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전직 목사가 이세계에서 살아가는 법

김 목사

2024.05.22 조회 70,274 추천 1,883


 "너는 신을 받아야 한다."
 "옙?"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세요?
 김광오는 그런 패륜적인 반항을 하기보다 무당인 어머니의 말을 곱씹었다.
 
 "박수(남자 무속인)가 되라고요?"
 "그래."
 "갑자기?"
 
 김광오의 집안은 조금 특별했다.
 아버지는 대기업 다니시는 이사시고, 어머니는 좀 특이하긴 하지만 무속인이었다.
 
 다만 아버지의 출세길에 어머니의 영험한 굿 내림이 한몫한 건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
 회장님이 보살님, 보살님~ 모시는 무당 남편이니 어련할까.
 
 하여튼, 집안 곳간은 넉넉하고 남부럽지 않게 살긴 했지만, 무시할 수 없는 집안 특징이 있었으니.
 
 "영안이 벌써 뜨이지 않았니. 그것도 보통 영안이 아니다."
 
 바로 온 집안이 영매 기질이 있다는 것. 적당한 수준이면 하고 싶은 일 하라고 하겠는데, 무속인 경력 50년의 박 여사 말씀으로는 심상치 않더란다.
 
 "널 점찍은 신께서 보통 분이 아니시다. 그분뿐만이 아니야. 많은 신들께서 네게 눈독 들이시는구나."
 
 평범한 사춘기 청소년이라면 질풍노도의 반항기를 여과 없이 드러냈을 것이다.
 
 내 인생은 내가 정한다! 누구도 나를 강요할 수 없어! 신이건 뭐건!
 
 "잡귀들밖에 안 보이는데요."
 
 하지만 실제로 보이는 걸 어떡하랴.
 광오는 초등학생 때부터 영안이 뜨였다.
 귀신을 볼 뿐만 아니라 특별한 '색(色)'을 보는 영안을.
 
 "진짜 신들은 네가 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런가?
 광오는 일반적으로 '신'이라고 불릴 만한 존재를 본 적은 없다.
 
 악마를 본 적은 있어도.
 
 "그런데 무슨 신인데요? 신장동 할매처럼 뭐 맥아더 장군 이런 건 아니죠?"
 
 신(神)을 모신다고 하면 뭔가 그럴듯해 보이고 나의 신성력 앞에 무릎 꿇어라! 할 것 같지만, 이 신의 범주에 귀신도 포함된다는 게 문제다.
 
 잘 걸리면 대일여래, 관세음보살, 미륵보살 같은 1티어고, 장군신이나 동자신만 걸려도 무속인 상위 5%라 할 수 있다.
 
 인천상륙작전의 맥아더? 그 귀신 모시는 무당이 상위 10%라면 믿기는가? 인세에서 꽤 네임드라 은근 수요가 있다.
 
 그런데 대부분은 어디 이상한 잡귀 걸려서 오색 간판 걸고 연애운이나 본다.
 
 평생 신한테 붙들려서 고생할 걸 생각하면 너무 운빨에 의존해야 하는 것.
 
 물론 잘 걸리면 애기 보살도 국회의원, 회장님들에게 호통치고 승승장구한다만.
 
 "잘 생각해봤는데, 역시 싫습니다."
 "네가 거부한다고 거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객기 부리다 화를 입지 말고 강한 분을 모시거라."
 
 광오는 어머니도 젊었을 때는 신내림을 거부하다가 화를 입었다는 이야길 떠올렸다.
 지금은 어머니 덕에 회장님 눈에 들어 이사가 된 아버지도 온갖 재액의 화를 입으셨다지.
 
 그 자신도 눈깔에 뭐가 보이는 게 많아서 마냥 부정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역시 싫다.
 눈에 보이는 잡귀들이나 저를 욕심 내는 신들이나 다를 게 뭔가?
 솔직히 어릴 때부터 귀신 보인다고, 무당 아들내미라고 손가락질당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나중에 제 자식들에게도 이런 삶을 대물림할 순 없다.
 
 그렇다고 내 인생은 내가 개척할 거야! 라고 객기 부리기엔 어머니의 선례가 걸리고.
 
 '박수무당 사는 꼬라지가 어디 사람 꼬라진가. 허구한 날, 신기에 회까닥하는 게 뭐가 그리 좋다고.'
 
 영험한 박수무당들이야 돈 잘 벌고 벤츠 끌고 다닌다지만, 그렇게 될 수 있는 이는 극소수일 뿐이다.
 
 신내림도 다 종류가 달라서 어디 이상한 괴력난신 걸리면 죽도 밥도 안 되고.
 
 하지만 결국 신내림을 받아야 한다면?
 돈이야 능력 여하로 번다 치고, 주변에서 손가락질당하는 것도 싫어.
 
 뭐가 있을까?
 그런 신이 존재는 한가?
 
 "예수님 믿으세요! 예수 믿고 천국 가세요!!"
 "어."
 
 있다.
 어지간한 잡신들은 상대도 안 되는 지상 최대 종교의 신이.
 
 그렇게 십 년 후.
 
 "믿습니까!"
 ""믿습니다!!""
 "믿으시면 아멘!"
 ""아멘···!!""
 
 김광오는 목사가 되었다.
 성령으로 부음 받아 그리스도를 영접하니 잡귀들이 감히 접근하지 못하더라.
 
 신 중에서 티어가 다르다 이거야.
 
 "잡귀들 까불면 나한테 죽어!"
 ""와아아아아아아아!!""
 
 서울 강남 한복판 노른자위 대형교회 부목사.
 차기 담임 목사가 바로 김광오 목사.
 
 "꽥!"
 
 죽었다.
 교통사고로.
 정확히는 젊은 나이에 담임 목사의 총애를 받아 부목사가 된 광오를 시기질투하던 부목사들이 벌인 짓이었다.
 
 '신의 화는 피했는데, 인간의 화는 피하지 못했구나.'
 
 아니, 거기서 사람을 차로 박을 줄 누가 알았겠어.
 그래도 떳떳하게 살아왔으니 앵간하면 천국 가겠지, 하고 눈을 감았지만······.
 
 '천국도 못 가고 다음 생으로 다이렉트 환생할 줄이야.'
 
 베드로 성인 얼굴 좀 뵙고, 지저스 손바닥 못 자국 구경 좀 하나 싶더니 다른 세상에서 눈을 떴다.
 
 문제는 여기서도 신을 빙자한 잡귀들이 그득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김 목사가 뭘 했냐고?
 
 "태양 만세!!"
 
 김 목사는 아주 유연한 믿음을 가졌다.
 
 ***
 
 레이 앤더슨.
 이 세계에서 김 목사가 가진 새로운 이름이다.
 
 사뭇 풍족했던 김 목사의 삶과 달리 레이 앤더슨이라는 소년의 삶은 살기 퍽퍽했다.
 
 [히힛! 나랑 놀자~]
 [조금만 먹을게. 응? 조금만. 영혼 한 조각마아안!!]
 
 이곳에서도 레이를 노리는 잡귀들이 수두룩했던 것.
 
 전생에선 영험한 무당인 어머니가 있었다.
 성령을 부으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호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없다. 이 세계에는 레이 앤더슨을 보호해줄 영험한 무당도, 하느님도 존재하지 않는다.
 
 "전능하신솔테라시여영원한빛으로날보호하소서거룩하신지혜로날이끄시고내가는길어둠에싸여있더라도신성한빛으로내영혼을이끄소서."
 "레, 레이?"
 "전능하신솔테라시여영원한빛으로날보호하소서거룩하신지혜로날이끄시고내가는길어둠에싸여있더라도신성한빛으로내영혼을이끄소서."
 "시, 신부님! 레이가 이상해요!"
 "태양 만세에에에에에!!"
 "으아아아앙!"
 
 레이는 필사적으로 마을 성당에 다녔다.
 잡귀들이 침범하지 못하는 곳이 바로 마을의 유일한 성당이었기 때문이다.
 
 태양 교단.
 이 세계에서 유일신으로 군림하는 거대 종파.
 대륙 너머에서 건너온 신앙이나 민속 신앙 등이 알음알음 남아있지만, 태양 교단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그만큼 종교의 끗발이 강하다는 거다.
 레이는 최대한 많은 시간을 성당에 붙어 다니며 잡귀들을 피할 도피처를 만들었다.
 
 "허허, 요즘 젊은 아이 중에는 믿음이 강한 아이구나. 레이야, 성서 공부를 하지 않겠느냐?"
 
 레이의 필사적인 심정을 알아차린 걸까, 늙은 신부 눈에 들어 평민이 글도 배우고 성서 공부도 하게 됐으니 새옹지마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새옹지마란, 꼭 좋은 일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마을 어른들이 죄 죽어버렸구나. 역병이 어른들만 덮치다니······."
 "남은 아이들은 어찌 될까요? 신부님도 역병에 걸려 돌아가셨는데."
 "다행히 교단에서 새 신부와 직원들이 온다고 합디다. 그래도 아이들이 거리에 나앉지 않는 게 어디요."
 
 중세에서 돌림병으로 온 마을이 전멸하는 일은 보기 힘든 일이 아니다.
 
 위생도, 약품도 무엇도 지구와 비교할 게 못 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생은 부모님을 먼저 보내드렸구나.'
 
 레이는 16년의 두 번째 인생에서 처음으로 부모 장례를 치르게 되었다.
 
 나이 서른여덟에 먼저 죽은 불효자였지만, 그렇다고 부모 장례를 치르게 된 건 썩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후우······."
 
 그의 두 번째 생의 스승인 요한 신부도 이번 풍파로 소천했다.
 
 곧 새로운 신부도 찾아올 테고, 고아가 된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지원인력이 함께 올 테니 또 그들과 신앙생활을 영위하면 되겠지.
 
 레이가 이렇게 성당에 붙어있으려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이 성당만이 레이를 노리는 잡귀들로부터 자신을 지킬 성지이기 때문이다.
 
 "태양 만세······."
 
 그러나 그런 레이의 안온한 2회차 인생은 성당을 방문한 새 성직자들과 마주하고 어그러졌다.
 
 "자네가 레이 형제로군. 중앙교구에서 파견된 제온이라 하네. 여기 이 친구들은 날 도와 고아원을 설립할 형제들일세."
 
 홀로 성당을 수습하고 고아들을 씻기고 먹이며 한 달여.
 
 성당을 방문한 성직자들은 과연, 성직자로 보일 만한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씨발.'
 
 그 미소 너머 영혼의 색은 흉흉한 검붉은색이었다.
 
 ***
 
 레이는 영혼을 볼 수 있다.
 타고난 영매 체질인 것도 있지만, 그의 영안이 특수한 건 사람에게 새겨진 영혼의 색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백색에 가까울수록 선한 업(業)을 쌓아온 이들이었고 검은색에 가까울수록 악한 업(業)을 쌓아온 이들이다.
 
 김 목사 시절 사형수들을 위한 기도회에도 여럿 참여한 그였지만, 그 어떤 극악무도한 범죄자들도 '붉은색'보다 진한 색을 가지진 않았다.
 
 다시 말해 사람의 죄업의 한계는 적색까지라는 것.
 
 그렇다면 검붉은색은 무엇인가.
 
 '악령··· 아니면 마법사!'
 
 교회 담당목사였던 신앙의 스승인 박 목사와 함께 축사를 다닐 때 보았던 악마 추종자들이 바로 저런 색이었다.
 
 바티칸의 엑소시스트들과 연합해 겨우 퇴치할 수 있었던 '악마'가 검은색이었고.
 
 이 세계에도 악마와 그 계약자들이 있다고 들었지만, 설마 이런 후미진 촌구석에 그들이 올 줄은 몰랐다.
 
 "이곳에 짐을 내려놓으시면 됩니다. 사정이 넉넉지 않아 환대가 부족한 것이 아쉽군요."
 "괜찮습니다, 레이 형제님. 기도할 장소만 있으면 충분한 것 아니겠습니까?"
 
 레이는 인자한 미소를 짓는 카론 부제와 시선을 마주쳤다.
 영혼의 색을 볼 수 없다면 레이도 깜빡 속아 넘어갔을 것이다.
 
 레이도 얼굴에 가면을 씌운 채, 대화를 이어 나갔다.
 
 "헌대, 형제님. 그거 아십니까?"
 "예?"
 "제가 예전에 악마 추종자들을 만난 적이 있지요. 아, 계약자는 아닙니다. 마법을 못 썼거든요."
 "······네. 그것 참 큰일을 하셨군요."
 
 카론의 눈살이 조금 찌푸려졌다. 레이는 그 변화를 민감하게 감지했다.
 
 "놈들은 교묘하게 사람들 틈 속에 숨어들었지요. 별다른 정보가 없어 쉽사리 그들을 솎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바티칸의 이단 심문관들도 함께였으나 그들의 은 탄환도 그저 추종자들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물리적으로 일단 쏴서 구분해내는 방법이 없었단 뜻이다.
 
 "해서 제가 대안을 좀 내보았습니다. 사람들을 강당에 모았지요. 그리고 그들 한명한명에게 한마디만 해보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을?"
 "악마 개새끼 해봐."
 "······!"
 "악마. 개새끼. 해봐. 지금 당장."
 "하, 하하··· 그게 무슨 농담이십니까."
 
 레이의 말투가 갑작스레 바뀌자 카론 부제가 무언가를 눈치챘다.
 이 상황을 이해하려 했으나 이미 가불기에 걸렸다.
 
 "그런 교양 없는······."
 
 카론은 말을 잇지 못했다.
 레이가 찌른 무언가가 양볼을 꿰뚫었기 때문이다.
 고기 꿰는 꼬치였다.
 
 "끄···?!"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틀어막힌 입.
 레이의 하얀 손수건에 주륵 흐른 피가 묻는다.
 카론의 오른쪽 볼부터 왼쪽 볼까지 관통한 꼬치에서 흘러내린 피였다.
 
 "악마 개새끼 해봐."
 "이 개새···!?"
 
 다음 순간, 새로운 꼬치가 카론의 목을 꿰뚫었다.
 털썩, 카론의 시신이 바닥에 허물어진다.
 레이는 큰 소리가 나지 않도록 카론의 시신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악마보고 개새끼 하라니까."
 
 왜 나한테 개새끼래.
 
 다음 순간, 레이는 카론의 시신에서 흘러나온 검붉은 영혼을 낚아챘다.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전직 목사가 광신도 코스를 잘함>은 매일 오후 7시에 연재됩니다.

댓글(86)

ha*******    
연중하셔서 다른 작품 보려고 왔는데 이것도 좋네여
2024.05.30 23:07
블라체슈넛    
김광오 김광오 계속 발음하다 보니 사랑제일교회의 전광훈이 생각나네요? 혹시 모티브를 얻으신 건가요?
2024.06.04 23:11
맘모스XM    
본 작품은 현실 인물과 전혀. 전혀 관계가 없으며 비슷한 인물이 있더라도 우연의 일치임을 알려드립니다.
2024.06.04 23:22
lostluck    
꿀잼
2024.06.04 23:41
면냉    
홀리
2024.06.05 01:05
웃차    
그딴 거에 모티브를 얻었겠냐 ㅋㅋㅋㅋㅋㅋ 어휴 댓글
2024.06.05 06:47
qwdqwdwqdq    
어떻게 김광오에서 전광훈을 생각하는거임???
2024.06.05 08:11
mithra    
하나님 나한테 까불면 죽어!
2024.06.05 08:37
글빚기    
전능하신솔테라시여이작품에연독과유료화의은총을내리사문피아에재미와도파민이넘침을보여주소서전능하신솔테라시여이작품에연독과유료화의은총을내리사문피아에재미와도파민이넘침을보여주소서
2024.06.05 09:32
맘모스XM    
솔 에스텔라...!
2024.06.05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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