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무명배우, 천만배우로 거듭 나다!

S#0-1

2024.03.27 조회 4,372 추천 65


 차르르르.
 웅장한 OST와 함께 엔딩 크레딧이 화면에 흐른다.
 이미 영화를 보면서 확인을 했지만, 나는 한 번 더 크레딧을 꼼꼼하게 살펴봤다.
 그러나, ······ 없다.
 내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다.
 
 주위를 둘러본다.
 관객들은 대부분 만족한 얼굴로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중 몇몇은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리고 있기도 했다.
 코로나로 인해 몇 년 동안 영화 개봉 자체가 어려운 시기였고, 흥행작들이라고 해 봐야 흥미 위주의 작품들 몇 개가 전부였을 뿐.
 이 작품만큼 영화다운 영화는 없었다.
 관객들의 반응을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었다.
 
 관객들이 하나둘 상영관을 빠져나가고, 마지막 남은 단 한 사람.
 바로 나.
 정말 어렵게 이 영화에 캐스팅되었건만 내 분량은 전부 잘려 나갔다.
 물론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번은 너무 마음이 아프다.
 아니 마음이 아프다는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내 몸이 전부 으스러지는 고통에 휩싸였다.
 너무 괴로워 고개를 들 수조차 없었다.
 
 “손님. 나가셔야 될 시간입니다.”
 
 고개를 떨구고 있는 내게 영화관 직원이 짜증이 가득 묻어나는 시선을 보냈다.
 잠시 더 앉아 있고 싶었지만 직원의 표정을 보니 그럴 마음이 사라졌다.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터벅터벅 계단을 내려갔다.
 등 뒤로 꽂히는 직원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다.
 상영관의 문을 여니 밝은 LED 조명이 내 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밝은 빛에 눈을 찡그리는 내가 마치 감옥에서 갓 나온 수형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못한 신세.
 수형자라면 어떤 희망이라도 가져볼 것인데, 지금의 나는 그와 정반대이지 않는가.
 어둠에서 빛으로 나오는 길인데 희망조차 품어볼 수 없다는 사실이 더욱 처참하게 느껴졌다.
 
 ‘이유를 알아야 한다.’
 
 지극히 당연한 의문이다.
 내가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왜 영화에 나오지 못해야 했는가.
 그 이유를 알아야 하는 것은 선택이라기보다 의무에 가까웠다.
 내 분량을 지워 버린 사람,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이 울리고, 그가 전화를 받았다.
 
 [어어. 김 배우.]
 
 살짝 당황한 듯한 그의 목소리.
 연락이 오지 않기를 바랐을 그에게 어울릴 법한 그 목소리였다.
 본론은 나나 그 모두 알고 있지만, 그래도 뻔한 안부 인사쯤은 해야 했다.
 
 [정 감독. 오랜만이야.]
 [그래. 그래. 내가 먼저 연락하려고 했는데···.]
 
 뻔한 안부에 뻔한 공치사로 받는 정성주 감독.
 정말로 먼저 연락을 하려 했는지 따져 묻고 싶었지만 지금 이 순간 그게 뭐 그리 중요한가.
 나는 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지금 영화 보고 나오는 길이야.]
 [어··· 어, 어!]
 
 몇 번의 ‘어’를 반복한 끝에 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불쌍하게 눈이 축 쳐진 그의 얼굴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어떻게 된 거야?]
 [그··· 그게··· 내가 먼저 말하려고 했는데, 김 배우한테 너무 미안해서.]
 [그래서 시사회에도 안 부른 거야?]
 
 이 영화 시사회 소식을 인터넷을 접했을 때 주연 배우들 무대 인사하느라 나 같은 단역은 부르지 않았나 했다.
 그런데, 단역으로 같이 출연했던 까마득한 후배는 시사회 자리에 있었다.
 단순한 실수려니 했는데, 오늘 영화를 보고 나서야 내가 빠졌던 이유를 알았다.
 
 [나는 김 배우 부르자고 했는데, 다들 그러지 말라고 해···]
 [그 김 배우라는 소리 좀 집어쳐!]
 
 정성주는 나와 동갑이다.
 극단에서 일하다 영화판에 처음 들어섰을 때 역시 처음 스탭으로 일하던 그를 만나 25년 이상을 알고 지냈다.
 평소 이름을 부르던 정성주가 나를 김 배우라고 부르니 울화가 치밀어 올라 미칠 것 같았다.
 
 [아··· 미안해. 영진씨.]
 [됐고. 내가 왜 잘린 건지 이유나 말해 봐.]
 [나야. 영진씨 연기 잘하는 거 아니까 캐스팅한 거고 이번 영화에서도 연기 좋았다고 생각했어. 근데, 강윤성이하고 프로듀서가 그러는 걸 난들 어쩌냐?]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주연 배우인 강윤성과 제작자가 그렇게 하라고 했다면 흥행작 하나 없는 감독이 어떻게 맞서겠는가.
 그래도 나는 감독으로서 자존심을 지키지 못한 그가 원망스러웠다.
 
 [감독이라는 사람이 주연하고 프로듀서한테 휘둘린다는 게 말이 돼?]
 [미안해. 영진씨! 나도 내가 싫어서 그동안 마음고생 많이 했어. 정말 미안해.]
 [하아······.]
 
 더 휴대폰을 붙들고 있다가는 둘 중 하나가 흐느낄 판이었다.
 나는 얼른 휴대폰의 종료 버튼을 눌렀다.
 곧바로 진동음이 울렸지만, 나는 확인도 하지 않고 휴대폰을 꺼 버렸다.
 나는 출구로 나가기 위해 몇 걸음 발을 뗐으나 이내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사람들 몇몇이 나를 흘끔거렸다.
 꾸준히 영화에 출연했던 단역 배우였기에 어딘가 낯이 익어서 그런 모양이었다.
 그렇게 흘끔거리던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가로저으면서 나를 알고 있는지 아닌지를 표현했다.
 20년 넘게 영화판에서 일을 한 배우에 대한 반응치고는 몹시 초라했다.
 쉽게 넘길 수 있는 반응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오늘은 그런 반응들조차 나를 심하게 흔들어 놓았다.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출구를 향해 나아갔다.
 
 휘이잉.
 
 출구를 나오자마자 훅하고 찬바람이 얼굴을 강타했다.
 냉기를 온몸으로 느꼈음에도 흔들리는 내 마음은 쉽게 바로 서지 않았다.
 종로에 하나 남은 이 영화관을 뒤로 하고 나는 하염없이 걷기 시작했다.
 쇠락한 구도심은 희미한 불빛 아래 서서히 침몰해 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문득 그 모습이 나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배우로서의 30년.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그 30년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스물을 갓 넘어 연극 극단의 문을 두드릴 때의 떨림.
 연봉 백만 원을 못 벌었어도 최고의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살았던 그때.
 처음 영화에 출연해 카메라 앞에서 섰던 그 설레임.
 그리고, 방금 아무런 통보도 없이 통째로 편집돼 있는 작품을 본 순간까지.
 내가 겪었던 모든 것들이 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갔다.
 선명하게 떠오르는 기억 하나.
 
 [주연보다 빛났던 김영진의 연기]
 
 10년 전이던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나가는 영화 평론가가 썼던 칼럼 제목이었다.
 내가 연기를 잘한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이상하게도 주목을 받지 못했던 시절.
 
 어쩌다 찍게된 영화에서 나는 주연 강윤성보다 더 주목을 받게 되었다.
 내가 맡은 사이비 종교의 광신도의 모습이, 너무 압도적이라, 교주 역을 맡은 주연이 묻혔다는 반응이 주를 이렀다.
 
 평론가의 칼럼이 나간 이후 한동안 언론의 인터뷰도 받고 바쁜 나날을 보냈었다.
 주목을 받게 되자 여러 곳에서 캐스팅 제의를 받게 되고 어떤 작품을 선택할지 고민하는 행복을 맛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행복도 잠시였다.
 그 영화는 곧바로 개봉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밀리게 되었고, 나를 향하던 관심도 차갑게 식고 말았다.
 작품을 고민하다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어 거절했는데 이후 거짓말처럼 캐스팅 제의가 끊겼고, 오히려 이상한 소문까지 돌았다.
 알고 봤더니 평론가하고 친척이다, 작품 하나 잘 됐다고 지가 주연 배우라도 되는 줄 안다, 연기파라고 소문이 났지만 실제로는 별로다 등등.
 누가 그런 소문을 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소문이 한번 나기 시작하니 걷잡을 수 없었다.
 간간이 들어오는 역할로는 생활비를 감당할 수가 없어서 닥치는 대로 부업을 해야 했다.
 내 인생은 비참하게 흘러갔고, 그렇게 절치부심 출연한 이 작품에서도 나는 없었다.
 비참한 와중에 친구 희연이 생각났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휴대폰을 켰다.
 정 감독으로부터 온 부재중 전화 10통, 문자메시지가 1통 들어와 있었다.
 
 [영진씨. 한번만 용서해 줘. 우리 그동안 잘 지냈잖아. 다음 작품에서 같이 잘해 보자. 나는 꼭 영진씨가 잘될 거라고 생각해. 문자 보면 연락 줘요.]
 
 뚝심이 없다 뿐이지 정성주는 악한 사람이 아니었다.
 강윤성과 프로듀서가 내 분량을 자르라고 했다면 정성주는 따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고마워요. 정 감독. 나 챙길 생각하지 말고, 정 감독만 생각해요. 앞으로 좋은 영화 많이 만드시길 바랍니다.]
 
 정 감독에게 문자를 보내고, 나는 바로 희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영진아. 무슨 일이야?]
 [요즘 바쁘지?]
 [좀 바쁘지. 왜 술 한잔 하게?]
 
 내가 먼저 희연에게 전화를 하면 열 번 중 아홉 번은 만나서 술을 마셨다.
 아무리 바빠도 희연은 나와의 술자리를 거절하는 경우가 없었다.
 그와 만나서 연기에 대한 얘기를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일이 없는 나와 달리 희연은 요즘 잘 팔리는 배우였지만, 내가 만나자고 하면 스케줄이고 뭐고 기꺼이 뛰어나오는 친구였다.
 그런데 오늘은 그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아니다.]
 [그럼 무슨 일로 전화를 했어? 혹시 캐스팅 됐냐?]
 [아니. 아니. 불러 주는 데가 하나도 없네. 답답하다. 흐으.]
 
 희연에게 이 비참한 상황을 전부 털어놓고 싶었다.
 그렇지만, 내가 출연했던 영화에서 통편집을 당했다는 사실은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하하!! 네가 맨날 그렇게 다니니까 캐스팅이 없는 거야. 나처럼 해봐! 나처럼!!]
 
 희연은 평소처럼 농담 섞인 반응을 보였다.
 평소 같으면 그에게 욕 한번 하고 넘어갔을 상황.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희연의 그 말이 내 폐부 깊은 곳을 파고들어 헤집어 놓았다.
 
 [희연아! 앞으로 더 훌륭한 배우가 돼라!]
 [어어!! 이 새끼 이거 왜 이래? 너 어디야 인마!!]
 
 희연의 목소리가 커졌다.
 나는 격앙된 감정을 겨우겨우 다잡아 그에게 말했다.
 
 [희연아. 잘 살아라.]
 
 말을 마치자마자 희연이 소리를 쳤으나 나는 조용히 종료 버튼을 눌렀다.
 휴대폰 전원을 끄고 어둑어둑한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고, 가로등의 불빛이 바람을 이기지 못해 휘어지고 있었다.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지만 나는 몹시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눈물이 고여 시야를 뿌옇게 흐리고 있었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만 했을까? 신은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준 것일까?
 
 내가 뭔가를 간절히 원할 때 그것은 내게서 멀어졌고, 그것을 포기할 때쯤 내게 다가왔다가 또 원하면 다시 달아나기를 반복했다.
 내 뜻대로 되지 않은 인생은 정말 지긋지긋하기 그지없었다.
 환청처럼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들리고, 눈앞이 환하게 밝아지는 순간.
 
 끼이익. 터엉.
 
 엄청난 충격과 함께 내 몸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무섭게 휘몰아치던 바람이 잦아들고 난 떠오른 공중에서 해방감을 맛보았다.
 아마도 그 시간은 고작 몇 초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 시간이 내겐 몇 분 아니 몇 시간처럼 느껴졌다.
 말할 수 없이 포근한 그 몇 초를 뒤로 하고 나는 빠른 속도로 바닥을 향해 추락했다.
 바닥에 부딪히는 순간, 딱딱한 콘크리트의 질감을 느낌과 동시에 눈앞이 아득해졌다.
 그리고, 몸에서 내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면서 아주 빠른 속도로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지구의 대기권을 벗어나 우주로 뻗어 나가고 내 주위는 온통 암흑으로 둘러싸였다.
 암흑 속에서 어디론가 빨려가듯 날아가고 있던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댓글(5)

k8**************    
흥미로운 시작입니다.
2024.03.28 08:25
as*****    
재미있게 잘 보고 갑니다. 건 필 하세요.
2024.03.28 17:20
ye***    
1화부터 뭔가 재밌어보여요!
2024.03.30 20:03
musado0105    
잘 보고 갑니다. 건 필하세요^^*
2024.05.15 21:52
ic******    
간만에 정상적인(?) 흐름의 트럭 등장이네요.
2024.06.01 07:15
0 / 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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