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도둑질은 나쁜가?
“장수석! 거기 서! 아니, 그거 내려놓고 다시 얘기하자!”
장물의 소유권이 명백히 한쪽에 있다면 그러하다.
허나 절반 이상의 지분이 도둑에게 있는 상황이라면?
그것은 소유권 주장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상무 진급시켜주고 조직 운영권도 준다니까! 멈추라고!”
“좆까! 안 믿어!”
그건 일종의 젠트리피케이션이었다.
기껏 인테리어하고 장사해서 대박집을 만들었더니, 부르주아지가 임차인을 쫓아내고 본인이 같은 장사를 하는 야만적인 행태.
개발이 완료되자마자 내게 벌어진 일은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완료 보고를 올렸을 때 개발 조직 운영권을 빼았겼다.
책상은 화장실 옆으로 바뀌어버렸다.
“죽어라 이 어려운 걸 해냈더니, 내 자리를 뺐어?”
“아니, 주변에 좀 잘 하던가! 같이 일 못 하겠다는 사람들 뿐인데 어떻게 해!”
기업의 논리 아래.
트러블을 만드는 한 사람보다 팀을 살리는 것이 낫다는 것.
그런 식의 경제적 판단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근데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비켜 이 새끼야!”
“어··· 어? 회사 물건 무단 반출은 불가··· 으억!”
가로막는 보안 게이트의 요원에게 달궈진 납땜 인두를 휘두르며 관문을 돌파했다.
“야. 여기 한국이야! 너 그러다 잡히면 감옥 간다고!”
“아, 됐고요! 센터장님! 학습 모델 코드가 AGI 코어 기술인 거 아시죠? 제대로 대화할 생각 있으면 하꼬 부사장 말고 부회장급 인사가 대가리 박고 사죄하라고 하십··· 으다다닷?!”
씨이팔.
뭔 놈의 민간 보안 근무자가 테이저건을 들고 있어?
“움직이면 또 쏜다!”
말을 끝마치지도 못하고 바닥에 고꾸라졌다.
대가리부터 땅에 떨어지며 끔찍한 고통이 온몸을 휘감았다.
허나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파칫.
파치치칫.
이 모듈 박스가 빌어먹게 예민한 탓에 테이저건 만큼의 과전류를 견딜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문제가 생기면 데이터를 백업하며 시스템 전부를-.
[초기화를 시작합니다. 10··· 9···]
그렇게 놔둘 수는 없다.
일종의 항의 시위였을 뿐, 평생의 연구물이 초기화?
대가리가 깨지는 것보다 그게 더 싫다.
다행히 아직은 방법이 있다.
억지로 팔을 뻗어 긴급 정지 버튼에 손가락을 내밀었다.
그러나 이 모듈의 중요성을 모르는 보안 요원의 눈에는, 내 절실한 동작이 다른 의미로 다가온 듯했다.
“움직이지 말라니까!”
파지지지칙!
2차 세례가 퍼부어졌다.
온몸에 전류가 내달렸다.
뇌까지 타버리는 고통.
젠장.
이거 조졌네.
[리부팅을 시작합니다.]
절대 보기 싫었던 문구가 떴다.
완벽하게 텄다.
생뚱맞게 내일 뉴스 헤드라인이 걱정됐다.
‘제3국으로 국가 보호 산업 자료을 빼돌리려던 연구원 현장에서 검거?!’
엄마! 누명이야!
나 그런 놈 아닌 거 알잖아!
동시에 시야가 하얗게 물들었다.
고대하던 기절이었다.
그리고 하얗게 물들었던 시야가 다시 돌아왔을 땐.
“장세진 병장! 장세진 이자식 어딨어!”
나는 23살의 어느 봄날로 되돌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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