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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완벽한 계획.

2024.05.08 조회 51,317 추천 867


 어렸을 때부터 난 현실적이었다.
 내 계획은 완벽했다.
 
 이런 말이 있다.
 
 ‘부자인데 아무도 그걸 몰랐으면 좋겠어요.’
 
 어디서 들었는진 기억 안 나도 어떤 사람이 그랬다더라.
 맞는 말이다. 본질을 꿰뚫었다.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걸 아는 사람은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
 
 나로 말하자면,
 일단 태어나면서부터 전자는 충족했다.
 
 대한민국 일등 재벌, 성현그룹 현덕재 총괄 부회장의 막내 아들 현상윤 정도면 금수저가 아니라 다이아몬드 수저 정도는 넉넉하게 물고 태어난 거 아니겠나.
 
 문제는 후자였다.
 나를 아는 사람이 이 대한민국에 많아도 너무 많았다.
 
 [ 성현家 ‘후계자’ 현 부회장 막내아들 상윤군의 중학교 입학식. ······ 재벌가 총출동 천태만상. ]
 [ ‘성현 3세 학창 생활이 궁금해?’ 상윤군 중학 동창 서모씨 인터뷰. ······ ‘얌전하지만 리더십, 재치 갖춘 다재다능한 친구.’ ]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능력 밖이었다.
 내 다이아몬드 수저와 이 유명세는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딱 달라붙어 있어서 내 힘으로는 떼어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이른 나이에 내가 현실에 눈을 뜰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 힘입은 바가 크지 않았을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그래. 좋아. 이 정도 부자로 태어났으면 여기까지는 감내해야 하는 범위. 오케이, 인정. 하지만 더 이상은 안 돼. 곤란해.’
 
 이렇게 생각했던 게 아마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였을 것이다.
 아니 겨울방학 때였나?
 
 계획을 세웠다.
 
 첫 번째,
 
 ‘능력이 출중해 보여서는 절대로 안 돼.’
 
 능력이 출중하면 일단 그룹 사람들 눈에 띌 것이고, 원치 않는 후계 구도에 휩싸여 대권 경쟁을 해야 한다.
 당장은 아니어도 앞으로 벌어질 일이다.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니다.
 나는 아무도 모르게,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내가 가진 부를 누리며 조용히 살고 싶을 뿐이다.
 
 두 번째,
 
 ‘그렇다고 너무 싹수가 노래 보여서도 안 돼.’
 
 이 이야기를 하려면 우리 집안의 가풍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그 말은 적어도 우리 그룹 안에서는 입 밖에도 꺼내서는 안 되는 말이기도 했다.
 인사 실패다.
 대형 사고다.
 자리에 맞지 않는 사람이 그 자리에 오른다는 것은.
 어떤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건 그 자리에 걸맞은 자격이 있는 사람뿐이다.
 
 즉,
 만약 내가 단 한 번이라도 ‘재벌 3세’라는 내 자리에 걸맞지 않은 무능이나 실책을 보이고 만다면,
 자격을 잃은 내 대우는 지난달 입사한 인턴보다도 못한 것이 되고 말 것이라는 이야기다.
 혈육이라도 가차없다.
 그게 성현이다.
 
 편안하고 안락한 재벌 도련님의 삶?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유산?
 국물도 없다.
 
 성현은 피도 눈물도 없는 정글이었다. 그건 3세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것이었다.
 
 그러니 앞서 말한 두 가지 원칙이 지향하는 바는 명백하다.
 
 ‘계열사 하나 주기에는 계열사가 아깝지만, 그래도 3세는 3세니까 자기 앞가림이라도 할 수 있도록 소소하게 강남 알짜배기 건물 하나 정도는 줘도 될 만큼의 능력.’
 
 그 정도는 있어야 한다.
 최소한.
 
 다시 말하지만, 이건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세운 계획이다.
 난 현실적이고 계산이 빠른 인간이었다.
 
 대한민국 재계 서열 1위,
 세계로 뻗어나가는 굴지의 성현호, 그 선장이 되는 것은,
 물론 그 자체로는 명예롭고 야망으로 가슴 뛰는 일이지만 동시에 무척 피곤하고 가성비 떨어지는 비즈니스라는 것을 뚜렷하게 깨닫고 있었다.
 
 그 자리에 올라서는 것부터가 큰일이 아니던가.
 일단 두 명의 친형부터 이겨내야 한다.
 원치 않는다.
 
 ‘난 안 할 거야.’
 
 못하는 게 아니다. 안 하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198X년이 되었다.
 고등학교 졸업이 다가오고 대학 입시가 임박했다.
 
 ‘대학교.’
 
 갓 성인이 된 내 인생의 첫 번째 고비다.
 중요한 지점이기도 했다.
 너무 좋은 대학교를 가면 눈에 지나치게 띌 것이고, 그렇다고 나쁜 대학교를 가면 내 자리가 위험할 것이다.
 
 골치가 아팠다.
 공부가 어려워서가 아니다.
 
 나는 공부에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베스트는 서울 강남의 사립고에서 상위권 정도면 되는 성적이었다.
 이를 위해 남들보다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했다.
 
 왜냐고?
 이유는 이렇다.
 
 높은 점수를 내려면 열심히만 하면 된다.
 낮은 점수를 내려면 그냥 공부를 안 하면 된다.
 하지만 딱 원하는 정도의 성적을 철저하게 유지하려면 그 정도로는 쉽지 않다.
 어느 하나 놓치는 부분 없이 공부를 해야 한다.
 찍어서 점수가 오르거나, 혹은 찍어서 점수가 내려가는 경우의 수를 완전히 배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와는 별개로, 자제들의 대학 입시는 전경련에서 회장님들의 중요 화두가 되어 있었다.
 
 최근의 일 때문이었다.
 대운 손 회장의 일곱째 아들이 한국대 경제학과에 들어갔고, 뒤를 이어 정상 박 회장이 절치부심 끝에 그다음 해 첫째 손주를 한국대 사회학과에 밀어넣는 데 성공했다.
 
 얼마나 자랑이 심했을까.
 안 봐도 뻔하다.
 그 둘을 제외한 다른 회장님들 모두의 빈정이 상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누군 한국대 보낼 줄 몰라서 안 보내는 줄 알아?’
 ‘백날 공부 잘하면 뭐해. 장사꾼 자식이면 장사꾼 자식답게 경영을 잘해서 회사를 키워야지.’
 
 그리고 그 중에 우리 할아버지, 즉 대한민국 일등 재벌 성현의 창업주 현병건 회장도 있었다.
 
 이 와중에 내가 입시에 실패한다? 나만 죽일 놈이 되는 거다.
 돌아가는 분위기가 그랬다.
 그래서 계획을 세웠다.
 죽일 놈이 되지 않으면서도 너무 출중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잘했다.
 학력고사 점수 발표날,
 
 “현상윤!”
 
 수업이 끝나고 담임이 가장 먼저 나를 불렀다.
 
 “제군들, 다 알고 있겠지만 우리 반 현상윤 군이 이번 학력고사에서 301점으로 반 1등을 했다. 모두 박수.”
 
 원하는대로 300점대 턱걸이를 성공시켰다.
 
 짝짝짝,
 친구들이 박수를 쳤다.
 
 “상윤아. 한국대 쓸 거지?”
 
 이때만 해도 원서 접수는 전기와 후기 두 차례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한국대는 전기대에 속했다.
 
 “네, 선생님.”
 “좋다. 네 성적 정도면 한국대는 맡아놓은 당상이지. 학과는 어디로 갈 건가? 집에서 원하는 과가 있을 것 아니냐.”
 “글쎄요.”
 “이 점수면 한국대 상대는 어렵지 않겠구나. 하하.”
 
 학교 안에서 재벌집 자식임을 내세우고 다닌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선생님부터 반 친구까지 이를 의식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방금 이야기도 그렇다.
 
 “네, 제가 생각해 놓은 과가 있습니다.”
 
 바로 법학과.
 
 “뭐 법학과?”
 “지금 쟤 법학과라고 한 거야?”
 
 내 대답에 반 아이들 사이에서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커졌다.
 
 그럴 만하다.
 이 점수로 한국대 가기에는 충분해도 대한민국 최고 학부로 꼽히는 법학과까지는 무리다.
 340점 만점에 최소한 320점은 넘어야 한다.
 내 점수론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일부러 그러는 거다.
 처음부터 딱 아쉬울 정도로만 점수를 만들었다.
 
 전기 모집에서 아깝게 한국대 법대 탈락의 고배를 마신 다음, 후기 모집에서 가장 순위가 높은 안성대학교 법학과를 들어가는 것이 내가 구체적으로 세워 놓은 계획이었다.
 
 회장님은?
 
 좋아하지도 않겠지만 싫어하지도 않으실 거다.
 어쩔 수 없다.
 안성대 정도면 나쁘지 않은 아웃풋이니까. 그걸로 모자라면 형들처럼 일본이나 미국 대학교 간판을 차고 오면 되는 거고.
 주변 재벌집 애들은 다 그렇게 한다.
 아예 포기한 애들 빼고는.
 지나치게 출중하지도 않고 지나치게 못하지도 않는, 내가 원하는 결과가 바로 이거다.
 
 “하, 하하. 한국대 법대 좋지.”
 
 선생님은 당황했다. 내 예상과 한치도 어긋나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천하의 성현그룹 손주가 한국대 법대에 원서를 넣겠다는데, 거기에 ‘네 성적으로는 무리야’ 같은 말로 초를 칠 수는 없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뒤로 무슨 방법이 있으니까 그러겠거니 하고 넘어갈 뿐이겠지.
 
 ‘미안하지만 그런 건 없어요. 선생님.’
 
 그것조차 노린 거다.
 선생님이 이렇게 생각하고 방해하지 않을 거라 판단했다. 다행히 맞았다.
 덕분에 저항 없이 순조로운 원서 접수를 마쳤다.
 만족스러운 결과다.
 
 그뒤로 나는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며 알차고 보람찬 하루를 즐겼다.
 적어도 합격 발표가 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198X학년도 (한국) 대학교 (법학) 과 합격자 명단]
 
 ⋮
 265 현상윤
 ⋮
 
 눈을 비볐다.
 
 ‘잘못 본 건가? 이럴 리가 없는데.’
 
 혹시 동명이인인가? 그런데 접수번호는 내 번호가 맞는데.
 
 설마?
 정말 합격한 거야?
 
 “이런 시발.”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입밖으로 욕을 했다.
 계획은 완벽했다.
 그 계획이 재수 없이 나를 우리나라 재벌 3세 최초로 한국대학교 법학과 입학이라는 성과로 데려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왜였을까?
 무슨 이유로 내 완벽한 계획이 어그러진 걸까?
 
 그건 뉴스가 대신 말해줬다.
 
 - 금일 198X년도 대학 입시 전기대 결과 발표가 있었습니다. 30년 대학 입시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대학교 법학과 모집인원 미달 사태가 난 가운데, 입시요강에 따라 100점 미만을 제외한 지원자 전원을 합격시키는 것으로 결정하였다고 한국대 측이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
 
 
 
 ※ 이 소설의 내용은 허구입니다. 소설에 등장한 인명/지명/단체(회사)명 등이 실제와 같거나 유사한 경우, 이는 전부 우연의 일치임을 알려 드립니다.

댓글(43)

조졸졸    
잘보고가여
2024.05.11 17:31
g2**************    
잘보고갑니다 작가님
2024.05.12 20:22
고추냉이    
ㅋㅋㅋㅋ
2024.05.31 02:31
발로쓰냐    
?
2024.06.02 04:10
무념무상    
S대 미달은 있을수다 없어요
2024.06.03 01:46
tj*****    
1981년도에 본고사 폐지와 졸업정원제라는 갑작스런 입시제도 변경으로 서울대 미달나서 서울대법대 180점 정도로 받은 사람이 합격한 실화 잇어요 ㅋㅋ
2024.06.04 08:30
산방학    
합격한분 1학년 1학 기 다니다 자퇴를 이분 때문에 학칙변경 ㅋ
2024.06.05 09:57
as*****    
잘보고갑니다
2024.06.05 11:11
빛의포효    
저거말고도 눈치접수하다가 미달난 사건도 있었는데.
2024.06.06 05:06
검선    
시험은 320점 체력장 20점인데...
2024.06.06 19:08
0 / 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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