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하남자의 현금 사용법

프롤로그 + 1화.

2024.05.10 조회 24,176 추천 318


 프롤로그.
 
 “이거야. 이거. 혹시 봤냐? 마켓에 올라온 반지?”
 “당연히 봤지, 마나 내성 20% 반지라니... 심지어 디자인도 아름다워...”
 
 눈앞에 띄워진 푸른 반지의 이미지를 넋 나간 듯 바라보는 젊은 남성 두 사람의 대화였다.
 
 친구의 발언에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짧은 머리의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런데 가격이 깡패더라...”
 “그래...무려 2만 5천 벨이라니... 중급 던전 몇 바퀴는 돌아야 살 수 있을만한 가격이잖아.”
 “우리 같은 쩌리들이 중급 던전을 돌 수 있을리 없지...”
 “하아... 역시 그림의 떡이라는 말인가.”
 
 두 사람의 힘없는 대화. 그 안에 등장한 벨이라는 단어가 있다.
 
 과거에는 생소하게 들리던 화폐 단위, 벨.
 하지만 현재 기준 가장 가치가 있는 화폐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백이면 백 바로 벨이라고 답할 것이 분명했다.
 
 대격변 이후, 나타난 것은 마물의 등장이나 인류의 각성만은 아니었다.
 
 바로 ‘마켓’의 등장,
 
 그것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마켓이었다.
 놀라운 것은 그것이 특정한 인물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각성의 여부와 관계없이 인류 모두가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
 
 대격변의 발발이 그렇듯 그 원인을 알 수는 없었지만, 지구의 모든 이들에게 마켓의 사용 권한이 주어진 것이었다.
 
 시동어는 ‘마켓 오픈’
 관련 문장을 읇조리거나 깊게 그것을 생각하면 눈앞에 마치 화면 같은 형태로 어떠한 창이 등장했다.
 이후로는 터치 혹은 음성 명령 등으로 필요한 물건을 검색하고 또 구매할 수 있는 간단한 구조.
 
 참고로 마켓에는 대격변에 대처할 수 있을 만한 각종 아이템이 가득했다.
 
 무기와 방어구, 포션이나 영약, 제작에 필요한 각종 재료,
 거기에 그치지 않고 심지어는 특정 스킬을 획득할 수 있는 스킬북까지 구입할 수 있는 한마디로 대재앙이라는 시련에 대항할 수 있는 맞춤형 시스템이라 할 수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점 하나,
  그곳의 모든 품목들은 오직 ‘벨’이라는 화페를 통해서만 구매가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참고로 벨은 대격변 이후 등장한 마물을 해치우는 것으로 획득이 가능했다.
 그 외로는 던전에서 획득한 아이템을 마켓에 판매하게 되면 그 가치만큼의 벨과 교환할 수도 있는 정도?
 그렇기에 그것의 획득을 위해서는 던전 공략이나 마물 사냥이 필수라는 말이었다.
 한마디로 각성자들 한정일 뿐만 아니라 입수 난이도 또한 상당하다는 것.
 
 한편 그림의 떡을 바라보듯 마켓 창에 시선을 둔 두 남자와는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는 인물 하나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현병환.
 그들의 대화를 듣던 병환은 조심스레 마켓의 창을 띄웠다.
 그리고 자연스레 구입이라 쓰여진 글자를 터치했다.
 
 ‘...구입.’
 
 이내 마켓 창에 메시지가 띄워졌다.
 
 -250,000,000원이 결재되었습니다.
 
 특이한 점은 결재 대금이 25,000벨이 아닌, 원화 2억 5천만원이라는 것.
 
 놀랍게도 병환은 오직 벨화로만 결재가 가능한 아이템을 원화로 결재한 것이었다.
 
 이것이 병환이 가진 고유 스킬,
 바로 ‘화폐 마스터’였다.
 
 *
 
 1화.
 
 “이번 달 월급이다.”
 
 길드 총무팀장 박종화가 병환에게 하얀색 봉투를 내밀었다.
 봉투는 제법 묵직해 보였지만, 병환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벨화 전성시대에 현금... 그러니까 원화로 월급을 받았다는 이유였다.
 
 “저기... 팀장님.”
 “응? 왜?”
 “현금 말고 벨로 주시면 좋겠는데... 저도 이제 벨화를 받아도 되지 않을까요...?”
 “벨? 그냥 현금 가져가. 어차피 병환이 네가 마켓에서 살만한 것도 없잖냐. 정 뭣하면 환전소 가서 벨로 바꾸던가.”
 
 귀찮다는 듯, 무심하게 발언하는 총무팀장이었지만, 그마저도 궤변이었다.
 환전소라는 시스템은 있으나 까놓고 말해 현금을 벨화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반면 그 반대는 아주 수월했지만 말이다. .
 
 그도 그럴 것이 비단 원화 뿐 아니라, 인류가 사용하던 기존의 화폐는 대격변 이후 등장한 벨이라는 화폐에 밀려 그 가치를 조금씩 잃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각성 등급이 낮은 병환으로서는 던전 공략 기여도 또한 낮을 수 밖에 없는 상황.
 
 그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테이블 위 봉투를 집어 들었다.
 
 “...알겠습니다. 다음엔 저도 벨로... 챙겨주십시오.”
 “어, 그래 알겠어. 알겠어.”
 
 어서 나가라는 듯 손을 휙휙 저으며 대답하는 총무팀장이었지만 병환의 입장에서는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병환이 사무실을 빠져나가자 주변의 다른 직원들이 박종화에게 다가와 말했다.
 
 “저기 박 팀장님. 저러다 그만두면 어떻게 해요.”
 
 하지만 박종화의 표정은 전혀 상관없다는 모습이었다.
 
 “제 까짓게 뭘 할 수 있어? 널리고 널린 게 E급 각성자인데. 심지어 저 너셕은 고유 스킬도 없잖아.”
 “아니... 저 돈에 저만큼 일해주는 사람은 흔치 않죠. 던전 일 뿐만 아니라, 길드 잡무도 거의 도맡아서 하잖아요?”
 “그래서 봉투라도 두둑하게 준 거 아니야. E급 헌터면 주제를 알아야지. 마켓에 지가 제대로 쓸 수 있는 물건이나 있기나 해?”
 
 다양한 물건을 판매하는 마켓이니 만큼 병환이 사용할 수 있는 물건들 역시 존재하긴 했다.
 물론 가격적인 부분 또한 고려해야 했으니 살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진 않을 것이었지만,
 
 다만 꼭 마켓에서 직접 물건을 구입하지 않아도 월급을 벨화로 받아 환전소에서 현금으로 교환하면 최소한 월급보다는 많은 현금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휴...’
 
 총무과 사무실을 빠져나간 병환이 깊은 한숨을 쉬며 터벅터벅 걸었다.
 
 ‘...벨화는 언제 만져본다냐...’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생필품 등 일반적인 물품은 여전히 원화 거래가 상당 부분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
 일반 생필품의 경우 상대적으로 그 가치가 낮았기에 신종 화폐의 적용이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
 
 더불어 각성을 하지 못한 일반인들도 여전히 다수 존재하는 상황이고 말이다.
 
 다만 원화 가치가 조금씩 하락함에 따라 물가 또한 상승할 조짐이 계속해서 보인다는 것은 병환의 입장에서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후... 그래도 별 수 없지. 내가 더 열심히 하는 수밖에...’
 
 박종화 팀장의 말대로 자신은 고유 스킬 또한 각성하지 못한 저등급 각성자.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 간극을 메꾸려고 틈날 때마다 열심히 수련하고 있지만 타고난 등급을 뛰어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월급을 받았으니... 오랜만에 고기나 좀 살까.“
 
 임무 수행과 훈련 등으로 가족과의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했다.
 
 별로도 원룸을 구해 살고 있는 상황이니만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월급날 정도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유일한 날이라고 할까.
 
 그렇기에 오늘은 가족들을 봐야 했다.
 병환이 동네 마트에 들어선다. 입구에 커다랗게 쓰여진 현수막의 문구가 그의 기분을 조금 씁쓸하게 만들었다.
 
 -벨 결재 고객 전 품목 20% 할인 이벤트! 추가로 사은품도 드려요!-
 
 이처럼 일반 상점에서도 오히려 벨 이라는 화폐를 환영했다.
 심지어 환전소 공인 시세로 1벨이 약 1만원 정도의 가치를 지녔으니 사용하고자 하면 못 쓸 금액 역시 아니었고.
 
 하지만 대부분의 이들은 벨 마켓에서 물품을 구입하기에도 벨화가 모자란 상황.
 그런 이유로 마트와 같은 곳에서 벨을 낭비하는 이는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한푼이라도 더 벨을 모아서... 특수한 아이템을 사는 것이 보통이지...‘
 
 어쩌면 그런 이유 덕분에 자신 같은 사람도 먹고 살 수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만약 모든 상점에서 벨만 받는다면... 아마도 자신은 빠른 시일 내에 굶어 죽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현금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달은 병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정육 코너로 다가갔다.
 하지만 이내 그의 표정은 다시금 살짝 구겨졌다.
 
 ’...고기 값이 또 올랐네... 후...‘
 
 아직은 비싸지만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심지어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있는 가족 식사.
 병환은 눈물을 머금고 괜찮아 보이는 부위 몇 가지를 함께 구입했다.
 물론 돼지고기로 말이다.
 
 *
 
 ”저 왔어요.“
 ”아들. 왔니? 자주 좀 들러.“
 ”그래. 오빠. 무슨 기러기 오빠도 아니고.“
 
 기러기 오빠라니, 신박한 표현이었다.
 
 병환은 동생 나연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으며 웃었다.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고기나 굽자.“
 ”오... 역시 기다린 보람은 있군.“
 
 -지글지글
 
 삼겹살이 맛있게 익어간다.
 병환은 능숙한 솜씨로 고기를 구운 후, 그것을 한 점씩 엄마와 동생의 밥그릇 위에 놓아 주었다.
 
 ”살살 녹내... 살살 녹아...“
 
 병환은 품 안에서 봉투 두 개를 꺼내 각각 엄마와 동생을 향해 내밀었다.
 
 ”얼마 안 되지만 보태 쓰세요. 나연이 넌 좀 아껴쓰고.“
 
 병환이 내민 봉투를 보며 엄마, 김영희가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뭘 이렇게 많이 넣었어...?“
 ”저 쓸 돈은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이래 봬도 헌터잖아요.“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여유롭진 않았다. 아니 심히 쪼들렸다고 하는 것이 맞겠지.
 그럼에도 돈 쓸데가 별로 없다는 것은 그나마 나은 상황일까.
 
 ”난 졸업하면 다 갚을 거니까 걱정마. 그것도 이런 오만원 짜리가 아닌 벨화로 말이야.“
 
 나연의 자신만만한 태도에 병환이 피식하며 웃음을 보였다.
 
 ”제발 그래 주라.“
 
 참고로 병환의 엄마인 김영희는 각성자가 아니었다.
 대격변 이후에도 삶이 크게 달라지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반면 동생인 나연은 병환과 동급인 E급 각성자에 격투 관련 스킬이 있었으니 상황은 조금 나은 편이긴 했다.
 
 하지만 E급 헌터의 고단한 삶과 대우를 잘 알고 있는 병환의 입장에서는 동생의 헌터 생활이 달가울 리 없었다.
 그런 이유로 현재는 고교생의 학업 등을 동생의 현장 투입을 막고 있는 실정이었다.
 
 졸업하기 전, 동생에게 좋은 장비라도 하나 맞춰주는 것이 병환의 꿈이었지만, 지금처럼 벨의 입수가 어려운 상황에서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다음 달에는 바짓가랑이를 잡더라도 벨화로 월급을 받으리라.
 그렇게 생각한 병환은 구워진 고기를 엄마와 동생의 밥그릇에 하나씩 더 놓아주었다.
 
 밝게 웃는 두 사람의 미소가 스스로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편하게 해주는 듯 했다.
 
 ’그래... 이렇게 가족들에게 줄 수 있는 현금이라도 벌 수 있는 것이 어디냐... 조금 더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살자...‘
 
 작지만 아늑한 집,
 넉넉하진 않지만 평화롭게 살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며 식사를 마친 병환은 딱 한달만에 누워보는 자신의 침대에서 골아 떨어지듯 잠을 청했다.
 
 *
 
 병환이 깊게 잠이든 새벽 시간.
 고요함이 가득 찬 그 공간 속, 병환이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그의 몸에 어떠한 반응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당신은 고유 스킬 ’화폐 마스터‘를 각성했습니다.]
 [최초 스킬 발동의 경우, ’고유 스킬‘이라는 단어를 육성으로 내뱉으면 스킬창이 떠오르며 스킬이 활성화 됩니다.]
 [최초 활성화가 된 이후로는 별도의 육성 키워드 없이 의식만으로 해당 스킬을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시스탬의 메시지.
 
 다만 안타깝게도 깊은 잠에 빠진 당사자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상황은 분명한 각성이었다.
 

작가의 말

잘 부탁드립니다!

댓글(34)

핀듬    
굉장히 "너굴" 스러운 화폐군요
2024.05.12 04:34
째개    
맞습니다. 동물의 숲 화폐 단위가 벨이었죠! ㅎㅎ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4.05.12 10:02
고추냉이    
주인공이름이 병환이라 자꾸 아픈것같음 ㅋㅋ
2024.05.19 00:50
천우님    
어라ㅋ낯익은 이름이ㅋㅋ청소 각성 그 작가님이신가!!이번작도 화이팅입니다!
2024.05.24 09:13
Akashia    
별로도 원룸을->별도로
2024.05.29 00:21
습관성탈골    
고구마를 맥이시려고?
2024.05.29 04:28
[탈퇴계정]    
정주행 ㄱㄱ
2024.06.03 21:42
백만둥이    
시작 하자 맞아 고구마 먹이고 시작하네
2024.06.07 14:57
서비스    
일하고 받을 돈도 제대로 못 받는 사람이 주인공이라니...
2024.06.08 23:11
Blavord    
시스탬 —> 템
2024.06.21 14:08
0 / 3000

이용약관 유료이용약관 개인정보처리방침 청소년보호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