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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왕은 당가의 무인이 되었다 1화

2024.04.29 조회 289 추천 1


  001화
 
 
 
 
 
 
 
 
 
 
  온몸에 불을 싸질러도 모자를 분노가 발끝에서부터 차오른다.
 
  피는 끓어오르고 외눈으로 보는 시야는 흐릿하기 그지없다.
 
  그 와중에도 선명하게 보이는 건 실 끊어진 인형처럼 축 늘어진 언데드 군단과 자칭 ‘용사’란 놈들.
 
  다시는 볼 일 없다고 생각했던 ‘죽음’이 그들에게 임해 있었다.
 
 
 
  “아······.”
 
 
 
  플루토의 볼을 타고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도대체 뭐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거냐고 아무나 붙잡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이곳에 남아있는 이는 자신뿐이었다.
 
  어깨에 박힌 도끼와 허벅지를 꿰뚫은 화살을 뽑아낼 때까지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 가슴에 박힌 성검(聖劍)을 뽑아내니 몸이 급속도로 무너졌다.
 
  세계의 법칙을 비틀어서 얻은 불로불사의 힘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언제나 비껴갈 줄 알았던 죽음이 ‘불사왕(不死王)’이라 불리는 자신에게조차 임하고 있었다.
 
 
 
  “하하하!”
 
 
 
  한참을 웃던 플루토의 시야가 다시 자칭 용사들의 시체로 향한다.
 
  용사 일행의 영혼은 어느새 그들의 몸에서 빠져나와 있었다.
 
 
 
  『스, 승자의 아량을 베풀어서 우리를 그냥 보내주시오.』
 
 
 
  마법사는 참 웃기는 놈이었다.
 
  아량을 베풀겠다고 할 때는 매몰차게 거절하더니 이제는 애걸복걸했다.
 
 
 
  『그쪽도 죽기 바로 직전이잖아. 어차피 죽을 거면 이러지 말고 마음을 곱게 쓰라고. 우릴 그냥 풀어주면 내가 특별히 당신이 받을 형벌······.』
 
  “형벌? 지금 형벌이라 그랬나?”
 
 
 
  플루토의 눈에 푸른빛 귀화(鬼火)가 어린다.
 
  그걸 본 용사 일행의 눈동자가 좌우로 빠르게 흔들렸다.
 
 
 
  “난 진리의 구도자로서 영원불멸에 이르는 해답을 찾았을 뿐이다. 형벌을 받을 만한 죄는 지은 적 없어!”
 
  『그 해답을 적용하려고 세계의 법칙을 그쪽 멋대로 비틀지 않았소. 그게 당신의 죄이고 잘못이오.』
 
  “내가 사특한 방법을 써서 그 해답을 찾았나? 아니면 법칙을 비틀어서 세상에 혼란이 일어났어?”
 
 
 
  용사 일행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나’라는 개인에게만 불로불사의 힘을 적용하고 조용히 연구만 하면서 살았다. 이게 어떻게 죄가 되지?”
 
  『허락받지 않고 법칙을 바꾼 게 죄야. 내가 여신님께 얘기해서 최대한 형벌을 덜 받게 해줄 테니까 우릴 풀어줘.』
 
 
 
  용사는 뱀 같은 혀를 움직여 플루토를 설득했다.
 
 
 
  『맞아요. 이렇게 계속 잡아두는 건 이성적으로 옳지 않아요. 우리를 여신님의 곁으로 보내주세요.』
 
 
 
  엘프 궁수는 용사와 다르게 조용히 자기 의견을 피력했다.
 
 
 
  『형벌을 받는 것과 받지 않는 것, 어느 쪽이 이득인지를 생각하게.』
 
 
 
  마법사는 그래도 개중에 가장 현실적으로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계속 이렇게 우리를 붙잡을수록 그쪽의 수형 기간이 더 길어질 거예요.』
 
 
 
  성녀가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협박했다.
 
 
 
  “······더는 못 들어주겠군.”
 
 
 
  딱!
 
 
 
  플루토가 손가락을 튕기니 용사 일행의 입이 막히고 수갑과 차꼬를 비롯한 구속구가 채워졌다.
 
  그 이후 한 번 더 손가락을 튕기자 바닥에 저절로 마법진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마법진에 담긴 주문의 이름은 ‘기사회생’.
 
  안전한 곳에서 다른 몸으로 부활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부작용이 있다면 영혼과 육체의 연결을 강제로 끊으면서 생기는 손상이 있어 한 번밖에 시도할 수 없다는 거였다.
 
 
 
  지이이이잉!
 
 
 
  완전히 마법진이 그려지고 은은하게 빛이 났다.
 
  용사 일행의 시체에서 뽑혀 나온 피가 마법진에 스며들었다.
 
  다른 놈들의 피는 문제가 없는데 성녀라고 주장하던 여자의 피는 거칠게 저항했다.
 
  플루토는 피에 강력한 지배력을 가지는 담피르(Dhampir)의 힘을 썼다.
 
 
 
  [굴복하라!]
 
  [굴복하라!]
 
  [굴복하라!]
 
 
 
  성녀의 피는 힘겹게 저항하다가 얼마 버티지 못하고 굴종하였다.
 
  용사 일행의 피가 모두 공급되자 기사회생 주문이 담긴 마법진이 은은히 빛났다.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플루토가 손가락을 다시 한번 튕기니 마법진에서 나오는 빛이 진해졌다.
 
  그와 동시에 구속구가 강하게 조여지며 용사 일행의 혼이 조금씩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읍읍읍읍읍!』
 
  『끄으윽!』
 
  『크윽윽읍읍읍!』
 
  『읍읍!』
 
 
 
  입을 잠근 구속구 때문에 네 명은 제대로 소리를 지르지도 못했다.
 
  그들의 몸에서 뽑아낸 정기와 영혼에서 뽑아낸 힘이 자기들끼리 부딪혔다가 결합하고 뒤섞였다가 흐트러지면서 무서운 속도로 크기를 키웠다.
 
 
 
  파지지직!
 
 
 
  스파크가 곳곳에서 일어나며 주변에 있는 것들이 둥둥 떠다녔다.
 
 
 
  ‘기회를 한 번 더 얻게 된다면 법칙을 비트는 게 아니라 뛰어넘어 죽음을 완전히 초월하겠어.’
 
 
 
  플루토는 마법진 안에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욱여넣었다.
 
  이윽고.
 
  마법진이 발동됐다.
 
 
 
  쩌저저적!
 
 
 
  영혼이 뜯어져 나가는 느낌과 함께 플루토는 정신을 잃었다.
 
 
 
  * * *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시간이 흐른 끝에야 플루토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삼공자님! 죽지 마세요. 이렇게 가시면 안 돼요! 제발요! 흑흑흑!”
 
 
 
  플루토는 자신의 몸을 붙잡고 우는 여자를 인상을 찡그린 채 바라봤다.
 
 
 
  “여긴 어디지?”
 
  “헉! 사, 삼공자님이 정신을 차렸어요! 의원님을 불러······!”
 
 
 
  그가 정신을 차린 걸 본 여자가 허둥지둥 밖으로 나가려는 그때.
 
  문이 열리고 작은 키를 가진 노인, 당천극이 방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세는 거친 야수 같았고, 눈빛은 날카로워 잘 벼려진 칼 같았다.
 
  그의 존재감은 방 안을 가득 채우는 걸 넘어서 분위기마저 바꿔놓았다.
 
 
 
  ‘이 정도로 기세가 뛰어나다니······. 보통 노인이 아니다.’
 
 
 
  믿기지 않지만, 노인의 기세는 기사들보다 훨씬 더 잘 정돈되어있었다.
 
  기사들보다 더 효율적인 방법으로 기운을 발휘하는 것 같았다.
 
 
 
  ‘기운의 정체를 모르겠군. 오러랑 비슷하지만 다른 것 같은데.’
 
 
 
  플루토는 고개를 작게 갸웃거렸다.
 
 
 
  “너는 이만 나가 보아라.”
 
  “아······ 네, 어르신.”
 
 
 
  허둥지둥하던 여자도 노인의 기세에 잔뜩 위축되어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갔다.
 
  플루토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당천극 쪽으로 이동했다.
 
 
 
  ‘도대체 뭐 하는 인간이지?’
 
 
 
  ‘제3의 눈’ 주문을 쓰기 위해 몸에 있는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런데.
 
  주문이 발동되지 않았다.
 
  이상하다 싶어 내부를 관조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흑마력이 조금도 없었다.
 
 
 
  ‘뭐 때문에 이런······. 아!’
 
 
 
  기사회생의 주문으로 몸을 바꾼 기억이 났다.
 
 
 
  ‘상황이 이러면 눈치로 정보를 파악하는 것 말고는 방도가 없겠어.’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당천극의 표정이 복잡하고 빠르게 변했다.
 
  이 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플루토는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장내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기억을 잃은 척을 해서라도 정보를 모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플루토는 당천극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당신은 누구고, 여기는 어디지?”
 
 
 
  대뜸 손자에게 반말을 들은 당천극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었다.
 
  그러다 어딘지 달관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할아비 앞에서는 기억을 잃지 않은 척해도 된다.”
 
  “그쪽과 내가 조손 사이란 건가?”
 
  “이미 두 번이나 써먹은 방법을 또 쓰다니 너도 다급하긴 한 모양이구나.”
 
 
 
  지금 같은 일이 여러 번 있었는지 당천극의 태도는 지극히 담담했다.
 
  기억을 잃었단 사람에게 보일 법한 반응이 아니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
 
  웬만해선 잘 당황하지 않는 플루토가 어쩔 줄 몰라 했다.
 
  기억을 잃은 척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써먹을 줄이야.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었다.
 
  아무래도 이 몸의 원주인은 보통내기가 아닌 듯했다.
 
  이제 와서 뭔가를 아는 척할 수도 없으니 일단은 밀고 나가는 수밖에.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군.”
 
  “썼던 방법을 계속 고집하겠단 거구나. 다른 방도가 없는 것 같으니 이 할아비가 도와주긴 하겠다만, 이 방법이 네 아비에게도 먹힐 거란 생각은 하지 마라.”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당천극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냉막한 인상의 중년 남자가 문을 열고 방 안에 들어섰다.
 
  당무진이었다.
 
  뚜벅뚜벅 걸어온 그는 힘껏 플루토의 뺨을 휘갈겼다.
 
 
 
  짜아악!
 
 
 
  플루토는 황망하여 화끈거리는 뺨에 손을 가져다 댄 채 멍하니 있었다.
 
  한 번으로는 성에 안 찬다는 듯 팔을 뒤로 빼 다시 한번 뺨을 갈기려고 했다.
 
 
 
  휘익!
 
 
 
  눈에 보이지도 않은 속도로 뻗어진 당천극의 팔은 당무진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만하거라! 저놈 아직 환자야! 지금도 정신이 온전치 않아서······.”
 
 
 
  팔을 붙잡혔음에도 당천극이 힘을 풀지 않아 붙잡힌 당무진의 팔이 부르르 떨렸다.
 
  놓아줄 생각이 없다는 걸 알게 된 당무진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언제는 저놈 머리에 제대로 정신이 박혀 있었답니까?”
 
 
 
  아들을 바라보는 당문진의 눈빛과 목소리에는 강한 불신이 담겨 있었다.
 
  당천극은 작게 한숨을 쉬며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감싸려고 그러는 게 아니다. 진짜로 저놈 정신이 온전치 않아서 그래. 조금 전에 여기가 어딘지, 내가 누군지 묻는데 진짜로 모르는 표정이었다.”
 
 
 
  사고를 치고 처벌을 피하고자 당서준이 거짓말한 게 몇 번인지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예전이야 엄마 없이 자란 당서준을 가장 아끼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서 당무진이 그냥 넘어가 준 적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 더는 그러지 않을 생각이었다.
 
  과감하게 벌을 내리지 못한 그의 마음이 아들을 망쳤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거짓말 같다면 네가 한번 저놈을 살펴보거라. 할아비인 나보다 아버지인 네가 더 잘 알겠지.”
 
 
 
  당천극은 잡고 있던 당무진의 손목을 놓아주었다.
 
  당무진은 붙잡혔던 손목을 매만지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놈에게 더는 측은지심을 가지지 않을 생각입니다.”
 
 
 
  아들이 강하게 마음을 먹었단 걸 느낀 당천극은 비장의 패를 사용했다.
 
 
 
  “먼저 간 저놈 어미를······.”
 
  “그래서 제가 결단을 내린 겁니다. 조금 늦긴 했지만, 지금이라도 엄벌로 다스리지 않으면 저놈은 패악질을 부리다가 칼을 맞아 죽을 테니까요.”
 
  “엄벌? 가택 연금이라도 시키려고?”
 
  “아니요. 저놈을 징벌옥(懲罰獄)으로 보내려고 합니다.”
 
  “징벌옥이라니? 저놈이 그 정도로 크게 잘못하지는 않았어!”
 
 
 
  화들짝 놀란 당천극은 당무진을 향해 소리쳤다.
 
 
 
  “저놈이 요구한 일과 자살극을 벌인 게 강호 전체에 퍼져서 본가의 명예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징벌옥을 보내는 건 너무 과해.”
 
  “지금까지 제가 그냥 넘어가 줘서 받지 않았던 벌까지 한 번에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절대 과하단 생각은 드시지 않을 겁니다.”
 
  “좋아, 그렇다고 치자. 그러면 얼마나 저놈을 거기에 가둬놓을 생각이냐.”
 
  “최소한 소문이 가라앉을 때까지는 가둬두려고 합니다.”
 
 
 
  그때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던 플루토가 입을 열었다.
 
 
 
  “······그 징벌옥이란 곳은 뭐 하는 곳이지?”
 
  “끝까지 기억을 잃은 척하겠다는 거구나. 오늘만 특별히 네 장단에 맞춰주도록 하마. 징벌옥은 가문에 해를 끼친 자들을 가둬놓는 곳이다.”
 
  ‘감옥이군.’
 
 
 
  감옥은 플루토 같은 흑마법사에게 휴양지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음침한 곳에 자리해서 다른 곳보다 흑마력이 많았고 원념 어린 영혼들도 권속으로 쉽게 거둬들일 수 있었다.
 
 
 
  “내가 무슨 짓을 벌인 건지 가감 없이 정확하게 알려준다면 좋겠다.”
 
 
 
  다시 생각해도 화가 치솟는지 당무진이 붉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가문 사람들과 손님들이 다 보는 앞에서 형의 정혼자랑 혼인을 시켜주지 않으면 자살하겠다고 했다. 당연히 들어주지 않자 넌 자살 소동을 벌였고.”
 
 
 
  말도 안 되게 과한 요구에 손님들 앞에서 자살극까지 벌였다니.
 
  심지어 소문의 주체가 자기 아들이라면 아비 입장에서 복장 터질 만했다.
 
  자신이 잘못한 일은 아니지만 이건 징볼옥에 가는 게 맞았다.
 
  물론 징벌옥에 들어가려는 이유가 전적으로 이것만 있는 건 아니었다.
 
  잃은 힘을 찾기 위해서는 감옥만큼 좋은 곳이 없다는 이유도 있었다.
 
 
 
  “내가 봐도 미친놈이었군. 징벌옥에 가는 게 맞겠어.”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무진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소문이 가라앉으면 나오게 해준다면서? 영원히 갇히는 것도 아닐 테고, 잘못을 했으니 벌을 받는 게 맞지.”
 
 
 
  사실 플루토로서도 딱히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지금의 자신을 되돌아보고 조용히 힘을 키울 기회가 만들어진 셈이니까.
 
 
 
  “징벌옥엔 당가에 대해 원한을 품은 이가 한둘이 아니다. 그중에는 추풍권(追風拳) 길주상처럼 잔혹한 손속을 가진 자도 있다. 네가 들어가면 그들이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래도 들어가겠단 거냐?”
 
  “그래, 들어가겠어. 대신 일주일의 말미를 줘.”
 
  “일주일 동안 도망칠 준비라도 할 속셈인가 보구나.”
 
  “아니, 기억을 잃었으니 사라진 것들을 다시 채워 넣어야 할 거 아니야. 그래야 그쪽이 말한 징벌옥에서 살아남지.”
 
  “기억을 채워 넣는다고?”
 
  “서고 같은 걸 이용하게 해줘.”
 
 
 
  당무진은 잠시 멈춰서서 생각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럼 딱 사흘 동안 서고를 이용하게 해주마.”
 
  “일주일!”
 
  “명심해라! 네가 서고에 있을 수 있는 기한은 사흘까지다!”
 
 
 
  당무진은 엄포를 놓고 다른 곳으로 떠났다.
 
  플루토는 당천극의 도움을 받아 서고 안으로 들어왔다.
 
  책을 고르려고 서가에 가까이 다가가니 익숙하면서도 낯선 글자가 적혀 있었다.
 
 
 
  ‘수······. 호······. 전······. 이래서는 책을 읽을 수 없어.’
 
 
 
  글자에 대한 기억이 느리게 떠올라서 책을 읽기 힘들었다.
 
  시간만 충분하다면 몸에 남아있는 기억과 지식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문제는 시간이 없단 건데.’
 
 
 
  징벌옥이란 곳에 갇히기까지 남은 시간은 사흘.
 
  그동안 기본적인 지식을 쌓아야 이곳에서 생존하고 적응하는 게 쉬워진다.
 
 
 
  ‘살아남기 위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게 웃기긴 하지만 지금은 이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
 
 
 
  가부좌를 틀고 앉은 당서준은 깊게 호흡했다.
 
  인격 침식을 방지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세우둔 벽을 완전히 없애버렸다.
 
  뇌 안에 남아있던 ‘당서준’의 기억들이 하나둘씩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글에 대한 기억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흘려보낸다.’
 
 
 
  기억의 파도에 휩쓸려서 자신의 인격이 혼탁해지거나 섞이는 일은 바라지 않았다.
 
  온전히 플루토 그 자신이기를 바랐다.
 
  불사왕이면서 네크로폴리스의 정점이고 망자들의 지배자이자 사법의 대가인 자신 말이다.
 
 
 
  ‘날 부르는 이름이 앞으로 플루토에서 당서준으로 달라지겠지만 나는 나로서 존재해야만 한다.’
 
 
 
  체에 거르듯 글에 대한 기억만 남기고 모든 것을 걸러버렸다.
 
  글만 알면 이곳에 대해 배우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기억은 웬만해선 남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물론 아직 인간인지라 아주 조금씩 기억이 남는 건 막지 못했다.
 
 
 
  ‘이것만 흘려보내면······. 됐다.’
 
 
 
  이제는 ‘당서준’이란 이름으로 살게 된 플루토가 자리에서 일어나 눈앞에 있는 서책의 제목을 읽었다.
 
 
 
  ‘이 책의 이름은 사기(史記)군. 가장 먼저 읽을 책으로는 이게 좋겠어.’
 
 
 
  과거부터 지금까지 오랜 세월에 걸쳐 변화해온 문화, 사상, 경제, 정치 등의 모든 것이 역사에 담겨 있었다.
 
  그렇기에 당서준은 사기를 비롯한 사서를 읽고 또 읽었다.
 
  덕분에 이 세상이 어떤 곳인지 대강이나마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이곳은 중원이란 곳이었고 무공이란 비전(祕傳)을 익힌 무인들의 세상 ‘무림’이 존재했다.
 
  그리고 당가는 그 무림에서도 힘이 꽤 강한 집단이었다.
 
 
 
  ‘이 세상에 완전히 적응하기 전까지는 당가를 이용하는 편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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