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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갑부 1권 (1)

2015.08.13 조회 47,283 추천 413


 序
 
 명사갑부(名士甲富)란 명망이 널리 알려진 으뜸가는 부자를 이르던 말이다.
 
 제1권. 낭중지추
 
 1. 현우의 꿈
 
 지이잉-
 목재를 자르는 톱기계 소리.
 뚝딱. 뚝딱.
 못을 박는 망치질 소리.
 태양 목공소는 커다란 규모답게 늘 시끌벅적했다.
 알맞은 크기로 재단된 목재가 사방에 쌓여있고, 바닥에는 잘려서 버려진 자투리 나뭇조각, 톱밥, 못쓰게 되어서 버려진 못 등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점심을 먹은 지 어느새 두 시간이 넘게 지났지만, 사람들은 좀처럼 쉴 줄을 몰랐다. 워낙에 잘 돌아가는 목공소라서 밀린 일거리가 산더미였다.
 덕분에 밖은 아직 늦봄인데 목공소 안에만 한여름이었다. 흘러내린 땀에는 톱밥 먼지가 잔뜩 엉겨 붙어 있었다.
 그래도 직원들은 즐거웠다.
 목공소 사장은 통이 크고 마음씨도 좋아서 일거리가 많은 만큼 월급도 많이 주었다. 직원들도 특별히 모난 사람이 없어서 서로 농담도 주고받으며 작업을 즐겼다. 필리핀 출신 노동자 세 명도 하나같이 착하고 성실했다.
 덕분에 태양 목공소의 분위기는 직장이라기보다는 가족에 가까웠다.
 “어이, 김씨. 이것 좀 봐줘.”
 “헤이, 엠바. 그쪽 잠깐만 잡아줘.”
 필요한 일이 있으면 스스럼없이 서로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많이 불려 다니는 사람이 있었다. 목공소에 들어온 지 1년밖에 안 된 신출내기 청년이었다. 다들 성씨로 불리는데 유독 이 청년만 이름으로 불렸다.
 “현우야, 저쪽 나무좀 가져다줘.”
 “예, 형님.”
 “현우야, 이것 좀 같이 들자.”
 “잠깐만요, 금방 갈게요.”
 목공소에서 현우는 홍길동 같은 존재였다. 자신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목공소 안을 누비고 다녔다.
 게다가 불려 다니는 이유도 다양했다. 간단한 보조작업이나 힘쓰는 일은 물론이고 뭔가 일이 터졌다 하면 무조건 현우부터 찾는 것이 이곳 사람들의 습관이었다.
 “기계가 왜 이렇게 힘이 없어? 현우야.”
 “컴퓨터가 이상하네. 현우야.”
 “헤이 현우, 캔 유 헬프 미?”
 현우는 해결사였다. 현우가 손을 대서 안 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자신이 맡은 일 처리하랴, 직원들 잔심부름 도맡아 하랴. 덕분에 현우는 목공소 안에서 누구보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귀여움을 독차지할 수밖에.
 특히 사장 윤종언의 눈에는 그런 현우가 예쁘게만 보였다.
 윤종언이 분주하게 불려 다니는 현우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쯧쯧, 저러다가 생병 나겠군. 이봐, 다들 좀 쉬었다가 하지. 사람들이 어찌 그리 일 욕심이 많아?”
 그제야 사람들이 시계를 보았다.
 “어이쿠,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나?”
 “아, 목마르다. 현우야, 음료수 한 잔씩 쫙 돌려봐라.”
 “예, 형님.”
 현우가 재빨리 냉장고로 달려갔다. 사장 윤종언이 그 모습을 보며 직원을 나무랐다.
 “그러다 애 잡겠네. 작작 좀 부려 먹어. 현우보다 어린 엠바도 있고, 이만도 있는데 왜 맨날 현우만 괴롭혀?”
 “그런가요? 하하, 참 이상하단 말이야. 목공소에만 오면 현우라는 이름이 입에 착착 달라붙어.”
 “김 씨도 그런가? 나도 입만 열면 저놈 이름이 튀어나온단 말이야. 이것도 병이지. 허허.”
 그러는 사이 현우가 돌아왔다. 직원들에게 종이컵을 돌리며 시원한 탄산음료를 따라주었다.
 “너도 좀 마셔라.”
 “형님들부터 드셔야죠.”
 직원들에게 음료수를 모두 돌리고 나서야 현우도 한 컵 가득 따라서 마른 목을 축였다.
 직원들이 다들 현우를 바라보았다.
 음료수를 넘기는 목젖이 꿀꺽꿀꺽하며 힘차게 움직였다. 현우가 얼마나 바삐 움직였는지 알고 있었기에, 그 힘찬 움직임만 봐도 속이 다 후련해지는 느낌이었다.
 “아, 시원하다.”
 현우가 팔등으로 입을 쓱 닦아냈다. 그러고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닥에 어지러이 널려있는 자투리 나뭇조각과 못 등을 청소하는 것이었다.
 보다 못한 사장 윤종언이 현우를 만류했다.
 “됐어. 그건 나중에 치우고 숨이나 좀 돌려.”
 “괜찮아요. 이거 그냥 두면 잘못 밟고 넘어져요. 시간 날 때 빨리빨리 치워야죠.”
 “허허, 그놈 참.”
 윤종언이 실소를 터뜨렸다. 그러면서 바닥을 치우고 있는 현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이 서른 살. 눈썰미와 손재주를 타고난 놈이었다. 목공소에 들어온 지 1년밖에 안 된 놈이 거의 모든 기계를 자유자재로 다루고 수리까지 척척 해내고 있었다.
 현우의 가장 큰 장점은 성실함이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잠시도 쉴 줄을 몰랐다. 누가 보면 악덕 기업주 만나서 개고생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온몸에 잔근육이 가득했다. 전형적인 막노동자 근육이랄까?
 키가 큰 사람은 싱겁다고들 말하는데 현우는 예외였다. 180cm가 훨씬 넘는데도 야무지기가 이를 데 없었다.
 ‘뭐가 되어도 크게 될 인물이야.’
 그래서일까? 이곳에 와준 것이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쓰럽게 여겨지기도 했다.
 ‘좋은 부모 만나서 제대로 배우기만 했어도…….’
 현우는 어려서부터 안 해본 일 없다고 했다. 현우가 이야기하기를 꺼려서 집안 사정을 제대로 알지는 못했지만, 윤종언은 그 이유를 가난으로 생각했다.
 그것이 아니면 현우가 학업을 포기하면서까지 저토록 일에 악착같이 매달릴 이유가 없었다.
 덕분에 현우는 직업 만물박사가 되었지만, 그 때문에 고졸이라는 꼬리표도 달게 되었다.
 대한민국 기업체에서 고졸과 대졸의 차이는 컸다.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하지만 이곳 목공소에서 그깟 학력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본인이 열심히만 하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
 사실 윤종언은 올해를 끝으로 태양 목공소를 다른 사람에게 넘길 생각이었다. 돈도 벌 만큼 벌었고, 자식도 키울 만큼 키웠으니 이제는 쉴 때가 되었다.
 그런데 계획이 바뀌었다. 사람 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버린 것이다.
 윤종언이 보기에 현우는 크게 될 인물이었다.
 성실성이나 눈썰미, 손재주 따위가 문제가 아니었다. 사실 그것은 현우가 가진 장점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다.
 현우의 가장 큰 장점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재주였다.
 현우는 만나는 모든 사람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사장 윤종언은 물론이고, 조금은 까칠한 김 씨나 왕년에 조폭이었다는 박 씨도 현우의 말이라면 깜빡 죽었다.
 단골식당 아주머니도 현우가 오면 자기 아들 온 것처럼 반겼고, 평소에 거래 한 번 없었던 이불가게 사장님조차도 현우만 지나가면 가계 밖으로 나와서 ‘이제 퇴근하는가?’ 하며 인사를 건넸다.
 참으로 묘한 매력이었다.
 그런 인물이라면 누군가가 조금만 뒷받침해준다면 금방 자신의 환경을 극복하고 훨훨 날아오를 수 있을 것이다. 평생의 손때가 묻은 태양목공소를 누군가에게 넘겨야 한다면 이왕이면 현우 같은 인재를 키워서 물려주고 싶었다.
 윤종언이 피식 웃었다.
 ‘후훗, 저놈 때문에 나도 못 쉬게 되었군. 빨리빨리 가르쳐야 나도 편히 쉬지.’
 윤종언이 상념을 털어내듯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손에 목장갑을 끼고 먼지를 털어내듯 손뼉을 짝짝 쳤다.
 “쉴 만큼 쉬었으니 다시 움직여볼까?”
 다른 직원들도 잡담을 그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목공소는 다시 시끄럽고 분주하게 돌아갔다.
 
 PM 6:00
 “정리하고 밥 먹으러 갑시다.”
 사장 윤종언의 외침에 직원들이 작업을 마무리했다. 각자 주변에 흩어진 목재들을 정리하고, 바닥에 너저분하게 버려진 쓰레기들을 분리해서 치웠다.
 현우가 틈틈이 치워놓았는데도 워낙 작업량이 많아서 쓰레기가 산더미였다. 다들 빨리 집에 갈 생각에 손을 분주히 놀렸다.
 특히 김 씨의 손놀림이 바빴다. 군대 간 아들의 첫 번째 휴가 날이었다. 지금쯤이면 집에서 김 씨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어이쿠, 이런.”
 서두르다가 제법 큰 나무토막 하나를 떨어뜨렸다. 하필이면 전선을 이어붙인 곳을 찍듯이 떨어졌다. 태양 목공소의 역사만큼이나 전선도 무척 낡아 있었다.
 놀란 김 씨가 전선을 확인했다. 좀 찍히기는 했지만 별다른 문제는 없어 보였다.
 다시 나무토막을 주워서 구석에 쌓아놓았다.
 뒷정리를 마치고, 샤워로 온몸을 씻어낸 후 옷을 갈아입었다. 그것만으로도 피로가 웬만큼 가시는 듯했다.
 “집에 갈 사람은 가고, 저녁 같이 먹을 사람은 따라와. 현우도 같이 먹을 거지?”
 “당연하죠.”
 직원들이 목공소를 나섰다.
 목공소 한쪽 구석의 낡은 전선. 나무토막에 찍힌 이음새 부위는 아까부터 천천히 뜨거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저녁 메뉴는 석갈비였다. 윤종언과 현우를 포함한 다섯 명이 단골식당으로 들어가서 함께 둘러앉았다.
 노동자들의 저녁에 소주가 빠질 수가 없었다. 윤종언이 소주병을 들고 현우에게 내밀었다.
 “한잔할 텐가?”
 “아뇨. 밤에 운전해야 합니다. 대신 제가 한잔 드릴게요.”
 “좋지.”
 현우가 윤종언을 시작으로 동료직원들 잔을 채워주었다. 현우도 사이다 한 병을 시켜서 잔을 채웠다.
 “고생들 했어.”
 윤종언이 한잔 쭉 들이켜고 김치 쪼가리 하나를 안주로 골라 먹었다. 그러면서 툭 던지듯 현우에게 물었다.
 “오늘도 대리운전 하러 가는 건가?”
 “예.”
 “운전은 까딱 잘못하면 인생 한 방에 훅 가는 거야. 특히 새벽에 졸음운전은 위험해.”
 이상한 일이었다. 현우와 마주앉으면 ‘그러지 말아야지.’ 생각하는데도 자꾸만 잔소리가 나왔다.
 
 “저는 약속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식사를 마친 현우가 일어났다. 사장 윤종언과 직원들은 아직 밥도 남고 술도 남아있었다.
 “그래, 운전 조심하고.”
 식당을 나선 현우는 다시 목공소로 향했다. 목공소 옆 구석에 12인승 회색 승합차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현우의 애마였다.
 현우와 함께한 세월만 어느새 6년이었다. 그나마도 중고차로 구입한 것이라서 주행거리는 17만km가 훨씬 넘었다.
 하지만 워낙 관리를 잘한 덕분에 겉도 멀쩡했고, 엔진 소리도 나이에 비해서는 제법 부드러웠다.
 “오늘도 잘 부탁한다.”
 깔. 깔. 깔. 까르릉-
 승합차가 현우의 부탁에 화답했다. 굽어진 허리를 펴는 듯한 구수한 엔진 소리를 내뿜었다.
 하지만 현우는 차량을 출발시키지 못했다. 뭔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찜찜하면서도 불안했다. 마치 목공소나 식당에 뭔가 중요한 물건을 두고 나온 느낌이었다.
 “뭘 빼먹었나?”
 호주머니를 뒤지면서 꼼꼼하게 확인해보았다. 하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오늘 일을 좀 약하게 했나?”
 아무래도 그래서인 듯했다.
 현우는 뼈마디가 노곤해지도록 일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만약 그렇지 못한 날이 있으면 마음이 이렇게 불안했다.
 “오늘은 대리운전이라도 빡세게 해야겠군.”
 현우가 차량을 출발시켰다. 회색 승합차가 목공소에서 부드럽게 멀어졌다.
 목공소 안은 그때까지도 조용했다. 하지만 바닥에 깔린 낡은 전선은 자꾸만 뜨거워져 가고 있었다.
 
 직원들과 헤어진 태양목공소 사장 윤종언이 허름한 선술집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두툼한 뿔테안경을 쓴 중년인이 벌떡 일어서며 윤종언을 반겼다.
 “형님, 여기입니다.”
 “직원들 저녁 사주고 오느라 좀 늦었네. 많이 기다렸나?”
 “저도 방금 왔습니다. 한잔하시죠.”
 윤종언이 중년인의 술잔을 받았다.
 “그런데 공사가 다망하신 양반이 어쩐 일인가?”
 “답답해서요.”
 “건실한 중견기업 사장이 답답할 게 뭐가 있어?”
 “딸아이 혼기가 가득 차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마땅한 사윗감 찾기가 쉽지 않네요.”
 중년인이 넋두리하듯 고개를 흔들었다. 그 모습에 윤종언이 껄껄 웃었다.
 “으허허, 사윗감 찾는 게 어려운 게 아니라 사업 이어받을 후계자 찾는 게 어려운 것 아닌가?”
 “그렇긴 하죠. 자식이라고는 딸아이 하나뿐이니 사위라도 잘 삼아서 회사를 물려받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봐둔 사람이 둘이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둘 다 성에 차질 않아요. 그나마 우리 민혜가 미국에서 데려온 친구에게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미국 컬럼비아대학 출신의 수재라고 하더군요.”
 “자네 회사에 입사하는 건가?”
 “예. 무조건 바닥부터 시작해야죠. 그런데 형님께서는 올해만 하고 목공소는 접으시는 겁니까?”
 “생각이 바뀌었어. 몇 년 더 하려고.”
 “갑자기 왜요?”
 “목공소를 물려줄 후계자를 찾았어. 그놈을 가르치려면 몇 년 더 있어야 할 것 같아.”
 순간 중년인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그래요? 나이가 몇인데요? 아직 총각인가요?”
 김종언은 중년인의 머릿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듯했다. 컬럼비아대학 출신의 후보로도 모자라서 현우조차도 딸아이의 사윗감 후보로 삼고 싶은 것이다.
 사실 윤종언도 소개해주고 싶긴 했다.
 하지만 중년인은 학력에 대한 고정관념이 강했다. 그래서 딸아이를 외국으로 유학 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사윗감도 가능한 학벌이 좋은 사람이기를 바라고 있었다.
 윤종언이 피식 웃으며 손을 털어 만류했다.
 “관심 끄게, 그 친구는 고졸이야.”
 “아, 그렇군요.”
 고졸이라는 말 한마디에 중년인의 반짝이던 눈빛이 가라앉았다.
 그 모습에 윤종언은 조금 실망이었다. 그것이 중년인의 방식임을 잘 알면서도 자꾸만 잔소리를 해주고 싶었다.
 “이보게, 박 사장.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다 갖춘 사람은 세상에 없다네. 포기할 건 포기해야지. 내가 자네라면 무엇보다도 딸아이의 의견을 우선으로 생각하겠네. 막말로 기업이 중요한가? 딸아이의 행복이 중요한가?”
 중년인이 피식 웃었다.
 “명심하겠습니다, 형님.”
 “헌데 사업 확장은 잘 되고 있나? 너무 공격적으로 하는 것 아니야?”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게 운과 때라는 건 형님도 잘 아시잖아요. 지금이 기회…….”
 중년인이 잘 물어주었다는 듯 줄줄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하지만 정작 질문을 던진 윤종언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현우 이놈을 어떻게 가르치지? 대리운전 같은 것으로 낭비할 시간이 없는데.’
 
 * * *
 
 다음 날 아침.
 현우가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현우의 집은 17평짜리 서민아파트의 1층. 당장에라도 허물어질 듯 낡고 허름한 아파트였지만, 이런 보금자리 하나 자신의 이름으로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몰랐다.
 물론 15년 전의 삶과 비교한다면 지옥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비참한 삶이다. 그때는 성공한 사업가인 아버지 덕분에 무엇 하나 부족함 없이 살았으니까.
 그런데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아버지의 사업은 정유사에게 핵심기술을 빼앗기면서 하루아침에 무너졌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교통사고까지 당해서 부모님 모두 건강을 잃었다.
 그때 부모님 모두 삶을 포기했다. 함께 죽자며 집안에 연탄을 피워놓고 잠을 자려고까지 했다.
 하지만 현우는 포기할 수 없었다.
 죽는 게 너무 두려웠다. 도저히 죽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럴 용기와 각오로 세상을 살아간다면 이루지 못할 게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게다가 그런 말씀을 들려준 사람이 바로 아버지 당신이 아니던가?
 현우는 부모님을 설득했다.
 “지금 죽으나 며칠 더 살다 죽으나 다를 게 없잖아요. 죽을 각오로 살아보고 싶어요. 제게도 기회를 주세요.”
 당시 현우의 나이는 겨우 중학교 2학년.
 그 어린 소년의 말에 부모님은 다시 희망을 품었다.
 아버지는 척추를 심하게 다쳐서 일할 처지가 못 되었지만, 어머니는 그나마 움직일 수 있어서 이를 악물고 반찬가게를 다니기 시작했다. 사고 이후 찾아온 당뇨병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결근하지만, 손맛이 워낙 좋아서 10년째 직장을 지키고 있다.
 현우도 그때부터 소년가장이 되었다. 돈을 벌기 위해서 동분서주 뛰어다녔다. 부모님과 동반자살 하는 것보다는 일하다가 쓰러져서 죽는 게 낫다는 생각에 죽을 둥 살 둥 일했다.
 덕분에 비록 초라하지만, 현우의 이름으로 집도 장만했다. 이곳저곳 주식도 제법 사놓았고, 통장에도 잔액이 적지 않았다.
 대리운전을 마치고 집에 들어온 시간은 새벽 세 시. 그리고 출근 시간은 아침 일곱 시.
 겨우 세 시간 조금 넘게 잔 것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이런 삶이 몸에 익숙해져서 피곤한 줄을 몰랐다.
 현우가 가뿐한 마음으로 출근했다. 하지만 현우는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태양목공소는 텅 비어있었다. 시커멓게 타버린 건물의 잔해와 모락모락 피어나는 연기뿐이었다.
 한쪽에서는 사장 윤종언을 비롯한 직원들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현우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실의에 빠진 윤종언을 한참 동안 위로하다가 그냥 집으로 돌아오는 것뿐이었다.
 
 현우는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서 곳곳에 이력서를 넣었다. 그러면서 남는 시간은 매일같이 심마니 산행을 다녔다.
 현우의 심마니 산행은 고등학교 때 우연히 시작되었다.
 고등학교에 갓 들어간 현우는 훤칠한 키와 각 잡힌 남성스러운 얼굴 덕분에 이따금 의상모델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그때 만난 의상모델 아저씨 중 한 명이 심마니였다. 촬영을 기다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현우의 사정 이야기를 듣고는 대뜸 심마니 아르바이트를 권했다.
 “남는 시간 활용해서 돈 버는 데는 심마니만 한 것도 없지. 조금 위험하긴 하지만 말이야.”
 “돈을 많이 벌 수 있나요?”
 “그거야 운이지. 나 같은 경우는 주말에만 다니는데 한 달에 200만 원은 넘게 벌지.”
 “와, 주말에만 다니는데요? 저도 아저씨 따라다니면서 그것 좀 배우면 안 될까요?”
 그때부터 의상모델 아저씨를 따라다니며 아마추어 심마니가 되었다. 그리고 10년이 넘는 경험이 쌓이면서 지금은 프로 심마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전문가가 되었다.
 실제로 산삼이나 도라지, 더덕 등속을 캐다 팔면 웬만한 직장 다니는 것보다도 벌이가 훨씬 좋았다.
 그러다가 윤종언에게서 전화가 온 것은 목공소가 화재로 모두 타버리고 난 사흘 뒤였다.
 - 바쁘지 않으면 잠깐 만나세.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윤종언이 기다리는 곳은 목공소 인근의 지하다방이었다.
 현우가 자리에 앉았다. 아가씨가 차를 내왔다. 그런데도 윤종언은 좀처럼 입술을 열지 않았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분위기도 더욱 무거워졌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고 나서야 윤종언이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그런데 알아듣지 못할 말이었다.
 “내가 너무 큰 욕심을 부렸던 게야.”
 “예? 욕심…… 이라고요?”
 세상에 욕심 없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다만 그 욕심이 얼마나 크냐는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현우가 아는 윤종언은 욕심이 적은 사람이었다. 욕심 때문에 일을 그르칠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목공소가 불탄 것이 윤종언의 욕심과 무슨 관계란 말인가?
 하지만 윤종언은 그 말만 하고는 다시 입술을 다물었다. 대신 현우의 얼굴만 지그시 바라보았다.
 ‘자네 같은 인재를 내 우물에 담으려고 했다니. 내가 잠시 정신이 나갔던 것이지.’
 “……?”
 ‘자네는 이런 작은 물에 있을 사람이 아니야. 더 큰 곳으로 가야지. 내 욕심이 너무 커서 천벌을 받은 게야.’
 “사장님, 괜찮으세요?”
 윤종언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현우는 그런 윤종언이 걱정되었다. 아무래도 화재 때문에 마음의 상처가 컸던 모양이다.
 하긴, 당연한 일이었다. 평생을 함께한 목공소가 아니던가? 그런 곳이 잿더미로 변해버렸으니 제정신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윤종언은 사실 목공소의 소실에는 그리 충격을 받지 않았다. 물론 아쉬움은 있었지만, 어차피 현우가 아니었다면 올해를 끝으로 문을 닫을 곳이었다.
 윤종언이 슬픈 것은 이별 때문이었다. 이제는 직원들과 헤어질 때가 된 것이다. 특히 현우와의 이별이 아쉬웠다.
 윤종언이 품 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이게…… 뭡니까?”
 “퇴직금이다.”
 “예에?”
 현우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하지만 윤종언은 가만히 듣기만 하라는 듯 말을 이어나갔다.
 “다른 사람들도 챙겨주긴 했지만, 너한테 좀 더 넣었다. 넌 다른 사람의 세 배 몫을 일했으니 더 받는 게 당연해.”
 “그래도 이건…….”
 “어른이 주는 건 사양하는 게 아니다. 그냥 넣어둬. 그래야 나도 마음이 편해.”
 윤종언이 현우의 말허리를 잘랐다. 워낙에 단호한 말투라서 현우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너 아우름이라고 알지?”
 “가구 만드는 회사 말씀이신가요?”
 윤종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우름이라면 현우도 잘 알았다. 비록 중소기업이지만 가구 분야에서는 손꼽힐 정도로 인지도가 높았고, TV 광고에서도 심심찮게 나오는 회사였다.
 “요즘에 거기에서 신규직원을 채용한다더구나. 어떠냐, 거기에서 한번 일해 볼 생각이 있냐?”
 “아우름에서요?”
 아우름 같은 번듯한 회사라면 평생직장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고졸인 현우에게 그게 가능한 일이겠는가?
 “내가 이 바닥에 잔뼈가 굵어서 그 회사 사장을 조금 안다. 네가 생각만 있다면 내가 추천해주마.”
 그렇지 않아도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현우였다. 퇴직금보다 훨씬 가치 있고 고마운 소리였다. 현우의 눈이 기대감으로 커졌다.
 “감사합니다.”
 “그리 큰 기대는 하지 마라. 채용이야 되겠지만 고졸이라서 월급은 많지 않을 테니까.”
 “그런 건 상관없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현우가 윤종언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윤종언은 그런 현우를 바라보며 순간 망설였다.
 ‘이 아이에게 사장 딸의 이야기를 해주는 게 좋을까?’
 가능성은 희박했지만, 어쩌면 좋은 인연으로 맺어질 수도 있었다. 아니, 눈이 제대로 박힌 사람들이라면 현우만 한 사윗감이 없다는 것을 금방 알아볼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입을 다시 다물었다.
 ‘그래, 인연이라면 내가 나서지 않아도 알아서 잘 맺어지겠지.’
 
 * * *
 
 ㈜아우름에서 연락이 온 것은 사흘 후였다. 면접 날짜가 정해졌으니 늦지 않게 와달라는 내용이었다.
 면접은 그로부터 닷새 후였다.
 열흘이 넘게 실업자로 있었지만, 현우는 오히려 직장을 다닐 때보다 더욱 바쁘게 살았다. 낮에는 심마니 산행을 다녔고, 늦은 새벽까지 대리운전을 뛰었다.
 그리고 면접날.
 ㈜아우름의 공장 겸 사무실은 안산시 외곽에 있었다. 현우의 집에서 대중교통만으로 1시간이면 충분히 이동이 가능한 거리였다.
 면접장에 도착하자 꽤 많은 사람이 와있었다.
 ‘휘유, 마흔 명이 넘네.’
 서류심사를 통해서 1차로 걸러냈으니 실제 지원자는 이보다 훨씬 많았을 것이다.
 반면 채용인원은 겨우 세 명이었다. 아무리 중소기업이라고 해도 번듯한 기업은 역시 경쟁률이 높았다.
 면접은 한 번에 두 명씩 치러졌다.
 면접시간이 제법 길었다. 한 팀 면접을 보는데 무려 10분이 넘게 걸렸다. 게다가 면접도 까다로운 모양이었다. 면접실을 나오는 지원자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
 다음 팀도 마찬가지였다. 면접실만 들어갔다 나오면 다들 진땀을 흘리거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리 담담하려고 해도 그 모습을 보니 자꾸 긴장되었다.
 “장현우 씨, 오상호 씨, 들어오세요.”
 ‘괜찮다. 별것 아니다. 윤 사장님께서 말씀해주셨을 테니까 잘 될 거다.’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면접실로 들어갔다. 그러면서 함께 들어가는 오상호라는 면접대상자를 흘끔 바라보았다.
 뽀얀 피부가 유달리 눈에 띄는 귀공자 같은 인상이었다. 테가 가는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그것 때문인지 무척이나 샤프하면서도 지적인 느낌이었다.
 면접관은 다섯 명. 중년인이 세 명이었고, 현우처럼 젊은 사람이 남녀로 각각 한 명씩 있었다.
 현우의 시선이 절로 젊은 여자 면접관에게 향했다. 눈이 시원해질 정도로 상쾌한 이목구비였다. 저런 여자가 손짓 한 번 하면 넘어오지 않을 남자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성격은 그리 예쁘지 못한 듯했다. 삐딱하게 앉은 것도 모자라서 이따금 하품하며 지루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현우의 이력서를 보고는 피식 비웃기까지 했다.
 반면 함께 들어온 오상호를 향해서는 방긋 웃으며 손을 들어서 개인적인 친분을 드러내기도 했다. 남의 눈치 따위는 전혀 보지 않는 듯했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현우는 여자의 신분을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사장의 딸인 모양이군. 둘이 애인 사이인가? 그러면 이 친구 합격은 떼놓은 당상이겠군.’
 이번에는 젊은 남자 면접관에게로 눈이 갔다. 젊은 나이에 면접관이 되었으니 출세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순간 현우의 눈이 커졌다.
 젊은 면접관이 낯익은 사람이었다. 낯이 익은 정도가 아니라 매우 가깝게 지내던 사람이었다.
 ‘김용구?’
 용구는 현우의 친구 중에서도 인연이 남달랐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를 모두 함께 다녔다. 같은 반이 된 적도 무려 네 번이나 되었다.
 중학교 때 현우가 서울에서 안산으로 이사하는 바람에 잠시 떨어졌지만, 용구도 우연히 안산의 부촌으로 이사 오면서 고등학교도 함께 다녔다.
 현우가 이사하기 전까지는 집도 바로 아래위로 이웃해 있어서 등교도 늘 함께 했다.
 사람들도 현우와 용구가 함께 걷는 모습을 보며 ‘너희는 외롭지 않아서 좋겠구나.’라며 부러워할 정도였다. 말 그대로 단짝 친구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일 뿐이었다.
 현우와 용구는 실제로는 그리 친하지 않았다. 아니, 친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사이가 나빴다. 현우는 별다른 감정이 없는데 용구는 현우만 보면 이상하게 시비를 걸어왔다.
 등교를 함께한 것도 자발적인 의지가 아니었다. 집이 이웃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양쪽 부모님이 시켜서 어쩔 수 없이 같이 걸었던 것뿐이었다.
 특히 현우의 가족이 사고를 당한 이후부터는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괴롭혔다. 고등학교 때에는 용구가 무리를 지어서 현우를 폭행하기까지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용구가 현우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눈빛이 곱지 않았다. 입꼬리도 보일 듯 말 듯 올라가 있었다. 마치 ‘너 이놈, 잘 걸렸다.’라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현우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현우가 특별히 잘해준 것도 없지만, 용구에게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용구는 늘 현우를 원수 대하듯 했다.
 용구가 서류를 한번 흘끔 보더니 질문을 던졌다. 서류에 적혀있는 질문내용인 듯했다.
 “장현우 씨, 인코텀즈에 대해서 아시나요?”
 순간 현우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용어였다. 어디에 쓰이는 용어인지도 몰랐다.
 너무 당황해서 방금 들었던 단어조차도 기억이 안 날 정도였다.
 ‘인코…… 뭐라고 했지?’
 현우가 주춤하자 용구가 윽박지르듯 다시 물었다. 말로만 듣던 압박면접인 듯했다.
 “아세요, 모르세요? 질문을 받았으면 대답을 하셔야죠.”
 현우는 더욱 당황했다. 무슨 대답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장현우 씨, 여기 놀러 왔어요? 면접이 장난이에요? 왜 대답을 안 해요?”
 용구는 현우를 계속해서 밀어붙였다. 마치 절벽 끝으로 몰아세울 심산인 듯했다.
 “알면 안다, 모르면 모른다. 그것도 못해요?”
 그럴수록 현우는 자꾸만 수렁으로 빠져 들어갔다. 아무리 여유를 되찾으려고 해도 용구가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용구의 한 마디가 현우의 머릿속에 찬물을 끼얹듯 차갑게 들려왔다.
 “장현우 씨 겁먹었어요? 그런 배짱으로 회사생활 제대로 할 수 있겠어요?”
 ‘뭐? 겁먹었느냐고?’
 갑자기 자존심이 상했다. 괜한 오기도 생겼다. 이까짓 면접이 뭐라고 그토록 당황한단 말인가? 막말로 붙으면 좋고 떨어져도 그만 아니던가?
 게다가 용구는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늘 현우의 아래였다. 공부도 현우가 1등이었고, 용구는 현우 때문에 늘 2등이었다. 운동도 그랬고 주변의 평도 그랬다.
 잘난 현우와 그보다 덜 잘난 용구였다. 중학교 때의 교통사고 이후로 모든 것이 뒤집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용구 따위에게 주눅이 든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
 ‘그래, 난 늘 죽을 각오로 살아왔다. 이 정도 일에 겁을 집어먹는다는 게 말이 되나? 내 방식대로 한다.’
 흔들리던 현우의 눈빛이 어느새 차갑게 가라앉았다.
 “모르는 단어입니다.”
 용구의 입꼬리가 노골적으로 말려 올라갔다.
 “몰라요? 그게 자랑입니까? 구매팀에 입사지원서를 냈으면 그 정도 용어는 공부해 와야 하는 것 아닙니까?”
 “구매팀이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잘 모릅니다. 필요한 지식은 지금부터라도 찾아서 공부하겠습니다.”
 “허, 참나. 구매팀이 뭐 하는 곳인지도 모르고 구매팀을 지원하다니. 본인이 생각해도 한심하지 않나요?”
 용구가 제법 민감한 단어까지 거침없이 사용했다. 어떻게든 현우를 위축시키려는 듯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현우는 몸을 반듯이 세웠다. 고개도 빳빳하게 세웠다. 배에도 힘을 딱 주었다.
 “한심할 것까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우의 당당한 어조에 면접관들의 눈빛이 조금 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내내 지루해하던 젊은 여자도 눈을 힐끔 치켜뜨며 현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현우는 용구만을 바라보며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회사가 제게 필요로 하는 건 제 경험과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쓸모가 있다고 판단되면 데려다 쓰는 거지요. 구매팀이 뭐 하는 곳인가에 대해서는 그때부터 배우면 되지 않겠습니까?”
 “말대꾸하시는 겁니까?”
 용구가 나무라듯 물었다. 하지만 현우는 조금도 굽힘이 없었다.
 “질문에 답변을 드리는 것입니다.”
 용구는 이후로도 많은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현우는 마치 질문지를 미리 받고 답을 암기해온 사람처럼 거침없이 대답했다. 어찌 보면 당돌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위축된 모습을 보이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생각에 문답이 계속될수록 현우의 태도는 더욱 과감해졌다.
 그래서일까? 현우를 바라보는 면접관들의 눈빛도 갈수록 달라졌다. 특히 여자 면접관이 그랬다.
 ‘재미있군. 길들지 않은 야생마 같아.’
 그렇게 현우의 면접을 마치고 이번에는 옆에 앉은 오상호에 대한 면접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현우 때와는 모든 것이 너무나도 달랐다. 일단 질문하는 사람부터가 달랐다. 용구가 아닌 여자 면접관이었다.
 게다가 오상호에게 던져진 질문은 딱 두 개뿐이었다. 그것도 허무할 정도로 간단한 질문과 대답이었다.
 “영구 귀국하신 건가요?”
 “예. 사흘 되었습니다.”
 “오피스텔은 지낼 만하세요?”
 “만족스럽습니다. 민혜 씨께 감사드려요.”
 오상호와 여자 면접관이 서로에게 씩 웃어 보였다. 그것이 오상호에 대한 면접의 전부였다.
 “수고하셨어요. 그만 나가보셔도 좋습니다.”
 그런데 그때였다. 가장 왼쪽에 앉아있던 중년인이 용구의 말을 잘랐다. 후덕한 인상에 깊은 눈빛을 가진 면접관이 불쑥 이야기를 꺼냈다.
 “아, 잠깐만요. 장현우 씨는 남으세요. 오수정 씨, 지원자 한 명만 들여보내도록 해요.”
 현우가 후덕한 면접관을 흘끔 바라보았다.
 다른 면접관들이 긴장하는 것을 보니 여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 분명했다. 왠지 모르게 사장의 느낌이 강했다.
 ‘이번에는 긴장 좀 해야 하겠군. 아니지. 사장이라고 뭐 별거야? 대리운전 손님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뭐. 그래, 목적지까지 편안하게 모셔다드리자.’
 현우가 마음속으로 결의를 다지는 동안 다른 지원자가 들어와서 현우 옆에 앉았다.
 그와 동시에 은은한 꽃향기가 콧속을 맴돌았다. 수수한 외모의 여자를 상상하게 하는 향기였다.
 하마터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릴 뻔했다.
 ‘어떤 얼굴일까? 긴 생머리일까? 피부는 고울까? 눈은 맑을까? 입술은 붉고 예쁠까?’
 머릿속이 온갖 상상력을 다 동원해서 여자의 얼굴을 그렸다.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굳이 얼굴을 보지 않아도 무척 예쁜 얼굴이라는 것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한껏 밝아진 면접관들의 표정 때문이었다. 여자 지원자가 들어오자마자 동공이 커지면서 무의식적으로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특히 용구가 그랬다. 한껏 커진 눈은 반짝반짝 빛났고, 목소리 톤도 아까와 확연히 달라졌다.
 여자 지원자는 대답도 똑 부러졌다. 성우를 연상시키는 맑은 목소리에 자신감과 상냥함이 넘치는 말투는 면접관들은 물론이고 현우의 마음조차도 사로잡을 것 같았다.
 한참을 질문하던 용구가 다른 면접관의 눈치를 슬쩍 보았다. 이 정도면 되지 않았느냐는 식이었다.
 그제야 후덕한 면접관이 무거운 입술을 열었다.
 “민수지 양은 회사에서의 학력차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예를 들어서 고졸과 대졸, 석사와 박사, 대우가 같아야 할까요? 아니면 차별이 있어야 할까요?”
 “직원의 대우는 성별이나 학력이 아닌 업무성과에 따라서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수지가 이번에도 똑 부러지게 대답했다. 말투도 생각도 현우의 마음에 쏙 드는 여자였다.
 하지만 후덕한 면접관은 생각이 다른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경력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회사에 근무한 경력과 상관없이 오직 업무성과로만 판단해야 할까요?”
 “경력직원들은 이미 그 경력만큼 회사에 공헌했습니다. 또한 경력직원을 인정해줘야 신규직원들도 ‘이 회사에 오래 근무하면 나도 저렇게 대우받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당연히 인정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우는 현명한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현우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면 저런 대답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면접관은 후덕한 인상과 달리 집요한 면이 있었다. 계속해서 민수지의 대답을 꼬투리 잡았다.
 “학력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공부한 만큼 회사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니 그 시간을 인정해줘야 하지 않나요? 그렇게 학력을 인정해줘야 다른 신규직원들도 좀 더 준비된 상태에서 회사에 입사하지 않을까요?”
 민수지의 말문이 갑자기 막혔다. 한참을 생각하고 힘겹게 입을 여는데, 이번에는 어딘가 모르게 목소리에 자신감이 없었다.
 “그런 것 같습니다. 그 부분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반박하지 못해서 아쉽긴 했지만, 깔끔한 대답이었다.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니까.
 “만약 민수지 씨 입사동기 중에 고졸이 있다면 그를 어떻게 대하시겠습니까?”
 “회사에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어떻게요?”
 “아무래도 전문지식이 부족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제가 아는 지식을 나누어주겠습니다.”
 “그리고요?”
 “요즘은 대부분 신입사원이 대졸이라서 상대적으로 소외감을 느낄 것입니다.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챙겨주겠습니다.”
 민수지는 다시 아까의 페이스를 회복한 듯했다. 모든 질문에 막힘없이 답을 주었다.
 반면 현우의 표정은 점점 굳어갔다. 면접관과 민수지 사이에 오가고 있는 문답이 모두 현우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면접관의 질문은 어쩌면 민수지가 아닌 현우을 향한 것인지도 몰랐다.
 후덕한 면접관이 이번에는 현우에게 질문을 던졌다.
 “장현우 씨는 민수지 씨의 대답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모범적인 대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동료를 만난다면 직장생활이 행복할 것 같습니다.”
 현우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고개가 자연스럽게 민수지에게로 돌아갔다.
 민수지도 마침 현우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현우는 순간 차가운 얼음물을 삼킨 기분이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미모였다.
 어쩌면 그것은 선입견 때문인지도 몰랐다.
 처음 들어올 때 느껴졌던 향기, 그리고 목소리. 거기에 면접관과 주고받는 문답을 들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민수지의 얼굴을 상상하며 선입관을 만든 것이다.
 짙은 화장으로 포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여자.
 화려함보다는 은은함이 매력인 여자.
 그래서 처음 볼 때보다 볼수록 더욱 아름다운 여자.
 상대방이 바보 같은 실수를 저질러도 한 번 정도는 부드러운 미소로 용서해줄 수 있는 여자.
 민수지가 바로 그런 여자였다.
 “그렇다면 장현우 씨는 그런 입사동기를 위해서 무엇을 해줄 수 있나요?”
 현우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현우가 보기에 민수지는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다. 뭔가 허점이 보여야 그것을 채워주든 도와주든 할 것이 아닌가? 모든 면이 현우보다 우월하게 느껴졌다.
 생각해보니 사장이 질문한 의도도 거기에 있는 듯했다.
 현우는 민수지를 비롯한 지원자들에 비해서 가진 것이 없었다. 학력도 짧았고, 업무 관련 사전지식도 부족했다. 그런 놈이 사장 아는 사람 소개 좀 받았다고 이런 회사에 쉽게 입사할 수 있을 것 같으냐는 식이었다.
 한마디로 주제를 알고 꺼지라는 뜻이리라.
 하지만 현우는 동의할 수 없었다. 비록 무역 관련 지식은 짧았지만, 현우에게도 자신만의 재산이 있었다. 떨어질 때 떨어지더라도 그 점만은 분명히 말해주고 싶었다.
 “저는 직업현장에서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제 경험이 도움을 줄 수 있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렇겠죠. 하지만 구매팀에서 그런 경험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로군요. 그것 말고 다른 것은 없나요?”
 의욕은 있었지만, 답은 궁했다. 현우는 자꾸만 초라해지는 자신을 느꼈다.
 하지만 위축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태양 목공소 사장의 체면도 생각해야 했다. 기껏 괜찮은 놈이라고 소개해주었는데, 형편없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었다.
 끝까지 당당해야 했다. 그들이 인정하건 인정하지 않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장현우가 윤 사장의 추천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줘야 했다.
 “커피 바리스타 자격증이 있습니다. 커피를 좋아한다면 맛있는 커피로 기분을 좋게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요?”
 “고기를 잘 굽습니다. 회식자리에서 고기 굽기는 무조건 제가 담당하겠습니다. 요가 자격증도 가지고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요가동호회를 만들어서 가르쳐드릴 수도 있습니다.”
 후덕한 면접관은 인내심 있게 기다려주었고, 현우는 생각나는 대로 모두 이야기했다. 어찌 보면 회사 업무와 전혀 관계가 없는 내용이었지만, 그래도 거짓말은 없었다.
 현우가 말을 마쳤다.
 후덕한 면접관은 어떠한 평가도 내리지 않았다. 고개를 몇 번 가볍게 끄덕인 것이 전부였다.
 대신 다른 질문을 던졌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장현우 씨의 꿈은 무엇인가요?”
 꿈!
 그 단어 하나는 현우로 하여금 과거를 회상하게 했다.
 현우에게도 꿈은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있다. 하지만 그때의 꿈과 지금의 꿈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아니, 살아가면서 현우의 꿈은 끊임없이 변해갔다.
 중학교 때 현우의 꿈은 돈이었다. 오직 그것만이 좌절한 부모님께 삶의 희망을 드릴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때의 꿈은 복수였다. 아버지의 신기술을 빼앗고 사업을 무너뜨린 거대 정유사에 대한 복수.
 하지만 지금의 꿈은 또 달랐다.
 돈? 현우도 수많은 직업을 경험하면서 이따금 큰돈을 만지기도 했다. 한때는 그 돈으로 도박이나 주식도 해보았다. 큰돈을 따기도 해보고 잃기도 해보았다.
 그러면서 돈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불행할 사람은 불행했고, 돈이 아무리 없어도 행복할 사람은 행복했다.
 게다가 돈이라는 것은 목표로 삼는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어느 순간 알아서 찾아오는 것이 돈이었다.
 복수는 지금 생각해보면 바보 같은 꿈이었다.
 복수를 꿈으로 삼은 후로 늘 이를 갈며 살아왔다. 머릿속에는 늘 ‘어떻게 무너뜨릴 것인가?’, ‘어떻게 죽일 것인가?’ 하는 전투적인 생각만 가득했다.
 당연히 행복해질 틈이 없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원한과 증오만 더욱 커졌다.
 그러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복수하면 과연 통쾌할 수 있을까?’
 실현 가능성은 생각하지 않았다. 복수에 성공하여 거대 정유사를 무너뜨리고, 그 사장과 임원들이 자신의 앞에서 무릎 꿇고 싹싹 비는 상상을 해보았다.
 한순간은 통쾌할 것이다. 하지만 달라질 것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허무할 것 같았다. 막상 복수를 끝내고 나면 현우는 목표를 잃은 폐인이 되고 말 것이다.
 그것이 어찌나 허무한 일이던지 단순히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한동안 방황에 빠져야만 했다.
 그러면서 복수에 대한 집념을 조금씩 내려놓았다. 그렇다고 그들을 용서할 마음은 없었지만, 현우 본인을 위해서는 빨리 다른 꿈을 찾아야만 했다.
 그러다가 최근에 찾은 꿈이 하나 있었다.
 ‘세상의 빛이 되리라.’
 어찌 생각하면 황당한 꿈일 수도 있었다. 아니, 성인군자나 꿀 수 있는 지나치게 이상적인 꿈이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런 황당한 꿈을 키우며 살아가는 사람이 생각 외로 많다. 그리고 실제로 몸으로 실천하는 사람도 많다.
 현우도 실제로 여러 번 경험해보았다. 누군가의 꿈과 희망을 위해서 현우 자신을 희생하는 일이었다. 어떨 때는 돈을 희생했고, 어떨 때는 시간을 희생했다.
 그때 느꼈던 행복감은 정말 엄청났다.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알 수 없는 크기의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 꿈을 사실대로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보통 사람들은 그런 희생을 보면 가식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리고 누구에게 자랑하기 위해서 하는 일도 아니었다.
 그래서 남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꿈도 하나 만들었다.
 “평생을 함께할 진정한 친구 세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후덕한 면접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꿈이군요. 수고했어요.”
 현우와 민수지가 함께 면접실을 빠져나갔다. 후덕한 면접관이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면접관의 입술에는 가벼운 미소가 머금어져 있었다.
 ‘하긴, 윤종언 사장님이 그리 가벼운 분이 아니시지.’
 그가 진국이라면 틀림없이 진국일 것이다. 어쩌면 면접 과정에서 보았던 것보다 훨씬 큰 것을 가진 청년일 수도 있었다. 원래 진국은 오래 우려내야 진면목이 보이는 법이니까.
 반면 현우는 기분이 우울했다.
 ‘떨어졌군.’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이 일할 곳이 어떤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면접을 오다니. 바보 같은 짓이었다.
 게다가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답변도 바보 같았다. 동기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일로 커피 타는 것이나, 고기 굽는 것이나, 요가, 등산 따위를 이야기하다니.
 비록 창피를 당하기는 했지만, 소득이 없지는 않았다. 적어도 중소기업의 분위기 정도는 조금 느낄 수 있었다.
 ‘그래. 난 역시 현장 체질이다. 몸으로 뛰는 게 최고야.’
 현우가 그렇게 위안을 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어느새 느지막한 오후였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고등학생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어디 갔다 오나?”
 허 씨 노인이었다. 특별한 인연은 없지만, 한동네에 살다 보니 길에서 자주 마주쳤다. 그때마다 인사드리는 것만으로도 친척처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예, 식사하셨어요?”
 “먹었지. 그렇게 입고 있으니까 인물이 아주 훤하네.”
 “감사합니다.”
 “어머, 현우 군! 어쩐 일로 양복을 빼입었어?”
 맞은편 아파트에 사는 김 여사였다. 주차 때문에 애를 먹던 것을 한 번 도와준 적이 있었다. 그 후로 현우만 보면 생글생글 웃으며 친한 척을 했다.
 박 씨 노인, 슈퍼 아저씨 등도 현우만 보면 한마디씩 건넸다. 이웃에 사는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안녕하세요.”
 “그래, 보충수업은 안 하냐?”
 “그게 뭔데요? 먹는 건가요?”
 “하하, 짜식.”
 현우는 옆집, 아래윗집은 물론이고 동네방네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모르는 사람이 있어도 간단한 인사말 하나면 그때부터 아는 사이가 된다. 집 근처를 걷다가 눈이 마주치면 그냥 무턱대고 인사말을 건네는 것이다.
 “안녕하세요.”
 대부분 사람은 살짝 당황하며 현우의 얼굴을 기억해내려고 애쓴다. 안면도 없는 사람이 인사를 건네오는 일은 많지 않으니까.
 “예? 아, 안녕하세요. 그런데 누구…….”
 “저쪽 두꺼비 아파트에 살아요. 반갑습니다.”
 “아, 그렇군요. 반갑습니다.”
 이렇게 두 번만 하면 다음부터는 그쪽이 먼저 인사를 건네온다. 그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사람들과 인사말을 나눠야 한다는 번거로움은 있지만, 얻는 기쁨이 훨씬 많았다.
 “안녕하세요.”
 어르신들을 만날 때마다 인사를 건네며 집으로 향했다. 그러다가 아파트로 향하는 골목 한쪽에 쪼그려 앉아있는 여고생 하나가 문득 눈에 들어왔다.
 현우도 아는 얼굴이었다. 이름이 정아라고 했던가?
 라인은 달랐지만, 같은 아파트에 살았다. 어려운 가정환경에도 불구하고 밝고 착하게 자라서 동네 사람들 칭찬이 자자한 여학생이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은 표정이 우울했다. 눈가가 반짝반짝하는 것을 보니 울고 있었던 모양이다.
 “안녕. 무슨 일 있니?”
 현우가 말을 건네자 정아가 얼른 일어서며 눈물을 닦아냈다.
 “아뇨, 아무 일도 아니에요.”
 그러고는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집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현우의 시선을 피하려고 자리만 옮긴 것뿐이었다. 슬쩍 보니 아파트 계단에 앉아서 다시 울고 있는 듯했다.
 ‘대체 무슨 일이지?’
 하지만 계단에까지 따라가서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안면이 있다고 해도 자칫 치한으로 몰릴 수도 있었다.
 신경을 끊고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문득 뒤돌아보니 정아의 주변을 맴도는 다른 여학생 하나가 보였다. 이름은 몰랐지만, 정아 덕분에 얼굴은 아는 학생이었다.
 아마, 여학생도 현우의 얼굴은 낯이 익을 것이다.
 현우가 손짓으로 여학생을 불렀다. 여학생이 잠시 망설이다가 현우에게 다가왔다.
 “정아 친구지? 정아 왜 저러는지 아니?”
 현우의 물음에 친구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은 오늘부터 학원을 못 다니게 되었거든요.”
 “학원?”
 정아의 꿈은 영상디자이너다. 그것도 막연한 꿈이 아닌 간절한 소망이었다. 학교는 포기할 수 있어도 영상디자이너에 대한 꿈만큼은 포기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학원비 마련을 위해서 틈만 나면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았다.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 미술학원을 아니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마저도 불가능해졌다. 정아의 아버지가 사기를 당하면서 집안 형편이 더욱 어려워졌다. 정아의 학원비라도 보태지 않으면 당장 길거리로 내몰릴 상황이었다.
 안타까운 사연이었다. 누구보다 성실하고 밝은 학생이었기에 더욱 안타까웠다. 정아는 누군가가 옆에서 조금만 도와주면 얼마든지 큰 인물이 될 재목이었다.
 “학원비가 얼마인데?”
 “한 달에 31만 원이에요.”
 “언제까지 내야 하는데?”
 현우가 꼬치꼬치 캐묻자 친구가 의아한 눈빛을 했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대답은 해주었다.
 “오늘까지요.”
 “학원 이름이 뭐지?”
 “한샘 미술학원이요.”
 “그럼 네가 심부름 좀 해줄래?”
 “어떤……?”
 “내가 학원비 대신 내줄 테니까 정아 데리고 학원 가.”
 “예에?”
 친구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대신 정아한테는 비밀로 해야 한다. 학원 선생님께는 장학생이 된 것으로 해달라고 이야기해놓을 테니까 그냥 다니기만 하면 될 거야. 어서 가봐. 학원 시간 늦으면 안 되잖아.”
 현우가 친구의 등을 떠밀었다. 친구는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현우가 연신 등을 떠밀자 그제야 정아에게로 향했다.
 현우도 곧장 집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한샘 미술학원에 전화를 걸었다.
 학원 선생님도 정아의 사정을 알고 있었다. 재능이 너무 뛰어난 학생이라서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다며 현우의 도움에 연신 감사 인사를 전했다.
 “대신 정아에게는 비밀로 해주세요.”
 -예. 장학생에 선발되었다고 입을 맞출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학원 계좌번호 좀 찍어주시겠어요?”
 계좌번호를 받은 현우가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뱅킹을 열었다.
 통장 잔액이 보였다. 어느새 5천만 원이 넘게 쌓여있었다. 그만큼 버는 데만 집중하고 쓰는 데 소홀했다는 뜻이었다.
 현우도 한때는 통장에 잔액이 쌓이는 것 자체를 행복해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음을 얻은 후로 생각이 바뀌었다.
 ‘돈은 모으라고 버는 게 아니라 쓰라고 버는 거다.’
 현우가 생각하는 부자는 많은 돈을 모은 사람이 아니다. 많은 돈을 쓰는 사람이다.
 평생 100억 원을 모아고 해도 겨우 1억 원만 쓰고 간다면, 그 사람의 부는 1억 원에 불과하다.
 물론 쓰는 것보다 중요한 것도 있었다. 그것은 어떻게 쓰느냐이다.
 현우는 돈을 액수가 아닌 가치로 쓰려고 노력했다.
 7천 원짜리 식사와 7만 원짜리 식사.
 식당이나 음식의 수준은 가격에 비례할 가능성이 크겠지만, 그 가치는 누가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다.
 먹기 싫어하는 아이의 입에 억지로 들어간 1만 원짜리 음식과 굶어 죽기 직전의 아프리카 아이의 입에 들어간 100원짜리 음식이 가지는 가치의 차이랄까?
 정아의 학원비 31만 원도 다르지 않았다.
 지금의 현우에게는 딱 31만 원의 가치지만, 정아에게는 가치를 따질 수 없는 금액이었다. 그 미래가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서 3천만 원이 될 수도 있고, 30억 원이 될 수도 있었다.
 적어도 현우보다는 몇 배 가치 있게 쓸 수 있을 것이다. 이보다 남는 장사가 어디 있단 말인가? 가만히 앉아서 수십 수백 배로 돈을 불리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이런 좋은 기회가 또 어디 있겠는가? 남에게 빼앗길까 두려울 정도였다.
 현우가 서둘러서 학원비를 송금했다.
 정아가 기뻐할 생각을 하니 기분이 홀가분했다. 모든 문제가 술술 잘 풀릴 것 같았다. 그런 홀가분한 기분을 얻은 것만으로도 31만 원 이상의 값어치는 충분했다.
 기분이 좋으니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잠시 산책을 다녀오신 어머니가 그런 현우를 보고는 덩달아 웃으며 물었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니?”
 “어머니 건강하신 것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어요? 아주 행복해 죽겠어요.”
 어머니가 피식 웃었다.
 “녀석, 싱겁기는. 그런데 면접은 잘 봤니?”
 갑자기 가슴이 뜨끔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면접은 최악이었다. 붙을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어머니께 사실대로 이야기할 필요는 없었다. 괜히 걱정만 하실 테니까.
 때로는 좋은 거짓말도 필요했다.
 “당연하죠. 제 이력서를 보자마자 다들 넋을 놓던데요. 저한테 완전히 반했어요.”
 현우가 큰소리 탕탕 쳤다. 어머니의 얼굴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역시 우리 아들이야. 내가 아들 하나는 잘 뒀다니까. 그럼 언제부터 출근하는 거니?”
 “글쎄요. 당장 출근해달라고는 하는데, 별로 내키지가 않아요. 생각 좀 해보고 결정하려고요.”
 “왜? 회사가 별로 마음에 안 들어?”
 “글쎄 저보고 무역 관련 업무를 하래요. 그쪽 일은 전혀 경험이 없어서요.”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애써 웃고 있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씁쓸함이 담겨있었다. 현우가 거짓말하고 있다는 것을 벌써 눈치챈 모양이었다.
 하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래, 잘 생각했다. 내키지 않으면 가지 마. 우리 현우라면 어느 회사인들 못 들어가겠니?”
 “예. 좀 더 좋은 직장 알아보면서 생각해볼게요.”
 
 이틀 후.
 현우의 휴대폰으로 연락이 왔다. ㈜아우름이었다. 최종합격하였으니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하라는 내용이었다.
 무척이나 의외의 연락이었다. 면접 때 분위기만 보아서는 당연히 불합격이었기 때문이다.
 현우가 의아한 표정을 하자 어머니가 다가와서 물었다.
 “무슨 전화니?”
 “얼마 전에 면접 본 아우름이에요. 자기네 회사에 입사해달라고 사정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그냥 며칠 다녀볼까요?”
 어머니의 눈이 커졌다. 현우가 부정적으로 이야기해서 불합격한 줄 알았는데, 정말로 회사가 현우를 탐내고 있는 듯했다.
 “당연히 가야지. 정성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니? 그리고 너도 이제는 평생직장을 가져야지.”
 “그런가요? 어머니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한번 가보죠. 좀 다녀보다가 내키지 않으면 그때 다른 직장 알아봐도 늦지 않으니까요.”
 “그래, 잘 생각했다.”
 어머니가 자랑스럽다는 듯 현우의 등을 다독여주었다.
 현우도 주먹을 살짝 움켜쥐며 각오를 다졌다.
 ‘그래,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다.’
 
 2. 신입사원 테스트
 
 ㈜아우름으로의 첫 출근.
 다들 현우를 환영해주었다. 용구도 환한 미소와 함께 현우에게 악수를 청했다.
 “같이 일하게 돼서 기쁘다. 잘해보자.”
 누구보다도 용구의 악수가 반가웠다. 특히 현우를 친구처럼 대해주는 것이 더욱 고마웠다.
 하지만 현우는 용구를 친구로 생각할 수 없었다. 밖에서는 친구가 되겠지만, 직장 안에서는 엄연한 선배이자 상사였다.
 현우가 두 손을 모아 내밀며 깍듯이 허리를 숙였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여기가 네 자리야. 그리고 민수지 씨 자리는…….”
 용구가 직접 신입사원들의 자리를 가르쳐주었다.
 입사 동기는 콜롬비아 대학 출신의 오상호와 면접에서 강한 인상을 주었던 민수지였다.
 사무실이 신입사원들 덕분에 생기가 돌았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신입사원을 안내해준 용구가 자리에 앉자 다른 직원들도 신입사원들에게서 신경을 껐다. 아침부터 뭐가 그리 바쁜지 다들 숨 돌릴 틈도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신입사원들은 투명인간 취급당했다. 잡일을 맡기기는커녕 말조차 걸지 않았다. 마치 단체로 무슨 약속이라도 한 듯했다.
 민수지와 오상호는 가만히 있기 어색했는지 책상 앞에 꽂혀있는 책들을 들춰보기 시작했다.
 현우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맞은편에 앉은 선배 직원에게 조용히 물었다.
 “한상훈 주임님, 제가 뭘 해야 하죠?”
 “지금은 딱히 할 일이 없으니까 규정이나 좀 찾아보세요.”
 “알겠습니다.”
 현우도 민수지나 오상호처럼 앞에 꽂힌 책들을 보았다. 엑셀, 한글 등 익숙한 것들도 있었지만 무역실무, 회계실무, 자유무역협정처럼 생소한 것들이 더 많았다.
 익숙한 것보다는 생소한 것에 도전하고 싶어서 제목이 엄청나게 긴 책을 꺼내 들었다.
 
 [자유무역협정의 이행을 위한 관세법의 특례에 관한 법률]
 
 말로만 듣던 FTA 관련 규정이었다.
 규정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30분을 넘기기가 힘들었다. 사전지식이 없으니 용어 하나하나가 어려웠고, 규정을 왜 읽어야 하는지를 모르니 지루하기만 했다.
 꾹 참고 읽어보았지만, 무의미한 시간처럼 느껴졌다. 마치 사칙연산도 배우지 않고 미분과 적분을 공부하는 기분이었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었다. 일이 없다면 찾아서 해야 했다. 그것이 현우의 방식이었다.
 ‘그래, 고민하지 말자. 눈에 보이는 대로 움직이자.’
 마침 한상훈 주임이 두꺼운 서류를 복사하려는 모습이 보였다. 현우가 얼른 다가갔다.
 “제가 복사해드리겠습니다.”
 그러자 한상훈이 현우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현우가 복사할 서류를 빼앗듯이 했다.
 “괜찮습니다. 이런 건 시간이 남는 사람이 해야지요.”
 그제야 한상훈이 현우에게 서류를 넘겼다. 그러면서 복사할 부분을 가르쳐주었다.
 “그래요? 그럼 여기부터 여기까지 해주세요. 팀장님 보고자료에 보조자료로 들어갈 거니까 깨끗하게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현우는 이거다 싶었다. 그때부터 조금이라도 도와줄 일이 있으면 바람처럼 달려가서 일을 거들었다. 복사나 팩스가 제일 많았고, 무거운 짐을 옮기거나 서류철을 대신하는 일도 있었다.
 일거리가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가만히 앉아있는 것보다는 마음이 조금 편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일만 도와주는 것은 아니었다. 복사나 팩스를 도와주면서 서류들을 유심히 살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가 영어로 작성된 서류였다. 한글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가 없었다.
 물론 별문제는 없었다. 비록 고등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공부를 못했던 것은 아니니까.
 특히 영어는 현우가 제일 좋아하는 과목이었다. 게다가 필리핀 노동자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원어민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영어에 대한 두려움은 전혀 없었다.
 가장 많이 보이는 서류는 INVOICE라는 서류였다. PACKING LIST도 많이 보였고, B/L이나 수출신고필증, 수입신고필증 같은 서류도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것이 어떤 내용인지까지는 현재로서는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이상했다. 현우가 다른 사람의 일을 도와줄수록 다들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도움을 받는 사람들조차도 그리 고마워하기는 기색은 없었다.
 오히려 현우를 걱정해주었다.
 “업무 파악하자면 이럴 시간이 없을 텐데.”
 용구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대리 직급인 조대영과 함께 한심하다는 듯 현우를 비웃기까지 했다.
 “제 자리도 못 찾는 바보로군.”
 “그러게. 저렇게 하다가는 인턴 기간도 못 버티고 쫓겨나지.”
 “인턴 기간? 내 생각에는 한 달도 못 버틸 것 같군. 본격적으로 업무 맡기자마자 손들고 도망갈 것 같은데.”
 “그것도 그렇군. 후훗.”
 현우는 오히려 그런 용구와 조대영이 이해되지 않았다. 열심히 하는데 왜 비웃음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게다가 현우에게는 이것이 업무를 파악하는 나름의 방식이었다. 기초가 너무 부족했기 때문에 책만 보는 것보다는 일을 도와주면서 실무서류를 보는 것이 훨씬 이해가 빨랐다.
 현우는 자신이 옳다고 믿었다. 누가 어떤 시선을 보내건 개의치 않았다. 가장 먼저 출근해서 사무실을 청소했고, 누군가의 손이 필요하다 싶으면 가장 먼저 손을 들고 나섰다.
 
 * * *
 
 “죄송해요. 비밀로 하기로 약속했어요.”
 대답하는 송희는 안절부절못했다. 하지만 담임선생님 방승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질책이 가득한 눈으로 송희를 바라보았다. 목소리는 더욱 차가웠다.
 “정아의 인생을 망칠 생각이냐? 어서 얘기해.”
 송희는 선생님의 눈빛과 목소리가 너무 무서웠다. 평소에 목소리 한 번 높이지 않던 인자한 선생님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역시 방정맞은 입술이 문제였다. 현우가 정아의 학원비 도와준 것을 단짝친구에게 이야기해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선생님이 우연히 듣고 말았다.
 “정아가 알면 학원 그만둘 거예요. 그 아저씨는 정말로 순수한 마음으로 도와준 거예요.”
 “알았다. 정아에게는 비밀로 하마. 하지만 선생님은 알아야 해. 그래야 받아도 되는 돈인지 아닌지 알 수 있지 않겠니? 정아를 위해서 그러는 거야. 그러니 말해다오.”
 선생님이 다시 온화한 눈빛과 목소리로 설득했다. 그제야 송희가 흔들리는 눈빛으로 이야기했다.
 
 어슴푸레한 저녁.
 담임선생님 방승호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방은 온통 비슷비슷한 크기와 모양을 가진 낡은 아파트가 가득했다. 그 중에서도 유독 낡은 아파트가 있었다.
 
 [두꺼비 아파트]
 
 메모지에 적힌 이름과 같았다.
 “여기로군.”
 방승호가 다시 두꺼비 아파트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무려 31만 원이나 되는 학원비를 아무런 조건 없이 지원해주었다고 하지 않던가? 경제적으로 제법 여유가 있다는 뜻인데, 아파트만 보아서는 전혀 그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파트만 보고 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이런 아파트를 여러 채 가지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때 웬 젊은 아가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선생님.”
 방승호의 고개가 반사적으로 돌아갔다.
 어슴푸레한 조명 때문일까? 늘씬한 몸매에 깜짝 놀랄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방승호는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 저토록 아름다운 미인이 부른 사람이 방승호 자신이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천사 같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선생님, 저 기억 못 하세요?”
 “누구…… 시더라?”
 “저 나미예요. 유나미.”
 “유나미?”
 방승호의 입이 떡 벌어졌다. 유나미라면 3년 전에 자신이 담임을 맡았던 제자였다.
 유나미는 심각할 정도로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불구하고 늘 1% 이내의 상위권을 유지했다. 덕분에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이라는 S대학교에 입학했다. 게다가 얼굴까지 눈에 띌 정도로 예뻐서 더욱 기억에 남은 제자이기도 했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유나미가 예쁘긴 했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아무리 화장을 잘했다고 해도 그때와는 너무 달랐다. 말 그대로 눈이 돌아갈 정도의 미모였다.
 “우리 나미가 이렇게까지 예뻤나?”
 유나미가 부끄럽다는 듯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배시시 웃었다.
 “감사해요, 선생님. 그런데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
 유나미의 물음에 방승호는 순간 잘 되었다 싶었다. 장현우가 꽤나 유명인사라는 말이 생각난 것이다. 이곳의 웬만한 사람은 모두 장현우를 잘 안다고 했다.
 그렇다면 유나미도 잘 알 수 있었다.
 “너 혹시 장현우라는 사람 아니?”
 “현우 오빠요? 당연하죠. 그런데 그 오빠는 왜요?”
 “음…… 이건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로 해야 한다. 특히 정아나 그 부모님 귀에는 절대로 들어가면 안 돼.”
 비밀유지를 신신당부하면서 운을 뗀 방승호가 사연을 이야기했다. 웬 동네 청년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정아의 학원비를 지원해주었다는 내용이었다.
 방승호가 걱정하는 것은 현우가 못된 마음을 품고 있는 경우였다. 자칫 학원비 지원을 빌미로 정아에게 엉뚱한 것을 요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유나미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배시시 웃었다. 그러고는 단정하듯 말했다.
 “그건 전혀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사실 저도 고등학교 때 그 오빠 도움을 많이 받았거든요.”
 “너도?”
 유나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죽고 싶었을 만큼 힘들었던 때의 일을 떠올렸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그러니까 방승호가 담임선생님으로 있었던 고등학교 2학년 가을의 일이었다.
 유나미의 집은 가뜩이나 형편이 어려웠는데, 그때가 유독 심했다. 아버지가 직장을 잃으면서 수입이 끊긴 것이다.
 당시 유나미는 전교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우등생이었다. 그대로만 하면 유나미가 그토록 꿈꾸던 S대학교 무역학과는 무난히 입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급변했다. 집안에서 더는 학원비를 대줄 수 없게 된 것이다.
 아무리 우등생이라고 해도 학원을 다니는 것과 다니지 않는 것의 차이는 컸다. 게다가 더욱 큰 문제는 의욕이었다. 학원이 끊기게 되자 공부에 대한 의욕도 끊긴 것이다.
 그때 현우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이번에 정아에게 그랬던 것처럼 유나미 몰래 학원비를 대신 내준 것이다.
 유나미는 다시 기운을 차렸다.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서 더욱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그리고 목표했던 S대학교 무역학과 수석 입학이라는 영예를 얻었다.
 “하지만 그 일을 빌미로 제게 뭔가를 요구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오히려 끝까지 비밀로 하려고 했었죠. 만약 친구가 가르쳐주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도 그 사실을 몰랐을걸요. 말 그대로 순수한 마음으로 도와주신 거였죠.”
 방승호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유나미의 말이 사실이라면 현우는 말 그대로 성인이었다. 잠시나마 그를 의심했던 것이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유나미가 재차 강조했다.
 “그 오빠는 절대로 엉뚱한 마음 품고 그럴 사람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안심하셔도 돼요.”
 “요즘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니. 정말 훌륭한 사람이구나.”
 “여기까지 오셨는데 한번 만나보시겠어요? 제가 그 오빠 전화번호 알거든요.”
 “아니다. 나쁜 마음이 아니라는 것만 확인하면 됐다.”
 “그러지 말고 기다려보세요. 저도 한동안 현우 오빠 못 봤거든요. 선생님 핑계 대고 연락해봐야겠다.”
 
 * * *
 
 일주일이 지났다. 악몽 같은 일주일이었다. 나름대로 일거리를 찾아서 열심히 뛰어다녔지만, 그래 봤자 움직이는 시간이 하루 30분을 넘지 못했다.
 앉은 자리가 가시방석이었다. 차라리 몸이 부서지라 일하는 현장이 훨씬 편할 것 같았다.
 물론 앉아서 놀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틈만 나면 책상 앞에 꽂혀있는 책들을 읽었다. 저녁에도 대리운전을 접고 오로지 업무파악에만 매진했다.
 주말에는 늘 심마니 산행을 다녔는데, 이번 주말은 그것마저도 건너뛰었다. 업무에 도움이 되는 기초지식을 얻기 위해서 주말 내내 도서관에 파묻혀 살았다.
 하지만 의미가 없었다. 아무리 규정을 읽고 실무서류를 훔쳐봐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화물관리번호는 뭐고 B/L번호는 또 뭐야? 아이고, 머리야. 뭐가 이렇게 복잡해?”
 하지만 실망하지 않았다. 남들은 비싼 등록금 내가며 몇 년씩 공부해서 얻은 지식인데, 그렇게 쉽게 얻어진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욱 이상한 일이었다.
 그런데 월요일이 되자 팀장이 갑자기 폭탄선언을 했다.
 “다음 주부터 신입사원들에게도 일을 맡길 테니까 그리 알고 준비들 하고 있어.”
 사실 폭탄선언이랄 것도 없었다. 월급을 주고 채용했으니 일을 주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현우도 충분히 예상한 일이었다. 그동안 투명인간 취급한 것은 신입사원들에게 업무파악의 시간을 준 것이었다.
 하지만 현우에게 2주일은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업무파악은 고사하고 가장 기본이라는 회계나 무역용어에 대해서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결국, 믿을 구석이라고는 입사 동기들밖에 없었다. 모르는 용어가 나올 때마다 민수지에게 다가가서 물어보았다.
 “수지 씨, 화물관리번호가 뭐죠?”
 민수지는 외모만큼이나 성격도 착하고 싹싹했다. 무척 어려운 용어임에도 불구하고 현우가 완전히 이해할 때까지 설명하고 또 설명해주었다.
 “그러면 B/L 번호는 또 뭐죠?”
 “선하증권 번호예요. 선하증권이라는 것은 해상운송에서의 운송화물 청구권인데, 화주가 선주나 대리인한테…….”
 민수지는 마치 교수가 학생에게 강의하듯 차분하면서도 자세하게 가르쳤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자상한 교수 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학생이었다. 교수가 아무리 잘 가르쳐줘도 전혀 이해를 못 하는 것이다.
 “운송화물 청구권?”
 “선박에 물건을 선적했다는 증명서라고 보면 돼요. 나중에 수입국에서 B/L만 내밀면 물건을 되찾을 수 있는 거죠.”
 민수지는 현우를 위해서 많은 시간을 내어주었다. 현우가 원한다면 온종일이라도 시간을 내줄 것 같았다.
 하지만 현우가 미안해서 그럴 수 없었다. 자기 좋다고 민수지의 시간을 한정 없이 빼앗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민수지는 이런 질문을 부담 없이 던지기에는 지나치게 예뻤다. 차라리 예쁘지 않았다면 마음 편하게 물어봤을 텐데, 너무 예뻐서 치근대는 것으로 보일 것 같았다.
 사실 현우도 그런 마음이 없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런 생각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물었다가도 민수지가 대답하는 모습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특히 눈웃음이 문제였다. 민수지는 태생적인 눈웃음을 가진 여자였다. 평범하게 대답할 때조차도 눈이 초승달처럼 굽어지며 눈웃음이 만들어졌다.
 때문에, 구매팀의 남자들 치고 민수지에게 한눈을 팔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유부남인 팀장조차도 가끔은 민수지를 넋 놓고 바라볼 때도 있었다.
 그래서일까? 현우가 민수지에게 이것저것 물으려 하면 선배들이 곧바로 눈치를 주었다.
 “아예 강의를 부탁하지그래?”
 “민수지 씨는 좋겠네. 월급도 받고 강의료도 받고. 하하.”
 그렇다고 오상호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오상호는 민수지와 달리 무척이나 차가웠다. 현우가 물어보면 대답은 해주었지만, 마지못해서 해주는 식이었다. 그나마도 말끝마다 꼭 핀잔이 들어갔다.
 “인보이스? 송품장이잖아요. 보낸 물건의 내역서요. 그런 기본적인 것도 몰라요?”
 당연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면 굳이 물어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더 깊이 물을 수가 없었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야 한다고, 오상호는 현우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 그렇군요. 고마워요.”
 결국, 현우 혼자서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혼자서 머리카락만 쥐어뜯으며 끙끙 앓는 수밖에 없었다.
 ‘학원이라도 다녀야 하나? 일주일 만에 속성으로 가르쳐줄 학원 어디 없을까?’
 누군가의 도움이 이토록 간절했던 때도 없었던 것 같았다.
 그때 현우의 휴대폰이 울어댔다.
 “누구지? 어, 유나미? 이 녀석 오랜만이네. 여보세요?”
 - 오빠,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죠?
 “하하, 죽지 못해 살고 있다. 그러는 너는 잘 지내냐?”
 - 호호, 저야 늘 그렇죠. 그런데 오빠 어디세요? 혹시 집에 계시면 잠깐 얼굴이나 봬요.
 “그럴까? 어디로 가면 돼?”
 
 잠시 후, 인근 커피숍.
 “하하, 그런 오해가 있었군요. 그래서 송희한테 비밀로 해달라고 했던 것인데…….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현우가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깜짝 놀란 방승호가 펄쩍 뛰며 현우를 만류했다.
 “죄송하다니요. 별말씀을. 현우 씨 덕분에 오늘 정말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인생에 대해서 한 수 배웠습니다.”
 방승호는 진심이었다.
 현우를 보면서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짧았는지를, 자신의 삶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를 깨달았다.
 현우는 진정한 행복을 알고 있었다. 손에 움켜쥐는 것보다는 그것을 펴는 것이 몇 배는 행복한 것이었다. 그로 인해 주변의 사람이 행복해지는 것을 보는 것은 그보다도 훨씬 더 행복한 일이었다.
 방승호는 현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 가지를 다짐했다.
 ‘이제부터는 나도 누군가를 도우며 살겠다.’
 그것은 누군가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방승호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베풀며 사는 것에 대한 행복이 탐나서였다.
 방승호가 먼저 일어섰다. 하지만 유나미는 남는 게 시간이라며 현우를 조금 더 붙잡고 늘어졌다.
 현우도 유나미와 있는 시간이 나쁘지 않았다. 원래도 예쁜 얼굴이었는데 볼 때마다 자꾸만 예뻐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듣고 보니 예뻐진 이유가 있었다.
 “사실 성형수술 조금 했어요. 남자친구가 돈이 많거든요.”
 “어쩐지. 너 그러다가 미스코리아 되는 거 아니냐?”
 현우가 농담처럼 툭 던졌다. 그러자 유나미가 눈을 크게 뜨며 깜짝 놀라는 표정을 했다.
 “어머, 어떻게 알았어요? 저 미용실 원장님 추천으로 이번에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 출전했어요.”
 “정말?”
 유나미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떠들어댔다. 이미 지역 본선에서는 합격했다는 것이다.
 “미스코리아가 되면 좋지만, 안 되더라도 상관은 없어요. 이번 기회로 연예인이 되는 게 제 목표예요.”
 현우가 유나미의 얼굴부터 몸매까지 다시 한 번 훑어보았다. 유나미는 실컷 감상하라는 듯 포즈까지 취하며 자신만만하게 미모를 과시했다.
 얼굴이면 얼굴, 몸매면 몸매. 과연 미스코리아 감의 미모였다. 고등학교 때에도 예뻤지만, 의학의 힘으로 부족한 부분을 메운 지금은 완벽하다는 말도 부족할 정도였다.
 유나미보다 더 아름다운 미모가 존재할 수 있을까 싶었다. 왠지 유나미가 미스코리아가 될 것 같았다.
 현우가 방긋 웃었다.
 “잘 되면 잊지 말고 오빠한테 한턱 내야 한다.”
 “당연하죠. 그런데 오빠 좀 피곤해 보여요. 눈에 다크서클 낀 것 같아. 요즘 무슨 일 있어요?”
 “말도 마라. 요즘에 팔자에도 없는 무역학 공부한다고 생고생을 하고 있다. 뭐가 그렇게 어려운 용어가 많은지. 아휴,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현우의 말에 유나미가 다시 눈을 크게 떴다.
 “무역학을? 왜요? 뭐가 어려운데요? 궁금한 거 있으면 저한테 물어보세요.”
 그러자 이번에는 현우의 눈이 번쩍 떠졌다. 그러고 보니 유나미의 전공이 무역학이었다.
 게다가 유나미의 남자친구는 전공이 경영학이라고 했다. 그것도 한국 최고의 명문대학교라는 S대학교를 졸업하고 올해 초 자기 아버지의 회사인 중견기업에 입사했다고 들었다. 맡은 부서도 현우와 같은 구매부서였다.
 이보다 훌륭한 선생님들이 또 있을까?
 현우가 손가락을 튕겼다.
 “오, 그래. 네가 있었구나.”
 현우가 호주머니에서 작은 수첩을 꺼냈다. 이해되지 않는 게 있을 때마다 메모해둔 수첩이었다.
 수첩이 제법 두꺼웠는데, 거의 마지막 장까지 메모가 되어 있었다. 그만큼 모르는 것투성이였다. 유나미는 그것도 모르느냐는 식으로 가볍게 설명해주었다.
 “……FOB는 선측인도조건이라고 해요. 쉽게 이야기하자면 매도인이 본선의 선측에 인도…….”
 현우는 듯 눈을 크게 뜨고 귀도 활짝 열었다. 하지만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벽이 유나미의 말을 모두 튕겨내는 듯했다.
 유나미가 배시시 웃었다. 그러고는 가방에서 노트와 필기구를 꺼내서 탁자에 놓았다.
 “인코텀즈가 원래 어려워요. 그림으로 하면 이해가 빠를 거예요. 여기가 인도네시아 공장이고, 여기가 자카르타 항이고, 이건 화물선이고, 여기는 부산항, 여기는 오빠네 회사…… FOB는 수출자가 여기서 여기까지의 비용, 그러니까 물건을 자카르타 항의 배에 선적하는 데까지만 비용을 책임지고, 이후의 비용은 수입자, 즉 오빠네 회사가 책임지는 거죠.”
 현우의 눈이 번쩍 떠졌다. 이렇게 설명을 들으니 귀에 쏙 들어왔다. 더불어서 CIF 조건도 금방 이해가 갔다.
 “그럼 CIF 조건은 수출자가 부산항에 배를 접안시킬 때까지의 비용을 책임진다는 거네. 나머지 선적부터 우리나라 운송은 수입자가 책임지고.”
 “빙고. 와, 오빠 머리 좋으시다.”
 유나미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그러면서 다른 인코텀즈 조건들도 설명했다.
 현우도 기뻤다. 하나를 이해하고 나니 나머지 조건들도 머리에 쏙쏙 들어왔다.
 유나미는 시간 가는 줄 용어들을 모르고 설명했고, 현우도 유나미의 설명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몰랐던 것이 이해가 가자 가슴이 마구 뛰는 듯했다.
 덕분에 두 사람은 주변의 시선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커피숍에는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제법 많은 사람이 있었는데, 아까부터 현우와 유나미를 흘끔흘끔 바라보았다.
 물론 유나미의 엄청난 미모 때문이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아름다움이었다.
 여자들은 그런 유나미에게 질투의 시선을 보냈고, 남자들은 그런 미인과 찰싹 달라붙어서 수업을 듣고 있는 현우가 부러우면서도 존경스러웠다.
 한참을 설명하던 유나미가 고개를 갸웃했다.
 “PSI? 제조원가명세서? 손익계산서? 이런 것들은 회계 분야인 것 같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래? 이것도 꼭 알아야 하는데, 누구한테 물어보지?”
 현우가 곤란한 표정을 했다.
 그러자 유나미가 마침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는 듯 손가락을 튕겼다.
 “우리 오빠라면 알 거예요.”
 현우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유나미의 남자친구는 어려서부터 부족함이 없이 살아온 사람이었다. 한마디로 뼛속까지 상류층이었다.
 게다가 그는 유나미가 아는 사람이지 현우가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 거기에 만나는 이유가 오로지 현우에게 자질구레한 지식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유나미의 남자친구라고 해도 그런 식의 만남을 달가워할 리가 없을 것이다. 자칫 현우 때문에 유나미와의 사이마저 나빠질 수도 있었다.
 “됐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
 하지만 유나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어느새 휴대폰을 꺼내서 번호를 누르려고 했다.
 “지금 전화해볼게요”
 현우의 눈이 더욱 커졌다. 시간이 어느새 열두 시를 넘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전화하는 것은 시비를 거는 꼴밖에 되지 않았다.
 현우가 다급히 만류했다.
 “시간이 너무 늦었다. 다음에…….”
 “그럴까요? 그럼 내일 시간 어때요?”
 “나야 괜찮지. 그런데 너희가…….”
 “저도 괜찮아요. 내일 오빠 데리고 나올게요.”
 현우는 자꾸만 망설여졌다. 그 친구와 만나게 되면 왠지 불쾌한 자리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사람의 됨됨이를 만나보지도 않고 판단할 이유는 없었다. 어쩌면 생각지도 않게 괜찮은 사람일 수도 있었다.
 현우는 유나미의 남자 보는 눈을 믿어보기로 했다.
 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일 한 번 만나보자.”
 
 다음 날 저녁.
 현우는 퇴근하자마자 곧바로 유나미와 만났던 어제의 그 커피숍으로 향했다.
 다행히 유나미 일행은 오지 않았다. 현우가 수첩을 열고 질문할 내용을 정리했다. 어려운 자리이니만큼 너무 많은 질문은 곤란했다. 그래서 최대한 핵심만 요약했다.
 잠시 후 유나미가 웬 청년의 팔짱을 끼고 들어왔다. 말로만 듣던 유나미의 남자친구인 모양이었다.
 유나미만큼이나 피부가 하얀 귀공자 같은 청년이었다. 척 봐도 고생이라고는 전혀 모르고 자란 사람이었다.
 유나미가 두 사람을 서로에게 간략하게 소개했다.
 현우가 먼저 고개를 숙여 인사하려고 했다. 그런데 남자친구가 선수를 쳤다. 그것도 받아들이기 미안할 정도로 예의 바른 인사였다. 현우를 향해서 고개를 깊이 숙였다.
 “안녕하세요. 장덕우입니다. 나미에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평소 존경했는데 이렇게 직접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현우도 덩달아 고개를 깊이 숙였다.
 “반갑습니다.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번거롭게 나오시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무슨 말씀을요. 덕분에 우리 나미와 이렇게 데이트할 수 있게 되었잖아요. 그리고 말씀 놓으세요, 형님. 저 이제 겨우 스물다섯 살밖에 안 되었습니다.”
 현우의 얼굴이 환해졌다.
 사람이란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법이다. 게다가 현우는 수많은 일을 하고, 수많은 사람을 경험했다.
 그중에는 영업직도 다수 있었다. 백화점에서 카펫도 팔아보았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책도 팔아보았다. 심지어 약장수를 따라다니며 약도 팔아보았다.
 그런 경험이 많으면 자연스럽게 보는 눈이 생긴다. 얼굴이나 입성만 봐도 성격이 대충 짐작되었고, 몇 마디 나눠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가 눈에 훤히 보인다.
 물론 100%는 아니지만,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 그런 능력은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현우가 보기에 장덕우는 된 사람이었다. 적어도 자신보다 약한 사람이라고 해서 업신여길 사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붙임성이 좋았다.
 갑자기 유나미에게 미안해졌다. 남자친구 이야기를 들었을 때 돈 때문에 만나는 것으로 오해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직접 만나 보니 오히려 사람 보는 눈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하, 초면인데 그래도 실례가 아닐까?”
 “실례라니요. 나미한테 형님 말씀 정말 많이 들었어요. 너무 많이 이야기해서 샘이 날 정도였다니까요. 정말로 존경합니다, 형님. 이건 진심이에요.”
 현우는 장덕우의 말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유나미가 현우의 이야기를 했다는 것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문득 3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유나미는 전형적인 모범생이었다. 어려운 가정환경에도 불구하고 늘 웃음을 잃지 않았다. 공부도 매우 잘했고, 거기에 얼굴도 광채가 날 정도로 예뻤다.
 그런데 발육이 좋아서 성숙해 보이기까지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키가 이미 165cm가 넘었고 몸매의 윤곽도 웬만한 성인보다 더욱 뚜렷했다.
 교복을 벗고 화장을 조금만 하면 누구도 고등학생으로 보지 않았다. 영락없는 대학생이었다.
 그런데 감당할 수 없는 성숙한 미모가 유나미에게는 오히려 시한폭탄과도 같은 것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성숙한 미모를 이용해서 돈을 얼마든지 쉽게 벌 수 있기 때문이었다.
 유나미는 그 문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했다. 집안 경제사정이 갈수록 어려워지자 자꾸만 유혹에 흔들리게 된 것이다.
 현우는 유나미의 친구를 통해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현우는 사실 유나미를 보면서 평범하게 클 아이가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했다. 저런 엄청난 미모를 지켜줄 힘이 없기 때문이다.
 유나미의 길은 둘 중 하나였다.
 미모를 노리는 무리에게 패배해서 화류계로 빠지거나, 아니면 승리해서 빛나는 미래를 잡거나.
 당시 유나미는 패배하기 직전이었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때 현우가 손을 내밀어 주었다. 자신의 돈으로 누군가를 도와준 첫 번째 일이었다.
 유나미는 다행스럽게도 유혹을 이겨냈다. 그리고 다시 성실한 학생으로 돌아갔다.
 그때 현우가 느낀 행복감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돈이란 이렇게 쓰는 것이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타인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것인지를 처음 깨닫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한 달에 50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엄청나게 큰 것을 얻은 셈이었다.
 그런데 유나미의 보답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 인연을 바탕으로 이렇게 좋은 사람을 만나지 않았는가?
 현우가 진심을 담아서 장덕우의 손을 힘 있게 잡아주었다. 왠지 장덕우와의 인연이 굉장히 깊고 오래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나야말로 만나서 너무 반가워. 사실 부잣집 도련님이라고 해서 내심 어렵게 생각했었거든. 그런데 이렇게 편하게 대해주니까 정말 고마워.”
 한차례 뜨끈뜨끈한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러고는 자리에 앉아서 본론으로 들어갔다.
 현우가 수첩을 꺼냈다. 원래는 핵심만 물어서 짧게 끝낼 생각이었는데, 장덕우의 됨됨이를 보니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아예 대놓고 털어놓았다.
 “사실 나는 고졸이야. 무역 같은 거는 전혀 젬병이지. 그런데 갑자기 구매팀에 입사하게 되었어. 조만간 일을 맡게 될 것인데 아는 게 있어야 말이지.”
 “아, 그러셨구나. 나미한테 대충 이야기는 들었는데, 그러면 핵심이 조금 다르네요.”
 “핵심이 다르다니?”
 “저는 단순히 무역용어 같은 것만 궁금하신 걸로 알았어요. 그런데 사실 그런 용어는 코끼리 다리나 마찬가지거든요. 진짜 중요한 건 흐름이죠.”
 “흐름?”
 “자동차 운전을 예로 들어볼게요. 자동차는 사람이나 짐을 먼 곳까지 쉽게 옮겨주는 역할을 해요.”
 “그렇지.”
 “사실 자동차를 이해할 때는 이게 가장 중요하죠. 자동차가 뭐 하는 물건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핸들이나 브레이크나 비상깜빡이의 기능을 알면 뭐하겠어요?”
 “그러니까 구매팀 업무의 흐름을 먼저 알아야 나머지 무역용어들을 아는 게 의미가 있다, 이런 얘기네.”
 “그렇죠.”
 장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회사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그래도 구매팀의 역할은 대동소이해요. 단가를 네고하고, 자재를 탐색하고, 오더를 내고, 이력관리 하고, 제품당 자제비 관리하고, PSI 관리하는 수준이죠.”
 현우의 눈이 갑자기 팽글팽글 돌아갔다. 어려운 단어들에 의해 난자당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굉장히 어렵죠? 하지만 사실은 간단해요. 예를 들어서 티셔츠를 산다고 생각해보세요. 원하는 색깔과 디자인, 재질이 있겠죠? 그런 물건을 파는 업체를 찾는 겁니다. 그리고 가격 마지노선을 정해요. 물론 사서 되팔았을 때 손해 보지 않을 가격이 되겠죠. 그런 다음 여러 업체를 상대로 흥정을…….”
 그렇게 설명해주니 귀에 쏙쏙 들어왔다. 갑자기 눈앞이 밝아지는 듯했다. 그렇게 개괄적인 이해를 하고 나니 비로소 세부적인 용어들도 머릿속에 들어왔다.
 “그래서 인코텀즈가 필요한 거로구나. 회사가 실제로 지급할 비용을 정확히 알아야 손익계산을 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제조원가 뽑는 게 굉장히 어렵네.”
 “당연하죠. 그래서 직원 뽑을 때 손익계산서를 작성할 수 있으면 훨씬 우대하는 거죠.”
 현우가 보기에도 구매팀 업무의 핵심은 손익계산서였다. 그걸 확실하게 알아야 원자재를 구매할 때 어느 가격이 마지노선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 손익계산을 잘못해서 원가를 실제보다 낮게 계산한다면, 자칫 만들어 팔수록 손해가 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 손익계산서라는 게 사실 원리만 알면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닙니다. 거기에 엑셀까지 잘 다룰 수 있다면 금상첨화죠. 공식 만들어놓고 데이터를 대입하기만 하면 되거든요. 물론 데이터가 정확하다는 가정에서요.”
 현우는 갑자기 자신감이 폭발했다.
 현우가 지금까지 일한 곳은 대부분 직원이 많지 않았다. 그리고 거의 항상 현우가 막내였다.
 때문에, 어디를 가든지 컴퓨터는 현우 담당이었다. 물론 엑셀이나 한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엑셀을 사용할 기회가 많았고, 점점 많은 기능의 사용법을 숙지했다. 그런 지식을 바탕으로 포털사이트에서 지식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적어도 엑셀이나 한글에 있어서만큼은 전문가 못지않은 지식을 자신했다.
 현우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
 “공식? 어떤 식으로 만들어야 하지?”
 “그건 말로 설명하기가 어려워요. 내일 우리 회사에서 사용하는 걸 샘플로 가져와서 보여드릴게요.”
 “그래도 돼?”
 “괜찮아요. 프로그램은 제가 직접 만든 거고, 영업비밀은 다 지워버리면 되니까요.”
 현우가 장덕우의 손을 덥석 잡았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유나미가 옆에서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 * *
 
 사무실에서 현우는 여전히 활발했다. 누가 복사를 하거나 팩스를 사용하려고 하면 재빨리 일어서서 도와주었다.
 “제가 해드릴게요.”
 현우는 해야 할 공부가 많았지만, 복사나 팩스를 서두르지 않았다. 오히려 느릿느릿했다. 누가 보면 깔끔하게 처리하기 위해서 한 장 한 장 정성을 다한다고 생각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이유에서였다.
 ‘인보이스로군. 이건 패킹리스트고.’
 현우에게 복사나 팩스는 또 다른 공부였다. 구매팀 선배직원들이 어떤 서류들을 주로 처리하는지, 그 서류들이 어떤 조합으로 처리되는지, 그리고 어떤 식으로 작성되는지를 꼼꼼하게 살폈다.
 원가계산표나 손익계산서도 있었다. 예전이었다면 제목만 읽고 지나쳤겠지만, 지금은 그 구성요소들을 살폈다.
 복사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가서 메모했다. 구매팀에서 주로 다뤄지는 서류들의 목록이었다.
 그리고 저녁에 장덕우를 만나서 메모해두었던 것을 질문했다.
 “인보이스는 어떻게 작성되는 거지?”
 “오빠, 그건 내가 알아요.”
 장덕우가 현우를 만날 때면 유나미가 늘 함께했다. 덕분에 현우는 물론이고 두 사람도 이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현우는 두 사람을 자정까지 붙들고 늘어졌고, 주말에도 불러내서 맹훈련했다. 주말에는 원래 부모님과 노인들을 데리고 산행을 했지만, 마침 장마철이라서 겸사겸사 공부에만 매진했다.
 덕분에 이제는 책을 죽 훑어보아도 생소한 것을 찾기가 힘들 정도가 되었다.
 
 월요일.
 구매팀장 양수철과 김용구 대리, 조대영 대리가 ㈜아우름의 회의실에 모여 앉았다.
 팀장은 무척이나 기대에 찬 표정이었다.
 “드디어 신입사원들의 능력을 확인할 때가 되었군. 첫 업무로 어떤 것을 맡기면 좋을까? 김 대리, 뭐 좋은 생각 없나?”
 팀장의 물음에 용구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지난 며칠 동안 이날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신입사원들에게, 특히 현우에게 딱 맞는 첫 업무를 찾아냈다.
 “쉬운 것보다는 조금 어려운 것을 맡기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구매팀에서 용구의 위치는 확고했다. 입사하자마자 원가산출과 손익계산서 작성업무, 거기에 수출입업무까지 도맡아 처리하면서 구매 관련 업무의 핵심인물로 자리 잡았다.
 직급만 대리일 뿐이지 실질적으로는 팀장보다도 이쪽 업무에 밝았다. 구매팀은 대리인 김용구를 중심으로 조직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런 용구의 의견이었기에 팀장은 웬만하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게다가 구매팀 업무의 핵심은 손익계산서 산출이 아니겠습니까? 이번에 대만에서 수입될 원자재 건에 대한 손익계산서 작성을 맡겨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용구의 말에 팀장이 눈을 크게 떴다. 경력사원이라면 모를까, 그것은 생짜의 신입사원이 처리할 수 있는 업무가 아니었다. 한상훈이나 장영철 같은 주임들은 물론이고 용구와 같은 직급인 조대영 대리조차도 혼자 힘으로는 손익계산서 산출이 어려울 정도였다.
 “그건 너무 무리 아닐까?”
 “어차피 테스트입니다. 쉬운 업무로 자신감을 주는 것도 좋지만, 그것보다는 손도 못 댈 정도로 어려운 업무로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게 하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용구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사실 팀장은 이러나저러나 별 상관이 없었다. 특별한 하자가 없다면 용구의 의견을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면 누구에게 손익계산서 산출 업무를 맡길 셈인가?”
 “세 사람 모두에게 똑같은 업무를 맡겨보죠.”
 “뭐라고? 세 사람 모두에게?”
 팀장의 입이 떡 벌어졌다. 용구가 지목한 세 사람 중에는 회계의 ‘회’자도 모르는 것으로 판단되는 고졸 출신 현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장현우에게도 그 업무를 맡기잔 말인가?”
 “그렇습니다. 고졸이라고 해서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똑같은 위치에서 경쟁해야죠. 능력이 부족하다면 그만큼 더 열심히 해야 하고요.”
 “그러다가 포기할 수도 있지 않은가?”
 “만약 그런다면…….”
 용구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팀장이 눈을 크게 뜨고 용구의 이어지는 말을 기다렸다.
 “아무리 사장님께서 특별히 채용하셨다고 해도 이쯤에서 자진 퇴사하도록 해야죠.”
 팀장이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사장님이 장현우를 합격시키면서 당부했던 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잘 가르쳐보게.]
 
 그 말은 능력이 부족하다고 내쫓으라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없는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도우라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자진 퇴사하도록 만들자니.
 하지만 용구의 의지는 확고했다.
 “장현우 씨를 내쫓자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반대라고?”
 “구매팀이 어떤 곳인지를 확실하게 가르쳐주자는 것뿐입니다. 각성의 계기를 만들어주자는 거죠. 만약 그것도 이겨내지 못하고 도태된다면 사장님도 이해해주실 겁니다.”
 “음…….”
 팀장이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리고 결국 용구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었다.
 “알겠네. 그렇게 하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번 업무는 미션이니만큼 가장 성적이 저조한 사람에게 벌칙을 줄까 합니다.”
 “벌칙?”
 “일종의 자극제죠.”
 팀장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생각해놓은 벌칙이라도 있는가?”
 “자재관리 업무를 맡기죠.”
 순간 팀장의 눈이 살짝 커졌다.
 구매팀은 원래 생산지원팀의 일부였다. 그러다가 회사의 규모가 커지면서 생산팀과 구매팀으로 분리되었다.
 하지만 업무라는 것은 조직처럼 칼로 무 자르듯 명확하게 나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자재관리가 그런 업무 중 하나였다. 아직 업무구분이 명확하지 않아서 구매팀과 생산팀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형국이었다.
 한마디로 뜨거운 감자인 셈이었다.
 당연히 실무직원들은 업무를 다른 팀에 떠넘기고 싶어 한다. 일거리가 많아져서 좋을 건 없으니까.
 하지만 팀장의 입장은 반대다. 오히려 자신의 업무영역 아래에 두고 싶어 하는 것이 당연했다. 업무를 하나라도 더 쥐고 있어야 팀의 실적이 올라가고, 팀원 보충도 잘 이루어지고, 무엇보다도 승진에 유리해질 테니까.
 때문에, 어찌 보면 단순노동에 불과한 잡일이었지만 팀장의 시각에서는 다른 어떤 업무보다도 더욱 신경이 쓰이는 중요한 업무이기도 했다.
 게다가 업무량도 무척 많다. 마음 같아서는 구매팀이 독식하고 싶었지만 도무지 감당할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생산팀에 업무를 나누어주고 있었다.
 생산팀도 같은 입장이었다. 욕심에는 독식하고 싶지만, 단독으로는 감당이 안 되니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구매팀에 업무를 나누어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업무를 이제 막 들어온 신입사원에게 맡기다니. 그것은 자재관리 업무를 생산팀에 넘겨주자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용구의 말이 팀장의 그런 오해를 풀어주었다.
 “자재관리업무는 손이 굉장히 많이 갑니다. 이번 미션의 꼴찌에게 조 대리와 이강호 씨 업무를 지원하도록 한다면 일이 훨씬 잘 돌아갈 겁니다. 물론 고유업무는 별도로 맡기고요.”
 그제야 팀장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신입사원 한 명에게 자재관리 업무 일부를 맡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고졸 출신인 현우가 가장 적임자였다.
 그리고 이번 미션의 꼴찌는 당연히 현우가 될 것이다. 일이 순리대로 잘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조대영 대리도 기쁘기는 마찬가지였다.
 자재관리 업무는 사무업무라기보다는 현장업무에 가까웠다. 말하자면 구매팀 내에서도 3D 업종에 속했다.
 그래서 내심 현우를 탐내고 있었다. 사무업무는 젬병이겠지만, 현장에서의 막일에는 맞춤일 것 같았다.
 만약 현우를 벌칙의 개념으로 지원받는다면 온갖 자질구레한 일은 모두 떠맡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이상한 상상을 해보았다.
 ‘설마 민수지나 오상호 두 사람 중 한 명이 꼴찌를 해서 지원 오는 것은 아니겠지?’
 만약 그렇게 된다면 오히려 골치가 아플 것이다.
 곱상하고 연약한 민수지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오상호가 부담스러웠다.
 오상호는 미국 명문대학 출신으로서 사장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인재였다. 특히 사장이 사윗감이자 미래의 ㈜아우름 CEO로 점찍었다는 소문까지 있었다.
 그런 사람에게 험한 일을 시킨다는 것은 여간 껄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자칫 상전 한 명 더 모셔오는 꼴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접었다.
 ‘이번 꼴찌는 무조건 장현우다. 꼭 그래야 해.’
 “좋아, 김 대리 뜻이 그렇다면 밀어줘야지.”
 팀장이 호쾌하게 승낙했다.
 용구가 씩 웃었다. 현우의 미래가 눈에 보이는 듯했다.
 용구는 현우에게 온갖 잡다한 일을 모두 맡길 생각이었다. 낮에는 자재관리 지원으로 시간을 낼 수 없을 것이니 어쩔 수 없이 매일같이 야근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저는 오늘 원주 출장이 있습니다. 오후 늦게나 돌아올 것 같습니다.”
 “알고 있어. 조심해서 다녀와.”
 사무실로 돌아온 팀장이 현우를 비롯한 신입사원들을 팀장의 자리로 불러 모았다.
 “공지했던 대로 오늘 자네들에게 업무를 맡기겠네. 이번 업무는 테스트 차원이니만큼 누구의 도움 없지 자신의 힘만으로 처리해보게. 이봐, 김 대리. 자료 가져와 봐.”
 용구가 팀장에게 세 개의 서류철을 주었다. 오늘의 테스트를 위해서 미리 준비해둔 것이었다. 서류철마다 신입사원의 이름이 적혀있었지만, 모두가 똑같은 복사물이었다.
 “여기 있습니다.”
 팀장이 그것들을 신입사원들에게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신제품이네. 보면 알겠지만, 국내조달물품은 가격이 모두 확정되었어. 남은 것은 대만에서 수입하는 부분품들인데, 단가 마지노선이 얼마인지 찾아봐. 질문 있나?”
 팀장이 말을 마치자마자 민수지와 오상호가 눈을 크게 떴다. 동그랗게 커진 동공만 보아도 그들이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를 쉽게 알 수 있었다.
 반면 현우는 무덤덤했다. 마치 한두 시간 투자해서 타자만 치면 되는 일쯤으로 가볍게 생각하는 듯했다.
 그 모습에 용구가 아무도 모르게 슬쩍 웃었다.
 ‘흥, 똥인지 된장인지도 구분 못 하고 있군. 저런 놈은 빨리 구매팀을 떠나야 해.’
 용구는 현우가 싫었다. 어렸을 때 현우와 함께 있으면 될 일도 안 되었다. 현우는 늘 용구 인생의 걸림돌이었다.
 장성한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현우와 함께 있으면 가슴이 답답해지는 느낌이었다. 어떻게든 짓밟아서 꼼짝도 할 수 없게 만들어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게다가 지금은 용구에게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과장 진급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사장의 외동딸인 박민혜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했다.
 지금까지는 영업팀의 고영환 대리가 유일한 경쟁자라고 생각했는데, 느닷없이 오상호라는 불청객이 나타났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현우가 불쑥 나타난 것이 악몽처럼 느껴졌다. 어떻게든 최대한 빨리 ㈜아우름에서 쫓아내고 싶었다. 이왕이면 자신의 발로 나가주면 더욱 좋겠지만.
 “왜들 대답이 없어? 자신 없나?”
 “아닙니다. 자신 있습니다.”
 팀장의 재촉하는 듯한 물음에 민수지가 가장 먼저 대답했다. 그제야 오상호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해보겠습니다.”
 팀장이 현우를 바라보았다.
 “자네는?”
 그러자 현우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물었다.
 “언제까지 해야 하는 겁니까? 오전에 끝내야 하는 겁니까?”
 그러자 민수지와 오상호가 현우를 괴물 보듯이 바라보았다.
 적정 단가의 산출은 무척이나 복잡한 작업이었다. 제아무리 전문가라고 해도 하루 이상을 꼬박 투자해야 할 것이고, 우리 같은 신출내기들에게는 몇 날 며칠을 고생해도 모자랄 일이었다.
 그런데 오전에 끝내다니. 아무리 정확한 데이터가 나와 있는 상황이라고 해도 그건 도저히 무리였다.
 그야말로 무식의 끝을 보여주는 질문이었다.
 팀장이 가볍게 미소 지었다.
 “신입사원들에게 시간을 그렇게 박하게 줄 수는 없지. 오늘 퇴근하기 전까지만 하면 되네. 만약 내가 자리에 없으면 가격을 찾아내는 대로 휴대폰으로 문자 보내.”
 “아, 그 정도면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우가 안도하는 표정을 했다.
 민수지와 오상호는 그런 현우가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마음속으로 시간을 더 달라고 사정해볼까 했는데 현우 때문에 그 이야기를 꺼내기도 힘들어진 것이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더니 현우가 딱 그 꼴이었다. 단가산출이 뭔지도 모르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떠들어대고 있었다.
 팀장이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기운을 북돋아 주겠다는 듯 신입사원들을 향해 박수를 짝짝 쳐주었다.
 “좋아, 마음에 들어. 성적이 가장 저조한 사람에게는 벌칙으로 자재관리 업무지원을 보낼 거야. 그러니 벌칙 받기 싫으면 어서어서 움직이라고.”
 모두 자리로 돌아갔다.
 용구도 원주 출장을 위해서 사무실을 나갔다. 마음 같아서는 현우가 끙끙대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원자재 구매계약 일정을 미룰 수가 없었다.
 자리에 앉은 현우가 민수지를 흘끔 보았다.
 민수지는 자리에 앉자마자 서류철부터 열어보았다. 그러고는 절망한 눈빛으로 어깨를 들었다가 툭 떨어뜨렸다. 붉은 입술이 동그랗게 오므려지며 나직한 한숨을 토해냈다.
 그 표정에서 ‘아휴, 큰일이네.’ 하는 푸념이 들려오는 듯했다.
 오상호도 마찬가지였다. 손으로 이마를 짚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서류철만 바라보았다.
 그들의 모습을 보니 현우도 슬쩍 긴장되었다.
 장덕우에게 조금 배웠다고 하지만, 그래 봐야 겨우 일주일이었다. 일류대학 무역학과 졸업생인 민수지나 미국의 유명대학교 출신 오상호를 뛰어넘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내용은 단가산출이었지만, 어쩌면 장덕우에게 배운 것과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일지도 몰랐다.
 현우도 조심스럽게 서류철을 열어보았다.
 첫 페이지에 있는 것은 완제품 사진이었다. 사무용 의자였다. 프레임은 금속으로 되어있었고, 등받이는 판판하게 당겨진 천이었다.
 다섯 개의 다리에는 각각 바퀴를 부착해서 바닥을 굴러다닐 수 있도록 했다.
 신제품이라고는 했지만, 디자인을 보니 어디에선가 자주 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음 장을 넘겨보니 국내에서 조달될 원재료들이 있었다. 모두 단가가 확정되어 적혀있었다. 바로 다음이 대만에서 수입할 원재료들이었다. 적정 단가를 찾아낼 대상이었다.
 항목들이 무척 많고 용어도 어려웠다. 하지만 어려운 일일수록 쉽게 접근해야 하는 법이다. 서류의 내용에 끌려가기보다는 내 방식대로 서류를 이용하는 것이다.
 컴퓨터에 엑셀을 띄워놓았다.
 먼저 원가의 구성요소를 크게 재료비와 노무비 제조경비로 구분했다. 그리고 서류철의 내용을 각각의 구성요소로 나누었다.
 ‘먼저 재료비는…… 노무비는…….’
 간단하게 생각한다고 해서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재료비만 해도 표준원가가 따로 있고 실제원가가 따로 있다. 표준원가는 이론적인 설계로 만들어진 원가이고, 실제원가는 작업장에서 실제로 소요되는 원가였다.
 그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를 분석하는 것이 원가절감의 핵심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은 표준원가를 기준으로 해야겠지?’
 서류를 한 장 한 장 살펴가며 엑셀에 옮겨 적었다.
 ‘표준시간은…… 시간당 생산량이…… 투입인원은……. 이렇게 하면 표준공수가 나오겠군. 그리고 이건 폐기공수. 표준에서 폐기를 빼면 가치공수. 오호, 이렇게 나오는 거구나.’
 장덕우의 설명은 훌륭했다. 그의 말대로 계산하니 항목들이 하나씩 정리되었다.
 ‘덕우를 못 만났으면 어쨌을까?’
 생각하기도 두려울 만큼 끔찍한 일이었다. 가치공수의 계산은 물론이고 공수가 사람이나 기계가 할 수 있는 일의 양을 수치화한 것이라는 의미조차도 몰랐을 것이다.
 ‘이건 공수를 계산하는 데 필요한 자료로군.’
 현우는 서두르지 않았다. 서류들이 원가계산표의 어느 항목에 필요한 자료인지를 차근차근 따져가며 엑셀을 만들어 나갔다.
 민수지가 그런 현우를 흘끔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살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서류철을 펼치자마자 절망한 자신과 달리 현우는 담담했다. 그것도 모자라서 컴퓨터로 뭔가를 작성하기까지 했다.
 서류와 컴퓨터를 번갈아가며 보는 모습이 마치 서류의 내용을 정리하고 있는 듯했다.
 ‘설마 이걸 다 이해한다는 거야?’
 민수지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뭔가 열심히 하고는 있지만, 핵심을 찌르지 못한 엉뚱한 일일 것으로 생각했다.
 예를 들자면 손익 분기점을 찾아내는 것이 미션인데 단순히 자료만 정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으로는 이러다가 꼴찌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들기도 했다.
 민수지가 고개를 흔들며 애써 불안감을 털어냈다.
 ‘에이, 설마. 그래도 장현우 씨보다는 내가 더 잘하겠지. 그래, 두려워 말고 부딪치자.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보는 거야.’
 오상호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현우에 이어서 민수지까지 본격적으로 뭔가 작업을 시작하자 불안감이 엄습했다.
 오상호를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미국 유명대학교 출신이라는 자신의 학력이었다.
 민수지가 아무리 대한민국의 일류대학 중 하나인 한양여대를 나왔다고 해도 자신의 모교와는 비교되지 않는다. 게다가 현우는 그런 대학조차도 나오지 못했다.
 만약 그런 사람들보다 못한 결과가 나온다면 이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 다들 뒤에서 한국 대학교는커녕 고졸보다도 못한 유학파라고 비웃을 것이다.
 그럴 수는 없었다. 그럴 리도 없었다.
 오상호에게는 승패가 문제가 아니었다. 민수지나 장현우와는 급을 달리하는 성과를 내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 내가 저런 자들과 동급으로 취급당하며 경쟁한다는 것 자체가 창피한 일이다. 좀 어려운 미션이긴 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서 확실하게 보여줘야 한다.’
 오상호도 본격적으로 단가를 산출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퇴근 시간이 가까웠다.
 사무실은 여전히 분주했다. 하지만 현우를 비롯한 신입사원은 마치 정지화면처럼 움직일 줄을 몰랐다.
 팀장이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책상은 이미 퇴근 준비를 위해서 깨끗하게 정리된 상태였다.
 시계를 흘끔 바라본 팀장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먼저 일어섭니다. 신입사원들은 단가 나오면 나한테 문자 보내요. 손익계산서는 메일로 보내고요.”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구매팀장 양수철은 곧장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온 가족이 함께하는 모처럼 만의 외식이었다.
 “아빠, 여기.”
 양수철이 도착하자 딸아이가 한껏 고무된 목소리로 불렀다. 올해 중학생이 된 딸아이는 고급 레스토랑에 대한 로망이 남달라서 이런 곳에 한번 와주면 기분이 날아갈 듯했다.
 “많이 기다렸니?”
 “아니. 우리도 방금 왔어.”
 “우리 공주님 무엇을 사줄까?”
 함께 메뉴판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그때 문자가 왔다.
 “누구지?”
 양수철이 문자를 확인했다. 그러고는 얼굴이 일그러졌다.
 “장현우 이 사람!”
 아내가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아니오. 신입사원한테 일 좀 시켰는데 벌써 다 했다고 문자가 왔군. 의지가 썩어빠진 사람이야.”
 “일을 빠르게 처리하면 좋은 것 아닌가요?”
 “신입사원 따위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거든.”
 “그게 무슨…….”
 아내가 더욱 의아해했다.
 양수철은 더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가족 앞에서 직원을 욕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속에서는 천불이 났다.
 ‘장현우 이 사람 안 되겠어.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다니. 내일 따끔하게 혼을 내줘야지.’

댓글(17)

Nuan    
비밀글입니다.
2015.10.29 12:56
동그란과자    
...
2016.02.04 11:44
수노아부지    
잘보고 갑니다
2016.02.17 17:33
돼지갈비    
새로 읽기 시작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첫글에 감상평 남겨요. 많은 것을 얻어갈 수 있는 글입니다. 최고라는 단어를 아낌없이 사용해서 칭찬해주고 싶네요.
2016.09.07 21:49
2do1    
흠 솔직히 돼지갈비님 같은 댓글하나가 소설에 엄청 큰힘이 되는거 같음.
2016.09.12 14:03
2do1    
용구야 왜그러냐 찌질하게
2016.09.12 14:44
쪽빛하늘은    
현실에서 한양여대는 전문대로 알고 있는데...
2016.09.19 16:14
ki*****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한다
2017.11.29 17:43
술마루    
쥔공의 면접 상황을 보니 글 흐름 내내 답답할것 같아 여기서 그만~벌써부터 쥔공 괴롭히려구 사장부터 색안경쓰고 보는데 뭐하러 취직을 하는건지???????? 기분 좋으라고 보는 판타지에서 답답한 설정으로 스트레스 받는건 아니지 싶다.
2019.06.02 00:38
tr****    
근데 초반에 예쁜 여자들이 왜이리 많이 나와요 너무 개연성이 없잖아요 연예인 소설도 아니고
2019.06.06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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