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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양극혈 1권-1

2015.09.04 조회 1,300 추천 14


 소제목:천양신공(天陽神孔)
 
 서장
 
 극양극혈(極陽極血)을 가진 자는 언제 올 것인가?
 무작정 그가 오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나는 매양 기나긴 한숨만 나온다.
 그 기다림도 무려 1백 년.
 육신이 이미 한줌의 흙이 된 지도 벌써 1백 년 전이건만 극양극혈을 가진 자는 아직 오지 않고 있다.
 
 ‘올 것이다. 극양극혈을 가진 자라면 반드시 이곳에 올 것이다. 이것은 정해진 숙명이나니 기다려야 한다. 하여 천양신공(天陽神功)이 사장되지 않도록 그를 가르쳐야 한다. 너도 그 이유를 잘 알 것이니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
 
 사부 유천(柳川)의 유언.
 부모와 같은 사부이기 이전에 철천지원수를 갚아주었으며 이 한 목숨까지 구해주었던 은인 중의 은인.
 제자로서나 한 인간으로서도 반드시 그의 유언을 지켜야 한다. 그것을 저버린다면 인륜을 저버리는 짐승이나 다를 바 없다.
 사부의 유언은 곧 천명(天命).
 세상의 부귀영화를 모두 외면한 채 오직 극한수(極寒水)의 차가운 냉기만을 느낄 수 있는 극음(極陰)동혈에서 죽어 혼백이 되어서도 사부의 유지를 계속 받들고 있다.
 그러나 숱한 세월의 기다림에 내 마음은 뿌리가 점점 썩어 가는 나무처럼 흔들거린다.
 지친다.
 오직 칙칙한 어둠과 짙은 한기만 가득한 극음동혈은 감옥과 다를 바 없어 마음만 지칠 뿐이다.
 [오늘도 안 갈 건가?]
 간간이 찾아오는 간수 같은 저승사자가 오늘도 찾아와 히죽거리며 염장을 지른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그를 따라가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나, 아직 사부의 마지막 눈빛이 아련하기에 마음을 굳게 먹으며 거절했다.
 [안 간다.]
 비록 이렇게 말하지만 언제까지 거절할 수 있을까? 나 스스로도 의심스럽다.
 [바보 같은 놈. 글을 몰라 이렇게 생고생을 하다니. 무식한, 멍청한, 병신. 키킥킥-!]
 [이, 이놈이-!]
 쳐 죽일 놈의 저승사자는 염장뿐만 아니라 속까지 헤집어놓는다.
 어쩌면 이놈의 저승사자 때문에 고진감래(苦盡甘來)란 네 글귀를 곱씹으며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 난 무식하고 글을 모른다.
 하여 이렇게 혼백이 돼 무작정 제자가 될 놈을 기다려야 한다.
 사부에게 전수받은 천양신공은 무슨 신의나 도리, 그리고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방법만 알면 되는 것이니까.
 또한 여기 극음동혈에는 극양극혈을 가진 자가 아니면 절대 들어올 수도 없는 일인즉, 비급 하나 만들어 그것과 함께 서찰 하나만 남겨 놓고 가면 그만이다.
 빌어먹을! 죽기 전에 그것을 깨달았다면 글이라도 배워 비급을 썼을 건만, 죽고 난 뒤 뒤늦게 깨닫게 되었으니…….
 하긴 글을 배워도 그것을 잘할 수 있을지 내 머리가 의심스럽기는 하다.
 어찌 됐건 혼백이라도 되어 제자가 될 놈에게 구전(?)으로 가르칠 수밖에 없다.
 저승사자는 그것으로 늘 나를 놀린다.
 오기가 물씬 솟구친다.
 그래, 수백 년이 아니라 수천 년이라도 기다릴 것이다. 그가 올 때까지!
 암! 기다리고말고-! 세상이 천양신공을 더 이상 원치 않을지라도!
 
 
 제1장. 밤나무가 있는 곳으로
 
 해시(亥時, 밤 9~11시) 초경.
 장수련(張水蓮)이 오늘도 가옥 뒤편에 나 있는 자작로를 거닐고 있었다.
 다른 날과 달리 여러 개의 주름이 잡힌 녹색 장의와 금실로 수채화 무늬가 수놓아진 화사한 연분홍 치마를 입고 있었다.
 어깨에 잠자리 날개와 같은 얇은 흰색 천도 두르고 있었는데, 자그마한 두 발을 사뿐히 걸을 때마다 허공에 하늘하늘 흔들리는 것이 마치 천상 선녀가 운무(雲霧) 위를 걷고 있는 듯했다.
 그녀는 걸음을 잠시 멈춰 자작나무 사이로 살며시 허리를 구부렸다. 앙증맞은 제비꽃들이 옹기종기 모여 밤바람에 살랑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제비꽃 하나를 살짝 꺾어 살며시 눈을 감으며 향기를 맡았다. 그 얼굴도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초승달 같은 눈썹이며 커다랗고 해맑은 눈동자, 깨물어주고 싶은 앵두 같은 붉은 입술과 새하얀 치아.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떠나 양쪽 뺨에 쏙 들어간 보조개야말로 옥광(玉光)의 가슴을 무려 1년 동안 쿵쾅거리게 했다.
 옥광은 자작나무 사이로 한쪽 눈만 내밀며 보조개가 살짝 들어간 그녀의 얼굴을 멍하게 쳐다봤다.
 자작로 옆 소(沼) 수면 위에 반사된 월광(月光)이 감싸 돌아 그녀의 얼굴을 더 돋보이게 했다.
 “봄날 달밤의 한때는 천금의 값어치가 있네. 꽃에는 맑은 향기가 있고, 달은 희미하게 흐려져 있네. 노래 부르고 피리 불던 누대도 소리 없이 적적하네…….”
 달을 향해 소동파의 ‘춘야행(春夜行)’을 읊조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은쟁반 위에 옥구슬이 또르르 흘러가는 것 같았다.
 ‘오늘은 기필코 그녀에게 고백하리라!’
 옥광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렇게 애를 태우며 훔쳐보기만 한 지도 무려 1년. 이제 더 이상 혼자만 애를 태우는 데 완전히 지쳐 버렸다.
 오늘은 어떤 일이 있어도 고백하리라 단단히 다짐했다.
 사락사락.
 수련이 잠시 멈춘 발을 조용히 움직였다. 그녀가 한발 한발 내디딘 곳은 옥광이 있는 쪽이었다.
 그러나 다짐과 달리 옥광의 몸은 자작나무 뒤로 자꾸만 기어 들어갔다.
 사락사락.
 끝내 그녀가 지나가도 입술을 열지 못한 그는 고개를 푹 떨어뜨렸다.
 ‘멍청한 놈! 이러고도 사내대장부라고 말할 수 있더냐? 용기를 내라, 어서!’
 옥광은 스스로 자책하며 용기를 쥐어짜내고는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수련 소저!”
 결국 그녀를 불렀다.
 수련은 어깨를 움찔거리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두 눈이 커다랗게 뜨여 있어 자못 놀란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뚜렷한 보조개를 만들며 화사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녀는 사뿐히 다가와 빨간 입술을 부드럽게 움직였다.
 “공자님, 저에게 무슨 할 말이라도 있나요?”
 ‘그녀가 나에게 말을 했어. 그것도 활짝 웃으면서!’
 이렇게도 좋은 반응을 나타낼 줄이야.
 옥광은 당장이라도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었다. 하지만 망할 놈의 혓바닥은 완전히 굳어버려 어떤 말도 내뱉지 못했다.
 옥광은 가슴을 더듬거리다가 즉각 품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이때를 대비해 그녀를 향한 마음을 담은 서찰을 고이 간직해뒀는데, 그것을 빼내어 앞으로 내밀었다.
 “…여기.”
 “어머, 이게 뭐예요?”
 “소저를 향한 마음을 담은……."
 부스럭.
 굳어 있던 혀를 혼신을 다해 움직였건만 수련은 옥광의 말보다 서찰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하기야 말보다 모든 마음이 담겨진 서찰을 보여 주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몰랐다.
 “아! 보잘것없는 나를 이토록 연모하고 있었다니…….”
 수련의 눈빛을 보라. 청초하면서 간헐적으로 흔들리는 그녀의 눈동자, 그리고 서찰과 함께 두 손으로 모아 가슴에 가져다댄 그녀의 행동은 감동을 받은 것이 틀림없었다. 무엇보다 섬섬옥수 같은 오른손을 천천히 뻗어 옥광의 얼굴을 부드럽게 매만졌다.
 그러나,
 “귀여운 꼬마 공자님, 다음부터 이런 심부름은 하지 마세요. 그리고 이런 서찰은 당사자가 직접 와서 건네주라고 하세요. 전 용기 없는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답니다.”
 수련은 옥광의 뺨을 살짝 꼬집곤 곧장 등을 돌려 두 발을 움직였다, 간간이 웃음소리를 내면서.
 옥광은 멍한 눈동자로 그녀의 등만 쳐다봤다.
 어느덧 수련이 저편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자 그는 두 무릎을 털썩 꿇었다. 강한 충격을 받은 것인지 그의 얼굴은 나무껍질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러길 얼마나 지났을까?
 휘이이!
 바람이 옥광의 안면을 살며시 쓸고 지나갔다.
 사락.
 곧이어 무언가가 옥광의 앞으로 날아와 미세한 바람에 의해 바들거렸다.
 꾸깃꾸깃 뭉쳐져 있는 한지.
 다름 아닌 수련을 향한 모든 마음을 담은 서찰이었다.
 “나보고 귀여운 꼬마 공자? 큭큭- 하하하!”
 옥광은 웃었다. 아니, 울었다.
 진작부터 이런 태도를 내보였으리라 짐작했었다. 지난 1년 동안 벙어리처럼 말을 꺼내지 못한 것도 이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가졌건만 현실은 역시 잔혹할 정도로 냉정했다.
 바스락!
 옥광은 바람에 의해 다시 날아갈 것 같은 서찰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나이 스물하고도 한 해를 더 먹었건만 이놈의 저주받은 육신은 어떠한가?
 고작 10살배기 철부지밖에 되지 않는 어린아이의 육신이었다. 그것을 까맣게 잊고 고백하다니…….
 처음부터 장성한 한 여인에게 연정을 품은 것이 잘못이었다. 다른 사내와 똑같은 삶을 살 수 있다 생각한 자체도 어패였다.
 늘 그것을 잊지 않았지만 그녀를 향한 연정으로 인해 그것을 망각한 것이 오늘따라 자꾸만 서글펐다. 아니, 성광을 총총히 뿜어내는 무심한 하늘이 너무나 저주스러웠다.
 “내가 그렇게도 업보가 많더이까? 그래서 만년 아이로 살아야 하는 것이오? 정녕 그런 것이오? 대답 좀 해보시오!”
 하늘을 향해 따졌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언제나 무심한 침묵이었다. 아니, 어디서 감히 따지는 것이냐는 듯 온몸에 고통을 선사해주었다. 화를 내는 순간 오장육부에 뜨거운 쇠꼬챙이로 푹푹 쑤셔 대는 지긋지긋한 고통이 엄습한 것이다.
 하늘은 10년 전부터 저주스러운 육신을 준 것까지 모자라, 화를 터뜨릴 수 있는 그 감정마저 제대로 발산시키지 못하게 했다. 화를 낼 때마다 전신에 이런 엄청난 통증을 유발시키게 했으니까.
 “차라리 그냥 날 죽여라!”
 옥광은 다른 때와 달리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계속 화를 냈다.
 잠시 후 그의 얼굴이 삽시간에 붉게 변하더니 물바가지로 물을 맞은 것처럼 온통 땀투성이였다. 전신은 뜨거운 욕탕 속에서 금방 나온 것처럼 새하얀 김을 연방 뿜어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현상은 더더욱 짙어져 갔으며 그의 입에선 어느덧 처절한 비명까지 연이어 터져 나왔다.
 “크아아아! 이 망할 놈의 하늘아!”
 두 눈이 까뒤집어지고 육신은 마른 땅에 떨어진 물고기처럼 파닥거렸지만, 옥광은 더 짙은 화를 토해냈다.
 털썩!
 결국 얼마 되지 않아 입에서 하얀 거품을 뿜어내곤 힘없이 바닥에 축 늘어졌다, 마치 송장이 된 것처럼.
 
 ***
 
 땡거- 랑!
 처마 끝에 달려 있는 자그마한 풍경(風磬)이 바람을 안고 딸랑거렸다.
 문원찬(文原贊)은 툇마루 기둥에 등을 기대어 흔들거리는 풍경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초점이 흐릿해 실상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짙은 상념에 빠져 있는 듯했다.
 “모두 내가 부덕한 탓이야. 휴우…….”
 땅이 쑥 꺼질 듯한 그의 긴 한숨은 가슴에 맺힌 수심의 깊이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듯 자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감당해야 할 고통과 짐이 많다. 반면 자식들이 있음에 삶의 활력과 희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20년 전, 산고(産苦)로 죽은 정실부인을 비롯해 세 첩에게서 나온 자식만 해도 12명.
 문원찬은 그 자식들로 인해 늘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이 있기에 늘 뿌듯하고 희망찼으며,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강한 긍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첫째 놈만큼은 아니었다.
 ‘송구하지만… 자제님께서는 약관을 넘기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첫째 놈은 병을 앓고 있었다. 하나 병명이 뚜렷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처방할 약도 없었다. 도주하듯 꽁지를 내빼는 의원들은 그 한마디만을 남기고 사라질 뿐이었다.
 아비보다 더 빨리 저세상으로 가야 하는 아들의 명.
 부모로서 가장 큰 고통이며 모든 희망을 꺾게 하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많고 많은 자식들 중에 가장 많은 정과 큰 희망을 심어주게 했던 첫째 옥광이 하필이면 왜 그런 운명을 가졌단 말인가?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옥광에게 가장 많은 애착을 가졌던 본인이었다.
 그 이유는 첫 사랑할 수 있는 정실부인에게서 낳은 첫 아들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다른 자식들보다, 아니 이 세상 아이들보다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
 태어나기 전 태몽 자체부터 범상치 않았다. 2개의 여의주를 문 용이 아내의 배 속에 들어왔으니까.
 하물며 태어나자마자 기어 다니기까지 했고, 4살 때부터 천자문(千字文), 소학(小學), 사서삼경(四書三經) 등을 독파했으며, 병환으로 인해 학문을 등한시하기 전까지만 해도 날고 긴다는 서생들만 모여 있는 한림(漢林)학당에서 늘 일선만 차지했던 천재 중의 천재였다.
 하여 더러운 운명을 가졌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옥광으로 인해 한 나라의 황상도 부럽지 않았다.
 그러나 전생에 무슨 죄를 그리 많이 졌는지 지금은 첫 자식 때문에 쓰라린 고통만이 설원의 눈밭처럼 겹겹이 쌓여 갈 뿐이었다.
 스르르- 륵.
 문득 부드러운 목조 마찰음이 툇마루에 감돌고 지나갔다.
 문원찬은 흐릿한 눈동자의 초점을 바로잡으며 목조 마찰음이 일어난 문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청모를 쓴 노인이 자그마한 보자기를 한 손에 쥐고 조용히 문원찬에게 다가왔다.
 “좀 어떻소?”
 “일단 끓어오르는 열은 내렸는데… 험험!”
 노인은 말을 다 잇지 못하고 헛기침만 해댔다.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옥광의 상태가 안 좋은 것이다.
 문원찬은 다시 긴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향해 입을 열었다.
 “하 의원, 나도 이미 포기할 건 한 상태요. 그러니 정확하게 말해주시오.”
 “험험! 그게… 송구하지만 올여름을 넘기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문원찬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약관을 넘기기 힘들다고 했지만, 그래도 약관을 넘어 1년을 더 버틴 자식이지 않던가. 그렇기에 좀 더 살 수 있으리라 희망을 가졌는데, 역시 아니란 소리가 그의 가슴에 대못이 되어 쿵 박혔다.
 “송구합니다, 당주님.”
 “하 의원이 송구할 것이 무엇이 있겠소. 아무튼 이곳까지 왕진을 해주어 고맙구려.”
 “별말씀을. 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하 의원은 툇마루에서 내려와 노인답지 않게 잰걸음으로 그림자를 재빠르게 감췄다. 가망 없는 환자에게 오래 있어봤자 득 될 것이 하나 없을 테니 당연한 모습이었다.
 “못난 놈. 휴우…….”
 그러는 사이 문원찬은 하늘을 향해 연방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한숨은 억장이 무너질 때까지, 아니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때까지 계속될 것만 같았다.
 
 옥광은 천천히 눈을 떴다.
 눈에 매우 익숙한 노란 벽지가 붙어 있는 천장이 보였다. 시선을 옆으로 살짝 돌리자 원형 창이 나 있는 곳에 일광(日光)을 완전히 차단하는 천이 쳐져 있었다. 20년 넘게 봐왔던 자신의 침실 광경이었다.
 ‘빌어먹을.’
 죽지 않고 산 것에 화가 났다.
 그러나 무슨 약을 먹었는지 정신이 몽롱하여 그 화는 금세 가라앉았다. 대신 출입문에서 희미한 인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아울러 긴 한숨과 함께 간간이 들려오는 ‘못난 놈’이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옥광은 이불을 끌어올려 얼굴을 덮어버렸다. 체질상 갑갑한 것을 극히 싫어했지만 아버지의 한탄을 듣는 것은 더 큰 고통이었다.
 얼마나 땀을 뻘뻘 흘리며 이불을 덮고 있을까? 문득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고 있군.”
 “얼굴을 보면 뭐 합니까? 오히려 잘된 일이지요. 그냥 갑시다, 형님.”
 “그래, 하루 이틀도 아니고 병문안은 무슨 병문안? 가자.”
 “네, 형님.”
 두 사내가 냉담한 반응을 보이더니 바로 옥광의 실내 밖으로 빠져나가 버렸다.
 옥광도 실상 그들의 얼굴을 보는 것이 싫었다. 배 다른 두 동생인 유광(流光)과 진광(眞光)을 본들 피차 얼굴만을 구길 뿐만 아니라 귀에 거슬리는 대화만 오갈 뿐이었다.
 그들은 자신을 무척 싫어했다. 어릴 때부터 ‘형의 반이라도 닮아라’라는 부친의 말 때문이고 하고, 부친의 엄청난 재산에 늘 눈독을 드리우는 새어머니 때문에 형제간의 우애를 미리 담쌓은 영향도 꽤 컸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떠나 동생들보다 더 어려 보이는 자신에겐 맏이로서의 위엄이 없는 것이 결정적인 이유였다.
 하여 그들뿐만 아니라 또 다른 두 새어머니의 동생들에게도 처지는 다를 바가 없었다.
 단, 한 동생만은 예외였다.
 “큰오라버니, 아직 자고 있는 거예요?”
 유광과 진광이 가고 한 식경이 지났을 즘, 낭랑한 목소리가 이불을 뚫고 들어왔다. 옥광은 바로 이불을 걷어 내렸다.
 “이 땀 좀 봐. 이러고도 이불을 쓰고 있었어요?”
 올해 12살인 야화(野花)가 소매를 끌어내려 옥광의 얼굴을 정성껏 닦았다.
 늘 웃음으로 대해주는 여동생이며, 풍림당(風林當)이란 거대한 울타리 안에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상대였다.
 비록 유광과 진광의 친모에게서 태어난 야화이지만 그녀만큼은 정이 깊었다.
 “야화야, 난 괜찮아. 이제 그만 가, 어머니께 혼나기 전에."
 “오늘은 괜찮아요. 어머니께서는 지금 출타 중이거든요. 그보다 이것 좀 드세요.”
 야화가 다소곳이 사기 그릇 하나를 내밀었다. 그릇 안에는 설 언 얼음이 동동 떠 있었다.
 옥광은 눈물을 글썽거렸다. 무려 9살이나 어린 동생이었지만 지금만큼은 야화가 자상한 누이같이 보였다. 실상 체격으로 봐도 누이 같지만.
 “이 귀한 얼음을 어디서 구했느냐?”
 “달귀 노인에게 부탁한 것이에요. 아무튼 녹기 전에 어서 드세요.”
 겨울도 아닌 따뜻한 봄날에 얼음을 구한다는 것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여 어떤 경위로 구했든 간에 자신을 위해 얼음물을 내밀었다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반갑고 고마운 일이었다. 옥광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것이 차디찬 얼음물이니까.
 “…고맙다.”
 옥광은 사양하지 않고 그 물을 시원스럽게 마셨다.
 한 모금씩 얼음물이 식도를 타고 들어갈 때마다 느껴지는 시원함. 우울했던 감정과 화가 그 순간만큼은 연기처럼 완전히 사라졌다.
 하나 잠깐 그 느낌만 들 뿐, 육신은 늘 강한 열을 발산했다. 그래도 짧은 순간이지만 그 느낌을 받은 것이 어딘가.
 “야화야, 정말 고마워.”
 “고맙다는 말은 이제 그만 하고 빨리 기운을 차리세요. 그래야 전에 약속한 뱃놀이를 갈 거 아니에요.”
 “그래, 뱃놀이를 가야지…….”
 정말 야화와 뱃놀이를 갈 수 있을까? 그것도 아찔하게 내리쬐는 일광 아래에서?
 약속은 했지만 장담할 수 없었다. 봄의 태양도 화로처럼 뜨겁게 느껴져 반 시진도 있을 수 없으니 말이다.
 “한창 잘 시간이니 전 그만 나가볼게요. 잘 자요, 큰오라버니.”
 일광이 중천에 떠 있는 현재, 언제부턴가 밤낮이 바뀐 옥광에겐 지금이 취침 시간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것을 배려해 야화는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오늘따라 잠이 잘 안 오는 옥광이었으나 말리지 않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
 
 언제 잠이 들었을까? 두 눈을 번쩍 뜨는 순간 실내는 완전히 어둠에 싸여 있었다.
 문의 창호지를 뚫고 밤에만 울어대는 산비둘기의 울음소리도 구슬프게 들려왔다. 실제 옥광에겐 아침 참새소리가 요란하게 짖어대는 것과 진배없었다.
 옥광은 기지개를 펴곤 문을 열고 나왔다. 밤에는 그나마 몸속에 있는 열기들이 다소 잠잠해 산책 정도는 무난하게 할 수 있었다.
 그는 우물에서 간단하게 세안을 한 뒤 풍림당 돌담을 따라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그 일은 하루를 시작하는 일과로 못 박혀 있었다.
 그 일도 대략 한 시진(2시간)이란 시간을 소비해야 끝을 낼 수 있었다. 옥광의 짧은 다리도 한몫했지만 풍림당의 규모 때문이기도 했다.
 4대째 이어진 풍림당(風林當).
 문기옥(文基玉) 고조 조상부터 시작해 부친에 이르러 풍곡 일대는 물론이요, 하남 전체에서 세 손가락에 안에 드는 대상인의 집안이었다.
 때론 소위 고관대작이란 대신들이 찾아와 부친에게 고개를 조아리기까지 하는 것도 봐온 터라, 풍림당이란 그 이름은 가히 독보적이었다.
 그렇다면 그 부친의 맏아들이란 위세가 어떨까?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대상이며 부러움과 시기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러나 옥광에겐 풍림당이란 한낱 세 글자에 지나지 않을 뿐 그 어떤 의미도 없었다. 부귀영화가 무엇이며 유세는 또 뭐란 말인가? 모두 정상적인 사람들에게나 중요할 따름이었다.
 멈칫.
 부지런히 움직이던 옥광이 순간 걸음을 멈췄다.
 그의 앞에는 커다란 밤나무 한 그루가 덩그러니 선 채로 나뭇가지 반 이상을 돌담 밖으로 내밀고 있었다. 중간 휴식처이며 밖으로 통하는 사다리 역할을 하는 늙은 나무였다.
 옥광은 조용히 나무에 기대어 바닥에 앉았다.
 “이제 너를 밟고 지나갈 일도 없겠구나.”
 수련을 보기 위해 하루도 빼먹지 않고 오르고 올랐지만 그녀를 완전히 포기한 상황이라 밤나무는 더 이상한 사다리 역할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오늘처럼 휴식처로만 이용될 뿐이었다.
 옥광은 문득 품속을 뒤적거리다가 물건 하나를 꺼내들었다. 정교한 문양이 새겨진 옥패인데, 알록달록한 실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일견하기에도 여인의 장신구였고 영롱한 빛깔이 상당히 값비싸 보였다.
 수련을 위해 1년 동안 용돈을 모아서 산 장신구였다.
 하지만 수련을 이미 포기해버렸으니 옥패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한낱 돌멩이에 지나지 않았다.
 옥광은 옥패를 쥐곤 돌담 밖으로 한껏 던졌다. 아니, 던지려는 순간. 그의 손이 멈칫거렸다.
 그는 천천히 손을 내려 옥패를 다시 쳐다봤다. 그리고 양 쪽 입가를 살며시 올렸다.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 한 명 더 있었지.”
 문득 야화 동생이 스쳐 지나간 것이다.
 아직 어려서 화려한 장신구를 선물하는 것이 다소 어색했지만, 1년 동안 마음을 모아서 산 물건이라 버리기보다 이왕이면 어여쁜 야화에게 주는 것이 더 나은 일이었다.
 옥광은 곧 일과에 벗어난 행동을 보이며 야화의 처소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혼자 있는 게 아니구나.’
 해시 중경에 이른 시각, 혹시나 자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으나 야화의 침소에서 불빛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창호지에 비치는 그림자가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
 “어머니, 정말 그 일을 해야 하나요? 전 싫어요.”
 “정녕 이 어미의 말을 거역하겠다는 것이야?”
 나직이 흘러나오는 목소리로 봐서는 야화의 친모인 듯했다.
 모녀끼리 무언가 의견이 맞지 않는 대화가 호기심을 유발했지만 옥광은 발걸음을 바로 돌렸다. 쥐새끼처럼 그녀들의 대화를 엿듣는 자체가 싫었던 것이다.
 그러나 몇 발자국 가지 못하고 옥광의 발이 그대로 멈춰졌다.
 “큰오라버니는 조만간 죽어요. 그런데 왜 자꾸 일을 만들려고 해요? 난 싫어요.”
 “쉿! 목소리가 크다.”
 그녀들의 이야기는 바로 본인의 일. 옥광으로서는 그냥 지나치기가 힘들었다.
 옥광은 조심스럽게 문 쪽으로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올여름을 넘기기 힘들 것이란 소리를 벌써 세 번이나 들었어. 하니 이번 여름을 넘길 수 없다는 의원의 말을 당최 믿을 수가 없어. 야화야, 네 큰오라비 유광이 빨리 소당주 자리에 앉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저편 후원에 앉아 있는 앙칼진 두 계집들이 그 자리를 언제 빼앗을지도 몰라. 그러니 내가 시킨 대로 해라. 그건 네 오라비뿐만 아니라 너를 위해서도야.”
 “…하지만 잘못되는 날엔 제가 죽을 수도 있어요.”
 “아니다, 절대 그럴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넌 그냥 옥광이에게 매일 얼음물만 가져다주면 돼. 그 안엔 독이 든 것도 아니고 순수한 발열 약재를 조금 섞은 것뿐이니 그 어떤 이도 눈치를 챌 수 없어.”
 “…….”
 그런 것인가? 야화가 귀한 얼음물을 가져다 준 것도 그 때문인가?
 아니다. 첫째 새어머니는 몰라도 야화만은 절대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 준 얼음물도 모르고 준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나,
 “…알겠어요. 대신 제가 원하는 것을 꼭 사줘야 해요.”
 “호호호! 그래그래, 역시 내 딸이야.”
 망할! 야화도 이날까지 가식이었던가. 그 어린것이?
 옥광은 가슴을 움켜쥐었다. 당장이라도 목구멍 밖으로 커다란 불덩어리를 토해낼 것만 같았다.
 하나 신기하게도 그 불덩어리는 금방 사라져 버렸다. 화가 너무 나면 화를 내는 것보다 헛웃음이 튀어나오듯 긴 한숨만 흘러나왔다.
 옥광은 물끄러미 손을 펴서 쳐다봤다. 야화에게 주려고 했던 옥패가 정확히 반쪽으로 갈라져 있었고, 손바닥이 찢어져 핏물이 흥건히 배어 있었다.
 ‘이미 갈라진 마음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에서야 이 옥패처럼 정말로 갈라졌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구나.’
 툭!
 옥광은 옥패를 바닥에 떨어뜨리며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직이 중얼거렸다.
 “부친에겐 불효자 중의 불효자이며, 동생들에겐 앞길을 막는 방해꾼이며 눈엣가시 같은 존재. 그런 내가 이곳에 있을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가자꾸나. 그냥 가서 조용히 남은 삶을 자연을 벗 삼아 지내자꾸나.”
 화도 나지 않았다. 마냥 눈물만 하염없이 나왔다. 모두 자신이 다 못나고 부족한 탓이었다.
 옥광은 그 마음을 가슴속에 꽁꽁 채우며 계속 걸어갔다. 마지막 사다리 역할을 할 밤나무가 있는 곳으로.
 
 
 제2장. 반갑다, 제자야
 
 푸석푸석.
 자잘한 잡초를 밟을 때마다 나는 족적 소리.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직접 자신의 두 발로 내는 소리이니까. 그런데 왜 자꾸만 내디디는 발과 족적 소리가 엇갈리게 들릴까?
 옥광은 걸음을 멈춰 고개를 획 틀었지만, 족적을 낼 만한 인영(人影)을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혹 가출한 것을 알고 부친이 저편 멀리서 자신의 이름을 불러서 그런 것이 아닐까? 아니면 막상 집을 나선 것이 두렵고 막막해서일까?
 어쩌면 가진 것 없이 빈 몸으로 나온 자체에 마음이 불안해서일지도 몰랐다. 솔직히 그 마음 때문에 당장 발길을 돌리고 싶었다.
 그러나 옥광의 몸은 계속해서 풍림당과 멀어져 가고 있었다. 야화의 그 배신감이 도리어 흔들거리는 마음을 바로잡아주었기 때문이었다.
 어느덧 옥광은 하나의 산을 넘음으로써 풍림당을 완전히 뒤로한 채, 넓은 대로가 펼쳐진 곳에 몸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대로에 두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이제 그만 돌아가시지요.”
 “……!”
 순간 소름이 쫙 끼쳤다. 이때까지 그 어떤 인기척도, 사람의 그림자도 없었다. 그런데도 바로 등 뒤에서 한 여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온 것이 아닌가.
 밤을 낮과 같이 생각하고 있는 옥광임에도 그 순간만큼은 등골이 오싹했다. 또한 고개를 돌리면 소복을 입은 한 여인이 긴 머리를 늘어뜨리며 두 눈을 번뜩거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이대로 가면 당주님께 크나큰 불효를 저지르게 됩니다. 이쯤 해서 그만 가시지요.”
 당주? 그리고 자신을 잘 알고 있는 듯한 여인의 목소리. 귀신이라기보다는 풍림당 사람이라는 것을 바로 직감할 수 있었다.
 옥광은 서슴없이 바로 고개를 틀었다.
 한 여인이 서 있었다. 몸의 윤곽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착 달라붙은 검은 복장이 다소 특이하고, 검을 등에 멘 자태가 예사롭지 않았다. 무엇보다 가냘픈 얼굴선과 뚜렷한 이목구비를 볼 때 치장만 한다면 사내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충분한 미색을 갖추고 있었다. 단, 선뜻 가다가가기엔 부담스러운 차가운 인상을 가득 드러내고 있었다.
 ‘풍림당에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여인인데…….’
 처음 보는 여인이었다.
 하기는 풍림당의 식솔들만 해도 무려 1천 명이 넘었고, 늘 밤에만 겉돌아 풍림당 내에서 얼굴을 트고 지낸 식솔들이 그다지 많지 않아 그녀가 본당의 식솔이라고 해도 못 알아볼 수 있었다. 대신 풍림당의 소당주 신분을 가진 본인을 먼발치에서 본 본당 사람들이 많을 터라 본인은 몰라도 그녀는 자신을 잘 알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보다 어떻게 귀신처럼 소리 소문 없이 나타났을까? 그리고 왜 뒤를 따라왔을까?
 “뉘시오?”
 먼저 여인의 정체에 대해 물었다. 딱딱한 얼굴과 달리 여인은 순순히 입을 열었다.
 “일 년 전부터 소당주님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자하라고 합니다.”
 자하? 역시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또한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는 것도 믿기지가 않았다. 어떻게 1년 전부터 자신의 안전을 책임졌다는 그녀의 얼굴도 모를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잠시 후 옥광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렇구나. 모두 이 여인 때문이었구나.’
 이날까지 끓어오르는 열로 인해 실신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특히 1년 전부터는 실신하는 그 횟수가 잦았고, 그럴 때마다 늘 눈을 뜨면 아무런 탈 없이 자신의 침소에서 눈을 뜰 수 있었다. 지난번 인적이 뜸한 외진 자작로에서 실신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생각해보니 일이 그렇게 된 것이로구나. 이때까지 그것도 모르고 있었다니……. 아무튼 자하 소저, 그동안 정말 고마웠소이다.”
 “감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제 본분을 다한 것뿐입니다. 그보다 화를 푸셨으면 이만 돌아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옥광은 자하를 쳐다봤다. 언뜻 보기엔 싸늘한 표정이었지만, 간헐적으로 흔들거리는 그녀의 눈동자를 보매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 같았다. 아울러 이날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듯한 눈빛이기도 했다.
 옥광은 쓴웃음과 함께 대로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일 년 동안 나를 조용히 지켜봤다면 다 알겠구려, 내 마음이 어떠한지.”
 “…….”
 자하는 침묵으로 동조했다.
 옥광은 눈물을 살짝 글썽거리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이해를 한다면 나를 그냥 내버려두시오.”
 “그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자하 소저, 난 떠나야 하오. 설사 아버님께 크나큰 불효와 실망을 안겨 주는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떠나야 하오. 이는 아버님을 위하는 길이며 남은 가족들이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길이오. 또한 풍림당 전체를 위하는 길이기도 하오. 그러니 그냥 못 본 척하고 돌아가시오.”
 “절대 안 됩니다!”
 자하의 목소리가 높게 올라갔다. 또한 재빠르게 몸을 움직여 옥광의 앞길을 막았다.
 “돌아가십시오. 그리고 한 부인의 일에 대해 제가 당주님께 말씀을 드려 다시는 그런 흉계를 꾸미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계속 고집을 피우시면 강제라도 소당주님을 모시고 갈 것입니다.”
 입술을 악문 자하는 단호했다.
 옥광 역시 단호한 신색을 드러내며 그녀의 두 눈을 응시했다.
 “오늘 있었던 일은 절대 발설하지 마시오. 그래도 그들은 내 어머니이며 동생이오. 그리고 강제라 했소? 그렇다면 어디 그렇게 해보시오. 난 계속해서 본당을 나갈 것이오. 내 명이 다할 때까지. 하긴 올 여름까지도 힘들다고 했으니… 세 달 정도만 발악을 하겠구려.”
 “세 달이라니요! 그건 아무것도 모르는 작자들의 허튼소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옥광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몸은 아파도 내 귀는 제대로 뚫려 있소. 그리고 내 병은 내가 더 잘 알고 있소. 그렇기에 난 더더욱 본당을 떠나야 되오. 무엇보다 난… 아버님께 죽어가는 내 육신을 절대 보이고 싶지 않소. 자하, 이렇게 떠나면 분명 아버님께서는 오랜 시간 동안 근심과 고통의 나날을 보내실 거란 것도 잘 알고 있소. 하지만 한편으론 이 몸이 죽을지라도 어디선가 아직 살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라도 드릴 수 있지 않겠소?”
 “소, 소당주님.”
 옥광은 시선을 돌려 대로 끝을 봤다. 정확히 북쪽 어느 산등성이를 쳐다봤다.
 “그리고 살아생전 꼭 가고 싶은 데가 있소.”
 “……?”
 “언젠가 지리서에서 저편 대국의 끝단에 설원이라는 곳이 있다는 것을 본 적이 있었소. 사시사철 늘 새하얀 눈으로 덮여 있는 아리따운 대지가 펼쳐진 땅. 그곳에 꼭 가보고 싶소. 죽기 전에 그곳에 가서 반짝이는 일광 속에서도 마음껏 그 대지를 달려보고 싶소.”
 “소당주님…….”
 자하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입술도 지그시 깨물었다.
 반드시 데려가야 할 소당주. 그러나 그의 간절한 마음이 가슴 깊이 파고들어와 꼿꼿한 의지를 마구 뒤흔들었다. 특히 그의 두 눈에 주르륵 흐르는 두 줄기의 눈물이 왜 이리도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인지…….
 스륵.
 자하는 옆으로 비켜섰다. 그리곤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옥광은 굵직한 눈물을 흘리면서도 입가에 얕은 미소를 그렸다.
 “고맙구려, 자하 소저.”
 감사의 말과 함께 옥광은 힘차게 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세 발자국도 가지 못하고 다시 멈춰야 했다. 자신의 그림자 옆에 또 다른 그림자가 계속 따라왔으니까.
 
 ***
 
 타닥타닥!
 나뭇가지들이 한곳에 모여 자신들의 살을 태우며 불꽃과 함께 까만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바람이 불지 않아 연기는 실타래에서 풀린 실처럼 하늘을 향해 일직선으로 올라갔으며, 불꽃은 잔잔하게 출렁거렸다. 자하가 그곳에서 긴 나뭇가지를 들고 멍하니 불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정말 옳은 것인지 모르겠어…….”
 무작정 가출한 소당주를 따라나선 지도 벌써 열흘째.
 명확한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당장이라도 옥광을 데려가는 것이 옳았다.
 그러나 주어진 시간이 불과 세 달 남짓밖에 되지 않은 소당주의 상태를 볼 때, 차라리 더 나은 일이기도 했다.
 얼마 남지 않은 삶 동안 당주의 한숨 소리와 걱정 어린 눈길만 받아야 하는 부담감, 더욱이 적대적인 가족들의 눈길을 받으며 마지막 생을 마감해야 한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아니 비참한 최후일 수도 있었다.
 따라서 차라리 가고 싶은 곳으로 가서 마지막 소원이라도 이루고 죽는 것이 어쩌면 보람되고 더 나은 최후일 수도 있었다.
 하여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열흘 동안 옥광의 뒤를 묵묵히 따라왔던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불쌍한 분…….”
 자하는 애잔한 눈빛으로 모닥불에서 멀찍이 떨어져 곤하게 자고 있는 옥광을 쳐다봤다. 그리곤 손바닥을 살며시 내려다 봤다. 그녀의 손엔 피 묻은 옥패가 놓여 있었다. 다름 아닌 옥광이 버린 부러진 옥패였다.
 자하는 옥패를 꼭 쥐며 마치 정인이 준 연정의 증표처럼 가슴 한가운데에 살짝 가져가 댔다.
 “언제나 변하지 않는 모습이기에 영원히 그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더 빨리 가셔야 하다니…….”
 자하의 한쪽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똑 떨어졌다. 차가운 표정에서 나오는 눈물이라서 그런지 상당히 애잔하고 더 뜨거워 보였다. 아울러 단순한 호위 무사를 넘어 정말 옥광을 사모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어찌 됐건 잠깐의 시간이 지나자, 자하는 언제 그랬냐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옥광을 다시 쳐다봤다
 일광을 잘 가릴 수 있는 무성한 잎이 나 있는 나무 아래, 처음으로 노숙을 하고 있는데도 옥광은 새근새근 잘도 자고 있었다. 피로 때문일 수도 있고, 어쩌면 모든 것을 버리고 왔기에 마음이 편해서일 수도 있었다.
 “아무래도 내일 서광에 당도하면 말부터 구해야겠어.”
 이왕 길을 따라나선 김에 옥광을 편하게 모시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서광에 있는 풍림당 분점에 들러야 했다. 즉, 그곳에서 노자를 얻을 생각이었다.
 또한 스스로 충성을 맹세했던 당주에게 옥광의 처지와 가고자 하는 행선지를 알릴 작정이었다. 그래야 마음이 다소 편할 것 같았다.
 자하는 시선을 돌려 주위를 둘러봤다.
 ‘…왜일까? 뭔가 좀 이상해.’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현재 대로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어느 산하(山下)의 공터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주위 배경이 묘했다.
 처음엔 흔한 산하 광경으로 별 대수롭게 여겼지만 자세히 볼수록 일정한 간격으로 심어진 나무와 덤불도 그렇고, 바로 앞에 우뚝 서 있는 산체(山體)가 왠지 모르게 인위적으로 만든 것처럼 보였다.
 다르게 생각하면 누군가가 지극정성으로 이곳을 관리한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기분이 든다고 당장 자리를 옮기는 것도 어색했다. 오히려 안락한 분위기와 자잘한 잔디가 깔려 있는 공터는 노숙을 하기에 매우 적합한 장소였고, 대로와 가까워 산짐승의 위협을 덜 받은 곳이기도 했다.
 게다가 옥광이 이곳 장소를 발견하자 정말 아이처럼 팔짝 뛰며 좋아했으니, 자고 있는 그를 일부러 깨워 자리를 옮기는 것도 좋지 않았다.
 자하는 곧 묘한 기분을 떨쳐 내며 혹시라도 모를 위험을 대비해 주변을 계속 살폈다.
 그러길 대략 반각 정도 지났을까?
 부스럭!
 한쪽 덤불에서 잎 마찰음이 나직이 들려왔다. 자하는 그곳을 향해 거의 표 나지 않게 얕은 미소를 살짝 지었다.
 ‘마침 잘됐어.’
 덤불 사이에서 토끼 한 마리가 정신없이 풀을 뜯고 있었다. 옥광의 요깃거리를 걱정한 터라 바로 몸을 일으켜 조심스럽게 덤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드디어 왔는가? 쿠하하하-!”
 한 노인이 희뿌연 안개 속에서 파안대소를 터뜨리고 있었다.
 누굴까? 빽빽한 숲을 뒤로한 채 안개에 가려 노인의 안형을 정확하게 구분할 수 없었지만, 전혀 모르는 낯선 얼굴이었다.
 ‘누구세요?’
 옥광은 물었다.
 해괴하게도 목구멍을 실로 꽉 묶인 듯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이야, 어서 와라, 어서!”
 노인은 오라며 연방 손짓을 했다. 웃는 얼굴과 반갑게 부르는 노인의 모습이 거북하지도, 그렇다고 친근하지도 않았다.
 옥광은 마냥 서 있기만 했다.
 “이런 썩을 놈을 봤나! 어르신이 부르시는데 안 와?”
 노인은 버럭 화를 냈다. 희뿌연 그의 눈동자는 일순간 맹수의 안광처럼 번뜩거렸다.
 갑작스런 그의 행동을 당최 이해할 수 없었지만, 대략 3장 정도 떨어져 있는 거리를 얼음판 위에 미끄러지듯 다가오는 노인의 모습이 섬뜩했다.
 옥광은 달렸다. 노인의 손에 잡히면 죽을 것은 강한 공포를 느낀 것이다.
 ‘빌어먹을! 달리란 말이야. 달려!’
 두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목소리 역시 나오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강한 살기를 내뿜는 노인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기만 했다.
 
 옥광은 눈을 번쩍 떴다.
 안개가 보이지 않았다. 노인도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았다. 짙은 묵광(墨光)을 발하고 있는 두꺼운 구름이 가득한 하늘만 보일 뿐이었다.
 “휴우… 꿈이었구나.”
 꿈이 확실했다. 하지만 금방 일어났던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졌고, 당장이라도 그 노인이 눈앞에 툭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자하!”
 가시지 않은 공포 때문에 자하를 먼저 찾았다.
 그녀의 응답은 없었다. 자신의 메아리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또한 그녀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고 불꽃이 서서히 꺼져 가는 모닥불만 보일 뿐이었다.
 “볼 일을 보러 간 것인가? 그나저나 한바탕 폭우가 쏟아질 것 같은데.”
 어둑어둑한 사위와 하늘을 완전히 메운 먹구름. 잠들기 직전만 해도 화창한 하늘이었건만, 금방이라도 굵직한 빗방울이 떨어질 것 같았다.
 번쩍- 콰가가- 강!
 짐작대로 순간 한차례 번개와 천둥이 쳤다.
 쏴아아-!
 그것을 개시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늘에 갑자기 구멍이라도 뚫렸단 말인가? 비는 물바가지로 퍼붓는 것처럼 억수같이 쏟아져 내렸다. 난생처음 겪는 엄청난 폭우로 실로 어이가 없을 정도였으며,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닥은 완전히 물바다로 변해버렸다.
 옥광은 자하를 찾는 것을 포기하고 폭우를 피할 수 있는 장소를 찾기 위해 사위를 재빨리 둘러봤다. 마땅히 비를 피할 장소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릴 수도 없었다. 잘못하다간 자하와 길이 엇갈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처음 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끝까지 따라온 자하가 어땠는가?
 상당히 껄끄럽고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그녀가 있었기에 무탈하게 열흘 동안 노정을 펼칠 수 있었고, 길도 제대로 갈 수 있었다. 때때로 위험한 것들을 알아서 치워주는 든든한 보호자 역할도 해 그 어떤 사람보다도 귀중한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옥광은 그녀와 헤어지지 않기 위해 억수 같이 내리는 비를 그대로 받아들이며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러길 대략 일각이란 시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구르르르- 릉!
 “……!”
 난데없이 들리는 굉음.
 천둥소리인가?
 아니다. 그보다 더 큰 굉음으로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였다. 심지어 땅까지 뒤흔들리고 있지 않은가.
 옥광은 재깍 등을 돌려 우뚝 솟은 산을 쳐다봤다.
 “컥!”
 절로 단말마가 튀어나왔다. 멀쩡한 산 정상이 어이가 없게도 급속토록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혹 빗물이 눈물에 들어가서 착각한 것이 아닐까? 옥광은 눈을 비비며 다시 산 정상을 쳐다봤다.
 콰르르르-!
 착각이 아니었다. 실제 산 정상이 빠른 속도로 허물어지고 있었고, 거대한 흙먼지 구름과 함께 엄청난 양의 토사가 굵직한 나무 할 것 없이 산중에 자란 모든 생명체들을 집어삼키며 빠른 속도로 내려오고 있었다.
 당최 이해가 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옥광은 무조건 뛰었다. 아니면 우직 꺾여서 토사와 함께 흘러 내려오는 나무 신세가 될 것은 뻔했다.
 그러나 엄청난 속도로 내려오는 토사라 죽을힘을 다해 뛰어도 죽음을 면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대로 죽을 수 없어. 난 꼭 설원을 봐야 해! 하늘아, 제발 이 마지막 소원만은 들어다오. 제발!’
 허구한 날 더러운 운명만 안겨 준 하늘이었다. 한데도 마지막까지 더러운 최후만 안겨 주는 것인가? 욕설이 튀어나오고 화가 끝까지 치밀어 올라 뇌수마저 끓어 넘칠 것만 같았다.
 옥광은 그래도 욕설을 내뱉지 않았다. 오직 간절하게 빌며 허파가 터지도록 뛰고 또 뛰었다.
 살려 달라. 제발 설원까지 갈 때까지만!
 그 간절함이 통한 것일까? 옥광은 순간 숲 근처에서 조그마한 토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로 인해 본능적으로 그곳을 향해 두 다리를 열심히 놀려 댔다. 실상 그곳에 뛰어 들어간들 산사태의 규모로 볼 때 살 가망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혼신을 다해 뛰고 또 뛰었다.
 쿠르르릉!
 거대한 지진이 일어난 듯한 굉음. 그 굉음이 머리 위에서 진동해 극한 공포를 느끼게 하는 순간, 옥광은 토굴의 입구에 몸을 즉각 집어넣을 수 있었다.
 턱!
 “윽!”
 그러나 입구에 나 있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으니.
 ‘결국 이렇게 죽는 것인가!’
 비록 토굴 입구에 들어갔다고 하나, 덮쳐 오는 거대한 토사가 토굴 입구에 들어오지 말란 법이 없지 않은가. 생매장을 피할 길은 없었다.
 옥광은 머리를 감싸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괴이하게도 곧 다가올 죽음의 공포보다 어린 시절이 떠올라 수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아버지…….”
 가장 많은 정을 준 부친이다. 하여 뇌리에 스쳐 지나가는 장면 대부분은 부친과 있었던 일이라 옥광은 절로 아버지를 찾게 됐다.
 그렇게 아버지를 얼마나 부르고 또 불렀을까?
 “……!”
 토사에 온몸이 덮여도 진작 덮여야 하건만 그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급기야 귓가에 ‘뽀르르- 릉!’거리는 날짐승의 울음소리까지 들려왔다.
 ‘벌써 죽은 것이란 말인가? 아니야, 절대 그럴 리가 없어.’
 정신은 그대로다. 느껴지는 육신 또한 그 어떤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문득 다른 점이 확연하게 느껴졌다. 토굴에 들어오기 전 억수같이 퍼부은 빗물로 인해 흠뻑 젖었는데 비를 맞은 느낌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전신에 뽀송뽀송한 느낌만이 강하게 들었다.
 옥광은 두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컥!”
 노인의 꿈에 이어 또다시 꿈을 꿨단 말인가? 아니면 귀신에 홀렸단 말인가?
 토굴 입구 밖에 펼쳐진 광경은 너무나 어이가 없는 뜻밖의 장면이었다. 모든 것들을 집어삼킬 것 같은 토사는 온데간데없고 자잘한 잡초만이 펼쳐져 있었다. 입구에 걸쳐진 하늘도 청명하기 그지없었고, 비를 내린 그 어떤 흔적도 없었다.
 옥광은 멍한 눈동자를 드리우며 한동안 석상이 된 채 요지부동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길 대략 반각 정도 지났을까?
 옥광은 몸을 천천히 일으켜 토굴 밖으로 발을 움직였다. 우선 귀신에 홀렸던, 나약한 몸 때문에 환각을 일으켰던 노숙한 곳으로 가서 자하를 만날 생각이었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해괴한 일도 이상한 꿈도 일어나지 않으리라 판단한 것이다.
 한데 막 토굴 입구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옥광은 걸음을 뚝 멈췄다.
 “이 시원한 느낌은 뭐지?”
 등 뒤에서 문득 냉기가 확 끼쳤다. 흡사 얼음을 껴안은 듯 후끈후끈한 몸의 열기를 모두 다 날려 버릴 정도로 강한 냉기였다.
 옥광은 본능적으로 토굴 쪽으로 등을 돌렸다. 그리고 다시 토굴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짙은 암흑으로만 싸여 있는 토굴. 가까운 정면에 깊이를 측정할 수 없는 조그만 구멍이 이어져 있었는데, 겨우 기어 들어갈 수 있는 크기라 선뜻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는 곳이었다.
 그러나 다시 환각에 빠진 듯 옥광은 주저하지 않고 그 구멍 속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그러길 대략 일각이 지날 무렵, 옥광은 푸석푸석한 흙 대신 딱딱한 석벽을 만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상체도 완전히 일으켜 세워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구멍이 갑자기 커진 것이다.
 그러나 칠흑 같은 어둠만이 휩싸여 있어 구멍이 얼마나 넓혀졌는지 파악할 길이 없었다.
 옥광은 마냥 계속되는 짙은 어둠에 왼손으로 벽을 짚고 오른손을 앞으로 펼치며 계속 걸음을 옮겼다.
 왼 손바닥에 느껴지는 벽면은 반들반들한 차돌을 만지는 것처럼 매끄러웠고, 울퉁불퉁한 부분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만든 굴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보다 이곳이 어디이건 계속해서 느껴지는 이 시원한 냉기는 무엇일까? 가면 갈수록 더더욱 강한 냉기가 느껴졌고, 기분까지 상쾌해졌다.
 저벅저벅.
 옥광은 웅웅 울리는 커다란 자신의 족적 소리를 들으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넓이를 알 수 없는 굴은 무려 반 시진이란 시간을 소비해도 그 끝에 도달할 수 없었다.
 그렇게 또다시 캄캄한 굴을 반 시진 정도 걸었을까?
 “빛이다!”
 밖의 강렬한 일광은 아니지만 어둠에 적응된 눈으로도 정확히 볼 수 있는 은은한 빛이 보였다.
 그때부터 옥광은 지친 몸임에도 불구하고 그 빛을 따라 힘껏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빛이 나는 곳에 도착한 순간 두 눈을 번쩍 떴다.
 “샘이 이런 곳에 있다니.”
 천장에 여러 개의 구멍이 뚫려 일광의 파편이 빗살처럼 들어와 어느 정도 사위를 밝히고 있는 동굴의 끝. 빛이 닿은 곳에 샘물이 일광을 반사시키고 있었다.
 대략 2장 반경의 원형으로 이루어진 샘인데, 인위적으로 만든 것인지 돌로 된 바닥에 나 있는 모양이 완전한 원형을 이루고 있었다.
 샘물은 바닥 높이와 거의 수평을 이루며 넘칠 것 같으면서도 넘치지 않았고, 대신 흰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와 바닥에 낮게 깔려 있었다. 짐짓 물의 강한 냉기로 인해 연기가 나는 것 같았다. 그것을 증명하듯 샘 주위에 간간이 서리가 껴 있었다.
 “이 샘물 때문에 냉기를 느낀 것인가?”
 옥광은 먼저 검지를 뻗어 샘 수면으로 살짝 가져가 댔다.
 “이럴 수가!”
 엄청난 냉기. 순간 손가락 하나만 집어넣었는데도 온몸이 다 떨릴 정도였다.
 몸에 늘 열이 많아 추운 겨울날 얼음물 속에서 장장 한 시진이나 있어도 이런 냉기를 느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샘물이 이렇게 차가울 수 있단 말인가? 믿기지가 않아.”
 옥광은 연방 경악을 터뜨리다가 마른침을 한 차례 꿀꺽 삼켰다. 순간 심한 갈증을 느낀 것이다. 그로 인해 고개를 숙여 샘물 위로 입을 가져가 댔다.
 꿀꺽!
 옥광은 샘물 한 모금을 들이켰다. 괴이하게도 입 안으로 들어간 물은 피부로 느낀 것보다 그렇게 강한 냉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흡사 보통 얼음물을 마신 것과 같았다.
 그러나 혓바닥에서 느껴지는 맛이 꿀이라도 섞은 것처럼 달콤했다. 게다가 식도를 타고 위장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전신에 짜릿한 쾌감과 함께 마치 하늘을 나는 듯한 상쾌함이 물씬 느껴졌다. 실로 물 한 모금에 황홀경에 빠져 버릴 지경이었다.
 옥광은 그 느낌을 계속 만끽하기 위해 샘물에서 좀처럼 입을 떼지 않았다.
 <배 터져 죽겠다. 그만 처먹어!>
 “캑! 쿨럭쿨럭!”
 갑작스럽게 웬 환청 같은 육성이 들린단 말인가?
 옥광은 대경실색하며 사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무도 없었다. 사람이 숨을 공간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 환청은 어디서 나왔단 말인가?
 옥광은 머리카락을 삐죽 세우며 대성을 터뜨렸다.
 “사, 사람이면 나오고, 귀신이면 썩 물러가시오!”
 <물러가라고? 이날을 기다리기 위해 무려 백십오 년이나 기다렸는데, 너 같으면 물러가겠냐?>
 물러가겠냐? 그렇다면 귀신이란 소리가 아닌가?
 아닐 것이다. 귀신은 무슨 귀신이란 말인가?
 옥광은 귀신 자체를 믿지 않았다. 하지만 짙은 긴장감과 두려운 낯빛을 지우지 못했다. 괴상한 노인의 꿈을 꾸면서 이상한 일만 벌어졌으니, 해괴한 일이 또다시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었다.
 “해괴한 사술을 부리지 말고 어서 모습을 드러내시오!”
 옥광은 일단 모든 것들을 해괴한 사술로 치부해버렸다.
 <사술? 그래, 이놈아. 사술이든 아니든 내 모습을 보여 주마. 두 눈이나 똑바로 뜨고 있어라!>
 어디에서 나타날까? 입구에서?
 아니다. 들려오는 메아리와 같은 소리는 입구 밖에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 안이 분명한데, 주위는 완전히 꽉 막혀 있었으니 어디서 그 목소리가 나오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혹시 샘물 속에서? 그럴 리는 없는데.’
 숨을 수 있는 곳이란 샘물밖에 없다고 잠시 생각했지만 고개를 흔들었다. 어떻게 강한 냉기를 발하는 샘물 속에 숨도 쉬지 않고 오랫동안 있을 수 있으리오.
 한데, 그 샘물을 쳐다본 옥광의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부릅떠졌다.
 “컥! 당신은!”
 언제 나타났는지 샘의 수면 위에 누군가가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수면 위를 마치 땅바닥처럼 가부좌까지 틀고 있었다. 또한 동혈 천장에서 뻗어 나오는 빛살이 그의 몸을 그대로 투과해 수면 위에 비추고 있었다. 무엇보다 반투명한 노인의 얼굴이 꿈속에서 봤던 그때의 노인과 똑같았다.
 “아, 아직 내가 꿈에서 깨어나지 못했단 말인가!”
 꿈을 계속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면 그 어떤 것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꿈속에서 과연 토굴 입구에 넘어졌을 때 바닥에 찍힌 무릎에서 계속해서 통증을 느낄 수 있을까? 또한 샘물의 마셨을 때의 맛과 느낌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을까?
 혼란 그 자체였다.
 <반갑다, 제자야. 크하하하!>
 귀신같은 노인은 이상한 말과 함께 대소를 터뜨렸다. 급기야 푸른 안광을 번뜩이며 가부좌를 튼 상태에서 미끄러지듯이 다가왔다. 그 모습은 꿈속에서 자신을 잡으러 왔을 때와 똑같았다. 단, 다른 점이 있다면 육신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에 옥광은 등을 재빨리 돌려 그대로 뛰었다.
 그러나,
 뻑!
 어처구니가 없게도 입구가 아닌 벽에 머리를 부딪치고 말았으니… 옥광은 결국 짧은 단말마와 함께 그대로 바닥에 너부러지고 말았다.
 <이놈 바보 아냐? 하긴 열 살 정도밖에 안 되는 어린놈이니 겁을 잔뜩 먹을 수 있는 일이지. 그보다 이곳을 드디어 나갈 수 있는 건가? 그런가? 암! 그래야지. 푸- 하하하!>
 희뿌연 인영의 윤곽을 드러내는 노인은 옥광을 계속 쳐다보며 앙소만 터뜨렸다. 완전히 실성한 광인(狂人)처럼.
 
 
 제3장. 구타식음타혈(毆打食飮打血)
 
 사부 유천(柳天)의 유지를 받들어 115년 동안 죽어서도 극양극혈을 가진 자를 기다렸던 서승천(徐承天). 그 기나긴 세월동안 얼마나 애를 태우면서 힘겹게 기다리고 기다렸던가?
 이제 그 사명을 다할 수 있는 그는 감회의 눈물을 흘리며 기꺼워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데, 그의 희미한 안형(顔形)에는 감회도 기꺼움도 없었다. 오히려 참담함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실로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이었다.
 <육시랄! 망할!>
 서승천은 조용히 신실해 있는 옥광을 바라보며 머리카락을 질끈 잡아당겼다. 좀 전의 기쁨도 잠시, 연방 욕설을 내뱉었다.
 놈의 몸을 보라.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냉기를 품고 있는 극한수(極寒水)를 마신 지 불과 반의 반각이란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놈의 몸에선 뜨거운 열기를 내뿜고 있지 않은가.
 범인(凡人)이 극한수를 단 한 모금이라도 마신다면 극한 냉기로 인해 그 자리에서 심장마비가 걸려 죽게 되고, 제 아무리 강한 양기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오한에 걸려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바들바들 떨 일이었다. 극한 양기를 가진 극양극혈인 자도 세 모금 이상 마시기 힘들었다.
 한데, 이 어린놈은 세 모금 이상 마시고도 오한을 느끼기는커녕 몸에서 강한 열기를 내뿜고 있으니… 극양극혈 중에서도 최상인 진원극양극혈(眞元極陽極血)이 틀림없었다.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렸던 극양극혈이건만 하필이면 최상이라 할 수 있는 진원극양극혈이 올 것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천 년 동안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그런 혈이 말이야. 크아아아-!>
 서승천은 미친놈처럼 머리를 쥐어뜯으며 커다란 괴성까지 터뜨렸다.
 실제 진원극양극혈을 가진 자라면 천양신공의 극성을 쉬이 이룰 수 있는 뛰어난 혈이 아닐 수 없다. 즉, 천양신공에 너무나도 적합한 혈이었다.
 그러나 엄청난 걸림돌이 있었다. 너무나도 강한 양기 때문에 체질과 체격에 엄청난 결함을 안고 있다는 점이었다. 만약 육체적 결함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천양신공을 배운들 평생 입문 단계 수준에 그칠 뿐이었다. 하여 천양신공을 가르치는 그 의미가 전혀 없었다.
 왜 사부가 천양신공을 자신에게 전수해주고, 다시 자신이 기나긴 시간 동안 천양신공의 후예를 기다린 것인가?
 목적은 단 하나, 극음극혈(極陰極血)을 가진 자들과 대항하기 위해서였다. 자신과 정반대의 혈을 가진 자들, 정확히 강한 음기를 가진 자들로 대부분 여인들로 이루어졌는데, 모두 사악하고 흉악한 심성을 지니고 있어 어떨 땐 천하에 커다란 혈겁까지 일으키기도 했다. 자신도 그런 자들이 무림에 나와 혼란을 일으킨 것을 잠재운 적이 있었다.
 그런 그들이 언제 또다시 나타나 세상을 파단지경으로 만들지 모를 일, 사부는 그것을 늘 걱정하며 후사의 일에 많은 신경을 썼었다. 자신도 그의 유지를 받아 이렇게 기다리지 않았던가.
 각설하고, 천양신공을 익힌 제자는 극음극혈을 지닌 자가 나타나면 언제 어디서든 간에 그 즉시 나아가 그자를 제압해야 했다. 특히 무공을 익힌 극음극혈을 가진 자들은 대부분 강력한 무위를 가지고 있어, 천양신공을 바탕으로 한 강력한 극양장을 자유자재로 발출해서 그들을 제압해야 했다.
 한데, 이놈은 그럴 수 없었다.
 본래 천양신공은 완벽한 것이 아니었다. 세상 만물은 항상 한곳에만 치우치지 않고 늘 조화를 이루듯이 천양신공도 오직 양기로만은 발전할 수 없었다. 해서 적절한 음기를 흡수하여 기의 조화를 일으켜야 더더욱 발전하고 대성을 이룰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음기를 가진 자들, 특히 여인으로 볼 때 그 음기의 양과 질에 따라 하음(下陰), 중음(中陰), 상음(上陰), 극음(極陰), 그리고 진원극음(眞元極陰)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들 중 혈속에 오직 암기만 받아들이는 혈을 지닌 여인들을 하음극혈, 중음극혈 등으로 칭했다.
 하여 천양신공을 배운 자라면 먼저 중음극혈 이상을 가진 여인들에게서 그 음기를 꾸준히 흡수해 무위를 증진시킨 다음에야 무공을 배운 상음극혈이나 극음극혈, 더 나아가 진원극음극혈을 지닌 여인들을 제압할 수 있었다.
 따라서 천양신공을 익힌 제자는 먼저 무공을 익히지 않은 중음극혈 이상의 여인들을 찾아 편하게 그들의 음기를 흡수해야 하는데, 진원극양극혈을 가진 이놈이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기적적으로 천양신공 중 음혈흡성기공(陰血吸成氣功)을 익혀도 만년 어린아이의 몸을 지닌 이놈에겐 불가능에 가까웠다.
 음기를 흡수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반드시 극양장으로 제압하여 그 대상을 실신시킨 후 음혈흡성기공으로 강제로 기를 흡수하는 것이고, 둘째는 서로 정을 통하게 해 잠자리를 같이하는 방법이 있었다.
 그러나 극한수가 있는 극음동혈에 들어온 이놈은 제아무리 익혀도 손바닥에 극양장은커녕 바람조차 제대로 낼 수 없으며, 어린아이의 몸으로 장성한 여인과 같이 잠자리를 같이할 수도 없었다.
 결론은 아니었다. 진원극양극혈이 아닌 극양극혈을 지닌 다른 자를 또다시 기다려야 했다.
 <내가 무슨 죄를 그리 많이 졌기에 백십오 년 만에 나타난 제자가 이 꼴이라니… 차라리 들어오지나 말 것이지. 크흑흑흑.>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았다면 실망이라도 하지 않았을 것을.
 서승천은 실의에 빠져 처절한 눈물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또다시 끝없는 세월 동안 기다려야 한다는 그 사실에 혼백마저 썩어 문드러질 것만 같았다.
 <오호! 드디어 제자가 될 놈이 왔구먼!>
 서승천은 송충이 같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고개를 획 틀었다.
 <망할 놈, 또 왜 왔어!>
 눈매가 역팔자로 쭉 치켜 올라간 눈썹 아래 두 눈동자가 거의 보이지 않은 작은 눈. 특히 여인의 입술처럼 붉으면서 양쪽으로 쭉 찢어져 있는 입술을 가진 놈.
 간간이 찾아와 염장만 지르고 가는 저승사자 놈이었다. 가뜩이나 기분이 더러운 이때에 나타나니 속이 더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심심할까 싶어서 시간을 내서 왔건만, 화부터 내? 하여간 네놈은 구제불능이야. 그보다 제자가 왔으면 덩실덩실 춤이라도 춰야지, 그놈의 상판때기는 뭐야?>
 <말시키지 마라. 안 그래도 이놈 때문에 혼백마저 녹아내릴 지경이니까.>
 <이놈이 어때서? 어라? 이놈은… 어린아이가 아니잖아. 어디 보자.>
 저승사자는 두 눈을 끔뻑거리다가 시커먼 도포자락에서 두툼한 서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그는 곧 서책을 뒤적거리다가 손을 멈칫거렸다.
 <문원찬의 첫 자식인 문옥광(文玉光). 나이 스물 하나. 특이한 병에 걸려서… 이놈 참, 괴상하고 황당한 팔자를 가진 놈이로세.>
 저승사자를 완전히 무시했던 서승천이었지만, 귀를 꿈틀거리며 많은 관심을 나타냈다.
 <무슨 팔자이기에 그래? 혹시 이놈의 몸이 갑자기 어른으로 바뀌는 그런 팔자인가?>
 <망할 놈의 영혼아. 세상에 그런 팔자를 가진 놈이 어디에 있어? 그리고 이 운명서의 내용은 그 누구에게도 절대 말할 수가 없어. 단!>
 <……?>
 <이유를 말해봐, 왜 오물을 씹은 표정을 짓고 있는지. 그럼 저놈에 대해 한 가지 정도는 말해주지.>
 서승천은 괜스레 옥광에 대해 호기심이 일어났다. 그에 옥광의 몸에 대해 읊조리기 시작했다.
 볼 때마다 얄밉고 자신을 늘 놀리기만 하는 저승사자이지만, 유일한 대화 상대가 저승사자밖에 없는지라 솔직히 그가 찾아오는 것이 그렇게 싫지는 않았다. 그와 대화하고 화를 버럭버럭 내는 그 순간만큼은 고독과 기다림의 지친 마음을 잠시나마 지울 수 있으니까.
 그로 인해 서승천은 벗에게 푸념을 하는 듯 천양신공이 어떤 것이며 나타난 놈의 상태가 어떤지 상세히 말했다.
 그러길 대략 이각 정도 지났을까? 저승사자는 한 차례 헛웃음과 함께 서승천을 어이없이 쳐다봤다.
 <허- 참! 내 진작부터 네놈이 무식하고 멍청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멍청한 놈인 줄 몰랐다.>
 <무, 뭐라? 내가 멍청해? 내 그놈의 찢어진 입을 완전히 찢어주마!>
 <쯧쯧, 네놈이 찢는다고 이 저승사자님의 입을 찢을 수 있더냐? 그보다 너 왜 이곳에서 죽치고 있었냐?>
 <왜긴 왜야! 제자가 될 놈을 기다렸지.>
 <글을 몰라서가 아니고?>
 <망할 놈. 그 이야기는 왜… 맞아!>
 서승천은 두 눈을 홉떴다.
 글을 모른다. 그 이유 때문에 긴 세월 동안 극한동혈에서 죽치고 앉아 있었던 것이 아니던가. 따라서 옥광이 글을 알면 그를 통해 비급 하나를 만들어놓고 가면 그만이었다.
 그것을 깨달은 서승천은 언제 맥이 빠졌냐는 듯이 커다란 대소를 터뜨렸다. 급기야 늘 앙숙 같은 저승사자를 덥석 껴안기까지 했다.
 <크하하하! 드디어 나갈 수 있어! 고맙다, 저승사자. 정말 고마워. 크하하하-!>
 <에- 효, 사람이나 귀신이나 일단 똑똑해야 한다니까. 이 망할 놈의 혼백아, 좀 떨어져!>
 저승사자는 서승천을 밀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다가 옥광을 쳐다봤는데, 그의 자그마한 눈에 자못 불쌍하다는 눈빛이 역력히 드러났다.
 <밥을 먹을 때마다 뭇매를 맞아야 하는 팔자라… 정말 어이없는 팔자야. 이휴- 차라리 굶어죽는 것이 낫지.>
 <뭐? 세상에 그런 팔자도 다 있나? 아무튼 고맙다.>
 서승천도 어이없는 눈빛을 드리웠지만, 옥광의 팔자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나타내지 않았다. 드디어 이곳을 나갈 수 있다는 그 기쁨만을 만끽하고 있었다.
 
 ***
 
 옥광은 두 눈이 심하게 흔들거렸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반투명한 노인의 얼굴을 쳐다봤다.
 난생처음 보는 귀신. 성격이 괴팍하게 보였지만 그다지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한 말에 가슴이 쿵쾅거렸다.
 “그, 그러니까… 불러준 대로 다 받아 적으면 제 병을 정말 낫게 해준단 말씀입니까?”
 <속고만 살았냐? 몇 번이나 말해야 돼?>
 고칠 수 있다. 자신의 병을!
 가슴 설레는 말이었다. 그가 과연 병을 고칠 수 있을까? 솔직히 믿기지가 않았다. 하지만 서승천이란 혼백은 가슴이 쿵쾅거릴 정도로 너무나 확고하게 장담했다.
 또한 모르리라. 이때까지 이상한 현상을 일으킨 귀신이었으니, 어쩌면 특이한 방법으로 병을 낫게 해 줄지도 몰랐다.
 ‘밑져야 본전이다. 좋아!’
 불러주는 대로 받아쓰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옥광은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어르신이 불러주는 대로 확실하게 적어드리겠습니다. 대신 꼭 약조를 지켜 주십시오.”
 <암! 약속을 지키고말고! 일단 나를 따라와라.>
 서승천은 빙긋거리며 스르륵 미끄러지듯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옥광도 그의 뒤를 바싹 따랐다.
 캄캄한 밀실 복도 같은 곳으로 얼마나 걸었을까? 대략 50장 정도 걸은 것 같았고, 어느 순간 서승천의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머리를 찍고 싶지 않으면 이곳에서 멈춰. 그리고 옆으로 손을 뻗어봐.>
 옥광은 시키는 대로 즉각 발을 멈춰 손을 뻗었다. 이내 손바닥에서 석벽을 만지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고, 더듬거리다가 철봉 같은 물건을 손가락으로 잡을 수 있었다.
 <그것을 아래로 당겨.>
 옥광은 힘껏 아래로 당겼다.
 철- 컹!
 순간 쇳소리가 저편 너머로 한 차례 들러왔다. 곧이어 ‘끄르륵’ 하는 돌 마찰음과 함께 푸른빛이 바닥에서 봇물이 터지듯이 뿜어져 나왔다.
 빛이 나오는 공간은 점점 커졌고, 잠시 후 은은한 푸른빛이 감도는 한 실내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실내는 그다지 눈여겨볼 만한 것이 없었다. 먼지가 자욱한 낡은 침상과 책상 하나가 가구 전부였고, 식량을 저장하기 용이한 단지 3개밖에 없는 자그마한 실내였다.
 단, 벽에 촘촘히 붙어 있는 물건만 예외였다.
 “귀한 야명주가 이렇게 많이 박혀 있다니!”
 실내를 환하게 만들고 있는 정체는 다름 아닌 귀하디귀한 야명주였다. 그것도 밤하늘에 박혀 있는 성광(星光)처럼 실내 전체에 도배하다시피 박혀 있었다. 모두 다 떼어내어 팔면 황금 1만 냥은 더 될 듯싶었다.
 <이놈아, 야명주에 눈독 들이지 말고 어서 저곳에 앉아.>
 옥광은 바로 놀람을 접고 책상으로 다가가 앉았다.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끼익’거리는 책상이 언제 무너질지 모를 정도로 낡아 있었다.
 어찌 됐건 이곳으로 노인 귀신이 데리고 온 목적은 글을 쓰기 위함이었으니,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벼루에 먹을 갈기 시작했다.
 “이만하면 되겠습니까?”
 <좋아, 그만하면 됐어. 그럼 책상 밑에 있는 양피지에 불러주는 대로 적어.>
 옥광은 시키는 대로 책상 밑에 있는 양피지 뭉치를 꺼내 책상에 펼쳤다. 그때부터 서승천의 입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억겁창생, 만물의 본질은 무(無)이나니, 바탕은 없되 바탕은 우(宇)이며 천(天)인지라, 그 무로 인해 음양(陰陽)은 갈라지고, 오행(五行)의 근원이 된다. 행오는 또다시 갈라지니, 백팔진기(百八眞氣)로 갈라져 유(有)의 초석이 된다. 하여 무를 안다는 것은 모든 사물을 아나니, 그것은 도인의 꿈일지라. 하나 우매한 인간에게는 실로 불가능하며, 안다고 하여도 그것은 어패로다. 그러나 음양을 따지는 것은 각고의 노력과 진부한 깨달음의 그 진의를 파악할 수 있나니, 특히 양의 회도(回道)와 심의(深意)을 깨달아 세상을 이롭게 하는 성광이 될 수 있도다. 하나 진정한 양의 깨달음은 극양극혈을 가진 자만이 이룰 수 있으니, 언제나 안타까울 뿐이로다. 하여 극양극혈을 가진 자는 하늘의 재를 올려 언제나 경건한 마음으로 감읍할지어다. 그 감읍함이 없다면 오히려 양의 기운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없나니, 다음 언급하는 천양심법은 곧 무용지물일지라…….>
 도의에 대한 것일까? 하지만 문구가 그렇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무공 비급을 읊조리는 것 같은데……. 하긴 나와 상관없는 일이지.’
 옥광은 무공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학문에만 증진하라는 부친의 말씀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약한 몸 때문에 운동 자체도 꺼려 해 무공을 그저 딴 세상의 이야기처럼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왜일까? 기억하지 않으려고 해도 서승천의 말이 머릿속에 쏙쏙 들어왔고, 쓰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글귀를 되새기기도 했다.
 <…극양극혈 중에서도 최상의 혈이 있나니 그것을 진원극양극혈이라 부른다. 이는 태신의 정기를 한 몸에 받은 자로 이 세상에 태어나는 일이 극히 드무나, 만약 그가 태어난다면 어릴 때부터 구타식음타혈을 행해야 비로소 양기의 그릇을 담을 수 있는 진정한 진원극양극혈이 될 수 있으리라. 하나, 구타식음타혈을 실패할 경우엔 온몸이 재로 화하라라. 가, 가만!>
 옥광은 일필휘지(一筆揮之) 휘날리던 붓을 뚝 멈춰 서승천을 쳐다봤다.
 “왜 그러십니까?”
 <구타식음타혈? 그래서 저승사자 놈이 그런 말을 했던가?>
 서승천은 검지로 머리를 긁적거리며 옥광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구타식음타혈(毆打食飮打血).
 그 문구에 문뜩 저승사자가 옥광의 팔자에 대해 언급한 것이 떠올랐다.
 
 ‘저승사자 말대로라면…구타식음타혈로 이놈의 몸을 고칠 수 있단 말인가? 음… 아무래도 그건 불가능한 이야기인데, 이놈의 나이도 그렇고… 젠장. 사부도 진원극양극혈에서 대해서 잘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
 
 <별일 아니니까. 계속 쓰기나 해.>
 서승천은 우선 비급을 기록하는 일을 속개했다. 옥광도 빨리 병을 고치고 싶어 그가 불러주는 문구를 적는 데 집중했다.
 
 ***
 
 옥광은 고개를 푹 숙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반면 그의 옆, 대략 1장 정도 떨어져 있는 곳에 서승천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옥광을 해괴한 괴물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도대체 저놈의 머릿속엔 뭐가 들었기에… 허허! 저놈은 인간이 아니야!>
 다음 이곳에 올 극양극혈을 가진 자를 위해 옥광을 통해 비급을 완성시켰다. 그런 다음 병을 낫게 해주겠다는 약조를 지키기 위해 그 방법을 일러주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천양신공의 첫째와 둘째 단계인 축양(蓄陽) 호흡법과 압양(壓陽) 호흡법이었다. 실제 그 두 가지 호흡법과 이곳에 있는 극한수를 마시며 대략 두세 달 정도면 끓어오르는 양기로 인해 단명할 운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놈은 축양과 압양이란 말만 언급했는데, 그 방법을 자신보다 더 상세하게 줄줄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뿐만 아니라 양혈운기법(陽血運氣法)을 넘어 다섯 가지의 극양장을 펼칠 수 있는 방법부터 시작해, 구타식음타혈 방법까지 모두 알고 있었다. 즉, 10년 동안 주야청천 외우고 외웠던 천양신공을 단 한 번에 다 외워버린 것이다.
 반면 옥광은 실망에 가득 쌓여 있었다.
 2개의 요상한 방법으로 단명하지 않아도 된다?
 믿기지 않지만 정말이라면 기쁘기 한량이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늙어 죽을 때까지 영원히 아이로 살아야 된다는 서승천의 확답에 삶의 욕구가 뚝 떨어졌다. 심지어 그냥 이대로 죽어버렸으면 하는 심정까지 들었다.
 <이놈아, 왜 그래 풀이 죽어 있어?>
 “후우… 정말 영원히 이런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까?”
 <잔말 말고 극한수가 있는 곳으로 가서 열심히 호흡을 해. 죽는 것보다 그런 모습이라도 살아 있는 것이 어디야?>
 “후우…….”
 <빌어먹을 그놈의 한숨. 땅 꺼지겠다. 누가 진원극양극혈을 가지고 태어나라고 했나? 다 네놈 복이라 생각하고…….>
 “자, 잠깐! 지금 저보고 진원극양극혈이라고 했습니까!”
 옥광은 서승천에게 바싹 다가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서승천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내가 말하지 않았나?>
 “예!”
 <맞아, 내가 말한 적이 없었지. 그래, 이놈아. 넌 진원극양극혈을 가지고 태어났어. 그러니 네놈을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고.>
 옥광은 두 눈을 반짝이며 따지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구타식음타혈이란 방법이 있지 않습니까!”
 <에고, 참 많이도 안다. 그래, 신체를 정상적으로 성장시키는 그 방법이 있긴 있지. 하지만 어려서부터 해야 된다는 것을 말 안 해도 잘 알 텐데? 무려 오 년 동안… 아니지, 넌 이미 약관을 넘었으니 족히 십 년 동안은 매양 밥을 먹을 때 구타를 당해야 하는데 그것을 할 수 있겠어? 그냥 포기해라. 성공할 확률도 없거니와 한 달도 안 돼 위와 창자가 뒤틀려 죽을지도 몰라.>
 “…….”
 옥광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말대로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절대 그냥은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맴돌았다.
 ‘만약 저 노인이 알려 준 두 가지 호흡법으로 단명을 하지 않는다면… 할 것이다. 위와 창자가 뒤집히고 완전히 터지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할 것이야!’
 부친에게 떳떳한 아들이 되고 싶었다. 11명의 동생들에게 당당한 맏이가 되고 싶었다. 더 나아가 풍림당의 소당주로서, 아니면 학문에 증진하여 큰 인물이 되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여인과 진정한 정분을 쌓고 싶었다. 모두가 될 수 있는 아버지라는 것도!
 그런 꿈을 꾸고 키우기 위해서는 아이의 모습에서 반드시 탈피해야 했다. 그리고 지금 방법이 있다. 비록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저놈의 눈빛을 보아하니 구타식음타혈을 행할 작정 같은데……. 젠장,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지.>
 서승천은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만약 구타식음타혈을 행한다고 해도 바로 포기해버릴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정말 기적을 일으켜 구타식음타혈에 성공해 천양신공을 무난히 익힐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으니, 옥광을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상책이었다.
 <계속 이만 뿌드득거리지 말고 어서 극한수로 가라, 이곳을 빨리 나가고 싶으면.>
 서승천은 옥광은 재촉했다. 그가 호흡법이 익숙해졌을 즘 저승사자를 따라갈 작정이었다, 이승의 모든 것들을 훨훨 털어버리면서.
 
 ***
 
 강한 냉기를 뿜어내고 있는 극한수(極寒水).
 천장에서 창살처럼 쭉 뻗은 7개의 일광이 수면에 부딪치며 금빛을 반짝거리게 했다. 반사된 7개의 빛은 동혈 석벽 한쪽 부분에 비쳐 그곳만큼은 눈부시게 환했다.
 그 아래 옥광이 허리를 꼿꼿하게 펴 가부좌를 틀고 호와 흡을 일정한 간격으로 행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얼굴은 따뜻한 어미 품속에 있는 어린아이처럼 마냥 편안하게 보였다.
 하나, 얼마 되지 않아 눈썹을 모아 미간을 찡그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미간은 더더욱 찡그려졌고, 이마 역시 잔뜩 찡그려졌다. 급기야 입에서 빠드득 거리를 소리까지 내며 두 뺨에 심한 경련이 일어나기도 했다. 짐짓 강한 통증을 억지로 참고 있는 것 같았다.
 서승천은 그런 옥광의 옆에서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고, 때론 탄성까지 토해냈다.
 <저놈 보기완 딴판으로 완전 독종이로세. 신음 소리조차 내지 않다니… 허허-!>
 천양신공의 두 번째 단계인 압양(壓陽). 말 그대로 양기를 압축시키는 호흡법으로서, 순수한 양기를 축기하는 축양(蓄陽) 호흡법을 익히고 난 다음 반드시 배워야 하는 호흡법이었다. 만약 그것을 통달하지 못한다면 양기가 제멋대로 날뛰어 극심한 열로 인해 죽거나, 극한수로 열을 다스리기 위해 평생을 극한수 옆에서 살아야 했다.
 어찌 됐건 순수한 양기를 선천적으로 많이 가진 옥광은 압양 단계를 거의 뛰어넘다시피 하고, 현재 두 달 동안 압양 호흡법을 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한데, 너무나도 쉽게 압양을 행하고 있었다.
 압양 단계가 뭔가? 구타식음타혈법을 제외하고 천양신공 중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단계이다.
 서승천도 직접 경험해봐서 그 고통이 얼마나 극심한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붉게 달아오른 쇠꼬챙이로 창자와 오장육부를 푹푹 쑤셔 대는 듯한 통증. 생각만 해도 살과 치가 떨리는 극심한 고통으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든 것만 해도 수십 번이었다.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그 고통이 증폭되어 온몸이 녹아낼 것 같은 느낌마저 들어 처절한 비명과 함께 사부 유천에게 원망과 욕설까지 퍼부은 적도 있었다.
 그런데 옥광 놈은 뭔가?
 미간만 잔뜩 찌푸릴 뿐 고통을 너무나 잘 참았고, 온몸에 노란색 열기를 내뿜고 있는 압양의 마지막 단계, 즉 가장 큰 고통을 느끼는 그 단계에서도 비명조차 지르지 않고 있었다. 독종도 지독한 독종이 따로 없었다.
 <내가 저놈을 너무 과소평가했던가? 그런 것인가?>
 보자마자 바로 포기해버린 옥광이었다. 그러나 뜻밖의 면모를 강하게 보여줌으로써 서승천의 마음이 점점 흔들리고 있었다. 압양의 고통을 너무나 쉽게 넘긴 놈이라면 구타식음타혈도 완전 불가능한 일만은 아닌 것이다.
 <이봐!>
 <헉!>
 서승천은 흠칫거리며 고개를 재깍 돌렸다. 저승사자가 쭉 찢어진 입으로 해죽거리고 있었다.
 <간 떨어질 뻔했잖아!>
 <떨어질 간도 없는 놈이 간이 왜 떨어져? 어떻든 슬슬 갈 때가 된 것 같은데, 이제 그만 가자. 네놈 때문에 이곳에 오는 것도 지긋지긋하니까.>
 <…….>
 서승천은 답하지 않고 옥광을 쳐다봤다. 저승사자도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시선이 갔다.
 <혼백아, 괜스레 미련이랑 두지 말고 가자. 더 버티다간 저승도 못 가고 아예 이곳 지박령이 될 수가 있어.>
 <후우… 그래, 가야지. 하지만 그 전에 저놈하고 이야기 좀 해야겠어. 그 정도는 기다려 줄 수 있지?>
 <백십오 년이나 기다렸는데, 잠깐이라면 못 기다릴 것도 없지.>
 저승사자는 웬일인지 트집을 잡지 않고 순순히 받아주었다.
 서승천은 한 차례 어깨를 으쓱거리곤 옥광을 계속 응시했다.
 대략 반 시진 정도 지났을까?
 “후우-!”
 옥광이 긴 호흡을 끝으로 살며시 눈을 떴다. 그런 그의 얼굴엔 고통의 낯빛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어린아이의 해맑은 미소를 방긋 짓고 있었다.
 서승천은 그의 곁으로 바로 가다가 다소 어울리지 않는 미소를 머금었다.
 <어떠냐? 몸은 괜찮으냐?>
 “몸에 열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몸도 매우 가벼워진 것 같습니다.”
 10년 전부터 찰거머리처럼 찰싹 붙어 있었던 열기. 옥광은 그것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마치 뜨거운 여름날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다가, 이불을 벗어 던지고 북풍이 몰아치는 얼음판에 선 것처럼 상쾌한 느낌을 만끽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극한수의 냉기로 인해 오히려 한기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옥광은 기뻤다. 이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면 서승천의 말대로 정말 단명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더 나아가 구타식음타혈이란 것도 망상된 허위가 아니라는 것도 강하게 느껴졌다.
 털썩.
 옥광은 기쁨을 뒤로하고 서승천을 향해 두 무릎을 꿇었다.
 생명의 은인에게 그냥 있을 수 없었다. 또한 정상적인 육체를 가질 수 있다는 희망까지도 심어주었으니, 당장 감사를 표하지 않는다면 배은망덕한 놈이 될 수밖에 없었다.
 옥광은 최대한 정중히 허리를 구부리며 절을 올렸다. 한 번에 그치지 않고 두 번을 올렸다. 마음 같아서는 천번 만번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죽은 자를 위한 절이라 두 번으로 그쳤다. 그리고 읍을 하기 위해 살짝 허리를 숙이려는 순간, 서승천이 그 행위를 멈추게 했다.
 <잠깐! 한 가지 묻겠다.>
 “……?”
 <이곳을 나가면 정말 구타식음타혈을 행할 참이냐?>
 옥광은 서승천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의 얼굴은 자못 심각했고 이때까지 잘 느껴지지 않았던 위엄 또한 실려 있었다.
 “예, 반드시 할 것입니다. 죽으면 죽었지 이런 몸으로 절대 살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묻겠다. 그 어떤 고통이 와도, 아니 맞아죽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그것을 할 자신이 있더냐?>
 “예!”
 <좋다, 그 근성을 믿겠다. 그럼 절을 일곱 번 더 하라.>
 일곱을 더? 그렇다면 총 아홉 번이지 않는가?
 옥광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 저를 제자로 삼으시겠다는 말씀입니까?”
 <그게 아니면 뭐 하려고 쓸데없는 절을 더 받겠어?>
 “…….”
 제자가 되라. 그것도 산 사람이 아닌 죽은 자에게.
 옥광은 의아스러웠다. 하지만 다시 절을 올리기 시작했다.
 삶과 희망, 그 귀중한 두 가지를 준 서승천에게 무엇인들 못하리. 오히려 감사하게 받아들려야 했다.
 한편 그의 절을 받고 있는 서승천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눈가에 잔잔한 이슬이 맺혔다.
 <제자를 받는다는 것이 이런 기분이던가? 젠장, 눈물까지 나오려 하는군. 아무튼 죽지나 말아라, 이놈아…….>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던가. 너무나 뛰어난 혈이기에 오히려 정상적인 제자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옥광. 하지만 그의 근성에 천양신공의 후손이라 인정하고 싶었다. 그가 진정한 천양의 후계자가 되든 안 되든.
 “제자 옥광, 하늘의 인연으로 사부께 첫 인사를 마칩니다.”
 첫 인사, 그러나 서승천에겐 마지막 인사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얼굴은 밝지만은 않았다.
 <이로써 넌 나의 첫 번째 제자이자 마지막 제자다. 하여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말하겠다.>
 “예.”
 <넌 천양의 열두 번째 후계자란 것을 명심하고 자랑스럽게 여겨라. 그리고 만약… 정상적인 육체를 가진다면 천양의 후계자로서 천양신공을 갈고닦아야 한다. 그리하여 극음극혈을 가진 자들에게 그 기운을 빼앗아야 한다. 천양신공의 비급과 천양의 제자로서 해야 할 의무가 담긴 서신을 네가 직접 적었으니 무슨 말인지 잘 알 것이다. 그러니 긴 말을 하지 않겠다.>
 “예, 사부님.”
 <다시 묻겠다. 몸이 정상적으로 된다면 천양의 제자로서 정말 그 의무를 다하겠느냐?>
 옥광은 생각했다. 정상적인 몸이 된다는 것은 사내로서 떳떳하게 살고 싶은 그 욕망 때문이었다. 그런데 천양의 제자가 해야 하는 일은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무림인이 되라는 소리인데, 과연 그것을 할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서승천의 면전에서 감히 못하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예, 사부님. 그 의무를 다할 것을 맹세하겠습니다.”
 결국 옥광은 맹세까지 해버렸다.
 하기야 천양의 제자로서 해야 하는 일은 권선징악(勸善懲惡)이며 더 나아가 구국구민(求國求民)과 같은 큰 뜻을 가진 것이니, 사내대장부로서 그 뜻을 가지는 것도 과히 나쁘지만은 않았다. 어쩌면 더 뜻 깊은 삶을 살 수 있으리.
 <그 맹세, 백십오 년의 고통을 일시에 해소시키는구나. 하하하하!>
 서승천은 커다란 대소를 터뜨렸다.
 제자 옥광, 실제 천양의 후계자로서 의무를 다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정상적인 신체를 가지기 전에 숱한 매를 맞고 비명횡사할 수 있는 공산이 더 컸다.
 그래도 단호한 그의 맹세가 너무나 듣기 좋았다. 그의 말대로 이날까지 지긋지긋한 기다림의 고통을 완전히 해소할 정도로.
 
 
 제4장. 식광아(食狂兒)
 
 이가 여기저기 나가 있는 바가지.
 행오는 그 바가지 안을 쳐다보며 연방 히죽거렸다. 다른 날보다 다르게 반의반도 차지 않았던 음식이 오늘은 한가득 채워져 있었다. 황당하게도 늘 야박하게 굴었던 채소 상점 주인도 오늘따라 밥을 듬뿍 담아주기까지 했었다. 식은 밥도 아닌 따끈따끈한 밥을!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더니. 히히히.”
 이틀 동안 개창(開昌) 마을을 돌아다녀야 할 분량을 불과 반나절 만에 다 채운 행오는 바가지만 쳐다봐도 배가 든든해질 지경이었다. 그래도 음식을 배 속에 집어넣어야 하는 법.
 “일단 저곳에서 먹자.”
 행오는 사위를 한 차례 힐끗 쳐다보다가 골목길 어느 처마 밑에 쭈그리고 앉았다. 다른 거지 놈에게 들키거나 거지 두목에게 가지고 가봤자 배 속에 들어갈 분량은 항시 정해져 있어, 미리 배 속에 집어넣는 것이 상책이었다.
 행오는 시커먼 손을 앞섶에 슥슥 문지른 후, 먼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한 움큼 집었다. 그리고 막 입속에 넣으려는 찰나였다.
 저벅저벅.
 ‘젠장! 들킨 것 아냐?’
 인적이 뜸한 골목길에 올 사람은 별로 없었다. 고로 십중팔구 개코처럼 음식 냄새를 맡고 찾아온 동료일 가능성이 높았다.
 “휴우…….”
 행오는 이내 가슴을 쓸어내렸다.
 거지 동료가 아니었다. 약간 지저분해 보였지만, 제법 잘 차려입은 한두 살 더 어려 보이는 보통 사내아이였다.
 “거지 밥 먹는 것 처음 봐? 썩 꺼져!”
 매서운 눈초리에 겁을 제대로 먹었는지, 사내아이는 멈칫거리곤 천천히 등을 돌렸다.
 그런데 돌아섰다 다시 되돌아서는 것은 뭐란 말인가? 급기야 자신 쪽으로 터벅터벅 걸어오기까지 했다.
 ‘뭐야? 완전히 겁을 상실한 놈인가? 아니면 이 근처에 집이 있나? 그건 아닌데.’
 개창 마을에서 무려 3년 동안 구걸한 경력으로 비춰, 사내아이는 분명 이 동네 아이가 분명 아니었다.
 하긴 친척이 있어 방문한 아이일 수도 있었다.
 행오는 그렇게 결론지으며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오랜만에 포식하는 일이었다. 하여 손에 든 밥을 곧장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다시 손을 집어넣으려는 순간이었다.
 슥.
 행오는 두 눈을 끔뻑거리며 씹고 있던 입을 움직이지 못 했다.
 들고 있던 바가지가 왜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진단 말인가?
 고개를 천천히 들어올렸다. 어이가 없게도 사내아이가 자신의 바가지를 들고 있었다.
 거지끼리 음식을 빼앗는 일은 다반사이지만, 보통 아이에게 바가지를 뺏기는 일은 처음이었다. 화가 나는 것보다 실로 어이가 없었다.
 행오는 세차게 머리를 흔들며 두 눈에 쌍심지를 켰다. 그럼에도 사내아이는 보란 듯이 음식을 꾸역꾸역 주둥이 속으로 쑤셔 넣고 있었다.
 “이 새끼가 빼앗을 것이 없어서 거지 밥그릇을 빼앗아? 당장 이리 내놔, 그럼 딱 열 대만 때려 주마.”
 판단 착오였다. 놈은 안하무인으로 계속 음식을 우거적거릴 뿐만 아니라 바가지까지 질끈 끌어안기까지 했다. 겁을 완전히 상실한 놈이든가, 아니면 완전히 미친놈이었다.
 “너 오늘 완전히 죽었어!”
 행오는 눈앞에 뵈는 게 없었다. 오직 요절낼 대상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에 즉각 일어나 발을 힘껏 뻗어 놈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퍽’ 하는 타격음과 함께 놈은 그대로 바닥에 넘어졌다.
 당연한 일이었다. 발차기 하나만으로도 비슷한 또래의 거지들이 다들 자신을 두려워했다. 따라서 놈도 온몸을 부들거리며 바가지를 즉각 내밀리라 기대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넘어진 상태에서도 계속해서 음식을 처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뭐 이딴 놈이 다 있어! 죽어!”
 행오는 놈을 향해 무작위로 발을 뻗기 시작했다. 등을 차고 허리를 차고, 때론 다리도, 급기야 머리까지 힘껏 찼다.
 얼마나 찼을까?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고, 문득 정말 죽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까지 몰려올 때였다.
 “컥! 이, 이 새끼 도대체 뭐야!”
 계속 먹고 있었다. 머리가 깨어지고 입술이 터져 핏물을 줄줄 흘리고 있는데도 음식을 먹고 있었다. 급기야 토해낸 음식을 긁어서 먹기까지 했다.
 털썩.
 행오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더 때릴 의욕마저 상실해버렸다. 더 이상 화도 나지 않았다. 오히려 사내아이를 향해 측은한 눈빛을 흘렸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그래, 그냥 먹어라. 거지인 내가 언제 적선을 해보겠냐? 젠장.”
 행오는 음식을 포기해버렸다.
 지난날 자신도 이런 경험이 있었다. 3년 전 너무나 배가 고픈 나머지 만두 3개를 훔친 적이 있는데 그 자리에서 잡혀 그 가게 주인에게 숱한 뭇매를 맞은 적이 있었다. 그 와중에서도 만두 3개를 끝까지 먹었었다. 바닥에 떨어진 부스러기까지도.
 사내아이를 통해 그때의 장면이 너무나 또렷하게 떠올라 더 이상 앙갚음을 할 수 없었다.
 “끄으응!”
 “왜 더 안 먹고? 이제 때리지 않을 거니까 그냥 먹어.”
 사내아이는 바가지 안의 아직 3분의 1 정도 남은 음식을 포기하고 어기적거리며 일어났다.
 하기야 더 먹지 못할 것이다. 맞아도 호되게 맞았으니, 제아무리 튼튼한 위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음식을 받아들이지 못할 일이었다. 실상 들어간 음식을 다시 토해내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나에게 또 무슨 볼일이 있냐?”
 그냥 갈 줄 알았던 사내아이가 배를 움켜쥐며 다가왔다. 그리고 품속을 뒤적거리곤 자신의 손을 잡으며 무언가를 건네주었다.
 “고맙다.”
 사내아이는 짧은 감사의 말과 함께 곧장 등을 돌렸다.
 행오는 아이보다 손에 놓은 자그마한 물건 하나를 쳐다봤다.
 “지, 지금 내 손에 있는 것이 은, 은전이 맞아? 아니야, 내가 헛것을 본 것이야.”
 구리돈도 아니었다. 은빛을 반짝거리는 귀한 은전이었다. 무려 15일을 동냥하지 않아도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돈이었다.
 그런 거액의 돈이 시커먼 자신의 손바닥에 놓여 있다?
 마냥 꿈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그러나 보면 볼수록 더 뚜렷하게 보이는 은전이었으며, 손바닥엔 더 확실한 촉감이 느껴졌다.
 행오는 골목 입구 쪽으로 고개를 획 돌렸다. 아이는 이미 사라지고 먼지바람만 휑하니 불고 있었다.
 “도대체 그 새끼는 뭐야?”
 돈이 있는데도 왜 거지 밥그릇을 빼앗았단 말인가?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고 어이가 없었다.
 행오는 커다란 돈을 얻은 기쁨보다 한동안 멍하니 골목 입구만 쳐다봤다.
 
 ***
 
 졸졸졸.
 주위 숲을 배경으로 자그마한 천(川)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졸졸 흐르고 있었다. 아낙네들이 삼삼오오 옹기종기 모여 빨랫방망이를 열심히 놀려 대고, 상류 쪽으로 조금 올라가매 아이들이 개구리와 가재를 잡느라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좀 더 위로 올라가면 시원한 폭포가 있었고, 그 아래 목욕을 할 수 있는 조그마한 소(沼)가 있었다.
 그 소 가에 옥광이 두 무릎과 두 손을 바닥에 대고 수면을 쳐다보고 있었다.
 우욱!
 소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소에다가 토악질을 하고 있었다. 한 번에 그치지 않고 연방 토악질을 해대고 있었고, 나중에는 음식물이 아니라 누른 액체만 토해내고 있었다.
 그러길 대략 반각이 지났을까? 옥광은 하늘을 향해 쓰러지듯이 벌렁 누워버렸다.
 “역시 어려운가? 크으음…….”
 구타식음타혈.
 상식적으로 황당하고 말이 안 되는 타혈이었다.
 음식을 먹는다. 그리하여 살이 되고 뼈가 되어 아이들은 성장을 한다.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살과 뼈가 되어야 할 영양분들이 생성되자마자 몸속의 강한 양기로 인해 재처럼 화해버린다면 어떨까? 성장이 멈추는 것은 당연지사이며 종국에는 영양실조로 죽을 수밖에 없다.
 진원극양극혈을 가진 자의 몸이 바로 그렇다.
 비록 압양 호흡법을 통해 어느 정도 그것을 억제시킬 수 있다고는 하나, 현상 유지밖에 되지 못할 뿐 성장에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하여 정상적인 육체를 구축하려면 음식물을 섭취한 영양분들이 살과 뼈로 될 때까지 양기의 활동을 최대한 억제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음식을 섭취하는 동안 많은 뭇매를 맞아야 한다. 그리하여 몸속에 있는 양기들이 상처 부위에 강한 열기를 발산하게 유발시킴으로써 그 틈을 이용해 영양분은 소멸되지 않고 살과 뼈를 이룰 수 있게 만든다.
 이것이 구타식음타혈의 이론이었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옥광에겐 그 이론이 가슴에 진하게 와 닿았다. 하여 오늘 그것을 한 거지를 통해 행했는데 과히 쉽지가 않았다. 아니, 죽을 것만 같았다.
 뭇매를 맞을 때 경직되는 것은 살뿐만 아니라 내장도 경직돼 음식을 먹기가 버거웠다. 특히 배를 맞았을 때에는 들어갔던 음식이 다시 튀어나왔고, 매를 다 맞고 나서도 이렇게 토악질로 모두 다 쏟아내었으니 아무 이득 없이 몸만 상할 뿐이었다. 당장이라도 포기하고 부친 곁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아버지. 흑흑흑!”
 아버지가 생각나자 괜스레 서글펐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부 서승천에게 맹세했던 것을 모두 잊고 이대로 아버지가 있는 풍곡을 향해 달려가고 싶었다.
 ‘그냥 갈까?’
 마음 한구석에 또 다른 자아가 있는 것인지 뇌리에서 자꾸만 집으로 가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극한동혈이란 곳을 나와 제일 먼저 한 것이 무엇인가?
 가까운 마을에 가서 부친에게 서신을 보낸 일이었다. 무탈하게, 그리고 병이 완전히 나았다고 알렸으며, 당당한 사내대장부가 되어 다시 돌아오겠다고 호언장담한 글을 보냈었다. 한데도 이대로 그냥 간다?
 실로 낮 뜨거운 일이었다.
 <단 한 번 가지고 벌써 포기한 것이냐! 정말 못난 놈이로구나!>
 “사, 사부님!”
 옥광은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갑자기 사부의 질타하는 소리가 머릿속에 울린 것이다. 분명 저세상으로 간 사부가!
 옥광은 주위를 연방 둘러봤다. 사부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사부를 부르고 또 불러도 환청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단 말인가?
 옥광은 하늘을 쳐다봤다. 사부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새하얀 양떼구름만 흘러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사부가 두 눈을 번뜩거리며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옥광은 고개를 아래로 떨어뜨렸다. 낯 뜨거워 하늘도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바보 같은 놈! 배은망덕한 놈! 나약하고 스스로의 약속도 지키지 못한 놈!’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리고 잠깐 나약해졌던 스스로를 질타하고 또 질타했다.
 “난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고!”
 옥광은 벌떡 일어났다. 온몸이 욱신거리고 뼈가 뿌득거려도 힘차게 두 발을 움직였다, 음식과 때려 줄 사람이 있는 곳으로.
 
 ***
 
 천하(天下)객점
 
 옥광은 커다란 현판에 황금색으로 칠한 간판을 쳐다봤다. 층만 해도 무려 5층이었고 층층마다 덮여 있는 반듯한 청색 기와와 용호(龍虎) 조각이 꽤 화려했다. 출입구를 통해 보이는 1층 광경도 꽤나 화려했다. 바닥은 빨간 융단이 깔려 있고 대략 30여 개가 되는 식탁도 금포와 같은 누른 천으로 덮여 화려함과 고급스러움을 물씬 드러내고 있었다.
 바로 개창에서 제일 크고 비싸기로 소문 난 객점이었다. 하여 일반 서민들이 감히 입구 안으로 들어갈 엄두를 낼 수 없는 곳이기도 했다.
 옥광은 간판에서 시선을 떼며 손바닥을 쳐다봤다. 그의 손에 은전 3개가 일광에 반짝거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오늘은 음식다운 음식을 먹어볼까?”
 이곳 개창에 머문 지 한 달째. 이날까지 계속해서 거지 밥그릇만 빼앗아 먹은 상태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거지 밥그릇을 빼앗는 것이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했다.
 처음엔 음식조차 제대로 먹지 못했지만 맞으면 맞을수록 점점 이력이 붙었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들에게 맞는 효과를 거의 보지 못했다.
 거지들이 돈을 준다는 것을 안 것이다. 하여 어떨 땐 구타하지도 않고 선뜻 밥그릇을 줄 때도 있었고, 때려도 대충 때리는 시늉만 한 거지들도 있었다. 설령 돈을 주지 않아도 미친놈으로 여겨 침만 뱉고 가는 거지들이 허다했다.
 무엇보다 같은 또래의 아이들에게 맞아서 그런 것인지 호되게 맞아도 그다지 효과를 볼 수 있었다. 더 특이한 것은 상처도 없고 멍도 잘 들지 않았다.
 옥광은 이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다름 아닌 눈앞에 보이는 객점을 대상으로 구타식음타혈을 하리라 작심했다. 이곳이라면 거지들의 영양가가 없는 음식이 아닌 질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고, 때릴 사람은 아이가 아닌 주먹이 센 장성이 분명할 터. 구타식음타혈에 매우 적합한 장소였다.
 물론 일을 다 치르고 음식 값을 지불할 생각이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관에 신고하여 헛된 나날을 옥에서 보낼 수 있으니 말이다.
 또한 이런 식으로 구타식음타혈을 할 수 있는 돈은 충분하고도 남아돌았다. 사부 서승천이 기거했던 실내에 식량이 들어 있을 줄 알았던 단지 안엔 모두 은전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서승천이 허락해 그 돈의 3분의 1을 가져와 늘 잠을 자는 소 가에 소중히 묻어둔 상태였다. 아울러 수십 개의 야명주도 함께.
 각설하고, 옥광은 은전 3냥을 버선 밑에 꽁꽁 숨겨 놓고 곧장 천하객점 안으로 들어갔다.
 
 옹달은 두 눈을 끔뻑거리며 한 아이를 쳐다봤다.
 “그, 그러니까 그 많은 음식을 다 시키겠다고?”
 무려 스물두 가지의 음식을 시킨 손님, 아니 아이. 행색을 보아 비록 몇 군데가 찢어진 곳이 있긴 하지만 보통 서민이 입기 힘든 비단 옷을 입고 있었다. 얼굴도 약간 멍이 든 곳이 있었지만 제법 귀티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부잣집 아들이 또래와 어디서 싸움질을 하고 온 듯했다.
 그보다 조그마한 아이가 무슨 수로 20인분이 넘는, 그것도 모두 다 합해 은전 2냥이나 되는 음식을?
 “뭘 꾸물대는 거요? 부친과 친척 분들이 오기 전에 음식이 다 차려져야 하오.”
 “아!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요.”
 옹달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으로 봐 어른들을 위해 미리 음식을 준비키는 것이 틀림없었다.
 ‘다 좋은데 저놈의 말투가 영- 거슬리는군. 하긴 있는 것들은 어른이나 애나 다 똑같지, 뭐.’
 아이 같지 않은 말투가 듣기 부담스럽고 마음에 안 들었지만, 최대한 인상을 활짝 펴며 10살이나 차이가 나는 아이에게 허리를 굽실거렸다. 싫든 좋든 이런 유의 사람들에게 잘 보여야 뭔가가 자신에게 떨어질 일이니까.
 어느덧 주문한 음식이 식탁을 빼곡히 채울 때즘, 옹달은 향긋한 소나무 향이 나는 생선 요리를 올려놓고 두 손바닥을 살살 문질렸다.
 “자, 시킨 음식은 모두 다 대령했습니다요. 뭐 다른 것은 필요 없는… 지요, 꼬마가 아니고… 도련님.”
 “이 정도면 됐소.”
 “저기… 어른들은 언제 오십니까? 음식이 식으면 맛이 떨어지는데.”
 옹달은 아이에게 최대한 정중히 대하며 입구를 힐끗 쳐다봤다. 한데, 아이는 입꼬리를 한쪽으로 치켜 올리며 비아냥거리듯 입을 열었다.
 “어른들? 이곳에 올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무슨 소리요? 음, 이 생선 보기보단 맛이 좋구려.”
 “지, 지금 뭐라고 했는지요?”
 옹달은 자신의 귀를 후벼 팠다. 아이는 손으로 생선을 쭉 찢어 태연하게 입속으로 집어넣기만 했다.
 “생선이 맛있다고 했소.”
 “그게 아니라 앞에 한 말!”
 “올 사람이 없다고 했소. 뭐가 잘못됐소? 오! 이건 양고기로구나.”
 지금 장난을 치는 것인가?
 옹달은 안면을 꿈틀거리며 주먹을 올리려다가 바로 내렸다. 아이가 그냥 장난을 쳤을 공산이 컸기에 일단 객점 입구로 나갔다. 그리고 대로를 향해 연방 좌우로 고개를 돌렸다.
 장돌뱅이 몇몇과 장바구니를 든 행인, 그리고 간간이 마차가 지나갈 뿐 단체로 몰려오는 행인은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정말 아무도 안 온다는 소린가?
 옹달은 아이에게 다시 성큼 다가섰다.
 “다 좋다. 너, 아니 도련님은 음식 값을 가지고 있겠지요?”
 오든 안 오든 중요한 것은 음식 값이었다.
 그런데 이 망할 놈의 작태를 보라! 거지새끼처럼 식기를 사용하지 않고 두 손으로 음식을 허겁지겁 입속으로 쑤셔 넣으면서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것이 아닌가.
 옹달은 갑자기 뒷목이 뻣뻣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울러 어금니에서 절로 뿌드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식도에서 뜨거운 열 덩어리가 툭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대로 있다간 실로 두 눈을 돌아갈 지경이었다.
 “이 개잡놈의 새끼가 죽으려고 환장을 했구나!”
 평생 이렇게 화가 나본 적이 있던가?
 점소이로서 수많은 일을 당해봤어도 지금만큼 화난 적이 없었다. 실로 눈앞에 있는 놈을 죽도록 패고 한나절은 더 패주고 싶었다.
 그로 인해 주먹이 자연스럽게 아이의 턱 쪽으로 뻗어갔다.
 곧이어 ‘퍽’ 하는 통쾌한 소리가 들려왔고, 아이가 바닥에 너부러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끝까지 음식을 꾸역꾸역 처먹고 있지 않은가.
 “죽어!”
 옹달은 객점 손님들을 신경 쓰지 않고 두 손과 두 발로 모든 화를 토해냈다.
 얼마나 때리고 또 때렸을까? 옹달은 문득 주변에서 따끔한 눈초리가 느껴져 내리찍으려는 발을 멈추고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때려도 너무 심하게 때리는군. 저러다가 애가 죽지.”
 “이제 열 살 정도밖에 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만 하쇼!”
 너무 심했던가?
 하기야 내려다본 녀석은 쌍코피를 시작해 얼굴이 퉁퉁 부어 두 눈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덜덜거리는 손으로 음식을 입속에 꾸역꾸역 집어넣고 있었다.
 “빌어먹을! 너 같은 놈은 옥살이를 해야 돼!”
 스스로 생각해도 그렇게 독한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대로 보내주기엔 화가 풀리지 않았다. 그냥 싼 음식 하나만 시켰더라면 뺨 한 대 때리고 돌려보낼 아량도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값비싼 음식만 골라 무려 20인분 넘게 시켰으니, 놈은 작정하고 골탕을 먹인 것이 틀림없었다. 무엇보다 영업 방침상 손해 본 금액을 본인이 직접 배상해야 할 책임이 있으니, 절대 그냥 보낼 수 없었다.
 “망할 놈의 새끼. 일어나! 나와 당장 관으로 가자!”
 “아직 덜 먹었소.”
 정말 어이가 없는 놈이었다. 순간 느슨해진 손아귀를 뿌리치고 엉금엉금 기어가 닭다리를 뜯고 있었으니… 옹달은 헛웃음만 계속 토해내며 멍하게 서 있기만 했다.
 그렇게 닭 한 마리를 뚝딱 비운 놈이 천천히 다가와 섰다. 마음 같아서는 더 패주고 싶었지만, 퉁퉁 부은 얼굴을 보매 더 때릴 곳도 없었다.
 놈은 줄줄 흐르는 코피를 소매로 한 차례 훔치더니 버선을 매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거면 음식 값과 깨진 접시, 그리고 당신 수고비는 될 것이오.”
 피 묻은 손에 놓여 있는 3개의 은전. 옹달은 두 눈을 끔뻑거리며 쳐다보고 또 쳐다봤다.
 ‘무, 뭐야? 이, 이놈 돈을 가지고 있었잖아!’
 도대체 이놈은 뭔가? 정말로 음식 값이며 깨진 접시, 그리고 푸짐한 수고비까지 들고 있지 않은가.
 어이가 없어서도 너무나 어이가 없는 나머지 말문조차 나오지 않았다. 아울러 괜스레 죄인이 된 기분을 떨쳐 낼 수가 없었다.
 “이, 이봐!”
 겨우 말문을 열었건만 아이는 이미 출입구 밖으로 나간 상태였다.
 “도대체 저놈은 뭐야!”
 묻고 또 물었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오히려 객점에 있는 손님들이 하나 둘 자신에게 몰려와 누구냐는 질문 공세만 퍼붓기 시작했다.
 
 ***
 
 “어라? 저놈 좀 보소? 석가야, 완전히 돈 놈 아냐?”
 “또 시작이군.”
 “뭘 말이야?”
 좌판 장사꾼으로 10년이나 생활해온 고식은 이곳 개창에서 터를 잡고 채소 장사를 하는 석두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석두는 채소에 물을 뿌리는 것을 멈추고 어느 한 곳을 쳐다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미쳐도 저렇게 미친 아이는 없지.”
 “그래, 딱 보기에도 단단히 미쳐 보인다. 어떻게 만두 좌판에다가 모래를 뿌려? 도망은 왜 안 가고?”
 “너 저놈을 처음 봐? 아! 맞아. 넌 여섯 달 만에 왔으니 저놈을 모르겠군. 그보다 만두 주인을 잘 봐.”
 “어럽쇼! 만두 주인이 왜 저놈에게 손을 빌어? 허- 참. 어이가 없다.”
 “어이가 없을 거다. 하지만 한두 번 당하면 너도 저놈에게 싹싹 빌 거다.”
 “그게 무슨 소리야? 설마 저 어린놈이 이곳 시전의 왈패 일원은 아닐 테고.”
 “네가 환곡으로 떠났을 즘 저놈이 불쑥 나타났는데 말이야… 이제 저놈을 모르면 개창 사람이 아니지.”
 석두는 채소를 옆으로 치우며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기 시작했다. 고식은 연방 말도 안 된다는 소리를 내뱉으며 저편 아이를 향해 혀를 내둘렀다.
 언제나 품 안에 음식을 가지고 다니는 아이로 물지게꾼의 물통을 고의로 발로 차서 뭇매를 맞는 것부터 시작해, 지금 보는 것처럼 음식물을 파는 좌판 상인에게 모래를 뿌려서 매를 벌고, 장신구 가게에 들어가 장신구 위에서 오줌을 누워 흠씬 두들겨 맞고, 지나가는 여인네들의 치마끈을 고의로 풀어 동행인 장성한 사내에게 매를 벌고, 음식점에 들어가 손님의 접시에 침을 뱉어 또 매를 벌고, 심지어 동냥하는 거지 밥그릇까지 빼앗아 매를 버는 아이.
 이렇게 끝없이 해괴한 짓을 해대며 하루도 빠짐없이 매를 범에도 불구하고 손해 본 당사자에게 꼭 돈으로 보상해주고, 가장 큰 특징은 매를 맞을 때마다 늘 음식을 먹는 아이라 한다. 하여 개창에서는 그 아이를 모두 ‘식광아(食狂兒)’라고 부르며 지금은 완전히 개창의 명물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고식은 믿기지가 않았다. 허구한 날 어떻게 맞고만 살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음식을 먹으면서?
 하물며 덩치는 어떠한가?
 장성한 사내도 아니고 바람이 불면 그냥 휘하고 날아갈 것 같은 몸인데, 석두의 말대로라면 죽어도 진작 죽었을 아이였다.
 “믿기지 않는 얼굴이군.”
 “석가야,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리고 저놈의 얼굴을 봐라. 네 말대로 매일같이 맞았다면 어떻게 얼굴이 저렇게 반들반들할 수 있어?”
 석두도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나도 그 점이 참 신기해. 어디 사는지는 모르겠지만, 바지에 똥을 쌀 정도로 그렇게 두들겨 맞아도 다음 날이면 멀쩡한 얼굴로 나타나는 놈이니 말이야. 그 일 때문에 개창 사람들은 언제부터가 식광아를 꺼려 하고 무서워하지. 특히 때리고 난 다음에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치 않고.”
 “그럼 너도 저 식광아란 놈을 때려 봤어?”
 “그럼, 세 번이나 놈을 흠씬 두들겨 팼지. 처음엔 안 때리려고 했는데, 채소 위에다가 엉덩이를 까고 똥을 누었으니 눈이 안 돌아가겠냐?”
 “큭!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
 “맞아, 단단히 미쳤지. 그리고 잘 봐라. 조금 있으면 싹싹 비는 만두 주인이 주먹질을 해댈 거야. 저놈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매를 버는 놈이니까.”
 정말일까? 고식은 좌판을 펼칠 생각을 하지 않고 아이와 만두 주인만 쳐다봤다.
 그러길 잠시.
 “세, 세상에나!”
 “무, 뭐 저런 놈이 다 있어!”
 고식뿐만 아니라 늘 식광아를 봐왔던 석두도 입을 쩍 벌렸다.
 어떻게 만두에다가 모래를 집어넣을 뿐만 아니라 오줌까지 뿌려, 그것을 공짜라고 말하며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단 말인가? 심지어 만두 주인을 가리키며 인심을 쓰고 있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이 새끼, 너 오늘을 완전히 죽었어!”
 결국 만두 주인은 만두의 편을 뜨는 방망이를 들고 식광아를 무자비하게 패기 시작했다. 또한 그 와중에 식광아가 품속에 음식을 꺼내 먹는 것도 목격할 수 있었다.
 “세상에 미친놈이 많고 많다고 하지만 저런 놈은 처음 본다. 허허!”
 “볼 때마다 정말 소름 끼치는 놈이야…….”
 둘은 본분의 일조차 까마득하게 잊은 채 한동안 멍하니 식광아를 쳐다보기만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시전 주위 대부분 장사꾼들도 ‘식광아’란 이름만 부르며 두 눈을 심하게 흔들거리고 있었다, 제발 자신에게 오지 않기를 바라는 눈빛을 가득 드리우면서.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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