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찰칵찰칵!
수백 개의 카메라가 나를 찍고 있었다. 신기했다.
하지만 엄마는 커튼을 쳤다.
촤악!
두꺼운 암막 커튼이 카메라 플래시와 셔터음까지 가렸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엄마는 허리를 숙여 나를 바라봤다.
인상을 찡그린 내 미간을 엄지손가락으로 꾹 눌러 펴며 말했다.
“인상 쓰지 마.”
“왜?”
“사람들이 흉봐.”
고개를 끄덕였다.
인상을 풀자, 엄마가 한마디 덧붙였다.
“나가서도 인상 쓰면 안 돼. 울거나, 슬픈 표정도 하면 안 돼.”
“그럼 웃는 건?”
“아무 표정 짓지 마.”
“왜?”
대답이 한 박자 늦었다.
“······사람들이 흉봐.”
울어도, 웃어도 왜 흉을 보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내 손을 잡는 엄마의 얼굴이 슬퍼 보여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응. 잘한다.”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은 표정으로 엄마를 바라봤다.
엄마가 잘했다고 칭찬했다. 칭찬을 듣자 배시시 웃었지만, 곧 정신 차리고 표정을 고쳤다.
“엄마, 아빠 닮아서 우리 아들도 연기에 재능있구나.”
잘했다며 이마에 닿은 입술에서 쪽 소리가 났다.
다시 웃음이 나왔지만, 꾹 참았다. 나는 엄마 아빠 아들이니까.
마지막까지 내 얼굴과 표정, 옷차림을 점검한 엄마가 마지막으로 자신의 표정을 바꿨다.
슬픔을 숨기자, 날카로운 눈매가 드러났다. 다정한 입술을 다물자 냉랭한 표정으로 변했다.
그런 엄마가 무서워 손을 꼭 잡았다.
괜찮다는 듯. 내 손등을 다독이는 엄마의 손이 따뜻해서 나는 안심할 수 있었다.
곧이어 엄마가 현관문을 열었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셔터음이 빗소리처럼 끊임없이 터졌다. 대포처럼 큰 카메라가 우리를 향했다.
우리가 나오길 기다린 것처럼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에 찡그려지려는 인상을 간신히 폈다.
‘아무 표정 짓지 마. 아무 표정 짓지 마. 아무 표정 짓지 마.’
엄마가 했던 말을 되새기며, 엄마의 손을 꽉 잡았다.
차가 주차된 곳으로 걸어가자, 사진 찍던 사람들이 엄마를 불러 세웠다.
“미국에서 비밀 결혼식을 했다는 게 사실입니까? 언제 결혼하셨습니까?!”
“왜 결혼 사실을 숨기셨습니까? 언제까지 숨기실 생각이었습니까?”
“제프 로비치 감독이 말했던, 혼전임신이 사실입니까?”
“아이는 미국에서 낳았다고 하던데 군대 문제와 관련 있습니까?”
“앞으로도 작품 활동을 이어갈 생각입니까?”
“남편이 있는 미국으로 넘어가실 겁니까?”
사람들이 집요하게 쫓아왔다.
엄마와 나는 앞만 보고 걸어갔다.
“지금!”
모든 질문을 무시하고 자동차에 타려는 순간.
유독 크고 날카로운 질문이 엄마의 발목을 잡았다.
“함께 나온 아이가, 친자식은 맞습니까?!”
대답을 듣기 위해 엄마를 쳐다보던 시선이 내게 꽂혔다.
찰칵! 찰칵! 찰칵!
강렬한 수백 쌍의 시선.
아무것도 못 하고 굳었다.
그런 나를 누군가 잡아당겼다. 엄마였다.
“듣지 마. 저 사람들이 하는 말 들을 필요 없어.”
“······.”
“정수야, 아무것도 듣지 말고, 아무 표정도 짓지 마.”
엄마의 손에 이끌려 차에 올라탔다.
끝까지 차에 달라붙은 사람들이 셔터를 눌러대며, 사진을 찍었다.
차가 출발하자 사람들이 점점 작아졌다. 빗소리 같았던 셔터 소리도 줄어들었다.
“······.”
나는 백미러로 작아지는 그들을 한참 동안 들여다봤다.
“이제 괜찮아. 우선 아빠 있는 곳으로 가자.”
“어휴, 표정 좀 봐. 넋이 나갔네, 나갔어. 괜찮은 거 맞아?”
“정수, 괜찮아? Don't worry. It’ll be fine.”
엄마도, 공항에서 만난 아빠도, 주변 사람들도.
모두 나를 걱정했지만.
“응. 괜찮아.”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카메라가 여러 대 있으면 예쁘구나’라는 생각에 푹 빠져있었다.
* * *
그 후로 10년이 지났다.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탑배우 비밀 결혼’이라는 뉴스거리도 다 식어갔을 때쯤.
기자에게 그렇게 시달렸음에도 어머니는 결혼 사실을 공표한 후. 카메라 앞에 서서 연기하셨고.
비밀이 아닌 공식에 기사들은 다른 가십거리를 찾아 떠났다.
어머니, 아버지는 여전히 잘나가는 스타였다.
나?
나는 그냥 평범한······. 아역 배우다.
“쓰읍. 마스크랑 목소리도 괜찮은데······. 연기는 평범하지?”
“얼굴이 너무 잘생겨도 문제네요. 연기가 눈에 안 들어와요.”
“그렇다고 엑스트라로 써먹기엔······.”
“저 얼굴이 화면에 잡히는데 주연이 눈에 들어오겠어요?”
“그건 그래.”
“본인이 연기에 열정만 있었어도 좋았을 텐데. 별로 흥미가 없으니, 원.”
연기 실력은 괜찮았다.
하지만 외모가 워낙 뛰어난 탓에 연기 실력이 평가 절하된 경우였다.
내 평판에 불만은 없다.
애초에 연기에 큰 욕심이 없었다.
아버지의 아역 배우가 필요해 처음 연기를 시작해.
이후, 어머니 어린 시절을 빼닮은 얼굴로 화제를 모았다.
내가 처음으로 우는 연기를 했을 땐, 최고 시청률을 찍기도 했다.
드라마, 영화, 연극은 물론, 아역이 필요한 광고 모델 선호도 1위는 늘 나였다.
연기를 그만둘 이유도 딱히 없었다. 돈을 벌 수 있어서 나름대로 만족스러웠다.
특히 팬이라며 사인해달라고 다가오는 사람들이 좋았다. 관심받는 게 즐거웠다.
“흠. 정수 씨, 그럼 이런 배역은 어때.”
“오! 괜찮네요! 마스크 그대로 살릴 수 있고, 지금까지 맡아본 적 없어서 신선하고!”
“그런데······. 연습이 좀 필요하긴 할 것 같아. 내가 괜찮은 사람 소개해 줄게.”
열정적이진 않지만, 꾸준히 캐스팅이 들어오는 작품에 들어갔다.
그러다 찾았다.
“이거, 아이돌 역할이거든.”
인생 캐릭터.
나는 그 배역에 속절없이 빠져들었고.
곧, 연기가 아니라 그 자체가 되고 싶었다.
* * *
-무대 올라갈게요!
-스탠바이!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겹쳐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인이어를 끼고 있으니 당연한가?
다시 한번 인이어를 고정하고, 흘러나오는 지시에 집중했다.
-10! 9! 8! 7!
무대 위 전광판에 숫자가 하나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저 숫자가 ‘1’로 바뀌는 순간이 내가 무대를 밟는 순간이다.
첫 등장의 임팩트를 위해 많은 준비를 했다.
리프트를 타고 뛰어올라갈까?
관객석에 숨어 있다 튀어나올까?
댄서처럼 등장한 다음 마이크를 잡을까?
카운트다운이 끝나도 나가지 않고 애태울까?
여러 가지 선택지 중.
‘전망 좋네.’
천장에서 무대로 뛰어내릴 예정이었다.
-3!
매니저는 절대 안 된다고 반대했지만, 나는 마음에 들었다.
-2!
수많은 불빛.
나를 부르는 목소리.
나를 찍으려 대기 중인 카메라.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찾고, 나를 부르짖는다.
그 사실이 짜릿했다.
-1!
훅!
나는, 나를 찾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뛰어내렸다.
“와아아아아아아!”
비명과 경악이 섞인 소리가 점차 가까워지자, 내 얼굴에 웃음이 짙어졌다.
어머니의 결혼 사실이 밝혀졌을 때.
집 앞에 빼곡하게 몰려든 카메라와 기자들을 볼 때, 어렴풋이 느꼈다.
난 관심받는 게 좋다.
댓글(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