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내 인생은 문제가 있다.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제 더 부정할 수가 없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우선 지금은 쫓기는 중이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빚쟁이, 전애인, 부모의 원수가 쫓아오면 좋을텐데, 안타깝게도 좀 다른게 쫓아온다.
“크와아앙!”
서울시내 한복판에 호랑이가 웬말이냐고.
“아, 그만 쫓아오라고!!”
숨이 목구멍까지 차오르자 비릿한 피맛이 느껴졌다. 하지만 숨이 넘어가는 것과 호랑이의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것 중엔 숨이 낫지 않을까?
‘······제발 평범하게 살자, 평범하게 좀!’
나는 정신 없이 주변을 살폈다.
‘분명 여기 어디였는데.’
꼴딱꼴딱 넘어가는 숨을 붙잡고 골목길로 들어서자, 희고 붉은 깃발과 연등이 보였다. 딱 죽기 직전에 도착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 곳의 문을 벌컥 열고 소리쳤다.
“이건 진짜 너무한 거 아니냐고요!”
.
.
내 이름은 이산호. 온갖 불운은 다 때려 박은 기구한 팔자의 소유자.
어느 정도냐고?
군대 다녀왔더니 휴학했던 학교가 파산 선언, 멀쩡한 집이 무너져 이사갔더니 전세 사기, 크고 작은 교통사고는 이제 세는 걸 포기한 정도?
게다가 봐라, 방금도 호랑이한테 쫓기는 신세가 아니었나.
사건사고, 다사다난. 그런 단어들이 기본 옵션으로 붙어있는 팔자가 바로 내 팔자다.
나는 더 참지 못하고 주먹을 움켜쥐며 말했다.
“저 대단한거 바라는거 아니거든요. 대박까진 언감생심 바라지도 않아, 중박만 하자는 제 소망이 너무 과한가요?!”
내 인생에 문제가 많다는 걸 나도 몰랐던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이제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얼마 전부터 현실에 존재할 리 없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 한 것이다. 병원도 가봤지만 달라지는 게 없었다.
“재수야 평생 없었으니 이제 그러려니 해요. 근데, 하다하다 헛것까지 보인다니까요?”
제 아무리 저건 헛것이다, 진짜가 아니다····. 를 되뇌어봐도 눈앞에 호랑이가 있고 귀신이 있잖아? 그런 다짐 같은 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진다. 결국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용하다는 보살님을 찾아오게 된 것이다.
한 평생 무신론자로 살았건만 이쯤 되니 종착역은 샤머니즘이다.
“제가 기어이 미친 걸까요, 보살님?!”
촤악!
보살님은 쌀알을 탁자에 흩뿌리더니 대번에 혀를 찼다.
“쯧. 신수가 사납구나, 사나워. 내 살다살다 이리 사나운 팔자는 처음 본다.”
“그 정도예요?”
“혼이 맞는 자리를 못 찾았으니 명이 버텨나겠나. 잔병에 큰 병을 달고 살고, 어허. 재복은 줄줄 새니 남는게 하나 없구나. 쯧쯧, 머지않아 비명횡사로 단명할 팔자다.”
“······.”
남의 입으로 내가 단명할 거란 걸 들으니 기분이 영 이상하다. 근데 차마 아니라고 반박을 못하겠다.
“몰골을 보아하니 꿈도 난장판이겠구만. 꿈에 말을 탄 장수나 호랑이, 귀신 같은게 나오진 않든?”
헉, 보살님 용하시네. 안그래도 지금 밖에 한마리 있거든요?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더 볼 것도 없어. 신병(神病)이야.”
···신병······.
신내림 받고, 굿하고 그거? ···나 박수무당 되는 거야?
“저 무당 되기 싫은데요···.”
조그맣게 중얼거리자 보살님이 부채를 펼치며 말했다.
“무당은 직업이고, 이놈아. 신병이 다른게 아니야. 신이 너를 골라 필요한 곳에 쓰고자 함이지. 암만 거부해 봐야 소용없다. 운명이란 그런 거니까.”
“아니, 그래도 좀···. 다른 방법은 없어요?”
“아, 네놈이 그런 운명을 타고난 걸 난들 어쩌라고? 복채도 필요 없으니 싫으면 썩 나가라. 더 할 말도 없어!”
나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밖에 호랑이 있다고요. 보살님!!
보살님이 부채를 탁, 접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누름굿이나 허주굿으로 시간은 좀 벌 수 있을게야. 하나 네 혼이 그 몸에 붙어있게 하려면, 신을 모셔 도움을 받아야 돼. 아님 그냥 자다가도 죽는거야. 딱 보니 너, 얼마 안 남았다.”
“·········.”
“죽고 싶은거면 그렇게 하고.”
“···아니, 그건 아닌데······.”
나는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30년이다.
온갖 사건사고는 기본 옵션, 죽으라고 등 떠미는 듯한 세상에서 기를 쓰고 버텨낸 시간이.
인생의 장르가 서바이벌 스릴러인 탓에 이 나이 먹도록 제대로 된 연애 한번 못 해봤다. 이대로 죽었다간 몽달귀신이 내 다음 이름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나는 정말, 정말 죽고 싶지 않았다.
결국 눈을 질끈 감고 소리쳤다.
“···아,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해요, 한다고요. 살 수 있으면 뭘 못하겠어요?”
“더 고민 안 하고?”
“고민한다고 바뀔 게 없는 팔잔데, 더 생각해서 뭐해요. 그럴 시간에 그냥 하는 게 낫지.”
나는 한숨을 쉬며 바닥에 드러누웠다.
달력을 펼친 보살님은 날짜를 세어보곤 말했다.
“보자, 오늘이 6월 21일···. 준비는 나흘 걸린다. 굿판 준비되는 대로 연락할 테니 목욕재계하고 기다려. 괜히 딴짓하다 명줄 재촉하지 말고.”
“알았어요. 진짜 그거만 하면 인생이 좀 평탄해지는 거죠?”
“글쎄다, 네놈 명에 닿은 신이 어떤 분이냐에 따라 달렸지.”
오냐. 신이고 나발이고 아주 잘 먹이고 잘 재워서 잘 모실 테니 두고봐라.
나는 이를 뿌득 갈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한다면 하는 사람이라고, 내가.’
그러나 그런 결심이 무색하게도, 내가 신을 잘 모시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6월 21일.
잊혀지지 않는 그날은 내 서른 번째 생일이자 기일이 됐으니까.
신궁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이제껏 피해온 수많은 사고들 중 하나를 결국 피하지 못했다.
콰앙!
뜨겁고 비릿한 피 냄새와 이명처럼 들리는 소음, 마지막으로 눈에 담은 파란 하늘과···.
‘······이놈의 엿 같은 팔자···.’
아득해지는 의식 사이로 주변의 소음이 점점 고요해짐을 느꼈다.
굿을 나흘 앞둔 날이었다.
‘신이시여. 만일 진짜 존재 하신다면···.’
죽음의 문턱에서, 나는 내 명에 닿아 있다던 신에게 마지막으로 소원을 빌었다.
‘억울해서 이렇게는 못 죽겠으니까 저 좀 살려주세요. 네? 그 정도는 해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짜로.’
속에서 무언가 울컥, 하고 차올라 목구멍이 답답했다.
‘···살고 싶어요. 이렇게 죽고 싶진 않다고요. 내가 얼마나······.’
.
.
“······악착같이 살았는데! 개빡치네 진짜!!!”
마침내 토해내 듯 숨을 뱉으며 눈을 떴을 때, 나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 있었다.
“헉, 공자님! 정신이 드세요?”
“으악, 씨! 뭐야, 누구, 누구세요? 여기가 어디야?”
“네? 저 사월이잖아요, 여긴 내성의 별채고요.”
오늘은 더 놀랄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호랑이를 본 것보다, 내가 죽었다는 것보다 놀라운 사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가 어디라고요?”
“사천성 당가요, 산호 공자님.”
그러니까 내가···.
저승길에서 유턴을 하긴 했는데, 길을 좀 잘못 든 것 같다.
‘······집에 가고 싶다.’
누구나 하루 열두 번쯤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그러나 확신할 수 있다. 지금 나보다 더 간절하게 집에 가고 싶은 사람은 없을 거라고.
죽은 줄 알았던 내가 눈을 뜬 것도 이상한데, 처음 보는 소년이 반갑게 아는 체를 한다. 거기다 뭐? 공자님?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간신히 몸을 일으켜 자리에 앉자 창밖이 보였다.
낮게 줄지어 있는 전각들과 전통적인 복식의 사람들, 허리에 칼을 찬 무인들까지. 시대착오적인 모습이 어딜 봐도 21세기 대한민국은 아니었다.
“아 뭐야, 나 죽은 거 맞네. 너무 진짜 같아서 깜빡 속을 뻔······.”
평소에 무협 소설을 많이 읽어서 그런가, 저승 풍경도 오리엔탈 한 게 개인 맞춤형인가 보다. 이 정도면 요즘 저승 보기 괜찮은걸. 저승이라는 것만 빼면.
“죽긴 누가 죽었다고 그러세요? 물론 죽을 뻔 하긴 하셨지만, 이렇게 멀쩡히 깨어나셨는데!”
“······네?”
내가 안 죽었다고?
“정말 기억 안 나시는 거예요? 저를 평생 보셨으면서?”
기억하고 말고 할게 없이 너무 초면인데?
자신을 사월이라 부른 소년이 당황스러운 얼굴로 내 몸을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했다. 덩달아 내 시선도 따라 움직였다.
“······어?”
뭐야, 손이 왜 이렇게 쪼그매?
순간 느껴지는 이질감에 나는 급히 거울을 찾았다.
“······엉?”
거울 속엔 낯선 소년이 또렷한 눈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여자라고 해도 믿을 만큼 선이 고운 얼굴. 흰 피부에 홀릴 듯 깊은 눈을 가진 소년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이건 또 누구야?!’
나는 입을 떡 벌린 채 볼을 꼬집었다. 예상과는 다른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꿈도 아니야?
이게 꿈도, 내가 죽은 것도 아니면···.
‘그럼 뭐야? 설마 나······. 남의 몸에 빙의라도 했다는 거야?’
“나흘 만에 깨어나셨어요. 기억은 아직 몸이 성치 않아 그러실 수 있으니, 너무 염려 마세요. 제가 있잖아요.”
나는 사월이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나, 내가 누구라고요?”
“공자님은 사천당가 가주님의 막내 아들이십니다. 올해로 열다섯이 되셨고요.”
아니, 잠깐만. 뭐···. 어디?
·········무협 소설에 나오는 그 사천당가?
‘·········이런 미친···.’
지나치게 상식 밖의 일이 벌어지면 응당 말문이 막히는 법이다. 더 할 말을 찾지 못한 나는 입을 다물었다. 죽은 줄 알았던 내가 강호가 실존하는 세상에서 눈을 떴다는데, 달리 무슨 말을 하겠는가.
“가지가지 하네, 진짜······.”
게임 캐릭터한테도 맵 고를 수 있는 기회는 주지 않나? 왜 나는 안 줘. 살려달라고는 했지만 그게 중원 무림에서 살려달라는 뜻은 아니었다고요.
만일 세상에 신이 존재한다면, 나한테 악감정이라도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사천당가 소공자 몸에 빙의···를 했다고. 소설이나 영화에 나오던 그거?'
빌어먹게도 말이 안 되는 저 두 글자가,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설명할 유일한 두 글자라니.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이 터졌다.
“···아, 아하하하! 아하하!”
“공자님? 괜찮으세요?”
짧은 시간 동안 내 머릿속은 전쟁이라도 난 듯 들썩였다. 어이가 없었다가, 화가 났다가, 긴장, 현실부정, ···체념하기까지.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대체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는거지?
온갖 불행들로 가득했던 지난 삶은 살얼음판 같았다. 한 걸음만 잘못 내딛어도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을 그런 삶. 그래서 늘 조심했다. 언젠가는 내게도 좋은 날이 올거란 기대가 있었으니까.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좋은 날은 오지 않았고, 나는 허망하게 죽어버렸다.
그런 생각이 들자 못내 억울해졌다.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이게 기회일지도 몰라.’
기다리는 건 대체로 내게 오지 않는다. 그걸 이제야 깨달았다. 원하는게 있다면 쟁취해야 한다. 갖고 싶다면 차지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놀랍게도 머릿속이 맑아졌다. 내가 뭘 해야할지가 선명했다.
새로운 인생을 강호 무림에서 시작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아무렴 어떤가. 나는 죽지 않고 살아서 두번째 기회를 얻은 셈이다.
‘뭐, 명문세가 도련님이라면 2회차의 시작으로 나쁘지 않네.’
고작 이 정도로 좌절할 성격이었으면 지금까지 못 살았겠지. 나는 탱탱볼처럼 세게 내려치면 더 세게 튀어 오르는 성격이었다.
그러니까 이게 무슨 말이냐면.
대체 어떤 운명이 내 인생을 진창에 처박다 못해 강호 무림에까지 처박았는지는 몰라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라는 얘기다.
21세기 현대인이 험난한 강호에서 얼마나 잘 먹고 잘 살수 있는지 내가 보여줄 테니까.
“사월아, 나 좀 도와줄래?”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
모든 역사의 시작은 무릇 개인적이고 사소하지 않던가. 내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대단한 복수심도, 엄청난 야망도, 끈질긴 집착도 시작이 아니었다.
억울함.
이게 내가 강호를 정복하게 된 첫 번째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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