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국가권력급 헌터가 미국으로 이민감

1화

2024.05.19 조회 25,787 추천 408


 국가권력급 헌터
 
 어느 순간부터 유행어처럼 번진 이 단어는 대격변 이전에 모 웹소설 사이트에서 유행했던 말이지만 대격변 이후 지금은 단 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정진우. 세계 유일의 S급 헌터.
 
 그가 유일하게 S급인 이유는 그가 제시한 헌터 등급의 기준이 그 자신이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A등급에서 이 정도부터는 S급이라는 의미로 그렇게 제시한 것이지만.
 
 S급이 된 이후로도 그가 숨 쉬듯이 강해지면서 S급의 기준은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
 정작 본인은 예전 자신의 기준으로 S급을 매기라고 말하지만 소용없었다. 그렇게 억지로 S급이 되어봤자 그의 앞에선 이름뿐인 존재가 되니까.
 
 그 정도로 그는 강할 뿐만 아니라 헌터들 사이에서도 영향력이 엄청났다. 비단 대한민국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사람들은 그를 두고 국가권력급 헌터라고 부르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실제로도 그가 출마만 한다면 한국 대통령 정도가 되는 건 별로 어렵지도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그건 뭐랄까, 일반인들은 몰라도 권력자들 입장에선 참 껄끄러운 일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일개 시민에 불과한 헌터가 국가권력급이라고 불리는 게 정치인들에게 달가울 일일 리가 없으니까.
 
 그게 어디 철 지난 농담 같은 소리라면 그들도 그냥 웃고 지나갔겠지만 정말로 국가를 쥐고 흔드는 수준이라면 진지하게 싫어할 만도 한 일이었다.
 
 그래서 보통 권력자들은 그런 거슬리는 이들을 길들이려고 가끔 무리수를 던지곤 했다.
 
 “정진우 헌터, 오늘부터 당신은 S급이 아닙니다.”
 
 꼬장꼬장하게 생긴 중년 여자, 듣기로는 대통령실 측근이라던 여자가 대뜸 정진우를 찾아와 한 말이었다. 정진우는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
 
 “갑자기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요. 설명 좀 해주시겠어요?”
 “말한 그대로입니다. 오늘부터 헌터 협회에 등록된 모든 헌터들의 등급을 재심의할 생각입니다. 우리가 제시한 기준으로 다시요.”
 
 지극히 적대적인 말투. 자신을 싫어하는 정치인들은 많이 봤지만, 이번 정권의 인사들은 유독 정진우를 싫어하는 이들이 많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 사람들 전부 정진우가 헌터 협회의 협회장으로 진행한 일들을 모두 반대한 사람들이거든. 바꿔 말하면, 정진우가 깨트리려고 했던 기존 기득권에 아주 접점이 많은 사람들이란 의미였다.
 
 “그 말도 안 되는 기준 말입니까? 등급 컷 엄청 낮춰서 등급 한두 단계는 그냥 오를 거 같은 그거?”
 “그간의 등급이 지나치게 깐깐했던 겁니다. 고작 C등급 진급률이 30%도 안 된다는 거 알고 있습니까? 그 때문에 C급 게이트부턴 길드에서 출장비 부르는 게 값이에요. 그것 때문에 서민들이 얼마나 힘든지 알아요?”
 “위험한 일에 수당을 더 주는 건 당연한 겁니다. 그리고 그 헌터들이 그 돈 받고 서민들 지켜주는 거잖습니까.”
 “하, 마치 서민 걱정해주시는 듯이 말씀하시는군요. 헌터들 기득권 지키려고 그러는 거면서.”
 “글쎄요, 서민팔이는 그쪽이 먼저 시작했는데. 당신들도 기업들에게 돈 받고 헌터들 싸게 부려보려고 이러는 거잖습니까.”
 “뭐요?!”
 
 정진우의 반박에 대통령실 측근이 버럭 화를 냈다. 정진우는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웃기지도 않아 쓰게 웃었다.
 
 사실 이유는 명확했다. 정진우는 적을 많이 만들었다. 낮게는 대격변 사회가 되어서도 상류층이 되지 못한 서민들 중에서도 질투를 많이 받았고 높게는 기존의 기득권을 돌려받고 싶은 정치인들과도 척을 많이 졌다.
 
 그랬던 이유는 정진우가 마냥 착하거나 좋은 일을 하려고 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도 그 자신과 자신의 사람들을 지키려 하다가 그런 것이었다.
 
 헌터등급제는 뭐만 하면 수준 안 가리고 게이트에 헌터를 밀어 처넣으려는 행태를 막으려고 제안했었고.
 
 헌터고용시 위험수당 의무지급제는 기업들이 헌터들을 상대로 싼맛에 후려치려고 하는 걸 막으려는 이유에서 온갖 반대도 무릅쓰고 추진했었다.
 
 그리고 정부가 추진하려고 했던 각성자 의무복무제는 직접 용산까지 찾아가서 대통령을 협박한 끝에 멈춰 세웠다.
 
 하지만 그 대가로 정진우는 적을 많이 만들고 상당한 인기를 잃었다. 까다로운 등급제를 실시했으니 정부가 싫어했고, 고용주가 헌터에게 위험수당을 많이 주도록 했으니 대기업이고 중소기업이고 전부 정진우를 싫어했다. 마지막으로 의무복무제를 까버린 건, 국민 절반이 그에게 등을 돌리도록 만들었다.
 
 ‘웃기는 일이지. 어느 것 하나 안 했으면 나라가 망했을 텐데.’
 
 특히나 헌터들을 강제로 군복무 더 시킨다는 미친 짓은 어떤 놈 대가리에서 나온 발상인지 궁금했다. 군대 한번 가는 것도 좆같은 군대를 두 배로 가라고? 한군두는 헌터가 아니라 일반인에게 시켰어도 폭동 날 일이었다. 하지만 일반인 대상으로 하는 정책이 아니라서 오히려 국민 대다수가 지지했었지.
 
 그런 배경 덕분에 지금의 반헌터 성향의 대통령이 당선될 수 있었다. 내건 공약도 전부 헌터 규제에 관련된 공약들이었다. 그러니까 뭐라더라, 국가정상화론이었던가?
 
 “당신부터 그런 태도니까 대한민국이 헌터공화국이냐는 말들이 나오잖습니까.”
 “딱히 틀린 말은 아니네요. 삼성공화국 소리도 듣던 시절도 있었는데 그게 뭐 나쁩니까?”
 “이보세요, 이거 당신에게 하나도 손해 없는 거잖아요? 재심의해도 당신은 어차피 S급일 텐데 이걸 핏대 세워서 반대하는 이유가 뭔데요?”
 “나만 편한 거 생각할 거 같았으면 애초에 등급제 제안하지도 않았습니다만.”
 
 정진우는 단호하게 거절 의사를 밝혔다. 당연히 그런 말도 안 되는 걸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이미 세계 기준이 된 헌터 등급제가 한국에서만 유명무실해지는 건 문자 그대로 개망신인 일이다. 꼭 정진우나 그의 사람들의 이득을 지키는 일이 아니라 한국을 위한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이 사람들에겐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인듯했다.
 
 “좋아요, 그럼 그렇게 하시죠. 대신 세무조사 준비나 하는 게 좋을 걸요. 아, 그리고 뭐였더라 여당 쪽에서 특검 발의도 몇 개 들어갈 거예요. 지난번 강원도 게이트에서 사람들 많이 죽었죠? 그거 당신 후배 실수 덮어준 거 알아요.”
 
 길들이기가 통하지 않으면 몽둥이를 드는 건 평범한 권력자들의 일상적인 사고 흐름이다. 꼭 한국이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란 걸 정진우도 잘 안다. 하지만 방금은 좀 선을 넘었다.
 
 세무조사나 특검 발의 때문이냐고? 아니.
 
 “내가 경고하는데. 내 주변 사람들 건드리는 건 용서 못 해.”
 
 순식간에 주변의 온도가 낮아졌다. 비유적인 말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정말로 실내에 난데없는 추위가 들이닥쳤다. 순식간에 서리가 끼고 입김이 서렸다. 방금까지 기세등등했던 중년 여자가 공포에 물들었다.
 
 “허, 허억···”
 “오늘은, 일단 돌아가시죠. 생각해보고 좋은 답변 돌려드리겠습니다.”
 
 다시 나긋나긋해진 표정으로 그가 말하자마자 그 여자는 도망치듯 그의 집무실을 떠났다. 그녀가 나가자마자 집무실의 기온이 다시 올랐다. 그는 지긋지긋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나직이 그런 말을 내뱉은 그는 언제부터 일이 꼬였는지를 생각해봤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가 아니라, 자기가 왜 이런 일을 하고 있는지를 말이다.
 
 그는 어쩌다가 대격변 때 각성했을 뿐인 평범한 사람이었다. 처음엔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했을 뿐이었지만 나중에 갈수록 일이 지저분해지고 있었다.
 
 좋은 일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취업자리 걱정하던 대졸 백수가 세계적인 영웅 대접 받으면서 젊은 나이에 한국 헌터들의 수장 노릇 하고 있다면 이미 출세할 대로 출세한 거다.
 
 하지만 정작 그것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일의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랄까.
 
 “···비서, 밖에 있어요?”
 -예 협회장님. 말씀하실 일 있으십니까?
 “부장급 이상 인사들 전부 회의 소집시키세요. 할 말이 있습니다.”
 
 곰곰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그는 임원 회의를 소집했다. 부장급까지 부르는 건 공개적으로 할 말이 있다는 의미다.
 
 잠시 후 모든 인원이 소집되었다. 그들은 이미 대통령실에서 등급제 조정 관련된 사안으로 왔다 갔다는 것을 비서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그 대통령실 측근이 사색이 되어 도망치듯 떠났다는 것도.
 
 “용산에서 우리한테 뭘 요구하고 있는지 다들 알고 있을 겁니다.”
 “협회장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흰 절대 굴복 안 할 겁니다.”
 “맞습니다. 저들이 그런 고집을 피운들 어쩌겠습니까? 저희가 비토하면 실행하지 못할 겁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협회의 의지를 관철하겠습니다!”
 
 정진우가 한마디만 했을 뿐이지만 임원진들은 너도나도 정부를 성토하기 바빴다. 그러나 정진우는 그게 건설적인 말과는 거리가 멀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 바보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상황이 썩 좋지 않은 건 알고 있어요. 여론조사 결과는 반반··· 아니, 찬성 쪽이 더 많았죠? 심지어 헌터들 사이에서도.”
 “회, 회장님···”
 “그럴 수밖에요··· 저절로 등급이 올라가면 싫어할 헌터들이 어딨겠어요. 그게 제 살 깎아먹인들 C등급 한번 달아보려고 애쓰는 헌터들도 넘쳐날 텐데.”
 
 조금 전, 헌터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등급제를 깐깐하게 하는 것 아니냐는 그 여자의 말은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런 취지는 아니었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고등급 헌터들은 낮은 등급의 헌터들에 비해 많은 걸 누리고 있으니까.
 
 낮은 등급의 헌터들은 많은 노력을 해도 좀처럼 쉽게 올라오지 못했다. 애석하게도 헌터의 실력은 노력만이 아니라 재능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자면, 같은 헌터들도 꼭 정진우의 편인 건 아니었다. 그들 중에서도 정진우의 정책을 싫어하는 이들은 있었다. 아니, 많았다.
 
 “내가 보기엔, 이거 결국 밀어붙일 겁니다. 국회도 여당이 다수예요. 국회에서 결의안이 나오면 우리도 못 버틸 겁니다.”
 “회장님, 그건 말도 안 됩니다. 이미 세계 기준인 등급제를 우리 손으로 바꾸라니요.”
 “웃음거리가 되는 건 둘째치고 저놈들이 원하는 건 자기네들 투정을 우리 손으로 들어주길 바라는 겁니다. 자기네들이 정한 기준이 곧 세계 기준이 되길 원하는 거죠.”
 “그것만이 아닙니다. 등급을 조정해서 친인척들도 고위 헌터 자리에 꽂아보려는 겁니다. 분명 기업 쪽에 넘어간 사람들도 동조하고 있을 겁니다.”
 “나라를 뒤엎는 한이 있더라도 안 됩니다. 이참에 정말로 구국의 결단을···”
 
 정진우가 단언하듯 말하자 조금은 더 진지해진 발언들이 나왔다. 너무 진지해서 위험한 발언도 섞여 있었다.
 
 “어허, 거참 사람들 못하는 말이 없으시네. 구국의 결단은 무슨. 용산 가서 대통령 목에 칼 들이대는 것도 한두 번이지 또 그랬다간 나 미친놈 돼요.”
 “······.”
 “그래서 말인데, 저한테 좋은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여론도 좀 바꾸고, 등급제 바꾸는 것도 좀 막을 수 있는···”
 “그런 방법이, 있습니까?”
 “있어요. 기자회견 한 번 하면 됩니다. 거기서 내가 공식적으로 반대 의견을 낼 겁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될 겁니다, 회장님.”
 “그래요, 그건 안 되겠죠. 그러니 한 가지 더 선언할 겁니다.”
 “선언이시라면···?”
 
 누군가의 물음에 정진우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나 이민 갈 겁니다. 뒷일은 알아서들 하라고 하십시오.”

댓글(24)

우럭구    
다시오셨넹
2024.05.23 01:04
세뮤    
리리메죠 ?
2024.05.26 00:06
물물방울    
연재시작을 축하합니다.
2024.05.26 19:53
검파    
기본의 기득권 기존의 기득권
2024.05.28 12:32
성안마을삼    
음 . 시대가 바뀌어 감에 기득권을 대체 하는 지위 획득이 피없이 이뤄질려면 정치라는걸 해야합니다.대괄 꽃밭은 현실에 없어요.인공 정치력 한없이 제로에 준하는데 ...
2024.05.29 01:10
애들은가라    
건투를 !
2024.05.29 17:48
판타지소셜    
리리 리자로 시작하는말은~~ 리 메이크
2024.05.29 22:15
코알라9    
정치?
2024.05.29 23:11
홈즈홈    
제목보고 사이다를 기대했는데 너무 답답하네요 먼저 내려요
2024.05.30 07:06
스쿠마    
이제 1화인데 사이다 없다하는건 넘 급하신게 아닐지 ㅎㅎ...
2024.05.30 16:24
0 / 3000

이용약관 유료이용약관 개인정보처리방침 청소년보호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