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날이었다.
매일 같이 떠지지 않는 눈을 뜨고.
사람에 치여 콩나물시루처럼 출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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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입장할 자격을 얻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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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이야.”
잘못 본 줄 알고 눈을 비볐다.
이거 그거 아니야?
여전히 눈앞에 보이는 메시지 창.
각성한 이들에게만 보인다는 그것이 분명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옥상으로 향했다.
업무 시간이지만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미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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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입장할 자격을 얻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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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비비고 봐도 여전히 보인다.
정말로 내가 각성했다는 건데.
“괜찮냐? 어제 잘 들어갔어?”
때마침 등장한 입사 동기.
“어. 너는?”
“나야 집이 가깝잖아. 자고 가라니까.”
“자고 가긴. 너한테 민폐지.”
“민폐 아니라고. 어차피 집에 혼자 사는데. 손님방도 있다니까. 너만 특별히 초대한다고.”
낄낄거리며 말하는 동기 녀석.
부잣집 도련님이라 그런지 구김이 없다.
심지어 마음도 넓어.
이 회사도 사회 경험을 쌓기 위해 왔다고 했던가.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눈앞에 보이는 메시지창이 먼저지.
“어제 했던 농담 기억나?”
“어떤 거? 아, 각성하면 탑에 갈 거냐고?”
“어어.”
“음, 나라면 별로? 알다시피 돈은 많이 벌긴 하는데. 적성 안 맞으면 정신과 가는 거 한순간이라잖아. 각성했다고 신나서 들어갔다가 병원행 썰이 어디 한둘이어야지.”
역시 부잣집 도련님다운 대답.
각성은 인생 역전의 기회가 맞았다.
그러나 각성한 모든 이들이 인생을 역전하는 건 아니었다.
탑을 오르기 위해서는 몬스터들과 싸워야만 한다.
죽이기 위해 달려드는 몬스터와의 처절한 전투를 해야 한다는 뜻.
“포기하겠습니다. 벌써 100번도 넘게 죽었어요. 밤마다 죽는 순간의 악몽을 꿔서 살 수가 없습니다.”
포기하는 이들도 제법 많았다.
목숨을 걸고 싸운다.
그 압박감을 이겨내지 못한 이들이 생긴 것이다.
“친척 중에서도 한 분이 각성해서 탑에 갔다가 포기했거든. 내가 어제 말했었나? 술이 너무 취해서 기억이 안 나네.”
“아니. 왜?”
“몬스터랑 싸우는 게 할 짓이 못 된다고. 탑 안에서는 괜찮았는데. 밤마다 수면제 없이 잘 수가 없어졌다고. 근데 그 친척은 대형 병원장이라 미련 없이 포기할 수 있었지.”
역시 부잣집 도련님다운 친척.
“무엇보다 각성하면 뭘 하냐. 현실에서는 일반인 그 자첸데. 거기서 오는 상실감도 제법 크다더라.”
각성한 이들은 탑에서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도 그 힘을 쓸 수 있진 않았다.
그저 탑에 입장할 자격을 얻은 것일 뿐.
탑 안에서는 점프 스킬 한 번에 수십 미터를 날아다닌다곤 하던데.
정작 현실에서는 그대로였다.
그 괴리감 역시 탑을 포기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왜? 각성이라도 했어?”
“어.”
“내가 그럴 줄··· 뭐?”
눈이 휘둥그레지는 동기 녀석.
대화는 거기서 끝이었다.
계속해서 울리는 핸드폰 때문에 사무실로 돌아와야 했으니까.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시뻘게진 팀장의 민머리가 나를 부른다.
“너 인마! 일을 이따위로 할 거야? 지금 저쪽에서 난리가 났잖아! 이거 어떻게 할 거냐고!”
“그 건은 팀장님께서···.”
“뭐? 내가 일을 그따구로 처리하라고 지시했어? 니가 이따구로 처리해 놓고선.”
던지기다.
그것도 자기가 지시한 일에 대한 책임회피.
분명 팀장이 시켰다.
내가 분명 안 될 것 같다고 했는데.
자기가 책임지겠다면서 하라고 했지.
책임감?
그런 게 있을 리가.
있었으면 저리 나오지도 않았을 거다.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고.
일말의 양심조차 없는 인간이었다.
“너 이번 일로 회사 손해가 얼만지 알아? 이거 어떻게 책임질···.”
뚝.
그 순간 머릿속에서 소리가 들렸다.
월급의 노예가 되어야만 하는 직장인의 인내심이 끊기는 소리가.
“박성도 팀장님.”
“너 지금 나한테 뭐라고 했어?”
“성도야. 제발 사람 좀 되자.”
“그게 무슨···.”
얼빠진 표정을 짓는 팀장.
저 얼굴을 보니 얹힌 게 내려간다.
박성도 팀장이 나를 콕 집어 지시한 이유는 간단했다.
그 어떤 부당한 상황이 오더라도 반항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사회에서 취중진담은 약점이 된다.
나는 그 교훈을 몸으로 배웠다.
자신만 믿으라며 챙겨주던 저놈한테 홀라당 넘어가는 바람에.
“니가 시켰다고요. 박성도 이 개새끼야.”
“···.”
겁에 질린 얼굴로 움찔하는 팀장놈.
요리하기 위해 꺼낸 랍스터에 물린 표정이다.
“또 이 지랄할 줄 알고 내가 녹음해 뒀다. 궁금하면 일 벌여보던가. 여기 사직서.”
품에서 꺼낸 사직서를 던졌다.
철썩.
정확히 얼굴에 명중.
“알아서 처리해 주시고. 동종업계 안 갈 거니까 협박할 생각도 마시고. 그러면 이만 갑니다.”
쾅.
거칠게 문을 여니 여러 쌍의 시선들이 화들짝 놀라며 피한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꾸벅.
마지막 인사.
녹음?
그런 게 있을 리가.
팀장이 갑작스럽게 시킨 일이었는데.
일종의 블러핑이었다.
어차피 때려 친 대리에게 책임을 넘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최종 결정한 사람 역시 팀장 본인 아니던가.
그걸 알기에 나한테 수습하라고 던지기를 시전한 거다.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개고생하며 수습하라고.
이번에는 결말이 전혀 달랐지만 말이다.
“개운한데?”
수백 번은 더 넘게 시뮬레이션해 봤던 팀장 면상에 사직서 던지기를 실천했다.
직장인의 로망.
생각보다 끝내줬다.
***
좆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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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입장할 자격을 얻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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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문제였다.
평소라면 고개 숙이고 넘겼을 텐데.
나도 모르게 사표까지 면상에 던지고 나왔다.
머리끝까지 차올랐던 도파민이 끝나니.
현실이란 문제가 덜컥 코앞으로 다가온다.
숙이고 돌아간다?
지금까지보다 더한 지옥이 기다리리라.
“어쩌지?”
어쩌긴.
저질렀으니 탑에 들어가야지.
적성에 안 맞으면?
맞추면 된다.
회사도 적성에 맞아서 다닌 건 아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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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입장할 자격을 얻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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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눈앞에 보이는 메시지 창.
그 아래에 입장 버튼이 눈에 들어온다.
탑에 입장했다.
“상태창!”
가장 먼저 한 일은 상태창을 외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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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서현우
■ 레벨 : 1LV
■ 탑 : 1층
■ 특성 : 없음
■ 패시브 스킬 : 없음
■ 액티브 스킬 : 【인벤토리(1성급)】
■ 업적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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휑하다.
각성한 이들이라면 누구나 가진다는 인벤토리 스킬 하나가 끝.
그것도 아주 미니미 사이즈다.
“1렙 때는 전투 식량이랑 장비 한두 개 정도나 담을 수 있댔나.”
레벨이 오를수록 인벤토리가 커진다.
레벨을 올리는 방법은 간단하다.
탑을 등반하면 된다.
1층을 공략하면 2레벨이 된다.
2층은 3레벨.
3층은 4레벨.
일정 층 이상부터는 레벨이 더 높아진다던데.
각성자는 레벨이 오를수록 강해진다.
물론 탑 안에서만.
하나 더.
같은 레벨이더라도 보유 특성, 패시브 스킬, 액티브 스킬에 따라 강함이 천차만별이었다.
그러니 탑을 수월하게 오르는 이들이 생기고. 또 적응하지 못하고 포기하는 이들이 생기는 거겠지.
“보자. 탑에 최초로 입장하면 패시브 스킬 뽑기권을 준다고 했는데.”
인터넷에서 봤다.
[막 각성한 삐약이들을 위한 Tip]
처음 탑에 입장하고.
상태창! 외치는 건 다들 알 거야.
인벤토리 딸랑 하나 있는 상태창에 좌절하겠지.
하지만!
그 인벤토리를 열면 뽑기권이 하나 있을 거야.
그걸로 패시브 스킬 하나 얻을 수 있으니까 반드시 사용하라고.
부디 붉은빛이 터지길 바라며.
GOOD LUCK.
“정말 있네?”
과연 뭐가 나올까.
패시브 스킬(Passive Skill)
보유한 것만으로도 상시 발동되는 스킬이었다.
【강철몸】 같은 것이 나오기라도 하면 대박이라던데.
“제발···.”
인벤토리에서 뽑기권을 꺼냈다.
간절한 기도와 함께.
“후우.”
어차피 인생은 한 방.
가벼운 심호흡과 함께.
찌익.
찢었다.
그와 동시에 터지는 빛.
번쩍!
“제발!”
무지개 빛이라고 했다.
최악은 칙칙한 보랏빛.
최고는 강렬한 붉은빛.
“미, 미친?!”
터졌다.
그것도 찬란하게 눈부신 황금빛이.
황금빛이라고?
붉은빛이 끝 아니었어?
황금빛을 본 사람이 있었나?
잘 모르겠다.
관종이 아닌 이상 떠벌리고 다닐 리가.
49층에 도달한 미국의 리처드라면 보지 않았을까?
아니면 최상층을 달리고 있는 이들 중에서 봤을 수도 있고.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상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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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서현우
■ 레벨 : 1LV
■ 탑 : 1층
■ 특성 : 없음
■ 패시브 스킬 : 【라이프 베슬lv.1(5성급)】
■ 액티브 스킬 : 【인벤토리(1성급)】
■ 업적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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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라이프 베슬?
처음 보는 스킬이다.
흔히 말하는 스타트 스킬.
수많은 패시브들 중에서 저런 게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라이프 베슬lv.1(5성급)】
- 사용자의 생명력을 라이프 베슬 안에 저장합니다. 라이프 베슬이 파괴되기 전까지 사용자는 부활할 수 있습니다. 부활 장소 지정 가능 (지정 횟수 : 일 1회, 탑 안은 지정 불가능.)
“꽝이잖아?”
분명 황금빛이었다.
찬란하면서도, 번쩍번쩍한 황금색.
그런데 왜 이따구냐고!
각성자는 탑 안에서 죽지 않는다.
몬스터에 의해 목숨을 잃어도 현실로 돌아왔다. 아무런 보상도 없이.
유일한 페널티라면 24시간 동안 탑 입장이 불가능하다는 것.
“그럼 그렇지.”
차오르던 기대감이 파스스 부서진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각성해서 탑에 들어온 것만 해도 어디야.
【라이프 베슬】
거창한 이름처럼 제법 큰 구슬이었다.
내 생명력이 이만하다는 뜻인가.
구슬 안에는 은하수 같은 빛들이 흐른다.
“이걸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뜻인데.”
궁금하다.
각성자는 탑에서 죽지 않는다.
생명력이 담긴 라이프 베슬이 깨지면 어떻게 될까?
생각은 거기까지.
옥상에서 뛰어내리면 어떻게 될까?
이런 호기심이 생긴다고 실천해 볼 순 없잖아.
심지어 5성급 패시브 스킬이었다.
구슬이 깨졌다가 스킬이 사라지기라도 한다면?
절대 안 될 일이지.
가장 안전한 인벤토리에 넣자.
다음은 탑에 입장.
1층은 쉬웠다.
말 그대로 튜토리얼 층.
등장하는 몬스터도 입문자용이었다.
손쉽게 공략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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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임무에 성공하셨습니다.
보상 : 슬라임 핵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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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멈아, 보상이 짜구나.
임무를 성공하니 현실로 돌아왔다.
쥐꼬리만한 보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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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입장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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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보이는 메시지 창.
망설일 필요가 뭐가 있을까.
죽음 페널티를 받기 전까지 도전해야지.
2층에 입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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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탑 2층
- 임무 : 늑대 처치.
- 완료 조건 : 늑대 5마리를 처치하시오.
- 실패 시 : 24시간 입장 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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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실패.
연계 공격을 하는 늑대에게 물려 죽고 말았다.
“허억!”
비명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결코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죽음을 경험한다는 것은.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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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입장할 수 없습니다.
(대기 시간 : 24 : 00 : 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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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여야 할 저 메시지창이 없다.
실패 시 24시간 입장 제한이라는 페널티를 확인했음에도 말이다.
나는 죽었다.
그렇다면 24시간 탑 입장 제한 쿨타임이 돌아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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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입장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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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창이 말하고 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탑에 다시 들어갈 수 있다고.
설마 【라이프 베슬】의 효과인가?
그렇다면 고민할 필요가 뭐 있겠어.
다시 도전해야지.
나만 없어, 쿨타임.
무슨 인터넷 밈도 아니고.
죽고.
도전하고.
죽고.
도전하고.
죽고.
도전하고.
쳇바퀴 같은 일을 하루 종일 반복했다.
그 결과, 고작 하루 만에 4층 공략까지 성공해 버리고 말았다.
“미쳤다. 정말 미쳤다고.”
나조차 믿을 수 없는 성과에 경악한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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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이 생겼습니다.
시련의 탑에 입장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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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와 다른 메시지창이 떴다.
그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시련의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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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의 탑 입장■
1층부터 다시 등반을 시작합니다.
임무 성공 보상이 대폭 증가합니다.
임무 난이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한 번 선택 시 되돌릴 수 없습니다.
시련의 탑에 입장하시겠습니까?
[YES]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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