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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식 레코드 - 001

2024.05.08 조회 81,948 추천 1,306


 1-
 
 
 
 
 
 Narcolepsy: 기면증
 
 병이다.
 수면을 자기 의지로 조절하지 못하는 신경정신성 질환.
 
 졸리다거나 나른하다거나, 기타 전조증상 없이 풀썩 쓰러져 잠이 드는데, 이런 증상이 대낮에도 수시로 일어난다.
 
 그래봐야 고작 잠이 드는 거 아니냐고?
 
 맞다.
 초기 증상은 그저 잠이 드는 것뿐이다.
 
 하지만 잠드는 장소가 실외면?
 
 평범하게 길을 걷다 잠이 드는 것도 문제겠지만, 계단을 내려가거나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이었다면? 또는 운전 중에 잠이 든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더 심하게는 군대에서 수류탄 안전핀 뽑고 잠든다고 생각해보자. 이건 너무 끔찍한가?
 
 어쨌든 실내 생활을 강요당하는 불편한 질병임에 틀림없다.
 
 그런 대한민국 기면증 환자가 약 6천 명.
 저들 중에도 심각한 증세는 또 소수라지만, 전체를 봐도 인구 대비 0.02%가 채 안 된다.
 
 내가 저 희박한 확률을 뚫은 케이스였다.
 그마저도 증세가 가볍지 않은.
 
 “야! 신서준! 넌 밥 먹다가도 자냐?”
 
 숟가락 들고 고개 처박는 건 예사.
 
 “저건 밤마다 뭐하길래 항상 수업시간에 자?”
 
 수업 중에 잠들어 혼난 적도 많았다.
 
 당연히 선생님들에겐 불성실한 학생이었다.
 희귀한 질환. 국민 모두가 접해보기엔 환자 수가 적고, 사람은 보통 처음 보는 사례에 자기 상식으로 판단하니까.
 
 “샘! 서준이 기면증이래요.”
 
 “기면증?”
 
 “자기도 모르게 잠드는 병이요.”
 
 주변에서 변명을 해주면,
 
 “아이고, 저래선 밖에도 못 돌아다니는 거 아니냐?”
 
 이해해주는 사람도 있고.
 
 “좋은 핑계 생겼네. 정신 차리려고 노력을 해야지.”
 
 그냥 변명이나 핑계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괜찮았다. 이해해주는 사람은 고마운 거고 자기네 상식으로만 판단해 핑계라 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는 거고.
 
 문제는 따로 있었다.
 
 
 “서준이 너 지금은 그나마 잠드는 수준인데 언제 다른 증상이 찾아올지 몰라. 이번에 준 각성제는 부작용도 없는 거라니까 밖에 나갈 일 생기면 꼭 미리 먹어둬.”
 
 
 바로 이 수면센터 의사 선생님의 경고.
 
 낮에도 불시에 잠이 드는 가벼운(?) 증상을 넘어, 발작과 마비는 물론 심하면 환각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
 
 
 
 그래서였다.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주변이 낯선 곳이었어도 크게 놀라지 않았다.
 
 잠들거나 깨어나는 순간, 현실과 동떨어진 환각이나 환상을 경험할 수 있다! 이것 역시 기면증의 추가 증상 중 하나인 ‘졸음성 환각’이었으니 말이다.
 
 처음 보지만 익숙한 환경이기도 했다.
 
 시선 닿는 곳이 전부 책장?
 실외 활동이 위험하니 책 보고, 티비 보고, 게임이나 하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실제 도서관은 익숙했다.
 
 환상이든 환각이든 그것도 결국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면 낯선 곳에서 익숙함을 느끼는 것도 당연했고.
 
 어떤 비현실이 현실로 다가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누, 누구세요? 여긴 어떻게 왔어요?”
 
 그러니 이런 낯선 목소리까지 들었어도 그러려니 했다.
 
 어차피 환각, 환상일 텐데 뭐.
 
 돌아봤을 때 아쉽기는 했다.
 현실이면 이미 손자손녀 이름까지 지었을, 인스타그램 보정 떡칠로는 구현 불가할 듯한 소녀(?)가 허공에 떠있었으니까.
 
 사람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눈썹 축 늘어진 게 딱 주인한테 혼나고 시무룩해진 골댕이 상이다.
 
 소녀는 주눅 든 말투로 다시 물었다.
 
 “진짜 누구세요?”
 
 확신했다.
 
 파란 눈만 봐도 외국인인데 한국어로 이렇게 위화감이 없는 대화? 무엇보다 너 지금 허공에 떠있어?
 
 환상이지.
 확실히 환상이지만 문득 이런 환상이면 괜찮다 싶었다.
 
 맞장구를 쳐주기로 했다.
 
 “소개는 본인이 먼저.”
 
 “······ 당황스럽네요. 저는 미아예요.”
 
 “난 신서준.”
 
 “여긴 어떻게 왔어요?”
 
 “음, 우연히?”
 
 “우연히? 여긴 우연히 올 곳이 아닌데···”
 
 “기면증 환자가 환상을 자기 마음대로 고른대? 그냥 잠들었다 정신 차리고 보니 여기였어. 여긴 어디야?”
 
 이미 기면증으로 충분히 고생하던 상황이고, 졸음성 환각에 대한 경고도 계속 들어왔었다.
 
 그래서 조금 내려놨는지도 모른다.
 내려놨으니 이런 상황극도 가능했겠지.
 
 그런데,
 소녀의 말투가 조금씩 바뀌어 갔다.
 
 “······ 그러니까 지금 당신은 기면증 환자고, 기면증으로 잠이 들었다가 깨보니 여기였다, 이 말인가요?”
 
 “맞아.”
 
 “그냥 평범한 인간이고요?”
 
 “환자긴 해도 평범한 인간이지.”
 
 “나도 참, 불법 침입자한테 괜히 쫄았네.”
 
 “······”
 
 서늘한 목소리.
 골목길에서 삥 좀 뜯어봤을 말투다.
 
 이미지도 골댕이 취소.
 축 늘어졌던 눈썹이 어느새 치켜올라갔다.
 
 “너 아까 여기가 어디냐고 그랬어?”
 
 “어, 어딘데?”
 
 나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고.
 
 환상보다 더 황당한 대답을 들었다.
 
 “수많은 차원의 전환점을 기록하는 차원 도서관, 너희 인간들 표현으로는 아카식 레코드.”
 
 “뭐?”
 
 “너처럼 평범한 인간이, 꿈이나 환상으로 접속할 곳은 아니란 얘기지. 좋은 핑계였어, 불법 침입자.”
 
 소녀의 갑작스런 태세전환은 둘째 문제다.
 여기가 어디?
 
 다만 소녀가 내게 준 충격은 시작에 불과했다.
 
 마치 나를 스캔하듯 위아래로 바라본 소녀의 다음 말.
 
 “이번에도 종말이 예상되는 차원에서 아예 이상현상까지 발생한 모양이네.”
 
 기면증의 환각이라 생각하기엔 너무 무거운 단어였다.
 
 종말?
 이번에도?
 

작가의 말

드림보트입니다.


이 글은 판타지 소설입니다. 즐겁게 재미로 봐주셨으면 합니다.

댓글(68)

석수거사    
드림보트님 오랜만입니다. 공모전 대박나시고 문피아에서 자주 뵈었으면 좋겠네요.
2024.05.09 02:36
개미다리    
이번 작품도 기대 많이 할께요!!
2024.05.10 12:56
g6**************    
기다렸습니다. 재미있게 볼게요.
2024.05.12 10:49
류형주    
잘보고갑니다
2024.05.14 20:04
세이기온    
기대할게요
2024.05.19 05:30
무림혈괴    
빌런의 경졔학? 정주행 해봅니다
2024.05.19 12:42
dosa12    
재미있습니다
2024.05.20 09:29
겨울연풍    
이번에도 재밌기를
2024.05.20 09:58
ku*****    
오래 기다렸어요 이제는 쭉~ 가주세요~~
2024.05.20 16:30
지쿠악스    
기대되네요
2024.05.21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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