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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징어튀김 한 개에 발길질 한 번

2024.05.10 조회 20,048 추천 328


 먼저 퀴즈를 하나 낼게요. 맞춰 보세요!
 
 인간이 어디에 있을 때 제일 편하게요?
 
 두바이에 있다는 7성급 호텔의 스위트룸? 물론 저는 한 번도 못 가봤지만, 그 호텔이 그렇게 좋다면서요.
 
 1억이 넘는다는 침대에 누워 뒹굴뒹굴하면 세상 편겠죠? 뭐 그것도 괜찮을 거예요.
 
 하지만 그래봐야 며칠 못 가지 않을까요? 한 2박 3일은 무척 좋겠지만 그런 생활도 결국에는 지루해질 것 같아요.
 
 장소는 상관없이 시몬스 침대 위에 누워야 한다고요?
 
 그건 광고 카피죠. 자본주의 흑마술에 속지 맙시다! 우리 스스로 생각해 봐요!
 
 5성급 이상 호텔에는 거의 다 시몬스 침대나 그와 비슷한 좋은 침대가 들어가요. 그런데 하루 종일 그런 침대에 누워 있으면 편할까요?
 
 처음엔 아주 편하겠지만 계속 누워만 있는다면 이게 뭐 하고 있는 거냐 그런 생각이 들 걸요.
 
 인간은요, 빈둥빈둥 노는 데도 한계가 있는 동물이랍니다.
 
 처음엔 하는 일 없이 놀면 몸도 마음도 편하지만, 나중에는 자기 존재를 한심하게 여기게 된다나요.
 
 아니라고요?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배는 물에 떠야지 배라고요. 왜 당연한 소리를 하냐구요?
 하고 싶은 말은 그다음이에요!
 
 물에 떠야 배지만 물에 뜨는 게 배의 목적은 아니랍니다. 배는 물에 떠서 앞으로 나아가는 게 목적이에요. 원하는 곳까지 물을 가로질러 가는 게 목적이라구요!
 
 인간도 마찬가지랍니다.
 일단은 제 몸 하나 잘 건사하는 게 삶의 기본이지만요..... 그것만 가지고는 부족해요.
 
 앞으로 나아가야 니다!
 
 뭐라고요?
 
 사랑하는 님과 함께라면 저 푸른 초원 위의 초가집도 좋다고요?
 
 그렇게 대답을 하신다면 연식이 좀 있는 분이시군요. 흐흐흐.
 
 요즘 젊은이들은 초가집에서 살면 미칠걸요.
 
 역세권은 아니더라도 집 밖으로 나갔을 때 웬만한 인프라가 갖춰져 있어야죠. 그래야 안심이 돼요. 요즘 젊은이라면서요.
 
 밤새 불을 밝히고 있는 편의점을 보세요.
 
 굳이 거길 들어가서 뭘 사지 않더라도 좋다는 거죠. 오다가다 보는 그 편의점이 24시간 문을 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도시의 편안함을 느끼는 거예요.
 
 아, 나의 편의를 위해 저곳이 하루 종일 문을 열고 있다!
 
 그런 느낌이 드는 거죠.
 
 그럼, 정답은 편의점?
 
 땡!
 
 아닙니다요. 편의점에서 느끼는 편안함은 가짜 편안함이랍니다. 왜냐면 진짜 편안함은 오랫동안 지속되는데요. 편의점이 주는 편안함은 순식간에 사라지기 때문이죠.
 
 배가 고파서 허겁지겁 컵라면을 먹어보신 적 있나요? 그때 행복하다고 생각하셨나요?
 
 편의점 도시락을 전자레인지에 데워 혼자 먹으면서 행복하다고 생각한 적 있어요?
 
 그렇다고 답하신 분은 지금 행복과 멀리 떨어져 사는 거예요. 너무! 너무! 너무!
 
 아니, 왜 편안함을 얘기하다가 행복으로 주제를 바꾸냐고요?
 
 빙고! 그래요, 이 정도 질문이 나와줘야 대화가 즐거워지죠.
 
 간단히 말할게요.
 
 진짜 편안함은 오랫동안 지속되는 행복감과 관련이 있는 거예요.
 
 그렇다면 정답은?
 
 **
 저는 오랫동안 고통스럽게 살았답니다.
 
 그런데 최근 아홉 달 반 정도 아주 편안하고 행복하게 시간을 보냈어요. 저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아직 세상 사람들 눈에 띄지 않아서 남을 신경 쓸 필요가 전혀 없거든요.
 
 저를 둘러싼 사람들은 너무 친절하고 다정했어요. 늘 좋은 말만 해줬죠.
 
 “세상은 정말 아름다운 곳이란다!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는 널 꼭 지켜줄 거야! 아무도 널 해치지 못하도록!”
 
 물론 저는 세상이 얼마나 험한 곳인지 이미 속속들이 알고 있었어요.
 
 ‘아무런 걱정 없이 이렇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
 
 저는 그런 생각에 빠져서 몇 달을 보냈답니다.
 
 그런데요 저도 이제 또 세상 속으로 나아가야만 해요. 온갖 고통을 다 누릴 영광을 맛보기 위해서요.
 
 그래요, 당신은 똑똑하신 분이군요.
 
 맞았어요! 저는 아직 엄마 배 속에 있는 아기랍니다.
 
 이제 정답이 뭔지 알겠죠?
 
 인간은 엄마 배 속에 있을 때 제일 편답니다.
 
 응애! 하고 세상에 나온 순간부터 그런 편안함을 다시는 맛볼 수 없어요.
 
 두바이 7성급 호텔 스위트룸?
 시몬스 침대?
 애인과 함께 사랑을 속삭이는 것?
 밤새 불 밝히는 편의점?
 
 이 모든 것을 가뿐히 이겨버리는 것이 바로 태아일 때의 편안함이요.
 
 물론 예외는 있죠.
 엄마나 아빠가 아이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때, 엄마 뱃속의 아이는 불안을 느끼지요.
 
 ***
 대부분의 태아는 말을 못 해요. 당연하죠. 아직 말을 배우지 못했으니까요. 세상에 태어나서야 말을 배우기 시작하잖아요.
 
 그런데 너는 왜 그렇게 말을 잘하냐고요?
 
 역시 똑똑하시군요. 아까부터 알아봤어요.
 
 그래, 맞아요. 저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예요.
 
 “아악!”
 
 아, 정말 미안하지만 제 얘기를 잠시 멈춰야 할 것 같아요!
 
 방금 비명을 지른 게 우리 엄마거든요. 맞아요, 진통을 느끼신 거예요.
 
 엄마의 이름은 이선희(李仙姬).
 
 그래요. 가수 이선희하고 이름이 똑같아요. 심지어 한자까지도. 게다가 태어난 해도 똑같죠. 1964년!
 
 이선희만큼은 아니지만 엄마는 노래도 잘 부르신답니다. 배 속에 있는 저에게 이런저런 노래를 들려주셨어요.
 
 전 그중에서 ‘나 항상 그대를’이라는 노래를 참 좋아해요.
 
 엄마 뱃속이 너무너무 편안하고 좋기는 한데, 저는 요새 좀 갑갑함을 느껴요. 제 몸이 많이 커졌나 봐요.
 
 아까도 말했지만 저는 극히 예외적인 아이랍니다.
 저는 언제 세상에 나가면 좋을지 스스로 정하기로 했어요.
 
 “왜 그래, 여보! 윤이가 나올 거 같아?”
 
 진통을 느껴서 비명을 지르는 엄마 앞에 있는 사람은 우리 아빠예요. 걱정스러 눈빛으로 엄마를 바라보고 있네요.
 
 아빠 이름은 허성(許成).
 
 뭔가 이루고 살아가라는 의미에서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랍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룬 것은 별로 없어요.
 
 그런데요, 아주 착해요. 지난 아홉 달간 관찰해보니 그래요. 엄마랑은 동갑내기구요, 친구 같은 부부랍니다.
 
 윤이는 바로 저예요.
 
 허윤(許允)이랍니다.
 
 우리 아빠 허성 씨가 지은 이름이죠. 엄마 뱃속에 여덟 달쯤 있을 때 ‘윤’이라는 이름을 지었어요.
 
 그전에는 태명이 있었죠, 두 개나. 씩씩이와 똘똘이.
 
 ****
 제가 엄마 뱃속에서 발길질을 시작한 어느 날이었어요.
 
 분식 마니아인 아빠는 엄마를 위한 것이라면서 떡볶이와 순대, 그리고 오징어튀김을 사 오셨어요.
 
 엄마는 아빠와 함께 분식집에 앉아서 떡튀순 먹는 걸 좋아하셨어요. 서민 취향이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엄마는 임신 후 달라지셨어요. 튀김에서 나는 느끼한 기름 냄새가 참기 힘들었대요.
 
 “아후, 나 토할 거 같아. 튀김은 저리 치워!”
 
 엄마는 이선희의 고음만큼이나 큰 소리로 튀김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냈어요. 아빠는 실실 웃으면서 뒤로 물러났고요.
 
 “자기는 떡볶이랑 순대만 먹어. 튀김은 나 혼자 경이 방에서 먹고 올게.”
 
 경이가 누구고요?
 경이는 제 누나 이름이요.
 
 허경(許慶).
 
 하늘이 내린 축복이라는 의미라네요. 1991년에 태어나서 지금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얼굴은 아직 못 봤지만 아주 귀여운 어린이일 거 같아요.
 
 “씩씩이 태어나면 내가 맨날 맨날 같이 놀아줘야지. 맨날 맨날 업고 다녀야지.”
 
 엄마 배에 얼굴을 대고 경이 누나가 그렇게 말하는 걸 들었어요. 얼마나 이쁘던지요! 물론 진짜 그런지 아닌지는 세상에 나가봐야 알겠지만요.
 
 *****
 저는 엄마 뱃속에서도 오징어튀김 냄새를 맡을 수 있었어요. 그 냄새가 너무 식욕을 자극했죠. 그래서 저는 엄마더러 얼른 오징어튀김을 먹으라고 소리쳤어요.
 
 물론 소리는 엄마의 귀에 들리지 않았죠. 하지만 느낌으로 전달이 되었어요.
 
 ‘엄마, 오징어튀김 집어요. 얼른 먹어서 나한테 전달해줘요!’
 
 엄마는 의식적으로 기름 냄새를 피했다고 했잖아요? 그런데요, 무의식적으로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저의 요구를 거부할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엄마는 아빠에게 말했어요.
 
 “뭘 또 그렇게 유난을 떨어! 그냥 같이 먹어. 기름 냄새 좀 참지 뭐.”
 
 아빠는 허허 웃으며 엄마 곁에 앉았어요. 그리고는 소심하게 오징어튀김이 담긴 종이봉투를 아주 살짝 열었죠.
 
 그때 번개같이 엄마의 손이 종이봉투 안을 파고 들었답니다. 아빠는 그때 정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어요.
 
 엄마는 종이봉투를 찢고 그 안의 오징어튀김을 맹렬하게 씹기 시작했어요. 한 손으로 튀김을 먹으면서 다른 한 손으로 튀김을 들고 있을 정도로 급하게 먹어치웠지 뭐예요.
 
 그 모습을 본 아빠는 차마 오징어튀김을 먹지 못했어요. 대신 엄마의 먹는 모습을 신기하게 쳐다봤죠.
 
 “히야, 당신... 튀김은 잘 먹지 않던 사람이... 아주 게 눈 감추듯 먹네. 내 거는 하나도 안 남기고....”
 
 엄마는 오징어튀김 여섯 개를 순식간에 해치우셨죠. 신기하게 쳐다보던 아빠는 무심결에 말했어요.
 
 “히야... 이건 아무래도 당신이 아니라 요놈이 먹고 싶다고 한 모양인데....”
 
 제가 뱃속에서 깜짝 놀랐겠다고요? 아뇨, 그렇진 않았어요. 자기 여자가 애를 배면 아빠가 될 남자들은 다 그런 말을 하거든요.
 
 그건 허성 씨 같은 서민이나 인도 무굴제국의 황제나 다 똑같아요.
 
 어떻게 아냐고요?
 
 흐흐흐. 다 아는 수가 있다고만 말씀드리지요. 지금은 이렇게만 말씀드리고요, 어떻게 알았는지는 차차 자세히 알려드릴게요.
 
 아빠가 엄마의 배를 쓰다듬으며 한마디 했어요.
 
 ‘허허, 이 녀석 너 아주 오징어튀김을 좋아하는구나!’
 그때 저는 장난삼아 엄마 뱃속에서 발길질을 했죠.
 
 엄마한테는 미안한데요, 다른 표현 수단이 없잖아요.
 
 그러자 아빠가 깜짝 놀라는 척을 했어요. 엄마 배에 손을 대고 있었거든요.
 
 “아니, 이 녀석이 대답을 하네. 너 아빠 말 알아듣고 발길질한 거야?”
 
 엄마는 푸하하 웃다가 허걱 놀랐어요. 제가 또 발길질을 했거든요. 마치 질문에 답을 하듯이.
 
 “뭐야, 자기 말하는 거 알아듣고 발길질하는 거 같네.”
 
 아빠는 이제 귀를 엄마 배에 갖다 댔어요. 그리고 조용히 속삭였어요. 뱃속의 나에게 들으라는 듯이.
 
 “잘 들어봐, 씩씩아.”
 
 하하하. 씩씩이는 제 최초 태명이랍니다. 태명도 유행이 있어서 그런지 1999년에는 씩씩이가 꽤 많았어요. 참고로 저는 별로 맘에 안 들었어요.
 
 “너 그냥 씩씩해서 엄마 배를 차는 거니? 아니면 정말 아빠 말을 듣고 대답하고 싶어서 배를 차는 거니?”
 
 저는 한 번 더 발길질을 했어요.
 
 엄마 아빠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는 듯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어요.
 
 “정말일까? 씩씩이가 말을 알아듣는 걸까?”
 
 엄마가 그렇게 묻자 아빠는 뭔가 생각이 났다는 듯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어봤어요.
 
 “아까 자기가 오징어튀김 여섯 개 먹었지?”
 “아이, 뭐야? 자기 거 안 남겼다고 삐진 거야?”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씩씩이한테 물어보자고.”
 “뭘?”
 “엄마가 오징어튀김 몇 개 먹었는지.”
 “아이 참. 나 혼자 여섯 개 먹었다고 지금 뭐라고 하는 거지?”
 “아니라니깐!”
 
 아빠는 엄마 배에 귀를 대고 속삭였답니다.
 
 “씩씩아. 너 아까 엄마가 오징어튀김 먹은 거 알지?”
 
 저는 엄마 배를 한 번 찼어요. 엄마는 깜짝 놀라셨죠.
 
 “얘가 진짜 듣는 거야? 듣고 대답하는 거야?”
 “아직 놀라긴 일러. 이건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으니까. 지금부터가 진짜야.”
 
 아빠는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이번에는 엄마 배에서 얼굴을 뗐다. 대신 엄마 배를 노려보고 물었다. 마치 엄마 배 안의 나를 바라보듯이.
 
 “씩씩아, 엄마가 오징어튀김 몇 개 먹었니? 그 개수대로 엄마 배를 차봐.”
 
 저는 엄마 뱃속에서 꺄르르 웃었답니다. 엄마랑 아빠를 놀라게 할 생각을 하니까 웃음이 나왔어요.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저는 엄마 배를 여섯 번 찼어요.
 
 “아악!”
 "우왁!"
 
 엄마가 비명을 질렀어요.
 아빠도 엄마 따라 소리를 지르셨고요.

작가의 말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댓글(21)

as*****    
재미있게 잘 보고 갑니다
2024.05.23 16:26
정곡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재밌게 쓰겠습니다.
2024.05.23 16:42
g2**************    
잘보고갑니다 작가님
2024.05.30 13:06
정곡    
독자님, 댓글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즐겁게 읽어주세요!
2024.05.30 13:25
투구꽃    
1화부터 재밌네요 ㅎㅎ
2024.05.30 21:32
정곡    
투구꽃님, 반갑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4.05.30 22:04
이티우    
태아한테 갯수물어보기..
2024.06.05 01:41
ba*******    
ㅋㅋㅋㅋㅋㅋㅋㅋ 신박하네요.
2024.06.12 14:08
삭쩨    
되게 괴기한데 ㅋㅋㅋ 재밌어요 어떻게 진행될지 진짜 궁금하다
2024.06.13 22:27
fr*****    
재미있습니다
2024.06.15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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