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일반인으로 살 껄 그랬나?”
시끌벅적한 호프집 안.
최태현이 맥주잔을 탁 소리가 날정도로 세게 내려놓았다.
앞에 앉아있던 박철수는 그보다 몇 모금을 더 마신 뒤에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크’ 소리를 냈다.
“그러게! 이게 뭐냐고, 진짜!”
박철수가 닭다리를 집자, 최태현이 그의 손목을 낚아챘다.
“야, 너 닭다리 먹었잖아?”
최태현의 시선이 박철수의 앞접시로 향했다.
그곳엔 닭다리 뼈가 샅샅히 발골된 채 놓여있었다.
“친구 사이에 이 정도도 양보 못하냐?”
“아니, 닭다리가 세 개도 아니고, 두 갠데! 당연히 하나씩 먹는 게 상식 아냐? 너 원래 안이랬잖아? 왜 그래?”
“팍팍하다, 팍팍해.”
“우리 철수, 왜 갑자기 상도덕이라는 게 없어졌지?”
최태현은 닭다리를 뺏어들었다.
소중한 닭다리, 놓칠 수 없었다.
크게 한 입 베어 물자 바삭한 튀김옷 밑으로 촉촉한 다리살이 입안 가득 들어왔다.
“역시 단백질을 보충해야된다니까.”
“단백질이고 나발이고... 나는 그냥 헌터 그만 둘란다.”
박철수의 폭탄선언.
싱글거리던 최태현의 표정이 싹 굳었다.
“야, 헌터를 그만둔다고? 끝까지 가보자던 약속 잊었어?”
“끝이 여기야. 여기가 우리 종착역이라고. 2차 각성? 그건 진짜 선택받은 놈들한테만 오는 거고. 우리는 시발, 닭다리가지고도 싸우는 패배자야. 난 이렇게는 못 살아.”
“야, 지금 닭다리 때문에 그래? 너 먹어라. 진짜 큰 맘 먹고 양보하는 거야. 다음은 없어.”
최태현은 한 입 먹은 닭다리를 내밀었다.
이빨자국이 선명하긴 했지만, 아직 다리살이 충분히 붙어 있었다.
“야, 내가 지금 진짜 슬픈게 뭔지 아냐?”
“뭔데?”
“그 닭다리, 시발 먹고 싶다는 거다.”
박철수는 울상이 되었다. 자주 보던 표정이다. 그래서 알 수 있었다.
지금의 울상은 정말 진심이 가득 담긴 울상이라는 것을.
“...왜 그래, 진짜? 먹으라니까.”
“안 먹는다고!”
박철수는 소리를 꽥 지른 뒤 고개를 푹 숙였다.
밑으로 눈물이 후드득 떨어지는 게 보였다.
“너 무슨 일 있었어? 오늘 따라 왜 그래?”
최태현은 입맛이 뚝 떨어져서 먹던 닭다리도 내려놓았다.
없는 살림에, 단백질 보충 한 번 제대로 해보자고 만든 자리다.
호프집에 마주보고 앉을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분위기가 개판 날지 상상도 못 했다.
박철수가 눈물을 닦고 고개를 들었다.
“우리 헌터 됐을 때만해도 진짜 인생 바뀌었다, 제대로 한 번 살아보자, 그랬잖아?”
“그러긴 했지...”
“근데 이게 뭐야? 왜 갑자기 헌터들이 존나게 많아지냐고. 우리 각성했을 때만해도 F급이라도 일이 많았는데, 요즘엔 불러주는 데도 없어. 그냥 짐꾼이라니까. 우리도 헌터잖아, 태현아!?”
“허, 헌터긴 하지.”
“근데 왜 짐꾼으로 쓰냐고! 같이 고블린 공략도 공부 했잖아? 합격술 연습도 했잖아? 우리 둘이 힘을 합치면 오크도 잡을 수 있잖아?”
“그, 그렇긴 하지.”
“근데 왜 우린 짐꾼이야? 왜 최저 시급을 받아야 돼? 왜 헌터는 서빙 알바도 안 시켜줘? 왜 정부는 일반인 일자리 장려만 하는데? 왜 우리같은 어중이떠중이 헌터들은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야하는 건데!”
박철수는 한바탕 쏟아내더니 다시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만 뚝뚝 흘렸다.
‘오늘 간만에 던전 갔다오더니, 다른 헌터들에게 무시라도 당했나...’
최태현은 그의 눈치를 보며 닭다리를 뜯었다.
사실 최태현도 박철수나 별반 차이가 없는 상황이다.
다른 헌터들을 수없이 부러워했고, 무시를 당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고도 손에 떨어지는 건, 최저시급에 생명수당 조금 더 보탠 수준.
게다가 요즘엔 일이 없어서 몇 번 던전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저번 달 수익 130만원, 저저번달 수익 90만원, 저저저번달은 그나마 나아서 190만원.
E급 헌터만 되어도 한달에 1000만원은 번다는데, F급 헌터는 최저생계비조차 벌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F급 헌터의 현실이 조명받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헌터의 등급이 약간 치우친 정규분포를 따르기 때문이다.
D급, C급이 제일 많고, F급은 A급보다 조금 더 적다.
A급이 9퍼센트 정도, F급은 7퍼센트에 불과했다.
숫자가 적은데다가, 힘까지 없으니 무시하기 딱 좋은 포지션이었다.
“너 근데 진짜 헌터 그만 둘거야? 기억 안나? 우리 대학 졸업장도 없어. 대학 다니다가 자퇴하고 헌터 됐잖아? 뭐하게? F급 헌터라도 헌터 등록 되어있으면 취업 진짜 안되는 거 알잖아?”
박철수가 우는 사이에 닭다리를 야무지게 먹은 최태현이 설득을 시작했다.
“막노동이라도 하면 되지! 노가다 판에서 F급 헌터가 인기 많다더라! 힘도 세고, 잘 안 지친다고. 막노동하다가 기술 배워서 그쪽으로 나가면 돼. 시발, 뭘 해도 헌터판보단 나아!”
“야, 그래도 너 스킬 좋은데 그거 내다 버리기 아깝다.”
“스킬이 뭐가 좋아? 진짜 좋았으면 내가 F급이겠냐?”
“나보단 좋잖아.”
“그건...”
처음으로 박철수가 당황했다.
F급은 대체로 한두 개의 스킬을 가진다.
숫자가 적더라도 좋은 스킬이라면 충분히 높은 등급을 받을 여지가 있지만, 안타깝게도 두 사람은 그런 행운은 없었다.
박철수의 스킬은 냉기 분사와 결빙.
짐꾼으로서 헌터님들에게 언제나 시원한 음료수를 서빙할 수 있는 스킬이었다.
그래서 박철수는 언제나 최태현보다 일감이 많았는데, 그가 먼저 무너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
“잊었나본데, 내 스킬은 자각몽이잖아...”
최태현은 한숨섞인 말투로 말했다. 그도 스킬에 관한 울분이라면 남들에 뒤지지 않는다.
자각몽이라니.
스킬이 자각몽이라니!
어디가서 밝히기도 부끄러운 스킬이었다.
일단 전투에는 절대 쓸모가 없고, 가끔 저절로 발동되서 밤잠을 설치는 경우도 있었다.
잠을 잘 못자면 당연히 다음날 컨디션에 영향을 준다.
스킬이라고 단 하나 밖에 없는데, 그게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줄 때도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런 나도 헌터 한다. 2차 각성 노려보자, 철수야. 죽기 전까지는 끝난 게 아니라니까?”
“그래, 그것도 문제야. 돈도 못 버는데, 목숨까지 걸고 일하라고?”
“야, 요즘 하위 던전 사망률 엄청 낮아. 웬만해선 안 죽어. 우리 어차피 고등급 던전 들어가지도 못하는데, 막노동 사망률이랑 비슷할 걸?”
“사망률이 비슷하면 돈 더 버는 막노동하지! 병신이냐?”
“아니, 낭만이라는 게 있잖냐? 남자가 한 번 태어났으면...”
“낭만이 밥 먹여줘!?”
결국 박철수는 참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나 이제 진짜 헌터 안해. 미안하다, 태현아. 약속못지켜서. 근데 진짜 나도 힘들어. 여긴 내가 계산한다. 노가다 일당 받으면 밥 또 살테니까, 오늘은 이쯤하자.”
박철수는 그대로 계산을 하고 사라졌다. 최태현은 이렇게 또 헌터 동료를 한 명 잃었다.
죽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전부 헌터판을 제 발로 떠났다.
그만큼 F급 헌터는 심적으로 고된 일이었다.
“치킨... 많이 남았는데...”
최태현은 시무룩하게 치킨을 뜯었다. 오랜만에 먹는 치킨이지만 혼자 먹으니 맛이 없었다.
....
최태현은 오늘도 헬스장을 찾았다. 헌터에게 근력훈련은 빼놓을 수 없는 일과다.
그의 근력스텟은 23.
일반인이 보통 10 전후이니, 힘이 두 배는 강한 셈이었다.
“안녕하세요.”
헬스장으로 들어서자 트레이너가 인사를 건넸다.
“아, 예. 좋은 아침입니다.”
최태현은 웃으며 인사를 받았다. 하지만 마음은 쓰라렸다. 트레이너의 눈빛을 보았기 때문이다.
안쓰러운 눈빛이었다.
최태현이 헌터라는 건 트레이너도 알고 있다. 모를 수가 없다. 운동 좀 했다는 회원들도 3대 500을 버거워한다. 하지만 최태현의 3대는 1톤에 가까웠다.
신장 177cm에, 75kg정도의 체중으로 3대 1톤.
평범한 인간이 달성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헌터’가 3대 1톤이라는 건, 상당히 부끄러운 수치였다.
스킬빨로 등급을 높인 헌터도 1톤 정도는 가볍게 달성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트레이너는 ‘여기 다닌지가 몇 년 째인데, 아직도 여기 계시네.’라는 말을 눈빛으로 한 것과 다름없었다.
최태현은 내색하지 않았다. 분명히 2차 각성은 온다. 그렇게 자신을 세뇌했다.
‘마음도, 몸도 훈련하는 거야. 지금 당장 시련은 2차 각성을 위한 준비과정에 불과해.’
워밍업을 끝내고 데드리프트를 하기 위해 원판 480kg을 꽂았다.
종전의 기록이 475.
오늘은 5kg을 올릴 생각이었다.
다리를 살짝 벌리고 허리를 바로 세웠다.
바벨을 잡자, 왜인지 박철수가 생각났다.
잡생각이었다.
최태현은 머리를 털어내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했다.
“흡!”
순간적으로 힘을 주며 바벨을 힘껏 잡아당겼다.
“끄으으으!”
팔에 코끼리를 달아놓은 것처럼 무거웠고, 다리와 허리가 펴지지 않았다.
몸이 덜덜 떨리며 당장 내려놓고 싶은 마음에 사로 잡혔다.
다시 박철수가 생각났다.
이걸 들어올리면 1년 째 정체된 근력스텟이 오를 것 같았다. 그렇게 박철수와 자기 자신에게 증명하고 싶었다. 아직 성장이 멈추지 않았음을 말이다.
“끄아아악!”
평소에 잘 지르지 않는 고함까지 쳐 봤지만, 몸만 덜덜덜 떨릴 뿐이었다.
그 순간, 갑자기 머리가 핑 돌았다.
‘브, 블랙 아웃...!?’
쾅!
최태현은 자신도 모르게 바벨을 내려놓았다. 세상이 빙글빙글돌고 시야가 순차적으로 어두워졌다.
몸이 붕 뜨는 느낌과 별개로 갑자기 바닥이 훅 뒤집히더니 눈앞으로 확 다가왔다.
“회원님!!”
트레이너의 외침이 귓전에서 웅웅 거렸다.
최태현은 그렇게 의식을 잃었다.
다음 순간, 최태현은 넓은 연무장에 검을 들고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선 남자.
고급스럽지만 단정한 옷차림이었고 몸은 호리호리하였으나, 한 눈에봐도 ‘강자’라는 느낌이 확 풍겼다.
예전에 S급 헌터를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그때와 비슷한 감각이 들었다.
‘블랙 아웃에도 자각몽이 발동되네. 진짜 쓸모없다니까.’
최태현은 가만히 서서 남자를 쳐다보았다.
어차피 이건 꿈이다. 가끔 저절로 발동되는 경우가 있어서 익숙했다.
“황자님?”
그의 앞에 서 있던 남자가 말했다. 그 목소리를 듣자, 자연스레 그에 대한 정보가 떠올랐다.
꿈이라는 건 원래 그렇다. 누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현재 설정을 알 수 있는 법.
그는 페트린 제국의 제일검이자, 대륙 최고의 소드마스터.
모든 검사들이 그에게 한 마디라도 듣기 위해 목을 맨다는, 최강의 검사 린카이 드라카.
그리고 지금 상황은 바로 페트린 제국의 삼황자가 린카이 드라카에게 시험을 받는 자리였다.
검술을 가르칠만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 말이다.
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아무리 황자라도 검술을 사사받을 수 없었다.
최태현은 일단 꿈에서 빠져나기로 마음 먹었다. 트레이너가 달려왔으니, 얼른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구급차를 부를지도 몰랐다.
꿈의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아무리 삼황자가 최강의 검사에게 가르침을 받느냐, 마느냐하는 순간이라고는 해도, 어차피 꿈은 꿈이다.
그것도 개꿈.
최태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검을 놓고 손을 들어올렸다.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내는 것이 ‘킥’ 신호.
킥을 하면 언제든 꿈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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