서 결국 인정받지 못했다.
이렇게 거리를 돌아다녀도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슛 없는 수비형 선수.
내가 남긴 건 다른 팀 감독이 나를 지목하며 말했던 말 정도일까. 핸드폰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기사 제목에 붙어있는, 내 선수시절을 전부 조롱거리로 만들었던 그 말.
‘신정호는 놔두라고’
그 말은 저주처럼 나를 따라다녔고, 나는 끝내 그 말을 벗어나지 못했다.
마음이 심란해 한참동안 길거리를 돌아다녔다. 그러다 콧물을 훌쩍이고 뺨이 빨갛게 얼어붙을 때가 되어서야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덜컹.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폭죽이 터진다.
펑-!
“어? 뭐야?”
깜짝 놀라 한 발 물러섰더니 꽃다발을 들고 있는 아내가 보인다.
“신정호! 고생했다!”
환하게 웃는 아내가 내게 꽃다발을 안겨준다.
얼떨결에 꽃다발을 받아드는데 아내의 모습이 새삼스럽게 다시 보인다. 눈가의 주름이, 부르튼 손이, 손목과 목에 붙인 파스가 하나하나 눈에 담긴다. 여전히 아름다운 아내였지만, 고생을 한 흔적이 곳곳에서 보였다.
“이제 내가 당신 먹여살릴테니까 걱정하지 마! 다음 직장은 천천히 구하자!”
구단 프런트에 은퇴 결정을 알릴 때도, 한 줄짜리 기사를 봤을 때도, 백 감독님과 전화를 했을 때도 눈물이 나지 않았는데.
“......유진아.”
“너, 너 울어? 야, 신정호! 이 좋은 날에 왜 울어!”
나는 아내를 끌어안았다. 너무 말라서, 너무 작아서 양 팔로 끌어안고도 손이 남는다.
최저 연봉만 받으며 10년.
아내는 나와 결혼하며 꿈을 포기했다. 심심풀이로 부업을 하는 거라고 했지만, 알고 있었다. 몸이 부서져라 일을 했다는 것을.
사실 내 연봉으로는 생활비에 재활, 운동장비, 숙소비용까지 처리하기 어려웠다는 것을.
결혼하고 아내는 일을 쉰 적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티 한 번 내지 않은 아내는 내 선수 생활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나를 위해 꽃다발을 준비했다.
눈물이 쏟아져서, 그런데도 말이 나오지 않아서, 나는 그대로 아내를 껴안고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아내는 늘 그랬듯이 날 껴안고 말없이 등을 두드려주었다.
#
저녁 메뉴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삼겹살이었다. 그동안은 몸 관리를 한답시고 술 좋아하는 아내와 술을 마셔주지 않았는데, 오늘부터는 달라질 생각이었다.
나는 뒤에 숨겼던 비닐봉지를 꺼냈다. 소주병 무게에 잔뜩 늘어난 비닐봉지였다.
“서유진! 오늘 이거 먹고 죽자!”
“꺄악! 미쳤나봐!”
내가 사온 소주를 보더니 유진이가 박수까지 치며 좋아했다. 서유진은 대학 시절부터 알아주는 주당에다 애주가였지만, 술을 마신 건 그때까지만이었다.
술 좋아하는 내가 먹고 싶을까 봐 나와 함께 있을 때는 술을 입에도 대지 않았었는데, 이렇게 좋아하는 걸 보니 진작 같이 술을 마셔줄걸 하는 후회도 들었다.
은퇴를 하니 이런 게 좋구나.
이미 저녁식사는 전부 세팅되어 있었다. 나는 고기를 구웠고 서유진은 소주잔에 소주를 따랐다. 그러고보니 결혼할 때 산 소주잔을 처음 쓰는 것 같았다. 우리는 연거푸 고기를 입에 넣고 소주를 들이켰다.
“고맙다. 그래도 역시 너뿐이다, 서유진.”
“결혼 잘 했다, 싶지?”
“내가 제일 잘한 게 너랑 결혼한 거야.”
소주가 몇 잔 들어가니 평소엔 하지 않던 애정표현도 술술 나온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아하하! 신정호 평소에는 그렇게 센 척 하더니, 술버릇이 우는 거였어?”
서유진이 신나서 놀렸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수도꼭지가 되어버렸으니 나는 휴지를 뽑아 눈가를 콕콕 찍었다.
“놀리지 마라.”
“늘리지 므르~ 선수 때는 멋있었는데, 은퇴하니까 바로 귀여워지네, 우리 정호?”
서유진이 깔깔 웃으며 소주잔에 소주를 채운다. 나도 그녀의 잔을 채우고, 우리는 건배를 했다.
짠-
그리고 서로의 입에 잘 익은 삼겹살을 넣어준다. 아, 고기도 달고 술도 달다.
그렇게 10년만의 술자리가 정리되어갈 즈음, 서유진이 갑자기 진지하게 물었다.
“그런데 정호야.”
“응?”
“내가 지금 뭐 하나 물어볼 건데. 진짜 진지하게 대답해 줘야 돼. 알았지?”
“뭔데. 말해봐, 대답해 줄게.”
내가 재촉하자 그녀가 씨익 웃으며 아껴두었던 질문을 던졌다.
“너··· 다시 태어나도 농구할 거야?”
“......”
말문이 막혔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농구를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초라한 말년을 보내게 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다시 농구를 선택할 수 있을까?
서유진의 맑은 눈이 나를 똑바로 바라본다. 나는 매번 그 눈 앞에서 모든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아야만 했다.
그리고 그건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응.”
멈췄던 눈물이 다시 터지기 시작한다.
“응. 할 거야. 더, 더 열심히 해서.”
나는 고개를 숙였다. 오래 묵었던 감정이 둑이 터지듯이 쏟아져나왔다.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억울함, 미안함, 좌절, 슬픔, 그리고 사랑.
온갖 감정이 휘몰아치듯 쏟아졌다.
“꼭, 꼭 성공해서. 너 고생 안 시키고, 행복하게 해줄 거야. 내가 꼭, 더 열심히 해서······!”
그리고 그 순간, 눈앞이 깜깜하게 변했다.
아주 먼 곳에서, 서유진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같았다.
“그래. 그래야 신정호지.”
#
눈앞은 여전히 깜깜했다.
하지만 팔다리는 움직일 수 있었다. 마치 깊은 물 속에 잠겨있는 듯한 감각.
눈이 어둠에 적응해갈 즈음, 밝은 빛이 떠오르더니 눈앞에 글자처럼 나타났다.
[선수 유형을 선택하십시오]
-슬래셔(slasher)
-슈팅 스페셜리스트(shooting specialist)
-엘리트 디펜더(elite defender)
-플레이메이커(playmaker)
···
..
.
나는 망설임 없이 하나를 선택했다.
-슈팅 스페셜리스트(Shooting specialist)
‘신정호는 놔두라고’라는 말을 안 들을 수만 있다면.
그 말을 극복할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었다.
슈팅 스페셜리스트를 선택하자 다른 선택지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곧이어 다른 글자들이 떠올랐다.
[어빌리티를 추출합니다!]
[추출 중······]
[가져갈 수 있는 어빌리티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어빌리티는 단 하나만 선택할 수 있습니다!]
-강철같은 정신력(Rank : A)
-압박(Rank : B)
-지치지 않는(Rank : B)
-보이지 않는 손(Rank : A)
나는 어빌리티를 자세히 살펴보려고 했지만 점점 잠이 쏟아졌다. 급하게 가장 좋아 보이는 걸로, 맨 위의 것을 고르고 눈을 감았다.
[Regame. 다시 시작합니다!]
어디선가 휘슬 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는 지난 10년간 들어왔던, 경기 시작을 알리는 소리와 많이 닮아있었다.
#
“야, 신정호! 너 미쳤어? 이 상황에 멍을 때려? 정신 똑바로 차려!”
누군가가 내 뺨을 친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잘 들어. 신정호, 넌 절대 쏘지 마. 스크린이나 열심히 걸어, 알았지. 이 패턴으로 재현이 만들어주는 거야!”
호랑이 감독이라는 별명을 가진 강호식. 그가 소리를 바락바락 질러대며 작전판을 휘갈기고 있었다.
익숙한 패턴이었다. 대학시절 주구장창 했던 패턴.
훗날 1라운드 상위권에 뽑혀 프로에 진출하는 1학년 대형 신인, 한재현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형, 형 스크린만 믿을게요. 이거 넣으면 8강이에요.”
스코어보드를 봤다. 남은 시간 5초.
점수는?
[이인대학교 85 : 87 진성대학교]
기억난다.
4학년 졸업반으로 참가했던 마지막 대회. 우리는 플레이오프 진출권이 걸린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를 연장 혈투로 이어갔고, 2점차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공격권을 가져왔었다.
이때 어떻게 됐더라?
날 버리고 에이스 재현이에게 진성대학교가 트리플팀(세 명이서 한 명을 막는 수비)을 붙었고, 공을 잡았음에도 핀치에 몰린 재현이가 급히 내게 패스를 했었다.
3점이면 역전을 하는 상황. 남은 시간은 1초.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나는 3점슛을 던졌고, 공은 림에 맞지도 않고 떨어졌다.
에어볼(Air ball).
전문 용어로 빽차.
그게 내 대학시절 마지막 슛이었고, 날 드래프트에서 3라운드로 떨어트린 멍청한 플레이였다.
상황 자체는 익숙하다. 꿈에서 자주 마주했던 끔찍한 기억 중 하나였으니까. 그런데 꿈이라기엔 너무 선명하고 생생했다.
“신정호 화이팅!!!”
관중석에서 우렁차고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급히 고개를 들었다. 관중석에서 유진이가, 아니 앳된 얼굴의 서유진이 내 이름이 쓰여있는 깃발을 흔들며 응원을 하고 있었다.
이날 유진이가 응원을 왔었나?
이렇게까지 디테일한 꿈을 꿨던 적은 없었다. 그냥 공을 받고, 던지고, 당연하게도 빽차가 나서 좌절하며 쓰러지는 것에서 꿈이 끝나곤 했었는데.
삐익—
심판이 휘슬을 불었다.
우리는 우르르 코트로 다시 나섰다. 농구화가 코트 바닥에 스치는 소리가 리얼하다. 나는 이 소리를 좋아했고, 들어가기 전마다 바닥을 차며 마음을 가라앉히곤 했다.
물론 꿈에서는 그런 짓, 한 적 없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혼란스럽다.
이건 꿈인가? 현실인가?
패닉에 빠지기 직전, 눈앞에 글자가 떠올랐다.
[어빌리티, 강철같은 정신력(Rank : A)이 발동됩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마음이 가라앉고, 플레이에만 집중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이 급격한 변화가 스스로도 놀라웠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한재현이 나와 눈을 맞추고 반대편 코트에서 슬금슬금 올라오고 있었다.
패스를 하는 건 김정우. 피지컬의 한계로 선수는 포기했지만, 패스 하나는 끝내줬던 우리 팀의 포인트가드.
나는 감독의 지시대로 한재현을 위해 스크린을 걸었고,
쿵–
상대 수비는 나와 부딪쳤음에도 한재현을 따라 달려나갔다. 나는 그 즉시 3점 라인 바깥으로 빠지는데······ 이상한 게 보였다. 3점 라인 바깥에, 딱 그곳에만 푸른빛 조명이 비치는 것 같은 둥근 원형의 빛무리가 보이는게 아닌가.
‘저게 뭐지?’
궁금증은 눈앞의 글자가 설명해주었다.
[슈팅 스페셜리스트(Shooting specialist)의 효과로 존(Zone)이 형성됩니다!]
나는 홀린 듯 빛무리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 사이 패스를 받은 한재현은 세 명이 달려들자 당황하며 내 이름을 불렀다.
“정호 형! 제발!”
한재현이 뒤로 펄쩍 뛰면서 내게 공을 던졌다.
시간이 줄어들고 있었다. 공을 받고 본능적으로 시간을 살폈다. 남은 시간은 1초.
나는 빛무리 위에서 슛을 던졌다. 그리고 처음 느껴보는 감각을 느꼈다.
농구공의 표면이 손가락에 제대로 감기는.
내 손을 떠난 농구공은 완벽한 궤적을 그리며 날아갔다. 그리고······
철썩–
림 안쪽을 통과했다.
삐이이이익—
경기 종료 버저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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