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증.
마치 헤어드라이어로 혀와 목구멍을 바싹 말려놓은 느낌이었다.
흐릿한 눈으로 방구석에 놓인 페트병을 쳐다봤다.
병 안에 노란색 액체가 담겨있었다.
‘오줌··· 마실까?’
최악의 상황이라 오줌을 버리지 않고 모았는데, 아무리 내 오줌이라도 막상 마시려니 께름칙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한반도에 좀비 사태가 발생하고 석 달 가까이 지났다.
최창규는 고층 오피스텔 안에 고립된 채 멸망해가는 세상을 목격했다.
인터넷, 전화, 전기, 수도, 가스 등 평소 당연하게 여겼던 모든 것들이 끊겼다.
거리는 좀비들로 가득했고 생존자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자동차와 비행기 소리도 완전히 사라졌다.
며칠 전까지는 가끔 창밖에서 고통에 찬 비명이 들려오곤 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전혀 들리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 창규가 여태껏 살아있을 수 있던 건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냥 끝까지 오피스텔 원룸 안에서 버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지금 당장 목숨을 걸고 좀비들이 우글거리는 밖으로 나가 마실 물을 구할지,
아니면 오줌이라도 마시며 원룸 안에서 조금 더 연명할지.
물론 제삼의 선택지도 있었다.
창규는 창밖을 내려다봤다.
이곳은 33층이었다.
원룸 오피스텔치고는 높은 층수로, 집은 비좁아도 전망이 좋아서 이곳으로 이사를 왔었다.
어쨌든 여기서 뛰어내리면 100% 즉사할 것이다.
건물 아래에 훼손되고 부패한 시체들이 즐비했다.
작금의 상황을 견디지 못해 창밖으로 몸을 던져 자살한 이웃들의 시체였다.
순간, 부정적인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과연 구조대가 올까?
안 올 것이다.
왔다면 벌써 왔겠지.
아무래도 인간 사회는 이미 완전히 망해버린 것 같다.
이런 상황에 살려고 아등바등해봐야 뭐 하겠는가.
결국에는 얼마 못 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텐데.
그러니 자신도 저들처럼 그냥 확 죽어버릴까?
절레절레-
창규는 고개를 저어 부정적인 생각들을 털어냈다.
죽을 결심이면 뭔들 뭣하겠는가.
오피스텔 건물 1층에 편의점이 있다.
그곳에 가면 물과 식량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려면 복도를 배회하는 좀비들을 따돌리고 1층까지 계단으로 걸어 내려가야 했다.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이지만 그냥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낫겠지.
‘해보자!’
결연한 표정으로 각오를 다지던 그때,
툭-
발아래로 뭔가가 떨어졌다.
리본이 묶여있는 선물 상자였다.
‘이게 뭐야!’
창규는 깜짝 놀라 위를 쳐다봤다.
아무것도 없는 천장뿐이었다.
창문을 확인했다.
닫혀있는 그대로였다.
상자가 밖에서 날아들어 온 건 절대 아니었다.
‘갑자기 어디서 생겨난 거지?’
두근두근-
기이한 현상에 심장이 뛰고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 와중에도 상자에 뭐가 들었는지 매우 궁금했다.
혹시 하늘이 내린 선물일까?
‘마실 물이 들어있으면 좋겠는데.’
상자 속에 위험한 게 들어있을 확률도 배제할 수 없지만 절로 긍정 회로가 돌아갔다.
창규는 리본을 풀어낸 후 상자 뚜껑을 열었다.
‘어라?’
안에는 뿅망치가 들어있었다.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뭔가를 때리면 뿅 소리가 나는 장난감 망치였다.
생수가 아니라서 실망했다.
창규는 뿅망치를 집어 들었다.
그 순간 눈앞에 글자들이 생겨났다.
<창규 어린이 안녕! 창규 어린이에게 장난감 선물을 보냅니다! 뿅망치 가지고 재미나게 노세요!>
VR을 착용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허공에 글자가 보이는 건지···.
몸이 쇠약해져 헛것이 보이는 걸까?
당황해하는 사이에 뿅망치에 관한 설명이 눈앞에 떴다.
<성불(成佛) 뿅망치>
-뿅망치로 좀비를 때려 성불시키세요.
-반드시 ‘뿅’ 소리가 나게 제대로 때려야만 합니다.
-뿅망치로 10대를 때리면 좀비가 사라집니다. 그리고 죽은 육신에 속박돼있던 영혼은 해방됩니다.
뿅망치의 사용법을 읽은 창규의 머릿속은 혼돈 그 자체였다.
‘이게 뭔 개소리야!’
너무 정신이 없던 나머지, 뿅망치를 책상 위에 내려놓으려다 그만 힘이 너무 들어갔다.
뿅망치의 머리 부분이 책상 면에 제대로 닿았다.
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온 세상이 적막했기에 그 소리가 엄청나게 크게 느껴졌다.
‘아차차!’
터벅터벅-
현관문 밖에 있던 좀비의 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좀비는 소리에 굉장히 민감했다.
놈이 뿅망치 소리에 반응한 거였다.
쿵!
좀비가 현관문을 들이받았다.
그 소리에 복도의 다른 좀비들도 몰려와 합세했다.
쿵! 쿵!
쿵! 쿵! 쿵!
‘망했다!’
이런 상황을 안 만들려고 생라면 먹을 때도 씹는 소리가 안 퍼져나가게 이불을 몇 겹이나 뒤집어썼었다.
방귀도 최대한 소리 안 나게 뀌었다.
그렇게 조심조심하며 지냈는데, 오늘 정말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했다.
쿵!
쿵! 쿵!
좀비들 십수 마리가 힘을 합쳐 계속 문을 들이받았다.
문을 부술 기세였다.
‘그래 한 번 해보자!’
창규의 눈빛이 비장해졌다.
이대로 벌벌 떨며 공포에 사로잡혀 있느니, 과감히 뿅망치를 시험해 볼 결심이 섰다.
창규는 뿅망치를 치켜들고 현관문으로 다가갔다.
일단 문에 붙은 안전 고리부터 확인했다.
안전 고리가 걸려 있으면 문이 활짝 열리는 걸 방지할 수 있다.
그다지 오래 버티지는 못하겠지만.
후우-
창규는 심호흡했다.
그리고 문을 살짝 열었다.
케에에엑-
좀비들이 창규의 살냄새를 가까이서 맡고는 소름 돋는 괴성을 질러댔다.
곧이어 열린 문틈으로 좀비들의 손이 비집고 들어왔다.
피부가 문드러진 부패한 손들이 창규를 붙잡으려 버둥댔다.
반짝-
좀비의 손가락에 끼어있는 금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네놈이 첫 목표다!’
창규는 뿅망치로 금반지 낀 손을 때렸다.
뿅!
소리가 났다.
아직은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10대를 때려야 좀비가 사라진다고 했다.
계속해서 같은 손을 때렸다.
뿅!
뿅뿅!
좀비가 손을 계속 버둥거려서 맞추는 게 쉽지는 않았다.
그리고 빗맞거나 망치 옆면으로 맞으면 뿅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았다.
뿅 소리가 안 나면 유효타로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했다.
창규는 두더지 잡기를 할 때처럼 온 신경을 집중해 뿅망치로 금반지 낀 손을 타격했다.
뿅뿅!
뿅뿅뿅뿅!
그렇게 10대를 명중시키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좀비의 손이 증발하듯 감쪽같이 사라졌다.
데구루루-
손가락을 잃은 금반지가 땅에 떨어져 뒹굴었다.
손뿐만 아니라 좀비의 몸뚱이 전체가 완전히 사라졌다.
<좀비 1마리를 성불시켰습니다.>
<코인 1개가 적립됩니다.>
<코인을 모아 뿅망치를 업그레이드하거나 새로운 장난감을 구매하세요.>
<코인이 10개 이상 적립되면 상점 입장이 가능합니다.>
이건 또 뭔 소리인지.
하지만 지금은 오래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철컥철컥-
안전 고리가 얼마나 버텨줄지 몰랐다.
문이 활짝 열려버리기 전에 좀비들을 최대한 해치워야 했다.
창규는 계속해서 다른 좀비들의 손을 때리기 시작했다.
한 마리씩 때리라는 규칙은 없었다.
그냥 마구잡이로 때렸다.
뿅뿅뿅!
뿅뿅뿅뿅!
뿅뿅!
창규의 예상이 맞았다.
이놈 저놈 막 때려도, 누적으로 10대를 맞으면 해당 좀비가 사라졌다.
<좀비 1마리를 성불시켰습니다.>
<코인 1개가 적립됩니다.>
<좀비 1마리를 성불시켰습니다.>
<코인 1개가 적립됩니다.>
.
.
.
뿅망치를 휘두르는 팔이 저려 왔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계속 때렸다.
뿅뿅!
뿅뿅뿅!
그리고 마침내,
좀비가 한 마리도 남지 않았다.
창규는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고 복도를 살폈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정경이었다.
아무도 없이 고요했다.
‘33층 좀비들을 다 없앤 건가?’
창규는 그제야 눈앞에 떠 있던 새로운 메시지의 내용을 확인했다.
<현재 보유 중인 코인은 17개입니다.>
<지금 바로 상점에 입장할 수 있습니다.>
<입장을 원하시면 마음속으로 ‘입장’이라고 외쳐주세요.>
지금까지 벌어진 모든 초현실적인 상황들로 미루어,
이 메시지의 내용 또한 진실일 것이다.
‘상점에 물도 팔려나?’
복도의 좀비들을 해치워 마음이 홀가분했지만, 몸을 많이 썼더니 갈증이 더 심해졌다.
창규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입장!’
팟-
눈부신 섬광이 일며 창규는 어딘가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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