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오파츠가 내 몸에 깃들었다

죽음 이후에도 세상은 계속된다

2024.05.13 조회 68,366 추천 1,080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미국에서.
 
 대학 일 학년.
 막 기말고사를 끝내고 여름방학에 들어간 그에게 전해진 청천벽력 같은 소식.
 먼저 아버지가 근무하고 자신도 다니고 있는 한국대학교에서 연락이 왔고, 외교통상부의 누군가로부터도 연락이 왔다. 그리고 뉴스에도 보도되었다.
 
 [MBS News: 미국의 컬럼비아 대학교 (Columbia University)에서 교환교수로 근무하고 있는 한국인 송수용박사 부부가 어젯밤 뉴욕시 외곽에서 함께 차를 타고 가던 중 교통사고로 숨졌습니다. 사고를 낸 트럭은···]
 
 송이현은 반쯤은 정신을 놓은 채 혼자 출국했다. 자신이 말 그대로 삼대독자인지라 주위에 이런 일을 의논할 친척도 별로 없다. 어머니 쪽으로 먼 친척이 몇 있을 뿐이고 평소에 왕래도 없이 지내던 터라 이런 일에 나서줄 사람도 없어서 혼자서 출국한 것이다. 다행히 미국은 아버지를 만나러 대학 입학 전에 한번 가보았다.
 
 그렇게 도착한 뉴욕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조금 늦은 오후였지만 서울에서 출발하기 전에 약속한 대로 뉴욕 총영사관에 찾아가서 허인식 영사를 찾았다.
 
 “아, 송 박사님 아드님이군요.”
 
 이현을 보고서 웃는 허인식은 인상이 좋았다. 마른 몸매에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있는 그는 우선 이현을 위로했다.
 
 “박사님 일은 정말 유감이네요. 내가 그분을 작년에 교민 모임에서 뵌 적이 있거든요. 교민들이 고고학계에서 세계적으로 권위가 있는 그분을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이현은 잠자코 고개만 끄덕였다.
 
 아버지 송수용 박사는 한국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의 교수로 재직 중에 이곳 뉴욕에 있는 컬럼비아 대학교에 연구원 자격으로 와 있었다. 형식은 교환교수 형태였지만 학생의 강의를 맡진 않았고 연구만 했다. 어머니는 물론 서울에서 이현과 함께 지냈지만 얼마 전에 뉴욕 구경을 하고 싶다고 해서 아버지에게 와 있다가 함께 봉변을 당했다.
 
 이현은 허인식 영사와 함께 시 외곽에 있는 세인트 헬렌 병원으로 가서 임시로 안치되어있는 부모의 시신을 확인하고 추가로 행정절차를 이어갔다. 뉴욕 경찰, 즉 NYPD(New York City Police Department) 본부에도 갔다. 여기에서도 신원을 확인하고 각종 서류에 사인을 하고 나서야 장례절차를 진행할 수 있었다.
 
 이현은 부모의 장례식을 그냥 뉴욕에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이후엔 화장한 유골만 수습해서 한국으로 돌아갈 계획이다. 황망한 와중에도 서울에서 출발하기 전에 내린 생각이다.
 
 장례가 끝난 후에는 부모가 머물던 숙소와 아버지의 학교 연구실에 들러서 유품을 수습했다. 유품이라야 대부분이 책이다. 족히 한 트럭은 될듯한 책을 정리하면서 이현은 조금 이상한 점을 느꼈다.
 
 엄청난 책과 수많은 자료들이 정리가 되어 있지 않고 어수선한 것을 느낀 것이다. 꼭 누군가 심하게 어질러 놓고 어설프게 다시 정리해 놓은 것처럼. 평소 아버지의 꼼꼼한 성품에 비추어 있을 수 없는 일이어서 허인식 영사에게 전화로 물었다.
 
 “허 영사님, 아버지 자료를 누군가 먼저 본 사람이 있습니까?”
 “아니, 그건 내가 알 수 없는데··· 자네도 보다시피 송 박사님은 당신의 연구실엔 자물쇠를 채우고 다니시지 않나? 숙소는 말할 것도 없고.”
 
 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의 연구실이나 어머니와 함께 지내던 숙소는 문이 단단히 잠겨 있었다. 부모님의 성품상 문단속을 허투루 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언제나 연구와 자료에 진심인 아버지는 집안의 어떤 물건보다도 자신의 책과 연구자료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의문을 풀 방법이 현재는 없다. 이현은 조용히 그러나 치밀하게 아버지의 책과 연구자료가 있는 방을 폰으로 찍었다. 족히 수백 장은 찍었을 것이다. 지금 딱히 특별한 의문점이 발견된 것은 아니지만 그의 평소 성품이 눈에 거슬리는 것을 두고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촉’이 무언가 말하고 있다.
 
 부모님의 죽음에는 감춰진 비밀이 있다고.
 
 * * *
 
 서울로 돌아온 이현은 한동안 부모님의 사후 정리에 정신이 없었다. 그는 이제 갓 성인이 되었지만, 부모님의 유일한 상속자이기에 할 일이 많다. 아버지 명의의 압구정동 아파트와 제주도 등 지방에 흩어져 있는 부동산의 상속 절차를 변호사와 협의하여 진행했고 부모 명의 계좌에 들어 있는 예금도 적법한 세금을 내고 자신의 계좌로 이체했다.
 
 아버지 송수용 박사는 경제적으로 곤궁하지 않았다. 오히려 상당한 부자였다. 이현의 할아버지가 6.25 때 월남한 개성상인 출신으로 전쟁이 끝나고 빈손으로 시작하여 상당한 부를 일구었다. 그 재산이 아버지를 거쳐 이제 이현에게 상속된 것이다.
 
 ‘이제 무얼 해야 하지?’
 
 이현은 심리적 공황에 빠졌다. 부모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이제야 슬슬 실감이 나는 것이다. 집안을 둘러보니 온통 책이 쌓여 있다. 대부분이 아버지가 생전에 보던 책이고 자료들이다. 이현은 아버지의 책과 연구자료를 모두 서울의 집으로 가져왔다.
 
 아버지를 기억할 만한 것이 이 책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상해. 고작 책과 자료를 가져오는데 왜 그렇게 꼼꼼히 들여다본 건지.”
 
 이현이 혼자서 중얼거린 것처럼 이 책과 자료를 서울로 가져오는데 한참 애먹었다. 컬럼비아 대학 관계자라는 사람들이 와서 자기네 대학의 자료가 이현에게 넘어가면 안 된다고 모든 자료를 며칠 동안 이 잡듯이 뒤진 것이다.
 
 부르르-
 
 이현의 폰이 진동했다. 슬쩍 보니 이성만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중학교 때부터의 친구. 지금 신촌에 있는 동강대에 다니고 있다.
 
 “오랜만이다.”
 
 이현의 건조한 말에도 성만은 크게 소리쳤다.
 
 “이현아! 너 왜 그렇게 전화를 안 받은 거야? 너 오늘 좀 보자.”
 “그래.”
 
 이성만은 이현이 부모님 장례를 치르러 뉴욕으로 가면서 유일하게 연락한 친구이다. 서울로 돌아와서는 한번 밖에 만나지 않았다. 그토록 친하다는 친구인데도 그렇다. 요즘엔 모든 게 시들해졌다. 아니 부모님의 납득할 수 없는 죽음에 정신적으로 겨를이 없었다고나 할까.
 
 거울을 본 이현은 피식 웃었다. 머리는 언제 깎았는지 추레했고 뺨이 움푹 들어갔다. 그동안 끼니를 제때 찾아 먹지 못한 것이다.
 
 녀석을 만나기 전에 머리도 깎고 좀 다듬어야겠다.
 
 이현은 집 앞에 다니던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자르고 저녁에 집 앞의 중국집에서 이성만을 만났다.
 
 “여어! 이제 사람 같아 보인다. 살은 빠졌지만 말이야.”
 
 식당에 들어서는 이현을 보며 이성만이 큰 소리로 말했다.
 
 이현은 일부러 호들갑을 떠는 성만을 보며 웃었다. 이 녀석은 자신의 기분을 살려주기 위해 신경을 써주는 것이다.
 
 주문한 꿔바로우를 안주 삼아 소주를 나눠마시고 식사로 짜장면을 먹으면서 이현이 불쑥 말했다.
 
 “나, 군대나 가야겠어.”
 “뭐?”
 
 이성만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갑작스러운 이현의 말에 놀란 것이다.
 
 “너, 그래서 수강 신청을 안 한 거야? 이 자식은 꼭 갑자기.”
 “갑자기 생각한 건 아니고, 내가 머릿속을 정리할 필요가 있어서.”
 
 뉴욕에서 돌아오면서부터 생각했던 것인데, 부모님의 사망이 준 충격에서 벗어나려면 무언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현이 궁리한 것이 군 입대였다.
 
 하지만 요즘 군대를 가려 해도 이런 식으로 학기를 끝내고 딱 시간 맞춰 입대하기도 어렵다.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이 모두 시간 낭비 없이 군대를 마치고 복학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현이 지금 입대 일정을 알아보아도 최소 한 학기 정도는 쉬어야 할 것이다.
 
 이현은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일반 육군으로는 가지 않고 특수 부대에 지원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입대하기 전에 무애 스님에게 다녀와야겠네.’
 
 이현은 속으로 생각했다.
 
 부모님의 유골을 성남 근처의 봉안당에 모시고 난 후 이현은 스님에게 다녀왔다.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었던 것이다. 아울러서 부모님의 기제사를 절에 맡기기도 할 겸 해서.
 
 그 무애 스님이 몇 년 전 이현이 고등학교 일 학년 때 한 말을 떠올렸다.
 
 “네놈은 업(業)이 있어. 앞으로 많은 파란을 몰고 다닐 거야. 넌 그래서 몸과 정신을 잘 만들어야 한다. 그 파란을 이겨서 살아남으려면 말이지. 클클.”
 “스님, 제가 무슨 힘이 있다고 파란을 일으켜요. 난 조용히 살고 싶다고요. 얼마 전까지 학교에서 맞고 다닌 거 모르세요?”
 
 이현의 말에 스님은 입을 벌리고 웃었다.
 
 “예끼 이놈. 지금 네가 누구에게 맞고 다닌다고? 저어기 순돌이가 웃겠다.”
 “순돌이가요?”
 
 이현이 돌아보자 시원한 나무 그늘에서 혀를 빼고 졸고 있던 개가 눈을 뜨고 이현을 바라보았다. 순돌이는 암자에서 키우는 진돗개 잡종이다. 절집에서 여러 사람을 보는 게 일상이라 짖을 줄 모르는 순한 개였다.
 
 경주 부근에 있는 작은 암자. 성안암(成安庵).
 그야말로 이름도 없는 산중에 암자 하나 덜렁 있는 모양새여서 시주할 신도나 있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어떻게든 기거하는 스님이 굶지는 않고 사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현이 모르는 일도 있었는데, 아버지 송수용 박사는 알음으로 알게 된 무애 스님에게 매년 상당한 시주를 해오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키만 컸지 삐쩍 마른 약골이었던 이현은 아버지의 권유로 삼 년 전인 중학교 일 학년부터 방학하면 이 암자에 내려와서 이 스님에게 ‘운동’을 배웠다.
 
 법명(法名)을 스스로 무애(無碍)라고 지었다는 이 스님은 성격이 조금 괴팍해서 말을 가리지 않았다. 이현에게도 퉁명스럽게 이놈 저놈 하며 편하게 대한다.
 
 이현이 중학교 일 학년 때부터 이 스님에게 ‘운동’을 배웠지만 그 기간도 여름과 겨울방학 때뿐이다. 그것도 삼 주 정도나 될까. 스님은 기본자세와 숨 쉬는 법만 가르쳐 주고 나머지는 서울에서 알아서 하라고 했다.
 
 하지만 이현은 이 운동에 재미를 붙여서 서울에서도 시간만 나면 열심히 했다.
 
 먼저 체조선수가 운동 전에 몸을 풀 듯이 극한에 가까운 스트레칭으로 몸을 이완시키고 덥힌다. 그리고 땀이 적당히 나면 가볍게 4~5km 정도를 뛰고 본격적인 동작을 연습한다. 그리고 마무리는 언제나 숨쉬기.
 
 그때 무애 스님은 귀에 딱지가 앉도록 잔소리했다.
 
 “다른 거 할 시간이 없으면 이 숨쉬기라도 해야 한다. 이게 기본이야. 다행히 네놈 체질이 숨쉬기하고 좀 맞는 거 같으니 열심히 해라.”
 “네네.”
 
 숨 쉬는 것과 체질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지만, 이현은 꾀부리지 않고 열심히 했다. 처음에야 아무런 변화도 느낄 수 없었지만, 몇 달이 지나자, 몸에 슬슬 변화가 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 년쯤 지나서는 스스로 자신이 더는 약골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몸에는 힘이 붙었고 삐쩍 말랐던 체격이 조금씩 변했다. 무엇보다 이현이 신기하게 생각한 것은 숨쉬기 덕분인지 머리가 상당히 좋아져서 성적이 부쩍 오른 점이었다.
 
 생각에서 깨어난 이현은 성만과의 자리를 끝내고 집에 들어왔다. 방이 다섯 개나 되는 아파트에 혼자 들어가서 자려니 오늘따라 더욱 썰렁한 기분이 되었다.
 
 간단히 씻고 멍하게 베란다 밖을 보던 이현은 문득 자신의 방에 가서 컴퓨터를 켰다. 한동안 확인하지 않았던 메일을 살펴볼 참이다.
 
 먼저 국내 포털 네이웃의 메일. 역시 광고와 스팸성 메일이 잔뜩 쌓였다.
 이현은 하던 데로 제목만 보고서 슥슥 지워 나갔다. 그렇게 네이웃 메일을 확인한 후 또 다른 사이트 다은도 마찬가지로 정리했다. 이쪽은 자주 사용하는 계정이 아니어서 쌓인 메일도 별로 없다.
 
 이후에 컴퓨터를 끄려고 하던 이현은 문득 고골이 생각났다. 여기에 만들어 둔 메일은 폰을 개통할 때 만들어 두고 몇 년 동안 아예 사용하지 않는 계정이다. 메일 주소를 아는 사람도 몇 사람 되지 않을 것이다.
 
 하던 김에 여기도 살펴봐야지.
 
 “으응?”
 
 이현은 묘한 것을 발견했다. 폰을 개통하면서 가입했던 때 들어온 여러 메일이 있고 이후엔 가끔 광고성 메일뿐이다.
 
 근데 이건 뭐야?
 
 - 당신의 인생을 바꿔줍니다!! 당장 가입하세요.
 
 여기까진 일반적인 광고성 메일과 거의 비슷하다. 하지만 발신인이 특이했다.
 
 - moo-ae
 
 무애라고?
 그럴 리가!
 
 이현의 주위에 무애라는 고유명사는 단연코 경주 성안암의 무애 스님뿐이다. 그 스님이 이현에게 메일을 보냈다고? 그것도 미국이라면 일단 코쟁이 놈들이라며 욕부터 하고 보는 양반이 미국 포털인 고골을 이용해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물론 무애 스님이 영어를 곧잘 하는 건 알고 있다. 젊었을 때 방랑벽이 있어서 전 세계를 돌아다닌 적이 있다고 했었다.
 
 하지만 평소에 귀찮다고 핸드폰도 잘 들고 다니지 않는 노인네가 이현의 고골 메일 주소를 알아내고 자신이 직접 메일을 작성해서 보낼 리가 없다.
 
 이현은 손에 땀이 차는 것을 느꼈다. 조심스럽게 클릭하여 메일을 열어 본다.
 그리고 메일을 열어본 순간,
 
 “아버지···.”
 
 이현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메일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이현에게 보낸 것이었다. 그것도 돌아가시기 전에 예약 메일로.

댓글(51)

글이좋아요    
오 영단작가님이네ㅎㅎ 정주행 갑니다
2024.05.14 11:13
새둥이    
감사합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
2024.05.14 13:29
청은이    
잘 보고 갑니다.
2024.06.11 00:36
새둥이    
감사합니다
2024.06.11 15:05
장다리1    
완벽하게 세팅해놓는군
2024.06.14 01:28
호롤로로로    
총영사가 사패라는 복선인가? 상치르려고 온 사람보고 웃으면 좀..
2024.06.14 08:07
dosa12    
재미있습니다
2024.06.14 14:49
풍뢰전사    
건필하세요
2024.06.14 19:43
FAD    
진짜 15년전에 유행했던 현판스타일이네
2024.06.15 14:23
전재환    
고아는 면제인데.. 요즘에야 막 풀린다긴 하지만..
2024.06.16 17:56
0 / 3000

이용약관 유료이용약관 개인정보처리방침 청소년보호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