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SSS급 방구석 대장장이

수리

2024.05.11 조회 53,631 추천 761


  “으흐흐, 고기다. 고기.”
 
  오랜만에 시킨 고기를 보고 있자니 침이 줄줄 흐른다.
  이게 얼마만의 고기인가?
  통장 잔액이 아슬아슬해서 한동안 김치와 맨밥으로 연명하다 도저히 참지 못하고 인터넷 최저가 할인으로 주문한 삼겹살이다.
  저 아름답게 쌓인 살코기와 비계의 조화를 보라.
  보는 것만으로도 침이 줄줄 흐른다.
 
  꼬르륵!
 
  “일단 썰어볼까?”
 
  주린 배를 부여잡으며 요리를 시작한다.
  삼겹살 중에서도 가장 싼 고기를 고르다 보니 통삼겹살을 골라버렸다.
  이대로는 구울 수 없으니 손질부터 해야 한다.
  오랜만에 집어 든 식칼.
  혹시나 귀중한 고기에 먼지라도 묻을까 싶어 물로 슥 닦아낸 후, 고기님께 조심스레 칼을 가져다 댔다.
 
  꾸욱.
 
  “뭐야, 왜 이래?”
 
  아름다운 살결을 드러내며 썰리는 삼겹살을 상상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칼을 아무리 움직여도 고기가 영 썰어지지 않는다.
  힘으로 밀어붙여 가까스로 비계를 통과해도 살코기에 멈춰 고기를 꾹 누를 뿐이다.
 
  “으아압!”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톱질하듯이 열심히 썰어보니 어떻게 썰리긴 썰린다.
  다만.
 
  “으아아악! 내 삼겹살느님이!”
 
  결과물은 처참하다.
  큰맘 먹고 사 온 삼겹살이 걸레짝이 되어 있다.
  보는 떡이 맛도 좋다고, 오랜만에 사 온 삼겹살인 만큼 멋들어지게 구워 먹고 싶었는데.
  시작부터 실패했다.
 
  “뭐 얼마나 썼다고 벌써 날이 이 모양이야!”
 
  나의 원망은 식칼에게로 돌아갔다.
  아무리 다잇소에서 싸게 사 온 식칼이라지만, 너무하지 않은가?
  비록 제대로 관리도 안 하고, 오랫동안 먼지만 쌓여 있었다고는 해도!
  삼겹살 하나 못 자를 줄이야!
  어쩔 수 없이 고기를 전부 걸레짝으로 만들어서라도 요리를 시작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파앗!
 
  “으억?”
 
  나의 몸에서 빛이 터져 나왔다.
  그것도 찬란한 금빛으로.
  깜짝 놀란 내가 저도 모르게 식칼을 놓치고 엉덩방아를 찍고 나서야 빛이 사그라들었다.
  그와 함께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
 
  [ 각성하였습니다. ]
 
  “각성?”
 
  각성.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는가?
  갑작스럽게 나타난 게이트와 몬스터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 각성자의 존재를.
  각성하게 되는 능력에 따라서 각성하자마자 계약금으로 수십억 원을 받으며 길드에 스카웃되는 게 바로 각성자다.
  각성자가 되면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다고 하더니.
  말로만 듣던 시스템 메시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사, 상태창!”
 
  다급하게 상태창을 외쳐보았다.
  그야, 각성을 마치면 상태창을 확인할 수 있다고 들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 상태창 ]
  - 이름 : 정서준
  - 레벨 : 1
  - 직업 : 대장장이
  - 능력 : 헤파이스토스의 후예(SSS)
  - 힘 : 10
  - 민첩 : 10
  - 건강 : 10
  - 지력 : 10
  - 지혜 : 10
 
  “오오오오오!”
 
  눈앞에 상태창이 떠올랐다.
  이로써 내가 각성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확실히 되었다.
  이제 중요한 건 내게 부여된 각성 능력과 직업.
  대장장이라는 직업명을 읽고 몬스터와 안 싸워도 되겠다며 안심한 나는 그다음에 적힌 능력을 보자마자 환호성을 지르고 말았다.
 
  “트리플 에스!”
 
  각성자의 능력은 알파벳으로 나뉜다.
  F급부터 SSS급까지.
  F급이 가장 낮은 등급이고 SSS급이 가장 높은 등급이다.
  어지간한 각성자가 B급 이상만 되어도 어마어마한 대우를 받으며 수많은 길드에 스카웃 받는 게 현실인데.
  SSS 등급이라니!
  등급을 확인한 나는 다급하게 능력의 정보를 확인했다.
 
  [ 헤파이스토스의 후예(SSS) ]
  - 불과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의 권능을 하사받은 자.
  - 제작의 성공 확률 상승
  - 제작 속도 상승
  - 제작물의 등급 상승
  ······.
 
  “오오!”
 
  뭔지는 모르겠지만 좋아 보인다!
  그도 그럴 게, SSS급 능력 아닌가?
  SSS급 능력답게 길게 늘어선 설명을 대충 읽고 난 후, 바로 직업과 스킬을 확인해보았다.
  직업은 말 그대로 대장장이.
  망치를 휘둘러 장비를 만들어내는 바로 그 대장장이였다.
  그런 내게 배당된 스킬은 단 세 가지.
 
  [ 제작 ]
  [ 수리 ]
  [ 분해 ]
 
  제작, 수리, 분해였다.
  아, 아니다.
  그 아래에 직업 스킬이 아닌 ‘헤파이스토스의 후예’ 고유 스킬이 하나 더 있었다.
 
  [ 헤파이스토스의 망치 소환 ]
 
  헤파이스토스의 망치!
  잘은 모르겠지만, 명색이 올림포스의 12신 중 하나이지 않은가!
  좋을 게 분명하다.
  나는 잔뜩 설레며 스킬 이름을 외쳤다.
  뉴튜브로 볼 때는 각성자들이 굳이 스킬 이름을 안 외쳐도 스킬을 잘만 사용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아직 그 방법을 몰랐으니까.
  어차피 이 방에는 나 혼자지 않은가?
 
  “헤파이스토스의 망치 소환!”
 
  우우웅!
 
  “오오!”
 
  눈앞에 찬란한 빛이 일어난다.
  그와 함께 나타난 망치는!
 
  “생각! ······보다 평범한데?”
 
  생각보다 평범했다.
  신의 망치라고 해서 찬란한 금빛에 아름다운 문양이라도 새겨져 있을 줄 알았는데.
  그냥 평범해 보이는 쇠망치다.
  다행인 건 보이는 거에 비해 무게가 그리 무겁지 않다는 거?
  원룸에 박혀 사는 대가로 근육을 반납한 내 근력으로도 충분히 휘두를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러니까 이걸로 스킬을 사용하라는 거지?”
 
  방구석 게이머답게 스킬의 의미를 빠르게 이해했다.
  각성자들의 인터뷰에도 나온 설명이지만, 각성자들의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게임과 닮아 있었다.
  나같은 방구석 게이머가 적응하기 최적이라는 말씀.
  그런 내가 가지고 있는 스킬은 총 세 가지.
  제작을 위해서는 재료가 필요하기에 당장 사용할 방법이 없고.
  남은 건 수리와 분해.
  주변을 둘러보던 나의 시선이 아까 놀라서 떨어트린 식칼로 향했다.
  날이 무뎌져 내 소중한 삼겹살을 걸레짝으로 만들어버린 식칼.
  이것도 어찌 보면 내구도가 낮아진 거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 생각한 내가 곧장 망치를 집어 들었다.
 
  “수리!”
 
  스킬이 사용됨과 동시에 식칼에 은은한 빛이 깃들었다.
  그와 함께 떠오르는 포인트.
  숙련된 방구석 게이머답게, 나는 그 포인트의 의미를 곧바로 이해했다.
  그리고, 내려쳤다.
 
  깡!
 
  시원한 금속음과 함께 포인트가 사라진다.
  이어서 떠오르는 새로운 포인트.
 
  깡, 깡, 깡!
 
  두더지 잡기를 하듯이 망치를 연이어 휘두른다.
  내가 이래 봬도 유명한 리듬 게임은 전부 엔딩을 본 사람이다.
  박자에 맞춰서 망치를 휘두르는 것쯤이야 간단하다.
  그렇다고 해도 게임과 현실의 차이는 커서 망치가 포인트에서 조금 엇나가는 것 같았지만, 시스템이 이 정도는 용서해주는 모양이다.
  그렇게 망치를 열 번쯤 휘둘렀을까?
  더 이상 포인트가 떠오르지 않고, 그 대신 포인트를 두들길 때마다 부서져 나가던 빛이 식칼에 흡수되었다.
 
  [ ‘식칼’의 수리가 완료되었습니다. ]
  [ 성공적인 수리로 식칼의 공격력이 향상됩니다. ]
  [ 성공적인 수리로 식칼의 등급이 향상됩니다. ]
 
  다행히 첫 수리는 성공적이었다.
  등급이 향상되었다는 말에 눈을 반짝이며 ‘정보 확인!’을 외치자 눈앞에 식칼의 정보가 떠올랐다.
 
  [ 식칼 ]
  형태 : 검
  등급 : E
  제한 : 레벨 1 이상
  설명 : 시중에서 구입한 저가의 식칼. 잘 수리되어 날이 바짝 서 있다.
  공격력 : 15
  능력 : 1. 채 썰기 – 식재료, 또는 식재료에 해당하는 적을 공격할 때 절삭력이 상승합니다.
 
  “E급?”
 
  능력과 마찬가지로, 아이템 역시 최하 F급부터 시작해서 최고 SSS급까지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E급이라니?
  애초에 아이템 취급도 받을 수 없는 식칼을 수리했을 뿐인데, F급이 아니라 E급이라니?
  이게 말이 되나?
  의아함을 느끼면서도, 나는 식칼을 바로 잡았다.
  한눈에 보기에도 날카로워진 식칼.
  칼날에 시퍼런 예기가 줄줄 흐르는 듯했다.
 
  “이게 E급이라고?”
 
  의아함을 느끼며 식칼을 들고 움직였다.
  목적지는 싱크대.
  도마 위에는 굵직한 통삼겹살과 걸레짝이 된 삼겹살 조각 하나가 보인다.
  정말 E급 무기라면 삼겹살 정도는 잘 자르겠지.
  그리 생각하며 칼을 움직였다.
  날카로워진 칼날이 삼겹살에 닿는 순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서걱.
 
  두부처럼 잘려 나가는 삼겹살의 감촉을.
  톱질을 해야 겨우 썰려 나가던 통삼겹살이 너무나도 부드럽게 썰려 나간다.
 
  “오오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날이 어찌나 날카로운지 조심스레 칼을 움직여보니 해동된 삼겹살인데도 얇은 대패삼겹살을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였다.
  장인은 장비 탓을 하지 않는다고 누가 하던가?
  아마 요리 장인도 이 식칼을 보면 눈을 반짝이며 달려올 거다.
  초보자도 해동된 고기로 3mm 대패삼겹살을 만들어낼 수 있는 식칼을 어떤 요리사가 탐내지 않겠는가?
 
  서걱, 서걱!
 
  신나서 고기를 썰다 보니 어느새 통삼겹살이 잘 썰려 있었다.
  제작으로 만들어낸 것도 아니고, 시중에서 대충 사 온 식칼을 수리했을 뿐인데 이 정도라니.
  과연 SSS급 능력.
  헤파이스토스의 후예!
  그 능력에 감탄하던 나는.
 
  꼬르륵!
 
  “······ 그래,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니까!”
 
  우선은 삼겹살부터 구워 먹고 다음 행동을 결정하기로 하였다.
 
 
 * * *
 
 
  “흐으, 이 맛이지!”
 
  오랜만의 단백질 섭취.
  고기를 굽는 중에 연기가 안 빠져서 화재경보기가 울리는 불상사가 있었지만, 한두 번 있었던 일이 아니라 익숙하게 끄고 고기를 마저 구웠다.
  입에 들어가자마자 살살 녹아내리는 삼겹살.
  몸에 활력이 도는 것을 느끼며, 나는 평소처럼 뉴튜브를 감상하는 대신 시스템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딱 듣던 대로네.”
 
  상태창, 스킬창 등.
  시스템을 통해 여러 가지를 조작할 수 있었다.
  그러다 마주친 시스템 하나.
 
  [ 경매장 ]
 
  “경매장?”
 
  들어본 적이 있다.
  각성자들은 현실에서 현물로 주고받으며 거래를 하는 게 아니라 시스템을 이용해 아이템을 거래한다고 했다.
  괜히 현실에서 움직이는 것보다 이편이 훨씬 안전하고 간편했으니까.
  한 번 들어가 보니 엄청나게 다양한 아이템들이 올라와 있었다.
  게다가 그 가격대가.
 
  “십억? 아니, 무슨 검 하나가 십억을 해? 와, 이건 더 하네. 오십억? 오십억이 뉘 집 개 이름인 줄 아나.”
 
  살벌하다.
  검 하나, 방패 하나, 갑옷 하나가 어지간한 집 가격을 뛰어넘는다.
  각성자들이 돈을 잘 번다더니, 거래되는 아이템의 가격도 엄청나다.
  그 말도 안 되는 가격에 정처 없이 스크롤을 내리던 나는 그나마 현실적인 가격의 아이템을 발견했다.
 
  [ 이 빠진 고블린 단검 ]
  형태 : 검
  등급 : F
  제한 : 레벨 1 이상
  설명 : 고블린이 주워 쓰던 단검. 얼마나 험하게 다루었는지 이는 다 빠지고 검날에는 고블린 체액이 잔뜩 말라붙어 있다.
  공격력 : 8
  능력 : 1. 고블린 체액 – 적에게 극히 낮은 확률로 ‘마비’를 일으킵니다.
 
  무기 칸에서도 가장 싸 보이는 무기.
  올린 이의 설명에도 주무기용이 아니라 긴급 시 투척용으로 던질 만하다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가격은 5만 원.
  이따위 무기가 내 삼겹살보다 수배는 비싸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았지만, 각성자의 세계에서는 이 정도가 딱 정가인 듯하다.
 
  “그럼······.”
 
  그 형편없는 아이템을 보자, 나의 자연스레 자연스레 식칼을 향했다.
  수리 스킬로 날을 세웠을 뿐이지만, 고블린 단검에 비하면 등급도 높고 공격력도 높다.
  이 정도면 경매장에 올릴 수 있지 않을까?
  외관상으로는 누가 봐도 평범한 식칼이었기에 누가 사긴 할까 싶었지만.
 
  “한 번 올려볼까?”
 
  어차피 방구석 백수인 나에게 시간은 넘쳐난다.
  SSS급 능력이 생겼지만, 초인들이 득실거리는 헌터 길드까지 찾아가기는 무섭고.
  우선은 배도 채웠으니 잠부터 자고 생각하자.
  현재 시각은 오전 11시 34분.
  마침 딱 잘 시간이다.
  따사로운 햇살을 가리기 위해 암막 커튼을 친 나는 경매장에 식칼을 올리자마자 이불속에 뛰어들었다.

작가의 말

잘 부탁드립니다!!

댓글(62)

순한맛카레    
장미칼 수리하면 명검이 나오려나
2024.05.20 08:42
막창사이다    
식재료... 몬스터...식재료...?
2024.05.20 11:21
영환s지수    
집에서 망치질하면 층간소음은?
2024.05.20 13:11
as*****    
재미있게 잘 보고 갑니다
2024.05.21 05:26
wj***    
식칼은 도 아님?
2024.05.21 11:00
pigmanNS    
층간소음? 망치질로 해결 가능합니다! 어쨋거나요.
2024.05.23 11:43
즐가운    
고기를 칼로 썰 생각을 하다니 통삼겹살의 경우 큰 가위로 소세지 자르듯 자르는게 더 편합니다. 그리고 마트포장삼겹살보다 넷쇼핑으로 kg단위로 주문하는게 더 쌉니다.
2024.05.24 02:08
풍뢰전사    
건필하세요
2024.05.25 21:01
qn*******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2024.05.26 12:38
곰슬기S2    
식칼 한쪽에만 날
2024.05.26 13:28
0 / 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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