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조선 석유왕 : 독립투사는 만주 대신 미국행을 택함

종가집

2024.05.08 조회 26,203 추천 460


 202x년 봄의 어느 날.
 이제 본채만 덩그러니 남은 종가집.
 
 자정을 넘긴 시간이지만 집단 야근에 들어간 풀벌레들의 울음소리에 귀가 멍멍하다.
 
 뚜루루루~뚜루루루~뚜루루루~뚜루루루~
 뚜루루루~뚜루루루~뚜루루루~뚜루루루~
 
 서울에서 경주까지 차로 4시간.
 그리고 경주 시내에서 다시 40여분.
 
 종가집까지의 여정은 늘 피곤했다.
 
 그나마 위안거리가 있다면 제사를 마치고 나와 밤하늘에 뜬 별들을 구경하며 맛보는 담배 한 개비.
 
 대문을 나와 담벼락을 돌아 구석진 곳으로 갔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한 개비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치익~!
 
 쓰으으읍~ 후우우우~~~
 
 담배를 물고 하늘의 별을 구경했다
 
 오늘 따라 별이 유달리 많네.
 그 가운데 유독 빛나는 별이 보인다.
 
 저건 뭐지.
 별 공부 좀 하고 내려온다는 게 늘 잊어버리네.
 
 밤 하늘 정 가운데 빛나는 이름 모를 밝은 별을 보며 몇 모금을 더 빨아 마신다.
 
 쓰으으읍~ 후우우우~~~
 
 그 때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경률아. 음복 시작한다. 빨리 들어와~”
 
 반사적으로 담뱃불을 끄며 대답했다.
 
 “아. 예! 들어가요.”
 
 소위 경주 최씨.
 수 많은 종파로 갈라지는 최씨 집 안의 한 끄트머리를 차지한 것이 우리 큰집이다.
 
 여러 갈래 중 하나라도 종가는 종가.
 
 코스는 늘 똑같다.
 
 제사를 지내고 나서
 커다란 제사상에 둘러 앉아 큰 어른인 할아버지의 옛날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러니까. 우리 땅이 저기 산 너머까지 있어서. 그 때는 달구지를 타고 돌아도 아침에 나가면 저녁이 다 되야 집에 들어왔다니까.”
 
 “그 때는 대단했겠네요.”
 
 삼촌과 고모들의 맞장구가 이어지면 신이 나신 할아버지는 옛추억을 끄집어 내어 상 위에 깔아 놓는다.
 
 “그렇지 지금으로 치면 재벌들이 부럽지가 않았지. 대구까지 장사꾼들이 돈을 꾸러 왔으니까.”
 
 할아버지의 추억 팔이와 어른들의 맞장구가 이어지는 사이,
 구석에 앉아 조용히 음식을 먹었다.
 
 늘 같은 레퍼토리라 뒷이야기는 안 들어도 줄줄이다.
 
 - 가진 땅이 워낙 넓어 끝이 보이지가 않았다.
 - 가을이면 거둬들인 곡식이 산처럼 쌓여 창고로 옮기는 데만 며칠이 걸렸다.
 - 집안에 일하는 일꾼이 수십이 넘었다.
 - 당시 경상도에 전화기가 처음으로 놓여서 서울하고 통화를 하려면 사람들이 백리 밖에서 찾아왔다.
 등등등등.
 
 음복으로 겸한 정종이 그날 따라 독했던 걸까?
 아니면 임용고시를 준비하느라 쌓인 스트레스 때문일까?
 것도 아니면 누구 말대로 타고난 반골 성격 때문일까?
 
 평소라면 가만히 듣고만 있었을 텐데.
 나도 모르게 속 마음이 툭 튀어 나왔다.
 
 “거 참. 좀 아껴 쓰고 후손들한테 물려주셨으면 좋았을 것을요. 그럼 우리도 좀 편했을 텐데.”
 
 순간.
 화기애애하던 식사자리에 찬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경률이 너 그게 무슨 소리냐?”
 
 할아버지 목소리에 은근한 노기가 담겼다.
 
 “그냥. 그렇다고요. 재산을 좀 아껴두셨으면 좋았지 않을까 하는. 그 대단한 재산 10분의 1만 있어도 기와집 수리비는 충분히 나왔을 거 같은데···”
 
 “경률아.”
 
 아버지가 부른다.
 그만 하라는 소리시지.
 
 나도 찔끔해서 물러서려는데 고집하면 최씨 라고들 하지 않나.
 보통 고집 센 사람들은 성격도 급하다.
 
 아버지가 상황을 정리하기도 전에 할아버지가 언성을 높였다.
 
 “이놈아. 다 우리 큰 아버님. 최 경자 률자 할아버님께서 나라를 위해 헌신하시느라 그런 것이 아니냐.”
 
 나도 어쩔 수 없는 최씨인가 보다.
 생각보다 말이 먼저 나왔다.
 
 “저. 노름으로 다 날리셨다고 들었는데···”
 
 “이 놈이! 누가 그런 망발을 해!”
 
 사실 둘 다 맞는 말이긴 하다.
 
 나와는 이름이 같은 최경률.
 나에게는 증조부가 되시고, 할아버지께는 큰 아버지가 되시는,
 그러니까 백 여년도 넘는 지금부터 한참 위인 구한말,
 일본이 조선 땅으로 들어오고 난 뒤로 우리 최경률,
 편의상 1세라고 부르자.
 그러니까 그 최경률 1세께서 그 많은 재산의 대부분을 홀라당 노름으로 탕진하신 거다.
 
 물론 이후에 독립운동가들의 흔적을 재추적하는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사실은 우리 최경률 1세께서는 외형상 노름꾼으로 위장해 독립군들에게 몰래 자금을 대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긴 했다.
 
 대단한 스토리고,
 영웅적인 이야기고,
 사회에 귀감이 될 만한, 노블리스 오블리주에 가장 부합하는 선택이시긴 했지만.
 
 문제는 후손된 내 입장에선 경상도 지방 전체에서 소문이 자자했다던 재산을 조금이라도 좀 남기시지 그랬냐고 하소연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안 그래도 낡은 기와집 수리 비용을 어떻게 마련하냐며 어른들이 나눈 고민 섞인 대화를 들은 입장에선 말이다.
 
 “나라가 있어야 집안이 있고! 집안이 있어야 가정이 있고! 가정이 있어야 네가 있는 것이야!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것은 명예로운 일인 것을. 이 놈이 세상 천지도 모르고···.”
 
 할아버지의 훈계가 쏟아지려는 것을 간파한 어른들이 얼른 중간에 끼어든다.
 잘못하면 자기들도 훈계소리를 몇 시간씩 들어야 할 지도 모르기에.
 
 “참으세요. 아버지.”
 “그래요. 진정하세요. 경률이는 밥 다먹었으며 사랑방 가서 좀 자. 멀리 와서 피곤하겠다.”
 “그래. 술이 좀 된 거 같으니 얼른 들어가 자라.”
 “쟤가 시험 공부한다고 스트레스가 많았나 보네.”
 "그래도 이번에 취직했다면서요?"
 "그래. 대단하네. 그 어려운 곳에 다 들어가고. 석유 뭐라고 했나?"
 "한국석유공사요."
 "이야. 공기업이네. 대단하네."
 
 어른들이 주제를 내 취직자리로 옮기는 사이 얼른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오래된 한옥이지만,
 부자 죽어도 3대는 간다고.
 크기만큼은 작지 않다.
 
 본체와 안채, 그리고 사랑채와 그 너머 하인들이 머물렀다는 건너방까지.
 
 서른 개가 넘는 방에 곡식을 쌓아두던 커다란 광까지.
 소를 키우던 외양간에 마구간까지 별도로 있다.
 
 지금으로 치면 스포츠카 급인 말까지 키웠으니 얼마나 부자였는지 알만하긴 하다.
 
 그 중 사랑채로 넘어가 바닥에 누웠다.
 
 술기운이 올라와서 그런지 추운 지는 모르겠다.
 
 크고 오래된 집에는 방 마다 사연이 있기 마련.
 자연스럽게 사랑채에 깃든 사연을 떠올린다.
 
 나와 이름이 같은,
 최경률 1세께서 쓰시던 방이 바로 사랑채다.
 
 백 수십년 전 우리 최경률 1세께선 무슨 생각으로 전 재산을 들고 독립운동에 투신하셨던 걸까.
 
 그렇게 궁금증과 아쉬움이 뒤섞인 채
 백 수십년 전 최경률 옹께서 누워서 바라봤을 천장을 똑같이 바라봤다.
 
 무슨 쓸데없는 생각을.
 
 너튜브나 보면서 잠을 청할 생각에 핸드폰을 꺼냈다.
 
 자주보는 영상이 알아서 올라온다.
 요즘 꽂혀 있는 건 프라모델 제작영상.
 
 오랜 취미지만 한 동안 취업 준비로 손을 놓고 있었다.
 
 월급을 받으면 곧바로 일본으로 넘어가 실컷 사 가지고 와야지.
 방 하나를 프라모델로 가득 채우는 상상을 하며 영상을 튼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모델은 바로 군함.
 
 오늘 고른 영상은 거함거포 시대의 문을 열어제낀 전설의 전함.
 드레드노트다.
 
 이야. 역시. 남자는 크고 아름다운 게 최고지.
 
 영상을 보며 잠을 청했다.
 
 밤이 깊어가고.
 그리고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
 
 “도련님! 일어나셔요! 큰어른께서 찾으십니다요! 빨리요!”
 
 바깥에서 들리는 목소리.
 눈가를 간지럽히는 빛줄기에 눈을 떴다.
 
 잠들기 전에 본 것과 같은 천장.
 하지만.
 
 뭔가 살짝 다른 거 같은데.
 왜 이렇게 새것처럼 보이는 거지?
 
 궁금증이 채 풀릴 새도 없이 방문이 빼곡히 열린다.
 
 끼이이익~~
 
 “아이고 도련님! 뭐하세유 누워서! 빨리 안채로 가보셔유! 큰어른께서 빨리 오시라고 했다니께유!”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처음 보는 얼굴.
 근데 나도 모르게 친근하다.
 
 그리고 머리 속에는 자연스럽게 눈 앞의 사내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다.
 
 “돌쇠라고?”
 
 돌쇠라는 사내가 고개를 갸웃한다.
 
 “뭔 말씀이셔요.? 저가 저지. 왜 물으셔요?”
 
 그리고 들어오는 수 많은 정보들.
 밀려 오는 정보들에 정신을 못 차리겠다.
 
 돌쇠.
 머슴들 중 유일한 충청도 출신인 충청댁의 아들로 이 집안의 머슴 중 한 명이다.
 
 그리고 이어서 내 것인듯 선명한 기억들이 스쳐 지난다.
 
 뛰어 놀던 산과 들.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기억과 아버지의 훈계.
 수 많은 기억의 홍수 속에 몸을 벌떡 일으켰다.
 
 비틀거리며 문지방을 건넜다.
 
 “조심하셔요! 도련님! 오늘따라 왜 이러신댜. 어제 술이 과하셨나.”
 
 문지방을 넘어 눈 앞에 광경을 바라봤다.
 
 너른 마당 위를 부지런히 오가는 식솔들의 모습.
 
 그 너머로 보이는 기와집 굴뚝 위로 연기가 피어 오르고.
 
 그 너머로 산과 들이 아득하게 펼쳐져 있다.
 
 지나던 머슴들이 나를 보고는 서둘러 허리를 접어 인사한다.
 
 이럴 때는.
 손을 들어 세게 빰을 후려친다.
 
 짝!
 
 “아이코! 왜 이러신댜! 도련님! 뭔 일이래! 어디 아파요?!”
 
 뺨이 얼얼하다.
 대신 뒤죽박죽이었던 정신이 선명하게 각이 잡힌다.
 
 그리고.
 
 “경률 도련님! 정신 드셔유? 네? 도련님 이게 몇 개유? 말씀해 보셔유. 이게 뭐개유?”
 
 가만 경률이라고?
 고개를 돌려 돌쇠를 내려다 봤다.
 
 “내가 최경률이라고?”
 
 “그럼 누구예유. 아따. 큰 일이네. 큰어른께 혼날라고. 빨리 세수부터 하셔유. 해가 머리 위에 떴는 디 아직 술이 덜 깼으면 어쩐 댜. 큰일이네.”
 
 걱정이 가득한 돌쇠의 얼굴을 보니 돌아가는 상황이 어떤지 확실해졌다.
 
 나는 최경률이 됐다. 2세가 아닌 130여년 전, 최씨 집안을 물려받을 장손. 최경률이.

댓글(46)

대역    
시작 좋네요
2024.05.08 13:33
조졸졸    
재밌어요
2024.05.10 10:58
실버윈드    
건필하세요
2024.05.10 15:06
장다리1    
고조쯤 되야 시대가 엇비슷할텐데
2024.05.11 17:50
as*****    
재미있게 잘 보고 갑니다
2024.05.12 07:31
풍선    
생각해보면 그렇게 헌신한 재산 나라가 힘을 되찾은 지금이라도 세금으로 일부나마 보전해줬으면 좋았을텐데
2024.05.14 14:40
bpolt    
푸켓//그걸 할 수 있는 법이 만들어지려면 친일파 재산 환수법도 같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정치인 연놈들 중에 친일파 자손들이 많으니 될 리가 없음
2024.05.16 19:54
나이런일이    
그래서 이승만이 개새끼라는거다.
2024.05.21 04:03
나이런일이    
이승만 박정희 두 친일파가 반민특위를 절대 못하게 했지
2024.05.21 04:04
jo****    
독립운동 (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 하는 투쟁 ) 조상은 독립운동( 일본으로 부터 독립 ) 하다 돌아가셧는데 . 후손이란 놈은 돈생기면 일본가서 프라모델 산단다 !! 양반 체면에 욕은 못하겠고 . 에라이 . ㄴㄱㅁ ㅆㅍ 이다.
2024.05.21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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