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내 장롱에 우주전함이 있다.

장롱 안에 우주

2024.05.14 조회 59,350 추천 1,090


 
 
 나는 백수다.
 외출을 위해 샤워를 하고 옷을 입기 위해 장롱을 열었을 뿐이다.
 
 우우우웅-
 
 이상했다.
 눈을 비볐다.
 
 “뭐야, 이거.”
 
 우주였다.
 태양처럼 빛나는 항성 몇 개가 보였고 은하수가 배경으로 있었다. 그 중앙에 작고 귀여운 우주 전함이 떡 하니 있었다.
 어느 영화에서 봤을 법한 모습.
 정지된 듯 모든 불이 꺼져 있었다.
 
 깜빡.
 
 ‘방금 깜빡인 거 같은데.’
 
 꿈일까.
 몰래 카메라?
 어제 먹은 술이 안 깼나.
 
 “뭐야, 이게 도대체.”
 
 어이가 없어서 목소리가 살짝 높아졌다.
 그러자 우주에 물결이 일었다.
 
 콰아아아-
 
 우주 전함도 흔들렸다.
 전함 몇 군데가 깨져 나간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신이십니까?
 
 신이냐고 묻는다.
 엄마가 나한테 가끔 병신이냐고 하는데.
 이것들도 날 병신으로 보는 건가.
 
 
 * * *
 
 
 [토케이]
 
 항성파괴급 우주 전함이다.
 항성 모함이라고도 불린다.
 
 “젠장할!”
 
 안야 테일러.
 그녀는 중앙지구 초엘리트 출신 함장이다.
 
 -21번째 차원 도약을 시작합니다.
 -동력 3% 미만.
 -주의 요망!
 -자체 수리 시스템 불능.
 -외부 실드 15% 미만.
 -외계 문명의 도약 추적 시스템 감지!
 .
 .
 .
 
 외계 문명은 추적을 포기하지 않는다.
 
 ‘왜지? 우리 인류가 무얼 잘못했나?’
 
 우주 연합, 은하계 중심 초거대 항성 파괴되면서 수백 개에 달하는 지구 식민지가 먼지로 사라졌다.
 인류의 99.99%는 전멸했다고 봐야겠지.
 그런데도 추적한다.
 마지막 하나까지 놓치지 않겠다는 듯.
 
 ‘게다가 나 혼자잖아.’
 
 자원이 고갈되면서 다른 은하계로 떠나기 위해 건조되고 있던 전함이 바로 [토케이]였다.
 아직 미완성 함선.
 함장실을 제외한 다른 구역은 차원 도약을 버틸 수 없다. 외부 실드로 겨우 붙잡고 있지만, 안에 생명체는 중력 중첩과 공간 왜곡으로 모조리 죽었다.
 
 “다 죽었어! 다 죽었다고!”
 
 미지의 외계문명에게 소리쳤다.
 남은 인간은 그녀 한 명이다.
 
 “도약!”
 
 그녀가 외쳤다.
 이제 동력도 고갈 직전이다.
 이번에도 쫓아온다면 그녀도 죽는다.
 인류의 명맥도 끝난다는 뜻이다.
 
 ‘나라도 어떻게 살아야 해.’
 
 마지막 희망이다.
 [토케이]만 있다면 인류는 복원할 수 있다. 은하계를 점령했던 인류의 모든 지식과 기술이 이 전함에 담겨 있으니까.
 
  ---―━━━━
 
 시야가 흩어진다.
 우주에 박힌 별이 선이 되고.
 공간이 접히고 또 접힌다.
 
 ━━━━―---···
 
 도착했다.
 새로운 우주가 보였다.
 
 ‘제발, 이제 마지막이다.’
 
 동력은 고갈되었고 함선은 정상이 아니다.
 차원 도약에 필요한 ‘유물’도 거의 소진했다.
 
 “에키, 추적은?”
 
 -외계 문명 [엘레니아]의 추적은 감지되지 않습니다.
 
 [토케이]의 메인 오퍼레이터.
 인공지능 [에키너스]가 말했다.
 
 “정말이야? 추적이 끝났어?”
 
 -맞습니다. 차원 연결이 완전히 끊겼습니다. 추적을 위한 다차원 끈 연결의 전조도, 차원 도약의 전조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다.
 안야 테일러는 함장 의자에 풀썩 앉았다.
 
 “······왜지. 그렇게 끈질기던 [엘레]가 왜 포기한 거지?”
 
 이상했다.
 그들이 포기한다고?
 그럴 이유가 없을 텐데.
 
 “그런 고도 문명의 함선이 동력이 부족할 리도 없어. 20번을 추적했는데, 이제 와서? 뭔가 이상해.”
 
 -이유를 분석 중입니다.
 -함장님 말씀대로 포기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들의 행동 역학에 벗어나는 행동입니다.
 
 “포기한 게 아니라, 추적하지 못한 거라면?”
 
 함장 안야 테일러.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우주를 바라봤다.
 
 “여기, 왜 이렇게 조용해?”
 
 우주는 조용하다.
 하지만 언제나 빛은 있었다. 항성이 불타오르기도 하고 소행성 무리가 지나가기도 한다.
 그리고, 더 이상한 건······.
 
 -분석 중.
 -······중력파가 감지되지 않습니다. 이 우주가 어떤 닫힌 공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안야 테일러는 중앙지구 초엘리트 출신이다. 에키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단숨에 파악했다.
 그때였다.
 
 번쩍-!
 
 저 멀리 빛이 뿌려졌다.
 우주의 밖, 무언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인간의 형상?
 
 -비정상적인 초거대 중력파 감지!
 -비상 복구 시스템 가동!
 -실드 재가동!
 -동력 1% 미만!
 -최소한의 생존 동력만 남겨둔 채 실드를 복구합니다.
 
 그때, 안야 테일러는 보았다.
 신이라는 존재를.
 
 -무어어어어어, 이거어어어어!
 
 기이한 소음.
 강렬한 중력파.
 신이 아니라면 보일 수 없는 힘이다.
 그리고 저 모습.
 
 ‘신은 자신의 모습을 본 따 인간을 만들었다.’
 
 쿠우우우웅.
 
 중력파가 도달했다.
 항성파괴급 우주전함 토케이가 흔들린다. 외부 갑판이 떨어져 나가고 몇몇 구역이 이탈했다.
 
 “에키! 방금 중력파를 음성 신호로 해석해봐. 그냥 중력파가 아닌 것 같아.”
 
 -네, 중력파를 자유 공간 광통신(Free Space Optical Communication, FSO)을 활용하여 음성 신호로 변환해보겠습니다.
 
 안야 테일러는 감이 왔다.
 저 거대한 존재는 무엇일까. 적의가 있다면 아무리 항성파괴급 전함인 에키네스라고 해도 이미 우주 먼지가 되었겠지.
 
 “언어라면, 우리 뜻을 전달할 방법도 찾아봐.”
 
 -알겠습니다. 모든 연산을 집중하겠습니다.
 
 안야 테일러는 거대한 존재를 바라봤다.
 무엇일까.
 흐릿한 형상만 보인다.
 수천 개의 태양이 뭉친 것처럼 밝은 빛이 흩뿌려졌으며 그 아래 얼핏 인간의 모습을 한 듯 거대한 존재는 우리를 굽어본다.
 
 ‘신일까?’
 
 21번의 차원 도약.
 그것으로 신을 찾아버린 것일까.
 그래서 초고도 문명인 [엘레니아]조차 추적을 포기한 것일까.
 
 
 * * *
 
 
 순간, 미안해졌다.
 목소리를 조금 높였더니 우주가 출렁였고 우주 전함의 일부가 파손되었다.
 
 “너무 작고 소중하잖아.”
 
 귀여웠다.
 마치 스타크래프트에 나오는 배틀 크루져 피규어를 보는 느낌이다.
 
 ‘태양이 주먹 크기라면, 함선이 주먹 반 크기.’
 
 이렇게 비교해보니 꽤 크다.
 실제라면 어마어마하게 큰 거겠지.
 
 -지직. 지지직.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조용히 기다렸다.
 그러자.
 
 -혹시, 신, 님이십니까?
 
 내게 물었다.
 신이냐고.
 
 “······병신?”
 
 엄마 내 등짝을 치면서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나이 서른 먹고 취직도 못하고 맨날 술이나 처먹으면 그건 병신 아니냐고.
 
 “너는 뭐지?”
 
 내가 물었다.
 병신이라고 해서 기분 나빠서 대답하지 않은 건 아니다.
 
 -토케이, 전함, 은하 인류. 안야 테일러라고 합니다.
 
 중간중간 끊긴다.
 그래도 한국어로 말하네.
 도대체 뭘까.
 
 “왜, 이곳에 있는 거지?”
 
 궁금했다.
 왜 하필 내 장롱이냐고.
 옷도 몇 개 없어진 거 같다.
 나는 대답을 기다렸다.
 
 -외계 문명에 의해, 멸망. 홀로 탈출했습니다. 도움 필요, 합니다.
 
 처음보다 음질이 깨끗해졌다.
 문장도 하나씩 만드는 거 같고.
 
 -대화를 위해, 동력이 필요합니다.
 
 동력?
 그걸 내가 어떻게 해결하지?
 
 -빛, 더 강한, 빛이 필요합니다.
 
 빛이라.
 그건 어려울 게 없지.
 
 “흠, 알겠어.”
 
 일단 대답 해줬다.
 말소리 좀 크게 했다고 갑판이 떨어지고 전함이 흔들릴 정도면, 빛도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머리 위에 형광등을 봤다.
 
 “이걸론 부족하다는 뜻이겠고.”
 
 우리 형이 캠핑을 좋아한다.
 한 번씩 본가에 가면 이것저것 보다가 하나씩 집어온다.
 
 “여기 있네.”
 
 밝기가 5천 루멘?
 엄청나다고 들었다.
 밤에 사용하면 거의 태양이랬는데.
 줌인도 있다.
 
 딸깍.
 
 “오오, 밝다.”
 
 한쪽 벽이 완전히 밝아진다.
 그리고 이걸 전함에 비추면 되려나.
 
 “한다?”
 
 -네, 준비 완료하였습니다.
 
 스윽.
 
 빛을 비췄다.
 
 “근데 전함도 친환경인가. 왜 태양광이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필요하다니 해보자.
 
 
 * * *
 
 
 한편, 전함 안에서는.
 
 -준비하라.
 
 에키가 번역한 문장이다.
 역시 신이라 그런지 근엄한 듯하다.
 
 “빛을 주신다고 한다! 빠르게 준비해!”
 
 안야 테일러가 외쳤다.
 1% 미만인 동력을 모조리 동원한다. 신이라 추정되는 존재의 빛은 일반 빛과 다르겠지.
 
 -최외곽 실드, 에너지 실드로 변환 완료!
 
 “이중, 삼중으로 깔아! 거대 중력파를 겪어봐서 알겠지만, 한 겹으로는 부족할 거야.”
 
 -동력이 부족합니다!
 
 “반물질 남았지?”
 
 -차원 도약은 ‘유물’이 부족해 불가능하지만, 일반 도약 다섯 번 할 수 있는 양이 남았습니다.
 
 “그걸 소모해.”
 
 -함장님 안전을 위한 최후의 보루입니다.
 
 도약.
 차원 도약만큼은 아니지만, 우주의 끝과 끝을 오갈 수는 있다. 탈출할 때 사용하기 위해 남겨둔 자원이다.
 당연히 쉽게 만들 수도 없다.
 
 “어차피 이번 기회를 놓치면 끝이야. 지금 손상 상태를 보면 복구에만 최소 수백 년이야.”
 
 -······알겠습니다. 명령을 수행합니다.
 -반물질 소모.
 -에너지 패널 확장.
 -이중 패널 완성.
 -삼중 패널 완성.
 -상호 연결 중.
 -준비 완료!
 
 “오케이, 의사 전달 부탁해. 준비됐다고.”
 
 다행히도 언어 해석해 성공했다.
 본래 인류가 사용하던 언어와 구조가 유사한 덕분에 은하 인류 최고의 인공지능인 에키에 의해 빠르게 언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준비 완료했습니다.
 
 그때였다.
 
 화악-!
 
 보였다.
 저 먼 우주의 끝.
 그곳에서 시작된 빛의 세례.
 마치 신의 분노를 표현하듯, 모든 걸 밝히고 태우며 다가오는 거대한 빛의 파도. 그것은 우주 전체를 밝혔다.
 
 “젠장! 에너지 패널 늘려! 아니, 방어 실드 모조리 동원해! 반물질 남기지 마!”
 
 안야 테일러는 자신의 실수를 반성했다.
 신과 같은 존재에게 ‘빛’을 달라고 하다니.
 시련인가.
 아니면 시험인가.
 이건 빛이 아닌 재앙이었다.
 우주 멸망급 재앙.
 
 -확인했습니다.
 -최소 수천 개의 항성급 에너지로 측정!
 -반물질을 소모합니다.
 -에너지 패널 확장.
 -앱솔루트 항성 방어 실드 생성.
 -모든 구역의 전력을 차단합니다.
 -보조 엔진 가동!
 -빛이 도달합니다!
 -함장님, 각성제 투여!
 
 콰아아아아아-!
 
 우주를 밝힌 빛이 도착했다.
 그 순간 모든 빛이 집중되었다.
 
 -에너지량이 집중됩니다!
 -에너지가 급속도로 충전됩니다!
 -3%, 5%, 8%!
 -갑판 일부가 소멸했습니다!
 -첫 번째 에너지 패널 소멸!
 -두 번째 에너지 패널 반파!
 -세 번째 에너지 패널까지 손상됩니다!
 
 콰아아앙!
 콰으으으-!
 
 “차오른 에너지로 실드 계속 생성해! 버텨야 해! 그리고 메시지 보내. 충분하니까 제발 거둬 달라고.”
 
 쿠으으응!
 
 안야 테일러는 흔들리는 전함 속에서 각오하고 또 각오했다.
 
 ‘이게 만약 시험이었다면, 제발 통과하기를.’
 
 -긴급 복구 시스템 가동!
 -에너지 실드 최대 출력!
 -메시지 전송에 성공하였습니다.
 .
 .
 .
 
 
 * * *
 
 
 -충분합니다. 멈춰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딸깍.
 
 손전등을 껐다.
 
 “눈뽕이 너무 심했나.”
 
 안 그래도 밝은 손전등인데 줌인으로 집중까지 했으니 눈이 부실만 하다.
 
 “에너지 좀 채웠나?”
 
 -치직, 치직.
 
 음질이 또 흔들린다.
 무엇을 하는 걸까.
 나는 차분하게 기다렸다.
 
 드르륵.
 
 컴퓨터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하품이 쩍 나온다.
 
 띠링.
 
 그때, 내가 든 핸드폰에 무언가 떠올랐다.
 
 -페어링 요청이 확인되었습니다.
 -요청을 허락하시겠습니까?
 
 “······저 친구들도 안드로이드인가.”
 
 같은 기종 아니면 잘 안 되던데.
 나는 허락했다.
 그러자.
 
 우웅. 우웅.
 
 전화가 왔다.
 그래서 받았다.
 이게 도대체 뭔지, 어떤 존재이길래 이렇게 작은 우주에 전함까지 내 장롱에 있는 건지 궁금했다.

댓글(52)

엘림    
더 올려요
2024.05.14 11:23
다락방창문    
장농신 잘부탁합니다
2024.05.15 18:37
루나갈매기    
때릴까보다-_- 왜 담글이 4월이후로 안올라오나 했드만 공모전 준비하신거였다니.공지라도 좀 띄워놓으시지.
2024.05.16 03:01
k7**********    
오 신박하다
2024.05.20 06:50
푸른바람07    
사과폰이었으면 어쩔뻔 했....
2024.05.21 20:14
시몬느    
토게이가 생각나는 함선명이다
2024.05.22 07:23
고추냉이    
이런 류 글들 보면 뭔가 어색한데 이글은 재밌네 ㅋㅋㅋ
2024.05.23 00:14
전재환    
ㅋㄱㄱㅋ 귀엽다
2024.05.23 15:23
풍뢰전사    
건필하세요
2024.05.25 17:22
팬저킬러    
아 작고 앙증맞은 우주전함의 추억이여
2024.05.25 22:21
0 / 3000

이용약관 유료이용약관 개인정보처리방침 청소년보호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